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9일, 우리의 삶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초석을 다진 포항제철 1고로의 종풍식(終風式)이 있었다. 허허벌판 모래밭에 뿌리를 박고 50여 년간 쇠를 녹여왔던 첫 용광로의 불을 끈 것이다. 그동안 영일만의 꿈을 키우며 2차례의 치료를 통해 생명을 연장해 왔었지만 이제 수명을 다해 연명치료의 호스를 제거한 것이다.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그런데 그 종무식은 너무 조촐했던 것 같다. 코로나 탓인지 몇몇 포스코 임직원들이 참석한 내부행사로 끝난 영상을 보노라면 70년대 자전거를 타고 형산강 다리 위를 건너던 노란 제복 입은 산업역군들의 힘찬 대열이 눈에 아른댄다. 뜨거웠던 용광(鎔鑛)의 생을 마감하는 날, 그 흔한 현수막 하나 걸린 것을 보지 못했다. 그에 힘입어 발전을 거듭한 포항시도 무관심한 것인가, 내가 못 본 것인가….
1고로가 숨을 멈춘다고 포스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포항시가 다른 나라 몇 개 도시처럼 도시몰락의 길을 가는 것도 아니다. 50년 전, 송도 죽도 해도 대도 상도 5개의 섬마을이 있던 형산강 하구에는 매일 힘찬 마음으로 출퇴근하는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물결이 넘쳤고 영일만에는 철광석을 싣고 오가는 거대한 선박들이 꽉 찼던 광경이 그립다. 그 철강 역사의 산실은 영일만의 기적을 낳았고, 녹슨 고로는 다만 산업 현장에서 임무를 다하고 사라질 뿐이다.
1970년 4월 1일 첫 불을 당긴 고(故) 박태준 회장이 ‘선조들의 피 값으로 건설하는 제철소가 실패하면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빠져 죽어 속죄하자’고 외친 ‘우향우 정신’은 포항을 제철입국(製鐵立國) 중심지로 만들었다. 1973년 6월 9일 첫 쇳물이 쏟아져 나오는 날, 국민 모두의 가슴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을 테고, 그날은 ‘철의 날’로 지정됐다. 그 후 연간 생산 130만t의 소형로에서 1천500도의 열기를 뿜어내어 현재까지 5천500만t의 철강과 국가의 어려움을 녹여온 1고로, 수명 15년의 3배까지 일하면서 ‘민족 고로’로 힘을 다했지만 이제 생산효율과 탄소 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밀려 사라져간 것이다.
그간 생산한 ‘산업의 쌀-철’은 가발, 섬유제품 수출로 겨우 연명하던 국내산업을 조선, 자동차, 가전제품 생산 왕국으로 탈바꿈시켰고, 연간 조강생산 3천600만t의 세계 5대 철강회사로 성장하며 세계 만방에 그 이름을 각인 시켰고 ‘철강도시 포항’이라는 명예도 안겨줬다.
그 역사를 형제 고로들과 함께 묵묵히 다독여 왔던 높이 90m 키다리 아저씨, 그 1고로의 영구침묵을 지켜보며 산업역사의 기념물로 보존하자. 지금까지는 제철역사박물관으로 재탄생시킨다고 하지만 포항시와 포스코 둘만의 일을 넘어 국가가 나서야 하는 기념비적인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가 경제를 세운 기틀을 마련한 포스코의 첫 쇳물 정신을 기리자. 1고로는 단순한 산업폐기물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업근대화의 모체이고 상징이다. 비록 종풍을 통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민족 고로, 경제 국보1호’의 위용으로 세계 경제 10위의 꿈을 이루게 한 1고로의 불꽃을 가슴속에 간직하자.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