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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사회와 휴머니즘

등록일 2022-01-16 19:52 게재일 2022-01-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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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1월 4일 오전 6시쯤, 새해가 시작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용차 기사가 경사로에서 택배차가 미끄러지는 것을 막으려다 택배차와 주차된 차량 사이에 끼어서 사망한 것이다. 용차 기사는 택배 기사가 쉴 때 투입되는 재위탁 기사이다. 아내는 임신중이고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더 크게 안타까운 것은 택배 기사들은 소속 택배 회사와 노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용차 기사는 아르바이트 같은 개념이어서 사후 보호 조치가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노동 형태를 긱 노동이라고 한다. 필요에 따라 비정기적인 1회성 계약을 맺고 일하는 플랫폼 노동이다. 현대 사회의 노동이 파편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나노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나노 사회란, 이렇게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은 모래알처럼 부스러져 고립된 섬이 되어가는 사회를 말한다. 나노 사회 현상은 산업화 이후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더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산하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는 다음 해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트렌드 코리아’를 2008년부터 매년 발간하고 있는데, 며칠 전 나온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도 내년 10대 키워드로 나노 사회를 들고 있다. 이 책에서는 나노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감 능력을 키우고 우연한 경험의 폭을 넓히며 지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춰나가자고 하면서 이 모든 것이 휴머니즘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휴머니즘은 인간다움을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로마인에게는 세련된 로마인만 인간이었고, 인도인과 흑인, 아메리카 인디언은 1537년에야 인간으로 인정받았던 것을 보면, 누구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역사의 발전으로 인간의 범위는 넓어졌지만, 풍속, 습관, 사상이 자기와 같은 사람만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만 ‘존중할 만한’ 인간이라고 은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해야 진정한 휴머니즘이라고 하지만, 그런 휴머니즘을 장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무엇보다 나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활 패턴이 다양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만나지 못하니 공감할 기회도 없다.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거나 길을 묻지도 않고, 여행을 떠나도 노선을 완벽하게 짜서 떠나니, 알고리즘을 벗어나는 우연한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아파트에서는 몇 년을 살아도 옆집조차 모른다. 이웃과의 공동체도 만들기 힘든데,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불행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특별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에게나 가능해 보인다.

용차 기사의 죽음 앞에서, 아쉽게도 인문학적 처방은 힘이 될 것 같지 않다. 공감은 스쳐 지나가는 감상에 그치고, 휴머니즘은 공허한 구호에 머물 가능성이 많다. 모래알처럼 존재하면서 파편화된 노동자로 살아가는 나노 사회의 문제는 공감이나 휴머니즘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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