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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귀 큰 임금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신라 제48대 임금인 경문대왕은 귀가 나귀의 귀처럼 길었다. 왕은 왕관속에 귀를 숨겨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했으나 왕관을 만드는 복두장만은 예외였다. 평생 비밀을 지키던 복두장은 죽음이 임박하자 도림사의 대나무숲에 가서 목청껏 외쳤다.“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그 소리가 들려오곤 했는 데, 경문대왕은 그 소리가 싫어서 대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고 한다. 이 설화에서 커다란 임금님의 ‘귀’는 왕의 허물을 뜻한다. 아무리 지엄한 왕의 허물이라도 끝내 숨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어떤 정부나 국가지도자도 항상 옳을 수는 없다. 선의를 갖고있다해도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그럴 때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하지만 권위적인 정권은 다른 의견에 대해 집권세력을 방해하기 위한 공격으로만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반대의견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경직돼있다.현 정부가 어느때부턴가 잘못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대변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근로자의 소득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올림으로써 나라 전체의 소비를 진작시켜 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해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소상공인들의 반발을 불렀다. 어느덧 소주성 정책은 슬며시 사라졌다. 부동산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수도권 집값상승을 막으려면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고 대출규제, 세금폭탄 등 규제정책을 잇따라 내놨지만 수도권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제서야 공급위주 정책으로 바꾸겠다면서도 정책실패로 고통받은 국민들에 대해 통렬한 반성과 사과가 없다. 후안무치다.‘정관의 치세’로 태평성세를 구현한 당 태종은 “거울이 없으면 자신의 생김새를 볼 수 없듯이 신하들의 간언이 없으면 정치적 득실에 관해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먹줄이 있으면 굽은 나무가 바르게 되고, 기술이 정교한 장인이 있으면 보옥을 얻을 수 있듯이 시세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진 신하의 충언은 군주를 바로 서게 할 뿐 아니라 천하를 태평성대로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충성스런 간언을 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 18일 각본없이 질문을 받겠다며 시작한 신년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가진 조·중·동은 물론 대구 경북과 부산 경남 울산 등 영남권 언론은 단 하나도 지명하지 않았다. 그저 정부에 우호적인 논조의 일부 신문과 인터넷언론·해외언론 등에 질문권이 주어졌다. 그저 눈가림식이다. 이래선 안된다. 임금님의 귀가 크면 어떤가. 큰 귀로 민초들의 얘기를 더 듣자. 그리고,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고, 고치면 될 일이다. 귀 큰 임금님의 큰 귀는 허물이 아니다.

2021-01-21

세월호 상처, 그만 좀 후벼 파면 안 될까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특수단)이 지난 1년 2개월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활동을 마무리했다. 특수단은 17건의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을 수사해 20명을 기소하고 15건을 불기소 처분 및 보류했다. 세월호는 그 교훈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희대의 참사다. 그러나 선동꾼들이 악착같이 매달려 7년째 국민갈등을 부추겨온 ‘상처 후벼 파기’는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게 여론이다. 특수단의 수사 결과를 놓고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한 사람들 도대체 왜들 그러나. 2018년 특수단의 조사를 받던 중 자살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무혐의처분이 여론에 회자하고 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단정하자 검찰이 나섰었다. 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하는 3성 장군에게 수갑을 채워 포토라인에 세우는 등 일부러 최대 모욕을 주었고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특수단이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수사외압 의혹에 무혐의 결론을 내린 데 대해 또다시 민주당이 규탄하고 나섰다. 노웅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회의에서 “한마디로 이번 수사 결과는 검찰발 사회적 재난”이라며 “민주당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세월호 사건 수사·조사는 벌써 8차례나 했다.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해양안전심판원 조사, 특조위 조사, 선체 조사위 조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조사를 했지만 사실상 첫 번째 검찰 수사에서 더 진전된 게 없었다. 세월호 사건을 줄곧 선거에 이용해온 민주당은 또 사참위 활동 기간을 늘리고 특검도 만들어 아홉 번째 수사·조사를 시작했다.“희생된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정치권이 세월호 좀 그만 우려먹었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일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악용하는 구태가 계속된다면 희생자들에 대한 국민의 보편적 동정심까지 흠집이 날 수도 있다. 교훈을 잊지 말되 갈등의 정치화에는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임관혁 특수단장의 “법률가로서, 검사로서 되지 않는 사건을 억지로 만들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는 소회가 여운을 남긴다.

2021-01-21

코로나 1년

코로나 발생 1년 동안 인류가 겪은 삶은 가히 충격적이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의 고통과 불편함은 삶의 의욕을 꺾기에 충분했다. 생사를 위협하는 질병 앞에 인간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이기도 했다.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생기는 우울감을 표현한 신조어다. 최근에는 우울감이 점차 쌓여 폭발상태에 이르는 것을 코로나 레드라 하고, 화병이나 스트레스를 넘어 암담한 상태에 빠진 것을 두고 코로나 블랙라고 부르는 신조어도 생겼다.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조사에 의하면 작년 12월 기준 국민 5명 중 1명이 우울 위험군에 포함돼 전년보다 5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또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비율도 전년보다 크게 증가해 국민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분석된다.또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에서 소비된 주류와 담배 소비지출이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국민이 받은 충격과 스트레스를 단적으로 보여준 통계라 생각든다.코로나 이후의 인류의 생활 패턴을 두고 뉴노멀(New Normal)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신창타이(新常態) 즉 새로운 정상상태라고 한다. 우리 삶의 새로운 기준과 표준이 등장할 것을 예측한 표현이다.지난 20일은 국내에서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었다. 이른바 뉴노멀 시대에 우리의 행동은 어떻게 할 것인지 되돌아 볼 시간이다. 세계적 저명 학자들은 지구상의 이상기온 변화가 있는 한 더 심각하고 또다른 바이러스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뉴노멀 시대를 살아갈 인류의 지혜가 절박하게 요구되는 시기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21

지자체별 재난지원금 격차… 정부가 조정해야

정부의 3차 재난지원금과는 별개로 일부 지자체가 설 명절에 맞춰 자체 재정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서자 지자체간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별 재정 형편에 따라 어느 지자체 주민은 명절 대목에 맞춰 지원금을 받고 어느 지자체 주민은 지원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가 과연 옳으냐는 시비다.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지자체 재난지원금은 이를 받지 못하는 지자체 주민에게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경우 1인당 10만원의 지원금을 주게 된다면 4인 가족의 경우 4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받게 된다. 같은 나라 국민이면서 똑같은 피해를 보았는데 다수의 지자체 주민은 이런 혜택에서 빠진다면 화나지 않을 국민이 없다.현재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는 경기도와 울산시가 자체 예산으로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경기도는 1인당 10만원씩 울산시는 가구당 10만원씩이다.전국의 일부 기초단체도 설 명절을 앞두고 지자체 예산으로 재난지원금 지급하기로 했다. 전남 순천시와 해남군, 영암군, 또 강원도 인제군, 경남 고성군과 산청군도 재난지원금 주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10여군데가 된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1인당 10만원을 지급 규모로 잡았다.전국에서 가장 먼저 지자체 재난지원금 지원에 불을 지핀 경기도는 이번에 지원할 재난지원금의 규모가 1조 4천억원에 달한다. 부자 지자체 다운 면모다. 다른 지자체에선 엄두도 못 낸다. 경북에선 울진군이 유일하게 1인당 1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경북도의 경우 지난해 정부 재난지원금 지원시 2천221억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해 재정 여력이 없는 상태다. 이런 결과에 대해 많은 국민이 불평등 시비를 거는 것은 당연하다. 가난한 지자체에 산다는 이유로 국가적 혜택에서 소외된다고 생각한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일부 지자체는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포퓰리즘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지자체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형평성 시비는 국가 재난지원금 정책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형평성 문제나 재정 건전성 여부를 국가가 따져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재정이 나쁜 지자체가 예산을 쓴다면 제지라도 해야 한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 갈등을 초래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국가가 조정자가 돼야 한다.

2021-01-21

미국 대통령 선거 끝나도 안 끝났다

깜빡 잠든 사이에 유튜브에 몇 개 클립이 떴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이라는 것을 발동했다고 한다. 이 명령에 따르면 미국에는 행정 주체들의 권한 사용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관행들이 있어 왔으며, 이에 따르는 부정한 절차와 방법으로 인해 미국 국민 스스로 자신의 대리인을 선택하는 힘이 약화되어 왔다고 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년 동안 미국에서 치러진 선거들에 대해 앞으로 120일 동안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명령했다.이 명령은 트럼프 임기가 단 하루만을 남긴 시점이라는 점에서 의문을 야기한다. 도대체 누구에게 보고하라는 것이냐? 명령을 내린 사람은 플로리다에 내려가고 없지 않겠는가?지금 시각이 미국의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을 근 하루 앞둔 시점이다. 이 행정명령은 지난 2020년 11월 3일 미국인들이 선거를 치른 이후에도 계속해서 논란이 되어 온 미국 선거 사태가 시계 제로 상태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11월 13일 밤,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이번 선거의 관건이라고 알려져 온 대여섯 개의 경합주에서 트럼프는 일방적으로 앞서 갔다. 트럼프는 승리를 선언했고 바이든은 늦게 나타나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새벽이 되었을 때 바이든이 예언한 것 같은 현상이 갑자기 일어났다. 이 경합주들에서 일제히 바이든이 트럼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전세는 예기찮게 역전되었고 다음날, 다다음날, 트럼프는 자신이 승리한 선거를 도둑질 당했다고 주장했다. 선거 사기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그리고는 최근 며칠 사이에 이상한 일들이 계속되었다. 미국의 빅테크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은 1월 6일의 상하원 합동회의의 바이든 인증 이후, 선거 부정을 주장한 트럼프의 계정을 삭제해 버렸다. 또 선거 부정 운운하는 유튜버들을 향해서는 삭제를 하거나 경고 딱지를 붙이는 일들이 계속되기도 했다.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미국 선거 문제는 바야흐로 새로운 궤도에 진입한 것 같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는 이미 3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전국 50개주에서 차출, 밀집해 있다. 크기는 서울의 반의 반밖에 안 되고 인구는 60만에 불과한 행정수도에 어마어마한 숫자다. 하객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깃발만 수없이 꽂아놓은 플래그 취임이 성공적으로 끝난다 해도 이번 선거는 결고 통합적 축제로 기록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 얻은 것이 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들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절차가 무엇인지, 어때야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지 재확인시켜 준 세계사적 과정이 될 것이다. 그래도 뒷맛은 여전히 쓸 것이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1-21

팬덤의 심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무리를 지어 산다는 뜻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바나의 초식동물들처럼 혼자 떨어져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럿이 힘을 합치면 적이나 맹수의 공격을 막기도 쉽고 큰 동물을 사냥할 수도 있으니 그만큼 생존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지금도 고립되거나 소외되면 왠지 불안해지는 것은 아마 그런 습성이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들어 무슨 동호회나 팬덤이 성행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터이고.팬덤(Fandom)이란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 즉 어떤 대상의 팬(fan)들이 모인 집단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팬덤이 시작된 것은 가수 조용필로부터라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남진, 나훈아 등 인기가수들의 팬 집단이 있었지만, 대규모의 체계적인 팬덤을 형성한 것은 조용필의 ‘오빠부’가 시초였다는 것이다. 그 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한 1세대 아이돌스타의 등장으로 조직적인 응원문화가 형성되고 팬덤의 개념이 대중화됐다. 2000년대에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2세대 아이돌스타들이 팬덤 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2000년대 이전 팬덤은 좋아하는 스타를 응원하는 지지자의 역할이 강했다면 이후에는 스타 보호 및 변호, 성공을 위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하는 서포터(supporter)로서의 역할로 확대되었다. 또한 한국을 넘어 세계전역으로 팬덤의 범위가 확산되었고 이는 한류열풍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오늘날에는 가수뿐만 아니라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같은 특정 인물이나 브랜드에 대한 팬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고려대 성영신 교수는 팬과 스타의 관계를 ‘심리적 공생관계’라고 했다. 팬들은 스타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게 되고, 스타는 팬을 통해서 자신의 인정 욕구나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비평가 앤드류 튜더는 팬덤이 되는 과정을 스타와 친해지는 단계에서부터 감정적인 동일시 단계, 스타의 외모를 모방하는 단계, 심리적인 부분까지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단계로 나누기도 했다,팬덤활동은 소속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특정한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하나의 성취감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스포츠나 연예계를 활성화 시키는 등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는 한편 여러 가지 부작용을 드러내기도 한다. 스포츠나 운동선수에 열광하는 팬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라이벌에게 위해를 가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적 팬덤의 위험성이다. 특정 정파나 정치인의 팬덤이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형성되어 국정운영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팬덤의 심리에는 냉철한 현실인식이나 사리분별보다는 감정적 군중심리나 ‘내로남불’같은 진영논리가 판을 치게 마련이다. 정체성이나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시류에 휩쓸리거나 팬덤 같은 집단에 함몰되기 쉽고, 그런 부류가 많을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팬덤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잇속을 챙기려는 장사치들이나 정치꾼들의 술수에 부화뇌동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2021-01-21

합동군사훈련을 북한과 협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우방과의 군사훈련을 적과 상의한다?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필요하면 남북 군사공동위를 통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군 통수권자가 적의 위협에 대한 방어 훈련을 적과 협의하겠다고 한 것이다.김정은은 강한 군사력을 선언하고 군 퍼레이드를 심야에 열고 핵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개발도 공언하며 무력에 기반한 통일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핵이 없고 미군과의 연합 훈련 강화만이 북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미국 아닌 북한과 ‘훈련 협의’를 하겠다고 하니 기가 막힌 일이다.‘싱가포르 쇼’로 각종 연합훈령이 전부 폐지됐다. 김정은 트럼프 쇼는 비핵화를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러나 북핵은 오히려 그후 대폭 증강됐다.북한이 돌연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세계사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세계사에서 서로 합의하여 지은 건물을 전쟁이 아닌 상태에서 폭파시킨 예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항의 한마디 못하고 북한의 눈치만 본다. 바보 같은 짝사랑 제의가 계속되고 있다.과거에도 남북단일팀 구성, 올림픽 분산개최, 대북지원 민간단체 방북 등 아무런 답이 없는 북한을 위한 짝사랑 손짓은 계속 되었지만 지금도 금강산 관광, 개성단지 재개, 남북 경협 등 메아리 없는 손짓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심지어 한미군사훈련을 북한과 상의하는 지경까지 왔다. 올 때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왜 우리는 짝사랑을 하는가? 상대는 트집만 잡고 있는데도 계속되는 짝사랑은 국민의 자존심만 상하게 하고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을 허용하고 우리가 백기를 들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통일은 절대 구걸로 오지 않는다. 북한과의 평화는 우리가 우방과 관계를 공고히 하고 강한 힘을 보여 줄 때에만 가능할 뿐이다.2007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 주도로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으로 결정했다’는 논란이 지난 대선에서 불거졌다.이제 한미 훈련마저 북과 사전 협의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듣고 보니 인권 표결을 북에 물어보고 정했다는 소식이 믿어진다.한 깡패 같은 친구가 힘이 없는 친구를 매일 괴롭힌다. 힘이 없는 친구는 평화를 위해 돈도 가져다주고 그 깡패 같은 친구가 때려도 참고 웃음을 지으면서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날 힘없는 친구가 주머니에 짱돌을 쥐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깡패를 공격했다. 난투극이 벌어지고 힘없는 친구는 크게 다쳤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부터 그 깡패가 힘없는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끝났다.구걸이나 양보가 아니라 강한 힘으로 대응해야만 깡패의 행패를 종결시킬 수 있다. 우리가 북한에 지금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다.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교훈으로부터 우리는 배워야 한다.

2021-01-21

타인의 방

배문경수필가문을 닫자 사면에 갇혔다. 생일을 맞아 카페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잠시 보냈다. 뒷날 함께 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일 전날 코로나양성인 사람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기겁을 한 친구는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해왔다.말로만 듣던 두려운 상황이 내게도 일어났다. 코로나가 나와는 상관없으리란 생각이 여지없이 깨졌다. 잠시 침착하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나마 일요일이라 다행이었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사방이 숨조차 쉴 수 없이 옥죄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도 시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양성일 수 있다는 불안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코로나에 걸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이 직장인 나는 입원환자와 의료진들, 직원들, 진료를 볼 환자들,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게 된다. 가족들은 또 어찌해야 할지 답이 없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던 코로나 환자가 입원한 병원과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자꾸만 떠올랐다.그 순간 목이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증세가 나타나는 걸까. 두려웠다. 사실이라면…, 종일 마음속 지옥에서 온갖 상상을 하며 보낸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에 친구로부터 음성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온통 세상이 깃털처럼 가볍게 와 닿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그 후에도 나는 세 번의 독방을 더 경험했다. 그러는 사이 현관문을 열면 삽시간에 가족들이 사라졌다. 집으로 들어서면 거실은 좀 전까지 텔레비전을 봤는지 요즘 유행하는 미스트 트롯의 멤버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트로트를 열심히 불렀다. 급하게 방으로 모두 들어간 흔적이다. 입에 착 달라붙는 노래가 어서 오라고 인사한다. 나를 반기던 가족은 모두 타인이 되었다.노크를 하면 곧 첫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될 딸의 예민해진 외마디가 들린다. 방마다 사람은 있지만 벽처럼 단단한 문은 걸쇠를 건 채 여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나의 “퇴근했다”는 인사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리다 바닥에 툭 떨어진다.방문을 닫으면 외롭다.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든 음식을 먹든 함께 하던 시간이 아주 오래전처럼 아득하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처럼 인정받지 못한 내가 웅크리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타인에게 힘든 상황을 만드는 것도 내가 타인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안전하기를 바라지만 고립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버겁다.상황이 코로나 검사를 받게 했고 그때마다 음성이었다. 음성이라는 문자가 올 때까지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음성이 지금 괜찮다는 뜻이지만 ‘다행’이 언제 ‘불행’이 될지 모른다. 그만큼 역병은 내 주변까지 깊게 파고들었다.이러다 어느 순간 나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의 주인공인 그레고리처럼 가족들로부터 잊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이라는 단어가 현실을 움직이는 괴물이 되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미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그 속도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다.오늘도 현관문을 무겁게 열었다. 식탁 위에 어머니가 금세 끓인 된장찌개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그 옆에는 딸아이가 쓴 예쁜 카드에 며칠 후 출근한다며 엄마의 건강을 걱정했다. 남편이 낮에 직장으로 전화를 했었다. “별일 없제?” 무뚝뚝한 한 마디를 하고 끊었다.긴 시간 적과 싸우며 지친 나를 가족들이 위로한다. 내 곁에는 각각 타인의 방처럼 보이는 곳에 자신을 가둔 가족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마스크를 끼고 거리를 두고 손을 자주 씻는 일이 예방이다. 그것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적을 무찌르는 것은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체온을 올리면서 면역을 키워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방마다 고립된 가족 모두가 서로를 염려하는 텔레파시를 열심히 타전하고 있다.

2021-01-20

삶을 깁고 공그르고

한글은 표현이 아름다운 글자이다. 하지만 외래어와 더불어 국적불명의 언어들 때문에 우리말이 설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우리 말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돌아보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삶의 각 분야에 녹아 있는 우리말을 김이랑 문학평론가가 찾아 그 아름다움을 들려줄 예정이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함께 만물의 공존과 조화, 상생의 세계관이 깃들어 있는 우리말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장이 될 것이다.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를 바란다. /편집자 주개나 소 등 동물은 털옷을 입고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태어난다. 벌거숭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씻긴 다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옷 입히기이다. 그래서인지 언어배열도 의식주(衣食住)라고 썼다. 음식이나 집보다 옷(衣)을 우선시했던 것이다.어릴 적 어머니는 반짇고리를 꺼내 호롱불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바늘에 실을 꿰어가며 밤늦도록 바느질했다. 구멍이 난 양말, 무릎이 해진 바지, 단추가 떨어진 점퍼, 끈 떨어진 책가방, 이러한 것을 무릎에 올려놓고 깁고 호고 홀치고 공글렀다. 어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옷도 가방도 멀쩡해졌다.바느질할 때, 어머니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천을 덧대고 이으며 한 땀 한 땀 바늘길을 냈다. 어머니의 손놀림에 따라 바늘이 가고 실이 따라갔다. 작은 바늘과 가느다란 실이 만들어내는 언어는 어머니의 손끝처럼 매우 세밀했다.깁다 : 다른 헝겊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박다 : 두들기거나 꽂거나 틀거나 하여 속으로 들어가게 하다.뜨다 : 실이나 끈, 노 따위로 얽거나 짜서 만들다.호다 : 헝겊을 여러 겹 겹쳐 대고 땀을 곱걸지 않은 채 성기게 꿰매다.누비다 : 천을 두 겹으로 포개어 안팎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솜을 두어 가로 세로로 줄이 지게 박다.볼달다 : 버선의 앞뒤 바닥에 헝겊을 대어 깁다.홀치다 :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매다.감치다 : 실의 올이 풀리지 않게 용수철 모양으로 감으며 꿰매다.시치다 : 여러 겹의 헝겊 조각을 맞대어 듬성듬성 성기게 꿰매다.사뜨다 : 올이 풀리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실로 감치다.휘갑치다 :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얽어 휘둘러 감아 꿰매다.공그르다 : 접어 맞댄 양쪽에 바늘을 번갈아 넣어 가며 실 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떠서 꿰매다.징거매다 :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게 딴 천을 대고 대강 꿰매다.송당거리다 : 바늘땀을 다문다문 거칠게 자꾸 호다.바느질이라는 행위 속에 이러한 동사가 있다. 깁고, 박고, 뜨고, 호고, 누비고, 홀치고, 감치고, 시치고, 사뜨고, 휘갑치고, 공그르고…, 우리말은 행위나 상태를 소리로 표현하는 소리글자이다. 하나씩 입안에서 가만히 굴려보면 행위와 발음이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은 세밀한 동작을 절묘하게 소리로 표현하기 때문이다.땀 : 바늘로 한 번 뜬 자국.솔기 : 두 장의 천을 실로 꿰매어 이어 놓은 부분.매듭 : 실이나 끈 따위를 묶어 마디를 맺은 자리.시접 : 접혀서 옷 솔기의 속으로 들어간 부분.민짜 : 아무 장식이 없는 박음질.곱솔 : 솔기를 한번 꺾어서 호고 다시 또 접어서 박는 일.쌈솔 : 겉으로 시접한 쪽을 0.3~0.5cm 내에서 박은 다음 그 시접으로 접어 한 번 더 박는 일.뒤옹솔 : 바느질한 감의 안을 서로 맞대고 시접을 0.5cm 정도 박은 다음 안으로 뒤집어서 겉쪽의 시접이 보이지 않도록 다시 안에서 박는 일.가름솔 : 여러 천을 겉끼리 맞추어 한 번 박아 솔기를 양쪽으로 가르는 일.마름질 : 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게 재거나 자르는 일.뜨개질 : 털실이나 실 따위를 얽고 짜서 옷, 장갑 따위를 만드는 일.박이옷 : 박음질하여 지은 옷.도련박기 : 도련이나 치마의 밑단을 박는 작업.반짇고리 : 바늘·실·골무·헝겊 같은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누비이불 : 누벼서 지은 이불.김이랑수필가이렇게 나열해보니, 바느질과 관련된 명사도 동사 못지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늘로 뜬 자국은 ‘땀’이라 하고 맺은 자리는 ‘매듭’이라 하고 솔기를 곱으로 접는다고 ‘곱솔’이라 한다. 안으로 솔기를 싼다고 ‘쌈솔’이라 하고 뒤로 보이지 않게 한다고 ‘뒤옹솔’이라 한다. 게다가 솔기를 가른다고 ‘가름솔’이라 하고 침을 감는다고 ‘감침질’이라고 하니, 그 모양새가 발음에 그대로 살아있지 않는가.그런가 하면 파생어도 많다. ‘일을 마무리하다’에서 ‘마무리’는 ‘마무르다’에서 나왔다. 옷을 입을 때 끈을 매고 여미고 하는 뒷단속을 ‘매무시’라고 한다. 마무르다, 매무새, 매다, 맺다, 맵시 등은 모두 바느질에서 나온 말이다. 삶에서 옷을 뺄 수 없듯이 바느질 용어가 삶 곳곳에 녹아 있는 것이다.가만히 짚어보면 우리네 삶도 바느질과 같다. 살다가 마음이 해지면 깁고, 느슨해지면 단단히 홀치고, 풀어질 것 같으면 말아서 감친다. 큰일을 앞두고는 마음 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이 끝나면 마무리한다. 인연은 맺고 다하면 끊고 하던 일은 매듭을 짓는다. 정착하고 싶으면 말뚝을 박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누비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문학평론가

2021-01-20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미국 대통령이 바뀌었다. 바이든 새 대통령은 ‘회복과 포용을 지표로 삼아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선거는 지난 11월에 있었지만 지나온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군중이 의사 진행 중이었던 의회 건물 안으로 들이닥쳐 소동과 폭력을 휘두른 일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 여부가 문제가 되어 그는 하원에서 탄핵까지 당하였다. 민주주의의 모범이라 여겼던 미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전 세계가 보고 말았다. 미국은 이대로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실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회복하려면 미국은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혼돈의 과정에서 미국을 흔들었던 구호들을 살펴보자. ‘다시 위대한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그들의 외침에는 백인우월주의가 숨어 들었다. 건국으로부터 다양한 출신 사람들을 품기로 했던 미국인들이었지만 ‘피부색’에는 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자 레비츠키(S. Levitsky)와 지블라트(D. Ziblatt)는 미래를 걱정하며 ‘민주주의는 어떻게 죽는가(How Democracies Die)’를 저술했다. 트럼프의 리더십이 백인 중심으로만 진행되면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급기야 선거의 결과도 부정하지 않았는가. 책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된 적이 거의 없었음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그런 전통을 세워가기를 기대하였다.미국이 보여줘야 한다. 미국이 먼저 인종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가 외쳤던 ‘꿈’이 실현되는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를 부정한 끝에 폭력과 탄핵에 이르는 경험까지 하지 않았는가. 민주주의의 모범은 ‘많은 사람의 생각’을 담는 데서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배경.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배격하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이내 막을 내린다.우리는 어떤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나름 성공적으로 달성하며 달려가는 길목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는가 아니면 배척하는가. 편을 가르고 진영을 나누는 주장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하트만(Michael Hartmann)은 그의 책 ‘엘리트제국의 몰락’에서 ‘소수의 세력이 지배하는 닫힌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포괄적이면서 환대하는 열린 엘리트사회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엘리트구조로는 민주적 공존을 기할 수가 없다.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고 차별없이 참여하는 사회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는 구현된다.‘우리는 늘 반대편에 서 있지만, 한 번도 적이었던 때는 없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의 말이다. 반대는 더 나은 무엇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다른 생각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힘으로 하여 미국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해 가야 한다. 새 미국에 높은 기대를 건다.

2021-01-20

공매도

공매도는 주식시장에서 쓰이는 용어로, 특정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주문을 내는 투자전략을 가리킨다.주로 초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데 사용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A 종목 주가가 1만원이고, 주가하락이 예상되는 경우 A 주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일단 1만원에 공매도 주문을 낸다. 그리고 실제 주가가 8천원으로 하락했을 때 A 종목을 다시 사서 2천원의 시세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주식 공매도는 특정 주식의 가격이 단기적으로 과도하게 상승할 경우 매도 주문을 증가시켜 주가를 정상수준으로 되돌려 증권시장의 유동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반면 증권시장에서 시세조종과 채무불이행을 유발할 수 있다. 만약 투자자 예상과 달리 주식을 공매도한 후에 주가가 급등하면 큰 낭패다. 손실부담이 증가해 빌린 주식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채무불이행이 발생한다. 주식공매도 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69년 2월 이며, 2008년 금융위기때 외국인 공매도가 전체 물량의 90%를 넘자 2008년 10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5년간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를 전면금지한 바 있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폭락장이 이어지자 2020년 3월16일부터 9월15일까지 6개월간 전체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가 금지됐고, 이후 2021년 3월15일까지 6개월 연장됐다. 올들어 주식시장이 3천포인트를 넘어 고공행진하면서 3월15일 공매도 재개여부를 결정할 금융위원회의 결정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있다.기관투자가들에게 훨씬 유리한 주식공매도 영구금지를 요구하는 동학개미들의 요구가 과연 받아들여질지 관심거리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0

공수처 출범 초읽기… 지금부터가 문제다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돼 말도 탈도 많은 공수처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여느 인사청문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검증에도 자녀의 이중국적 취득, 위장전입, 해외 연수 중 육아휴직 등 걸쩍지근한 문제들이 논란이 됐다. 결정적인 문제는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확신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수사의 실질적 책임자를 뽑는 후속 인사가 문제다.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있다. 청문회에서 김 후보자는 장남의 이중국적 취득 등 의혹에 대해서도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않거나 사과해야만 했다. 2015년 미국 연수 기간에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수당까지 받았다는 지적에 대해 “혜택을 받은 계층”이라며 머리를 숙였다. 불법행위인 위장전입 사실도 드러나 사과했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수사하는 책임자로서의 도덕성에 합당한지 의문이 든다.결정적인 문제는 ‘야당의 비토권 거세’로 위태로워진 무소불위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 장치다. 그게 거꾸로 걱정됐는지, 여당 청문위원 중에는 ‘내부 견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수처장의 중립의지를 꺾기 위해 특정 성향의 수사 간부들을 포진시켜 처장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게 감시하려는 의중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지금부터가 문제다. 공수처의 수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차장과 부장 등 중간간부들의 구성이 어떻게 되느냐가 핵심과제다. 이념 편향적 ’법 기술자들’의 포진을 막아야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문재인 대통령도 꼭 1년 전인 지난해 1월 21일 국무회의에서 공수처 설치법과 관련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썼다. 공수처장이 제아무리 올바로 끌고 가려고 해도 되지 않을 때 정말 큰 사달이 난다.헌법재판소는 ‘공수처 위헌제청’ 심사에 왜 이렇게 늑장을 부리나. 지난해 2월 19일 야당 의원 108인이 신청한 위헌심판 청구는 1년 가까이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오늘도 적지 않은 수의 법률가들이 ‘검사만이 영장 청구권을 갖고 있다’고 명시한 헌법 제12·16조를 들어 공수처법의 ‘위헌성’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2021-01-20

아프리카 돼지열병 경북 유입, 원천봉쇄해야

경북도와 인접한 강원도 영월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잇따라 발생하자 경북도가 비상이 걸렸다. 강원도 영월지역에서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7일 사이 8건의 ASF가 발생했다. ASF가 발생한 강원도 영월은 강원도지역에서는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경북과는 40km 떨어진 곳이다. 경북도는 영월과 인접한 영주와 봉화에 대해 ASF 위험주의보를 내렸다. 또 강원도와 인접한 경북 북부권역 10개 시군에 대해서는 소독강화와 사전검사 등 집중적인 방역 관리에 나선다고 한다.100% 폐사율을 보이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돼지 및 야생 멧돼지에서 생기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법정 전염병이다. 출혈과 열이 주 증상이며 급성병은 9일 안에 거의 100%가 죽는다. 치사율 5-55%의 구제역과는 비교도 안 된다.양돈업계서는 ASF가 상륙하면 삼겹살 한 근에 10만원이 될 거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돼지 사육농가에는 절대 위협적인 병이다. ASF가 발병한 농장은 소독을 해도 바이러스가 오랜 기간 살아있기 때문에 돼지농장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도 말한다.아프리카 돼지열병은 2018년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 등 아시아 각국에서 유행해 돼지 농장을 초토화 시킨 적이 있으며 2019년 5월에는 북한에서도 발생했다.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9월 경기도 파주 한 농장에서 ASF가 처음 발생했으며 지금까지 경기·강원지역을 중심으로 멧돼지에서 957건이 발생했다. 강원도에서는 이달 들어서도 ASF에 걸린 멧돼지 폐사체가 영월과 양양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다.경북도는 22일부터 경북 북부권역 밖으로 돼지를 반출할 때는 임상·정밀검사를 하고 지정지역으로만 도축 출하 등을 허용하는 강화된 방역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라 한다.코로나19 사태로 시군 행정당국이 긴장을 풀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프리카 돼지열병까지 겹쳐 시군의 일손이 더 바빠졌으나 그래도 ASF 방역관리에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 ASF의 경북 유입 방지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모든 전염병은 초기 차단이 가장 중요하다. 구제역은 백신이라도 있지만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 오직 방역관리가 최선책이다. 사육농가들도 바짝 긴장할 때다.

2021-01-20

8차 노동당 대회 무엇이 달라졌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8일간의 북한 8차 노동당 대회(1월 5∼12일)가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2천800여명의 대의원들이 참가한 4·25회관의 8일간의 당 대회는 폐회되었다. 김일성의 1980년 6차 당 대회 이후 김정일 시대는 당 대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2016년 7차 당 대회를 개최해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8차 당 대회는 대의원 인준 절차에 이어 분야별 사업보고와 당 규약의 개정이 있었다. 김정은 집권 후 두 번째 개최된 이번 대회는 종래와 몇 가지 다른 점을 보여주었다. 이번 당 대회에서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이번 8차 당 대회는 5년 마다 열리는 당 대회를 정례화 시켰다는 점이다. 김정일 시대 개최되지 않았던 전국 당 대회를 김정은이 정상화 시킨 것이다. 과거 통치자의 뜻에 따라 자의적으로 개최여부를 결정했던 당 대회가 정례화된 점은 진일보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당 대회에서 김정은 자신의 위상도 당위원장에서 ‘총비서’라는 직함을 되찾았다. 김정일은 유훈통치를 앞세워 총비서 대신 국방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김정은이 열병식에서 할아버지의 소련식 털모자 착용뿐 아니라 총비서라는 직함까지 정식으로 승계 받게 된 것이다.김정은은 이번 대회에서 북한의 5개년 경제 개발 전략이 실패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통치자가 실정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어느 사회주의 국가나 최고 통치자의 행위는 언제나 정당화되고 미화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작년 우리 경비선 피살사건에서도 대한민국 국민과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김정은은 코로나로 인한 국경통제, 대북 제재 등으로 경제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함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다. 종래의 모든 책임을 미국과 남조선에 돌리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장면이다.이번 당 대회에서는 각 산업별 보고와 토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당 중앙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른다는 종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번 대회의 당직 인선에서도 당 핵심 간부 39명 중 29명이 교체되었다. 군 출신 간부는 약 50%가 감소하고, 행정 경제 전문 관료가 대폭 증원됐다. 원로들이 대폭 물러나고 신진들이 약진했다. 북한 체제도 이제 과거 항일 빨치산의 이념형보다는 전문 테크노크라트 형으로 교체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교체가 북한의 위기 극복과 개혁·개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북한의 대미, 대남 태도도 미세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종래의 미 제국주의의 타도 등 미국에 대한 거친 비난은 감추어 버렸다. 미국에 대해서도 ‘강(强)대강 선(善)대선’의 정책을 강조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버리라고 수위를 낮추었다. 지난번 등장했던 신형 ICBM은 보이지 않고, 신형 SLBM은 사열에 등장했다. 대남 발언도 남북의 합의를 잘 지키면 2019년의 봄을 열 수 있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한미 군사 훈련과 남한의 첨단 무기 도입중지 요구는 종래 주장의 반복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대내외 정책을 예의 주시할 뿐이다.

2021-01-20

수업이 답이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수업이 달라요. 지금 학교에서는, 학교에서 수업도 얼마 안 했지만, 애들이 수업 시간에 다 자요. 왜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기는 수업이 너무 재밌어요.”지난 주말 산자연중학교에서는 입(전)학을 위한 겨울 예비학교가 열렸다. 참가 학생들에게 필자는 왜 입(전)학을 하려고 하는지 꼭 묻는다. 그러면 거의 모든 학생이 위와 같이 답한다. “수업 시간에 자도 괜찮니? 선생님들께 혼나지 않니? 수업 시간에 왜 자니?” 이 질문에 대한 답도 필자는 잘 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지만 역시나 답은 똑같다. 수업 붕괴를 보도하는 뉴스 내용을 필자는 매년 학생들에게서 직접 듣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수업 붕괴의 강도가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자는 친구를 깨우는 선생님은 거의 없어요. 어느 선생님은 애들 깬다고 아주 조용하게 수업하시기도 해요.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하면, 집중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집중하면 들린다고 하세요. 선생님 혼자 말씀하시고는 종 치면 바로 나가세요. 수업 정말 재미없어요.”물론 모든 학교가 이렇지는 않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많은 학교 수업이 또 이렇다는 것이다. 교육청에서는 수업 질 개선을 위해 교사들을 대상으로 거꾸로 교실, 하브루타 수업 등 별별 수업 관련 연수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연수가 늘수록 학생들의 수업에 관한 관심과 흥미는 더 떨어지고, 학교 붕괴는 극에 달한다는 것이다.학교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업이다. 그래서 무너진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수업 혁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때 “교사들, 교실의 위기 맞서 ‘수업 혁신’ 나섰다”와 같은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뭔가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이기만 하는 실패의 블랙홀인 이 나라 교육계 특성상 결과는 걷잡을 수 없는 교실 혼돈뿐이었다.그럼 수업을 바꿀 방법은 없는가! 당연히 있다. 혁신의 방향을 바꾸면 된다. 지금까지의 혁신은 교사 주도 혁신이었다. 그것은 마치 순리를 거스르고 역류하는 물과 같은 것이다. 혁신 수업을 보면 겉으로는 학생 중심 수업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더 교사 중심 수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수업 혁신에 학생은 없다.과연 수업의 주인은 누구일까? 물론 교사와 학생이다. 그런데 학생이 듣지 않는 수업은 아무리 좋은 수업이라고 해도 수업이 아니다. 혹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아는가? 필자가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재밌는 수업을 가장 원한다. 그래서 필자는 평교사 때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한 번 이상 크게 웃을 수 있게 하자!”라는 목표를 정하고 수업을 하였다.교사도 즐겁고, 학생도 즐거운 수업! 이런 수업을 위해 다음과 같은 수업디자인을 제안한다.“수업을 마치고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수업”2021년부터는 학생과 교사 모두 잃어버린 즐거움과 의미를 되찾은 수업만 있기를 바란다.

2021-01-20

백약이 무효인 부동산 대책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정부의 25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에도 미친듯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지난 한해는 코로나19로 대부분 산업은 기나긴 어둠의 터널이었지만, 유독 아파트 분양시장만은 활기가 넘쳤다. 그동안 정부는 대출규제와 각종 세금 인상 등을 중심으로 강력한 내용을 담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상하게도 부동산 가격만 올려놓았다. 정부의 대책 이후 잠시 주춤하다 곧바로 반등세로 돌아서는 현상이 이어지며 ‘똘똘한 한 채’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더 양산했다. 투기과열지구나 조정지구로 묶으면 이른바 ‘풍선효과’로 인해 다른 지역들이 동반 상승하는 결과까지 나왔다.대구 수성구의 경우 투기과열지구로 지정 이후 부동산 가격은 고공행진했고 지난해 11월 조정지구라는 규제까지 함께 발동했지만, 범어동과 만촌동 등은 끝 간 데 없이 가격 폭등세로 정부대책에 응답했다.심지어 수성구 인근의 경북 경산시 아파트 분양시장이 풍선효과로 인해 들썩이는 등 백약이 무효라는 말 그대로였다. 이후 수성구 아파트 매물은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씨가 말랐고 계약한 매매 물건마저 집주인이 2배로 위약금을 물고 취소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여기에다 매매 가격을 낮게 게시한 부동산 중개인에게 매물을 내놓지 말자는 현수막까지 나붙으며 일부는 소송으로 번지는 진풍경까지 나타났다. 이런 것을 종합하면 결국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헛심만 쓴 셈이 됐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만든 머리 좋은 국토부의 공직자들이 정말 부동산을 잡을 방법을 모르는 것일까, 의문이다.정부의 수많은 대책에도 이 같은 이상한 현상이 반복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대구지역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곧바로 막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분석이다. 아파트 분양권 전매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한 방법이고 현재의 아파트 분양방식을 완공이나 시공 이후 분양하는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분양권 전매는 지난 1999년 3월 IMF경제위기에 따라 최악의 상태에 빠진 부동산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국토부의 전신인 건설교통부가 발표했다. IMF를 졸업하지 20여년이 지났음에도 제한 범위만 일부 조정될 뿐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분양권 전매를 완전히 제한하면 부동산 투기자금이 들어설 수 없어 진짜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 중심으로 분양시장이 돌아가고 아파트 가격 급등세의 악순환도 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선 완공 후 분양제를 도입하면 살집이 필요한 이들로 부동산 시장이 재편되면서 투기를 목적으로 한 이들이 더이상 발붙일 방법이 거의 없다는 진단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건립된 아파트를 직접 볼 수 있어 모델하우스 건립비용이 없어지고 ‘억지 춘양격’인 발코니 확장을 비롯한 각종 부대설비 비용 등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아파트 시행사도 최대한 분양가를 낮춰야 다른 회사들과 경쟁할 수 있기 때문에 분양 가격은 담당 구청이 조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억제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다. 이 중 하나라도 부동산 대책에 포함된다면 지금까지 발표된 어떤 대책보다 강력하다는 사실을 국토부는 모르고 있을까.

2021-01-19

삼중수소 안정성 논란, 조속 규명해라

경주 월성원전에서 검출된 삼중수소의 유해성 논란은 본말이 전도된 사건이다. 과학적이면서 기술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를 정치권이 끼어들어 국민적 불안감을 키웠다. 물론 삼중수소 유해 정도가 얼마인지 또 외부로 유출된건 맞는지 여부는 매우 중대한 일이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이 합리적 절차와 논리로 사실을 규명해 가도록 유도해야 함에도 되레 정치권이 이를 정치 쟁점화했다. 여당은 이를 계기로 원전폐쇄의 당위성을 내세웠고 야당은 여당의 원전수사 물타기 여론전으로 맞대응했다. 정작 안전성이 쟁점이 돼야 할 사건이 정치적 공방으로 커져 주객이 전도된 꼴이 되고 말았다.정치 쟁점으로 커지면서 삼중수소 논란은 불필요한 괴담을 낳았다. 이 바람에 국민의 불안과 혼란은 더 증폭됐다. 특히 원전주변지역 주민에게는 엉뚱한 경제적 피해로 나타나 고통을 주고 있다. 삼중수소와 관련한 괴담이 나돌면서 원전주변 지역의 횟집과 숙박업소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로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 경제가 괴담으로 또한번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하니 주민들의 한숨 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봐야 할 주민의 입장에선 정치권의 공방이 진정 주민을 위한 것인지 황당하게 느껴질 뿐이다.삼중수소 논란과 관련 한수원측은 이미 “삼중수소 유출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18일 민주당 의원단이 월성원전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특정 지점에서 삼중수소가 높게 검출됐지만 인공 방사성 물질인 감마핵종이 함께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한국원자력학회와 대한방사선 방어학회에서도 18일 기자 회견을 열고 이 자리에서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월성원전에서 검출된 삼중수소가 주민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준”이라고 했다. 삼중수소 검출과 관련 원자력학계의 대체적인 의견은 경미한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가 국민적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민간전문가로 구성한 삼중수소 조사단을 발족키로 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삼중수소 논란은 이들 조사단에 맡겨 진실을 규명하면 된다.이 문제와 관련 정치권은 더 이상 논란이 될만한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과학적 검증으로 진실 여부를 밝혀 지역주민의 고통을 하루빨리 덜어줘야 한다.

2021-01-19

포항 한라봉

제주도 한라봉을 한국에서 나는 귤과 오렌지를 교배한 품종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러나 제주 한라봉은 1972년 일본 농림성 과수시험장에서 육성한 교잡종 감귤이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께 들어와 처음에는 ‘데꼬봉’이라는 일본 이름 그대로 사용되었다.제주도에서 생산을 시작하고 자리를 잡으면서 한라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꼭지 부분이 마치 한라산 봉우리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데 착안해 붙인 이름이라 한다.제주도에는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등 수 많은 감귤의 교배종이 있으나 제주도의 이미지를 잘 결합한 것으로 한라봉 만한 것이 없다.아열대 작물의 국내 재배가 이젠 빠르게 보편화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기후 온난화로 한반도 남쪽지방에서는 바나나와 파파야, 망고, 감귤류 등의 생산이 매년 이어지고 있다.제주도에서 나던 감귤이 대구에서도 생산되고 있으니 지구온난화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들이다.최근 제주도의 한라봉이 포항에서 재배 4년 만에 첫 수확을 거뒀다. 중량과 당도 등 품질면에서 한라봉 못지않은 고품질의 상품이라고 한다. 포항의 한라봉 말고도 경북도내서는 경주에서 경주봉, 신라봉이라는 이름으로 한라봉이 생산되고 있다. 한라봉의 캐릭터를 지역 특성에 맞게 이름을 바꿔 제주도산에 대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 작물의 판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현재 남쪽지방 중심으로 재배되는 아열대 작물이 2080년에는 중부내륙지방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재배면적도 현재 10%에서 6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지구온난화가 가져 온 과일시장의 판도 변화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정구(논설위원)

2021-01-19

이재용 또 구속… ‘교훈’ 넘어 경영계 타격이 걱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또다시 구속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삼성이 출범한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재판부가 어느 정도 인정하리라던 일각의 예상은 빗나갔다. 재판 결과는 망국적 권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낸다는 교훈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표 재벌 기업의 ‘총수 부재’라는 시련과 경영계 전반의 타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에 도움을 받는 대가로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 훈련 비용을 대준 혐의(뇌물공여) 등으로 2017년 2월 처음으로 구속기소 됐었다. 2심 재판부는 승마 지원금 중 용역 대금 명목의 36억 원만 뇌물로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심이 무죄로 판단한 말 구입대금 등을 뇌물에 추가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벌 총수라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불법 경영권 승계’ 등 재벌의 적폐와 함께 기업에 대한 정치권의 갑질도 근절돼야 할 것이다.하지만 코로나19의 범람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국내외 경제 환경이 문제다.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나라의 간판 기업이자 미래 먹거리를 키우고 있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그룹 총수의 구속사태가 초래할 파장을 생각하면 아쉬운 측면이 없지 않다. 당장 대외신인도 평가에서부터 부정적 요인이 되리라는 것이 경영계의 우려다.재판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반성과 참회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지난해 5월 ‘대국민 사과’에서 4세 경영 승계 포기를 약속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이번 판결이 권력과 결탁한 재벌의 유전무죄(有錢無罪) 부조리를 말끔히 청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아울러 이 부회장의 구속사태가 일으킬 부정적 파장을 경영계가 잘 극복해낼 수 있도록 각계 구성원이 합심해야 할 때다. ‘교훈’을 넘어 건강한 자양분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1-01-19

때문에와 덕분에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이걸 먹을까, 저걸 입을까, 어느 쪽으로 갈까, 누굴 만날까 등 어찌보면 사람의 모든 행위나 생활 자체가 모두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반사적이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수두룩하지만, 할까 말까 또는 갈까 말까 처럼 순간의 판단이나 이미 마음먹은 선택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먹거나 말하고 행동하는 자체는 순전히 그 행위자의 생각과 의사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물인 셈이다.어떤 현상이나 일을 두고 생각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대립되고, 찬성과 반대가 양립할 수 있다. 그것은 곧 개개인의 마음먹기와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닌 것이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무시하거나 배척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귀중하듯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야말로 인간관계의 기본이고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숱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충족시켜 주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인간사회에서의 예의와 범절을 알고 기본과 상식을 지키는 것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모든 일에는 반대급부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쪽이 잘 되면 저쪽이 잘 안될 수 있고, 한쪽이 손해보면 다른 쪽은 이득을 볼 수도 있다. 그것은 곧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어떤 사안에는 명암이 존재하고 유불리가 상존하는 것이 다반사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냐는 관점과 태도, 자세에 따라 결과가 확연하게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똑같은 일이나 현상을 놓고도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졌다 하기도 하고 ‘~덕분에’ 힘이 나고 수월해졌다 하는 부류가 나타나게 된다.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을 의미하는 ‘때문’은 부정, 긍정적 맥락에서 모두 쓰이지만 부정성이 많고,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을 의미하는 ‘덕분’은 자연히 긍정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에 쓰이게 된다. 즉, 때문에는 구실이나 핑계로 삼아 원망하거나 나무라는 일을 뜻하는 ‘탓’이라는 의미가 강하고, 덕분에는 수긍하고 호응하는 자세로 감사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할 수 있다.희대의 전염병 때문에 사회전반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졌지만, 언제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만 탓하고 경기침체를 한탄만 할 것인가. 암울한 난관에 직면해서 마음을 다잡고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지방의 모방송에서는 지역의 대기업체 때문에 야기되는 환경, 질병 등의 사회적인 문제를 명확한 인과관계와 진실규명도 하지 않은 채 여과없이 파헤치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는 듯하니 무슨 의도와 뒷북인지 모를 판이다.가뜩이나 민감하고 조심스런 시기에 누구 때문에 무슨 탓(?)을 하기 보다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덕분에 다행스럽고 안심하다는 선의적인 발상과 전향적인 맥락으로 막막한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2021-01-19

일관성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임마누엘 칸트(1724∼1804)의 저작은 모르지만, 그의 습관은 기억한다. 그는 매일 오후 3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산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평생에 두 번 산책을 빠트렸는데, 장-자크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을 보도한 신문을 읽다가 그랬다는 것이다.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걸은 것으로도 유명하다.왜소하고 병약한데다 결혼도 하지 않은 칸트가 80세의 천수(天壽)를 누린 것은 규칙적인 산책 덕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장구한 세월 정해진 시각에 산책을 시작해서 마친다는 것은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칸트가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던 근저에는 자신을 이겨낸 탁월한 의지도 한몫했을 것이다. 칸트처럼 좋은 습관을 평생 지켜온 사람을 주위에서 보셨는가?! 그것을 일관성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언제 어디서든 수미일관(首尾一貫)하는 자세와 관점을 유지하는 것을 일관성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요즘처럼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점에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더욱 쉽지 않다. 일례로 양치질의 ‘3-3-3법칙’을 들 수 있다. 하루 3번, 식후 3차례, 3분 동안 이를 닦는 것이다. 사정이 허락하는 사람들은 이 법칙을 성실히 지켜왔다. ‘치아가 오복(五福)의 하나’라는 말이 시중에 떠돌 만큼 장수의 비결 가운데 하나가 치아이기 때문이다.그런데 ‘3-3-3법칙’ 치아를 상하게 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식후 최소 30분 후에 양치해야 치아의 법랑질 성분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가까이 지켜온 습관이 오히려 치아 건강에 해롭다는 결과를 천연덕스레 보도하는 언론이 마냥 신기했다.기다렸다. 치과협회나 치과의사들이 사과 성명이라도 낼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3-3-3법칙’을 오랜 세월 주장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돌변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연구와 실험 결과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한 ‘3-3-3법칙’이 유효하지 않기로 미안하게 됐다.”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했던 ‘3-3-3법칙’의 피해자들은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한단 말인가?!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사람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참에 우리 국민도 치과의사들과 치약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해야 할 판인가, 궁금하다.이런 일은 날마다 되풀이된다. 코로나19 백신 구매가 늦다고 정부-여당을 몰아치던 정당과 언론사들이 화이자를 비롯한 백신의 부작용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자 하나같이 입을 닫는다. 중요사안을 정파적으로 접근하는 언론사와 정치인들은 돌아봐야 한다. 얼마나 오래 일관성을 지킬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올바른 행위인지! ‘내로남불’은 남의 일이 아니다.

2021-01-19

올 겨울 한파, 어쩌면 지구의 경고일지도

지난 1월 8일, 한반도에는 기록적인 한파가 불어 닥쳤다. 서울의 아침 기온은 영하 18.6℃로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경북 지역의 수은주도 영하 15℃ 아래로 떨어졌다. 1964년 이래 57년 만에 제주도도 한파 경보가 발효되는 등 실로 어마어마한 한파가 한반도를 매섭게 할퀴었다.갑자기 폭설도 내리는 바람에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고 곳곳의 수도 계량기가 동파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 오고 3년 간 한 번도 언 적이 없었던 우리 집 수도도 얼었다.불과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다. 내일 일어나면 수도가 얼지 않도록 물을 살살 틀어놔야지 마음을 먹고 잠들었는데, 그 하룻밤 만에 수도가 얼어붙은 것이다. 수도가 얼자 나는 더 이상 이 집에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수도가 얼었다는 것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씻는 건 둘째 치고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얼어붙어버린 집에서 나는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나는 친구 집과 아버지 집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자연재해의 피해자가 되어 (사실상)집을 잃기는 처음이었다. 얼어버린 수도가 자연스레 녹길 기다리며 며칠을 버티다 결국 동네 철물점 사장님께 수십만 원을 드리고 배관을 녹일 수 있었다. 우리 집 배관은 보일러실부터 계량기까지 싹 다 얼어붙어 있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말이다.이번 한파는 역설적이게도 지구 온난화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지구가 따뜻해지는데 어째서 한반도는 더 추워진 것인가. 이번에 뉴스를 보며 공부한 바에 의하면 이러하다. 겨울철 한반도의 추위는 주로 북서쪽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인데, 겨울철 한반도와 시베리아 사이에는 고맙게도 시베리아 기단을 가로막는 제트기류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제트기류의 양 끝 지점의 온도차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이 제트기류가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한반도를 쉽게 침범하지 못하던 시베리아 기단이 마음껏 한반도로 넘어와 이번과 같은 한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요약하자면, 지구온난화로 몸살을 앓던 지구가 ‘콜록’하고 기침 한 번 한 바람에 한반도에 한파가 몰아치고 폭설이 내리고 도로가 마비되고 계량기 7천여개가 망가지고 우리 집 수도가 얼어붙고 내가 일주일간 이재민 아닌 이재민이 된 것이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나는 사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쓰레기를 버릴 때에도 분리수거는 대충대충 흉내만 낼 뿐, 페트병에 붙어있는 비닐 라벨을 떼거나 종이박스에 붙어있는 비닐 테이프를 제거하는 일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쓰레기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지인들을 보며 ‘뭘 굳이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까 문득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나에게 지구가 ‘이놈’하며 가벼운 호통을 한 번 친 느낌이었다.지구 온난화가 불러온 한파 때문에 하얗게 얼어붙은 동네를 보며 재난영화 ‘투모로우(2004)’가 떠오르기도 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다 녹고, 이로 인해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분노한 자연 앞에서 인류의 무력함을. 인류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이 있다고. 허나 그건 오만이었습니다.”이번에는 고작 우리 집 수도가 어는 정도의 경고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우리가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과 같은 오만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나와 같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지구는 더욱 더 엄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항의를 해 올지도 모를 일이다.

2021-01-18

나는 내가 실패하는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

열일곱의 나는 모든 것이 싫었다. 학교는 왜 다녀야 하는지, 대학은 왜 진학해야 하는지, 우리는 왜 굳이 태어나서 허망하게 죽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세상에는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그건 분명 나를 괴롭히기 위해 구축된 시스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비대한 자의식은 사실 나는 먼지만큼이나 작은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반증에 불과했다. 어차피 끝은 정해져 있으며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은 아무리 노력해도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묘한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것이다.요즘의 학생들도 그때의 나와 비슷한 기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소설 수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보면 “제 인생은 망했어요” 하는 말로 끝맺음을 짓기 일쑤다. 그럼 나는 당황하고 마는데 이 친구들은 그때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조숙하고 열린 태도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정말 잘하고 있어.” 진심을 가득 담아 이야기하지만 별로 와 닿아 보이진 않는다. 그저 선생의 의례적인 위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혼자서 베트남을 종단했던 적이 있다. 커다란 배낭 하나 둘러매고 호기롭게 떠난 여행이었다. 하노이를 떠나 사파에서 2박3일을 보내고 다음으로 예정된 도시는 닌빈이었다. 땀꼭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파에서 닌빈으로 이동하려면 슬리핑 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머물고 있던 숙소의 호스트에게 닌빈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알겠노라고 답했다. 자신의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터미널에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엄지를 척 내미는 그의 환한 미소만 믿고 아무 확인 없이 버스에 올라탄 것이 실수였다. 8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라오스와 국경이 맞닿은 도시, 디엔 비엔 푸였다.그러니까 나는 내가 원했던 곳과 정반대에 위치한 도시에 떨어진 것이다. 호스트의 실수였던지 내 실수였던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도착한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부랴부랴 터미널 근처의 숙소를 예약했다. 주인은 불친절했고 침구는 더러웠으며 숙소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피로하고 지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피곤은 쏟아졌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애써 짜놓은 계획이 모두 틀어졌다. 시간과 예산이 부족했고 예약된 일정을 모두 취소해야 했다. 축축하게 젖은 마음은 부패되어 곰팡이가 필 지경이었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망했다.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맞이한 다음 날 아침, 나는 무작정 숙소를 나섰다. 여행 책자에도 인터넷에도 이 도시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낙담한 기분으로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때의 나는 많은 것과 마주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가게 주인에게 손짓발짓으로 주문한 볶음 쌀국수와 철부지 동네 꼬마들. 망망하게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며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에서의 감동. 그렇게 나는 계획에도 없던 도시에서 이틀을 보내고 다시 하노이로 돌아와 여행을 재개했다. 여행 일정은 완전히 수정되었지만 오히려 나는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유랑할 수 있었다.우리는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 먼저 실패하는 상황을 걱정한다. 이게 끝이라면? 여기가 나락이라면? 두려움은 경험을 가로막는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성난 파도처럼 몰려와 우리를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유려한 서퍼처럼 거친 물살을 헤쳐 나가면 좋겠지만 균형을 잡지 못한 채 바닥으로 꼬르륵 잠길 수도 있다.돌이켜보면 다양한 실패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 실패한 사람이 될까봐 두렵지만, 실패가 두렵진 않은 나를. 그러니 나는 언제든 실패할 준비가 되어있다. 사무엘 베케트가 남긴 그 유명한 정언처럼. ‘실패하라, 또 실패하라, 그리고 더 나은 실패를 하라.’

2021-01-18

경주의 청동기(靑銅器)

고고학에서는 흔히 시대를 도구의 재료로 구분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이었다고 판단되었던 돌(석기), 청동(청동기), 철(철기)이 그것이다.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이는 인류가 자연 그대로가 아닌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다시 말해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철보다 앞선 청동기의 제작은 한국 청동기시대를 열며, 청동기문화를 꽃피웠다.또한 그 이후인 초기철기·원삼국시대까지 사용되고, 일본에 전파되기도 했다.한반도 전역에 넓게 분포한 청동기는 동남부지역의 경주에서도 확인되는데 여기에서는 이를 살펴보려 한다.경주의 청동기는 대부분 원삼국시대에 집중돼 출토됐고 우리는 국립경주박물관 등에서 그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시기에 특이한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바로 경주 출토로 전하는 견갑형동기(肩甲形銅器, 일제강점기 수집)이다.이 견갑형동기는 단독 출토로 용도가 불명확한데 이와 비슷한 것이 중국의 심양 정가와자 6512호묘(1965년 8월 발굴)에서 확인된 바 있다. 여기 무덤 안 인골의 오른쪽 경골(정강이뼈) 옆에서 견갑형동기가 나왔는데 그 내부에 동부(銅斧·도끼)와 동사(銅9248·새기개)가 들어 있어 이를 넣어 보관하는 용도로 해석된다.경주의 견갑형동기는 현재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서 소장 중이고 복제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이 유물은 흥미롭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해석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다. 오히려 전형적이라 말할 수 있는 유적의 청동기에서 당시 사회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할 수 있겠다.경주에는 그러한 유적들이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입실리(1920년 8월 발견), 구정동(1936년, 1951년 10월 발견), 조양동(1979년 4월 발굴), 사라리(1995년 11월 발굴), 덕천리(2004년 6월 발굴), 탑동 21-3·4번지(2010년 2월 발굴), 죽동리 639번지(2018년 8월 발굴) 유적 등이다.이들 유적은 대부분이 목관묘이며, 청동기 외에 철기, 구슬 등도 나왔다.경주의 목관묘는 기원전 2~1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새로운 집단이 청동기를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인다. 이중 2기의 무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기원후 1~2세기는 고고학에서 원삼국시대, 사학에서 삼한시대라 부르는 시기에 속한다. 이때 만들어진 두 무덤이 경주 사라리 130호 목관묘와 탑동 목관묘이다.이들 무덤은 초기철기시대가 끝난 후 만들어진, 즉 원삼국시대 진한의 지배층 무덤으로 추정된다.여기에는 청동기와 철기가 다량 부장됐는데 흥미로운 점은 한국식동검(세형동검)이 이들 무덤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이다.따라서 이때까지도 한국식동검은 경주(진한)에서 중요한 권력의 상징물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또 다른 흥미로운 부분은 사라리 130호 목관묘와 탑동 목관묘의 부장유물들이다.도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국식동검, 청동거울, 호랑이모양 허리띠, S자 모양의 재갈, 나무를 끼울 수 있는 철제의 창, 양쪽 손잡이 달린 항아리 등 두 무덤에는 거의 같은 물건들이 묻혔다.이러한 유사한 유물이 공통적으로 부장된 사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군다나 이처럼 다양하고 많은 수의 유물들이 나온 무덤은 더더욱 그렇다.허준양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비슷한 시기, 같은 지역 안 15km 가량 떨어진 위치, 공통된 부장품들은 어쩌면 진한의 사로국 여러 지배자들을 떠올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이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어 왔으나 아직까지 확증은 발견되지 않았다.하나 더 덧붙이자면, 경주 탑동 목관묘의 청동거울에서 왕(王 또는 主)명의 문자가 확인됐다. 우리는 이 한 글자를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이 王은 진짜 왕을 말하는 것일까? 또는 진한의 지배자(또는 장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단순한 글자인가? 만약 이 글자가 진짜 왕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탑동 목관묘의 주인은 왕이라는 뜻이다.그런데 이렇게 되면 비슷한 시기, 비슷한 수준의 무덤에 묻힌 사라리 130호 목관묘의 주인은 또 누구라고 할 수 있는가? 이렇듯 고고학은 역사문헌만으로 알 수 없는 단서를 찾아내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다시 말해 경주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보통 ‘경주’의 이미지는 신라의 고분들과 화려한 금관, 금귀걸이와 맞물려 있다.그러나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그에 더해 청동기와 밝혀지지 못한 수많은 이야깃거리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2021-01-18

시선과 손길로 전달되는 사랑이야기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캐롤’은 ‘흐름’에 관한 영화다. 시작하는 연인의 감정이 어떻게 전달돼 얽히는가에 관한 영화다. 한 순간 포착돼 잊혀지지 않는 감정이 무엇을 매개로 전달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특별나거나 유별난 것이 아니라 사랑을 경험해 보았다면 누구나 겪었을 보편적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시작은 ‘시선’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있는 백화점에서, 무수한 사람들 사이로 단 한 사람에게 시선이 머문다. 서로의 시선을 확인한 두 사람에게 시간과 소리가 멈추고, 두 사람만의 공기가 흐른다. 그 공간 속에서 모든 감각은 예민해지고, 미세한 떨림조차 크게 울린다. 운명적인 사랑, 한 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영화는 ‘흐름’으로 표현하고 있다.이것은 언어 이전에 표현돼 전달되는 그 무엇이며, 대화없이 전달되는 감정의 총체적인 것이다. 누군가를 내 마음 안으로 들이는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던가. 이유가 정립되기 이전의 시선에 포착되어 눈빛으로 전달되는 그 무엇이다. 순간이며 영원인 사건이 ‘눈빛’ 하나로 펼쳐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눈빛’으로 전달된 감정은 ‘손길’로 진화한다. ‘눈빛’이 나와 당신의 불확실한 감정의 교환이었을 때, ‘손길’은 그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흐름의 신호로 작용한다. 장갑과 담배를 피우는 손과 피아노를 치는 손, 술 잔을 잡은 손과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시선에 풍성하며 미묘한 감정들을 실어 전달했듯이, 이들의 손동작에도 다양한 감정들이 흐르고 전달되기를 반복한다. 중요한 결정의 순간과 변곡점에서 언어보다 시선과 손길이 선행한다. 언어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그 이후의 확인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영화 ‘캐롤’의 첫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서 반복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영화 속에서 두 번의 중요한 질문(요청)이 나오는데 그 질문을 던진 이의 의지와 희망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손길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시선으로 전달된다. 두 번의 요청이 언어로 시작해 손길로 전달되고, 그에 대한 답변은 눈빛으로 전달되고, 눈빛으로 화답하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구구절절하지 않다. 섬세하게 전달되는 모든 것들을 올올이 포착해 전달하고 있다. 두 배우는 미장센 속에서 감정의 넓이보다는 깊이에 치중한다. 그 깊이가 심오하거나 난해한 깊이는 아니다. 공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모든 디테일들을 오롯이 전달하는 순간들을 감상자는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되는 영화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의 격량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것은 감정의 애틋함이다. 눈으로 감상하는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가슴을 울린다.각자의 사랑이 어떻게 무엇으로 시작되었는가를 회상할 때, 그리고 그 기억이 무엇으로 어떻게 남아 있는가를 추억할 때,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의 집합체다. 상세한 이유가 사라지고 아련한 감정으로 남는 것의 모든 것들을 담았다.영화 ‘캐롤’에서 보여지는 사랑에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대사처럼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등장해 시작되는 사랑이다. 그 시작은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다.영화는 섬세한 것들이 유유히 흐르는 연속이다. 그 흐름이 감정의 파고를 만들고, 마지막을 장식한다. 어쩌면 격정적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은 느리고 차분하게 흐른다. 선택의 순간에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소음은 소거되고 시간은 느리게 흐르며, 흔들리던 카메라는 고정되고 줌인한다. 이것은 ‘흐름’의 모든 것들이 마지막에 도달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답고 숨막히는 엔딩이다.마지막에 밝히는 것이지만 영화 ‘캐롤’의 사랑은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그녀와 그녀의 사랑이다. 이것이 보편적인 사랑을 이야기할 때 방해가 되거나 낯설어질 이유가 되지 않는다.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이질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사랑의 ‘흐름’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2021-01-18

실종된 창업수통(創業垂統) 정신

강희룡 서예가본래 조선을 건국할 당시의 건국이념인 유학은 긴 세월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탄탄한 논리로 기틀을 이룰 바탕을 갖추고 있었다. 그 논리의 핵심이 바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움’이다. 무슨 대단하고 고매한 이론이 아니라 사람 하나하나가 본인이 처한 위치에서 주어진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륜의 논리가 국가나 가정을 지탱할 수 있는 원초가 될 수 있으며 사회질서 또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향리에 사창(社倉)을 열어 빈민을 구제하고, 향약을 실시하였던 조선 후기 학자 권구 선생은 그의 저서 병곡집에 당론(黨論)을 기록했다. 권구는 정치에 몸을 담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한 학자의 눈으로 중도에서 조선 중기 이후에 발생한 붕당정치가 망국의 원인이 된 핵심을 꿰뚫어보고 정리한 글이 바로 당론이다.그 내용은 ‘조선이 처음 건국하여 예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니 유학자가 배출되고 문화와 교육이 융성했다. 이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도리가 분명해져 성인들이 서로 계승하여 어진 정치는 깊이가 있고 끼친 은택은 두터웠다. …. 안으로는 정권을 장악한 권신이 없고, 밖으로는 함부로 날뛰는 강한 주변국이 없으니 결코 뽑히지 않을 기반과 범하기 어려운 형세는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백성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심이 오랜 평화와 안정에 오만해져 미래의 안목이 없어지고, 선비의 버릇이 문장의 폐해에 빠져 온화하고 인정이 두터운 기풍이 적어졌단 말인가! ….’선조 때 동인과 서인의 견해 차이에서 시작된 당론은 정치가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에 권구는 붕당정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누구도 국가에 해악을 끼칠 마음으로 당을 세우고 논의를 주장하여 서로 공격했던 것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권구는 이 글에서 견해를 달리한 당론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게 그 원인을 두고 있다. 독사 같은 무리와 경박하고 조급한 부류가 목전의 은원과 이익에 매달려 당론을 좌우하기 때문에 결국 나라를 그르쳤다는 오명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들은 오직 자신의 영욕만을 생각하는 자들이다. 자신이나 패거리의 이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상대를 공격하고 법을 비틀고 조작하다보니 결국 물고 뜯는 지경으로 몰아가 정작 옳고 그름과 정사(正邪)는 사라지고 없다. 예나 지금이나 당론으로 인해 정치가 분열되어 나라를 그르쳤다고 모두 입을 모은다.‘맹자 양혜왕장구’에 창업수통(創業垂統)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가의 좋은 전통을 후세에 영원히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지금 당장 혼란스럽고 어려워도 먼 훗날의 국가번영을 위해 정의를 탄탄한 반석에 올리고 바른 정치의 공정함으로 정도를 지켜야 한다.지금 서울, 부산 보궐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 후보자들의 출마의 변은 정책보다 다른 후보의 약점부터 먼저 헐뜯고 나온다. 이젠 성숙된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만이 이런 한심한 부류들을 정치권에서 영원히 몰아내어 국가의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창업수통이 절실한 시기이다.

2021-01-18

평범한 일상을 꿈꾸며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새해 계획은 늘 세웠던 기억이 있다.그런데 이번은 그런 생각이 일도 없다. 오직 코로나19의 종식만을 바라는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먼 나라의 불행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코로나19가 작년 2월부터 슬며시 대한민국을 덮친 후 코로나19로 사투를 벌인 해였고, 신축년 새해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만연하여도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 또 새해를 맞았다.그랬다. 경자년은 모든 것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대로 정지된 한해였다. 코로나19로 일상을 잃어버린 한해였지만 잠시 멈춘 일 년 세상 덕에 좋은 것도 있다. 황사 걱정 없이 맑은 봄 하늘도 만끽했고 높은 가을하늘도 유난히 높았다. 세상은 다 나쁜 것도 다 좋은 것도 없다.이 시기가 엄청 힘들긴 했지만 우리가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만남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던 것 같다. 가족도 장모님도 보고 싶다.그리고 교실도 문이 닫힌 한해였다. 등교를 하지 못했고, 원격수업에 쌍방향 수업, 아침에 줌으로 조례를 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새로운 학습을 했기에 아침 조례에 들어오지 않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조·종례를 해야 하는 진풍경이다. 또한 국가적인 시험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학생 없는 종업식을 하고 또 학생 없는 졸업식을 한다.이규홍님의 시에서는, ‘옳음과 외로움이 / 빈자리를 요구할 때’새해는 실천하며, 외로운 사람들의 벗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안타깝고 가련한 이웃들을 힘껏 돕겠다는 말이다.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빌고, 예수님의 무한 사랑을 얻어와, 모처럼 다시 맞은 새해 벽두에 우리들의 눈과 몸을 정화하고 서로를 아끼며 정체성을 되찾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답답했던 마스크 착용이 이제는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버리고 평범한 삶의 소중함과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 교훈을 준 값진 한 해였던 것 같다.신축년에는 ‘몸, 비워 주리라 / 저 찬란한 햇살 / 세상을 향해 훨훨 타오르도록’이라는 시구처럼 남을 위해 학생과 함께 봉사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신축년에는 저 찬란한 햇살처럼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시고, 취업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직장을 주시고, 수업시간에 수업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학생들과 함께 졸업식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학생들과 마스크 벗고 이야기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학생들과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신축년이 되기를 기원한다.소소한 삶이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라는 것을 깨달은 신축년에 가족과 함께 산책도 하고, 여름날 텐트를 치고 캠핑도 하고, 학생들과 함께 눈 맞추며 수업하는 일상으로 돌아가 행복하고 건강한 꿈이 이루어지는 평범한 일상의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2021-01-18

성장의 의미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성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성장하기 위해 누구나 노력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노력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우리는 현실이 고통스럽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성장을 꿈꾼다. 만족을 위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와 귀를 소망한다. 그러나 성공이 성장은 아니라서 이것을 갖는다고 내적인 만족까지 따라온다는 보장은 없다.며칠 전 펼친 대담집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은,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뉴욕 소네트’라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온 후에 출간된 것이어서 다큐멘터리의 뒷이야기와 못다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시모어 번스타인은 1927년생으로 미국의 피아니스트이다. 이런 작품이 연이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그의 삶이 성장의 모범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배우 에단 호크의 제안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나이는 88세였고, 인터뷰를 할 때 나이는 90세였다. 그의 삶이 남긴 흔적은 그가 추구한 성장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번스타인은 개인적 자아와 음악적 자아의 통합을 성장이라고 한다. 번스타인에게는 음악이었지만, 각자의 재능에 따라 분야는 달라질 것이다. 어떤 재능이든 예술이다. 개인적 자아와 예술적 자아의 통합이란, ‘어떤 것에 열정이나 관심을 최대한 펼칠 때 인간의 영적 세계, 감성적 세계, 지성적 세계, 육체적 세계가 함께 발달하는’ 것이라고 번스타인은 말한다. 총명하고 재능이 많다고 해서 그의 예술적 자아가 개인적 자아와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일그러지고 괴팍한 예술가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우주의 전부라면서 자기 안에 매몰되는 자아 과잉도 성장의 목적지는 아니다.감성과 지성뿐 아니라 육체의 발달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펼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번스타인은 자기가 관심 있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자신의 감성과 지성, 그리고 육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대가와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재능을 존중하고 보호하면서 작품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드러낼 수 있는 템포를 스스로 고르라고 한다. 번스타인은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 운동도 신경 쓴다. 그것이 통합이다.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공부에 재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논문을 쓰려고 발버둥칠수록 인격파탄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좌절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감성과 지성과 육체의 발달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재능을 어떻게 펼쳐야 할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많은 이들이 번스타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해보겠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존재다. 성장의 의미와 목적을 바르게 알기만 한다면 나이가 몇이든 누구에게나 통합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관심 있는 분야를 발견하고 그 활동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가면서 표현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제보다 오늘은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2021-01-18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ASMR은 ‘자율 감각 쾌락 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ASMR)’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청각을 중심으로 하는 자극에 반응해 나타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심리적 안정감 등의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다.힐링을 얻고자 하는 청취자들이 ASMR의 소리를 들으면 이 소리가 기분 좋게 소름 돋는 느낌을 갖게한다. 2010년 무렵 미국 등지에서 시작했으며, 국내에서도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다.사람에 따라서는 긁는 소리, 구깃구깃하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등의 환경소음을 통해서 ASMR을 느끼기도 한다.ASMR을 느끼게 하기 위해 역할놀이를 하는 영상 및 오디오가 제작되기도 한다. 역할 놀이 상황으로는 미용실, 병원, 마사지, 귀청소 등이 있으며, 심상치료 요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한국에서 ASMR을 최초로 상업적으로 사용한 것은 가수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MOAI’이다. 물방울 소리, 영사기 소리 등과 함께 실제 이스터섬에서 녹음된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사용했다.최근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집안에서만 갇혀있다보니 편안한 소리로 심리적 안정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ASMR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바람이 느껴지는 자연의 소리나, 음식을 조리하는 소리, 장작 타는 소리, 심지어 공부하는 소리까지 나왔다.한국문화재재단이 명주 짜기 과정을 촬영한 영상은 베틀 소리, 누에가 뽕잎 먹는 소리는 큰 호응을 얻어 조회 수 250만 회에 육박했다니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ASMR은 코로나 시대가 주목받게 만든 새 문화의 부산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18

‘국민 기대’ 못 미친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정국 전환의 분기점을 기대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통 큰’ 결단도 획기적인 청사진도 없이 밋밋하게 끝났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문제에 대한 용단도 없었고, 극적인 정책전환을 시사하는 발언도 없었다. 다만 몇몇 원칙론의 재확인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달라질 가능성을 기대해볼 여지는 남겼다. 이번 기자회견이 지독한 ‘불통 정권’ 관행을 청산하는 시발점이 될 것인지 주목된다.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한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의 단서가 혹시나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산됐다. 문 대통령은 회견 초부터 나온 ‘사면’ 관련 질문에 단호하게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불가 의사를 밝혔다. 여권에서 일어나는, ‘반성도 없는데 무슨 사면이냐’는 적극 지지층의 야멸찬 아집에 함께 묶여 있음도 명확하게 드러냈다. 부동산 문제에 관해서는 “투기(억제)에 역점을 두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정책실패를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시장이 예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공급을 늘림으로써 국민 불안을 일거에 해소하겠다”며 “신임 변창흠 장관이 설 전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윤 갈등을 조기에 해결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서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했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지난해 그토록 찍어내려고 무리수를 두었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강조해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월성원전 감사 논란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감사원의 감사는 정치적 목적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부분은 새롭게 들어줄 만한 대목이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에 대한 여권의 추후 대응을 주목하게 한다. 하지만 ‘불통’ 문제에 대해 코로나 핑계를 대며 내놓은 “기자회견만이 소통이 아니다”라는 이상한 답변은 소통에 관한 인식의 오류 문제를 뚜렷하게 노정했다. 기자들 앞에 수시로 나서서 허심탄회한 자유롭게 질의응답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연례행사로 고작 1년에 한두 번 나서서 벌이는 어색한 ‘소통 쇼’ 전통은 언제나 개혁될 것인가.

2021-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