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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넛지

정미영수필가찬바람머리에 수변공원을 거닐었다. 지난여름 운암지를 충만하게 덮고 있던 아리연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물가는 텅 비어 쓸쓸했다.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차가운 물 아래에는 혹독한 겨울을 길게 견디며 봄물 번지기를 기다리는 연꽃 씨앗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물이 시리다고 불평하지 않는다.절정을 꿈꾸며 인내하는 씨앗들을 생각하다 보니, 요 며칠 번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독서를 해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색을 깊이 하지 않으면서도 창의적인 사유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나날이 늘었다. 연꽃 씨앗의 인내를 닮아 내 행동을 바로 잡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넛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넛지는 ‘팔꿈치로 살짝 찌르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타인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변화하도록 하는 부드러운 설득을 말한다. 팔을 잡아끄는 것처럼 강제와 명령 없이, 팔꿈치로 툭 치는 것 같은 유연한 개입으로 자발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연꽃 씨앗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정자가 나왔다. 정자 한 쪽 귀퉁이에 빛바랜 책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청이나 공원 관리소에서 마련했는지 살펴보아도 그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호기심이 생겨 책장 문을 열었더니 제법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가장자리에는 조그만 글씨로 ‘책을 깨끗이 본 다음, 꼭 제자리에 두고 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마음 넉넉한 이가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훈훈한 바람이 일었다. 누구든지 공원을 찾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게 책을 보라는 뜻이리라. 뭇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책장 주인의 사려 깊은 행동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멋진 생각을 한 선한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나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깊은 울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는 나에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타인에게는 아직 보탬이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때로는 작은 나눔이 큰 선행이 되어 남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기증물품을 오랜만에 정리해야겠다. 나는 책장 주인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나도 잡지 한 권을 꺼내들고 자리를 잡았다. 리우올림픽 경기에 출전했던 네덜란드의 승마선수 코르넬리슨에 관한 기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경기 중에 자신의 말 파지발이 아프다는 걸 눈치 채고 기권을 해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19년을 함께한 파지발의 건강을 위한 결정이었다. 코르넬리슨은 경기 전 아픈 파지발을 옆에서 보살피고 잠도 마굿간에서 함께 잤다.다행히 시합 날에는 파지발의 열이 많이 내려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파지발이 뭔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경기를 포기했다. 그것은 바로 파지발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동료 선수,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나는 어떤가? 몇 년 전 겨울,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애지중지 키우던 정글리안 햄스터를 죽게 만들었다. 요즘처럼 매섭게 춥던 날이었다. 음식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 깜빡 잊고 외출했다. 볼일을 보던 중에 펑펑 우는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엄마, 해미가 움직이지 않아. 어떡해.”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햄스터를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집이 추워서 동면에 든 것 같았다. 야생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는 달리 애완용 햄스터는 동면에 들면 죽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햄스터에게 미안했다. 코르넬리슨처럼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려면, 동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잡지 글 한 대목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오늘은 산책을 하는 동안 부드럽게 넛지를 거듭 당했다. 내 마음에 벌써 봄꽃이 피었는가. 은은한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2021-01-27

앵무를 찾아서 - 의기(義妓)의 표본 염농산

염농산(廉嚨山·1859~1946) 여사는 구한말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애국 사회운동가이다. 경상감영의 행수기생 출신인 농산은 ‘앵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한학과 시뿐만 아니라 가무에도 능했다. 이태백의 시에 등장하는 앵무와 농산을 이름으로 삼은 것만 봐도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임을 알 수 있다.앵무 여사가 주목 받게 된 것은 국채보상운동 덕분이다. 1917년 2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의연 활동을 한 여성이 앵무였다. 기생은 돈을 좇을 게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먼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평소 신념을 몸소 실천했다.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앵무는 100환을 먼저 기부했다. “여력에 따라 의연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다. 여자로서 감히 남자보다 한 푼이라도 더 낼 수는 없으니 누구든지 1천원을 출연하면 죽기를 무릅쓰고 따라한다.” 앵무 여사의 담대한 기개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인 서상돈·김광제 등의 각성으로 이어졌고, 전국민을 분발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지에서 고종황제에 이르기까지 국채보상운동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앵무 여사 같은 솔선수범하는 여성들의 기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생들의 연합인 달성 권번의 대표자로서 기생들을 규합하여 공연회를 개최해 구제활동에 쓰거나 민족운동 후원에도 적극 참여했다.염농산 여사의 흔적이 직접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여사를 기리는 빗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성주 나들이를 했다.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 빛바랜 비석은 허술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비석과 바로 이웃한 홍영기(81세) 옹을 만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홍수 피해에 시달린 마을 전답을 앵무 여사가 사재를 털어 방천을 축조한 뒤 학춤을 췄다고 한다. 그 공덕을 기리고자 마을에서 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석은 ‘앵무빗돌’, 방천은 ‘앵무방천’, 논밭은 ‘앵무들’로 불렸지만 이제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단다.대구의 기생이었던 앵무 여사가 하필이면 성주까지 가서 그 큰 토목공사 비용까지 댔을까. 이문기 교수의 ‘대구 의기 염농산의 생애와 성주군 용암면 두리방턴 축조의 의미’라는 소논문에 의하면 방천 앞의 일부 토지가 그녀 소유였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단다. 홍수로 유실된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농토를 복구하면서 방천둑을 축조하게 되었다. 먹고 살 만했던 앵무 여사보다, 살기 급했던 마을 사람들이 혜택을 받은 것은 자명했다. 방천 축조에서 염농산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제방 축조 후, 국유지로 개척된 농토는 염농산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불하되었다. 시행 주체에게 주어지는 토지 불하권을 마다한 것이다. 여성으로서 당당한 인격권을 외쳤지만 그 권리를 개인의 사욕에 두지 않고, 공적인 활동을 전개한 것은 그가 국채보상에서 보여준 모범과 상통하는 것이었다.그의 선행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1937년에는 교남학교의 부흥을 위해 부동산을 희사하여 민족운동의 당당한 후원자가 되었다. 관기에서 은퇴해 음식점을 경영한 돈으로 후원을 했다. 그의 가게는 노년까지 계속되었다니 의로운 일에 쓰이기 위한 노동을 끊임없이 한 셈이다. 넉넉한 자산은 물질적 선행을 꾸준히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살림이 좋다고 누구나 선행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근대여성으로서 삶의 주체적 자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합리적 사고로 나라와 사회를 구제하려 했고, 적극적 행동으로 자립적이고도 평등한 여성을 꿈꿨다.앵무빗돌의 머릿돌은 깨어지고 비석 뒷면은 갈라지고 있었다. 빗돌집을 오르는 계단은 방치되어 잡풀이 돋았고, 뒤쪽 공터엔 쇠락한 집터만이 남아 있어 을씨년스런 장면을 연출했다. 당국에서 앵무의 존재를 알고나 있는지 홍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 가끔 취재를 오는 정도라고 했다. 자신도 어른들에게 귀동냥한 것을 전할 뿐, 학술적으로 많은 연구가 뒷받침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김살로메 소설가앵무 여사가 축조했다는 두리방천은 앵무빗돌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현대식으로 정비되어 그때의 축조 풍경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방죽을 받치고 있는 돌들 중 빛바랜 것들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그것이 앵무 여사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애국운동가나 사회사업가 교육사업가로서의 근대적 여성활동가는 드물지 않다. 앵무 여사가 그들과 다른 점은 그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뒤에 머물지 않고 나서야 할 때는 의연하게 나섰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평등사상과 민권의식을 고취하면서도 공익을 추구했던 사람이 앵무였다. 그것을 알기라도 한다는듯 앵무 방천을 휘도는 바람마저 당당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2021-01-27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1억이 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게 아닌가. 사계절을 건너오며 오르내렸던 감염의 기세가 이제는 꺾이는가 싶었다. 조금씩 내려가던 숫자에 또 다시 충격을 주는 듯 집단감염이 드러나고 있다. 하필이면 교회를 비롯한 종교집단발 무더기 감염이 연일 방역을 힘들게 한다. 코로나19가 사상초유라지만, 14세기 흑사병의 그늘에도 교회가 있었다. 역병의 원인을 인간의 죄로 규정하였던 교회들 탓에 오히려 확산세가 불어났다고 한다. 21세기 첨단의료와 방역의 현장에서 팬데믹 현상에 종교적 원인을 끌어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 겪는 바이러스의 창궐이 하필 교회 언저리에 들끓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신천지, 인터콥, IEM, TCS. 코로나19의 확산세에 기름을 끼얹은 이들이 하나같이 기독교 관련 단체들이다. 일부 교단들도 방역수칙을 권하는 정부의 노력을 ‘교회탄압’으로 규정하며 거부하는 태도마저 드러내고 있다. 신앙인들에게 믿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신앙을 바르게 지키며 믿음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은 값진 일이다. 모두가 인정하며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상 집단으로 모이는 일이 방역에 치명적임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평소에 이웃사랑을 강조하며 배려와 섬김을 기준으로 삼던 교회는 어디로 갔는가. 의료과학의 눈으로 밝혀지고 방역의 수단으로 설정된 ‘거리두기’를 억압의 방책으로 오해하다니! 신앙을 교육과 버무려 어린 청소년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면, 이는 이웃을 섬기는 일인가 해치는 일인가. 사회 일반은 방역에 집중하는데 교회는 어디를 바라보는가.‘교회도 바뀌어야 한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방역기조를 거부하는 교회들을 향하여 일침을 놓았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모두가 동참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영국성공회교단과 미국장로교단도 매우 세부적인 권고사항까지 적시하면서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고 정리하였다. 미국 기독인의료협회들도 교회들을 향하여 ‘이웃을 위하여 집에 머물러 줄 것’을 강권하는 호소문을 내었다. 다른 목소리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사회적인 동의가 눈에 뜨인다. 이웃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할 태도는 분명한 게 아닌가. 생명처럼 귀한 예배는 존재와 살아가는 모습으로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모여는 있어도 이웃을 해할지도 모르는 ‘회칠한 무덤’같은 섬김을 누가 기뻐할 것인가.‘네 이웃을 사랑하라.’ 믿음이 높은 곳을 향할수록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혼자만 구원에 이르기보다 남들과 함께 이웃을 만들어야 한다. 죽어서 올라가는 게 천국이 아니라 여기서 당겨오는 게 하늘나라가 아닌가. 팬데믹이 얼른 지나가고 함께 교회에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이 얼른 오도록 오늘은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 탄압이 아닌 방역이 역병을 극복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모이지 않고도 믿음의 공동체가 든든해지는 기억을 만들어야 한다.

2021-01-27

주식리딩방

주식리딩방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자칭 투자전문가가 투자자문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이들은 금융감독원의 규제를 받지않으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방송 등을 통해 대가를 받고 단순 투자조언을 하는 유사투자자문업으로 분류된다.주식리딩방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우선 카톡방 회원들의 투자성공담이라며 수익이 난 계좌정보 등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엄청난 투자수익에 귀가 솔깃해진 투자자가 가입 또는 투자 문의를 하면 고액의 회원가입비를 요구하거나 위탁투자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회원 가입비를 요구하는 주식리딩방의 경우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에 이르는 가입비를 요구한다. 가입하고 난 뒤 주식리딩방이 지시한 대로 주식거래를 해도 좀처럼 수익을 내지 못한다. 그제서야 납부한 회비를 돌려달라고 해도 상대방은 환불을 거부한다. 위탁투자를 위해 돈을 보낸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홈트레이딩 시스템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돈을 입금하게 하고 수익이 발생한 것처럼 속인다. 가령 개인투자자가 리딩방이 알려준 주식 사이트로 2천만원을 입금하면 얼마 후 1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는 연락이 온다.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투자한 돈과 수익금을 돌려받겠다고 하는 순간 본색을 드러낸다. 돈을 환급받으려면 수수로 등으로 인해 오히려 8천만원을 더 내야 환급이 가능하단다. 만약 요구한 돈을 만들어 보낸다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돈을 환급해주기는 커녕 또 다시 “돈을 더 넣어야 돈을 돌려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때서야 사기임을 알아차리지만 때는 늦었다.주식에 왕도는 없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과욕은 패망의 지름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7

수도권 인구 집중, 더 고질화 되고 있다

지방의 젊은 인력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방도시마다 젊은층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좋은 일자리가 없는 지방 도시에 젊은이가 머물리가 만무하다.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고 15년간 50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수도권은 되레 인구가 늘어났다. 2019년 말로 수도권의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국내 전체 인구의 절반 수준을 넘어섰다.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역전한 것이다.50년전인 1970년도 수도권 인구는 913만명으로 비수도권 인구 2천312만명을 포함한 국내 인구의 40%선에 불과했다.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이제 국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국내 인구이동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도 수도권으로 유입된 인구는 모두 8만8천명으로 집계됐다. 2006년(11만1천700명)이후 14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구와 경북 등 전국 지방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빠져나가 서울 등 수도권의 인구를 늘리는데 한 몫했다. 지난해는 집값 폭등으로 서울에서 빠져나온 인구가 경기도로 주소를 옮기면서 경기도에는 순유입 인구가 무려 16만8천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지방에서 인구 유출이 가장 많은 도시는 대구와 경북, 경남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구와 경북에서 각각 1만7천명의 인구가 순유출됐다. 부산, 경남, 울산에서도 작년 한해동안 3만4천명의 인구가 유출됐다. 유출된 인구의 거의 절반은 젊은층이다. 대구에서는 9천410명, 경북에서는 6천209명 등 모두 1만5천여명의 20대, 30대 인구가 수도권으로 순유출됐다.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한동안 주춤하던 수도권 인구 증가세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도시의 인구 유출은 도시의 노령화와 생산인구 감소로 이어지면서 도시의 존립 자체를 흔들만큼 심각하다.포항시가 인구 50만명 선을 지키기에 안간힘을 쏟는 것처럼 지방도시들마다 같은 고민에 직면한 지 오래다. 인구 유입에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지만 유입이 현실화된 지방도시는 거의 없다. 정부의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없이는 고질화된 지방도시의 인구유출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2021-01-27

경찰의 잇단 부실수사 말썽… ‘국민불신’ 씻어내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취중 택시기사 폭행 사건 축소·은폐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경찰 수사관이 핵심 물증인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었다는 의혹과 관련한 새로운 진술들이 쏟아지면서 경찰의 거짓말이 치명적인 동티를 내는 양상이다. 경찰의 “객관적 증거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택시기사의 증언에 의존해 내사 종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애초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속속 드러나 ‘국민불신’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27일 사건을 처음 담당했던 서울 서초경찰서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경찰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었다는 다른 진술이 거듭해서 나오면서 검찰은 사건 무마의 배경이 무엇인지,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경찰은 당초에 택시기사가 “목적지에 도착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진술했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단순 폭행 사건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 택시기사가 휴대폰에 저장된 복원 영상을 수사관에게 보여줬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블랙박스 영상을 복구해 보여준 업주 역시 “경찰의 전화문의에 택시기사의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영상을 확인한 경찰이 오히려 “영상 못 본 것으로 할게요”라며 묵살했다는 피해 택시기사의 진술은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정인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수사가 논란이 됐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도 167일간 전담팀을 투입하고도 뭐 하나 제대로 건진 게 없다.올해부터 ‘수사종결권’까지 확보한 공룡 경찰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경찰 스스로 논란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는 수준의 엄정조치를 내려야 한다. 재발방지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경찰은 13만의 거대 조직이어서 크고 작은 실수는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경찰 출신 황운하 민주당 의원의 두둔에 한숨이 절로 난다. 경찰의 부실한 ‘사법’ 처리가 계속될 수 있으니 국민더러 그저 양해하라는 말이 과연 이치에 맞는가. 갑갑한 노릇이다.

2021-01-27

나의 작은 동무

김규종 경북대 교수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중국 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1월 14일 개봉된 에스토니아 영화 ‘나의 작은 동무(The Little Comrade)’는 신선하고 유쾌하게 다가왔다. 에스토니아란 나라가 어디 있는 거야, 하고 묻는 교수도 있었으니 말이다.우리는 가끔 ‘발트 삼국’이라는 어휘와 대면한다. 북구와 러시아에 면한 발트해에 자리하고 있는 세 나라를 가리킨다. 위도상 위쪽부터 거명하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순서다. 18세기에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세 나라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1차대전 종결로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1940년 스탈린의 강제 통합으로 국권을 상실한다. 세 나라는 1990년 다시 주권을 회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영화 ‘나의 작은 동무’는 1950년 스탈린 통치 아래 있던 에스토니아 시골 소녀의 이야기다. 2차대전의 영웅으로 떠오른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전제정치로 자유를 향한 에스토니아 국민의 열망이 짓밟히던 시절. 여섯 살 소녀 렐로는 9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교사인 엄마가 소련에 저항하고, 에스토니아 독립을 지지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에스토니아 국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다른 혐의가 없음에도 엄마 헬무스는 시베리아로 유배당한다. 아빠인 펠릭스는 여러 방면으로 구명 노력을 하지만, 렐로에게 약속한 9월 입학 전까지 헬무스를 빼내지 못한다. 그들 부녀가 만 5년 동안 겪어나가는 눈물겨운 애환이 영화의 얼개다. 약소국 에스토니아가 강대국 소련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목과 소련 앞잡이로 등장하는 펠릭스의 친구가 얄밉기 그지없다.영화를 보면서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민중과 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일제 앞잡이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특히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하는 말로 유명한 의열단장 김원봉이 친일 악질분자이자 이승만의 충실한 하수인 노덕술에게 모욕당한 일이 절로 떠올랐다. 일제가 거금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던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앞잡이에게 당해야 했던 치욕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렐로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도, 학년이 올라가도 엄마는 돌아올 기미가 없다. 그러다가 1953년 3월 5일 공포의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한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거기서 다시 2년 넘는 세월이 흐른 1955년 5월 헬무스는 열차 편으로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에 도착한다. 엄마를 찾으려던 렐로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던 엄마 아빠를 본다. 조금은 어색하게 엄마를 바라보는 렐로에게 눈물 젖은 얼굴로 엄마가 손을 내민다.어린아이에게 만 5년 넘도록 엄마를 빼앗아간 전체주의 통제국가 소련의 운명은 우리가 보고 들은 대로다. 그들도 1991년 12월 31일 종언을 고했다. 철권통치의 끝은 언제나 고약하다.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나의 작은 동무’는 우리가 잊었던 시절을 일깨우는 소중한 영화다.

2021-01-26

홀로서기에 대하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코로나19의 영향일까? 최근 들어 홀로 또는 따로 하는 문화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염을 우려한 한 줄 칸막이 식사를 한다거나 한 칸 띄어 앉기 등으로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저절로 혼자 하는 행위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먹거나 어울리고 활동하는 자체에 많은 제약과 기준의 적용으로 다소의 불편과 움츠림 속에서도 자구책(?)으로 나타난 것이 홀로 하는 문화라 할 수 있다.그러나 혼자 하는 식사나 행동, 작업 등은 이미 한참 전부터 우리의 생활 저변에 나타나거나 스며든 삶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근래부터 1인 가구 혼족들이 많아지면서 혼자 움직이고 생활하는 문화가 늘어나다 보니 혼밥혼술이니 혼행, 혼잠 등의 유행어가 생겨나면서 ‘혼OO’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새로운 추세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듯 시대가 변하면서 ‘홀로 생활’은 누구에게나 통용되고 낯설지 않은 현재의 생활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실제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나홀로 문화’가 당시 3~4개에서 2018년 39개, 2020년 말엔 65개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증가하여 홀로 하는 세태가 더해지는 듯하다. 최근에 두드러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세된 영향도 있겠지만, 혼자 먹고 입고 놀고 자는 것들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편안한 일상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일생을 크게 보면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지만, 작게 보면 소소한 개인의 생활이기 때문이다.이른 바 ‘나홀로 문화’란 자발적 고립을 택해 식사, 여가생활 등을 홀로 즐기는 문화를 말한다. 즉,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혼자만의 일상생활에서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나홀로 밥을 먹거나 여행, 캠핑을 즐기고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타인과의 관계 보다는, 혼자의 생활을 즐기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면서 감정의 소모를 줄이고 그 가운데서 자신만의 은밀한 만족을 맛보는 것이다.세상의 무엇이든 바뀌고 변화되기 마련이다. 계속되는 변화 속에 우리는 다만 적응의 문제를 간단없이 풀어나가야 한다. 미래의 상황은 환경변화라는 상수 속에 인간 욕망의 변수가 끊임없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희대의 감염증 확산에 따른 주거문화나 식사, 회식, 만남 등의 정서가 분화되고 이질적인 양상을 띄고 있지만, 우리의 고유한 습성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진적이고 유화적인 측면으로의 꾸준한 변모와 진전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사람은 어차피 홀로서기다. 홀로 태어나서 가족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지내다가 결국 홀로 가게 된다. 외롭고 쓸쓸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가치는 뼈저릴만큼 혹독한 홀로서기에 달려있다. 그 모질고 처절한 혼자만의 고뇌와 시련 속에서 예술작품은 탄생하고 빛 부신 새날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2021-01-26

재갈 물리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유안진 시인의 ‘침묵하는 연습’이라는 시의 첫 두 구절이다. 말의 양과 공허의 깊이가 비례하는가 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해야 뭔가 뿌듯하고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정치판이 대표적 다변의 마당이리라. 서울 시장, 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딱히 정치판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눌변의 시대가 아닌 다변의 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아무말’에 다변이기까지 한 정치인 한 사람이 해가 바뀌면서 퇴장하였다. 집권 기간 내내 자기 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온통 말과 글로 들쑤셔 놓았던 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는 재선에 실패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도 “안녕,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대통령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한 말을 하고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자신의 개인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 주 팜비치로 돌아갔다.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에서까지 ‘아무말’을 멈추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하게 대통령으로서의 특권을 찾아 누렸다.우리 속담에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다’라는 말이 있는데, 트럼프는 뒷걸음질도 옆걸음질도 아닌 마구잡이 행보로 쥐를 잡기는커녕 미국의 정치마당을 끝까지 들쑤셔 놓았다. 결과는 재갈 물리기로 돌아왔다. 트위터는 퇴임을 2주도 남기지 않은 1월 8일에 8천900만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현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같은 날 구글과 애플은 보수 성향의 미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SNS ‘팔러’(Parler) 앱을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각각 퇴출시켰다. 트럼프가 트위터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앱까지도 막아버린 셈이다. 다른 그 누구도 배려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거침 없는 언사, 함부로 된 말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자승자박이라고나 할까.공자는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이라 하였다. ‘더듬거리는 말’이란 뜻의 ‘눌언’을 여기서는 더디고 신중하게 하는 말 정도로 풀어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라고 해석하면 되겠다. 군자로서의 사람됨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좀더 말과 글에 신중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좀 심한 언사를 일삼던 남의 나라 사람 이야기이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개인의 사회적 소통 계정을 영구히 막아버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침묵하지 않고, 경청하지 않음으로 자초한 것이기는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지고지선의 가치로 여긴다는 미국 기업의 재갈 물리기 앞에서 생각이 잠시 멈추어 버렸다. 그 틈을 정현종 시인의 시 ‘경청’의 한 구절이 들어와 앉는다.“불행의 대부분은 /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 비극의 대부분은 /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2021-01-26

손실보상법, 절박성 살피되 ‘졸속추진’ 말아야

여당을 중심으로 제기돼온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법에 대해 드디어 문재인 대통령이 힘을 실었다. 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식약처·질병관리청 2021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해 손실보상을 제도화할 방안을 당정이 함께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여야 정치권이 마주 앉아 벼랑 끝에 다다른 소상공인들의 절박한 처지를 충실히 반영하길 바란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허점투성이 ‘졸속추진’은 안 된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강제한 조치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상은 여야 간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안과 시기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이 있다. 여당은 입법을 통해 실행하자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다른 접근법을 주장한다.나라 곳간지기인 홍남기 부총리의 “재정이 화수분이냐”는 항변에 정세균 총리가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질타한 뒤, 결국 문 대통령이 ‘보상법 추진’을 지시했다. 법제화에 대해 비판적인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긴급재정명령권’을 발동해 매듭지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한다. 안 대표는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노골적으로 관권, 금권 선거를 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난하면서 “공론화 기구를 국회에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당장 숨넘어갈 지경인 영세 자영업자를 생각하면 신속하고도 실질적인 손실보상이 불가피하다. 안철수 대표의 아이디어처럼 소모적 싸움을 없애기 위해 국회에 공론화 기구를 설치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선거를 의식해 정치권이 ‘공치사(功致辭)’용으로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국민의 처지를 악용하는 최악의 행태다. 여야 정치권이 원칙적으로 큰 이의가 없는 사안인 만큼 우리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선의 방안, 그러나 영세사업자들에게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을 넘어서는 효과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국민도 죽고, 나라도 망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정략 놀음부터 접어야 할 것이다.

2021-01-26

포항시 코로나 행정명령, 확산세 꺾는 계기 돼야

포항시가 전국 지자체 처음으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가구당 1인 이상 코로나19 진단검사 실시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주민의 불편을 강제하는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포항 지역의 코로나 상황이 그만큼 나쁘다는 뜻도 된다.포항은 국내 3차례 코로나 유행기를 거치면서 1, 2차 때와는 달리 최근 3차 시기에 경북에서 가장 높은 감염율을 나타냈다. 포항은 그동안 모두 392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으나 그 가운데 70%가 3차 유행기에 일어났다. 주 일일 평균 확진자가 5주 전에는 3.6명이었으나 최근 1주 사이 6.3명으로 늘었다. 무증상 감염자도 서울 등 타지역은 30% 수준이나 포항은 40%나 된다.일부 주민들은 포항시가 20만명에 달하는 시민에게 진단검사를 강제하면서 사전 홍보도 없이 갑자기 6일 안에 실시하겠다는 것은 시민 불편을 도외시한 결정이라며 비판도 한다. 안동시가 1가구 1인 검사를 자발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포항시가 좀 더 신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그러나 포항지역의 n차 감염이 우려할 만한 상황에 이르렀으면 감염세 확산 방지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도권과 경북 다른 지역의 감염세는 줄어드는 데 반해 포항의 감염세가 늘어난다면 정확한 원인 규명도 해야 한다. 특히 전파력이 강한 20, 30대가 먼저 검사를 받아야 하며 최근 대량 발생으로 주목받는 목욕탕발 코로나 감염세 차단에도 당국이 적극 대처해야 한다.코로나19 확진자는 전국적으로 다소 줄어드는 경향이 있으나 지역별로는 산발적 발생이 여전하다. 특히 다중이용 실내시설이나 지인간 접촉 등을 통한 발생이 연속 이어져 일상 속의 코로나 안전준칙 준수가 절실한 때다.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누적 확진자 수는 1억명을 넘었다. 세계인구의 1.3%가 감염된 꼴이다. 누적 사망자 수도 214만명에 달한다. 코로나 백신의 공급은 아직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이제 보름 후면 사람의 이동이 많아지는 설 연휴다. 또다시 코로나 확산의 중대 고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포항시의 행정명령이 주민에게 불편을 주지만 기왕 시작했으면 감염세를 꺾는 확실한 성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1-01-26

경찰과 거짓말

사실이 아닌지 알면서도 상대방에게는 사실인 것처럼 믿게 하려는 거짓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을 우리는 ‘하얀 거짓말’이라 부른다. 또 뻔히 드러날 만큼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 한다.사람은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예쁘진 않으나 칭찬을 해줌으로써 상대가 희망이나 격려를 받을 수 있다면 선의의 거짓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또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종종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거짓말은 상황에 따라 필요악으로 쓰일 때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고의적 혹은 상습적으로 하면 주변의 눈총을 받게 된다. 그런 거짓말로 인해 범죄가 성립되는 경우도 흔하다.미국에서는 법정에서의 거짓 증언은 중범죄로 다스린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 대통령이 도청보다 거짓 증언 때문에 정치 생명에 치명타를 입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우리 경찰이 또 한번 궁지에 몰렸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부실수사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내사종결한 사건의 핵심 증거인 블랙박스 영상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경찰의 사건 은폐 의혹이 커진 것이다.경찰이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했는지는 이제 수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현재까지 정황으로 봐 경찰의 증언이 합리적 의심을 받을만한 거짓으로 보인다. 언론도 경찰이 거짓으로 수렁에 빠졌다고 비판한다.거짓말이 영원히 감춰지길 바란다면 오산이다.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 속성이 있다. 진실을 거짓으로 덮으려 한다면 경찰의 신뢰는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26

조감하는 시선과 책을 읽는 시간

인간의 눈이란 본디 사람의 얼굴 가운데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를 향해 있는 그곳에 대한 제한적 시점밖에는 갖지 못한다.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사실은 우리에게 종종 망각되곤 한다. 다름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 주는, 그리고 우리의 상상이 주는 마음의 눈에 떠오르는 인상을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혼동되기 쉬운 때문이다.인간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기할 때 가장 중요한 전제였다. 그것은 우리가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점유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걸어가는 자신을 볼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행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행하고 있는 나의 장면을 바라볼 수 없다. 인간의 눈이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시점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한계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 바로 세잔이나 피카소 같은 입체파 화가의 시도였다. 어떤 대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는 착각을 평면 회화에 부여하는 ‘원근법’의 전통에서 벗어나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시점을 회화에 부여하는 예술적 형식 말이다.우리가 하늘 저 위에서 새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조감도’라는 형식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머리에 붙어 있는 답답한 눈이 주는 시각적 답답함을 해방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생활의 관점에서 우리 눈앞에 주어진 것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은 그래서 조감도나 지도 등을 통해 자신이 지금 있는 공간의 형태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가늠하고, 다시 삶의 공간으로 들어간다.작가 이상(李箱·1910~1937) 역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3인의 아해가 도로 위로 질주하오.”라는 그야말로 기묘한 시작을 기억하실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연작을 신문에 연재하기 몇 년 전에 일본어로 ‘조감도(鳥瞰圖)’라는 연작을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아마 생소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이상은 건축을 전공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삶의 공간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간이 빛의 속도를 넘어 두 개의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있었다. ‘13인의 아해(兒孩)가’로 시작하는 이 ‘오감도 제1호’는 사실 시간이 주는 답답한 12진법에서 해방되는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결국 인간의 눈이 주는 시각의 답답함과 그리고 조감하는 시선을 어떻게 ‘동시적으로’ 중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다.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될 때, 지도를 꺼내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내가 지나가고 있는 길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지도 속에 들어 있는 실제와 연결된 기호들이나 상징들을 통해 조감하는 시선을 확보한다. 요즘엔 스마트폰에 있는 지도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주니 상당히 편리하다.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런 것은 아닐까. 살아가다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갑자기 모르게 되어버렸을 때, 잠시 멈추고 누군가 하나의 시선을 통해 정리해둔 것을 보고서 삶을 조감하는 시선을 참조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한 뒤,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시간에 있는지 모른 채 도로로 질주해가는 무서워하는 아해들처럼, 문득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조감의 시선이다. /홍익대 교수

2021-01-25

신라 이전의 역사, 사로국 1

‘기원전 57년, 알에서 깨어난 박혁거세를 6촌 촌장들이 추대하여 신라를 건국했다.’삼국유사에 전하는 이 짧은 기록은 마치 역사 상식처럼 알려지고, ‘천년 신라’라는 고유명사도 만들었다.그런데 이런 역사 기록이 사실(Fact)이 아니라면? 그렇다. 일반인이 흔히 아는 신라는 이때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경주분지에 터전을 잡았던 사로국이 등장했을 따름이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신라는 4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성립하며, 그때부터 경상도 일대를 영역화한 고대 국가로 인정된다. 그렇다면 신라 이전에 경주에서 성장하고 있던 사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사로국 시기는 대략 기원전 150년(?)~356년으로 추정된다. 400여 년이 넘는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역사 기록은 많이 남겨져 있지 않다. 더욱이 문헌 기록의 초기 역사는 신화, 설화의 형식을 취하거나 후대에 부풀려지고 연대가 맞지 않아서, 당시의 물질 자료를 분석하는 고고학의 영역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번 칼럼은 신라의 모태인 사로국을 2편에 걸쳐 다루기에 전반부(사로국의 소개와 주변국과의 관계), 후반부(사로국의 특징, 신라로의 전환 과정)로 나눠 이야기를 풀고자 한다.사로국의 영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경주시 일원으로 추정된다. 그 내부 구조는 비슷한 사회·문화를 공유한 5~6개의 지역공동체가 결합된 형태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지역공동체(구, 군 규모의 행정 단위)를 ‘읍락’이라 부른다. 크고 작은 취락이 모여 촌락을 이루고, 다시 중심 촌락을 매개로 몇 개의 촌락이 뭉쳐 읍락을 형성했다. 이런 5~6개의 읍락이 결합해 초기 국가로 성장한 사회가 바로 ‘사로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초기 국가로 조직화된 사로국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에 흔적을 남겼을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옮겨간다.사로국 사회를 이끈 중심 집단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중국 동북지역이나 한반도 서북지방에서 경주지역으로 유입된 외부 세력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무렵 사회, 문화 속 가장 큰 변화로 ‘목관묘’(널무덤)라고 일컫는 새로운 구조의 무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목관묘 부장품은 멀리 떨어진 선진 지역으로부터 교역을 통해 입수한 제의용 청동기를 비롯해, 철제 무기, 농·공구 등으로 일괄 교체된다. 이런 물질문화의 변화는 이전 시기 거대한 돌을 이용해 ‘지석묘’(고인돌)를 공동으로 만드는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나 원거리 교역에 기반한 네트워크 사회로 변화됨을 의미한다. 결국, 읍락 단위로 내부적 발전을 거듭해 나간 지역공동체에 선진 문화를 가진 외부 세력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정치체인 사로국이 형성되었고, 드디어 역사 무대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던 것이다.장기명학예연구사시간이 흐르면서 사로국은 주변 나라들과 함께 ‘진한(辰韓)’이라는 경제적·사회적 연맹체를 이루게 된다. 진한 연맹체는 점차 한반도와 그 주변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낙랑, 대방, 동예, 마한, 왜 등과 교류하며 역사에 본격적으로 흔적을 남겼고, 그 중심에는 진한 연맹의 맹주로서 사로국이 있었다. 이러한 진한 연맹체의 활발한 대외 교역의 결과물로 중국 한나라의 청동 거울과 동전, 왜(일본)에서 생산한 다양한 청동 무기류 등 다양한 외래 문물이 경상도 일대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외래계 문물들은 당시 경상도 일대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와질토기(瓦質土器)’로 불리는 회백색 토기 및 다양한 철제 도구들과 함께 사로국의 물질문화를 대표하게 된다.경제적 교역 공동체인 진한 네트워크는 문헌 기록에 남겨진 시점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1세기 중엽부터 확인되며, 4세기 중엽에 소속 국들이 사로국에 의해 신라로 통합될 때까지 오랜 기간 유지된다. 마치 고대 그리스에 자리 잡았던 도시국가 폴리스 동맹체제처럼 각기 고유한 영역을 지니고 상호 간에 화합과 견제를 반복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삼한의 소국들은 활, 창, 방패와 같은 무기를 잘 사용했고, 비록 다투고 전쟁을 하더라도 서로 굴복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라고 기록된 중국의 ‘진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그렇지만 당시의 동북아시아는 격변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었다. 대외적 상황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유동적이었으며, 사로국의 지배 집단과 내부 구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당 시기 초기 국가는 결코 강력한 왕권에 기반한 구조가 아니었고, 국읍이라는 국가 중심지는 고정불변에 가까운 ‘수도’로 볼 수 없었다. 문헌 기록과 고고학 자료는 놀라울 만큼 동일한 역사상(歷史像)을 제시한다. 최고 지배자의 호칭은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이라 불리는 토착 용어로서 존장자(종교 주관 혹은 나이·덕이 많은 사람)를 의미하였으며, 3성(박씨, 석씨, 김씨) 집단이 교대로 이사금을 배출했다거나 국읍에 의한 읍락의 통제가 어려웠다는 상황이 엿보인다. 실제로 탁월한 무덤이나 거대한 건축물은 한 지점에서만 지속적으로 고정되지 않고, 3~4개 유력 집단이 그들만의 근거지를 기반으로 각축을 벌이는 양상을 띤다.하지만 사람과 권력은 어느 순간 환경에 적응하고, 익숙한 상황을 일순간에 변화시킨다. 더 이상, 바깥에서 불어오는 유동적 국제 정세와 안으로부터 국내 기반을 흔드는 견제 움직임은 국가 권력의 풍향을 바꾸지 못한다. 물론, 신라(新羅)라는 고대 국가로 새롭게 일신하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와 내부 구조를 모두 장악할 수단과 정당화 기제가 필요했다. 이런 핵심 키워드를 제공한 것이 ‘철’과 ‘통합 이데올로기’였다. 역사적 시간은 점차 흘러,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

2021-01-25

‘신춘문예’ 생각

매년 그렇듯 이번 1월 첫 주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으며 보냈다. 이른바 ‘신춘병’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워진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1월 1일이면 가슴께가 아리다. 떡국 대신 열등감과 좌절감, 분노를 끓여 먹었던 새해 첫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12월 초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마감 시즌이 되면 원고를 들고 추운 광화문 거리를 돌아다녔다. 우편 사고가 일어날까봐, 혹 시인을 꿈꾸는 집배원이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써진 내 등기우편을 열어보고는 감탄하며 자기 이름으로 바꿔 낼까봐 우체국도 못 믿고 직접 갖다 주느라 그랬다. 그때부터 한 열흘 기대와 희망, 불안과 초조함을 마구 널뛰며 지냈다. 당선소감을 써보기도 하고, 신문에 실릴 사진을 고르기도 하고, 학교에 현수막이 내걸리는 상상도 하고, ‘20대 얼짱 시인’으로 유명해져 방송에 출연하는 망상에도 빠지곤 했다.12월 20일쯤부터 당선통보 전화가 가기 시작해서 크리스마스 전에는 모든 당선자가 확정된다.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던져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1월 1일, 당선작들을 읽기 전 심사평부터 찾아 봤다. ‘예심은 통과했겠지’, ‘내 작품이 거론됐을 거야’… 눈 씻고 봐도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심정은 참으로 처참했다. 한 며칠 술만 마시며 지냈다. 내가 쓴 시들이 다 쓰레기 같았다. 삼성 계열사인 중앙일보에 본명으로 응모한 게 탈락 사유일 거라고 ‘음모론’을 써보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세상에서 제일 미웠다. 심사평과 본심진출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불 뒤집어쓰고 있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걸 10년 동안 했다.10년 동안 1월 1일에는 남들 박수나 쳐줬다. 2004년 동아일보 김성규 시인, 문화일보 김지훈 시인은 가까이서 보던 선배들, 그저 경외감만 들었다. 2005년 한국일보 신기섭의 ‘나무도마’는 넋 놓고 감탄했던 시, 행간에 스민 죽음의 냄새가 시인에게도 비극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시인은 신춘문예에 당선한 그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를 동시 석권한 이윤설 시인은 정말 대단했다.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불가리아 여인’은 지금 읽어도 세련됐다. 이윤설 시인도 지난해 가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이병철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2007년에는 경향신문 신미나 시인, 조선일보 김윤이 시인, 2008년에는 경향신문 이제니 시인, 동아일보 이은규 시인이 돌아가며 내 마음을 폭행했다. 퍽, 퍽, 퍽, 절망과 감탄, 질투가 피멍처럼! 2009년엔 김은주, 민구, 정영효, 이우성 등 훗날 주목받게 되는 시인들이 나란히 나왔다. 2010년에는 동아일보 유병록 시인, 2011년에는 조선일보 신철규 시인, 2012년에는 동아일보 안미옥 시인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2013년에는 동아일보 이병국 시인과 그간 수십 번 최종심에서 떨어진 ‘불운의 아이콘’ 이해존 시인의 경향신문 당선이 기억난다.그리고 2014년, 박세미, 최현우, 이소연 시인이 화려하게 데뷔하는 걸 지켜보며 나는 신춘문예를 내려놓았다. 연말에 ‘시인수첩’ 신인상에 투고했고, 떨어지면 이제 시 안 쓸 거라고 마음먹었는데 운 좋게 당선이 됐다. 그 후 열심히 작품 발표도 하고 시집도 냈다. 이제는 12월과 1월의 우울, 증오, 오기, 좌절, 망상, 마음 졸임, 초조함, 술병, 억지웃음, 거짓축하, 겨우 뱉어내는 괜찮다는 말, 눈물 같은 것들과 모두 작별했지만 내가 이루지 못한 꿈 ‘신춘문예’는 여전히 아름답다.몇 해 전부터 문학계에서 등단 제도의 불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때마다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등단 제도라는 상징성을 지닌 신춘문예의 폐지가 논의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중앙일보는 정말로 신춘문예를 폐지했다. 앞으로 등단 제도 개혁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지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피와 땀과 눈물어린 꿈이라면 신춘문예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꿈을 이룬 2021년 당선자들 축하합니다. 정말 부러워요!

2021-01-25

경계에 선 사람들

무대에 선 한 가수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신호등이 바뀔 때 빨간색과 초록색 불빛 사이의 노란 불빛이 3초간 빛나는 모습을 보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빛내는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 학력이나 소속사 대신 ‘63호 가수’라고 소개했다.JTBC에서 방송되는 ‘싱어게인’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무명 가수들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무명가수를 대상으로 출연자의 정보나 배경을 배제한 채, 익명성을 부여하여 출연자의 무대만을 조명한다.30호 가수는 자신을 ‘배 아픈 가수’라며 소개한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재능이며 자신을 전형적인 실력 없는 사람임을 덧붙인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기에 경계를 서성이고 있는 사람이라 칭하며 언뜻 불안감을 내비치지만, 조명이 꺼지고 노래가 시작되면 그간 숨겨 왔던 내밀한 경계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의 노래는 지나치게 감정이 고조되어 어색하고 불안정하지만 반면 그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이고 새로운 무대를 보여준다.연이은 실패와 소외 속에서 꿈을 부르는 간절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이해의 시도와 용기와 강인함을 준다. 다시 한 번 무대를 갖게 된 그들의 노래는 열렬했고 자유로워 보였다. 실패와 흠으로 꾸준히 엮었을 경계는 예리하면서도 단단한 테두리가 되어 보였고, 완전함보다는 온전함에 가까웠다.윤여진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실험적이고 독보적인 물결을 일으킨 존재는 자신의 불안정함을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아 새롭게 탄생한다. 63호와 30호 가수는 심사위원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놀라운 무대를 보여주었다. 63호 가수는 투박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음색과 연주로 방송 첫 화 최고의 1분 시청률을 기록했다.30호 가수는 이효리의 댄스곡인 ‘치티치티뱅뱅’을 새로운 록 장르로 재해석하여 ‘장르가 30호’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명곡을 그의 색깔을 입혀 재해석해 30년 전 서태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렸다는 심사위원의 극찬이 이어지기도 했다.그들이 노래라는 경계를 서성이고 확장하는 것처럼 나 또한 다양한 경계를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무수한 경계도 있고, 때에 따라 달리 부르는 이름의 경계, 무지에서 비롯되는 부끄러움의 경계, 읽기와 쓰기와 사랑으로부터 빚어지는 경계도 있다.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할 때면 하루 중 불쾌한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늘 사람으로 가득 찬 퇴근길 지하철에선 어쩌다 부딪친 사람에게,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이에게 인상을 찌푸리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 정류장 앞 오밀조밀 만들어둔 눈사람을 보았을 때나 일몰을 구경하던 이와 눈이 마주칠 때에 서로의 연한 경계가 드러나듯, 잠시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경계는 사물이나 기준을 나누는 한계가 될 수도 있고, 지역을 구분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경계하여 지키는 것이 있고, 반대로 확장하여 새로운 세계와 자아를 발견하는 경계도 있다. 불교에서는 경계를 인과의 이치에 따라 스스로 받는 과보라 칭한다. 다시 주어진 무대를 묵묵히 그리며, 살아가며, 꿈과 현실로 행하는 이들을 보며 내게 주어진 약간의 운과 불운을 생각한다. 무엇을 경계 안에 두느냐에 따라 경계는 단단한 테두리가 되기도, 철조망이 되기도, 화단이 되기도, 무성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게 주어진 운에 가까워지며 조금 더 명징해질 것이다.

2021-01-25

與圈 ‘검찰 무력화’ 작전, 제2라운드 시작(?)

지난 연말연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무력화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귀결된 뒤 여권에서 공언하던 제도적 검찰개혁이 ‘국가수사청 신설’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는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에 남은 6대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을 신설될 기구로 이관하기로 방향을 잡은 모습이다. 검찰에 일부 기소권만 남기고 모든 수사권을 제거하겠다는 이 움직임은 ‘검찰 무력화’ 제2라운드가 시작됐음을 뜻한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출범으로 3급 이상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는 공수처가 담당하게 됐다. 검찰에 남긴 6대 범죄를 신설이 예고된 ‘국가수사청’에 넘기고, 나머지 범죄는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담당하도록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이 마지막으로 쥐고 있는 수사권까지 사실상 모두 타 기관으로 넘어가게 된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수처 출범으로 검찰 권력 분산과 권력기관 개혁을 바라는 국민 염원에 한 발짝 다가갔다”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속 가능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허영 대변인도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 등 잘못된 관행을 끊어내고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고 검찰을 압박했다.그러잖아도 민주당·정의당·열린민주당·기본소득당 국회의원 107명이 이른바 ‘사법 농단’에 연루된 임성근·이동근 부장판사 탄핵 소추를 제안한 일에 대해 걱정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또 김진욱 공수처장이 자신의 차장 제청권과 관련해 ‘복수 제청’ 가능성을 언급해 독립성 의지에 새로운 의문이 일고 있는 판이다.집권 여당의 노골적인 ‘검찰 무력화’ 움직임에는 여러 가지 우려가 따라붙는다. ‘수사권 분산’ 같은 중대한 제도변화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민주당의 접근은 아무리 봐도 졸속이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검찰의 수사를 어떻게 해서든지 무력화하기 위한 불순한 책략을 ‘검찰개혁’으로 포장해내는 것이라면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승자독식’의 꿀맛에 취해 국회를 통법부(通法府)로 전락시키는 비극은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2021-01-25

포항 인구 늘리기, 단발성 캠페인 그쳐선 안돼

포항시가 인구 50만명 선 지키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포항시 인구는 50만2천916명으로 한해동안 4천109명이 줄어들었다. 현재의 추세로 본다면 올 연말이면 포항시 인구는 50만명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지난해 10월부터 우리나라 인구는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인구의 데드크로스 현상을 시작했다. 인구 감소는 포항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의 문제로 부각돼 있다.이런 인구 감소에 자극받아 전국의 자치단체들은 새해 들자마자 인구 유입을 위한 출산 장려금 지급 등 각종 아이디어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지자체의 고육지책이 눈물겨울 정도다. 포항시도 이런 범주 안을 벗어나지 못한다.특히 포항시는 인구 50만명이 무너지면 경북도내 제1도시로서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행정적 불이익도 많다. 현재 비자치구인 2개 구청이 없어지며 행정조직이 축소되고 지방재정도 감소돼야 한다.그러나 포항시가 현재 벌이고 있는 인구 유입을 위한 각종 캠페인성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자치단체마다 이미 포항시 수준의 선심 정책을 다 내놓고 있어 지자체간 제살깎아먹기가 반복될 뿐이라는 것이다.포항시는 주소이전 지원금 30만원 지급과 포항사랑 주소갖기운동 등을 펼치고 있지만 일부 지자체가 출산장려금 1억원을 내건 것과 비교하면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다.포항시의 인구감소는 내용적으로 살펴보면 자연감소(650명)보다 사회적 감소(3천459명) 요인이 훨씬 크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15∼39세 청년층의 인구 유출이 2만명에 달해 결국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전국적 인구 감소 추세에도 수도권에 집중되는 인구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겠으나 기업유치나 좋은 일자리 창출은 지자체의 노력이 수반돼야 할 문제다.2018년 상주시가 인구 10만명 유지를 위해 공무원이 상복차림으로 출근하는 충격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단발성 행사로는 인구 유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보육과 교육 등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장기적 안목의 인구 유입책이 있어야 한다.

2021-01-25

UAM(도심항공 모빌리티)

UAM은 Urban Air Mobility의 줄임말로 도심항공 모빌리티란 뜻이다. 즉, 드론, 로봇택시, 플라잉카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으며, 하늘을 떠다니는 운송수단들을 가리킨다.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궁극의 교통수단이지만 머지않아 현실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당초 취미용 드론으로 발전되기 시작한 도심항공 모빌리티 기술은 점차 적재하중을 높여 택배용과 화물용 배달서비스로 진화했고, 안전성과 효율성이 검증되면 일부 노선에 한정된 고가의 이동수단으로 승객용 도심항공 모빌리티로 시작, 점차 택시요금 수준까지 요금이 내려가면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사람과 건물, 자동차가 뒤섞인 복잡한 2차원 공간에서 더이상 효율을 높이기 어려워 3차원 공간을 이용하는 UAM은 메가시티 교통문제를 해결할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수직이착륙 형태의 UAM은 활주로가 필요없고, 최소한의 이·착륙공간만 있으면 충분히 비행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현재 주로 취미와 영상용 소형 드론은 가성비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국이 앞서 있으며, 최첨단 기능 장착 및 적재하중 높은 고가 군용드론은 미국, 유럽, 이스라엘이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엔진, 모터의 회전력, 프로펠러 비틀림각에 의한 양력, 앞으로 빠르게 나가는 추진력에 기반하는 산업의 특성상 세계 각국의 전통 항공제작사부터 전기차 기술을 축적한 자동차 업체까지 UAM사업에 뛰어들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그룹의 미래 방향성으로 자동차 50%, 도심항공모빌리티(UAM) 30%, 로보틱스 20%를 제시해 관심을 끌고있다. 미래의 대중교통수단이 될 UAM, 인류에게 또 하나의 산업혁명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를 심어주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5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전략과 한미동맹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바이든(J. Biden)은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팍스 아메리카나(Pax-Americana)’의 부활이다. 동맹과 협력하여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북한의 비핵화 전략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우리의 외교가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트럼프(D. Trump)와 바이든의 외교안보전략은 그 기조(基調)가 다르다. 트럼프의 외교가 동맹을 고려하지 않는 ‘미국우선주의와 거래주의’였다면, 바이든은 동맹을 중시하면서 ‘다자주의와 국제협력주의’를 역설한다. 국제협상에 있어서도 트럼프는 정상회담을 통해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탑다운(top-down)’방식이었지만, 바이든은 실무협상을 토대로 한 정상외교, 즉 ‘바텀업(bottom-up)’방식을 선호한다.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외교안보전략은 한미동맹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우선 미·중 패권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반중(反中)전선 참여를 더욱 압박할 것이다. 바이든은 대선 승리 후 문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미동맹은 인도·태평양 안보와 경제의 핵심축(linchpin)”이라고 했다. 이는 ‘쿼드(Quad)’와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한국의 참여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게다가 바이든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민주주의 가치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때문에 문재인정부가 추구해 온 미·중 균형외교, 즉 ‘전략적 모호성’의 유지와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한편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도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친다. 바이든은 “김정은이 핵능력 축소에 동의할 경우에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협상과 압박이 병행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좋은 친구’라고 했지만, 바이든은 그를 ‘폭력배(thug)’라고 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정상회담 쇼’가 완전히 실패했으며 북한의 핵 능력만 강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은 북한이 핵 폐기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는 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북한이 신형 ICBM과 SLBM의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함으로써 바이든의 대북정책은 ‘대화와 협상’보다는 ‘제재와 압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때문에 싱가포르선언을 토대로 또 다시 북미대화를 주선하려는 정부의 중재외교는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이처럼 바이든 시대의 한미동맹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동맹은 ‘가치와 위협’에 대해 인식을 같이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외교적 수사로서의 동맹’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동맹’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현실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김정은이 제8차 당 대회에서 지시한 ‘전술핵’ 개발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겨냥한 것이다. 비핵국가인 한국이 북핵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미동맹이다. 미·중 균형외교와 북·미 중재외교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주의적 동맹외교를 시급히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2021-01-25

해양기후변화와 울릉도(독도)의 대응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겨울 울릉도는 고립의 섬으로 변한다. 겨울철에는 잦은 해양기상악화로 육지로 오고 가는 뱃길의 통제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10년 동안(2011~2020년) 겨울철(12~2월) 한 달 평균 결항 일은 15.4일이었다.한 달에 절반 넘게 결항한 것이다. 울릉도를 오고 가는 400~600t급 미만의 소형 여객선만으로 겨울 파도를 이기기에는 너무 벅차다. 설령 여객선이 운항하더라도 뱃멀미로 승객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울릉도 항로상에 발령된 기상청 풍랑특보는 지난 20년(2001~2020년) 동안 연평균 84.3일이 발령됐다. 이런 기상악화에 따라 울릉도 항로는 연간 100일 내외의 통제일을 보인다.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근 10년(2011~2020년) 들어 울릉도 항로상 풍랑특보는 연간 89.7일로 이전 10년에 79.0일에 비해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증가 추세는 최근의 겨울철 기상악화 증가와 관련된다.연구자들은 동해의 겨울철 기상과 관련된 시베리아 고기압 세기에 영향을 미치는 북극진동의 변화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기후변화와 관련된 간접적 영향인 셈이다.기후변화와 관련된 영향은 울릉도(독도)의 바다 표층 수온 변화에서 더 뚜렷이 나타난다. 울릉도(독도)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은 지난 100년간 1.3℃ 증가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우리나라 주변 수역 중 가장 높은 표층 수온 증가율이었다.바다의 여름이랄 수 있는 수온 20℃ 이상의 연간 관측일 수로 보면 더욱 분명히 수온 증가가 체감된다. 울릉도 연안에서 지난 1966년부터 관측된 표층 수온 자료에 따르면 수온 20℃ 이상의 연간 관측일 수는 1960년대 약 70여 일에서 최근 120여 일로 약 50일가량 증가했다.바다의 여름이 두 달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특히 25℃ 이상의 연간 고수온일 수는 2010년대 들어 20일 이상으로 고수온 일수가 이전에 비해 매우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표층 수온 10℃ 미만일 수는 과거에 비해 감소 추세에 있다. 바다의 더운 여름과 따뜻한 겨울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이러한 바다의 아열대화 증가에 따라 울릉도(독도) 연안의 아열대종 출현 비율이 증가하거나 출현 시기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지난 12월 울릉도 연안 조사에서 열대어종인 파랑돔의 서식을 확인한 바도 있다.해양기후변화는 울릉도(독도) 주변해역의 오징어 어획량 및 어획시기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상 동해에서 오징어 주 어장은 동해 남쪽에서 북상하는 따뜻한 해류와 동해 북쪽에서 남하하는 차가운 해류가 만나는 수온 전선역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두 해류가 만나는 수온 전선역에서 수렴류에 의한 오징어의 먹이 생물인 플랑크톤이 축적된 이유로 고려되고 있다. 최근 울릉도 어획량은 1990년대 후반과 비교하면 1/10 수준으로 매우 감소하고 있다.예전에는 수온 전선역이 울릉도 주변에 형성돼 울릉도 주변이 오징어의 좋은 어장이었다면, 해양기후변화에 따라 동해 남쪽에서 따뜻한 해류가 강하게 확장하면서 수온 전선역이 동해 북한 수역으로 점차 이동, 상대적으로 울릉도 주변은 예년과 비교하면 오징어 어장 형성의 환경적 조건이 약화하고 있는 것이다.늦가을 혹은 초겨울이 되면서 동해 남쪽에서의 따뜻한 해류는 약화하고 동해 북쪽에서의 차가운 해류는 강화되면서 다시 울릉도 주변에 오징어 어장이 형성되지만,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해상기상 악화로 출어 일수가 감소, 자연스럽게 어획량 또한 감소하고 있다.2004년부터 북중어업협정에 따라 중국어선의 동해 북한수역 오징어 어선 진출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수온 전선역이 예년에 비해 동해 북한 수역으로 북상한 이유와도 절대 무관치 않다.해양기후변화로 겨울철을 중심으로 한 울릉도 항로상 풍랑특보 일수 증가, 표층수온의 아열대화, 오징어 어장의 변화와 어획시기의 변화 등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고 이에 따라 능동적 대처가 필요하다.울릉도 항로상 풍랑특보 일수 증가에 대비하려면 울릉도 항로상 대형 여객선의 취항이 필수적이다. 섬 주민에게 육지와의 교통 환경 개선은 최고의 복지이다. 최근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서 8천t급 이상의 대형 여객선 취항을 위한 여객선 공모가 진행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안정적 운항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여름철 바다와 관련 관광이 증가 추세에 있고 이와 관련해 해양레저관광의 다변화를 위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단순히 보는 울릉도에서 체험하는 울릉도로 적극적 모색해야 한다. 오징어 어장의 변화와 관련해 남북해양수산협력의 적극적 모색과 중국어선의 북한 수역입어에 따른 우리 어민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해양기후변화의 시대, 울릉도(독도)의 다양한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 독도를 부속 섬으로 둔 울릉도와 대한민국 섬이 보다 가고 싶은 섬, 살고 싶은 섬, 지속가능한 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2021-01-24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는 무엇인가?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1981년 대구시와 경상북도로 행정이 분리된 이후 인구는 정체, 지방소멸 위험이 심각하게 진행 중이다. 2018년 기준으로 대구·경북 인구는 전국 10% 밑으로 하락했고 경제적으로는 대구·경북 지역 내 총 생산이 전국 비중 1985년 이래 1/4로 하락했으며,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993년 이래 최하위, 경북은 1993년 5위, 2019년 6위를 했으나 2014년 이후 빠르게 하락 중이다.대구경북행정통합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대구경북행정통합이나 공론화에 대한 정보가 없어 궁금해 하고 있다. 행정통합은 수도권집중, 지방소멸, 경제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해결 방안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를 하나로 합쳐 더 큰 자치권과 자원을 가지는 대구경북특별자치정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대구경북행정통합 추진과 공론화는 다른 개념이다. 현재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는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위원회가 아니고 행정통합에 대한 시·도민 의견수렴을 통한 공론조사를 하고 이 내용을 시·도지사에게 전달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일각에서 위원회가 추진위원회로 오해도 하고 있지만, 이는 공론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보이며 앞으로 공론화가 진행되면서 시·도민 의견수렴을 활발히 하게 되면 오해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공론조사는 행정통합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는 이해관계자, 전문가, 시·도민 등의 다양한 의견을 토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수렴해 공론을 형성하는 것으로, 여론조사보다는 다양한 정보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여론 수렴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1988년 미국의 제임스 피시킨 미국스탠퍼드대 교수가 제안한 방법론으로 1994년 영국을 시초해 현재 세계 각국에서 실시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8.31 부동산 정책 공론조사, 2013년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 위원회, 2017년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론화위원회, 2018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를 들 수 있다. 대구·경북에서도 대구시신청사건립공론화위원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전 숙의형 시민의견 조사위원회를 통해 공론조사에 대한 경험을 한바 있다.대구경북행정통합은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될 계획이라고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시·도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론과정을 수행하는 시·도민 공론형성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행정통합에 대한 시도민의 최종의견을 묻기 위해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통합된 대구·경북의 지위, 특례 등이 포함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결국 대구경북행정통합은 특정인들의 결정이 아닌 시·도민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코로나19로 인해 시·도민 의견수렴에 한계가 있지만,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비대면 온라인 시·도민 열린 토론회가 진행됐고 이 외에도 숙의공론화조사, 여론조사, 빅데이터 조사, 홈페이지,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의견수렴을 진행할 계획임으로 성과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가 행정이 통합되면 대구경북광역특별시, 대구경북광역자치도 등 행정단위간의 상하문제로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현재는 특별지방정부라는 명칭을 쓰고 있지만, 국내에 이런 명칭을 쓰는 광역지자체는 없다. 광역단위의 지자체가 통합한 예는 국내에는 없고 해외에도 드문 사례여서 어려운 문제이지만 대구·경북이 하나가 되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형태나 명칭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경제적 파급효과나 행정효율성, 지역균형발전, 청사 위치 등 다양한 쟁점들이 논의 중이지만 결국은 시·도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설정이 중요하다. 행정통합 이후에도 일자리가 없고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행정통합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통합된 대구·경북은 인구 510만과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국제공항과 항만을 가진 지자체가 된다. 이와 함께 구미, 포항 등의 산업과 경주, 안동 등 문화·관광 콘텐츠의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만 가지고는 시·도민들에게 통합된 대구·경북 경쟁력을 이야기하기엔 많이 부족함이 많다.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비전과 정책목표가 설정되고, 시·도민들의 의견수렴이 충분히 반영되는 행정통합 공론조사가 되어야 좋은 결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공론조사에 대한 대표성, 평등성, 공정성 등의 비판적 견해가 있지만, 시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을 하는 주민투표과정이 있기 때문에 공론조사의 한계도 극복되며 대구·경북 전체 시도민의 결정이 된다.앞으로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의 경험은 우리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다른 광역지자체에서도 행정통합의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고 대구경북행정통합의 과정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행정통합에 대한 대구·경북 시·도민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의견 제시를 통한 참여가 필요하다.

2021-01-24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

윤영대수필가좋은 의도로 내놓은 의견이나 정책이 예상 밖의 나쁜 결과를 초래할 때 흔히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고 비난을 받는다. 즉 바로 눈앞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에 예상되는 결과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검토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것이다. 그 정책의 수혜자라고 생각되는 국민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한 것, 즉 이익을 둘러싼 숨겨진 계산법을 잘 모른 탓이다. 또 자연에 관한 일이라면 그 환경을 끌고 가는 자연의 법칙을 간과한 결과이다. 이러한 근시안적 정책은 결국은 본말이 전도되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이러한 예로는 ‘코브라 효과(cobra effect)’라는 것이 있다. 인도의 델리에서 숲의 코브라가 많아 주민들의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코브라를 잡아 오면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처음에는 줄어들다가 이상하게도 자꾸 보상금을 받아가는 일이 있어 조사해 보니 사육농장이 있었다고 한다. 즉 쉽게 돈을 벌기 위해 키운 것이다. 이에 보상금 제도를 폐지했더니 주민들이 야산에 버려서 다시 코브라가 증식했다는 사실이다.또 베트남 하노이의 ‘들쥐꼬리 현상금’도 같다. 하수구 들쥐를 박멸하기 위해 쥐꼬리를 가져오면 현상금을 주었는데 하수구의 들쥐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꼬리만 자르고 그냥 방사했다는 것인데 다시 새끼를 낳아 번식해야만 또 꼬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이러한 측면으로 ‘풍선효과’도 들 수 있겠다. 바람 넣은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방향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풍선을 잘 못 눌러 창피를 당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다.중국 마오쩌뚱의 참새 박멸 지시다. 스촨성 방문 때, 참새가 먹는 곡식량이 어마어마하다는 말을 듣고 없애라고 지시하자 국민들이 열심히 잡아 죽였는데 참새가 줄어들자 오히려 그 먹이였던 메뚜기가 창궐하여 들판을 황폐시켜 국민 절반이 굶어 죽었다는 사건이 있다. 또 프랑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후 국민들이 우유를 많이 먹을 수 있도록 우유값을 반값으로 내렸더니 낙농업자들이 생산을 포기하고 소를 도살하여 고기로 팔았다. 사료값도 안된다는 말을 듣고 사료값을 또 내리니 이번에는 풀들을 모두 태워버려 소를 못 키우고 오히려 우유값이 폭등했다는 역사가 있다.이러한 즉흥적인 정책은 자연과 인간과의 고리와 시장경제를 인식하지 못한 강제적 졸속 행정이다. 숲을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숲이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국민의 삶과 자연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것은 좋은 발상이었으나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간들의 윤리와 가치관이 해이해지고 사회갈등이 심화된 경우를 많이 보고 듣는다.우리도 풍선을 잘못 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그럴싸한 말을 바탕으로 택한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는 오히려 소상공인들의 몰락으로 저임금, 알바 등의 일자리가 줄었고 서민들을 위한 부동산 정책 풍선도 스무 번도 더 눌렀지만 오히려 집값을 폭등시켰다.단순한 인위적인 정책으로 사회의 근본적인 힘을 제재하기는 불가능하다. 나무를 가꾸려면 나무는 물론 그 숲을 유지하고 있는 흙과 물과 바람도 깊이 살펴야 한다.

2021-01-24

국민통합이 필요하다

박창원수필가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세운 현 정부 들어서 전직 두 대통령이 구속됐고, 그들은 아직도 옥살이를 하고 있다. 힘센 여당이 각종 개혁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국회의 생명인 ‘협상’은 실종돼 버렸다. 지금도 여야는 이런 저런 정치 이슈로 피 튀기는 싸움질을 하고 있으니, 지지하는 성향에 따라 국민도 편이 갈려 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이 갈등은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치명적이다. 사사건건 진영 간 싸움으로 번져 버리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아무리 논리가 옳더라도 그 주장을 하는 이가 우군이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적의를 드러낸다.보복은 보복을 낳는다고, 다음 선거에서 정권이 바뀌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벌써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어떻게 정치보복이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국민 중 최소 30%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부정하진 못한다.이대로는 안 된다. 힘이 센 거대 여당이라면 자기편의 정치적 목표 달성에만 골몰해서는 안 된다. 반대편에 있는 30%의 목소리를 외면하고서는, 이들을 적으로 돌려놓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개혁도 기대하기 어렵다. 상대 당을 국민이 부여한 정치 파트너로 인식하고 협상을 복원해야 한다. 때로는 통 큰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한다.새해 벽두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두고 우리 사회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여당 대표가 먼저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꺼냈고, 여당 내에서, 야당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결국 사면권자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아직 말할 때는 아니며, 적절한 시기 되면 더 깊은 고민을 통해 결정할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하고 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웠다.여당 대표는 여당 대표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셈법이 있겠지만, 꼬여 가는 정국을 푸는 해법으로서 사면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국민통합을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에서 초췌한 얼굴에 수의를 입은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국민의 상당수는 그에게 내려진 죄의 경중을 떠나 몹시 안타까워 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앞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기구로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설치했다가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아무런 실적도 남기지 못한 채 해산되고 만 적이 있다.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실패한 그 위원회를 다시 설치하자는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민통합의 중요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념으로, 지역으로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새로운 가치로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가 아닌가. 대통령은 모름지기 갈등의 중재자여야 하기 때문이다.2021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이즈음에서 우리 정치는 숨을 한번 고를 필요가 있다.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타협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편안해진다.

2021-01-24

바이든의 메시지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다. 인구의 60% 정도가 백인이지만 히스패닉, 흑인,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인 분포도 40%에 달한다. 미국 역사를 말하면서 인종차별의 역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남북전쟁은 그 대표적 사례다.남북전쟁 이후 인종 문제는 표면적으로 많이 개선되기도 했지만 미국내는 여전히 인종차별의 사회 문제가 쉼없이 발생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인 우월주의 정책으로 인종차별의 문제를 정치 쟁점화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재선에 실패했다. 인종차별의 문제는 아직도 미국내 남은 뿌리깊은 숙제다.미국의 18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이라는 희생을 감수하고 흑인을 노예에서 해방시켰다. 그는 1863년 1월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하면서 “내 이름이 역사에 남는다면 그것은 이 조치 때문일 것”이라 말했다. 링컨은 건국 정신을 지키려다 암살이라는 불운 겪었으나 그가 서명한 노예해방선언이 있은지 140여년 지난 2008년 미국에서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버락 오바마)이 탄생했다.미국 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은 취임사에서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메시지로 ‘통합(unit)을 내세웠다. 그는 취임사에서 통합을 11번, 우리(we)를 106번 언급했다고 한다. “미국의 통합에 영혼을 끌어모아 하나로 뭉치겠다”고 말했다. 인종과 종교, 정치적 성향에서 서로 다른 사람끼리 배척하는 미국 사회의 분열상을 통합으로 이끌겠다는 뜻이다.민주주의가 다양성을 장점으로 하지만 다양성을 통합으로 이끌 때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 갈등과 분열로 갈라진 지금의 우리 정치도 통합의 정신이 절실하다. 우리 정치권이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1-24

도 넘은 가덕도 신공항, TK는 속수무책?

더불어민주당의 가덕도 신공항 건설 추진이 도를 넘었다. 가덕도 신공항 띄우기로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 민심잡기에 나선 여당의 전략이 최근 부산시민 민심 변화로 이어지면서 여당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추진은 2월 중 국회 통과를 노골화하고 있다.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지난 22일 부산 가덕도 현장을 방문하고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의 미래다”고 띄웠고, 당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의 2월 중 단독처리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반면에 4월 보선을 앞둔 야당인 국민의 힘 입장은 어정쩡하다. 지도부의 입장이 다르고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의원 입장이 서로 다르다. 지역의 한 의원의 말대로 ”의석수에서 절대적으로 밀리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말 그대로다. 여당은 이런 분위기를 적절히 활용,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강력히 밀어붙이니 최근 부산 민심도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빚어진 보궐선거를 맞아야 하는 여당으로는 고무적이 아닐 수 없다. 바둑으로 치면 여당은 꽃놀이 패를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으로서는 불리할 요소가 없다. 야당은 골칫거리만 쌓이는 꼴이다.그러나 이런 상황이지만 TK의원의 입장은 명확해야 한다. 김해공항 확장안은 5년전 부울경과 대구·경북 영남권 5개 광역단체장이 모두 합의한 결정이다. 정부가 프랑스 파리공단 엔지니어링(ADPi)에 의뢰해 내린 최종 결론이다. 국책사업이 이런 식으로 뒤집어 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10조원 규모의 국책사업을 예타도 없이 진행하겠다고 한다. 김해공항 확장안을 백지화하는 절차적 부당성을 집요하면서 논리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선거를 앞두고 무리하게 추진하는 여당의 속셈을 뻔히 알면서 손쓸 게 없다는 식으로 수수방관하는 태도는 안 된다.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지지 않겠다면 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TK의 입장을 내놓고 대응해야 한다,대구시민이 부산의 발전을 막을 이유가 없다. 국책사업의 절차적 문제와 가덕도 신공항 건설로 영남권 여론을 분열시키고 이를 선거용으로 전락시킨 데 대한 명쾌한 TK의 입장을 정치권이 대변해야 한다. 몇 차례 걸친 TK의원의 대책회의가 밋밋하게 끝난 것은 매우 실망이다.

2021-01-24

국민의힘, 또 ‘실패의 마법’에 걸렸나

안재휘 논설위원‘지는 것도 습관’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상대방에게 거듭 지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습관성 패배’를 의심해봐야 한다. 패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붙는다. 습관적으로 패배하는 자들은 대개 경우 ‘남 탓’이나 ‘핑계’를 달고 산다. 패배하는 습관의 결정적 이유는 뜻밖으로 간단하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번번이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오는 4월 재보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또다시 ‘실패의 마법’에 걸려든 징조가 농후하다. 서울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밑도 끝도 없는 ‘단일화’ 논쟁 속에 기류가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다. 다 이긴 줄 알고 화려한 폭죽 준비에 여념이 없던 부산 선거판마저 정당지지율에서 순식간에 역전현상이 나타났다. 야권 후보들끼리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네거티브 선거전이 유권자들의 체머리를 흔들도록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집권당의 정책실패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하면서 야당이 다소 유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보선은 철저하게 조직력 싸움이다. 서울에선 구청장 25명 중 여당이 24명, 국회의원 41명 중 여당이 35명이다. 부산지역 전체 구청장 16명 중 13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여론과는 상관없이,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도 유리한 구석이 없다.국민의힘은 지난해 총선참패의 원인을 잊은 채 여전히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여론이 기울었으니 ‘누워서 떡 먹기’일 거라는 오판이 똑같이 지배한다. 그래서 그런지 도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무능한 민주당은 더 밀어주기 싫다. 그런데 국민의힘을 선택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하겠다”는 게 민심의 요체다.듣기 불편한 예감이겠지만, 이렇게 가면 더불어민주당이 또 크게 이긴다. 말썽이 나거나 말거나 민주당은 뭐라도 자꾸만 내놓는다. ‘가덕도 신공항’을 승부수로 띄우고 부울경 민심을 들쑤시는 전략은 대성공이다. 당 대표와 대통령이 짜고 친, ‘전 대통령 사면’ 논란도 영남 갈라치기를 노린 독약 묻은 먹잇감이다. 최대 이슈인 코로나19 대책을 놓고도 도무지 솔깃한 ‘대책’ 하나 선도하지 못하는 국민의힘 이슈파이팅 점수는 빵점이다.제1야당의 꼬리를 암팡지게 물고 통째로 삼키려는 안철수의 야망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국민의힘도 놀랄 정도로 과감한 ‘중도개혁’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꼴통보수’의 관성으로부터 확실하게 탈출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 못지않은 영남지역 중흥 비전을 당 차원에서 내놓고 설득해야 한다. 국민이 진정 원하는 감동적인 정책들을 선도적으로 내놓지 않으면 무조건 실패한다.여당 물어뜯기만으로는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국민의힘을 왜 찍어야 하지?”하는 유권자들의 근원적인 질문에 만족할만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수구꼴통’의 악취에 자꾸만 발목이 잡히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 집권당에 대한 비난에만 목을 매는 작금의 전략으로는 어림도 없다. ‘실패의 마법’을 끊어낼 극적인 반전이 필요하다.

2021-01-24

4대강 보 해체… 전형적인 ‘실책 알박기’ 행태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물관리위)가 금강·영산강의 5개 보(洑)를 해체 또는 상시 개방하기로 한 결정이 또다시 ‘졸속’ 논란을 부르고 있다. 이번 결정은 단지 ‘대선공약’이었다는 이유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문재인 정권의 비이성적 행태의 연장 선상에 있다. ‘4대강 보 해체’ 등의 결정은 경제성을 조작해 운용을 중단시켜 막대한 국익을 훼손한 월성원전 1호기 사태와 똑 닮았다. 전형적인 ‘실책(失策) 알박기’ 횡포다. 물관리위는 금강 세종보와 영산강 죽산보는 전면 해체, 금강 공주보는 상부 교량인 공도교를 유지하는 선에서 부분 해체하고 금강 백제보와 영산강 승촌보는 상시 개방하기로 심의 의결했다. 이 결정은 어디로 보아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지키기 위해 결론을 정해놓고 억지로 꿰맞춘 것으로 읽힌다.정부가 제시한 보 해체 결정의 근거는 2019년 2월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 제시안 등이다. 4대강 보 해체 시 수질안전 효과로 인해 867억 원 상당의 이익이 생긴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그러나 보를 그대로 놔둔 채 개방했을 때의 편익은 따로 계산하지 않았다. 해체를 전제로 한 평가만을 근거로 한 우매한 의사 결정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과학을 도외시하고 환경 포퓰리즘에 취해 조작적 접근으로 국익을 허무는 일은 월성원전 1호기를 멈춰 세운 사례와 많이 닮아있다. 하나에 1천억 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투입해 건설한 멀쩡한 보를 다시 수백억 원씩의 세금을 들여서 해체하기로 결정하는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다루는 것은 그야말로 정신 나간 짓이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탈인 것이다.집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정권이 정책실패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는 일은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정직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지방정부와 지역민들의 반대, 과학자들의 비판에 눈과 귀를 닫고 다음 정권을 골치 아프게 만들기 위한 ‘알박기’ 결정을 남발하는 것은 나라에 두 번 세 번 죄를 짓는 일이다. 4대강 보는 중앙정부와 환경단체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비상식적인 행태는 즉각 중단하는 게 맞다.

2021-01-24

택중유화(澤中有火)로 울진 발전 위해 최선

전찬걸울진군수2020년 초에 시작된 코로나19는 한 해를 통째로 집어 삼키고 한 해의 문턱을 넘어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하지만 700여 공직자와 군민 모두는 한마음이 돼 청정 울진을 반드시 지켜 낼 것이다. 2021년 군정운영방향을 ‘군민과 함께 여는 미래 울진’으로 정해 완공된 대형 관광인프라와 체육시설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점하고자 한다.미래 울진의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의 3대 핵심전략은 미래 신산업 육성, 치유·힐링관광 기반조성, 스포츠·레저산업 활성화이다.이러한 핵심전략을 뒷받침하는 6대 역점시책을 추진하겠다. 먼저, 국가시책에 맞춘 울진형 뉴딜사업 개발과 해양을 중심으로 한 신성장산업을 통한 ‘미래 먹거리 창출 경제울진’을 건설하겠다. 기존의 전략자산인 경북해양과학연구단지와 지난해 개관한 ‘국립해양과학관’을 중심으로 ‘환동해 심해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수중글라이더 핵심장비 기술개발, 무인 선박산업 기반 조성사업 등을 추진해 해양 관련 신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 울진형 뉴딜 종합계획 용역을 통해 지역에 맞는 맞춤형 사업을 발굴하고, 해양관광진흥지구 지정 및 투자선도지구 지정을 통해 기업유치와 고용창출에 노력하겠다.둘째, 온천·숲·해양치유를 결합한 ‘머물고 싶은 힐링울진’을 완성 하겠다. 울진은 천혜의 자연과 대규모 관광인프라 및 풍부한 체육시설 확충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셋째, 따뜻하고 세심한 복지정책으로 ‘더불어 잘 사는 복지울진’을 만들어 가겠다. 저출생 고령화 사회 극복을 위해 공공산후 조리원 운영을 활성화하고 셋째아 출산장려금 증액과 출생축하기념품을 지원하겠다. 후포 어린이집 이전 신축과 공동육아나눔터 및 다함께돌봄센터를 확대 운영해 나가겠으며, 사회취약계층 생활민원 기동처리반 운영과 저소득층 맞춤형 싱크대 설치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 하겠다.넷째, 새로운 판로 확보와 시책추진으로 ‘풍요로움이 가득한 활력울진’을 만들어 가겠다. 축산경쟁력 확보를 위한 스마트축산 ICT한우단지조성 시범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행정절차를 마치고 올해에는 부지조성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대도시 바로마켓 직거래를 활성화하고 로컬푸드 지역농산물 직거래장터와 소비자 초청 도·농교류 직거래장터를 운영해 농업의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과 6차 산업 활성화에 힘쓰겠다. 농기계 임대사업을 확대하고 농촌인력지원단과 농작업기계화 영농지원단을 운영하여 고령화 인력 부족을 해소하겠다.다섯째, 재해위험지역 개선과 깨끗한 생활환경 조성으로 ‘안전하고 행복한 쾌적울진’을 만들겠다. 기후 변화에 따른 재해예방을 위해 울진, 월변, 평해, 후포지구에 추진중인 배수펌프시설 4개소에 대해조속히 사업을 추진하고 추곡교(호월), 구미교(행곡) 등 자연재해 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을 추진해 각종 재해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마지막으로, 군민과 함께하는 ‘소통행정, 현장군정’을 실천하겠다. 2021년은 친절운동 정착에 중점을 두고 상·하반기 베스트 친절공무원 선발 등을 통해 공직내부에서 친절문화 정착을 선도하겠으며, 친절 조형물, 7번 국도 빌보드 친절 홍보 등 경관마케팅을 활성화 하고 숙박, 음식점 등에 대한 친절 인센티브 제공 방안을 마련하여 친절분위기 확산과 정착에 노력하겠다.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길이 결코 어둡지 않은 것은 700여 공직자가 있고 5만 군민이 함께하기 때문이다.택중유화(澤中有火)라는 말이 있다. ‘화합하는 가운데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만들자’는 말이다. 새로운 시대, 울진 발전을 위해 군민과 군의회, 공직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하겠다. 저를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급변하는 시대에 긴장감을 가지고 군민의 공복으로서 약속했던 군민 모두의 행복과 지역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2021-01-24

나만의 낱말 사전

거리두기 하는 시기라 보드게임도 비대면으로 모였다. 줌이라는 앱을 누르니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오늘 함께 할 게임은 라온 확장 편, 내게 주어진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 낱말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던 것을 먼저 다 클리어 하면 승리한다.1분 안에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 60초. 두 번째로 내가 할 차례가 돌아올 때는 다른 사람이 만든 낱말과 내가 가진 자음 모음을 합쳐서 만들어야 하니 1분이 1초 같은 긴박감이 차올랐다. ㅂ이 두 개 보여서 얼른 ‘비바리’를 외치니, 그런 단어도 있냐고 세 명 모두 물어 본다. 한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고서야 넘어갔다. 고교, 교기, 코로나 같은 예전부터 사용하던 낱말들을 30대 그녀들은 처음 듣는다고 했다.‘고교얄개’라는 영화가 히트를 쳤고, ‘고교생 일기’라는 드라마가 하는 날에는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기도 했었는데 이들은 처음 듣나보다. 코로나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사용하던 낱말인데도 평소에 잘 쓰지 않아서인지 뜨악해했다. 새로운 낱말이라며 따로 적어두기까지 했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쓰는 말들도 함께 나이를 먹는구나 싶었다.동아리 회원이 비바리를 발견해서 신나하는 모습에 내 어린 시절의 낱말이 겹쳐졌다. 중1 어느 날, 책에서 ‘흐드러지다’란 표현을 처음 읽었다. 도라지꽃이 흐드러진 풍경을 묘사한 장면을 보고 그 새로운 낱말에 반했다. 그날 이후 흐드러지다를 써먹고 싶어서 친구와 수다 떨다가도, 일기장에도 마구 끼워 넣었다. 흐드러지다에 어울리는 문장을 만들어 연습장에 적어두었다가 아무 때나 꺼내 썼다.며칠 전 군위로 가족여행을 갔다. 연구실에만 박혀있던 큰아이가 달리는 차안에서 간만에 수다를 떨었다. 방을 옮기는 선배의 원룸을 함께 보러 갔다가 그전에 머물던 이가 두고 간 침대와 옷걸이 같은 가구가 있는 것을 보고 얼른 계약하라고 부추겼다고 했다. 듣고 있던 남편이 “침대 허른 거 아이가?” 큰아이는 킥킥대며 침대가 혓바닥도 아니고 헐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허른’이라는 말을 나는 값싼 침대로 들었는데 한 세대를 넘어가니 첨 듣는 낱말이 되어버렸다.김순희수필가도착해 겨울 산수유가 흐드러진 돌담길을 걸었다. 한밤마을이라고 찾아갔는데 밤나무는 눈에 띄지 않고 집집마다 빨간 산수유가 쪼글해진 채로 매달려있었다. 돌담을 따라 자연스럽게 돌아들어가니 현재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라 아무집이나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었다. 그 중 남천고택이 열려 있었다. 너른 마당에 들어가 인증샷을 찍었다. 가까이 있는 문화재 대율리 대청도 담장이 없으니 누구나 구경해도 되는 곳이었다.아들이 갑자기 군위가 무슨 뜻일까요 한다. 다니러가면서도 그 뜻까지 헤아리지 않았던 터라 검색찬스를 썼다. 군위(軍威), 군의 위력, 위신이라고 나온다. 방을 같이 쓰던 선배가 포항이 무슨 뜻이냐고 묻더라고 한다. 자신은 이과생이라 그런지 지명에 대해 풀어서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그 선배는 문과생이면서 교차 지원해 공대에 온 특이한 경우였다. 포구 포(浦)에 항구 항(港)이니 포구항구에서 왔구나 하며 풀이해주더란다. 사실 우리가 사는 포항(浦項)은 그 항구 항(港)이 아니라 항목 항(項)을 쓰는 줄 큰아이의 선배는 몰랐나 보다. 그래도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보는 젊은이가 있다니 기특했다.‘미식예찬’이란 책에서 작가는 당신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말해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 당신이 어떤 낱말을 사용하는지 적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얇은 낱말책의 신세대인지 백과사전만큼 두꺼운 책을 간직한 쉰세대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낱말 책이 저절로 두꺼워지진 않는다. 수집해서 입으로 되뇌고 또박또박 마음에 적어 넣어야 두툼해진다.아들이 사용하는 말과 동아리회원들이 알려주는 새 낱말도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주워 담는다. 순발력도 재치도 앞서는 신세대들과의 다음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쉰세대의 안간힘이다.

202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