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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로봇테스트필드 안은 대구, 이젠 로봇도시다

대구 로봇업계의 숙원인 국가로봇테스트필드 구축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1차 도전에서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실패했던 대구시가 재심 끝에 예타 문턱을 넘어섬으로써 대구는 이제 국내 로봇산업을 선도하는 도시로서 입지를 확실하게 구축하게 됐다.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은 로봇제품 서비스의 실증을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실증 인프라다. 물류, 상업, 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실제 환경과 비슷하게 만든 공간에서 로봇의 서비스 품질, 안전성, 신뢰성 등을 평가하게 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서비스 로봇사업을 글로벌 3대 강국으로 도약시키 위해 로봇데스트필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대구시의 이번 예타통과는 의미가 상당하다.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 구축에는 총사업비 1천997억원이 투입되며 2028년까지 5년간 진행된다. 대구에서는 달성군 테크노폴리스가 로봇데스트필드가 입지할 장소다.로봇산업은 대구시가 구상하는 5대 미래 신산업의 하나다. 로봇테스트필드가 들어설 인근에 올해 새롭게 지정된 제2국가산업단지는 미래모빌리티와 로봇 등의 전용공단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로봇테스트필드 유치로 대구가 국가로봇산업 육성의 거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국가로봇테스트필드 대구 유치를 계기로 대구시 등이 지금부터 얼마나 정성을 들여 노력하느냐에 따라 대구의 미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번 예타 통과로 “대구가 본격적인 로봇허브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로봇산업 중심도시 피츠버그는 지역대학과 구글, 애플 등의 연구소가 집적되면서 첨단로봇 도시로 성장했다. 대구가 벤치마킹해 볼만한 곳이다.대구도 대학과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등 충분한 연구 인프라와 현대로보틱스 등 탄탄한 로봇산업 제조기반도 갖추고 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잘 갖춰진 로봇산업 생태계를 이끌 대구시의 전략과 지역기업들의 투자와 노력이 잇따라야 한다. 대구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로봇산업 진작에 총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2023-08-24

가을은 오는데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처서 지난 들녘에 가을빛이 어린다. 일제히 벼가 패고 빨갛게 고추가 익어간다. 호박도 누런 배를 드러내고 이따금 메뚜기가 날기도 한다. 한낮은 여전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아침저녁에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는 자연현상이 우리 삶을 한결 수월케 한다. 엄동설한도 때가 되면 물러가고 삼복더위도 때가 되면 지나가는 자연의 섭리가 내면화 되어, 고난과 역경에도 쉽사리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내성을 갖게 된다.여름이 여름다운 것은 그것이 가을을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엔 겨울을, 겨울엔 봄을, 봄에는 여름을 설레는 기대로 맞게 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여름의 불볕더위가 가을을 풍성하게 하는 것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춘하추동은 얼마나 생동적인 순환인가. 이 여름의 막바지에서 누군들 황금빛 들판에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손짓하는 가을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지 않을 것인가.유감스럽게도 인간사회의 계절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지난 정권 동안 줄곧 불어대던 북서풍이 아직도 다 가시지를 않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민심의 풍향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계절이 오지 않는 것이다. 사법부의 수장이 아직 계절의 변화를 막고 있고, 방송계도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어 가는 추세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은 소강상태이나 머지않아 바람의 방향도 북서풍에서 남동풍으로 바뀔 것이다.공산사회를 흔히들 동토(凍土)라고 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얼어붙은 땅이라는 말이다. 그 종주국 소련과 중국에는 해빙의 바람이 불어 어느 정도 눈이 녹고 얼음이 갈라지는 계절의 변화가 있었다. 북한만이 유일하게 동토를 유지하고 있다. 그 냉동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돈과 인력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불어오는 북풍에 남한의 일부까지 냉해를 입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하지만 요즘은 정보화 시대라 북한에도 다양한 경로로 바람이 새어들고 있다고 한다. 냉동고에 구멍이 뚫리면 얼음이 녹을 수밖에 없듯이 머지않아 김정은 일당이 쌓아놓은 빙벽도 결국은 녹아내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북서풍은 멎을 것이고 남한에도 온전한 계절이 올 것이다. 북서풍이란 물론 북한과 중국의 영향을 말하는 것이고 반대로 남동풍이란 자유진영의 바람을 일컫는 것이다. 최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도 바로 그 남동풍이 될 것이다.여름이 막바지에 다다랐듯 좌파들의 몰락도 머지않은 것 같다. 좌파정당 대표가 열 가지도 넘는 죄목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을 비롯해서 좌파정권 때 임명한 대법원장의 임기도 끝나가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좌파에서 우파로 바뀌었다. 공영방송국 이사진까지 개편되면 명실상부 다른 계절이 될 것이다. 아니 하나가 더 남았다. 내년 총선에서 자유우파가 과반수를 확보하는 일이다. 기왕이면 법 개정이 가능한 의석을 얻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북서풍이 겨울을 몰아오고 남동풍이 봄을 데려오듯 민심의 향방에 국운이 달렸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불어가는 바람인가.

2023-08-24

한여름 산행을 즐기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무렵 동문산악회가 “경북수목원 둘레길 한 바퀴 돌고 오자”며 산행 계획을 알려왔다. 창문을 열면 뜨거운 열기가 들어와 에어컨으로도 견디기 답답하던 터라 간단히 배낭을 메고 반바지 차림으로 따라나섰다.청하를 지나 유계리로 접어들어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는데 산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잘 보이지를 않아 전조등을 켜고 조심스레 달려 경북수목원에 도착했더니 등산객이 많다.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조용한 수목원 길을 걸어 능선에 섰다. 간단히 몸 풀고 가슴 가득 숨 쉬어 숲의 정기를 채웠다.안내판을 보며 산행 경로를 짰다. 매봉(833m) 아랫길, 임도(林道)가 아닌 오붓한 산길로 삼거리까지 갔다가 삿갓봉길로 올라오며 한 바퀴 돌아오기로 했다. 다섯 시간쯤 걸어야 한다. 옆길로 내려가니 흐릿하던 숲이 뚫리며 물기 젖은 풀잎들이 다리에 스치고 한 구비 돌 즈음에 벌써 어깨 등어리는 땀범벅이 된다. 여름이라 꽃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예쁜 버섯들이 비에 젖은 갈색 낙엽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까이 사진을 찍다 보니 길섶에 붉은 보라색 작은 꽃이 애잔스럽다. 꽃며느리밥풀, 꽃말은 ‘여인의 한’이다.이따금 만나는 통나무 계단 길은 흙이 모두 쓸려나가 앙상해져 걷기가 힘이 든다. 밑둥치가 썩어버린 고목을 어루만지며 내려가다 만난 무덤은 봉우리 흙이 무너져 내려 묘의 상석이 덥혀 잡초만 무성하고, 오르막길에서 만난 돌무지에 돌 한 개 쌓고 산신령에게 가족의 평안을 빌어 보았다.단풍나무 상수리나무가 둘러싼 쉼터에 앉아 막걸리 한 잔 벌컥 마시니 마른 목과 속이 뻥 뚫린 기분에 순간 안개도 싹 걷힌다. 한여름 산행의 땀은 이제 감각도 없다. 1시간쯤 내려오니 졸졸 물소리가 들리고 둥근 나무다리 아래에 흐르는 개울이 보인다. 삼거리다. 개울 건너 물가 자갈밭에 배낭을 벗어두고 발 담그니 신선이 따로 없다. 발등이 간질거려 물속을 보니 버들치들이 모여들어 발가락을 콕콕 문다. 닥터 피쉬의 모습이다. 물은 무릎까지 차고, 어릴 적 발가벗고 풍덩 뛰어 들어가 물장구치던 기억, 그 ‘알탕’을 하고 싶었으나 웃통만 벗고 땀을 씻었다.둘러앉아 김밥 맛있게 먹고 한잔하고 푹 쉬었다가 일어나 삿갓봉 쪽 산길을 오른다. 오르막길 몇 걸음에 또 땀이 흥건하다. 옛 화전민들이 참나무 숯을 만들었던 숯가마 터를 지나 오르노라면 갖가지 나무에 이름표가 붙어있다. 참나무 여섯 종의 이름도 처음 알았다.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와는 잎의 매끈함이, 졸참나무와 갈참나무는 잎 가장자리가, 또 떡갈나무와 신갈나무는 잎 뒷면의 갈색 털로 구분한단다.멧돼지, 고라니, 뱀을 조심하라는 경고문을 곁 눈짓하며 한참을 걸어 드디어 외솔배기에 왔다. 옛날 가래골 사람들이 청하장에 다니던 길목의 정자나무 쉼터에 250년 된 소나무가 아직도 잘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좋다.마지막 영춘정 전망대 입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곧 가을이 오면 붉게 물들 단풍 숲을 그려 본다. 숲과 둘레길, 계곡물과 바위, 꽃과 버섯을 눈에 담으며 걸어본 약12km 1만8천 보…. 훌륭한 8월의 힐링 산행길이었다.

2023-08-24

을묘일주(乙卯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 두 번째는 을묘(乙卯)이다. 천간(天干)의 을목(乙木)과 지지(地支)의 묘목(卯木)은 같은 목(木)기운으로 봄에 솟아나는 푸른 새싹의 모양이다. 동물로는 토끼다.을묘일주는 풀밭과 꽃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초원의 물상이다. 매우 명랑하고 인정이 많은 편이다. 풀과 같이 연약한 화초이고 넝쿨처럼 다른 것에 의존하여 생존하기 때문에 외유내강형으로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성향이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티를 내지 않지만 실제로는 상처를 잘 받는 여린 심성이다.내면은 상상력이 아주 뛰어난 소녀의 마음이다. 천진난만하고 밝고 생글생글하지만 마냥 애 같지는 않다. 안으로는 은근한 끈기가 있고, 자기주장이 매우 강해 주관을 잘 바꾸지 않으며, 좌절이 와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상당한 고집의 소유자다. 을묘는 3대(을묘, 임자, 신유) 고집 중 하나다.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생활력이 있으며, 환경적응 능력도 뛰어나다. 겉으로는 작고 연약해 보일 수 있지만, 성격이 강직하여 누구도 고집을 꺾을 수 없다. 뿌리가 강하니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강인함은 아니다.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따라서 사회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갖고, 문제 해결에서 탁월한 역할도 한다.19세기 영국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 ‘제인 에어’를 썼던 샬롯 브론테(1816∼1855)는 직접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경험을 기록했다. 주인공 제인 에어는 고아 여자아이고 고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교장 선생님이었던 템플 선생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했던 여성이었다. 반면에 학교를 운영하는 이사장은 브로클허스트 목사였다. 템플 선생과 이사장의 대화 한 장면이다.브로클허스트 목사가 화난 듯이 말했다. “템플 선생! 점심식사에 빵과 치즈가 함께 배급된 사실을 발견했소. 이게 어찌 된 거죠? 규정을 살펴보았지만 그동안 점심으로 이런 식사가 배급된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소. 이런 개혁을 누가 시작한 거요? 무슨 권한으로?”템플 선생이 대답했다. “그 상황은 제 책임입니다. 아침식사가 형편없어서 학생들이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점심식사 때까지 아이들을 계속 굶길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 탄 음식 대신 빵과 치즈를 아이들의 입에 넣어줌으로써 비천한 그들의 몸을 살찌게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불멸의 영혼을 얼마나 굶겼는지에 대해서는 선생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소.”브로클허스트 목사가 말을 멈추자 템플 선생은 아래를 내려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브로클허스트 목사는 학교의 지출을 줄이게 했으면서도,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템플 선생은 아픈 아이들과 함께 질병에 맞섰지만, 브로클허스트 목사는 전염병이 사라질 때까지 학교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19세기 영국사회는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중산층 자녀들은 소녀전용 기숙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의 목적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덕목, 즉 남성의 조력자가 되기 위한 기초적인 교육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기숙사 학생에 대한 템플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은 성장기 소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샬롯 브론테는 소설에서 여성도 자신의 존재를 찾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당시 여성의 행복은 남성에 의해 결정되고, 남성에게 헌신함이 행복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과 자주성을 유지한다. 을묘일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많이 사랑받고 있는 책이다.을묘일주 남성은 인생에서 한 번쯤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될 확률이 높다. 여러 여자와 사귄 후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바람을 피우면 잘 걸리지 않는다고 고전에서 말한다. 여성은 연하의 남자와 사는 경우가 많다. 어린 남자를 챙겨주려는 마음에서 연애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남녀 공히 배우자 운이 약한 편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이성관계가 복잡할 우려가 있고, 유혹에 잘 넘어가기 때문에 냉정해야 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을묘일주는 하늘에서 봄비가 내려 초목이 성장한 푸른 풀밭을 뛰어다니는 토끼가 연상된다. 풀밭의 토끼는 근심이 없다. 얌전하고 귀가 커서 남의 말을 잘 듣는다. 아주 일찍 일어나 토끼 굴에서 나온다. 토끼는 어려움이 닥쳐도 아주 냉정하게 잘 처리한다. 폴짝하고 뛰어 넘으며, 아주 큰 난관에 부딪쳐도 냉정하다.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으니 어려운 인생살이에 산을 만나도 잘도 넘어간다. 단, 남들 같으면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려오는 쉬운 길을 토끼는 부들부들 떤다. 그래서 엉뚱한 것에 소심하고 겁먹는 기질이 있다.우리나라 고전 가운데 ‘별주부전’이 있다. 바닷속 용왕이 위독한 병이 걸렸다. 유일한 약이 토끼간이다. 충직한 신하 별주부는 용왕을 위해 토끼를 데려오지만, 위험에 처한 토끼는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앙큼한 말로 용왕을 속이고 도망간다. 병에 걸린 용왕을 통해 조선후기 정치권력의 탐욕과 거짓을 풍자한 이야기다.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는 백성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매순간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살기 위해 애써야 하는가?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 어깨의 뻐근함이 가중될 뿐이다. 이성적 사고와 합리적인 행동만을 고집한다면 만사가 힘겹고 점점 버티기조차 버거워질 것이다.사람들이 동물과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동물과 어린아이는 아무런 근심 없이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살아간다. 마음은 언제나 지금, 현재의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근심도 권태도 없다. 지금 이 순간만의 행복을 선망하기 때문이다.

2023-08-23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정미영 수필가 연일도서관은 앞마당이 공원과 잇닿아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나는 연일도서관에 갈 때면 잔디밭 길섶에 심겨진 대추나무 앞을 매번 서성거린다. 초록 웃음을 머금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모습, 바람이 머물다간 자리가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모습을 내 마음에 담는다.그러다가 한여름이 되면 대추가 알알이 익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기도 한다.얼마 전, ‘여름방학 독서교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대추나무를 만나는 게 좋았다. 그런데 태풍 ‘카눈’의 북상 소식이 전해졌다. 배움도 소중하지만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연일도서관이 하루 동안 휴관에 들어가면서 나는 학생들과 집에서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다음날은 정상적으로 연일도서관에서 강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대추나무가 걱정되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서 살펴보았다. 거센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부서지고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대추나무가 건너왔던 수많은 계절과 품고 있던 내력의 흔적들이 상실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마침 이번 강의 주제가 ‘불을 끄고 별을 켜자! 우리는 환경지킴이!’였다. 학생들과 지구온난화와 세계 이상 기후에 관해 수업하는 대목에서 태풍 피해를 입은 대추나무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선생님, 식물도 감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글쎄, 선생님도 궁금하네. 답이 뭘까?”내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학생이 신이 나서 말을 했다. 동물처럼 눈과 코 등의 감각 기관이 없지만, 식물도 감각을 느낀다고 학교에서 배웠단다. 진지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었다.식물은 촉각과 미각을 가지고 있다.파리지옥은 특정한 냄새를 뿌려 파리를 잎에 앉게 만든다. 파리가 잎 표면을 자극하면 촉각이 있기 때문에 잎을 닫아 버린다. 또한 잎을 닫았더라도 먹지 못하는 것이면 다시 잎을 열어 안에 갇힌 것을 버리는 데, 이것은 미각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면서 학교 선생님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식물이 눈, 코, 귀 등이 없다고 오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입니다.”식물을 대할 때는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된다고 말하는 학생의 눈길이 따스했다.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평소에 내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교육 강의를 할 때 예로 들고 있는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의 동화 ‘어린요한’중 ‘버섯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독버섯’이 나쁘다는 것은 사람들 ‘식탁의 논리’일 뿐 버섯세계의 논리가 아니다. 버섯은 버섯세계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버섯세계의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을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로서 소중하게 대하고 그들의 언어로 평가하며 존엄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이 학생은 알게 되었을까? 나는 학생이 기특했다.나는 프리랜서 강사이기에 전형적인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다. 1999년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은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는 말로 인류를 표현했다.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기쁘다. 그런데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받는 것은 더더욱 행복하다. 그래서인가.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강의할 때 자신의 경험이나 알고 있는 지식, 퀴즈, 심지어 무서운 괴담을 이야기해 주려는 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나는 오늘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 중이다.

2023-08-23

산후풍과 산후조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은 사람이 살면서 겪는 최고의 기쁨이고 행복이다. 이 행복의 순간을 가져가기 위해선 출산후 몸관리가 아주 중요하다. 현대는 뛰어난 의료 기술과 충분한 산후 관리와 영양 섭취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산후풍으로 고생 받는 산모는 존재한다.보통은 힘들게 출산후 충분한 휴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입맛이 없어 영양공급을 제대로 못해준 후 여름엔 에어컨을 많이 쐬거나 겨울엔 찬바람을 많이 맞아 산후풍에 걸려 고생한다. 증상은 몸살 감기 초기 증상이랑 아주 비슷해 감기인줄 알고 방치하거나 감기약을 먹다가 안되어 한의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 관절이 아프고 뻐근하며 몸이 시리고 심한 경우는 바람이 몸에 닿거나 물에 손이 닿는 것 만으로도 고통을 느낀다. 특히 무릎 이하 하지쪽이 시린 경우가 많고 손목 무릎 손가락 관절이 다 아프다. 관절쪽의 증상 때문에 류머티스 검사까지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한의원에서의 치료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몸살을 풀어 주는 약 위주로 증상의 경중에 따라서 처방을 한다. 산후풍의 증상이 심하지 않는 경우는 몸을 보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약 위주에 황기를 겸해서 처방을 하면 서서히 개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한 달에서 세 달 정도를 보고 치료를 한다. 증상이 너무 심하면 관절과 몸살을 강하게 풀어주는 약을 쓴다. 이런 경우는 모유수유를 중지 시키고 처방을 한다. 약에 따라서 모유수유가 가능할 수도 있고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출산 후 몸이 크게 아프지 않아도 어혈을 제거하고 몸을 보하는 약을 먹어주는 게 산후풍의 예방에 효과적이다. 처음엔 괜찮다가 몇 달 후 아파서 오는 경우도 있다.예방으로는 출산을 하고 나선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 덥다고 에어컨을 너무 많이 쐬거나 직사로 바람을 쐬면 안 된다. 그리고 찬물에 샤워를 해도 안 되고 샤워 시 몸을 충분히 데운 후 욕실에서 물기를 전부 다 닦은 뒤 나와야 한다. 몸이 조금이라도 으슬하거나 추위를 느끼면 긴옷을 입고 한기가 사라질 때까지 방을 따뜻하게 하고 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 좋다. 음식은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고 고루 영양 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 너무 매운 음식이나 강한 음식 보단 간이 덜된 담백한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속이 좋지 않으면 안그래도 좋지 않은 몸의 회복이 더뎌진다.산모의 몸이 좋지 않으면 아이 돌봄에 조금이라도 소홀해질 수 있고 모유수유를 하는 경우도 건강한 산모보다 모유의 질이 떨어질 수 있고 또 산모의 몸이 그만큼 축이 난다. 너무 아픈 경우는 분유를 먹이고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남편이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몸은 아프다고 하니 잘 믿어 주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산후풍은 생각보다 더 많이 아프니 옆에서 많이 도와줘야 한다. 출산 후 몇 달간은 최대한 몸조리를 하고 가족들도 산모의 몸 회복을 우선시 하여 산모의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산모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게 큰다. 건강한 산모의 모유와 아이돌봄은 아이의 건강을 더욱 좋게 한다.

2023-08-23

효전(孝電)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으면 그냥요~라고 말한다. 나는 아 오늘이 금요일이네 인사를 대신하며 대화를 잇는다. 화젯거리가 있으면 길게 수다를 떨 때도 있지만 딱히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서로 지극히 일상적 안부를 묻고 대답하면서 짧은 통화를 끝낸다. 오히려 말할 거리가 없어 어색할 때도 많은 이런 전화, 꽤나 오래된 루틴이다.아들이 서울로 대학을 갈 때쯤 해준 이야기다. 효문(孝蚊)이라는 말이 있단다. 조문효도(蚤蚊孝道)를 줄여서 하는 말이란다. 예전 어떤 사람이 효도하는 방법에서 나온 얘기였던 것 같다. 그는 여름밤 잠잘 때 파리와 모기를 쫓지 않았단다. 자기가 쫓은 모기가 부모를 물까 걱정해서 그랬단다. 또 어떤 이는 여름에 부모의 곁에서 굳이 윗옷을 벗고 잤단다. 그러면 모기가 젊은 자기의 피를 빠는 대신 부모를 물지 않을 것이라 부모가 더 편히 잘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단다. 진실 여부를 떠나 우스갯소리 같긴 하지만 이 예화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효전(孝電), 효도전화다.이제 넌 집을 떠나 우린 자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난 매우 자주 널 걱정할 것이다. 그러니 안부는 주기적으로 하자. 네가 공부하거나 친구랑 있거나 어쨌든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면 내가 하는 전화를 받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네가 더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니 전화는 네가 하는 걸로 정하자. 난 너보다는 자유로우니 받는 게 더 쉽겠지. 그 전화를 나는 효전(孝電)이라고 명명하기로 한다. 일주일에 단 한 번, 아주 짧은 안부 인사라도 좋다.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안부 전화가 햇수로 벌써 23년이 되었다. 대부분의 전화는 금요일 저녁참에 왔고, 아들임을 확인하면 아 오늘이 금요일이네라고 말하면서 받았다. 군생활을 하는 2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끊임없었던 일상이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후, 결혼과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효전은 계속되었다. 결혼 이후엔 이만 끊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전화가 아니어도 가족들의 SNS로 아들의 무사한 일상을 접할 다양한 방법이 많아졌기도 하다. 더 바빠진 일상 탓에 부담이 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그냥, 말 그대로 그냥 하는 전화일 뿐이라고 생각해선지 여전히 금요일 저녁엔 전화가 온다. 뭐 유난하고 알뜰살뜰하고 자상한 모자지간이어서도 아니다.금요일 저녁의 루틴 말고도 아들의 전화가 간혹 있다. 한글맞춤법이나 한자뜻풀이를 묻거나 손녀들의 깜찍스러운 언행을 자랑하듯 알려줄 때도 있다.-며느리를 통해서, 또는 SNS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대부분이긴 하다-그중 아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화가 하나 더 있다. 그날엔 평소보다 좀 진중한 목소리다. 나는 눈치채지 못한 채 어? 금요일도 아닌데 웬일?이라며 반갑게 받고 아들은 그냥요~ 라고 한다. 일상의 대화를 잠시 잇다 보면 아차 내가 네 생일을 잊었구나. 또 네가 먼저 전화를 하네. 내가 축하 전화를 먼저 해야 했는데, 난 아들 생일도 자꾸 잊어버리네 호들갑을 떨지만 이미 늦었다. 아들의 그냥요~라는 목소리엔 제 생일이면 떠오르는 엄마에 대한 웅숭깊은 속정이 다 녹아 있다. 참 무심한 엄마다.

2023-08-23

국회의원 261명이 서명한 달빛철도 특별법

국회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극한 대립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 발의에 헌정사상 가장 많은 여야의원이 동참하는 진기록이 나왔다. 여야 국회의원 261명은 22일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달빛고속철도 특별법 발의에 서명해 이 법의 연내 국회 통과에 청신호가 켜졌다.대구와 광주의 숙원 사업인 달빛고속철이 개통되면 대구와 경북 고령, 경남 합천, 거창, 함양, 전북 장수, 남원, 순창, 전남 담양, 광주 등 6개 광역지자체와 10개 기초지자체 1천700만명의 주민이 혜택을 입게 된다.특히 이 법 발의에 국민의힘 109명, 더불어민주당 148명, 정의당 1명, 무소속 3명 등이 참여해 국회가 여야 가릴 것 없이 한마음으로 영호남 지역화합과 국가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는데 힘을 모아주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달빛고속철은 그간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국가 정책에서 고배를 마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 “정부가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고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소중한 가치로 판단해야 할 문제”라며 “대구와 광주가 같이 만들었다는 성취감과 근린의식까지 갖게 되는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국회가 극한 정쟁으로 치달으면서 달빛철도 특별법 발의에 재적의원의 90% 가까운 여야의원이 동참한 것은 이례적이고 놀랄만한 일이다. 이제 조속한 법 통과로 이 법이 담고 있는 영호남 교류 확대와 국토균형발전, 남부 경제권 활성화 등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4조5천억원이 투입되는 달빛철도가 완공되면 영호남은 1시간대로 가까워지고 대구 신공항과 연계돼 관광산업 진작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2038년 대구광주 하계아시안게임 공동유치에도 긍정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번 고속철도가 남북이 아닌 처음 생기는 동서간 철도란 점에서도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특별법 연내 통과에 차질이 없도록 지역 정치권은 긴장감을 놓지 말길 바란다.

2023-08-23

심각한 ‘안동호 녹조현상’… 근본대책 세우라

안동시 도산·예안·와룡·임동·임하면 등 5개 면에 걸쳐 있는 안동호가 심각한 녹조현상으로 수질이 역대 최악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다는 우울한 뉴스가 나온다. 본지가 23일 보도한 안동호의 모습은 마치 초록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호수전체가 녹색으로 뒤덮여 있다. 게다가 악취까지 풍긴다니 호수주변 주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는 짐작이 간다.안동호 녹조현상은 여름철마다 발생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 한국수자원공사 측은 “지난 1976년 댐 축조 이래 호수 52k㎡ 전역에서 녹조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지난 14일 기준 안동호 상류인 예안교 부근 유해 남조류수 세포수는 9만4천95cells/㎖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녹조현상이 발생했을 때의 유해 남조류수 세포수(3만3천376개) 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안동댐까지 녹조로 뒤덮인 것은 이례적이라고 한다.안동호 수질악화 소식에 가장 마음이 쓰이는 곳은 대구시다. 식수문제가 최대현안인 대구시는 홍준표 시장 취임 이후 안동댐과 임하댐 원수를 낙동강 대신 식수로 활용하려는 구상(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하고 있는데, 현재 사업비 문제로 정부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안동호 녹조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며 수질이 악화되고 있으니, 정부로서는 반대명분이 더 생긴 셈이다.안동호 녹조현상은 가축분뇨와 비료, 쓰레기 등 다양한 오염원이 호수로 유입된 이후 폭염이 지속되자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독성이 있는 남조류는 물속 산소 농도를 떨어뜨려 어패류를 폐사시키고, 정수장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식수로 공급되면 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한국수자원공사는 어제(23일)부터 대형녹조제거선으로 녹조제거 작업에 나섰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일시적 효과를 거둘 뿐이지, 항구적 대책이 되지 못한다. 녹조 발생의 주원인이 호수주변에서 흘러들어오는 오염물질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니만큼,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3-08-23

보신탕의 종언(終焉)

홍석봉 대구지사장 개를 먹는 민족은 한국인뿐만이 아니다. 중국이나 마야의 기록에도 남아있다. 프랑스도 1910년대 개고기집 사진으로 미뤄 개를 식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극지 탐험가들도 극한 상황에선 썰매를 끄는 개를 잡아먹었다. 홍콩, 대만,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등은 얼마 전 개 식용을 금지했다. 현재 식용 목적으로 개를 집단 사육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개고기는 조선시대 평민들이 즐겨 먹던 고기다. 푸줏간에서 개고기를 함께 팔았다. 정조 대왕도 보신탕을 즐겼다. 먹을 것이 귀했던 전쟁 때는 중요한 양식이 됐다. 여름철 더위로 체력소모가 많은 계절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원이기도 했다. 특히 복날에는 삼계탕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몸을 보신해 준다고 해서 ‘보신탕’이라고 이름 붙여졌고 여름철 보양 음식의 상징이 됐다.우리의 오랜 보신탕 문화가 운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외국에도 우리네 보신탕 문화를 미개인 취급하며 비난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대구 칠성시장에는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개시장이 있다. 얼마 전 동물보호단체 ‘캣치독팀’이 칠성시장 개시장과 함께 전국 약 2천개 보신탕 업소를 고발하겠다며 행동에 나서 주목받았다. 비위생적이고 잔혹한 도축과정이 동물학대와 동물권리 유린행위로 낙인찍혔다. 폐쇄를 촉구했다.국회도 개 식용문화 종식에 동참했다. 여야 국회의원 44명은 22일 개 식용 종식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연내 관련 입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반려동물 인구 증가와 함께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 변화로 보신탕은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보신탕 애호가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세태변화를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23

힘든 청년, 병든 나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나라가 병들었다. 무고한 사람을 까닭도 없이 죽이고 해치는 일이 기승을 부린다.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대책은 또 어떤가. 문제의 근본부터 뿌리를 뽑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엄정한 처벌’에 머물고 있다. 장갑차가 등장했었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논한다. 벌어진 폭력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엄정하게 대처하여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생각도 틀리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범죄를 두고 형벌로 다루겠다는 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생각 가운데 하수(下手)다. 하필 이 여름에 이런 일들이 줄을 이어 발생하는지 그 까닭을 살펴야 한다. 날이 덥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건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을 해친다고 자신의 처지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바보가 있을까.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미움과 욕설’로 가득한 세상이다. 국회가 들려주는 언어의 패턴은 혐오와 조롱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편가르기와 등돌리기가 정치행위의 상식이 되었다. 멋진 정치에서 경청과 타협, 토론과 양보를 기대했던 국민은 이제 누구를 만나도 ‘어느 편’인지 살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겠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모든 면에서 나와 생각이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슈에 따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제거한 끝에 인간은 결국 홀로 남지 않을까. 다양하고 풍성한 ‘생각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이 존재해야 건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투표와 다수결이 소중한 까닭이다.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국가와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나라 안에 가득한 혐오분위기와 차별 정서는 젊은 세대에게도 전염되었다. 인정하고 포용하기보다 밀어내고 미워하는 기운에 익숙해진 청년들은 점점 더 ‘외로운 늑대’로 내몰리고 만다. 기회가 보이지 않고 기대할 것도 사라진 세상은 그들에게 등을 돌린듯 여겨질 터이다. 출처가 어딘지 분명치 않은 미움을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대상에게 퍼붓는 게 아닐까. 무엇 때문인지 모를 자신의 힘든 처지를 그렇게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게 아닐까. 사회적 병리현상은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개인적 일탈현상으로 여겨 처벌로만 대처하다가는 사회적 골든타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사회적 각성이 일어야 하고 문화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비뚤어진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편가르기의 폐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후대에 좋은 나라를 넘겨주기 위하여 사회적인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 병든 줄 뻔히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끝내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묻지마범죄가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오늘, 사회적으로 차분히 문제의 뿌리를 살펴야 한다. 미래세대가 중요하지만, 오늘의 청년세대가 든든한 허리로 받쳐주지 않으면 다음세대도 기대하기 어렵다. 20대와 30대에 건강한 사회환경을 실현해 주어야 하고,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닦아낼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청년에게 기대와 소망을 안기지 못하면, 사회와 국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8-23

농축산물 선물가액 또 상향, 법 취지는 지켜야

국민권익위가 공직자 등이 주고받을 수 있는 설, 추석 명절 농축산물 선물가격 상한을 기존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또 김영란법 적용대상 선물범위에 온라인·모바일 상품권과 문화관광권을 포함했다.권익위 전원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으로 올 추석부터는 공직자라도 30만원까지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시행 시기는 다음달 5일부터 10월 4일까지가 된다.이에 앞서 국민의힘과 정부는 당정협의회를 열고 농수축산업계 지원과 문화예술 소비 활성화를 위해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검토했다. 그 결과 집중호우와 태풍피해, 물가상승 등으로 고통을 받는 관련업계 피해보상을 위해 시행령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업계가 고통을 받는다면 시행령이 아니라 법이라도 고쳐 지원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금처럼 야금야금 시행령을 고쳐 선물가액을 높여간다면 법 취지가 지켜질지 의문이란 비판도 있다.2016년 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고자 만들어졌다. 법 제정 후 공직사회에 상당한 긴장감을 주고 부정부패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진 게 사실이다.그러나 농수축산물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관련업계의 반발도 만만찮았다. 정부는 이를 수용해 작년 설부터는 명절선물 가격을 기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했다. 이번 조치로 명절선물 가격은 1년6개월여만에 또다시 상향 조정하게 된 것이다.업계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는 개정 취지에 공감은 하나 이런 식으로 간다면 입법 취지에 역행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시행령 개정이 아닌 방법으로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은 없는지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공직자 청렴 유지를 위해 꼭 이런 방법이 동원돼야 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직 비리척결을 위해 농수축산 종사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앞으로 물가는 또 오른다.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정부가 선물가격 기준을 변경한다면 법을 왜 만들었느냐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2023-08-22

지방공공기관의 ‘착한적자’ 한계 넘었다

상·하수도와 도시철도공사 등 지방공공기관의 영업 적자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원가에 비해 낮은 요금과 무임승차 등이 주원인이다. 전국 지방공공기관 중 적자가 가장 심한 5개 기관 중 대구·경북에서 3개기관(대구 상수도, 포항 하수도, 대구교통공사)이나 포함됐다. 공공재정 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시는 상수도의 영업적자가 2022년에만 295억800만원에 달했다. 적자규모가 전국 최상위권에 랭크됐다. 포항시 하수도는 영업적자가 2022년 627억8천300만원으로, 인구수가 6배 이상 많은 부산시(330만명) 적자 517억원보다 더 많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대구교통공사 역시 지난해 3천11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도시철도 평균원가가 3천615원인데 비해 평균요금은 688원으로 요금현실화율이 19%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이들 3개 공공기관이 모두 큰 적자를 낸 것은 기본적으로 평균원가에 대비해 요금이 턱없이 낮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평균요금을 평균원가로 나눈 요금현실화율이 3개 기관 모두 최하위권이어서, 흑자를 낸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지방공공기관의 존재 이유가 질 높은 공공서비스 제공이기 때문에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효과성’을 우선시하는 것이 맞다는 데는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고 ‘착한 적자’라는 논리로 공공기관의 과도한 적자를 정당화해선 곤란하다. 이런 논리라면 공공기관 적자와 부채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정부공기업도 마찬가지지만 지방공공기관의 경우, 만성적 적자경영 원인을 낮은 요금현실화율 탓으로만 돌리며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요금 현실화가 당면과제이긴 하지만, 방만한 경영이나 도덕적 해이 등의 요인도 함께 진단해 봐야 한다. 아마 강도 높은 경영혁신을 하면 적자규모를 줄일 방안이 나올 것이다. 도시철도 적자 문제는 지방정부에서 일단 구간별 요금조정 등의 경영개선책을 마련해야 하고, 노인복지 차원에서 국비지원방안도 같이 검토돼야 한다.

2023-08-22

국민의힘 당무감사, 黨勢확장 계기되길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이 강도 높은 당무감사를 예고하면서 총선 공천작업이 사실상 시작된 분위기다. 당무감사에서는 공천에 직결되는 정보가 체크되기 때문에,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예민해 질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여의도 정가에서는 ‘총선 공천 부적격자’라는 출처 불명의 살생부가 당 내부 자료인 것처럼 떠돌고 있어 현역의원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총선때만 되면 물갈이 타깃이 됐던 TK(대구·경북) 현역들의 고심은 더 깊다. 역대 총선때마다 TK는 보수당의 텃밭인 탓에 오히려 물갈이 수준이 혹독했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TK현역 교체율은 64%에 달했다.국민의힘 당무감사위는 현재 전국 당협 실사를 앞두고 질의서를 준비 중이다. 부산출신이며 의사인 신의진 당무감사위원장은 “질의서를 논문처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는 항목들을 꼼꼼하게 질의서에 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질의서에는 현역의원과 원외위원장들의 당원 관리, 사고 여부, 평판, 도덕성, 인지도, SNS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현역 의원들의 경우, 점수화가 가능한 공천근거자료를 만들기 위해 의정 활동에 대한 깊이 있는 감사도 진행한다고 한다. 법안 실적, 출석률 등 정량적 평가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 국정 철학과 국정과제 등에 부합하는 의정 활동을 펼쳤느냐 여부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텃밭인 TK지역에서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경쟁력이 센 친박(친박근혜)계와 지명도 높은 무소속 인사들의 출마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TK 지역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 달서병 출마를 선언한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TK지역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제기했다. 최 전 부총리에 대해서는 “경산 출마가 유력시되는 데 무소속으로 출마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고, 영주·영양·봉화·울진 출마설이 있는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해선 “무소속으로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제외된 점을 지적하며, 박 전 대통령이 측근들의 총선 행보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함께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되는 일부 TK 다선의원들의 무소속 출마설도 있어 여당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최근 반윤·비윤계의 연대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이철규 사무총장이 지난 16일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데, 거꾸로 노를 젓는다든가, 배에 구멍을 낸다든가 해서 침몰하게 한다면 그 배에 함께 승선할 수 없다”며 경고성 발언을 한 배경도 이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있다. 국민의힘 당무감사는 사실상 공천심사와 다름없다. 당무감사가 내부분열이 아니라 다양성과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3-08-22

덩샤오핑을 떠올리게 한 중국경제

우정구 논설위원 덩샤오핑은 오늘날 중국 경제가 세계 2위 대국으로 올라서게 한 원동력이 된 인물이다. 1978년 그가 펼친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은 40여 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덩샤오핑의 어록 중 하나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도 들어오지만 파리, 모기도 들어오는 법”이라 했다. 중국이 심천 등을 경제특구로 개방하자 곳곳에서 음란퇴폐 문화가 동시에 번져나갔다. 이에 일부 비판론자들이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으로 자본주의의 쓰레기 문화가 유입된 탓이라고 비난하자 이에 그가 응답한 대답이다.1979년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흑묘백묘론을 주장했다. “고양이가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사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그의 개방 경제정책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말로 유명하다.중국경제가 40여 년만에 위기에 봉착했다. 덩샤오핑 이후 줄곧 성장하던 중국경제가 올들어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고조된 상황에서 부동산발 신용위기까지 겹치자 경기침체를 넘어 위기론이 팽배하고 있다는 것이다.중국의 최대 부동산개발 회사인 비구이위안이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부동산업계의 도미노 부도위기가 확산되고, 금융권으로 부실이 옮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중국의 경제위기에는 시진핑의 장기 집권의 부작용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되나 중국과 거래가 많은 한국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이 우려된다. 중국 단체관광객의 한국 관광이 허용됐지만 경제위기 속에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유커들의 소비가 움츠러들 가능성도 높다. 실사구시를 추구한 덩샤오핑이 생각나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22

광복절 기념史

광복.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빛(光)을 되찾다’의 의미에로 해석하곤 하는데, 실제 ‘광복(光復)’에서의 ‘광’은 빛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영예롭게’라는 뜻의 부사이다. ‘광복’이라는 말은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예롭게 되찾다’라는 의미. 여기에는 2017년 김영민 교수가 칼럼을 통해 지목한 바와 같이 무엇을 회복하는가를 알려주는 목적어가 빠져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목적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자결권, 자신에 대해 결정한 권리이다.우리가 지닌 정체성과 자결권이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언제든 타자에 의해 위협될 수 있는 것, 그것이 정체성과 자결권이다. 모든 인간에게 당연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정의를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20세기의 관습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의 여러 국가와 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결권을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 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헌데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국민학교 시절만 해도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단군의 자식이라는 단일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배워왔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한 정체성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적용할 수 있을까. 2010년을 전후하여 사학계에서 제기된 단일민족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자면, 한반도는 상고시대 이래로 무수한 이방인의 방문을 받아왔다. 여기에는 ‘왜’로 대표되는 해양세력에서부터 북방 유목민족,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심지어는 아랍인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인종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가 단일 민족이라는 것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국가 성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된 기획일 뿐, 실제 현실과는 다르다는 의미이다.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단일 민족과 같은 허구의 환상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란 타자에 의한 위협 속에서 스스로의 결정권을 지켜내 왔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말이다. 그러니 ‘광복’이란 단지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으로부터 국가적 역량의 문제와 전 세계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해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다는 사실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에 뿌리 깊게 새겨진 상처로서 부각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난 8월 15일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다소 의아한 충격을 받았다.이날 대통령은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임을 강조하며, “공산주의 및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언급을 반복하며, 광복절의 의의와는 다소 거리가 먼 연설을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광복절이라는 것이 외부세력으로부터 국가의 정체성과 자결권을 되찾았다는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자면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이 전혀 이해 못할 성질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하지만 광복이라는 단어에 있어 그 대상이 일본 제국이었으며, 그리고 그러한 과정으로부터 하나의 국가가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는 역사적 비극을 상기하자면, 이러한 대통령의 연설은 지나친 감이 있다. 대통령으로서 우리가 누구로부터 무엇을 광복하였는가에 대한 고려가 지나치게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더욱 의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러한 대통령의 이어진 연사 때문이다. 여기에서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공산주의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 등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말했다.명확한 대상 없이 이루어진 이와 같은 발언은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진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위해 활동해온 사람들을 순식간에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단지 반국가세력의 위장에 불과한 것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무엇을 통해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진보라는 가치가 사라진 자유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면 광복절은 우리가 잃어버린 자결권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말은 국민을 두 편으로 갈라 세우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자결권과 정체성의 의의에 대해 강조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반국가 세력을 운운하고,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2023-08-22

풍요와 빈곤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건 사소한 일상이 아닐까. /언스플래쉬 요즘 나의 일상은 단출하다. 오전 9시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 대부분은 소설을 쓴다. 수업 준비를 하거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도 한다. 점심은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해결, 식사를 마치면 강아지와 함께 작업실 인근 공원을 산책한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저녁을 만들고 영화나 만화책을 보며 빈둥거린다.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하고 다음 날 먹을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나는 이런 일상을 간절히 원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창작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소설 마감을 위해 새벽 5시에 책상 앞에 앉았고 개인적인 작업보다 그쪽에서 원하는 일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은 영화와 책은 매일같이 쏟아졌으나 그것을 누린다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호교환, 그러니까 저쪽에선 월급을 주고 이쪽에선 내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행위를 충실하게 이행해야 했다. 주말에 늦잠을 자면 죄책감을 느꼈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부릅뜨면서 생각했다. 글만 쓰고 싶어. 그럼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아.그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완벽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삶의 모양이 이제야 완성되었다며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누벼야 옳았다. 안온한 공간에서 오롯이 글쓰기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또 다른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더없이 가난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매달 통장에 일정하게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졌다. 모아둔 돈을 차곡차곡 까먹는 날이 늘어난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모든 직장인이 부르짖는 ‘자유’는 결국 ‘경제적 자유’임을. 통장에 찍힌 숫자에 따라 마음의 크기가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한다는 것을.오랜만의 외식비가 과하지 않았나 안절부절못한다. 온라인 쇼핑몰의 결제 버튼 하나 누르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해지기도 한다. 특히 친구들을 만나면 보풀이 일어난 속주머니만 만지작거리는 사람의 마음이 된다. 누구는 강남에 몇 평짜리 집을 샀고 누구는 보통의 연봉을 몇 주간의 여행에 썼다는 소식.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는 부와 명예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한 것만 같다. 내 삶의 규모가 남들보다 터무니없이 작다는 게 실감 나는 날에는 누구보다 가난한 마음으로 귀가하게 된다.우리 사회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할머니는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나의 부모는 한국전쟁 이후의 지리멸렬한 가난을 겪었다. 이러한 과거를 딛고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 또한 그만큼 높아졌다.그러나 여전히 청년들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실제적 가난을 견디는 무수한 이들도 있으나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다. 타인의 일상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세상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고등학교 동창이 어느 동네 아파트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아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삶이 화려할수록 나 자신의 초라한 삶이 도드라져 보인다. 더 잘 살고 싶어서 힘차게 발을 굴러도 늘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것 같다.그렇지만 풍요와 빈곤의 뜻을 자본의 논리에서 찾는 순간 많은 것이 무너지게 된다. ‘잘 산다’라는 개념의 동의어를 ‘돈이 많다’로 두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많은 물질을 소유한 사람도 마음이 가난할 수 있고, 손에 쥔 것이 없더라도 그 안에서의 풍요를 찾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되묻는 일이다. 무엇을 추구하고 또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작업실에 앉아 있노라면 창밖으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팔월의 빛과 비를 맞고 자란 나무는 높고 푸르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 방사형으로 퍼지는 것을 목격한다. 세상의 그 무엇도 낚지 않는 그물 같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름, 내 옆을 지키는 작가들의 문장과 부모님이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만든 도시락 반찬, 반려견의 고요한 낮잠과 내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가는 낯선 이야기. 이 모든 게 나를 풍요롭게 하는 사소하고도 중요한 일상이다. 불투명한 내일에 관한 불안도 끌어안아야 한다. 풍요도 빈곤도 내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2023-08-22

다름의 인정

최선희 경운대 교수 “매사 내 의견에 반응이 없는 남편 때문에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법륜 스님 강의를 한 번 들어보세요.”목욕탕 찜질방에서 어떤 기혼 여성 두 분이 나눈 대화이다. 법륜 스님이 어떤 강의를 하는지 궁금해져서 유튜브 방송에서 스님의 강의를 들어보았다. 강의는 대부분 어렵고 힘든 고민을 상담하는 내용이었는데, 스님이 설파한 주요 해결방안은 “다 달라서 그래요.”였다. 그렇다. 우리는 참 많이도 상대방의 다름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살아가면서 그 갈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상대방의 외모나 성격, 특성이 같지 않음은 당연한 사실인데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나의 기준과 판단으로 평가하면서 타인의 성향이나 의견이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학생들에게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점을 물어보면, ‘다르다’의 반대말은 ‘같다’이고 ‘틀리다’의 반대말은 ‘맞다’라는 예를 들면서 두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이렇게 ‘다르다’와 ‘틀리다’의 의미는 분명한데, 우리는 특히 ‘다르다’로 표현해야 하는 경우에 ‘틀리다’를 습관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이 문제가 단순히 습관에 불과한 것일까.혹자는 사회가 각박해져 서로 경쟁하게 되면서 자신의 의사를 좀 더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된소리와 거센소리의 어감을 사용한다고 진단한다. ‘다르다’를 사용해야 할 곳에 ‘ㅌ’의 거센소리가 들어간 ‘틀리다’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진단이 근본적인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고 “저 사람들은 우리와 피부색이 좀 틀려.”라는 표현을 자주하곤 한다. 이것은 다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다. “둘째 아이가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큰 아이하고 너무 틀려서 속상해요.”라는 부모의 하소연은 ‘다름’에 대한 수용과 인정의 부족이다. 우리 모두 다르게 태어났는데 왜 ‘틀리다’고 생각 하는가.지금은 작고한 한 야구감독이 우수한 선수의 단 하나의 단점을 고쳐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으로 일어난 실수를 방송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무수한 훈련과 채찍질로 자신이 지도했던 훌륭한 야구 선수의 단점을 고쳐주었더니 그가 가지고 있던 많은 장점이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한 것이다. 교각살우는 소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작은 흠이나 결점을 고치려다 도리어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마다 특성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다르기 때문에 조화로울 수 있고 각양각색의 빛깔로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 덤으로 ‘다르기’ 때문에 협력하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 뿐인가. ‘다름의 인정’은 타인을 이해하게 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출발점이다. 지금 바로 표현해보자. 아내와 남편에게 “당신은 ~점에서 나와 다르게 특별해요.” 친구나 자녀에게 “~생각을, ~것을 다하다니 넌 정말 나와 달라. 그리고 특별해.”

2023-08-22

墨香 피는 인사동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조석으로 느껴지는 선선한 공기와 또렷해지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한낮으로는 아직 노염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도, 여름을 마감한다는 처서(處暑)가 오늘이고 보면 늦더위도 이제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난히 심한 무더위와 폭우, 태풍의 상흔이 안타까운 생채기로만 남긴 채 계절은 가을채비를 하고 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심각해지는 기상이변의 넌더리가 우려스럽기만 하다.더위가 숙지는 여름의 끝자락에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는 늦더위보다 후끈한 열기로 서예와 문인화의 향연이 펼쳐져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전국의 유망 서예작가 12명이 ‘월간 서예문화’의 초대를 받아 오늘날의 시대성을 살리면서 작가의 개성을 담아낸 다채로운 작품을 부스개인전 형태로 선보인 것이다. 즉, 부분적으로는 할당된 공간에서 독창성을 살린 작품을 전시하는 소규모의 개인전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필묵의 세계화展’의 취지로 한국서예의 단면을 보여주고 다양성의 조화 속에 서예와 문인화의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하는 그룹전으로 열린 것이다.문화와 예술, 트렌드의 원천(源泉)인 서울에서 전국의 유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나아감이 더욱 어렵고 그 보이는 것도 기이한 서예의 세계에 흠뻑 빠져, 오랜 세월 외곬스럽게 일궈온 한묵(翰墨)의 정념을 거침없이 넓고 깊게 펼쳐 보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작가 특유의 통찰과 소신의 다변화된 붓질로 전통서예의 재해석과 미래지향적인 요소를 탐색하는데 일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녹아들고 특장의 서예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필묵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과연 인사동(仁寺洞)은 전통문화의 거리답게 도심 속에서 낡지만 귀중한 전통과 유서 깊은 문화가 서린 소중한 공간이었다. 길거리마다 대부분 외국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갤러리나 전통음식점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왕래부절이었다. 큰길 옆으로 사이사이 이어지는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힌 곳에는 화랑이나 필방, 전통공예점, 고미술점, 전통찻집, 카페 등이 밀집돼 있어서 독특한 멋이 있고 교류와 소통, 체험과 만남의 장소로 이상적이었다.그렇게 근사한 곳에서 작품전을 열고 새로운 분위기에 젖어드는 기회를 갖는 것은 정말 선물 같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생면부지의 관람객이 작품전의 느낌을 방명록에 일필휘지하고, 화려한 차림의 어느 외국인이 서예작품에 매료된 듯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며 이색적으로 환호하는가 하면, 각별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몇 번씩 다시 찾거나 특히, 풀잎 하나로 즉석에서 축하연주를 해주신 ‘풀피리 부는 도깨비, 풀깨비’ 선생 등의 분들이 새삼 고맙고 정겹게 느껴진다. 인사동을 묵향으로 뜨겁게 달군 ‘2023 KOCAF’는 의미있는 진전과 좋은 추억으로 처서와 함께 마무리되어 다행스럽고 감사하기만 하다.

2023-08-22

연애의 시대, 전찻길에 두고 온 사랑

‘나도향(羅稻香)’이라고 하면,‘뽕’이나 ‘벙어리삼룡이’처럼 향토적인 색채 짙은 작품을 몇 편 썼던 작가로만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실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신문에 본격적인 연애소설을 최초로 연재했던 사랑의 작가였다. 나경손(羅慶孫)이라는 본명을 두고, 소설을 쓸 때는 주로 벼의 향기라는 의미의 ‘도향(稻香)’이라는 필명을, 번역이나 평론을 쓸 때는 주로 ‘나빈(羅彬)’이라는 필명을 썼다.생원집에 하인으로 있던 벙어리 ‘삼룡이’가 주인집에 시집온 아씨가 부당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참다못해 복수하는 이야기나, 누에 먹일 뽕나무잎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아귀들의 수라도만큼 강렬한 것은 아니었지만, 1922년에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던 ‘환희’는 당시 일제에 강점된 한국에서도 연애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는 신호 같은 것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연애는 인간들 사이의 마음의 문제지만, 그 실질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연애편지를 쓰고, 데이트를 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들은 단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이고, 라이프스타일이다. 집안끼리 날짜와 사주를 맞추는 옛날의 제도에서 벗어나, 1920년대에 들어서면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연애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게다가 이 작품에는 1930년대 신문 삽화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석영(夕影) 안석주(安碩柱)가 처음으로 삽화를 그리기도 해서, 여러 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본래 그림을 그렸던 안석주는 매일 그려야 하는 삽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처음에는 너무 완벽한 유화 스타일의 삽화를 그리려고 하다 나중엔 힘이 부쳤는지 중도에 그만두었다. 나도향(羅稻香·1902~ 1927). 이 소설 ‘환희’는 가난한 고학생인 김선용에게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은행원 이영철이 자신의 동생 이혜숙을 소개해주려고 하며 시작된다. 어린 이혜숙은 가난하고 잘 생기지 못한 김선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영철이 일하는 은행의 은행장 아들 백우영에게 끌린다. 하지만, 모처럼 오빠의 소개인 만큼 김선용과 덜컥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해 버리지만, 난봉꾼 백우영에게 속아 덜컥 그에게 겁탈을 당하고 그만 그와 결혼하게 되고 만다. 김선용과 백우영 사이에 있던 이혜숙, 백우영과 이영철 사이에 있던 기생 설화를 둘러싸고 결국 누군가 죽고, 누군가 영영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야만 끝날 청춘의 복잡한 삼각관계가 펼쳐지는 것이다.이 나도향의 ‘환희’는 연애로맨스소설의 클리셰인 연애삼각관계의 정석을 보여준 창작 소설의 첫 번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 나도향은 전차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주인공 마음의 미세한 결을 세밀하게 읽어낸다. 이미 사랑에 빠진 김선용은 이혜숙에게 가볼까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이면서 그 기로에서 기다린다. 내심으로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가 있지만, 일말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그로 하여금 반대편의 플랫폼에 서 있도록 하는 것이다.뻔하디 뻔하고, 판에 박힌 이야기지만, 연애로맨스 이야기가 그렇게 매번 반복되어 나오는 것은 그것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대에 따라, 나이에 따라, 그 뻔한 플롯의 이야기는 생생하고 가슴 아려오는 이야기가 된다. 백 년 전 전찻길에서 사랑하는 이를 먼 발치에서라도 보려고 반대편 전차를 힐끔거리는 못난 주인공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8-21

이산해(李山海), 유배지 평해에서의 3년

기성은 울진 평해의 옛 이름으로 과거에는 강원도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지금은 청정지역으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기에 좋은 장소이지만 조선 중기만 해도 유배를 보낼 정도로 척박한 곳이었다. 높은 산맥을 넘지 않으면 갈 수 없고, 농사에 적합하지 않고, 비나 눈이 아니면 바람이 불고, 안개도 자욱하여 날씨의 변덕이 심했다고 이산해(1539~1609)의 유배문학 ‘아계유고(鵝溪遺稿)’에 전해진다.이산해는 고려 말 유학자 이색의 7대손으로, 1588년 우의정, 1590년 영의정에 올랐던 동인의 중심인물이다. 서인 세력이 몰락하고 그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온건파 류성룡(남인)과는 달리 강경한 태도(북인)를 보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선조의 몽진을 추진하였다가 이듬해 류성룡·이양원과 함께 파직되어 평해로 유배를 떠났다.유배형은 조선의 5대 형벌 사형·유형·도형·장형·태형 중 사형 다음의 중형이었다. 중죄를 지은 자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보내 임금이 사하지 않으면 종신토록 살게 하는 형별로, 양반은 물론 평민과 천민에게도 내려진 벌이었다. 잘 알려진 유배지들은 대개 바닷가·변경·오지· 섬이었다. 흑산도·추자도·제주도, 삼수·갑산, 강원도 오지, 포항 장기 등이 있었다. 유배 생활은 유배지로 가는 것부터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포함한다. 유배지로의 여정은 자비로 해결해야 했고, 압송관의 경비도 일부 부담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루 평균 8~90리는 가야 했기에 말을 타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 돈이 드는 일이었다. 유배지에서의 삶은 고을 수령이 지정해 준 보수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생활의 질이 판가름 났다. 보수주인이 풍족한 이라면 좋은 방 한 칸에서라도 지낼 수 있었지만, 대개는 유배객이라는 천덕꾸러기를 떠맡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아전·군교·관노 등이 강제로 맡았다. 다산 정약용은 곡산부사로 있을 적에 고을 기금을 별도로 마련하여 유배객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게 하였다고 하니 그만큼 돈이 드는 일이기도 했다. 인목대비의 어머니 노씨는 왕후의 어머니였음에도 막걸리를 팔며 생활했고, 선조때 홍성민은 유학자임에도 상업으로 식량을 보충해야 하는 유배지의 삶을 한탄했다. 정조때 안조환은 1년을 옷 한 벌로 버티며 추운 겨울을 보냈고, 동냥을 해서 배를 채웠다고 전해진다.이산해는 곧 정계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관리였기에 유배지로의 여정이나 삶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전란 중이라 초호화판 유람인지 유배인지 구분 안 될 정도로 경우가 없지도 않았다. 철종때 김진형은 삼천석꾼을 보수주인으로 삼아 선비들과 음주가무를 즐겼고, 이를 북천가에 고스란히 남겼다. 선조때 조헌은 유배가는 중에 활쏘기와 만찬을 즐기다 숙취로 쉬어가는 여유를 부렸으며, 광해군때 이항복은 유명한 기생 조생의 집에 일부러 하루 묵어가기도 했다.1593년 3월, 이산해는 강릉·속초·삼척을 거쳐 유배지 강원도 울진(현재는 경북) 평해 서경포에 도착했다. “말은 마치 새소리와 같이 괴이하여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방에서는 비린내가 나서 코를 휘감아 구역질이 나려 하였다. 밥을 차려 왔는데 소반이며 그릇이 모두 악취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해빈단호기’의 일부) 한양 양반의 눈에 바닷가 오지의 집단 거주지 모습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산해는 평해의 서경포·서촌·달촌·화오촌·황보촌 5곳에서 3년간 우거했다. 그의 유배문학 ‘아계유고’에서는 울진 평해의 16세기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자연풍광, 백성의 삶, 풍속, 민간신앙 등 그리고 유배지에서의 삶을 알 수 있다. “백암산 아래에 온천이 있어/ 한 표주박 물로도 온갖 병이 낫는다네/ 이제부터 자주 가서 몸을 씻어서/ 이 늙은이/ 묵은 시벽을 치료해 봐야지/(‘온탕정’)” 백암온천은 당시에도 병을 낫게 해주는 효염으로 잘 알려져 있었던 듯하다.또한 “불을 때면 매캐한 연기가 늘 방 안에 가득하고 비가 오면 도롱이와 삿갓을 쓰고 앉아 있어야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달촌에서의 생활이 녹록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화오촌에서는 소나무를 이용하여 피서지를 마련하고 촌로와 보리술을 마시며 어울리는 소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황보촌에서의 2년 6개월 생활은 앞의 4곳에 비하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보수주인 곽간은 이산해 부친이었던 이지번이 중종때 유배와서 머물던 인연인 곽생의 손자였다. 곽생은 이지번이 기거지 벽에 써둔 시를 떼어내어 보관하고 있기까지 했다. 이산해의 유배 생활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위리안치가 아니었던 만큼 평해 안에서는 생활은 팍팍하지만 견딜 수 있을 정도였던 듯하다.이산해는 평생 시 840수를 남겼는데 그중에서 483편을 평해 유배 기간에 적었다고 한다. 정약용은 18년간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고, 윤선도는 25년간 4번의 유배 끝에 ‘어부사시사’·‘오우가’를, 정철은 ‘사미인곡’·‘속미인곡’을 남겼다. 척박한 유배지의 어려움과 고독 등을 문학 활동으로 풀어낸 유배객들의 마음이 지금도 유배문학에 남아 현대인들에게 말을 붙이는 듯하다. 현재가 어렵다고 주저앉지 말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이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8-21

허대만을 기리며

최광열 포항시의원 허대만 위원장이 떠난 지도 벌써 1년이다. 생을 마감하기 전 외로운 투병 생활 중에 몇몇 시의원과 경주 동국대병원을 찾았다. 코로나 19가 한창이라 병문안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에 보지 못하면 살아 다시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직감이 들어 무작정 찾아갔다.다행히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야윈 모습에 피골이 상접했지만, 눈은 살아 있었다. 손을 내밀고 반가운 악수를 청하는데, 힘이 느껴졌다. 몇 마디 인사말과 응원, 격려의 말이 오간 후, ‘내가 죽으면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장’을 꼭 해달라고 당부했다. 마음이 먹먹했고, 이미 죽음을 담담하게 준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허대만 위원장은 다 알다시피 1995년 지방의회 선거에서 26세의 나이에 전국 최연소 시의원으로 당선됐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경실련 운동을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인재로 촉망받았다. 젊은 나이지만 매우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정활동을 한 시의원으로 꼽혔다. 이후 경북도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이 시기에 허대만 위원장은 포항 KYC와 인연을 맺었다. 상임대표를 맡아 포항시 공무원 친절도 조사 및 포항시 예산결산 분석 작업을 이끌었고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시민운동단체가 전문역량을 키워 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견제 및 감시를 통해 시민 혈세의 낭비를 막고 시민들의 이익이 지켜지는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것은 큰 성과였다. 필자는 포항 동 지역 어려운 학생들의 급식예산을 포항시의회가 삭감하는 사건을 보면서 의회 진출을 고민했고, 2014년 후보를 나섰을 때, 허위원장이 두 번을 찾아왔다. 자당 후보를 낼 수도 있었지만 내지 않고, 연대해 도와주었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거물급 정치인의 지지 방문도 주선해 줬다. 그 덕분에 많은 득표를 할 수 있었다. 허위원장은 내게 민주당 당원이 되 달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시민운동을 하는데 제약이 있지 않을까 생각, 그렇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2018년 지방선거에 공천 제안을 했지만, 몸이 아파서 나갈 수 없다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 해준 사람을 조건 없이 공천해 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2020년 총선이 다가왔다. 마침 우리지역에 도의원 보궐선거가 생겼다. 당시 조국 장관 여파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이 말이 아니었다. 아무도 나가려 하지 않았고, 나간다고 해도 패배는 이미 정해진 사실이고, 주변사람만 고생시킬 것이 뻔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결심한 허대만 위원장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다음번 지방선거에서는 시민운동단체에서 추천하는 사람을 포항시의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청을 하자 그는 10여 명의 도·시의원이 모인 자리에서 확약해 주었다. 선거는 끝났고, 많은 주변 사람들이 당시 약속은 선거가 급해서 한 것이니 지키고 싶어도 당내문제로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도 지키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시민운동단체에서도 나갈 사람이 없는 형편이었다. 한데,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허위원장을 대리하는 한 분이 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이미 기초의원은 선거제도 개편으로 다수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이 배출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허위원장은 더 나아가 기왕이면 내게도 같이 의회에 입성할 것을 권했고, 결과는 약속대로 되었다. 선거를 치르면서 허 위원장의 병세가 그렇게 심한지 알아채지 못했다.나는 허대만 위원장이 시민운동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남달랐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는 시민운동과 정치가 어떻게 관련되어 상호발전 할 수 있는지를 긴 시간을 돌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떠났다. 개인의 영달과 명예를 원했다면, 포항을 떠나 수도권에 출마 당선되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9번 출마, 8번의 낙선을 통해, 한 개인이 겪었을 고뇌와 되지 않는 길을 간다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았을 시선에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고, 끝이 없는 지역감정으로 지역 불균형정치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불안감, 이 길에 함께 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끝내 병을 얻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더 함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우리는 낙선이 허위원장 개인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지역감정과 진영논리, 유권자의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도 한몫했다고 본다. 제2의 허대만이 생기지 않도록 선거제도 개혁을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 추진해 주기 바란다. 또한, 허대만의 정신을 따르는 선후배 동지들이 많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고인이 원했던 지역 균형 정치가 포항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고대해본다.영원한 영면을 바라며….

2023-08-21

물 재해 대응과 물산업 발전 허브지역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제6호 태풍 카눈은 지난 10일 오전 경남 거제에 상륙하여 대구와 경북을 관통하여 11일 오전 6시쯤 휴전선 넘어 북한 평양 남동쪽 80㎞ 지점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됐다. 지난 7월 중순 충청권과 전북, 경북권 내륙에 내린 극한의 집중호우로 인한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보다는 훨씬 적은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그동안 비교적 수해 피해가 적었던 대구지역에도 군위군 남천 제방이 유실돼 인근 농가, 비닐하우스와 축사 등이 물에 잠겨 1명이 사망하고 많은 재산손해를 입었다.물은 기본적으로 생명과 경제의 중요한 기반이며, 인간 사회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자원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후변화와 도시화 등으로 인해 물 재해 문제도 올해처럼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이번에도 파악된 것과 같이 집중호우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고 가뭄 문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물 재해들이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주어 사회적 안전과 경제적 안정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물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물 재해 대응기술과 물산업의 발전이 절실하다.집중호우로 인해 발생한 홍수는 도시 내 인프라와 주택을 침수시키는 등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은 물관리 시스템의 혁신과 지능화에 의존하게 된다. 스마트 워터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실시간 데이터 모니터링과 예측을 통해 홍수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수문 관리와 댐 운영을 최적화하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홍수 예측 모델을 개발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이와 반대로 가뭄은 심각한 물 부족 현상으로 농작물 생산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물 부족으로 인해 농작물의 생육이 어려워지며 식량 공급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가뭄 대응을 위해서는 물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과 보존이 필요하다. 물 재활용과 물관리 기술의 개발을 통해 가뭄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물 적정 사용 교육과 농업 방식의 혁신을 통해 물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이처럼 물산업의 발전은 지능형 물관리 시스템을 통해 물의 효율적 사용을 유도하고, 물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한다. 물산업의 발전은 현재까지의 전통적 산업과는 달리 정부, 기업, 학계 등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의 지원과 투자, 기업의 기술개발과 투자, 학계의 연구와 혁신 등이 모두 결합되어야 물산업이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의 참여와 국제적인 협력도 중요하다. 물 문제는 국경을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전 세계적인 물 부족 문제에 대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2015 대구경북 세계물포럼’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대구와 경북이 ‘물 재해 대응과 물산업 발전 허브지역’이 되어야 한다.

2023-08-21

향기산업이 뜬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향료를 조합, 가공해 향수를 만들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향기산업이 뜨고 있다.향기산업이 치유와 힐링의 영역에서 마케팅 수단으로 확대되고 이종 산업간 융·복합을 통해 환경·식음료 등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가고 있다.향기산업은 국내 시장 규모만 2025년 1조 원 이상으로 예상된다.향기산업과 AI(인공지능), IoT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융합된 센테크(Scent-tech)의 발달과 함께 시장 규모와 영역이 확장되는 추세다.센테크(Scent-tech)는 향기의 단순 조절을 넘어 전송·수신·감지 및 조합·분석하는 기술을 말한다. 새로운 향료 발굴, 개인별 선호 향기 분사와 악취 제거, 시청각 자료에 향기를 입히는 색다른 경험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최근에는 ‘원하는 공간’에 ‘원하는 향’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농도’로 사용하는 향기 조절 장치 및 발향 기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센테크는 멀미 완화 및 수면 무호흡증 치료, 환자의 호흡을 탐지해 암을 진단하는 등 의료 분야로까지 보폭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요가 무궁무진할 전망이다.이스라엘의 한 업체는 향기를 활용한 수면 장애치료 디지털 기기를 개발 중이다. 미국의 한 대학은 전자 코를 활용해 암을 발견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향기산업 전문가양성과정’을 만들어 교육생을 모집, 관심을 끈다. 지역의 향기산업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지역 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자 마련됐다. 프랑스의 향기산업 교육과정을 벤치마킹해 향기 마케팅, 향인지 관련 뇌과학 기초 과정 등으로 진행된다. 향기산업이 지역의 새로운 미래 산업의 하나가 되었으면 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21

안동호 쇠제비갈매기 생태관광 자원됐다

멸종위기종으로까지 내몰린 쇠제비갈매기가 안동호에 서식지를 틀어 이젠 생태관광 자원으로 거듭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10여 년 전만해도 주 서식지인 낙동강 하구에는 매년 4월과 7월 사이 수천마리의 쇠제비갈매기가 찾아들었다. 호주와 필리핀 등지에서 겨울을 보내고 1만km가 넘는 거리를 날아 우리나라 낙동강 하구에서 여름 한철을 보낸 철새다.그러나 서식지 주변의 환경이 나빠지면서 수년 전부터는 개체수가 줄고 낙동강 하구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것이 2013년 5월 담수호인 안동호에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세상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본지는 전국 최초로 내륙지방에 정착하기 시작한 쇠제비갈매기의 생태과정을 수년간 추적 보도해 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KBS가 이어 ‘쇠제비갈매기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다큐를 제작, 방영하기도 했다.안동시는 내륙지방인 안동호에 찾아온 쇠제비갈매기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인공섬을 조성키로 하는 등 쇠제비갈매기 보호에 적극 나섰다.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2020년 물 위에 뜬 구조물 위에 모래를 깔아 기존의 서식지와 비슷한 인공섬을 만들었다.이런 노력으로 올해로 11년째 쇠제비갈매기가 안동호를 찾아왔다. 쇠제비갈매기의 새로운 서식지로 정착한 것이다. 안동시는 이런 공로로 작년 환경부가 후원하는 자연환경 대상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안동시는 쇠제비갈매기 서식지를 찾는 관광객이 매년 늘어남에 따라 생태 탐방 인프라 구축 등 쇠제비갈매기를 소재로 한 생태관광 사업도 벌이기로 했다. 서식지 주변에 탐조용 전망대를 만들고 고배율의 관촬 망원경도 설치한다. 경북도도 이에 힘을 보태 쇠제비갈매기 인공섬 중심으로 수상관광코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한 각계의 노력이 바닷새 쇠제비갈매기의 내륙지방 안착이라는 놀라운 변화를 이끌었고, 이것이 안동의 새로운 명물거리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자연환경 파괴가 심각한 시점에 자연생태계를 살려 관광명소화하는 안동시 등 각계의 자연보호 노력이 돋보이는 쇠제비갈매기 소식이다.

2023-08-21

집권당의 ‘수도권위기론’ 왜 실체가 없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수도권 위기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친윤(윤석열)계 핵심이 주류인 여당 지도부는 내년 총선의 여야 판세를 ‘서울 박빙 우세, 경기·인천 박빙 열세’로 진단하며, 수도권 위기론은 실체가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자체 조사와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가 그 근거다. 엠브레인퍼블릭을 비롯한 4개 여론조사 회사가 지난주 전국 유권자 1천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서울은 국민의힘 32%, 민주당 21%, 인천·경기는 국민의힘 33%, 민주당 23%로 나타났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지난주 윤상현·안철수 의원 등이 수도권 위기론을 언급한 이후, 이철규 당 사무총장이 “배를 침몰하게 하는 승객은 함께 승선못한다”며 총선공천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여당 지도부의 생각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집권당 지도부의 이러한 인식은 지극히 위험하다. 현재의 당세(黨勢)를 비교해 보면, 여당의 수도권 위기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지금 여당의 수도권 의석은 18석으로 민주당 97석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내년 총선에서 여당 후보가 민주당 현역의원을 이기려면 ‘국민의힘 또는 윤석열 바람’이 불거나, 선거자원(조직력, 자금력, 홍보전략)에서 앞서야 한다. 지금으로선 둘 다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야당 현역을 상대할 경쟁력 있는 인물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안철수 의원이 “대부분 수도권 의원이 민주당이다 보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그들과 대항해 싸우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말을 한 것이다.수도권의 경우, 내년 총선에서 중도층과 20~30대가 판세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이들을 지지자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다양한 비판세력을 멀리하며 외연을 좁히고 있으니, 당세가 갈수록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수도권위기론의 실체가 이보다 더 명확한 것이 어디 있나.

2023-08-21

진정성이 마음을 움직인다

김규인 수필가 표를 위한 것이라면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말도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자식을 가르치는 교사의 밥줄을 끊는 것도 서슴없이 한다.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서는 국민도 나라의 장래도 안중에 없다. 같이 한다는 생각보다는 상대를 누르려고만 하고 잘못에 대한 사과는 미적거린다.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 사회는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을까. 음식 프로그램에서는 오래된 장맛을 칭송하는데 일상에서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본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남의 잘못에 대하여서는 조그만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잘 숙성된 김치를 먹는 문화민족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자기만의 생각으로 갖은 이유를 대어가며 잘못에 대한 사과를 미루다가 사회의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서 하는 사과가 계속된다. 사과하는 자리에서도 변명만 늘어놓는 일로 사과를 대신한다. 그렇게 하니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사과를 받는 사람도 석연치 않은 사과에 마음만 불편해진다.사과는 책임의 소재를 명백히 밝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피해를 본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밝히고 피해 보상하여야 한다. 아울러 자기 행동에 대한 반성과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사과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미사여구로 포장된 화려한 문구가 아니라 거짓 없는 마음만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사람이 하는 일은 실수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수습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로 알려진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삼성 이재용 회장의 사과는 사과의 정석으로 통한다.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한 삼성서울병원의 사과 주체와 잘못을 구체화하고 책임 소재도 명확히 했다. 아울러 개선 방향을 밝히고 치료에 전념한 의료진에 대하여서 배려한 점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로 오히려 삼성 그룹의 주가는 올라갔다. 삼성 이재용 회장의 사과에는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는다.세계인 잼버리 대회가 새만금에서 열렸다. 개최 전부터 준비 부족에 대한 지적과 이로 인한 피해가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하물며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과 한반도를 관통하는 태풍은 잼버리의 운영을 더욱 어렵게 했다. 하지만 정부의 발 빠른 대응으로 세계로부터 비난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이제 잼버리는 끝났고 문제에 대한 책임과 사과가 이어질 것이다. 보다 진정성 있는 사과가 요구된다. 잼버리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건이 터지고 마무리되지 않은 채로 인터넷을 달군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불편하다. 여기에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엮일 때 한마디 말없이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그렇지 않아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인데 말이다.불편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기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에도 바쁘다. 얼굴을 마주하고 푸른 하늘을 볼 수는 없는지. 지나간 삶을 돌아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언제나 진실한 마음이었다. 내일은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23-08-21

경주 속의 작은 아시아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와 경주병원 쪽에서 형산강에 놓인 동대교를 건너면 경주시 성건동이 나온다. 이곳은 한때 경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부유한 동네 중 하나였지만, 인근 지역들이 주택지로 개발되며 지금은 과거에 비해 한적한 동네가 되었다. 경주 시민들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중앙시장이 성건동에 위치해 있으며, 동대사거리 일대는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즐겨 찾는 경주의 대학로로 유명하기도 하다.성건동 서쪽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경주는 포항이나 울산 같은 산업도시와 인접해 있으므로 외곽 지역에 산업단지가 발달했고, 그곳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중국인, 동남아인, 러시아인, 중앙아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 지역에 모여 살며 이국적인 풍경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필자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요리를 무척 좋아한다. 서울에 살 때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몽골 음식점이 모여 있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근처의 ‘중앙아시아 거리’를 자주 찾곤 했다. 포항에서 일하게 되면서 중앙아시아 요리를 자주 접하기가 어려워 아쉬웠는데, 경주에 러시아 요리 ‘맛집’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 전 성건동을 찾아가 보았다.성건동 일대에는 러시아어와 중국어 간판을 단 식당, 식료품점, 찻집, 휴대폰 판매점 등이 즐비해 마치 외국 여행을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꽤 늦은 저녁때라서 문을 닫은 상점이 많아 거리가 어둑한 느낌도 받았지만, 유모차를 끌고 한가롭게 산책하는 가족을 보니 여느 주택가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미리 검색해둔 식당은 다행히 열려 있었다. 중앙아시아식 꼬치구이인 샤슬릭과 볶음국수인 라그만을 주문하려 했는데 묘한 메뉴가 보였다.‘고려인 국시’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냉국수와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고려인 된장찌개’가 그것이었다. 서빙하는 분은 전형적인 서양인의 모습이었지만, 요리하는 분이 고려인이거나 고려인에게 요리를 배운 듯했다. 샐러드 메뉴에는 특이하게도 매운 잉어회 샐러드도 있었다. 신선한 바닷고기를 구하기 어려웠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잉어를 이용해 회무침을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신라 천 년의 수도 경주로 중앙아시아 요리를 먹으러 갔다가 고려인 음식을 만난 것이다.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이유로 사람의 이동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문명사적 현상이다. 신라 시대에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경주까지 찾아왔고, 그중 몇몇은 꽤 오래 눌러살기도 했다.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무덤인 괘릉을 지키는 무인석(武人石)의 모델을 아라비아인으로 추정하기도 하니까.단, 그 이동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의 슬픈 역사가 그랬듯, 이념이나 국가 등에 의해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분단과 이산가족의 비극이 잘 보여주듯 거대한 힘이 개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해서도 안 될 것이다. 성건동에서 경주 속의 작은 아시아를 느끼며 역사와 개인, 이동과 이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2023-08-21

다양성을 존중해서 자유민주주의다

김진국 고문 한·미·일, 3국이 19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발표했다. 이로써 동북아의 신냉전 구도가 더욱 뚜렷해졌다. 북한 핵무기 등을 겨냥한 군사 안보는 물론 신흥 기술을 보호하는 경제 안보까지 3국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매년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안보실장, 외교·국방·재무·산업부 장관 사이에도 협의 틀을 만들었다.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동맹이 아니라고 했지만, 오히려 더 굳건하게 발전할 수 있는 구조다.국제 정세와 3국의 리더십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한반도는 강대국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지점이다. 게다가 적대적으로 분단 상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위험하게 불장난한다. 중국 굴기(5D1B起)로 미·중 대결이 날카롭다.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기로 미·러 갈등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북·중·러, 세 나라가 더 가까워졌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 한국과 일본의 협조가 절실하다. 북한 핵 위협이라는 당면 위기가 한국과 일본을 미국에 밀착하도록 몰아간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 리더십, 윤석열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력이 돌파구를 만들었다.한·미·일 협력체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 한·일 관계였다. 북·중·러가 흔들기 쉬운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으로선 국내 정치에서 큰 부담을 각오하고, 과감한 결단을 했다. 더구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집권 전반기를 마치고, 내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한다. 임기 후반의 승패가 걸려 있다. 일본 문제는 언제나 비인기 정책이다. 그런데도 정면 돌파했다.8·15 경축사에서 그 기초를 깔았다. 우리 현대사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 전체주의의 대결로 압축해, 세계의 자유·평화·번영에 이바지하는 것을 국가 과제로 설정했다. 한·미 동맹 70년의 연장으로 한·미·일 3국 협력체제를 그리고 있다. 광복절 경축사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던 셈이다.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대통령의 단호한 결기를 평가한다. 그렇지만 몇 가지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포용이다. 윤 대통령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라고 말했다. 그말이 맞는다. 하지만 민주주의·인권·진보 가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가치에 적대적 선을 긋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또 그는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라면서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프레임 전쟁으로 비칠 수도 있다. ‘빨갱이’, ‘종북’, ‘토착왜구’처럼 총선을 겨냥한 또 다른 ‘딱지’ 붙이기여서는 안 된다.최근 한국 외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을 뛰고 있다. 3국 협력체제는 역내안보 질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내부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 없이 밀어붙였다. 정권과 관계없이 효과를 지속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최근 윤 대통령을 조문한 노사연 씨에게 ‘개딸’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멀쩡한 배에 구멍이나 내는 승객은 승선할 수 없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온 사회가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 윤 대통령과 참모들의 대화가 일방통행이고,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못 한다는 말이 아직도 들린다.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 분들만 한 게 아니다.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공산주의에 기대한 분들도 있다. 북한의 선동, 심리전, 통일전선 전략이 계속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시민운동, 야당 활동에 딱지를 붙여서는 안 된다.윤 대통령 지지도는 30%대에 머물러 있다. 귀를 닫고 극단적인 편향성으로 스스로 고립되면, 정권 재창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훌륭하다. 관용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수파를 포용하기 때문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20

건국절과 광복절은 엄연히 구분해야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또 다시 건국절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잠시 거론 되었던 건국절 논쟁이 광복절을 계기로 재연된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평가와 맞물려 뉴 라이트 등 일부 보수 측에서는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날이며 오늘의 광복절이다. 뉴 라이트 계열에서는 오래전부터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 기념일인 1948년 8일 15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을 해왔다.이에 진보측뿐만 아니라 일부 역사학계에서도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선포되고 상해 임정을 수립한 1919년 4월 11일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상해 임정 창설 기념일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고 광복회 등 독립운동의 후손들도 일찍부터 주장해 왔다. 전자인 현행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자는 주장에는 많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상해 임정 수립 기념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첫째, 1919년 상해에서 출범해 중경까지 이동한 26년의 임정의 독립운동의 역사는 존중받아야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은 여러 정치적 이유로 임정 요인들을 홀대했다. 해방공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김구, 여운형 등 임정의 핵심요인들마저 대접은커녕 암살되고 말았다.뉴 라이트 계열에서 주장하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한다면 우리의 임정의 항일 독립운동사는 그 역사적 의의가 상실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국 1910년의 일본의 강제 병합과 일본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1910년 8월 29일 일제의 강제 병합으로 1919년 상해 임정수립까지 9년간 일시적으로 정부는 없었지만 빼앗긴 나라지만 나라는 엄연히 존재했다. 1948년 건국주장은 항일 독립운동의 26년의 역사마저 도외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역사를 부정하는 처사이다. 항일 독립운동의 법통 성을 계승하는 헌법정신에 따라 임정 수립기념일을 건국절로 규정하는 타당성이 높다.둘째, 당시 대한민국 임정의 활동은 어느 망명 정부보다 역할이 두드려져 임정 창립을 건국절로 기릴 가치가 충분히 있다. 상해 임정은 출범 시부터 대한 제국의 왕정을 폐지하고 국민주권의 민주 공화제를 건국 강령으로 채택하였다. 임시 정부는 1919년 9월 한성 임시정부, 연해주 임시정부까지 국내외의 임시 정부를 통합해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에 충실했다. 당시 상해 임시 정부는 교통 국과 지방행정기관인 연통제를 통해 본국과의 연계를 도모하였다. 중경 임정은 외무, 내무 국방, 재무, 법무 등 현대적 각료조직 완비해 실질적 업무를 수행했다. 당시 임시 정부는 외교적으로도 중국 장개석 정부뿐 아니라 프랑스까지 유일한 독립 정부임을 인정받았다. 당시 상해 임정에서는 일제의 식민지배의 부당성을 폭로하기 위해 파리 장서의 사절단까지 파견하고 중경 임시 정부는 광복군까지 창설하였다. 이러한 임정의 빛나는 활동과 역할에 비출 때 임정 설립 기념일을 건국절로 규정하는 타당한 일이다.셋째,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상해 임정 기념일을 건국절로 삼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민족적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현행 4월 11일 임정 수립 국가 기념일을 건국절로 승격할 경우 분단시대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격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해방 후 남북은 내부의 갈등과 미소의 영향 하에 단일 정부를 수립하지 못했다. 김일성은 항일 독립운동을 겉으로 내세워 북한 정권 수립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동북 항일 연군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소련으로 피신하여 소련 군대에 가담해 해방을 맞이했다. 그가 자랑하는 항일 빨찌산 활동과 소련 군대 가담 활동은 그의 주체사상에도 합치되지 않는다. 1919년 헌법격인 대한민국 임시 헌장을 선포한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을 건국절로 지정함은 북한 정권 수립과 법통성을 차단할 수 있는 기제로 활용할 수 있다.결론적으로 일부 보수진영과 뉴 라이트계열이 주장하는 8·15 건국절 주장은 항일 독립 운동사의 정신과 대의에도 어긋난다. 이는 일제 치하의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피로 얼룩진 항일 독립 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폄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이종찬 광복회장의 주장처럼 이는 일제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할 수도 있다. 현행 8·15 광복절은 일제로부터 실질적으로 해방된 날로 국경일로 그대로 지킬 필요가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1948년 8월 15일 취임기념사에서 ‘대한민국 30년’이라 선포하여 대한민국의 건국 원년을 1919년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9월 1일 공포한 대한민국 관보 1호에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8·15를 건국절로 제정해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모시자는 주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뜻에도 반하는 처사이다. 현행 광복절은 그대로 두고 건국 절 설정문제는 여론의 수렴과정을 거쳐 결정할 사안이다.

2023-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