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입구를 지나 그 중심으로 옮겨가는 순간, 여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잔뜩 습기를 머금은 한낮의 더위는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저 마찬가지가 된다. 몸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뜨거운 공기에 푹 들어가 있는 듯한 한낮 더위의 느낌은 사실 32도나 36도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경험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더위는 어차피 똑같다. 숨은 쉬기 힘들고, 마음도 쉽게 지친다.
사실, 여름의 한 가운데 들어왔다는 실감은 하루 종일 달궈져 있던 해가 질 무렵 그래도 불어오던 선선한 바람이 사라지는, 열대야의 후텁지근한 공기에서 찾아온다. 인간이 삶을 버텨내는 것은 그래도 힘겨운 오르막길을 넘어 조금은 평탄한 내리막이 존재한다는 바람 때문이 아닌가. 하루 종일 해가 질 무렵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만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름을 버텨내던 사람들은 해가 져도 아직 식지 않는 열기에 이제 여름의 한 가운데에 들어섰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열대야 속에서는 평온한 잠자리가 사투의 현장으로 바뀐다. 쉽게 잠들 수 없는 이른바 불면의 밤이 찾아오는 것이다.
에어컨을 켰다가 껐다가, 더이상 찬바람을 내지 못하는 선풍기를 켰다가 껐다가 별다른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사실 이런 불면의 밤에는 자연스레 컴퓨터나 노트북에 손을 뻗어 영화나 영상을 보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로 후덥지근한 공기에서 손을 움직여 책을 넘기는 행위조차 귀찮아져, 결국 구독하는 각종 OTT미디어 서비스(Over-the-top Media Service·인터넷을 통해 방송, 영화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옛날에 보았던 영화, 드라마를 골라보거나 동물이나 요리 영상 등을 찾아보거나 한다. 열대야로 인해 초래된 불면의 밤이 이어져 자야 할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이 같은 불면의 밤에 이처럼 눈과 귀를 편하게 자극하여 뇌를 각성시키는 영상을 보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답답한 더위가 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방해하니 해결책을 찾지 못한 마음이 무언가 집중할 가장 손쉬운 대상을 찾은 것에 불과하다. 어차피 영상 한 편을 본다고 시원해지지 않으니, 결코 한 편을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불면의 밤에 쉽게 잠이 드는 방법은 몸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10~20분이라도 달리기를 하고 돌아와 씻고 누우면 긴장했던 몸이 서서히 이완되며 더위의 한 가운데에서 잠들 용기가 생긴다. 더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방법이겠지만 사실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이 같은 더운 공기 속에선.
운동으로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영상에 손대기보다는 머리맡에 책 몇 권을 놓아두기를 권한다. 물론 이것 역시 바깥에 무언가 있는 더 많은 실시간의 정보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통제하고, 흰 종이 위에 쓰인 까만 글씨를 읽어내고,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정신을 혹사시키는 방법이다. 머리를 직접 자극하는 시청각이미지들이 들어오는 영상에 비해, 이미지가 적고 그 이미지가 모두 내 머리로 만든 것이니, 언제든 상상을 그만두는 것 역시 내 자유이다. 보고난 뒤 생긴 마음의 결여로 다음 편을 바로 클릭해야 하는 영상에 비해, 내가 시작할 수도 끝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여름밤의 책읽기의 장점이다. 가급적이면 너무 많은 지식이 담긴 책보다는 하나의 세계가 오롯이 담긴 소설책이 더 좋으리라.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잠들어 꿈속에서 그 세계 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