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강 연재소설 ‘Grasp reflex’
만식의 아내는 만식보다 여덟 살 어렸다.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만식을 만나 결혼했다. 만식이 사업을 하느라 집 밖을 맴도는 동안 그녀가 의지했던 사람은 필립의 형이었다. 필립의 형이 죽던 날 만식의 아내는 첫째 아이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내 아이가 아니야. 어미가 어찌 자식을 못 알아보겠어. 이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야. 필립아, 너의 형은 어디에 있는 거니?
퉁퉁 불은 첫째 아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식이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우리 아이 맞아.
그녀는 만식의 손을 뿌리치며 악을 썼다.
-아악! 이 새끼야! 네가 아이 얼굴을 어찌 알아? 집구석에 들어와 있던 날이 얼마나 된다고. 나만큼 아이를 알아? 이 살덩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 내 눈 앞에서 치워!
시신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시신은 꼼짝하지 않았다. 시신에서 배어 나온 비릿한 냄새만 흔들렸다.
-가지고 가, 저리 치우란 말이야. 내 아이 데려오라고.
사람들이 달려들어 시신에서 그녀를 떼어냈다. 필립이 그녀를 안았다.
-필립아, 너의 형은 어디에 간 거냐?
-어머니, 형 저기 있잖아요. 형 맞아요.
필립은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필립을 밀어내고 시신에 다가갔다. 검푸른 시신을 끌어안았다.
한바탕 소동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린 그녀는 필립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첫째 아이의 영정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어머니, 제가 있잖아요. 필립은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찾는 아이를 대신할 수 없다 생각했다.
그녀는 첫째 아이를 보내고 난 후 식욕도 의욕도 없이 지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가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는 다는 게 말이 되느냐,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다가도 한숨을 내쉬었다.
만식의 아내는 첫째 아이가 죽은 그곳에 가고 싶어 했다.
-우리 아이가 외롭지 않게 나도 그곳에서 죽을 수 있게 해줘요.
-당신마저 잃고 싶지 않으니 제발 그런 생각도, 그런 말도.
만식은 두 손으로 그녀의 차가운 손을 감쌌다. 좀처럼 따듯해지지 않았지만 놓지 않았다.
필립이 말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에 다녀오겠습니다. 고향 이곳저곳 다니시다 보면 어머니 마음도 조금 안정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듯 했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게 그녀를 막고 있던 만식이었다.
-그래, 그게 좋겠다. 나도 같이 가야겠다. 너의 엄마와 같이 있어야겠다.
만식과 그의 아내, 필립이 제주도에 갔다.
초저녁이었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제주시를 벗어나 산업도로로 접어들었다. 만식의 아내는 말없이 차창 밖을 보았다. 만식이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뭐를 그렇게 보고 있으신가?
만식의 아내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오름이 보이네요. 검은 오름. 검은 오름이 검은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어요. 검은 나무, 검은 풀들.
차창에 입김이 서렸다.
-하루에 한 가지씩만 구경합시다,
나머지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텔에 머무르자 했다. 만식의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집은 당신이 안내해야 해.
만식이 농을 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가 찾아 놓았습니다.
필립이 거들었지만 만식은 만식대로 만식의 아내는 아내대로 필립의 얼굴을 보기만 했다.
가까운 거리의 낮은 오름과 몇몇 유명한 해안가를 둘러보며 일주일을 보냈다. 만식의 아내는 가끔 웃기도 했고 갈치조림을 먹고 싶다 말하기도 했다. 제주로 내려오던 날 저녁보다 나아진 듯 보였다.
-내일부터 며칠 동안 뭍에 다녀오겠소. 가서 결재할 일도 있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네, 그러세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볼 일 충분히 보세요.
만식은 공항으로 향하는 차에 오르며 필립을 불렀다.
-엄마를 잘 살펴라. 아내마저 잃고 싶지 않구나. 자식을 잃은 것만으로도 이미 넘친다. 감당하기 힘들다.
만식이 육지로 간 날, 만식의 아내와 필립은 둘이서 저녁을 먹었다.
-네 원망을 많이 했어. 네 형을 두고 어찌 혼자 살아나올 수 있었는지, 왜 형을 구하지 못했는지. 너 또한 내 자식인데도 너를 원망했구나. 너 하나라도 살았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데 말이다. 알아. 그런데 아직도 그래. 너도, 내 마음도 잘 모르겠구나. 너를 보는 것이 여전히 편하지 않구나. 그날, 너의 형이 죽던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너는 무엇을 했던 거니? 네가 형을 대신 할 수 있다 생각한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