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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토포악발(吐哺握髮)

홍석봉 대구지사장 ‘토포악발(吐哺握髮)’은 중국 주(周)나라의 주공(周公)이 식사할 때나 목욕할 때 손님이 찾아오면 ‘입에 있는 음식을 뱉고, 감고 있던 머리를 감싸쥐고’ 나가 영접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민심 수습과 정무 보살피기에 잠시도 편안함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훌륭한 인물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한나라 때 한영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이야기다.주나라는 무왕이 은나라 폭군 주왕(紂王)을 멸하고 세운 나라다. 무왕이 나라를 잘 다스려 정국을 안정시켜 가던 중 병사했다. 아들 성왕(成王)이 제위에 오르자,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이에 무왕의 아우이자 성왕의 삼촌인 주공단(周公旦)이 섭정하며 주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했다. 공자는 주공단이 며칠이라도 꿈속에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주공단을 이상적인 정치가로 꼽고 존경했다. 주공은 봉건제를 실시, 왕실의 안정을 꾀했다. 이때 주공의 아들 백금이 노나라로 부임하게 되자 주공은 “나는 한 번 씻을 때 세 번 머리를 거머쥐고(一沐三握髮), 한 번 먹을 때 세 번 음식을 뱉으면서(一飯三吐哺) 천하의 인재를 잃을까 염려했다”고 지침을 주었다. 주공은 아들에게 정무를 잘 보살피려면 잠시도 편히 쉴 틈이 없고 훌륭한 인물을 얻으려면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당부했다.위정자는 항상 인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로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바뀔지 주목된다. 만기친람(萬機親覽)할 수는 없다. 정치권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인재영입에 노심초사다. 토포악발의 심정으로 국정에 임하고 인재 구하기에 힘써야 할 터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0-18

무너지는 사회, 일으키는 교육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마음이 무너지는 일들이 발생한다. 중학생이 40대 주부를 성폭행했다고 하고, 60대 의사가 병원 간호사 탈의실에 몰카를 설치했다는 게 아닌가. 동방예의지국을 들먹일 까닭은 이제 무너져버린 것일까. 사회의 맨 앞에 선 정치와 언론은 정치놀음과 정략다툼으로 날이 새는데, 건강한 사회를 향한 담론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있는 것일까.나라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경제, 안보, 문화, 산업 등 수다한 과제들 가운데 우리가 쉽게 놓치는 명제가 있다.교육. ‘백년대계(百年大計)’는 먼 앞날을 내다보며 일으키는 일인데, 오늘 우리는 어떤가. 국가 공동체는 지금 교육으로 다져야 할 내일을 생각하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넘겨줄 다음세상에서 ‘다음세대’가 자신있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가. 내일을 고심하는 교육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가르쳐야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까.경쟁. 끝도 없는 경쟁.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으로 세상을 배웠다. 남을 이겨야만 성공하는 세상. 반목과 다툼이 일상이 되고 끝없는 비교만 넘치는 세상. 그런 끝에 만난 세상은 아름다운가. 이긴 자들이 과연 좋은 세상을 만들었는가. 주변의 모습에는 상처만 가득할 뿐, 행복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경쟁’의 본 뜻을 바꾸어야 한다. 진정한 경쟁의 의미는 남보다 나를 이기는 게 아닌가. 남을 밟고 일어서는 영광이 아니라 나를 이겨 거뜬히 서는 보람이 아닐까. 진짜 성공은 나 자신을 이겨내는 데 있음을 깨우쳐야 한다. 부족함과 게으름을 스스로 이겨내는, 나 자신을 이기는 경쟁이야말로 거친 세상을 이기고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첩경이 아닐까.선생님은 학생에게 누구인가. 끊임없이 응원하고 격려하여 더 나은 내일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날마다 부추기는 이가 아닌가. 반면, 실수를 지적하고 점수와 등수를 매기며 부족함을 드러내고 부끄럽게 만들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학생이 오늘 무엇을 해도 ‘오늘의 최선’을 던졌음을 인정하고 그보다 더 잘하도록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그립지 않은가. 오늘 학생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당겨다 주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배우려고 다가온 아이에게 모자란 부분만 탓하며 비난으로 가득한 하루를 만나게 한다면, 아이는 그날 무엇을 배우게 될까. 부정적 인성이 되어 자신과 주변을 어둡게하지 않을까. 교육은 함께 사는 공동체를 키워야 한다. 일등만 대접받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잘난 사람만 득을 보는 문화도 공평하지 못하다.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서로를 포용하는 정신을 길러야 한다. 세상은 힘들고 거친 다툼의 장소가 아니라, 친절하고 따뜻하여 함께 사는 마음이 가득한 곳임을 가르쳐야 한다. 한 사람도 놓고가지 않는 학교를 구현해야 하며 모두 함께 즐거운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나라의 백년을 준비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2023-10-18

포항 도심 관광명소 관리가 이래서야

환경문제 해결과 도심관광 명소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포항운하가 수질오염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운하 주변 주택가 주민들이 악취에 시달리는가 하면 비오는 날이면 수면 위로 쓰레기가 떠올라 포항을 찾는 관광객 보기가 민망할 정도라고 한다.포항운하는 2014년 1천6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동빈대교와 형산강을 잇는 옛 물길을 복원해 길이 1.3km의 운하로 탄생했다. 도시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크루즈를 타고 낭만을 즐기고 주변의 산책로에는 많은 사람이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특히 관광용 크루즈를 운영하면서 영일대 앞바다와 포항제철소 전경 등을 즐길 수 있는 포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알려진 곳이다.이 운하는 당초 관광 외에도 수십년간 양학천과 칠성천에서 배출되는 오수가 동빈내항으로 흘러들어와 심한 악취를 풍기는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바다 만조로 해수면이 높아지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포항운하 수질은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해수면이 높아지면 양 하천의 오수가 바다로 빠지지 못하고 역류되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는 운하관과 산책로를 잇는 육교 인근 수면에 집단 폐사한 물고기가 떠올라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사실이 이러한 데도 포항시는 아직 수질검사 한번 하지 않았다고 하니 관광명소 관리를 이렇게 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보태자.포항 스카이워크를 지나 북쪽으로 난 영일만북파랑길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동해안 절경을 걷는 해안 둘레길로 관광객의 인기가 높은 곳이다.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트레킹코스라 지금도 많은 이가 찾고 있다.그러나 트레킹코스 곳곳 절벽에는 금방이라도 비탈면에서 쏟아지는 토사로 무너질 것 같아 관광객을 불안케 한다. 그런데도 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안전망 설치를 미루고 있다. 일부 관광객은 “당장 산사태가 날 것 같아 차라리 폐쇄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꾸짖는다. 포항 명소 관광지는 곧 포항의 얼굴이다. 서둘러 보완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2023-10-18

신공항 사업성 충분… 이제 조기개항이 목표

대구시가 최근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대구경북신공항 건설 및 후적지 개발 사업성’을 분석한 결과, 긍정적인 결론이 나왔다. 삼일회계법인은 세계 4대 회계법인 가운데 하나인 PwC와 제휴를 맺고 있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다. 분석 결과, 사업가치를 나타내는 척도인 순현재가치(NPV)가 최대 2조5천억원, 내부수익률(IRR·시장이자율보다 높으면 투자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은 최대 12.3%로 나왔다. NPV는 0원을 넘으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며, 이번 분석에서 적용한 시장이자율은 6.74%다. K2 이전 후적지는 기존 K2부지(697만㎡·211만평)뿐만 아니라, 주변 개발제한구역(423만㎡·128만평)까지 포함한다. 현재 자연녹지 용도로 지정돼 있는 개발제한구역은 주거 및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할 수 있다.신공항 건설과 후적지 개발사업에 대한 사업성이 충분한 것으로 분석된 만큼, 앞으로 TK 신공항 건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조기개항하는 것이 남은 숙제다. 그러려면 한국토지공사(LH) 등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SPC) 구성이 급해졌다. 사업을 대행할 SPC구성을 위해서는 공공기관 출자지분이 절반이상을 차지해야 한다.대구시는 이번 사업성 분석 결과를 토대로 다음 달 중 투자설명회를 열어 연내에 SPC를 설립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대구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LH의 SPC 참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지난 16일 열린 국토교통위 국정감사에서 LH 이한준 사장은 “현재 상황에서는 TK신공항 건설에 참여할 수 없다”는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그저께(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TK신공항을 국가정책으로 신속하게 추진한다는 차원에서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한 만큼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예타면제로 사업 신뢰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TK 신공항건설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진행되고, 사업성도 충분한 만큼 공기업인 LH는 하루빨리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2023-10-18

구미, 대구는 ‘경부고속도로’라는 대동맥으로 연결된 우애 깊은 兄弟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 1968년∼1970년 박정희 대통령께서 건설한 경부고속도로. 우리나라 산업화와 근대화,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대동맥으로 일일 생활권이 가능해졌다.그야말로 우리나라 산업화를 앞당기고, 이로 인해 대구·경북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는 급성장 할 수 있었으며, 비슷한 시기인 1969년 구미국가공단이 조성되며 우수한 제조능력을 바탕으로 수출국가로 거듭나게 되었다.우리나라 산업화의 초석을 다진 구미공단. 조성 54년 동안 수출과 무역흑자 확대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1등 공신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그 배후에는 대구광역시라는 큰집이 있어서 가능했고, 구미공단에서 근무하는 많은 산업역군들은 대구에서 주거와 문화, 교육 등을 충족하고 있어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대구와 구미가 ‘경제공동체’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은혜 갚은 까치’, ‘결초보은’이야기를 알고 있는가.누군가 상대방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그 은혜는 또 다른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며, 우애 깊은 형제는 밥 한 그릇이 있을 때 형 먼저, 아우먼저 양보하기 마련이다.구미와 대구는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힘을 합쳐 성장해온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순망치한’인 것이다.그러나 지금 대구와 구미, 구미와 대구는 어떤가?취수원과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 않은가?단언컨대 대구시민과 구미기업의 입장해서 생각해야 한다. 대구시민의 상당수는 구미라는 국가공단이 있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그 소득을 기반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구미기업은 대구라는 거대 도시가 있기 때문에 우수한 근로자를 채용해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문화와 교육,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며, 경제1번지인 구미공단과 대구는 견고한 협업을 통해 대구경북이 메가시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소소하고 감정적인 대립에서 벗어나 대승적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정신도 지금 시점에서 꼭 필요하며, 서로를 흠집 내거나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다.경부고속도로와 구미국가공단을 통해 산업화를 앞당겼듯이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고마움을 깨닫고, 긴밀한 협력에 손을 맞잡아야 한다.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라는 큰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이 파도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탈 수 있을지 도로망, 철도망 확충과 시너지 극대화에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재차 강조컨대 구미와 대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에 있음은 분명하다. 기업으로 따지면 생산기지와 RD부서랄까? 연구개발 없이 생산할 수 없고, 연구개발을 아무리 잘한 듯 생산기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감사하고 기쁘게 여기며 긴밀한 협력을 강화할 때 비로소 대구경북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고 일자리가 넘치는 지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다.요컨대 박정희 대통령께서 구미공단을 만드셔서 대구·경북을 먹여 살리고 국가경제에 큰 역할을 하였는데 구미에 기업 활동을 제한하고 기업유치를 막는다는 것은 경부고속도로를 해체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박정희 대통령을 욕보이게 함은 물론이며,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부디 구미와 대구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협력과 공생을 통해 서로 윈윈하기를 바래본다.

2023-10-18

현재보다는 내일을 위한 축제를 고심할 때

심한식 경북부 많은 지자체가 10월을 맞아 다양한 축제를 열고 있다.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축제도 있지만, 실패작, 축제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행사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14일부터 15일까지 경산생활체육공원 어귀 마당에서 제12회 경산대추축제 농산물 한마당이 개최돼 지역의 명산물인 대추를 홍보하고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했다. 그러나 경산대추축제가 과연 전국 최대의 대추 주산지이며 임산물 지리적 표시 등록 제9호로 지역 명산물인 경산대추를 홍보하려는 것인지 대추재배 농가를 위한 행사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축제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겨야 하고 특히 농산물 축제는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홍보와 판매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연이다.이번 경산대추축제와 농산물 한마당을 위해 (사)한국후계농업경영인 경산시연합회가 경산시로부터 지원받은 보조금은 경산대추축제 1억 7천만원, 농산물 한마당 1천만 원이다. 1억 7천만원의 보조금에도 행사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관련 부스는 손에 꼽을 수 있었고 프로그램으로는 4차례의 경산대추 깜작 할인 판매, 경산대추 골든벨이 전부였다. 정작 경산대추를 홍보하기 위한 시식 대추는 어느 곳에도 없어 경산대추축제라는 이름에도 철저하게 방문객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경산대추축제장에서 시식용 대추를 만날 수 없는 문제는 지속 지적되어 오고 있으나 개선되지 않고 있어 시비를 보조하는 경산시가 시식용 대추의 축제장 배치를 전제 조건으로 명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특히 축제장 한쪽을 차지한 노점상의 음식값은 회오리 감자 하나에 5천 원 등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판매되기도 해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의심스러웠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8일 남천면축제추진위원회가 개최한 경산포도축제와 대비된다. 3천만 원의 시비 보조에도 남천포도축제에는 무제한의 포도막걸리리 시음과 포도를 맛보고 살 수 있도록 시식 장소를 마련해 유명한 가수를 초대하지 않았음에도 현장을 찾은 방문객 대부분이 만족감을 표시했다.남천면축제위원회는 3천만 원의 시비 보조에도 어떻게 넉넉한 인심을 베풀 수 있었을까. 지역에서 생산되는 MBA(머루 포도)에 대한 자부심과 오늘이 아닌 내일에 대한 투자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성공적인 축제를 위해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보다 앞으로의 비전을 보고 달려나가는 것이 훨씬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shs1127@kbmaeil.com

2023-10-17

영웅도, 괴물도 될 수 있는 초능력자 구룡포

강지우 SF평론가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무빙’이 화제다. 한효주, 조인성 등 유명 배우들이 초능력자로 열연하는 가운데 류승룡 배우가 분한 무한 재생 능력자 장주원의 고향은 포항 구룡포다. 묵처럼 투명하게 삶은 개복치를 맛있게 먹는 모습도 나온다. 개복치를 어느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지 찾는 이들도 생겼다고 한다. 포항에서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친숙한 음식인데, 드라마에서 보니 반가웠다.장주원을 주인공으로 한 에피소드에서 개복치는 꽤 여러 번 등장한다. 왜 하필 개복치일까? 개복치는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예민한 생물이다. ‘살아남아라! 개복치’라는 게임이 유행했을 정도다. 장주원도 겉으로는 투박하고 강해 보이지만, 속은 허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인물이다. 길을 잃었다며 반려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무한 재생 능력으로 조직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그 능력 때문에 결국 ‘괴물’이라 불리며 배척당했기 때문이다.‘무빙’의 포스터에는 “우리는 영웅도, 괴물도 될 수 있어”라는 문구가 있다.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지만, 남들과는 다른 힘이 차별을 낳는다는 의미로도 읽힌다.SF에서 초능력자는 여러 가지 시선으로 그려진다.‘어벤져스’에서는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는 초능력자가 ‘엑스맨’ 시리즈에서는 돌연변이 괴물로 공포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 타고난 특성을 차별의 이유로 삼는다는 점에서 현실의 인종차별을 떠올리게 한다. 엑스맨에서 대립하는 양 진영의 수장이 흑인 인권 운동가를 모델로 한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졌다. 차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의 공존을 꾀하는 자비에는 마틴 루서 킹으로부터, 결국 인간을 힘으로 지배해야 한다는 매그니토는 맬컴 엑스로부터 모티브를 얻었다. 이야기가 만들어진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이렇게 초능력자가 차별받는 SF는 현실의 우리 사회를 낯설게 보게 한다. 초능력자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능력이 있는 데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다. 단지 우리와 다를 뿐인 이들에게 열등하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인식을 ‘차별의 이유’로 덧씌워 내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무빙’에서처럼 어쩌면 영웅이 될 수 있을 평범하고도 찬란한 이들을 우리는 괴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지금의 한국 사회에 초능력자가 있다면 어떤 존재로 살아가게 될지,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국 SF작가들의 앤솔러지 ‘이웃집 슈퍼히어로’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수록작 중 이서영 작가의 ‘노병들’도 ‘무빙’처럼 국정원 비밀 요원으로 활동하다 은퇴한 초능력자가 주인공이다. 세대 간의 정치적 갈등을 중심으로 덜 화려하지만, 더 처절한 전투가 펼쳐진다.김보영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에서는 반복되는 대형 참사 현장에서 묵묵히 사람을 구하는 시간 능력자가 등장해 묵직한 여운을 준다.

2023-10-17

연오랑 세오녀의 꿈과 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10월은 ‘문화의 달’ 답게 행사와 축제가 즐비하다. 전국각지에 다채로운 문화·체육행사가 늘어나고, 지역특색을 살린 테마축제들이 연이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하루하루 축제같고 선물같은 나날이다. 햇살 좋고 적당한 기온에 바람마저 부드러워 나들이나 야외활동하기에 안성맞춤인데,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볼거리, 즐길거리를 입맛대로 누릴 수 있으니 한결 가을날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축제에 참여하고 전시나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축제마당에 빠져들어 어깨춤이 덩실덩실 춰질지도 모른다.지난 주 목요일부터 4일간 포항 일원에서 열린 ‘제15회 일월문화제’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시민들에게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개막행사와 주제공연, 기획전시, 체험 및 연계 프로그램 등으로 포항문화예술회관, 해도도시숲,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등지에서 코로나19의 시름과 위축을 완전히 떨치며 4년만에 제대로 다채롭고 풍성하게 열린 것이다. 이러한 일월문화제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연오랑(해), 세오녀(달) 부부의 설화에서 비롯된 고유의 일월사상을 기리며 전통문화 유산을 보존, 계승시키는 종합문화예술축제로 격년마다 개최돼 왔다.특히 일월문화제의 개막을 알리며 전야행사로 열리는 연오랑·세오녀 부부 선발대회는, 포항시에 거주하는 선남선녀가 두루마기와 치마 저고리 등 우리 고유의 한복을 입고 맵시를 뽐내며 부부 금슬과 장기자랑, 발표력, 관객 응원 등을 심사해서 뽑게 된다. 올해는 30~70대까지 각 읍면동 대표로 16쌍이 출전해 저마다 멋스런 행진과 독특한 자랑, 재치있는 표현 등으로 관객들과 호흡하고 공감하며 눈길을 끌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이렇게 선발되는 연오랑 세오녀 부부는 지역 고유의 일월신제 헌관으로 봉행, 포항시 공식행사 참여 및 홍보대사·해외 문화사절 등의 역할로 포항을 빛내고 알리게 되며, 빛과 개척의 포항 정신을 대변하기 위해 1983년부터 이어져 올해 22회째를 맞았다.‘연연이 이어 온 해와 달의 드리움이/오늘날 일월문화의 꽃으로 피어나/낭랑한 동해의 파도로 노래하고 있구나//세세년년 사무치는 연오랑이여! 세오녀여!/오랜 세월 일월의 땅 가꾸고 지켜와/여명을 밝혀주는 꿈, 여기는 대대손손 빛나는 포항이어라!’-拙 즉흥 육행시 ‘연오랑 세오녀’ 전문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의 빼어난 외모와 맵시, 덕목을 갖춘 사람은 주목을 받아왔고 회자되고 있다. 특히 현대 들어 전국춘향선발대회나 지역의 특산물 홍보를 담당하는 영양고추아가씨 등의 미인대회가 있다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모범부부는 연오랑 세오녀 부부 선발대회가 전국적으로 유일하다. 단순히 전해 내려오는 설화 속 인물 재현의 선발이 아니라 포항의 정체성 발현과 고귀한 향토문화 유산의 현대적인 계승, 발전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효행과 봉사, 맵시와 덕행으로 포항시민들의 귀감이 되는 연오랑 세오녀의 꿈과 멋이 포항의 저력과 경쟁력이 되길 기대해본다.

2023-10-17

선거구 획정지연… 정치신인들 속탄다

내년 4·10 총선 준비를 위한 사무가 시작됐지만, 아직 선거구가 확정안돼 정치 신인들의 불만이 높다. 선거구획정위가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해 달라고 여러 차례 촉구했지만 요지부동이라고 한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지명도가 높은 현역 의원이 유리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1년 전인 지난 4월10일까지 선거구를 결정했어야 했다. 전국적으로 내년 총선에서 조정이 필요한 선거구는 30곳이다. 대구·경북의 경우 군위군이 지난 7월 1일 대구에 편입됐지만, 선거구 개편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군위·의성·청송·영덕 선거구에 속해있는 군위군은 지리상 대구 동구을과 북구을 지역구 중 한 곳으로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군위군과 접하는 지역구는 대구 동구을이지만, 팔공산이 가로막혀 있어 같은 생활권은 아니다. 과거부터 군위군의 생활권은 대구 북구다. 그러나 대구 북구와 군위군은 칠곡군 동명면이 사이에 있어 실체로는 인접지역이 아니다. 인구 2만3천200명인 군위군은 인구 20만1천여명인 동구을 보다는 25만여 명인 북구을과 선거구가 합쳐지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인구가 27만1천42명을 넘어서면 2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기준 때문이다. 경북지역의 선거구 개편도 불가피하다. 현재 안동·예천 지역구의 경우, 안동시만으로도 선거구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예천군을 의성·청송·영덕 선거구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영주·영양·봉화·울진 선거구에서 울진을 군위가 빠진 자리에 투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선관위는 지난 13일 재외선거관리위 설치를 시작으로 이미 총선 준비에 들어갔다. 오는 12월 12일부터는 예비후보자등록 신청을 받는다. 이때까지 선거구 획정이 안 되면 기존 선거구에 맞춰 등록 신청을 받아야 한다. 선거구 획정 지연은 선거업무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정치신인들의 선거운동에 지장을 초래해 총선결과의 정당성도 약화시킨다. 국회 정개특위는 하루빨리 22대 총선 선거구를 확정해야 한다.

2023-10-17

부동산 침체 등 국감장 이슈된 대구경제

지난 16일 대구에서 열린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와 대구지방국세청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첫 지방국감에서는 대구지역 경제 현안들이 집중 타깃이 됐다. 특히 아파트 미분양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대한 우려 등 부동산발 지역경기 침체 등이 집중 거론돼 부동산 국감이란 평가까지 나왔다.지금 대구지역 부동산 경기는 전국 최악이다. 정상 거래가 막히고 가격 하락으로 인한 부작용도 심각하다. 작년 12월 1만3천여 가구이던 대구지역 미분양 물량이 올들어 1만2천여 가구로 줄었지만 대구는 여전히 전국에서 가장 많은 미분양 물량을 보유한 곳이다. 또 새로이 건립되는 아파트 물량도 현재 수 만가구에 이르러 적체 물량이 지역경제에 미칠 여파가 큰 걱정이다. 부동산 관련산업의 경기 침체는 두말할 것도 없다.이날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부동산 PF연체율이 2021년말 0.37%에서 올해 6월말 2.17%까지 급등했고, 증권사 부동산 PF 채무보증액도 과다하고 연체율도 17.28%까지 올라갔다”고 지적하며 “부동산 PF 대출이 지역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또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은 “대구에서 처음으로 새마을 금고 자산건전성 문제가 불거졌다”며 “PF 대출 위험성과 경제 파급력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대구에서 분양 보증사고가 발생하고 건설사가 도산하는 문제가 생기면 경북으로 확산한다”며 한국은행은 대구경제 상황을 집중 분석해 정책을 담당하는 대구시와 경북도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국정감사는 정부나 지자체가 정책을 제대로 운용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대안을 준비하는 기능을 한다. 대구지역 경제 현안이 되는 부동산 경기침체가 국감에서 집중 논의된 것은 지역경제를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계기로 지역 경제관련 기관들이 좀 더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이번 국감에서는 지역의 실물경제가 다른 지역보다 안좋다는 지적도 나온만큼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각 기관들의 분발 노력이 있어야 한다.

2023-10-17

의대정원 대폭확대, 여당 총선에 도움될까

심충택 논설위원 민주당의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이 최근 페이스북에 “정부가 의대 정원 확충을 진짜 실행한다면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다. 성과를 내길 바란다. 국민이 지지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정 의원의 이 글은 과연 진심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정부·여당이 만약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총선 득표용’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誤算)이다.의대정원 확대는 우선 가장 민감한 이슈인 ‘사교육비 뇌관’을 건드리기 때문에 교육계에서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오래전부터 수험생은 물론, 대학 1~2년생,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의대 열풍’이 불어왔다. 최근에는 직장인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정원을 파격적으로 증원할 경우 교육계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의대 블랙홀에 빠지게 된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18년간 어떤 정부도 의대정원 확대에 손대지 않았던 이유를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이미 사교육비 뇌관의 불씨인 수도권 입시학원들이 ‘의대 마케팅’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들로선 의대정원 확대가 ‘황금알을 낳는 신시장’으로 보일 것이다. 2024학년도 전국 39개 의대의 신입생 모집 인원은 총 3천16명(수시 1천872명, 정시 1천144명)이다. 만약 의대 정원이 2025학년도부터 1천명 늘어나면 현재 정원보다 모집 인원이 33%나 증가한다. 성적이 상위권인 초·중·고 학생들과 N수생(재수생 이상) 상당수는 입시학원의 새로운 수요자가 될 것이다.수험생들이 많은 영향을 받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킬러(초고난도) 문항 출제 배제로 수능부담이 줄었는데, 의대까지 증원되면 재수생이 더 몰릴 것’, ‘SKY 자연계열 학생들은 상당수가 반수에 도전할 것’ 등의 글이 올라온다. 커뮤니티 글처럼 대학 이공계열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대거 재수시장에 뛰어든다면 날벼락은 대학들이 맞는다. 서울대를 예로들면, 올해만 해도 신입생 중 휴학생이 418명이나 되는데 상당수가 의대진학이 목표라고 한다.교육전문가들은 “이미 확정된 2028년 대입개편(정시 40%)에다 의대 정원확대까지 더해지면 N수생 확대, 사교육비 부담 등의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교육계뿐만 아니라 과학·산업계도 우수인재들이 너도나도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면 연구인력을 어디서 구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정부가 의대정원 증원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충분히 이해된다.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작년기준 인구 1천명당 의사수는 2.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수준이다. 그러나 의대정원 확대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의사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필수의료 분야(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실 등)로 의사들을 유인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덜렁 의대정원만 늘릴 경우,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 같은 의료계의 고질적인 현안은 해결하지 못한 채, 인턴과정도 거치지 않은 피부·미용 개원의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2023-10-17

막걸리 축제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에서 민족 전통술인 막걸리 축제가 열렸다고 하니 괜히 관심이 갔다. 국제와인박람회나 와인축제, 맥주축제 등은 자주 들어본 행사 이름이지만 우리민족 대표 술인 막걸리를 테마로 지역에서 축제가 열린 것은 아마 처음인 것 같아 흥미가 갔다.지난 주말 대구 불로동 전통시장에서 열린 불로막걸리 문화축제는 비록 작지만 많은 이들이 즐기고 간 축제로 여운을 남겼다. 특히 우리 전통주로 어르신들이 주로 마시는 술로 인식됐던 막걸리가 이제는 세대 구분없이 젊은이들도 즐길 수 있는 대중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은 행사의 의미를 더해 주었다.막걸리는 “막걸러 냈다”하여 붙여진 이름. 맑은 술인 청주(淸酒)의 대칭되는 개념인 흐린 술인 탁주(濁酒)의 한 종류다. “막걸러 냈다”는 것은 방금 걸러내 신선하다는 뜻과 마구 걸러 거칠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막걸리는 두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한다.고려시대 문헌에도 탁주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중국의 ‘고려도경’에는 “고려인들이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는 기록이 있어 탁주의 역사는 문헌으로 보아도 오래됐다.막걸리의 장점은 다른 술에서 보기 힘든 영양분이 많다는 것이다. 식이섬유와 단백질, 미네랄 등이 함유돼 있어 과하지 않게 마시면 몸에도 좋다고 한다.또 빚는 과정에서 누룩이 들어가기 때문에 소화에도 좋다. 서민과 애환을 함께해 온 전통주여서 그런지 탁주, 탁배기, 백주, 대포, 왕대포 등 다양한 별명도 갖고 있다.우리민족 고유의 전통과 정신이 녹아 있는 막걸리의 기술과 맛이 잘 전승되게끔 막걸리 축제가 발전을 거듭했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0-17

반타블랙, 찰나의 푸른빛

인도 예술가인 애니쉬 카푸어의 ‘BLACK’은 검은색 원형 조각품이다.카푸어는 반타블랙(VANTA Black)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반타블랙은 영국의 한 기업이 나노기술을 통해 개발한 새로운 색상 소재인데, 빛의 99.965퍼센트를 흡수할 수 있는 물질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어둠’이라 할 만한 순도 높은 암흑으로 만들어진 카푸어의 작품은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기묘한 매력을 지녔다.작품 앞에 선 감상자는 분명 무언가를 보고 있지만 실제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처럼, ‘BLACK’은 빛 뿐만 아니라 사람의 눈빛마저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절대적이면서 매혹적인 검은색이다.그런데 이 완벽에 가까운 검은색도 완벽은 아니어서, 다르게 파악될 0.035퍼센트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얼마 전 매일경제신문 문학담당기자이기도 한 김유태 시인과 술 마시는데, 그가 대뜸 서울국제갤러리 ‘애니쉬 카푸어展’에 다녀왔다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BLACK’을 내게 보여줬다.“이 완벽한 검은색이 옆에서는 묘하게 청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몇 걸음 떨어져서 보면 회색빛으로 보이기도 하더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친구의 흥분한 모습을 즐거워 하면서, 나는 스마트폰 속 카푸어의 ‘BLACK’과 김 시인이 입은 올블랙 셔츠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검은색은 오직 어둠일까?‘, ’검은색은 끝일까?’, ‘검은색은 죽음일까?’얼마 전 전남 구례 섬진강으로 쏘가리 낚시 갔다가 늦은 밤까지 강변에 있었다. 원래도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물가인데 그날따라 구름이 달을 가려 그야말로 칠흑이었다. 어둠 속에서 선명해지는 것은 물소리와 몸을 뒤채는 강의 살내음 뿐. 그런데 아주 잠깐 구름의 두께가 야위는 순간 강 전체가 은은한 푸른빛이 되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때 우연처럼, 쏘가리의 입질을 받았다. 그 찰나의 푸른빛이야말로 김유태 시인이 ‘애니쉬 카푸어展’에 전시된 ‘BLACK’에서 봤다던 어둠 속의 빛이 아닐까?세상에 완벽한 검은색은 없다. 2019년 MIT 연구진이 개발한 신물질은 빛 흡수율 99.995퍼센트로 반타블랙의 효율을 압도적 갱신했는데, 그 물질 역시 0.005퍼센트 빛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세상은 점점 더 짙은 어둠이 되어 가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선 수천의 사람들이 죽어 가지만, 학폭 피해자인 20대 여성이 스스로 삶을 버렸지만, 주윤발은 전 재산 9600억 원을 기부하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휘영 김상우 두 청년은 장기기증으로 각각 3명, 5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그렇기에 암흑 같은 절망의 심연 속에도 빛이 자라난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검은색은 어둠이 아니다. 검은색은 끝이 아니다. 태초의 빛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광채가 검은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검은빛인 어둠 위에 다른 빛이 입혀질 때 색(色)과 상(象)이 태어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러므로 검은색은 심연의 입구이자 출구다. 빛은 검은색에 삼켜졌다가도, 다시 검은빛에서부터 무수한 빛이 파생되고, 압도적인 덧칠색이지만 검은색은 모든 색을 돋우는 바탕색이기도 하다.우리 사회의 약자, 소수자, 아브젝트적 존재들은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안에 있다. 때로 빛은 너무 환해 물상을 분산시키지만, 어둠은 상과 상, 그림자와 그림자를 밀착시킨다. 순백의 빛이 설맹(雪盲)을 만드는 데 비해 암흑처럼 보여도 어둠은 늘 암중모색(暗中摸索)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렇게 어둠과 어둠이 서로 끌어안을 때, 새벽처럼 푸르스름한 빛이 부화할 때, 그 빛이야말로 빛보다 빛나는 어둠일 것이다. 타자와 연대하는 것이, 사람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일지라도 우리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빛보다 빛나는 어둠을 온몸으로 밀면서 나아가야 하리라.지금 어둡다면 그 암흑은 곧 나타날 찬란한 빛의 암시일 것이다. 상투적인 문장이지만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던 말을 믿는다.일찍이 검은색에 관해 오래토록 탐구한 한 시인을 빌리자면 “검은빛은 죽음이 아니다, 비애가 아니다 검은빛은 환하다”(송재학, ‘주전’).

2023-10-17

쓰임에 맞게 사는 일

최근 장염을 오랜 기간 앓았다. 평범한 식사가 어려웠고 앉아 있기도 괴로울 정도로 속이 울렁거리고 두통이 심했다. 몸이 아프다보니 퇴근 후에는 바로 집에 가서 잠들기 바빴고, 주말엔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냈다.집은 이사 온지 세 달이 다 되어갔지만 아직도 어수선한 짐들이 마구 쌓여 있었다. 옷장 속 서랍 안, 컴퓨터 책상 아래, 신발장 구석 등 물건들이 규칙 없이 멋대로 굴러 다녔고, 특히 냉장고 안은 언제 사두었는지 각종 식재료들이 형체만 유지한 채 놓여 있었다. 장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어수선한 집 안에 내내 있다보니, 불필요한 물건과 청소가 필요한 공간이 눈에 띄었다. 그 뒤론 조금씩 닦고 청소하며 쓸모없는 건 비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런 나의 변화를 읽었는지 각종 청소법과 살림하는 법 영상을 추천해주기 시작했다.살림 고수들의 살림법은 대단했다. 깨끗하게 씻은 페트병을 반으로 갈라 계란 보관함으로 쓴다던가, 커피 트레이를 활용해 신발을 보기 좋게 보관한다거나 일회용 쓰레기봉지를 청소용품으로 재활용해서 화장실 벽을 닦는 등 재사용 할 수 있는 것들은 모아 한 번 더 쓸모 있게 쓰고 있었다. 수십 개의 영상을 보다보니 나 또한 재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것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끼며 필요에 맞게 정리해 나가는 생활 습관은 궁상맞기 보단, 삶을 조금 더 공들여 가꾸어 나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살림하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스스로 여러 규칙을 정하게 되었는데, 우선 외식을 자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루의 고단함을 자극적인 음식으로 해소하려 했으나 이젠 가능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 꼭 살이 덜 찌고 건강한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직접 식재료를 손질하고 불에 구워 간단하게라도 먹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저녁 식사와 동시에 다음날 먹을 점심 도시락도 싸고 가능한 설거지도 바로바로 하려니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그래도 건강한 음식과 깨끗한 주방, 필요한 양념과 그릇들을 언제나 여유롭게 꺼내 쓸 수 있다는 것에 안정감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또 채소와 과일은 집 근처 마트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른다. 예전엔 매번 먹고 싶은 음식을 때에 맞춰 반나절 만에 배송해주는 인터넷에서 주문을 했다면 이제는 일주일에 딱 한 번 금요일 퇴근길에 장을 본다. 기존 식재료는 모두 다 먹어치우고선 장을 보는 규칙을 세우고 필요한 재료는 미리 체크해서 필요한 것만 사서 집에 돌아온다.집으로 돌아와선 채소와 과일 손질을 한 후 야채 통에 넣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예전에는 귀찮아서 미루고 했던 청소나 정리정돈이 이젠 조금은 익숙해져 전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움직이곤 한다.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일정한 루틴을 통해 삶의 노하우는 생기고 노하우가 쌓일수록 점점 더 생활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나간다.늘 루틴대로 깨끗한 주방과 삶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다면 참 좋지만, 실은 몸이 아픈 날이나 피곤한 날에는 어쩔 수 없이 배달 어플을 켜며 스스로 항복하고 만다. 아직 완벽한 살림 고수가 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해 버리며 그날 꼭 먹고 싶었던 음식을 시킨다. 배달 온 음식 양이 너무 많으면 우선 용기에 소분부터 하고선 딱 먹을 만큼의 일인분만 남기고선 먹는다. 오롯이 그릇에 담긴 일인분의 몫은 오늘의 집안일을 해내지 못했다는 부채감을 줄여준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대로 집이라는 공간은 변화하고, 그럴수록 집은 나의 취향과 성격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누군가 집이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필요 이상으로 화가 많이 나는 날에는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서랍 안의 먼지를 털고 닦으며 물건을 재정돈 한다.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닦아내고 나면 겉으로 드러나는 화가 줄고 불현듯 덧없게 느껴진다.청소는 짧게 해도 금방 허기를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분노 대신 부엌 앞에 서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끌어준 건강한 간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이렇게 나의 삶은 조금 더 단순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꼭 필요한 쓰임에 맞게 물건과 감정을 활용하고 소비하며 쓰는 삶,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만족감을 느끼며 가을날을 보내고 있다.

2023-10-17

우리, 울지 말자

강길수 수필가 “우리, 울지 말자!….”편의점 앞 탁자 의자에 앉아 고개 숙여 우는 아가씨의 등을, 다른 아가씨가 쓰다듬으며 한 말이다. 스무 살 전후로 보이는 앳된 아가씨들이다.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 그녀들 곁을 지날 때였다. 거리가 멀어지는 데다, 벽돌 깔린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굉음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못 들었다. 출근길, ‘상대로 젊음의 거리’에서의 일이다.‘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젊디젊은 아가씨가 초가을 아침을 울고 있을까.’ 걱정과 궁금함이 마음에 여울졌다. ‘젊음의 거리란 이름을 가졌지만, 음주, 가무, 유흥, 때론 싸움, 밤엔 쓰레기가 나뒹구는 모습으로 점철된 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뒤따랐다. 연전, 이곳에서 청년들이 싸우던 모습도 떠올랐다. 시나브로 가슴이 저려 왔다.젊은이들이 그 젊음을 만끽하고, 희망을 충전하며, 사랑과 위로를 주고받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젊음의 거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거리를 걸으며 출퇴근한 지난 8년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상대로 젊음의 거리’로 부르기 전 3년, 후 5년을 오갔다. 젊음의 거리 조성 이전, 조성 중, 조성 이후를 다 보며 다닌 것이다. 한데 웬일인지, 내 눈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6년 전, 이곳을 ‘상대로 젊음의 거리’로 지정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젊은이가 모이지만, ‘정체성이 없는 음주 유흥거리로 형성된 이 거리를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거리로 만들기로’ 했단다. ‘가로환경개선 사업과 유해환경개선 사업, 지중화 사업을 추진’하고, ‘그린웨이(Green Way) 프로젝트’와 ‘도시재창조 프로젝트’를 연계, 시민에게 ‘문화공간, 여가 공간을 제공하는 문화와 자연 그리고, 인간이 어우러진 복합체 도시로의 변모’를 꾀한다고도 했었다.참 좋은 소식이었다. 한데, 지금 현실은 어떤가. 간선도로에 벽돌을 깐 가로환경 개선과 전선 및 통신선 지중화 사업만 미흡하게 마친 게 전부다.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거리로 만들기’와 ‘문화공간, 여가 공간을 제공’하는 기획은 공염불이 되었다. 그린웨이, 도시재창조라 했지만 철길숲과의 연계성도 별로 없어 보여, 시 당국에서 제대로 고민한 것 같지 않다.아침마다 청소하는 분들이 없다면, 이곳은 호객용 찌라시와 담배꽁초, 각종 음주 쓰레기로 범벅이 된 거리가 되었을 터다. 청소원이 늦게 오거나, 비 오는 날 아침은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젊은이들의 독창과 개성의 문화거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무릇 모든 시스템은 투입과 산출의 구조이듯, 독창과 개성의 문화도 노력과 투자를 들이지 않으면 나올 수 없을 것이다.만일 이곳이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거리’라면, 젊은 아가씨가 밤잠도 제대로 못 잔 얼굴로 초가을 아침에 울고 있을까. 나라 장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을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의 노력과 투자는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지금이라도 시 당국은, 이곳이 젊은이들을 위한 진정한 ‘상대로 젊음의 거리’가 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예서 초가을 아침에 울고 있는 아가씨의 눈물을 닦아 주기 바란다.

2023-10-16

걷고 싶은 도시, 포항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철길숲 산책로가 끝나는 유강리 정수장과 형산강을 잇는 상생숲길 인도교가 지난 10월 10일 준공되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철길숲 산책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이로서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도 형산강 맞은편 연일 지역까지 도보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분들께도 희소식일 것이다.‘걷기 좋은 도시’를 넘어 ‘걷고 싶은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시민의 이동권 문제와 직결된다. 자동차를 이용한 이동에는 기본적으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걸어서 이동할 권리를 ‘보행권’이라고 한다. 아직은 비교적 낯선 개념이지만, 앞으로 더 강력하게 지향해야 하는 권리이자 가치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보행권 차원에서 포항의 도시공간은 아직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보행 인프라가 갈 갖춰져서 도보로 이동하기 좋은 지역은 철길숲 근처와 형산강변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인프라 정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또한 도보 이동은 자동차를 이용할 때와는 전혀 다른 도시경관을 감각하게 해 준다. 철길숲이나 형산강을 따라 오래 걸어 본 사람이라면 직관적으로 알 것이다. 보행로를 따라 걸으면 자동차의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과 완전히 다른 풍경과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다. 하늘, 나무, 풀, 유유히 흐르는 강물, 지나쳐가는 사람들, 산책 나온 반려견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까지. 보행자의 피부로 느껴지는 온도와 습도, 바람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누군가가 포항을 자동차로만 경험한다면, 포항을 반쪽밖에 느끼지 못하는 셈이다.도보 이동은 지구환경 보호의 차원에서도 권장된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물론이고, 최근 보급되기 시작한 전기차조차도 완전히 친환경적이지는 않다.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은 논외로 하더라도, 동력인 전기 생산 과정에서 대량의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보행 인프라를 잘 구축하여 멀지 않은 곳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친환경인 이유다. 마찬가지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교통수단인 자전거 도로도 함께 정비해야 한다. 보행자와 자전거 탑승자가 모두 안전하게 이용하려면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를 확실히 분리하는 편이 좋다. 마지막으로 도보 이동은 시민의 건강 증진에도 큰 도움을 준다. 최근 맨발 걷기 붐이 뜨겁지만, 굳이 맨발이 아니더라도 걷기는 최고의 운동이다. 편안한 신발 한 켤레 외에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며, 관절을 비롯한 신체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운동에 따로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현대인으로서는 이동과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 스마트폰의 걷기 어플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매일매일의 걸음 수를 확인할 수 있으니 걷기에 재미를 붙이기 쉽다.가을은 걷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다. 운동을 위해서든, 출퇴근길이든, 볼일 보러 오가는 길이든 상관없다. 더 추워지기 전에 잘 맞는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 보자. 걷고 싶은 도시, 포항을 만나게 될 것이다.

2023-10-16

‘수요응답형교통(DRT)’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지난 10월 4일 대구 혁신도시에 대구 최초의 ‘수요응답형교통(이하 ‘DRT’)’ 버스가 시범운행을 시작했다.시범운행 사업구역은 대구혁신도시 일부인 의료RD지구에 국한되어 있으며, 의료RD지구내 15개 정류소와 도시철도 1호선 율하역과 2호선 연호역을 대상으로 운행한다.이번 시범사업은 내년 6월 말까지 9개월간 시행되며, 내년 하반기부터는 대구혁신도시 전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DRT’는 미래형 교통수단으로 운행 노선과 스케줄링을 수요자에 맞추어 운행하여 효율적 운행이 가능한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대중교통의 공백과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기대되고 있다. 금년 4월 11일 확정 발표된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국가 기본계획’에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제시하였는데, 10대 감축분야 중 수송분야가 전환과 산업분야 다음으로 감축량이 많다. 수송분야의 많은 감축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전기·수소차 등 무공해차 전환과 함께 ‘DRT’ 확대를 포함한 대중교통활성화를 핵심 대책으로 포함했다.해외 여러 국가에서 ‘DRT’를 성공적으로 도입하여 대중교통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의 ‘Kutsuplus’ 서비스는 수요에 따라 미니버스를 운영하며, 승객은 앱을 통해 라이드를 예약하고 탑승지와 하차지를 선택할 수 있다. 미국 텍사스의 ‘Via’는 아를링턴 지역에서 ‘DRT’ 서비스를 제공하며, 승객은 앱을 통해 셔틀을 요청하고 공유되는 차량으로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호주 시드니 ‘Bridj’는 지역 주민들에게 피크 시간대에 ‘DRT’ 셔틀 서비스를 제공하여 전통적인 대중교통 노선과 연결된다.최근 한국에서도 ‘DRT’ 도입이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세종시는 ‘DRT’ 버스 ‘셔클’을 2021년 4월부터 시범 운영중인데, 운영 초기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대상 4천250건 중 무려 97.6%가 긍정적 평가를 했다. 일부 부정적 평가에서는 경로 불만 또는 승하차 장소 불만 등 이동지연 이슈가 대부분이었다. ‘셔클’ 이용자 400명을 대상으로 상세 조사한 결과 ‘셔클’ 이용전에는 버스(42.3%), 자차(26%), 도보(14.9%) 순이었으나 ‘셔클’ 이용후에는 셔클(56.2%), 자차(13.2%), 버스(12.8%) 순으로 버스 이용객 상당 부분이 ‘셔클’ 이용객으로 전환되었다.지난 7월 26일(수) 개최된 ‘제1차 대구광역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중간보고회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온실가스 직접 배출량은 연간 약 616만t인데, 이중에서 수송분야는 약 388만t으로 무려 63%를 차지한다.반면 대구시 자동차 등록 대수는 계속 증가하여 대중교통(버스와 철도) 수송분담률은 2021년 현재 25% 내외로 2019년 30% 수준에서 오히려 감소 추세다.이제 ‘DRT’ 도입으로 대구경북지역 대중교통의 빈틈을 메우는 동시에 미래 지속 가능한 교통시스템 도입으로 ‘2050탄소중립’에 대비해야 한다.

2023-10-16

자녀 2명두면 다자녀 가정?

홍석봉 대구지사장 저출생 현상이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사업은 1962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표어가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였다. 1965년 합계출산율 5.4명이었다.1970년대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표어가 바뀌었다. 이 무렵 두자녀 갖기 운동이 벌어졌다, 1974년 합계출산율 3.6명이었다.1980년대 한 자녀 갖기 운동이 펼쳐졌다. 표어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합계출산율 1.6명(1988년)이었다.2000년대 저출생, 고령화기로 접어들었다. 적정 인구 유지조차 어려워졌다. 지난해엔 역대 최저인 0.78(대구 0.76)명이 됐다. 정부와 지자체가 인구 늘리기에 골몰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젠 다자녀 가정에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출산을 유도하고 있다. 통상 3명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을 의미하는 ‘다자녀 가정’을 2명 이상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저출생 현상 심화에 따른 고육책이다. 다자녀 가정엔 출산 및 의료비·주거·양육 및 교육 지원, 공공요금 감면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대구도 자녀를 2명 이상 두면 ‘다자녀 가정’이 된다. 최근 조례를 개정, 오는 20일 대구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다자녀 기준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다. 대구시도 기준 완화를 검토했지만 재정 부담으로 주저해왔다. 하지만 이제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재정 여건이 좋지 않아도 할 것은 해야 한다. 부채 제로를 선언한 대구시는 마른 수건도 다시 짜야 할 상황이다. 효율적인 재정운용이 절실하다. 곧 1명의 자녀만 두어도 다자녀 가정에 준하는 혜택을 주는 날이 닥칠 지도 모른다. 걱정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0-16

여당, ‘혁신적인 쇄신’으로 위기를 돌파하라

국민의힘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지 4일만인 지난 15일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김기현 대표체제를 신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여당에 당장 비대위를 꾸리기보다 김 대표를 주축으로 한 ‘차분한 변화’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전날 임명직 당직자 전원이 자의 반 타의 반 보선 패배 책임을 지고 총사퇴한 직후에 열린 의총이어서 당 대표 거취가 주목을 받았었다. 김 대표는 총선체제 전환을 위해 어제(16일) 신임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등 주요 당직자를 서둘러 임명했다. 4·10 총선 공천의 실무 작업을 총괄할 사무총장에는 재선의 이만희(영천·청도) 의원을, 총선공약을 책임질 정책위의장에는 3선 유의동(경기 평택을) 의원을 임명했다. 이 총장은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의 수행단장을 지냈지만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비윤계로 분류된다. 이외에 지명직 최고위원과 조직부총장, 여의도연구원장, 대변인 등 주요 당직은 수도권과 충청권 의원을 전진배치했다.국민의힘은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수도권 위기론’을 실감했을 것이다. 한국갤럽이 보선 직후인 지난 12~13일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민주당(38.1%)이 국민의힘(33.9%)을 역전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6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조사결과와 비교하면, 여당의 최대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이 51.8%에서 42.4%로 하락했다. 이번 선거가 ‘고작 구청장 한 사람 뽑는 작은 선거’가 아니라, 여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민심의 무서움을 여실히 증명한 선거였던 것이다.김기현 대표는 “내년 총선승리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만큼, 하루빨리 혁신적인 당 쇄신안을 내놓아야 한다. 총선을 책임질 주체는 당 대표인 만큼 대통령실만 쳐다보는 무기력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 유권자들이 깜짝 놀랄만한 공천 혁신과 정책개발을 해 내야 한다. 과거처럼 친윤 중심의 공천으로 당이 내분에 휩싸이면 내년 총선도 참패한다.

2023-10-16

등산객 몰리는 단풍철…산불 예방에 만전을

본격적인 단풍철 시작으로 산을 찾는 등산객이 증가하고 있다. 이달 하순을 기점으로 전국의 단풍이 절정에 이르면 등산객도 크게 증가해 등산객 실화로 인한 산불 발생 우려도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이 산림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여간(2018∼2023년 9월) 산불 발생 현황에 따르면 경북은 산불로 인한 피해가 전국에서 가장 크다. 최근 5년여간 산불 발생 건수는 경기도가 778건으로 가장 많고, 경북은 565건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하지만 피해액 규모는 5년간 전국 총 피해액 2조1천421억 가운데 경북이 절반을 넘는 1조1천616억원을 차지했다.경북지역이 전국에서 산불 발생은 물론 이로 인한 피해가 가장 심한 것은 산림여건 등 환경적 요인도 있으나 산불 예방관리가 철저하지 못한 탓으로 풀이된다.경북은 겨울철에 접어들면 해마다 대형산불이 자주 발생한다. 지난해 울진·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은 산림 2만여ha를 불태우고 213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1986년 산림청의 산불통계 작성 이후 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로 기록됐다.가을철은 일교차가 커 건조하기도 하고 바람이 쉽게 형성돼 작은 불씨에도 불이 크게 번져 대형산불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맘때면 국·도립공원과 지자체 등은 산불조심 기간을 별도 정해 운영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11월초부터 12월 15일까지 한달여간 산불조심 기간으로 정해 일부지역 입산을 통제했다.산림청 10년간 통계에 따르면 가을철 산불은 단풍을 즐기기 위해 산을 찾는 등산객 실화와 인근 주민의 쓰레기 소각, 논·밭두렁 태우기 등이 주된 원인으로 드러났다.매년 반복되는 산불은 주로 사람의 부주의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산림당국의 예방 활동과 등산객 및 주민의 관심으로 산불 발생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산불로 인한 막대한 재산손실 등 각종 폐해를 잘 인식시키고 주민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최근 5년간 전국적으로 여의도 면적의 130배에 달하는 산림이 산불로 황폐화됐다는 사실을 모두가 상기해야 한다.

2023-10-16

느리게 걷는, 문경 돌리네

문경에는 옛 지명이 돌실 또는 도리실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동그랗게 돈다는 뜻으로 마치 접시 모양처럼 지반이 옴폭 내려앉은 지형이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희귀한 ‘카르스트 습지’ 지형이다. 현재는 굴봉산 둘레길과 생태탐방로가 형성되어 있고 전망대와 홍보관과 데크 탐방로가 놓여 있어 특이지형과 생태 환경을 가까이서 오감으로 느끼고자 방문하는 사람들이 찾아든다. 딱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기에 좋은 장소다.카르스트라는 명칭은 아드리아 연안의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경계에 있는 카르스트 지역의 전형적인 암석 지대를 연구하면서 사용된 용어로, 석회암지대가 빗물이나 산화탄소가 함유된 지하수로 인해 녹아내리면서 형성된 독특한 지형을 뜻한다.석회암은 다른 암석에 비해 탄산칼슘이 많이 내포되어 있어 물에 더 빨리 용식되는 현상을 보이는데, 주로 깊은 고랑이 패여 울퉁불퉁한 지형을 형성하는 카렌(라피에) 지형과 접시 모양의 돌리네 지형과 그 아래의 종유석 동굴 등이 발달한다.돌리네·우발라·폴리에·카렌(라피에)·석회암 단구·석회동굴 등 다양한 지형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돌리네는 동그란 싱크홀과 같은 지형을 말하며 사발형·접시형·깔대기형 등이 있다. 우발라는 여러 개의 돌리네가 연결되어 분지 지형을 만든 것으로 형태가 다양하다. 폴리에는 우발라가 확장되어 거대 평지 형태로 드러나는데, 대체로 돌리네가 경작지로 활용되면서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라피에는 석회암지대에서 녹지 않고 남겨져 있는 암석 돌출부를 이르는 말이며 석회동굴은 돌리네에 형성된 싱크홀에서 유입된 물이 동굴 형태를 이루며 녹아내린 석회암지대이다. 고수동굴·성유굴·환선굴 등 오래전부터 관광지로서 사랑받아 온 지형이기도 하다.카르스트 지형은 석회암의 특성상 물에 잘 녹고 물 빠짐이 좋아 자연적으로 습지가 형성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투수층이 물이 빠지는 속도를 늦춰 습지가 형성되기도 한다.한국에서는 강원도 평창·정선·삼척·영월 등 일대, 충북 제천과 단양, 경북 문경 그리고 북한의 황해도 서흥군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한은 강원도에서 남서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고생대 오르도비스계 옥천지향사를 중심으로 나타나며, 북한은 평안남도와 황해도 일대의 캄브리아계 평남지향사에 집중적으로 발달되어 있다.람사르 습지 후보지로 알려진 문경 산북면 굴봉산 돌리네 지형은 대략 해발 200미터 지점에 있는 카르스트 습지 지형이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접시 모양의 단독 분지 지형을 띄는데, 지표면의 하천보다는 지하수가 잘 형성되어 있다. 장마가 지면 굴봉산 돌리네 지형에 내렸던 빗물이나 모여있던 지하수가 세 지점에서 지표면으로 삼출되어 습지의 저수지로 유입된다. 이곳의 토양은 모래의 함량이 높고 암회색 내지는 흑색의 토양이 발달하여 물 빠짐이 좋으나 지하 30~60미터 아래에는 테라로사(붉은 흙)가 불투수층을 형성하고 있어 연중 2개월 정도는 저수지로 물을 유입할 수 있다.카르스트 지형임에도 물웅덩이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봄이면 양서류가 울고 야생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여름에는 낙지다리·으아리 등과 같은 희귀 식물과 층층나무·물푸레나무가 어울린다. 가을에는 억새와 버드나무의 조화를 눈에 담을 수 있다. 또한 수달·담비·붉은배새매 등과 같은 희귀 동물을 포함해 약 700종이 넘는 생물의 생명수를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현재는 해설사에게 산중의 생태 습지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게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문경 호계면 일대에도 석회동굴과 카렌·돌리네·우발라 등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이 드러난다. 선암리 일대에서만 11기의 돌리네가 발견될 정도로 돌리네 지형이 집중되어 있으며, 사발형·접시형·깔대기형 등 여러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부곡리 일대에서는 돌리네·우발라와 숫굴·암굴 등과 같은 석회동굴도 발견되었다. 숫굴은 부곡리 굴넘재의 돌리네에서 유입된 지표수가 원인으로 추정되며, 암굴은 식수로도 활용되던 곳으로 굴 안에는 호수도 형성되어 있다. 지천리와 우로리 일대에서는 길쭉한 우발라와 우로굴이 발견되었다.또한 문경대학교에서는 카렌(라피에) 지형의 일부를 남겨두어 빗물에 용식된 울퉁불퉁하고 복잡한 모양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작년에는 가은고 지리동아리에서 가은읍 야산의 카르스트 지형인 우발라와 라피에 군락을 발견하기도 했다.문경은 카르스트 지형 중에서도 국내 유일의 독특한 돌리네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며,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도 집중적으로 분포된 곳이다. 다양한 동·식물이 많아 계절마다 다른 생태 환경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무엇보다도 걷기 좋은 탐방로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자연을 마음에 담을 기회를 제공한다. 오늘도 자연을 둘러보며 느리게 걷기에 여념이 없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10-16

연대와 위로의 시공간 ‘무코리타’에서

무더운 여름,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수산물 가공공장으로 청년 야마다가 들어선다. 오징어 배를 따고, 말끔히 손질을 하는 작업이 반복된다. 그에게 사장은 “누구든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는 법이야”라는 말을 건네며 무코리타 연립주택을 소개하고 평화로우며 무료한 이곳 마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살다보면 쌓여가는 짐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또 다른 짐을 만들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게 된다.잊고 싶었던 그곳의 인연이 다시 이곳으로 소환되고, 이곳에서 맺어진 인연들과의 사연이 연립주택의 현관문을 넘나든다. 어느 날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는 한줌의 유골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으로 오게된다. 유골의 처리를 두고 고민하는 시간, 잊는다는건 단호하게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정리하여 그곳으로 돌려 보내는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당연히 그것에는 절차가 따르고 그 절차에 따른 남아 있는 이들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보여준다.수산물 가공공장 사장은 야마다에게 1년, 5년, 10년을 살다보면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채우고 비워나가는 과정의 반복이다. 영화의 무대가 되고 있는 무코리타 연립주택의 입주민들에겐 무엇인가를 채우는 삶보다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듯한 결핍의 삶을 살고 있다. 저마다의 사연이 펼쳐질 때면, 결핍이 아니라 집착이며, 쉽게 떠나 보내지 못하는 감정을 담아 둔 유골함 같은 삶이 무코리타 연립주택의 방마다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불교의 시간 개념에 찰나(刹那)와 겁(劫)이 있다. 찰나는 극히 짧은 시간으로 어떤 현상이나 사물이 이뤄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75분의 1초, 0.013초의 상상하기 힘든 짧은 시간이다. 겁은 한 세계가 만들어져 존속하다 파괴돼 무(無)로 돌아가는 한 주기를 말한다. 찰나와 겁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지극히 짧은 순간과 인간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긴 시간이다. 무코리타(牟呼栗多)는 이러한 찰나와 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시간이다. 30분의 1일, 48분이라는 길이를 가지며, 낮이 밤으로 바뀌는 시간, 노을이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그 어디쯤의 시간.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간, 바로 ‘강변의 무코리타’의 배경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하루 하루 성실히 일하다 보면 또 다음 달이 오고 그러다 내년이 오고 순식간에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지”라고 야마다가 일하는 수산물 가공공장 사장은 말한다. 수없이 많은 찰나의 순간으로 채워지는 무코리타의 시간. 10년쯤이면 잊혀질 것은 잊혀진데로 비울 것은 비우고 또 다시 새로운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순환의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묻는 야마다의 질문에 “하지만 그 의미는 10년을 경험해보지 않곤 알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이라고 대답한다.무코리타 연립주택엔 모두 죽음이라는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빛과 어둠이 함께하는 시간, 즉 삶과 죽음이 서로 교차하는 그 시간의 어디쯤 물리적 공간으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이 존재한다. 결핍의 공간에 결핍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여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간다.야마다는 첫 월급으로 밥을 짓고, 공장에서 얻어 온 오징어 젓갈로 밥을 먹는다. 혼자 시작된 밥상엔 이웃의 침범(?)으로 젓가락이 놓이고 그가 싸들고 온 반찬으로 조촐한 식탁은 정서적 풍성함이 쌓여간다. 채우고 비우는 식사의 과정처럼 각자의 상처와 상실의 감정들이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치유되어 간다.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중심에 두고서 살아가야하는 의미를 말한다. 특별할 것없는 일상과 단촐한 밥상, 반복되는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 속에서 찰나는 채워지고 1년, 5년, 10년의 무코리타가 흘러갈 것이다. 무코리타 연립주택에서 무코리타의 시간은 흘러가고, 이별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 절망은 어떻게 극복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간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강변의 무코리타’에서./김규형 (주)Engine42대표

2023-10-16

모두 대통령 책임이다

김진국 고문 직접 당해봐야 아는 사람은 하수(下手)다. 당하고도 모르는 사람은 하지하수(下之下手)다. 지난주 서울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가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참패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예상했던 결과다. 보수 지지자들도 “용산에 대한 여론이 매우 안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13일 한국갤럽 조사를 봐도 내년 총선에서 정부 견제론(48%)이 정부 지원론(39%)보다 9%포인트 더 많다.그런데도 국민의힘 선거 전략이나 인사청문회 대응은 따로 놀았다. 자신만만한 것을 넘어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런 참사를 예견하였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그렇지만 사후 수습이라도 제대로 해, 하지하수는 면해야 하지 않나.서울의 한 구청장 선거에 불과하다. 그런데 선거 결과가 던진 충격은 전국선거급이다. 서울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여야가 모두 나서 전국적 선거로 키웠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하나의 시험대로 여겼다. 윤석열 정부를 일차 평가하는 기회이기도 했다.구청장 선거지만 진교훈 후보나 김태우 후보는 뒷전이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대결이었다. 앞장서 의미를 키운 건 윤 대통령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김태우 후보가 유죄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잃으면서 치러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관으로서 민간인 불법 사찰, 여권 인사 비리 묵인 의혹 등을 폭로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윤 대통령은 김 후보를 사면·복권하고, 사실상 강서구청장 후보로 낙점했다.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그를 공천하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보궐선거를 앞두고 복권한 그의 의도를 국민의힘 지도부가 모를 리 없다. 공익 제보에 가까운 김 후보의 폭로 야기된 억울한 피해를 구제하려는 윤 대통령의 뜻이 충분히 이해된다.하지만, 정치에서 정답과 오답이 없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민심을 떠나서는 아무리 좋은 결정이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선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독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지도자들에게 국민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라고 한 이유다. 강서구는 국민의힘에 불리한 ‘험지(險地)’라고 한다. 그러나 역대 선거를 따져보면 험지라는 말로 털어버릴 문제는 아니다. 22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는 46.97%, 이재명 후보는 49.17%였다. 이재명 후보가 이기기는 했지만 2.2%에 불과했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56.09%를 얻어 송영길 민주당 후보(42.10%)를 14% 차이로, 김태우 구청장 후보는 51.3%로 김승현 민주당 후보(48.69%)를 2.61% 차이로 이긴 곳이다.이번 득표율, 56.25%(민주당)대 39.19%(국민의힘)는 20년 4월 21대 총선과 비슷하다. 당시 강서 갑·을구를 합친 득표율은 민주당이 55.40%,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 39.95%였다. 그때 서울 49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41석,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 8석을 차지했다. 경기도에서는 51석 대 7석, 인천에서는 11석 대 1석으로 수도권에서만 103석 대 16석으로 국민의힘이 참패했다.강서구가 험지건 아니건, 수도권 민심이 21대 총선과 비슷하다는 건 확인됐다. 그대로 대입한다면 내년 총선에서도 지역구 의석의 44.3%인 서울·인천·경기에서 103 대 16에 가깝게 국민의힘이 참패한다는 말이다. 그 뒷일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레임덕이 시작되고, 윤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된다. 단임 대통령은 취임 초기 가장 힘이 세다. 그런데도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에 가로막혀 쩔쩔맸다. 총선 참패 이후의 모습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뒤늦게 후회했다. 중앙일보 인터뷰를 보면 측근들의 비리를 살피지 못했다고 한다. 당 지도부가 만나려고 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대통령의 의지가 너무 강하고,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그 눈치를 살피는 사람만 꼬이게 된다. 그러나 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0-15

“커피 나오셨습니다”

커피 한 잔 주문한다아메리카노 나오셨어요나보다 지체 높으신 커피를 마신다와플도 나오셨습니다공손한 목소리다커피숍의 원목 의자는나이테가 자란다덜 마신 커피를 놓고 품위 있게 일어서면드디어 난 화가가 된다고갱님, 감사합니다―이송희,‘현대인의 화법’전문 (이름의 고고학, 2014) 한글날에 즈음하여 이송희 시인(1976년~)의 의미심장한 시 한 편을 만난다. 제목은‘현대인의 화법’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커피가 나오실 수는 없기에 첫수부터 어법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계속 이렇게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표현도 맞는 표현으로 용인될지 모른다. 말을 바르게 만들려면 사회 분위기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 언어를 탓하지 말고 우리가 사는 모습과 환경을 돌아보는 게 먼저다.”라고‘표준국어대사전 바로잡기’에 나선 박일환 시인의 인터뷰 내용(2023년10월6일자 중앙일보, 오피니언)이 겹쳐오는 순간이다.이송희 시인이 직접 자서에서 밝힌 것처럼 2003년 등단 이후, 여전히 시조를 쓰고 있는 젊은 시인이다. 엄밀히 말하면 현대시조,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현재의 언어로 쓴다. 시조를 고지식한 편견에 가두는 독자들의 인식을 깨고 있는 실험적인 시인의 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시인이 말하는‘변화된 언어’란 무엇일까. 정격의 양식 안에서 새 시대의 담론을 담아내는 것이 정형시의 숙명이라면 이 시가 견지하는 것은 현대인의 화법이다. 시의 첫 구절이 그리는 풍경은 다수의 현대인의 익숙한 일상을 보여준다. 어쩌면 아침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마신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다. 가볍게 주문한 커피는 등장부터 존엄하다. “아메리카노 나오셨어요” 눈치챘을 테지만 이 시는 어법에 맞지 않는 한국어 높임말 사용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나보다 지체 높으신 커피를 마신다” 커피의 지체만 높아진 것은 아니다. “와플도 나오셨습니다” 거기다 “공손한 목소리다”이송희 시인의 시대 비판적 풍자는 비단 잘못된 언어 사용만이 아니다. 물신주의가 만연한 현 세태 속 돈의 위력을 풍자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풍자의 날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명철 평론가의 표현처럼 “자기풍자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해설을 요즘 신조어인 ‘복붙임(복사해서 붙이기)’을 해보면, “돈이면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사회, 돈으로 교환되는 대상은 이제 돈의 가치가 얹어지면서 돈이 활성(活性)을 띤 위력을 지닌 존경의 대상으로 둔갑한다. 심지어 “드디어 난 화가가 된다. 고갱님, 감사합니다.”처럼 “그 둔갑의 대상은 예술의 가치로 치환되는데, 즉 ‘고객(客)’+‘님’= ‘고갱(P.Gauguin, 19세기 말 프랑스 화가)’+ ‘님’으로 자음접변 음운 현상을 통해 그 실체가 보란 듯이 전도되고 있다.”한글날을 앞두고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한복을 입고 등교했다. 글로벌학교의 특성상 교내에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영어와 한국어 중 어떤 언어가 편하냐는 질문에 한 학생의 말 또한 이 시만큼이나 풍자적이다. “저는 0.5개 국어를 쓰는 것 같아요, 한국어도 영어도 온전치 못한 것 같아요.” 순간 이 학생의 말이 현시대의 전체를 상징하는 부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희정 시인 사실 그것 외에 언어의 왜곡은 더 심각하다. 심지어 신조어 사전이 생길 만큼 젊은 세대들의 줄임말이나 특정한 조어법을 통한 언어가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대화 중에 여과 없이 흘러나오는 접두어 ‘개’는 맛있을 뿐만 아니라 “개 이쁨” 등 이쁘기까지 하다니. 불과 한 세대만 흘러도 어쩌면 사라지거나 변해 버린 언어로 인해 세종의‘나랏말쌈은 듕국’이 아닌 ‘지금과 달라’ 그 어원을 밝히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이송희 시인이 말하는 ‘변화된 언어’란 바로 이러한 현 세태의 안타까움을 외면하지 않고 적실히 담아낸 지금 이 자리의 뼈 아픈 사회적 언어이다. 서정시의 슬하에 풍자의 이면이 짙다.“커피숍의 원목 의자는 나이테가 자란다”

2023-10-15

인류는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됐을까?

박진홍 부국장 인류는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됐을까?600만 년 전 유인원에서 분기된 후 직립보행으로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두뇌가 발달했으나 불과 수십만 년 전까지 조잡한 석기를 사용했던 인류.우연히 불을 이용하면서 생존 가능성은 높였으나 여전히 맹수들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인류.별 볼일 없던 인류가 갑자기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급부상한 이유가 무엇일까?현대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때문으로 보고 있다. 7만 년 전 유럽과 서아시아에는 네안데르탈인, 동아시아에는 데니소바인이 살고 있는 등 당시 지구에는 여러 종의 인류가 존재했다. 동아프리카에는 치아와 턱이 작아지고 뇌용량도 현대인과 비슷한 현생인류 사피엔스종이 살고 있었다.이때쯤 사피엔스는 아라비아 반도와 유라시아 전체로 번져 나가는 동시에 인지혁명을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지혁명은 우연히 인류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뇌의 내부 배선이 바뀌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즉 인류가 상상력울 가지면서 전설과 신화, 종교가 등장했고 더 큰 집단과 더 원활한 인간 협력관계를 만들게 된 것.또 언어 사용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 취득과 저장, 소통이 이뤄지면서 인류의 두뇌는 더욱 발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피엔스는 배, 활과 화살, 바늘, 예술품, 장신구를 만들어냈고 상업과 장거리 교역, 문화, 교육, 신념 등도 창조한다. 하지만 인류의 인지혁명은 호주대륙 등의 동물들에게는 큰 참극이었다. 4만5천년전 인류가 바다를 건너 호주에 정착한 후 대형 캥거루(2m)와 왕도마뱀(5m) 등 대형 동물 24종 가운데 23종이 인간의 사냥에 의해 모두 멸종했다. 인도네시아와 북극해 랭켈섬, 뉴질랜드, 아메리카 대륙도 상황은 비슷했다.세월이 흘러 기원전 1만년 전후.인류는 터키 동부와 이란 서부지방 등지에서 농업과 가축을 키우는 농업혁명을 맞게 된다.밀과 완두콩, 올리브 나무, 포도를 재배했고 염소는 BC 9천년, 말은 BC 4천년부터 키우기 시작했다. 식량 생산이 급증하면서 인구도 팽창해 BC 1만년에는 인류가 500만∼800만명에 불과했으나 AD 1년에는 농부만 2억5천만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커진 부락이 도시가 되고 지배 엘리트층이 생기면서 다시 국가와 제국으로 발전한다.BC 8500년 터키 여리고의 주민 수는 수백명에 불과했으나 BC 5천년 메스포타미아에는 수만명 규모 도시가 생기기 시작한다. 효율적인 작물 재배를 위해 달력이 생기고 법과 정치체제 그리고 문자와 숫자가 발명된다.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면서 유기적으로 사람들의 인지 능력도 높아진다. 이로써 인류는 ‘역사의 세계’로 진입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하지만 농업혁명 역시 지구의 생태계에 많은 비극을 초래했다.기득권층은 모든 사회에서 법과 종교를 이용, 피지배층을 지배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가축에서 비롯된 홍역, 결핵, 천연두, 백일해, 인플루엔자 등 전염병들도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또 과거 599만년 동안 나무에 기어 오르고 동물을 뒤쫓는 등 수렵채집 생활에 익숙했던 인류가, 농사일을 하다 보니 디스크탈출증과 관절염, 탈장 등 새로운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가축들도 점점 비참해져 현대의 닭은 생후 3개월만에, 수송아지는 4개월 만에, 수퇘지는 6개월만에 인류의 식량이 되기 위해 모두 도살된다.모두 꼼짝달싹 못하는 비좁은 공간에서 살만 찌워지는 고통을 겪다 자연수명의 3%도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젖소의 경우 임신과 출산을 서너 달 간격으로 반복하다 결국 생후 5년만에 도살된다.현대과학은 ‘현재 지구의 최고 절대자가 된 인류에게는 은밀한 비밀이 두 가지 있다’고 말한다.첫째는 인류는 동물과 다른 영적인 존재로 여기고 싶지만, 여전히 ‘거대 영장류의 한 과에 불과하다’는 것.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 차이는 1.6%다.또다른 비밀은 인류에게는 진화 과정에서 ‘문명화되지 못했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 등 형제 자매가 많았다’.우리 모두는 약 250만년전 오스랄로피테쿠스가 공동조상이지만,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각 진화하던 네안데르탈인 등이 어느 시기 모두 멸종해 버렸다.사피엔스는 대략 30만년전에 출현했다.인류 역사가 이러한데 과연 우리 사피엔스종은 언제까지 멸종하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을까?

2023-10-15

선거와 반면교사

우정구 논설위원 반면교사(反面敎師)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나쁜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했다면 그 사람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사업을 성공시켜간다는 것이다.비슷한 말로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실패를 통해 자신의 행동 양식을 개선해 나갈 때 쓰는 말이다. 반면교사는 부정적 대상을 가르키는 말이나 타산지석은 꼭 그런 게 아니란 점에서 뉘앙스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교훈으로 삼아 나에게 도움이 되게 한다는 뜻에서 의미는 같다.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결과를 놓고 국민의힘 내 뒷말이 무성하다. 특히 야당에 큰 격차로 패배하자 안팎에서 쏟아지는 강한 비판으로 임명직 당직자들이 전원 사퇴하는 등 혼돈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파격적 쇄신이 없으면 내년 4월 총선도 어려울 것이란 비판에 당이 어떤 대책을 강구할지 궁금하다.홍준표 대구시장은 보선 결과를 두고 “파천황(破天荒)의 변화 없이는 내년 총선도 어렵다”고 말했다. 파천황은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혼돈의 상태를 깨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뜻인데, 홍 시장의 파천황 표현은 천지개벽에 버금갈 변화를 만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정치권의 승패를 두고 흔히 병가지상사란 말로 서로 위안을 삼을 때가 많으나 정치는 승리자의 몫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면 현실 정치에서 우위는 필수다.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했다. 모든 게 교훈이 된다는 말이다. 여당이 쏟아지는 비판을 어떻게 수용하고 자기 혁신의 도구로 삼을지 모르나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내년 선거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0-15

中企 탄소중립 역량 높일 대책 서둘러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및 탄소중립 대응현황 조사에 따르면 2026년부터 시행되는 EU CBAM에 대해 중소기업 10곳 중 8곳은 “잘모른다”는 응답을 했다. EU쪽으로 수출실적이 있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기업도 절반가량은 CBAM에 대한 대응 방안이 없는 것으로 응답해 중소기업의 탄소중립 대응력이 매우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그에 대한 대응책이 절실한 것으로 분석된다.탄소국경조정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규제가 느슨한 국가가 규제가 강한 국가에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할 경우 적용하는 관세다. 유럽연합이 가장 앞서 이 제도 시행에 나섰고 2026년부터 EU로 수출되는 상품은 CBAM 적용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우리나라도 문재인 대통령 시절인 2020년, 지구촌의 기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의 실질적 배출량을 ‘제로’로 하는 탄소 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지구촌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글로벌 추세이나 이로 인한 기업의 부담은 상당하다. 특히 자본력이 약한 중소기업일수록 그 부담은 더 가중해질 수밖에 없다.최근 한국은행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0.6% 포인트 하락할 것이란 충격적 분석을 내놓았다. 특히 고탄소산업 비중이 높은 부울경 지역의 성장률 하락폭은 1.5% 포인트를 넘어설 것이 예상된다고 했다.탄소중립 이행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단적으로 적시한 수치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부담은 따지고 보면 기업의 몫이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책이 반드시 필요하다.지난해 기술보증기금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탄소중립과 관련해 “준비가 돼 있다”고 답한 업체는 3.2%에 불과했다. 중기일수록 탄소중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설비전환에 필요한 자금부족 등으로 사실상 탄소중립에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설비전환에 따른 자금지원, 대기업과의 상생 협력방안 모색 등 정부가 앞장서 해결할 과제가 태산처럼 많다. 하루가 바쁘다.

2023-10-15

공동 학술대회 참석 후기

김규종 경북대 교수 해마다 가을이면 러시아학 전공자들은 공동 학술대회를 기다린다. 6·25 사변과 냉전, 베트남 파병과 1·21사건 그리고 10월 유신 같은 사건을 경험한 한국에서 러시아 관련 연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맺고, 1992년 11월 19일 문화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 러시아 연구는 난맥상 자체였다. 연구를 위한 도서(圖書)를 구하는 게 불가능했고, 전문가 양성은 언감생심이었으니 말이다.1990년대 이전 러시아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국내에서 연구하면서 해외의 지인을 통해 서적을 구하는 것이고, 그 둘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었다. 일본이나 미국, 프랑스나 분단 도이칠란트 혹은 영국이 선호된 나라들이었다. 러시아학 전문가들은 크게는 국내파와 유학파, 유학파 가운데서도 미국파와 유럽파로 나뉜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그런데 33년 전 한러 수교로 오늘날 러시아학 전공자들 상당수는 러시아 유학파다. 얼마나 심도 있는 연구를 했는지, 하는 문제는 논문이나 학회에서 판가름 난다. 글이나 말은 연구자를 가장 잘 알려주는 도구다. 셰익스피어가 장막 비극 ‘햄릿’(1601)에서 일갈한 것처럼 “간결함은 지혜의 요체”이기 때문에 말하려는 핵심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연구자의 기본적인 덕목 가운데 첫 번째일 것이다.10월 14일 러시아학 관련 4개 공동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격변의 러시아-유라시아와 한국’이란 제목 아래 ‘러시아 어문학’과 ‘문화-역사’ 그리고 ‘사회과학’의 네 분야에서 온종일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러시아 희곡 연구자인 나는 생소한 ‘사회과학’ 분과 발표를 신청했다. 그리고 발표를 위해서 특별히 파워포인트 자료도 준비하여 열차 편으로 상경했다.‘동북아시아평화경제공동체 구상’이 나의 발표 제목이다. 21세기 대표적인 세계주의자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2004)과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유럽적 보편주의’ 그리고 그들의 사상적 지주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1980) 같은 서책에서 단서를 얻은 발표문이다. 요약하자면, 남북한이 평화를 매개로 공존하여 마침내 통일 한국을 만들고, 이것에 기초하여 동북아에 새로운 평화경제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구상이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 나온 ‘동북아 허브’를 떠올리는 독자는 복 많이 받으시길!)유럽연합(유럽), 아프리카연합(아프리카), 아세안(동남아시아), 나프타(북미), 메로코수르(남미)가 입증하는 것처럼 블록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데 미-중-일-러 4강이 충돌하는 위험지대 동북아에는 이런 공동체가 없다. 그리고 공동체를 추동할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신과 의혹으로 얼룩진 중-러, 중-일, 러-일 관계 때문이다. 또한 남북한의 적대적 공존 역시 지역의 불화와 대립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나의 구상이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몽환적이라 비웃는 사람에게 나는 말한다. “세계를 바꾸는 것은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몽상가나 낭만주의자”라고. 별을 찾아 밤하늘을 볼 때다.

2023-10-15

의대정원확대 ‘비수도권·필수의료’에 집중을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1천명선까지 늘리는 방안을 직접 발표한다고 한다. 그동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폭을 놓고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줄어들었던 351명을 다시 늘리는 방안 △정원이 적은 국립대를 중심으로 521명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왔지만, 실제로는 확대 폭이 1천명을 넘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올들어 의료계와 시민사회, 전문가들과 의대 정원 확대를 놓고 장기간 논의를 해왔다. 대한의사협회와는 14차례 회의를 했고, 지난 8월에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 산하에 한국소비자연맹 등이 참여하는 전문위원회를 가동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여론을 수렴했다.우리나라 임상의사 수는 작년기준 인구 1천 명당 2.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수준이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1명으로 떨어진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의대 정원은 지난 2000년 10% 줄어든 뒤 2006년 이후 3천58명으로 묶여 있다.의사단체는 의대 대폭증원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지금 비수도권 지자체의 경우 의사부족으로 인한 의료체계 위기상황은 심각하다. 대구지역에서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응급 환자가 입원할 곳을 못 찾아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헤매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소아과 전문의 부족으로 오전 9시만 되면 소아과 병원의 하루 예약이 끝나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전국 소아과 700여 곳이 사라졌다는 통계도 있다.의대정원 확대로 우려되는 점은, ‘의대진학 열풍’이다. 상위권 수험생들의 의대쏠림과 주요대학 이공계 학생들의 의대진학을 위한 자퇴·휴학이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질 수 있다. 올해만 해도 서울대 신입생 중 휴학생이 418명이나 되는데 상당수가 의대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려면 도(道)단위 지자체 병원이나 필수의료(소아과·외과)쪽의 의사를 집중보강하는 방향으로 의대정원 확대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2023-10-15

미래를 여는 혁신의 길

정상철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꿈은 도전을 낳고 도전은 열매를 얻는다. 삶은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고 자기창조다. 인류의 역사나 기업의 생리를 보면 지속적인 미래를 준비하고 도전하지 않은 것은 중도에 멈춤이 있을 뿐이다. 미래를 여는 혁신의 길은 현재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대내외 현황과 변화를 정확히 분석하고 올바른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미래로 나갈 방향에 맞는 전략과 경영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운영체계와 실행력이 성공의 관건이 된다. 이를 혁신경영이라 한다. 혁신경영 성공 요건은 무엇일까. 첫째는 리더십이다. 혁신은 조직의 힘으로 움직이는 속성이 있다. 조직 수장이 혁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지속적인 스폰서십이 성공의 우선조건이다. 우화에 의하면,‘우리 마음 속에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먹이 주는 쪽이 이긴다’가 답이다. 균형 있는 조직운영과 리더십이 실패를 막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열린 의사소통이다. 혈관이 막히면 고혈압과 동맥경화가 생기듯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되는 기업문화가 되어야 효율적인 개선활동이 될 것이다. 셋째, 자원투자이다. 혁신활동을 위해서는 필요한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 예산, 시간, 인력, 기술적 지원이 되는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원가절감 방침 아래 필요 투자를 못하고 타이밍을 놓치면 여러 부작용이 발생되는 것이다. 셋째는 조직의 역량강화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혁신의 수준은 조직원의 능력이 결정 짓는 것이다. 내부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과 세대에 맞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제공해야 한다. 넷째, 혁신 방법론이다. 혁신의 본질은 ‘문제를 푸는 것’이다. 기업은 대내외 상황변화와 앞서가는 방향 설정, 전략과 타이밍에 맞게 문제를 풀 수 있는 혁신방법론으로 진화 발전하지 않으면 TOP의 관심에서 멀어져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활동인프라이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시간, 손, 동기부여 등 개선인프라를 갖추지 못하면 우물가에 숭늉을 바라는 격이다. 기업활동에 안전은 기본이나 안전 행정이 지나쳐 문제의 본질을 못 본다면 기업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 올 수 있다. 필자는 P사를 10여 년 컨설팅 하면서 생긴 꿈은 P웨이를 완성하는 것이다. 일의 속성과 설비 특성, 생산프로세스의 특징을 이해하고 전략에 따라 변해가는 생산조건의 문제개선을 위해 혁신의 Tools도 진화 발전해나가야 한다. 사회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생산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혁신의 가치인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사회봉사의 꿈이 있다. 조직에 혁신을 넣으면 건강한 조직, 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힘이 있다. 금년 10월부터 미래혁신경영연구소란 1인 기업을 설립하고 지속적인 연구와 실행으로 얻는 지식, 경험을 건강한 사회, 부강한 나라가 되는 데 일조를 하고자 한다. 미래를 여는 혁신은 기업의 백 년을 보장하여야 하고 그것은 자사에 맞는 혁신을 잘 선택해서 진화 발전을 통한 고유의 혁신문화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결국, 기업의 혁신은 TOP의 관심, 지속성과 진화 발전에 있다.

2023-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