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식의 첫 인공 장기는 심장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부정맥으로 고생을 했다. 인공 심박동기를 왼쪽 쇄골 아래에 심었고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진료와 검사를 받았다. 그러던 중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좁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고전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을 사용하거나 스텐트를 넣어 혈관을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나노 로봇을 이용해 혈관을 청소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만식에게 누군가 인공 심장 이야기를 했다. 너무 비싸서 시도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협심증이나 부정맥 환자에게도 훨씬 나은 효과를 보일 것이라 하더군요.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인공 심장에 대해 설명을 듣기 위해 인공 장기 회사의 한국 지점에 연락을 했다. 독일 본사의 기술 팀장이 직접 한국으로 왔다.
-연료 배관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타이밍 벨트를 바꾼다고 해서 자동차 엔진이 좋아지겠습니까? 이미 수십 년 사용한 것인데 말입니다. 차를 새로 살 수 없다면 엔진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제일 좋은 거지요. 엔진이 신품이면 차도 신품이 되는 겁니다. 디자인은 좀 구식이겠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만식은 인공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만식의 나이 일흔 넷이었다. 필립이 서른아홉이 된 해이기도 했다. 만식은 수술동의서에 직접 사인을 한 후 필립을 보았다. 가까이 오라 손짓을 했고 침대 가드레일에 손을 얹고 서 있던 필립은 만식의 곁으로 왔다.
-의사들은 나에게 말한 것을 너에게도 말할 것이다. 동의니 서명이니 하는 것들을 받겠지. 수술 중 그리고 수술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기계의 오작동 가능성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최악의 경우 내가 죽거나 죽은 사람과 같을 수도 있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건강하게 수술실을 나올 것이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가,’ 따위의 말은 하지 않겠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필립은 만식의 손을 잡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입원실에서 눈을 뜬 만식이 필립을 보며 말했다.
-너는 지금 웃는 것이냐, 우는 것이냐? 너의 표정으로는 알 수가 없구나.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깨어나셔서 웃는 것입니다. 아버지마저 잃을까 두려웠습니다.
필립은 이불을 끌어 올려 만식의 배를 덮었다. 만식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수술 전 내리던 비가 멈춘 것 같았다.
-기대를 했었냐?
필립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만식의 목소리가 작아 듣지 못한 듯 했다. 필립은 침대 옆에 가져다 두었던 의자를 제자리에 옮겨 놓은 뒤 방을 나갔다.
이후 인공 심장 프로그램 업그레이드가 세 번, 배터리 교환이 네 번 있었다.
-더 이상 교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생체 전류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충전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비상 배터리까지 장착되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코디네이터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면 됩니다.
마지막 배터리 교환 후 인공 장기 회사가 만식에게 한 말이었다.
만식은 몇 번의 수술을 더 받았다. 간과 우측 콩팥을 인공 장기로 대체했다. 심각한 질환이 있어 이식 수술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만식은 오래된 장비를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라 여겼다. 인공 장기 회사의 기술 팀장에게서 들었던 자동차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다.
-몸이 자동차라고 치면 말이지. 게다가 새 자동차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면 말이야.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태어날 때 가지고 난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게 우리 몸이잖아. 그런데 지금 내가 타는 자동차가 칠팔십 년 되었어. 이게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거잖아. 정상일 수가 없지. 운전을 잘 하지 못해서 난 사고는 어쩔 수도 없고 내가 감당할 몫이라 치더라도 부품이 낡아서 사고가 나는 것은 좀 억울하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 부품이라도 갈아야지. 디자인? 그건 어쩔 수 없지. 바라지도 않고.
누군가 물었다.
-그 자동차는 언제까지 달리고 싶답니까?
사람들이 웃으며 만식을 보았다. 만식은 두 손을 들어 핸들을 잡는 흉내를 냈다.
-길이 있는 한, 달려야 하는 길이 있는 한 멈추지 않을 걸세. 달리는 것, 그게 자동차의 본질이자 운명이니까.
인공 심장 이식 수술 이후 몇 번의 입원과 수술 그리고 퇴원 시에 필립은 병원을 찾지 못했다. 만식이 오지 말라 했다. 걱정하는 모습, 안도하는 모습, 아쉬워하는 모습. 그게 무엇이든 만식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필립아, 네가 나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네 녀석을 싫어한다는 것도 아니야. 그저 병원에 있는 동안 너를 보는 것이 편하지 않을 뿐이다. 네 형이 그리되던 날, 네 엄마가 죽던 날 모두 네가 그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
필립은 가만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