“얼마나 더운지 / 그는 속옷마저 벗어던졌다 / 엎드려 자고 있는 그의 엉덩이, / 두 개의 무덤이 하나의 잠을 덮고 있다….그의 벗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벌거벗은 육체가 아름다운 건 / 주머니가 없어서일 것이다 / 누구도 데려갈 수 없는 그 강을 / 오늘도 건넜다가 돌아올 것이다, 그는”
나희덕 시인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에 실린 시 ‘열대야’의 1연과 3연이다. 시인은 속옷마저 벗어던지게 만드는 더운 여름 밤의 풍경을 감각적이면서도 깊은 정념을 담아 그려내고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여신이자 죽음의 신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 세계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섯 개의 강 중 하나인 망각의 강 ‘레테’를 벌거벗은 채 건너갔다 온다.
시인의 말처럼 ‘잠은 죽음의 연습’이자 일상의 힘듦을 풀어주고 고뇌를 잊게 해 주는 시간이다. 그러하기에 매일매일 잠을 청하지만 이 무더운 여름밤, 속옷을 땀으로 적셔 가면서 혹은 속옷마저 벗어제치고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것이 이즈음 우리들의 모습이다.
바야흐로 8월이다. 여름의 절정이다. 폭염주의보,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폭염을 ‘매우 심한 더위’라고 간단히 정의하고 있는데, 한자의 뜻으로 보면 사나운 더위가 폭염(暴炎)이니 섭씨 30도 정도로는 폭염이란 명함을 내밀기가 어렵겠다. 실제로도 기상청에서는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날에 폭염이라는 단어를 붙여준다. 또한 최고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주의보를, 최고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를 발령한다고 한다.
1973년부터 자료가 제공되고 있는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가장 오랜 폭염일수를 기록한 해는 2018년으로 31일이었고, 그 다음이 29.6일의 1994년이었다.(폭염일수에 소수점 이하의 숫자가 보이는 까닭은 전국 여러 지점의 폭염일수를 평균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 폭염이 가장 긴 해와 장소는 어디였을까? 대구와 경북 지역이 많이, 그리고 오래 덥다는 것이 통념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2018년 7월 11일부터 8월 16일까지 37일 동안 이어진 충남 금산의 폭염이 가장 긴 폭염기록이다.
통계로만 본다면 아직 더위는 좀 더 참고 견뎌내야 할 것 같다. 더욱이 이 여름에 코로나19가 사나움을 한껏 더 불지르고 있다. 이 폭염에 방역복을 껴 입고 하루종일을 온몸에 땀으로 목욕하듯 보내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자. 가게문을 닫고 한숨과 눈물로 이 염천의 긴 여름을 지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자. 눅눅한 1평 남짓 쪽방에 여윈 몸 누이고 더위먹은 이들을 생각하자. 누구 하나 에어콘 ‘빵빵’하게 틀어놓고 내 몸 하나 편하다고 만족해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사나운 2021년 8월이 지나고 있다. 한 겨울 맹추위를 애써 떠올릴 필요도 없다. 이 여름의 폭염이 사랑과 나눔과 함께함의 뜨거움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고 말할 날이 오리라. 함께 보듬은 우리에게 폭염이 무슨 대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