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의 1920년대는 일제에 의해 강점되어 있던 비극적 시대이기도 했지만, 찬란한 연애의 시대이기도 했다. 국가를 잃고 식민지가 되었더라도 매 순간 슬퍼하기만 하고 있을 리야 없지 않은가. 또 그런 때야말로 사랑의 불꽃은 더욱 타오르기 마련이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할 마음이 생겨야 민족이든 국가든 사랑할 수 있을 테니, 청춘들이 꿈을 꾸지 못하고, 사랑을 하지 못하는 시대가 위험한 것이지, 국가의 상실과 사랑의 열망이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오백 년에 걸친 기나긴 조선이라는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왕이든, 국가든 어딘가 바깥에 삶의 중심을 두고 있던 세계가 종언을 고하고, 개인적인 욕망에 눈뜨기 시작했던 시기 역시 바로 이 무렵이다. 인간이 자기 생의 의미를 온전히 자기 내부에 두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류가 중세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인간 사회의 한 패러다임이 바뀌는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좋아한다는 것이야 인류가 생겨나면서부터 늘 마찬가지였겠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문제로 세상이 무너질 듯 고민하며 불길 같은 열정을 품는 것,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마저 서슴지 않는 것은 바로 근대적인 연애에서만 일어나는 특징적인 징후였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단지 한 젊은이의 번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던 것은 바로 중세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모두가 자기 안에 자기만의 신을 갖게 되어, 누군가를 욕망한다는 문제가 한 없이 불안하면서 또 한 없이 귀중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1920년대는 연애 베스트셀러의 시대이기도 했다. 글로 쓰인 타인이 겪었던 ‘연애’가 겨우 누군가가 겪은 연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마치 내가 겪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감정적 전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이 시기 무렵부터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 되었다. 연애는 인간의 감정이자, 감정의 분자를 전달하는 미디어가 되었던 것이다.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 속 B사감이 ‘연애소설’에 열광하듯, 기숙사 학생들에게 온 편지를 읽으면서 연애 감정을 고양시키고 있는 대목은 물론 기괴한 장면이지만, 이것만큼 당시의 시대를 잘 요약하고 있는 장면은 또 없을 것이다. 1926년 낭만적 사랑과 불륜이라는 현실 사이를 봉합하지 못하고 현해탄에서 정사(情死)했던 ‘사의 찬미’의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사례는 한 없이 비극적인 연애의 시대의 감정적 정점에 해당한다.
이 시대 가장 잘 ‘팔렸던’ 연애 작가는 바로 춘성 노자영이었다. 그가 1920년대 초에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펴낸 연애서간집 ‘사랑의 불꽃’은 당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오죽하면, 당시 세간에는 춘원(이광수)은 몰라도 춘성(노자영)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노자영의 연애서간집의 성공에 힘입어, 유사한 일련의 사랑 시리즈가 잇달아 나오게 될 정도로, 이 ‘사랑의 불꽃’은 ‘연애’를 모티브로 한 기획출판물의 시작점이 되었다. 비록 이 연애서간집으로 당시 불꽃과도 같은 사랑의 열정을 마주했던 노자영은 이후 창작에 전념하여 시집 ‘처녀의 화환’’, ‘내 혼이 불탈 때’로 이어졌지만, 그다지 문학사 내에는 기억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청춘의 사랑이 그러하듯 말이다. 노자영은 자신의 단편소설 ‘반항’의 시작에 다음과 같이 쓴다.
“이 작품은, 예술이라는 것보다도, 청춘의 핏덩어리요 눈물방울이다. 이로써 나는 나의 청춘의 한 시절을 종이 위에 옮겨, 나와 같이 울고 서러워하는 여러 젊은 사람들에게 이 글을 보낸다.”
/송민호(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