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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大寒)을 며칠 앞두고

등록일 2022-01-12 20:14 게재일 2022-01-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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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낙률​​​​​​​시인·국악인
오낙률​​​​​​​시인·국악인

설레며 밝아오던 새해도 벌써 며칠 지나고, 소한을 지나 일 년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에 해당하는 대한을 앞두고 있다. 대한까지 지나면 민족의 고유 명절 설날이 되는데 그때 또 한 번 우리는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느라 너나없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예부터 사람들은 양력설과 음력 설날을 모두 지내야만 음과 양의 기운을 두루 갖춘 완연한 새해라 여겨왔다. 그러나 신정과 구정 사이에는 약 한 달여의 시간이 있는데 이 시기는 일 년 중 가장 추운 시기에 해당하므로 아마도 겨울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 지상의 나약한 생명들에게는 가장 힘든 삶의 고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달력이라는 시간의 도표에는 24개의 마디가 설정되어있다. 그 마디를 24절기라고 부르며 그 24절기는 ‘절’이라는 12개의 마디와 ‘기’라는 12개의 마디로 조합되어 있다. 그 조합 또한 음양의 원리로 맞물려 있다. 그리고 그 24절기가 순환을 반복하면서 세월 또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시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래떡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데 우리가 나름의 크기로 종종 썰어 쓰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평생을 꿈꾸며 살다가 끝내는 또 꿈을 꾸려고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생명체의 사명은 물의 순환에 있다. 식물이나 동물 할 것 없이 죄다 그렇다. 하지만 동물과 식물의 입장은 좀 다르다. 동물이라는 생명체는 동(動)적인 존재로 타자의 몸에 지닌 물을 취해야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어쩌면 한자리에 뿌리를 박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살아가는 식물보다도 오히려 더 힘든 생을 꾸려 간다. 그것은 동물류에 해당하는 생명체들의 원죄라 할 수 있다. 해서 원죄라는 단어는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동물류의 공통적 원죄를 관통한다.

새해의 초입에 들면 필자는 습관처럼 죽도시장 어판장을 찾는다. 그리고 가끔 걸음을 멈추고 생선 파는 아낙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곤 한다. 행여 새해의 힘찬 기운을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느껴볼까 해서다. 죽도시장 어판장에서 나이 칠십은 족히 넘었을 아주머니들의 표정에서 향내를 느낀 기억이 있다. 장사꾼의 돈은 개도 안 물어 간다는데 수많은 손님을 대하면서도 싫은 표정 한번 짓는 법이 없었다. 그 아주머니들의 속내는 발효가 잘되어 마치 백설처럼 하얀 것 같았다. 속이 거름처럼 썩은 게 아니고 배꽃처럼 하얗게 발효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온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려도 싱싱한 꽃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올해도 마스크 때문에 그 싱싱한 참꽃 미소를 보지 못해 못내 아쉽다.

필자의 어린 시절엔 들일 나가는 소의 입에 머거리라는 마스크를 채웠다. 좁은 들길에 소를 몰고 가노라면 소가 길가에 자라는 농작물을 한입씩 뜯어먹었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려는 주인 농부의 특별한 조치였다.

어쩌다가 요즘은 사람들이 죄다 소 머거리 같은 마스크를 하고 살아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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