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뒤의 연못에 연잎이 활짝 기지개를 켰다. 해님은 찡긋 미소를 보내고 개구리가 연잎에 앉았다 물속으로 뛰어든다. 밀려가는 동심원 자락에 얹혀 있던 작은 곤충이 스르륵 사라졌다. 연못은 하늘과 구름을 담은 채 소리를 지웠다. 숨을 불어넣고 싶은 고요다.
가만히 물속을 들여다본다. 비로 인해 한바탕 난리를 겪은 생물들이 연잎 아래서 동태를 살피고 있는지 기척이 없다. 손부채질을 하며 한참을 서 있으니 물 아래서 움직이는 것들이 있는지 물방울이 뽀글 일었다. 자세히 보니 붕어가 떼를 지어 왔다리갔다리 커다란 연(蓮)을 지분거린다. 살풋 간지럼을 타던 연들은 이내 새침한 표정이다.
새침데기 연을 웃게 하는 것은 바람이다. 산바람 한줄기 징검징검 건너자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초록웃음을 푸르르 뱉어낸다. 돌연 연못에는 생기가 돈다. 어디에 몸을 숨겼다 나오는지 물맴이 맴을 돌고 게아재비 느릿느릿 물위를 걷는다. 몸을 낮추어 헤엄치던 붕어들도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더위를 피해 낮잠을 즐겼던 오리도 소리로 존재를 알린다.
어미오리 뒤에서 새끼오리들의 해맑은 눈동자가 분주하다. 줄을 벗어나 곤충들을 쫓다가 부리나케 어미 품으로 달려오곤 한다. 발가락이 물속에서 어찌나 바지런한지 이쪽을 빙글 돌아 저쪽으로 쪼르르 간다. 어미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궁금한 것을 곽곽 물어댄다. 어미오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시간이 걸려도 재촉하지 않고 혹시 닥칠 돌발 상황을 위하여 항시 가시거리를 유지했다. 자리를 맴돌며 곁에 있는 새끼오리에게 먹이를 잡아주고 무심한 듯 깃털을 골랐다. 틈틈이 길게 목을 빼 멀리 있는 새끼가 들을 수 있도록 꽈~악 울었다. 새끼오리가 돌아오면 날개를 털어 앞장서 길을 잡았다.
새끼를 향한 사랑과 서로를 온전히 믿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모습이다. 나는 교육이란 이름 아래 아이들에게 늘 재촉과 채근을 했다. 정한 목표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모진 말을 해서 상처를 준적도 있다. 어미오리가 새끼를 기다려주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몰래 부끄러움을 삼킨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모자랐던 엄마였음을 인정하며 둘레길로 걸음을 옮겼다.
연못 둘레를 걷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다. 나무가 있고 그늘이 있고 새소리가 있다. 시원한 바람까지 보태져 피부가 보송해진다. 가볍게 걸으며 연꽃이 언제 피려나 눈길을 주었다. 연들이 막바지 작업을 하는지 수런거리는 잎들 위로 색을 머금은 봉오리가 어른거린다. 곧 연꽃이 가득할 연못을 상상하며 사진 찍으러 와야지, 했다. 그때 ‘으으음, 으으음’ 소리가 들렸다. 오리의 울음이 이상했다. 개구리가 짝짓기를 할 때면 크게 울듯이 오리도 짝짓기를 하려나 싶었다. 멈춰서 귀를 기울였다. 오리가 저런 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해서 친구들에게 알려주려고 바짝 귀를 세웠다. 마침 내 곁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황소개구리는 외래종, 덩치가 크고, 하면서 지나갔다. 웬 황소개구리? 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황소개구리의 울음이 황소울음 같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나는 눈에 보이는 오리만 생각한 아둔한 머리를 탓하며 황소개구리를 찾아 주위를 둘레거렸다. 수풀에 몸을 가린 황소개구리는 소리만 들릴 뿐 보이지 않았다.
하마터면 실수를 할 뻔했다. 내가 가는 연못에 있는 오리는 꽉꽉 울지 않고 으으음 운다고 했다면…. 아찔하다. 요즘은 이것과 저것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이 한 박자 늦어져 뒷북일 때가 있다. 내 머리가 더이상 말랑하지 않고 굳은돌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그것도 모른다 숙덕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잰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오리는 꽉꽉 울어 새끼를 부르고, 황소개구리는 ‘으으음’ 울어대는 연못의 여름 오후가 산그늘을 늘이며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다가올 저녁에게 자리를 내주는 쨍쨍했던 햇살의 뒷모습이 불그레하다. 연못의 주인이 바뀌려는 지금 왠지 모를 숙연함이 찾아온다. 나는 연못에 어물거리는 여름을 연잎에 올려두고 후 불어본다. 또르르 달아나는 시간들을 손바닥에 가두고 싶은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