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경기 중 발생한 중국 선수 봐주기 편파 판정과 관련하여 중국을 대하는 감정이 더 악화되었다. 아울러 중국의 반한정서도 더 높아졌다.
“소국 주제에 나대지 말라” “나라가 작아 하는 짓도 하찮다” “중국은 한국의 아버지”라는 댓글이 대변해 주는 중국인의 한국에 대한 생각을 황희 문체부 장관은 자신들을 대국(大國)으로, 한국을 소국(小國)으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대국이어서 큰 생각을 하고 소국이어서 좁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중국인의 편견일 수 있다. 자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등소평은 키가 150Cm 밖에 안되는 소인이지만 그들은 그를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면서 아무도 그를 소인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의 스승 맹자는 이웃 나라와 관계를 맺을 때에 이렇게 하라고 했다.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는 크고 어진 나라가 되어야 작은 나라도 예로써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크다고 작은 것을 억압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작다고 큰 것을 사대(事大)함이 아닌 서로 의로써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 위대한 스승을 두고서도 오늘의 중국은 옹졸한 중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우리 또한 소국의 한풀이식으로 격분하거나 감정대립을 하지 말고 차분하고, 냉정하고, 지혜롭게 대해야 할 것이다. 불의한 판정을 받고서도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경기에 임한 선수들처럼 말이다.
성경 [시]3:4에 다윗이 이런 기도를 한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유대교의 한 랍비는 이렇게 번역했다. “나는 내 옹졸한 마음으로 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은 넓은 마음으로 응답하셨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달라고 옹졸한 마음으로 내 목소리만 내는 기도를 하였지만 하나님은 나 외에도 다른 사람의 기도하는 목소리까지 듣고 그 사람들까지 배려하여 넓은 마음으로 응답하셨다는 것이다.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면서 내 목소리만 내고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옹졸함이다. 옹졸한 마음으로 내 목소리만 내는 기도를 아무리 힘있게 하여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까지 배려하여 넓은 마음으로 응답하신다. 그것을 깨달은 다윗은 이후에 이렇게 노래했다.
[시]34: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자” 비로소 다윗도 옹졸한 마음을 버리고 광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던 왕이 가져야 할 덕목이었다. 물리적 크기로 대국 소국을 따지면서 큰 마음 작은 마음을 논하는 자체가 옹졸함이다.
진정한 대국은 광대한 마음을 가진 국민들이 사는 나라이다. 다윗과 같이 옹졸함의 기도를 버리고 광대한 마음으로 노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