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父子)가 닮고 모녀(母女)가 닮는다는 말이 있다. 한 집에서 살다보니 은연중에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몸에 배어 무의식적으로 닮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자 칼 융은 잠재의식이라 했고 인간의 행동은 의식보다 잠재의식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잠재의식은 그가 사는 곳의 전통과 문화와 관습에 의해 형성된다. 이것을 굴레이니, 유산이니, 업보이니, 맥이라고도 하지만 칼 융은 그것을 ‘집단 무의식’ 또는 ‘잠세태’라고 했고 예레미야는 그것을 ‘찌끼(침전물)’라고 했다. 의식이 작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행위는 모두 잠재의식에서 나오며 결국은 그 잠재의식이 우리의 삶을 주도한다. 의식은 가식(假飾)으로 숨기고 위장할 수 있지만 잠재의식은 꾸며 낼 수 없는 근본(根本)이다. 바닥에 잠재된 침전물이 근본이고 그 근본을 숨기기 위해서 덮는 의식은 가식이다. 가식은 언젠가는 바닥에 침전되어 있는 잠재의식의 표출로 드러나게 되어 결국 진실을 숨길 수 없게 된다.
예레미야는 모압족속의 멸망이 악의 침전물 때문이라 했다. 그 악의 침전물을 쏟아버리지 않으면 멸망을 면치 못하리라고 했다. 예레미야 48장에 “모압은 겉으로 보면 맛과 향이 좋은 술 같지만 썩은 찌끼가 바닥에 침전되어 있기에 모압이 살려면 술 거르는 자들을 보내어 포도주를 모두 쏟아 버리고, 그릇들을 비우고, 항아리를 깨뜨려 악의 찌끼(침전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모압족은 시작부터 악의 침전물을 바닥에 깔았다. 롯이 타락하여 그 딸과 근친상간으로 낳은 아들이 모압이고 그 후손이 모압족이다. 이후에도 정의의 편을 버리고 발람과 같은 거짓된 자들을 발탁하여 정치를 펼쳐 나감으로 악의 침전물을 두껍게 만들었다. 이들은 악의 침전물 위에 달고 맛있고 향이 좋은 거짓 정치의 술을 담아 위장했지만 결국은 그 침전물에서 악이 배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악한 침전물에 기초하여 세운 모든 역사는 결국은 부패하여 망하게 된다고 경고했고 그 침전물을 쏟아내지 못한 모압은 결국 멸망했다.
불행하게도 유독 우리 정치 역사에는 악의 침전물이 바닥에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하다. 악의 침전물을 쏟아부어 버리지 않은 채 그 위에 아무리 좋은 술을 부어 감춘다 할지라도 결국은 침전물 속에서 악한 것이 나오게 되므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악의 침전물을 제거하기 보다는 그 위에 단맛과 향을 내는 술을 부어 악의 침전물을 덮으려고만 한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그 술에 취하게 하여 바닥에 있는 악의 침전물을 보지 못하게 한다. 우리나라가 모압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악의 침전물을 쏟아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