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정치인들은 ‘자연이 말해주는 거룩한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권력의 독선과 남용, 오만과 위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참된 정치인으로서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스승, 대자연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혜안(慧眼)이 필요하다.
겨울의 꽃, 동백은 ‘청렴과 절개’를 상징하는 ‘선비의 꽃’이다. 동백은 엄동설한(嚴冬雪寒)의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의지와 고투(苦鬪)가 청렴하고 절조 높은 선비를 닮았다. 동백은 눈보라치는 혹한 속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선비는 ‘견위수명(見危授命)’, 즉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더욱 위대하다. 대통령 후보들이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즉흥적으로 남발하는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수밖에 없다. 말과 행동, 겉과 속이 다른 정치꾼들은 동백의 지조와 절개를 배울 일이다.
동백꽃은 정치인들에게 ‘공생과 상생’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동백꽃은 조매화(鳥媒花)다. 벌과 나비가 없는 겨울에 새가 수분(受粉)을 도와준다. 동백꽃은 동박새가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에 꿀을 주고, 동박새는 동백꽃에게 수분을 도와 열매를 맺게 해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생인가? 바로 이 공생이 상생의 기반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들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한국정치에서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는 공생이 아니라 공멸의 길을 가고 있다. 서로가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고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진영의 보스가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분열과 공멸의 논리를 거부하고 통합과 공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동백꽃은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커다란 가르침을 준다. 동백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툭!’ 하고 송이채 떨어진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꽃잎이 시들어서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동백꽃은 가장 아름다운 날에 스스로 땅에 떨어져 황홀한 꽃길로 다시 피어나니 ‘사즉생(死卽生)’이다. 권력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어떤 시인의 말처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제 아무리 화려한 권력도 동백꽃이 낙화하듯이 한 순간에 지고 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은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한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스로 명예를 지키라’는 동백꽃의 가르침을 거역한 권력의 말로가 비극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동백꽃은 세 번 피는 꽃이다. 나무에서 활짝 핀 다음, 송이채 떨어진 꽃은 붉은 융단으로 다시 피어나고, 그 아름다움을 본 우리들의 가슴속에 또 다시 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인들도 동백꽃이 가르쳐주는 청렴과 절개, 아름다운 공생, 그리고 눈부신 낙화의 의미를 깨달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지도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