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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도 정의감 중독자일까?

유영희 작가 지난 주 목요일에 동네 문화 행사에 다녀왔다. 지역 문화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정책 토론회였는데, 공공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있어 관심이 갔다. 그런데 자료집을 보니, 오프닝 공연 연주자가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의 약력은 누락되어 있고, 연주곡의 작곡자도 잘못 표기되어 있었다.행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음날 행사를 주관한 기관에 전화하니, 담당자는 그쪽에서 보내준 대로 편집했다며 같은 말만 반복한다. 결국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고 다음부터는 오류가 없도록 꼼꼼하게 살피겠습니다. 이렇게 답변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하니, 담당자는 내 말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따라한다. 그러자 조금씩 올라오던 감정이 고삐가 풀리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차, 나도 정의감 중독자인가?’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한때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을 정도로 분노는 정의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안도 슈스케는 ‘정의감 중독 사회’에서 ‘분노’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지만, 정의감에 휩싸여 분노가 폭주하면 정의 실현은 간 데 없고 자신에게도 사회에도 해롭기만 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감정을 일그러진 정의감이라고 하면서, 저자는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나와 다른 사람에게 건전한가?’를 숙고하고, 나아가 관여할 필요가 있는 일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가늠해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여하고 싶다’와 ‘관여할 필요가 있다’를 구분하는 일이다.이런 이야기는 자칫 소시민적 행복을 추구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일은 개인이 관여하기도 어렵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관여할 필요가 있는 일은 해야 하며, 다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분노는 지혜로운 이성으로 대체되고 정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이것을 참고해서 내 행동과 감정을 점검해보니, 관여할 필요성보다는 평소 오타 하나에도 지나치게 예민한 나의 특성이 작동해서 관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소소한 에피소드지만, 이렇게 올바름을 추구하는 행동의 기저에는 해결을 기다리는 마음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충분했다.여기저기 SNS에 분노를 폭발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정의감에 중독된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의감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도 해야 하지만, 사회 교육 기관에서도 개설하면 좋겠다. 분노하는 내 마음의 기저를 인식하는 연습은 혼자만 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확산될 때 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관여할 필요가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하게 실천할 때 정의는 더 잘 실현된다.

2023-10-15

순우리말을 사랑하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올해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지 577년이 된다. 비가 올 듯한 날씨에 베란다 밖으로 태극기를 달고 고개 내밀어 살펴보니 130여 가구의 아파트 벽면에는 다섯 집 정도가 걸려있다. 국경일에 대한 국민 의식이 좀 더 고양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념식 중계방송을 보며 한글날 노래를 3절까지 따라 불러봤다. ‘한글은 우리 자랑이요 문화의 터전이며 생활의 무기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라고 다짐하고 보니 한글과 우리말 사랑의 마음이 잔잔히 일어난다. 한글은 4글자(ㅿㆁㆆㆍ)가 없어지고 자음 14자, 모음 10자 총 24자로 소리가 나는 대로 쓸 수 있는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글자이다.요즈음 글을 읽다 보면 그 의미를 잘 모르는 말들이 있다고 한다. 말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변화한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의 휴대폰 대화와 문자전송 등에서 사회와 문화의 발전에 따른 지식으로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유행되기도 하여 우리말에 편입되거나 짧게 유행하고는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특히 한글은 거의 모든 발음을 나타낼 수 있기에 한자어나 외래어로 유입된 지 오래되어 발음이 변하여 고유어로 오인되는 귀화어(歸化語)도 상당히 많다. 우리 고유어라고 생각되는 단어들이 외래어일 수도 있고, 순우리말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명확하게 가려내는 것이 어렵기에 논란도 있다.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한자문화권에 들어있어서 한자에서 유래된 단어가 많고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기초적인 단어는 일본어로 대체되었으며 또 나라가 발전하며 서방 국가들과 많은 왕래로 영어가 스며들었다. 이러한 언어문화 변화의 다양화로 우리 고유어가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고 그 유입을 차단하기란 불가하고 또 적합하지도 않아 다른 방향의 언어순화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새로운 개념이 들어올 때 한자어를 이용하기 편하고, 고유어를 한문으로 음역(音譯)하면서 그에 비슷한 한자를 쓴 결과 순수한 우리말과 구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글을 쓰면서 가능한 한 순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함축된 뜻을 전하려면 한자어를 쓰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순우리말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순우리말인 줄 알았던 바람(風)과 가람(江)이 고대 중국어에서 왔고 붓, 쇠도 어원은 중국어에 있다고 하니 놀랍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선조들은 중국대륙에서 옛 문화를 공유한 탓이라고 봐야할까? 감자 고추 대추도 한자어의 변형이며, 심지어 김치도 침채(沈菜)라는 어원을 갖는다는 설도 있다. 이와 반대로 한자어로 오해받는 순우리말에는 근심, 마감, 거문고 등이 있고 생각도 생각(生覺)이 아니란다. 우레도 우뢰(雨雷)가 아닌 순우리말이고 에누리도 일본어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고유어로 착각하는 것에는 가짜, 공부, 귤 그리고 수를 셀 때의 ‘개(個)’도 한자어이고 냄비, 가방은 일본어, 담배와 빵은 포르투갈 언어라고 한다.캘리그라피 공부를 하며 외래어 같은 순우리말 몇 개를 듣고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자연 그대로 변함없는-온세미로’ ‘사랑하는 사이-예그리나’ ‘즐거운 내일-라온하제’ 등 순우리말을 많이 사용하여 꽃가람 흐르는 ‘세상의 중심-가온누리’가 되길 바란다.

2023-10-12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세력들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를 법치주의(法治主義)라고 한다.‘법 우위의 원칙에 따라 모든 국가 작용을 법규범에 따르게 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원리’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 대다수 국가들이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진보된 통치원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일 것이다. 국가권력을 단순히 형식적인 법률에 구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실질적인 법 가치에 구속시키는 원리, 즉 모든 국가권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되고, 모든 법률은 그 헌법의 가치를 실현할 때에만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문재인 좌파정권은 좌경화된 정치세력이 어떻게 법치주의를 파괴하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그들이 ‘촛불혁명’이라고 찬양하는 대규모 군중시위부터 초법적인 요소가 없지 않았다. 그 세를 휘몰아 대통령을 탄핵하고 좌파정권을 탄생시켰고, 그야말로 민중혁명인 듯 일거에 방송매체를 장악하고,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우파정권 인사들을 모조리 사법처리하는 등 정치권의 좌경화 물갈이를 단행했다.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간 격앙된 민심을 지속적으로 붙잡아 놓기 위해서는 포퓰리즘과 프로파간다가 필수라는 걸 알았다. 그런 전략이 적중해서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해 입법부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조정법(검수완박), 임대차3법, 기업규제3법, 노동3법, 남북관계협력법(대북확성기, 대북전단 금지), 언론 중재법 등을 무소불위로 밀어붙였다. 정권이 바뀌어도 입법부는 조금도 위축되는 법이 없이 사사건건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지난 정권과 좌파정당의 비리를 덮기에만 혈안이다.문재인 정권의 사법부 장악은 법치파괴의 결정판이었다. 좌경화 판사들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맡았던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에 임명하면서 정부의 눈치를 보는 사법부로 만들었다. 그 좋은 예가 조국 사건, 드루킹 사건 등에 유죄를 선고한 임성근 판사에게 국회가 탄핵을 강행하려 하자, 그것을 이유로 임 판사의 사직서를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그래 놓고 국회에 나가서 거짓말까지 하였으니 대한민국 사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하급기관으로 전락한 것이다.김명수 대법원장 행태에는 사법부의 독립이나 법의 공정성, 사회정의구현 같은 기본적인 법의식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법연구회 출신들로 사법부의 요직을 채우는 등 코드인사를 자행하고, 관례를 무시하고 서울 중앙지법에 김미리 부장판사를 4년 동안 유임시켜 울산시장 부정선거에 대해서는 기소한지 2년3개월 동안이나 뭉개는 재판지연을 하게 했다. 김명수는 대법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곳곳에 그가 심어놓은 판사들은 여전히 좌편향적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 이재명 야당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판사도 김명수가 심어놓은 사람이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 되었음에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것도 그런 연유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10-12

DGB금융그룹과 김태오 회장의 행보

홍석봉 대구지사장 DGB대구은행이 창립 56주년을 맞았다. 대구은행은 1967년 최초의 지방은행으로 출범한 후 반세기 넘게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다. 대구은행은 지난 6일 56주년 창립기념일을 맞아 전 직원이 나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지역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자축했다. 하지만, 만 56년이 된 대구은행의 안팎 사정은 그렇게 녹록치 않아 보인다. 급격한 디지털화 등 금융환경 변화와 금융 당국에서 조여오는 지배구조 개선 요구 등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특히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다가 주춤한 시중은행 전환은 선결과제다. 그간 제기됐던 CEO리스크 극복과 각종 일탈행위로 드러난 내부통제 부실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전임 회장에 이어 불거진 CEO의 사법리스크는 DGB금융그룹의 골칫거리다. 어떻게 해서든지 털고 가야 한다. 그리고 증권계좌 불법 개설로 실추된 은행의 신뢰도 빨리 회복해야 한다. 책임 소재를 가려 문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수장이 최근 1주일 사이 DGB금융그룹과 김태오 회장에 대해 연달아 경고장을 날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5일 김 회장의 3연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불거진 연령제한 규정을 바꾸려는 시도와 관련,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며 현 회장이 재선임될 수 없다며 못 박았다.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대구은행의 불법 계좌개설 파문이 시중은행 전환 심사 과정에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구은행이 추진 중인 시중은행 전환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구은행의 불법 계좌개설 파문을 비롯한 비자금 조성, 채용비리, 캄보디아 공무원 뇌물 증여 등 대책과 질의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김태오 회장은 2018년 5월 전임 박인규 회장이 불법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됨에 따라 경영 공백이 생긴 DGB금융지주의 구원투수로 영입됐다. 이후 연임에 성공했고 2년간 대구은행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캄보디아 투자와 관련, 검찰에 기소됐다. 황병우 은행장과 사외이사 선임 등과 관련해서도 말이 나왔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김 회장의 3연임을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것이 금융계 안팎의 시각이었다. 여기에 불법 계좌 개설이라는 돌발변수가 생겼고 회장후보 관련 규범 변경 논의가 일자 김 회장의 3연임 논란이 불거졌다. 금감원은 이참에 DGB금융의 지배구조 전반을 살펴보고 있다.김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주총까지다. 경영안정 등 치적도 있지만 사법리스크와 내부관리 문제는 DGB금융그룹에 큰 부담이다. 금융당국은 경고음을 보내며 DGB금융그룹과 김 회장을 압박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 김 회장의 퇴진과 후임자를 거론하는 분위기다. DGB금융그룹이 하루빨리 털고 일어나길 바란다. 신뢰를 되찾고 시중은행 전환을 성공리에 마무리해 전국적인 은행으로 거듭나는 것이 지역민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다.

2023-10-12

최강 예비군

우정구 논설위원 인구가 적어 예비군 의존도가 높은 이스라엘의 군병력 운용 방식에는 많은 나라들이 관심이 많다.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스라엘은 약 40만명의 예비군을 긴급 소집했다. 이때 외신들은 “이스라엘처럼 빠르게 예비군을 소집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불가능한 일”이라 평가했다.이스라엘은 인구 780만명으로 상설군은 17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사시에는 45만명의 예비군을 현역처럼 부릴 수 있어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다.이스라엘 남성의 의무 복무기간은 3년이고 여성은 2년이다. 이들은 함께 입대해 소부대를 편성하고, 복무기간이 끝나면 해당 부대를 통째로 예비군 부대로 전환시킨다.전환된 부대는 이후 약 20년간 매년 소집 훈련을 같이 받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이들은 평생 전우이자 친구로서 전우애를 다지게 된다. 이런 전우애가 막강한 군사력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만이 가진 독특한 예비군 운용방식이자 장점이다.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간 전쟁을 보면서 특별히 눈길이 가는 뉴스 중 하나가 이스라엘 예비군의 귀국 행렬이다. 각국에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던 이스라엘인들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공항으로 속속 집결되는 모습은 참으로 참신하고 이색적이다.로이터 통신은 “프랑스 파리의 국제공항에도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 청년들이 줄을 섰다”고 보도했다.중동에 많은 나라와 적을 하면서도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이스라엘에는 이런 막강한 예비군이 건재하기에 국토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0-12

‘스페이스 워크’ 기업과 도시의 값진 상생물

포항 환호해맞이공원에 있는 국내 최초·최대 체험형 조형물 스페이스 워크가 개장 2년도 안 돼 체험 방문객 2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1월 첫선을 보인 스페이스 워크는 개장 1년 만에 100만명을 돌파하고, 10월 현재 198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돼 포항의 랜드마크로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독일계 예술가 부부가 철강도시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살려 만든 국내 최초·최대 체험형 스틸트랙 조형물인 스페이스 워크는 마치 우주를 걷는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해 관광객의 인기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특히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반짝이는 야경과 맛집 등이 SNS 인증으로 소문나면서 포항의 필수 여행코스로 자리를 잡고 있다. 또 최근에는 각종 촬영지로 부상되는가 하면 JTBC 드라마 주인공의 야간 테이트 장소로 촬영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스페이스 워크가 단시간에 전국적 유명 명소로 떠오르고 포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 것은 포항시와 포스코가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상생 노력한 결과다.공공미술을 통한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포스코의 기업시민 정신이 출발점이 됐고, 이를 적극 뒷받침 한 포항시의 지원이 좋은 결과를 만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페이스 워크가 포항의 관광명소화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소기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사례는 외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은 소장 미술품으로도 유명하지만 미술관의 독특한 건축양식이 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경우다.스페이스 워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되는 쾌거를 얻으며 이제 전국의 많은 도시들이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해양문화관광도시 포항의 위상이 더 높아지는 일로 반가운 일이다. 관광객 200만명 돌파가 1천만명 돌파로 이어지고 기업과 도시가 만들어낸 상생물이 제2, 제3의 스페이스 워크 탄생으로 이어져 경북의 관광 및 경제에 큰 힘이 되길 바란다.

2023-10-12

시민여론이 바로 ‘대구신청사 건립’ 해법이다

대구시가 최근 잠정 중단된 시청 신청사 건립 사업에 대한 시민여론 조사(리얼미터 의뢰, 만 18세이상 1천명 대상)를 한 결과, 80.7%가 ‘시 재정이 호전될 때까지 보류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대구시 재정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빚까지 내 시청사를 새로 짓는 것을 대부분 시민이 원치않는 것이다. 신청사 건립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신청사 예정지 및 유휴부지를 매각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답변이 60.5%로 다수의견을 차지했다. 대구시는 앞서 신청사 건립 재원 마련을 위해 달서구 옛 두류정수장 부지 15만8천㎡ 가운데 절반 가량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대구시의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여론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꼭 신청사를 지어야 할 경우 유휴부지를 매각해 건립하는 것이 최적의 방안”이라고 밝혔다. 대구시가 현재 매각 대상으로 꼽는 유휴부지는 성서행정타운과 시청 동인청사 및 주차장이다.신청사 건립 비용은 4천5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대구시는 시 소유 자산과 두류정수장 유휴부지 일부를 민간에 매각하고, 그 돈으로 시청사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대구시는 “계획대로 진행되면 대구경북신공항 개항 시점에 신청사가 완공될 수 있다”고 밝혔다.대구시의 이러한 계획에 반대하는 ‘시청사 바로세우기 추진위원회(달서구민들로 구성)’는 지난 11일부터 “신청사는 원안대로 건립돼야 한다”며 대시민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추진위가 주장하는 ‘원안’은 옛 두류정수장 전체를 시청사 부지로 지정해 대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대구시는 지금 중구 동인동 청사가 비좁아 경북도청 후적지(문화체육관광부 소유)를 1년 단위로 계약해 ‘산격청사’로 활용하고 있다. 산격청사 일대는 곧 도심융합특구로 지정될 계획이어서 대구시로선 신청사 건립시기를 계속 미뤄둘 수 없는 형편이다. 대구시와 달서구는 이번에 발표된 시민여론조사와 시 재정상태를 토대로 해서 대화를 통해 신청사건립 해법을 찾길 바란다.

2023-10-12

소설 ‘달꽃’과 ‘덴동어미전’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며칠 사이 두 권의 소설을 읽었다. 250쪽 내외 분량의 짧은 소설이라 단숨에 읽을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둘 다 여성 소설가의 작품에 여성이 주인공인데다 경상도 사투리를 활용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달꽃’은 지난 8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작가 이화리는 경주에서 나고 자라 경주를 문학의 뿌리로 삼은 작가다. 20년 전 잠깐의 인연이 있어 아주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기도 하는 사이다.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하진 않지만 글이 야물고 내공이 깊다. 신간이 반가웠다. ‘촌년’ 작가라고 밝힌 그녀는 ‘촌이야기’를 ‘촌말’로 쓰겠다고 작가의 말을 대신했다. 작심하고 경주를 배경으로 경주 사투리를 사용하겠다는 거다. 130년 전쯤 전 경주 안강, 현곡 등을 배경으로 경주의 이야기를 경주의 말로 쓴 ‘달꽃’은 여성만의 신체적 생리적 능력을 이야기한다. 터부시되어온 여성의 달거리를 인간의 존엄과 우주적 신성으로 드러냈다. 또한 여성에게만 강요했던 순결 이데올로기를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꾸짖고 달래고 어루만진다. 방언학자 이상규는 발문에서 “통상 터부시되어온 달거리와 경상도 방언의 고유성을 오묘하게 복원시킨 소설”이라며 여성들에겐 위안과 감사를 경주인들에겐 토착적 언어의 선물이 될 것이라며 치하했다.일부러 찾아 읽은 ‘덴동어미전’은 경북대 도서관에 소장된 ‘소백산대관록’이라는 필사본 속에 있는 내방가사 ‘화전가’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화전가는 경북의 여성들이 짓고, 필사하고 낭송하는 문학인 내방가사 중 흔한 유형의 가사다. 그 중 ‘경북대본 화전가’는 구성이 독특하고 내용과 묘사가 특히 뛰어나서 문단에서 크게 평가하는 작품이다. ‘소백산대관록’이 1938년 필사되었는데, 작중 1886년(고종 23년) 괴질에 대한 언급이 있어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도 130여 년전쯤으로 거슬러 짐작할 수 있다. 경북 영주 순흥을 배경으로 ‘덴동어미’라는 등장인물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담의 장편가사이다. 이방집 무남독녀로 태어난 그녀가 네 번의 결혼과 재혼을 반복하며 살아온 굴곡진 이야기를 화전놀이라는 여성들만의 유희 장소에서 수다로 풀어낸 대서사시이다. 이 가사의 배경이 영주 순흥이고 덴동어미가 이곳 출신인데다 화전놀이에 참여한 여성들이 영주 인근에서 결혼하여 온 여성들이라 이 지역의 사투리가 주로 쓰였다. 덴동어미가 30여 년을 예천, 상주, 경주, 울산, 영해를 떠돌아다니는 동안 그 지역의 방언들이 사용되기도 했으나 주로 경북 북부지역의 사투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 구사가 예사롭지 않은 박정애 작가 역시 경북 청도 출신이었다.경북 출신의 여성 소설가가 경북의 사투리로 쓴 130여 년 전의 여성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소설은 많이 닮았다. 주인공 여성들의 인생유전이 남달랐음에도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스스로 당당하고 서로 격려하는 장면 또한 닮은꼴이다. 사투리는 눈으로 읽기보다 소리내어 읽어야 맛이 사는 글말이다. 나직히 소리내어 읽으니 나는 아예 소설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곳 그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2023-10-11

경북예술의 미래지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높아지는 하늘과 서늘한 바람 결에 산과 들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가고 있다. 푸르던 들판은 차츰 황금물결로 넘실대고, 산자락의 잎새는 가볍게 흔들리며 엷게 물들어가고 있다. 청록을 자랑하던 수풀은 기온의 변화에 하나씩 잎사귀를 떨구거나 변색으로 수런대며 서서히 산하를 물들일 채비다. 이른바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번째의 봄’이라는 가을은, 햇살과 바람과 구름과 이슬이 번갈아 초목을 쓰다듬고 어우르며 두번째의 봄을 부르고 있다.그렇게 가을이 오면 사람들의 가슴도 설렘과 그리움으로 물들기 마련이다. 화사한 단풍에 젖어 구르몽의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흩날리는 낙엽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가 하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파란 하늘과 오색영롱한 풍엽은 감성의 바다에 빠져들게 하기도 할 것이다. 눈으로 보이고 귀에 들리는 자연의 변주곡이 온갖 상념(想念)의 촉수를 자극하는 10월은, 다채로운 축제와 전시·공연이 많고 각종 행사가 줄을 잇는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대표적인 것이 10월 첫 주부터 열린 경북예술제가 아닐까 싶다. 경북예술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예술을 통해 도민의 정서순화에 이바지하며 새로운 문화 경북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제45회 경북예술제’ 개막식이 지난 6일 경산에서 열렸다.민족의 스승이신 원효대사, 설총선생, 일연선사를 기리는 삼성현(三聖賢)역사문화공원 야외공연장에서 경북도 행정부지사, 경산시장 등의 내빈과 경북예술인,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억의 노래가락과 신명난 타북 마당, 경북예술상 시상, 축하공연 등이 진행되는 동안 노을 마저 곱게 피어나 시종 흥겹고 아름다운 예술제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개막식을 시작으로 (사)한국예총 경상북도연합회 산하의 8개 단체에서는 경산시 및 기타 지역에서 부문별 특색있고 독창적인 전시, 공연 등 한마당 축제의 장이 성황리에 펼쳐졌다. 문인협회에서는 경북예술센터에서 ‘2023 경북문인 글과 그림전’을 다채롭게 선보이고, 미술협회에서는 아카이브 영상으로 온라인 작품전을 열었는가 하면, 사진과 음악을 비롯해 팝스 연주회, 연극, 국악한마당·무용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전문성을 살린 작품과 공연을 준비하여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도민들에게 풍부한 볼거리, 예술향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경북예술의 정체성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지속가능한 문화융성의 기틀을 다지는데 일조했다.경북예술인들의 땀과 열정으로 펼치는 경북예술제는 경상북도 최대의 문화축제이다. 장르별, 지역별 작가들의 예술적 가치와 문화적 창조력이 지속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창작활동을 지원하여, 지역 고유의 풍성한 문화유산과 잠재력을 발굴, 접목하여 미래지향적인 21세기 대한민국 예술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정치와 경제, 인구 등의 중앙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지만, 문화와 예술의 기반은 얼마든지 지역성을 살린 특성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문화로 소통하고 예술로 교감하는 일상이 윤택하고 아름답듯이,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이 곧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한층 높여줄 것이다.

2023-10-11

아이라는 세상

배문경수필가 “당신이 이 세상을 있게 한 것처럼 아이들이 나를 그처럼 있게 해주소서. 불러 있게 하지 마시고 내가 먼저 찾아가 아이들 앞에 겸허히 서게 해주소서.” -김시천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 중에서‘행복육아’란 주제로 공모전이 있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백 여 편이 넘는 에세이와 동영상이 그 정도의 숫자로 전달되었다. 나도 자식을 키웠는데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의 일부분은 교집합이었고 때론 개성이 있고 대부분의 내용은 유사했다. 단지 내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다 키운 사람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엄마가 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렵게 임신을 해도 유산이 되거나 임신이 안 되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공수정을 선택한 모성(母性)이 눈물겨웠다. 엄마가 되고 싶은데 주어지지 않는 한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부부가 좌절할 것인가.오래전 난소가 하나 밖에 없는 친구가 임신이 안 되어 병원을 찾았고 여러 번의 실패에 병원을 다녀와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때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고 눈물 흘리던 친구가 생각난다. 서너 명의 여자들이 얼마나 기뻤는지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 아이가 이제는 대학을 다니고 있다. 이처럼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기도는 읽는 내내 나 자신을 낮은 곳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만들기에 충분했다.한 생명을 잉태해서 열 달이란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나 아닌 타자를 몸속에서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더더욱 쌍둥이 엄마가 겪을 힘듦이 글을 통해 잘 나타나 있었다. 하나도 힘들다는데 다둥이인 경우 배수(倍數)로 고난한 시간을 경험했으리라. 워킹맘들의 힘듦 또한 시간의 배분과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이제 낮 시간 국가에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키워준다니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 숫자가 적어진다.어느 순간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기 힘들어지고 아이들의 재롱이 사라져감을 느낀다.지금 한국은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로 가장 빨리 국민이 사라질 나라 1위다. 임신과 육아 그리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큰 책임 앞에서 삶의 사래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신과 육아 그리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큰 책임 앞에서 회피한다. 많은 미혼과 기혼의 남녀가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전대미문의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득을 보겠노라고 얼른 임신을 선택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모성의 힘듦 뿐만아니라 아빠들의 절반의 노력들이 돋보였다. 아내와 아이를 케어하는 내용이 신선하기조차하다. 아내를 위해 본인이 아침을 만들고 아이를 위해 과일을 썰어 둔다는 아빠. 손녀손자를 위해 유치원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마칠 때 차를 기다리며 느끼는 감회는 따뜻했다. 자녀를 키울 때는 몰랐던 애틋함이 묻어났다.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충분히 바쁘다. 그래도 내 자녀를 위해서 손자손녀를 위해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을 배려하는 경우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아이를 키울 때는 바빴고 정신없이 보낸 세월이었다. 이제 다 커서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한 자식을 보는 것은 흐뭇하다. 자식들이 힘들어 할 때 내리사랑으로 손자손녀를 돌봐주는 것도 큰 기쁨이 아닐까. 유명한 음악가이자 시인인 한 분은 외국에 있는 딸을 위해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를 돌봤다. 그 아이를 위해 시집을 냈을 정도이다. 그 사랑의 깊이를 보는 듯하다.에세이와 동영상에서 돌발적이고 신선한 많은 이야기들, 사랑의 문집이었다. 사랑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 일인가. 좀 더 아이들이 세상을 밝힐 아름다운 씨앗이 되도록 배려할 일이다. 오늘 아침 출근 길에 어린 소녀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공원에 나와서 함께 운동을 하고 있었다. 눈을 비비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고맙구나. 고맙구나.우리에게 내일은 바로 아이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 우리들의 미래여!”

2023-10-11

신유일주(辛酉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여덟 번째는 신유(辛酉)이다. 천간(天干)의 신금(庚金)과 지지(地支)의 유금(酉金)은 모두 금(金)의 성질로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이며, 은장도 같은 형상이다. 동물로는 흰 닭이다.신유일주는 완제품 보석처럼 정교하고 화려하지만, 위험한 아름다움이 내재해 있다. 섬세함과 잔인함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숙살지기를 품고 있다. 숙살지기는 가을의 쌀쌀한 기운을 말한다. 이는 만물의 성장을 멈추게 한다. 실제로는 성장에너지를 거두어 저장하는 행위이기에 열매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살리는 기운이기도 하다.건전한 사람이 많고, 자립심이 강하여 혼자 힘으로 성공하는 자수성가형이다. 고난이 찾아와도 굳센 마음으로 이겨내는 힘이 강하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한 만큼 타인의 의견을 듣지 않고 갈등을 스스로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신경이 예민하고 냉정하기에 고요하고 평온한 것을 좋아한다.특징으로는 직관력이 발달하고 주관이 확실하여 부지런하며 강직한 성품이다. 자기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면 다 믿어버리는 기질이 있다. 한 번 꽂히면 끝까지 가는 성질 때문에 크게 성공할 수 있지만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60갑자에 3대 고집(을묘, 임자, 신유)이 있다. 그 중에서 신유가 가장 강하다. 고집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고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는 성미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조선시대 이광려(1720∼1783)는 벼슬이 참봉에 불과했지만, 덕행과 학식이 높아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백성을 배고픔에서 구하려는 고집과 집념으로 고구마 재배에 뛰어들었다. 중국에 가는 사신이나 역관에게 종자를 부탁했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일본 통신사로 가는 조엄에게 부탁해 고구마 한 포기를 구해 집에서 시험 재배했으나 실패했고, 동래부사 강필리에게 부탁해 몇 포기를 구했으나 또 실패하고 말았다.이광려는 실패했지만 그의 구민(救民) 노력에 감명을 받은 강필리가 뒤를 이었다. 따뜻한 남해안 지역에 고구마를 심어 성공했으나 북상하지 못했다. 이어 김장순이 등장하여 선종한이라는 사람과 합작해 서울에서 시험재배에 성공한다. 서경창이라는 사람은 아무 지위도 없는 선비였다. 그는 실학을 연구하면서 식량문제 해결에 노력하여 북쪽지방의 가난한 백성들도 고구마의 혜택을 받도록 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다음 차례로 전라도 관찰사 서유구는 모든 자료를 종합하여 ‘종저보’를 저술한다. 그에 의해 고구마는 남쪽 거의 모든 지역으로 전파된다.이런 숱한 노력의 결과로 1900년대 초 고구마는 전국적으로 재배되었다. 그나마 뜻있는 선비들의 수백 년에 걸친 고집스러운 노력 때문에 고구마 토착화가 이루어졌다. 고구마에는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을 기아에서 구하고자 했던 이름 없는 선인들의 땀과 노력과 집념이 묻어 있다.신유일주 남자는 재주가 있고 자립심이 있으며 인정을 베풀 때는 봄눈 녹듯이 다정하다. 허나 냉혹하고 잔인한 면도 내재하고 있다. 머리가 좋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결혼할 때 여자의 외모보다는 능력을 우선시한다. 여자는 자기를 보석처럼 빛나게 해주는 남자를 선호한다. 남편을 친구나 동료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고, 금전에 대한 집착이 강해 알뜰하며 낭비가 없는 편이다. 남녀 모두 고집으로 충돌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신유일주의 유(酉)는 닭이며, 12지지 중의 대장이다. 그래서 우두머리를 뜻하는 추(酋)로도 쓰인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라는 닭이다. 대단한 집념이 있는 싸움닭이며, 죽는 줄 알면서도 나름대로 정의감으로 외길을 가는 성격이다. 닭의 역할은 어둠의 시기에 새벽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혁명적 기운이다.천간 신(辛)은 음(陰)에 속하는 여자다. 찬바람이 휙휙 부는 마지막 잎새처럼 앙팡지며, 추운 겨울도 끝까지 버티는 맵고 찬 보석 같은 여자다. 타인을 위해 대가없이 희생하는 구도자적 정신도 겸비하고 있다. 하지만 남들이 보면 어딘가 취한 것 같다고 해서 술 주(酒)에도 사용된다. 배우자를 끝까지 사랑하며, 사별하면 다시 배우자를 찾는 것도 닭 유(酉)의 성질이다.남자에 취하건, 사랑에 취하건, 어딘가에 의지해서 취해야만 사는 사람. 남자가 그러한 여자를 만나거나, 여자가 그러한 남자를 만나면 정말 멋있는 일이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 소설 ‘귀여운 여인’에 나오는 주인공 올렌카다. 올렌카는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 여자였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올렌카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울하던 때에 전형적으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극장의 공연매니저 쿠킨을 만나게 된다. 그가 힘들어 하고 짜증내는 모습을 보면서 연민을 느껴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와 결혼한다. 그가 죽자 올렌카는 다시 우울해진다. 그러던 중 목재상 프스토발로프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그들을 죽음이 갈라놓았다.그러나 올렌카의 사랑은 또 이어진다. 대상은 다르지만 사랑의 속성은 동일하다. 자기 집 별채에서 세 번째 사랑을 찾은 것이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수의사 스미르닌은 군대를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몇 해가 지나 수의사가 어린 아들 샤샤와 함께 돌아왔다. 올렌카는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모성애의 기쁨에 빠져 행복해 한다.올렌카가 귀여운 것은 그녀가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고 누군가와 함께할 때 행복해 한다. 자크 라캉의 ‘타자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으로 둔갑하여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견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남편의 생각인 것이다. 혼자가 된 그녀는 늙어가지만, 어린 샤샤를 만난 후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스스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주려고 한다. 사랑받길 원하는 자는 상대가 자신을 다시 한 번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보내주기를 바란다.

2023-10-11

DGB금융 회장, 새인물이 될 가능성 커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DGB금융지주 김태오 회장의 3연임에 제동을 거는 발언을 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고객 동의 없이 예금연계 증권계좌 1천여개를 임의 개설한 혐의로 대구은행을 강도 높게 검사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김 회장의 연임 논란까지 발생하자 DGB금융 지배구조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 원장은 지난 5일 서울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서 취재기자들에게 “DGB금융이 회장후보 연령제한을 다른 금융사 수준으로 높이는 것에 대한 논의는 물론 할 수 있지만, 이미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시작된 상황에선 축구경기가 시작됐는데 룰을 중간에 깨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임을 준비하는 CEO는 경쟁자들과 대비할 경우 정보의 양이나 이사회와의 친분 등에서 모두 우위에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DGB금융은 내부 규범에 ‘회장은 만 67세가 초과되면 선임 또는 재선임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3월 말에는 만 69세가 된다.DGB금융은 지난달 25일 회추위를 열고 회장 선임 원칙 및 관련 절차를 수립한 상태다. 첫날 회의에서 회추위는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 확보라는 대원칙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회추위는 앞으로 내·외부 후보군을 압축하기 위해 롱리스트·숏리스트(3명) 선정과정을 거친 뒤 후보평가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연말쯤이면 최종후보자가 결정된다.DGB금융 차기회장 선임에 대한 대구·경북지역의 대체적인 여론은 내부사정에 정통한 금융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며, 현재 황병우 현 대구은행장을 비롯해 몇몇 인물이 거론되고 있다. 차기 DGB금융 CEO는 기본적으로 경영성과가 뛰어나야 하며, 대구경북 경제 발전과 성공적인 시중금융그룹 전환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 선정돼야 한다. 회추위가 독립적인 위치에서 이미 확정된 절차와 프로그램을 잘 이행해 최적임자를 선정하길 바란다.

2023-10-11

대추와 정치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혼사를 치르고 우리 집 식구임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시부모는 새 며느리 치마폭에 대추를 던져주며 아들딸 많이 낳고 건강하게 살도록 기원한다. 하필 대추였을까. 장석주 시인은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라 하였다. 한 알의 대추가 마치 태풍, 천둥, 번개와 같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끝내 이기고 견디어 검붉은 빛깔 멋진 대추를 선사하듯이, 새색시와 새신랑도 삶을 잘 헤쳐가기를 기원하면서 한 줌 대추를 안겼겠지.태풍과 천둥과 번개가 없는 삶은 없다. 어려움과 시련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이의 살아가는 길 위에는 시련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 스콧펙(Scott Peck)도 ‘삶은 어렵다(Life is difficult.)’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였다. 개인의 삶이 어렵다면 사람이 모인 집단과 사회가 걷는 길도 쉬울 수는 없다. 무엇이라도 거두고 이루기 위하여 우리네 살아가는 여정은 힘들고 어렵다. 시련과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혜롭게 견디고 슬기롭게 이겨내어 보다 나은 열매가 열리도록 길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지치고 힘든 마음을 가져다주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쳐야 할 것인가. 지나가야 할 수많은 어려움들 가운데 찾아온 태풍과 천둥과 번개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가진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인가를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나라가 어느 모로 보아도 어려운 일로 한 가득이다. 허리띠를 졸라맬 여유도 없을 만큼 일상이 어렵다는데 정치는 선거 놀음에 여념이 없다. 교육이 무너져 사방에서 아우성인데 정치는 표밭갈이에만 심취해 있다. 미래가 안갯속처럼 도통 보이지 않는데 정치는 과거로만 치달리고 있다. 나라 밖은 저만큼 달려가는데 나라 안은 시간이 멈춘 듯 갑갑한 마음. 왠지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은 필자에게만 드는 생각일까. 아시안게임에서 돌아온 젊은 선수들에게서나 겨우 힘을 얻는 국민은 하루하루가 태풍이고 천둥이며 번개가 따로 없다. 구청장 보궐선거가 결판이 나면 무엇이 조금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정치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면 그것도 그리 기댈 것이 되지 못한다.대추는 또한 몸을 따뜻하게 하며 젊게 해 준다고 하였다. 특별한 약성보다는 조화와 영양의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시련을 이겨낼 뿐 아니라 그런 결과 주변까지 맑고 밝게 하며 따뜻한 화합의 기운마저 보듬어 내라는 의미로 새색시는 대추를 한아름 받아들었던 것이다. 태풍과 천둥과 번개를 이겨낼 뿐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나은 빛깔로 변화해 가는 모습은 한 알 대추에서도 관찰도 가능하다. 우리 정치도 오늘 만난 어려움에 빠져있을 일이 아니다. 견디고 이겨낼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익어가는 대추를 바라보며 정치가 나라를 살릴 것을 기대해 본다.

2023-10-11

이색 ‘모자(帽子)페스티벌’

홍석봉 대구지사장 조선 후기 풍자 시인이자 방랑 시인 김병연(金炳淵)은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선천 부사로 있다가 투항한 것을 비난하는 시로 장원한 것을 수치로 여겨, 일생을 삿갓을 쓰고 단장을 벗 삼아 전국을 방랑했다. 풍자와 해학의 시로 퇴폐한 세상을 조롱했다. 100년 전 경성에서는 보릿짚이나 밀짚으로 만든 ‘맥고모자’가 유행했다고 한다. 이렇듯 모자(帽子)는 우리의 생필품이었다. 모자를 쓰는 것은 성인을 상징했다. 스무살이 되면 처음 모자를 쓰는 ‘관례’라는 성인식을 했다. 명예의 상징으로 여기고 의복의 한 부분으로 취급했다. 집 안에 들어갈 때도 신발은 벗어도 모자는 벗지 않았다. 식사 때도 모자를 썼다. 모자는 장신구 역할을 넘어 신분과 계급, 직업, 나이, 성별을 상징하고 구별하는 수단이었다. 조상들은 삿갓이나 갓(흑립), 패랭이 등 다양한 종류와 용도의 모자를 사용했다.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평할 정도였다.모자는 햇빛 차단과 보온, 먼지 방지, 안전, 멋, 신분표시 등의 목적으로 머리에 쓰는 용품이다. 서양에서도 성인은 남녀 불문하고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우리나라 최초로 ‘모자’를 주제로 한 축제가 열린다. 13일부터 15일까지 상주 경상감영공원에서 ‘2023 상주세계모자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우리 전통모자와 세계 70개국 이상의 전통모자 등이 ‘세계모자전시관’에 선보인다. 25명의 출연자가 모자를 돌려쓰며 게임을 즐기는 등 다양한 놀이와 공연이 마련돼 있다. 상주시가 야심차게 준비한 ‘세계모자페스티벌’에 관심이 뜨겁다. 이번 주말 이색적인 모자 축제가 기대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0-11

신공항 예타면제 확실시… 이젠 속도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민간공항의 예비타당성 면제 안건이 오는 17일 국무회의에 상정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통과가 유력한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10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신공항 예타 면제와 관련한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대구 동구을)의 질의에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10월 중 면제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변함으로써 확인됐다.강 의원에 따르면 이 안건은 “현재 12일 차관회의, 17일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되는 게 유력하고 특이사항이 없으면 신공항 민항의 예타 면제는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민간공항 예타 면제가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기획재정부의 예타 면제 확정,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가 진행되고 국토부의 기본계획 용역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특히 최근 물가상승률이 높아 총사업비를 최적화하려면 서둘러 건설해야 하는데 국토부도 이날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신공항 사업은 이제 조기 착공에 무게의 추가 옮겨지고 있는 모양새다.대구시는 예타면제 통과를 시작으로 신공항사업에 따른 제반 집행을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이 사업을 대행할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등 후속 준비가 태산같이 많다.최근 화물터미널 위치를 두고 대구시와 의성군, 경북도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사업의 속도를 내는 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대구시가 10월말까지 이 문제를 빨리 매듭짓자고 제안한 것은 사업 진행 속도의 중요성 때문이다. 마침 원 장관도 이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으니 화물터미널을 둘러싼 갈등을 하루빨리 종식시켜나가야 한다. 당사자간 원만한 협의가 최상임을 두말할 나위 없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사업은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위한 대역사다. 소멸위기의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필사의 수단이다. 그동안 신공항 사업은 많은 난관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순탄치 않았던 과정을 생각하며 사업의 성공을 위해 매진해가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정치권과 자치단체의 합심된 힘이 필요하다.

2023-10-11

시달리는 마음

타인에게는 쉽게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못하는 말. ‘원래 모든 사람은 부족한 점이 있어. 부족하다는 사실에 너무 얽매이면 안 돼. 네가 가진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지.’ 친구에게든, 같이 문학을 하는 사람이든, 혹은 학생에게든,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준다. 그게 세상을 사는 꽤 좋은 마인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만 바라보면서 사는 삶이라니, 너무 지치지 않나?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런 건 그저 타인의 질투어린 시선이나 동경어린 시선 속에서만 있는 것이고, 그 시선에서 살짝 벗어나보면 모든 사람은 잘난 점 한 두 가지와 부족하고 미진한 여러 가지 결여를 제각기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 불완전하고, 어딘가 비틀려있고, 혹은 자신이 저지를지 모를 실수에 불안해하는 사람.그러니 너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어차피 모든 사람은 제각각 모자라고, 약간은 바보 같고, 혹은 비틀린 구석이 한 두 가지쯤은 있기 마련이라고. 단지 서로 모자란 부분이 다르고 바보 같은 구석이 달라서 네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게 온전히 타인을 위한 말인가 하면, 그렇진 않다. 오히려 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타인에게 해주며 내 모자란 마음을 채우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나는 늘 내 부족한 부분들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어느 나라든 그렇겠지만, 한국은 유독 나이에 따라 요구되는 것들이 많은데 나는 그런 것들을 잘 충족시키며 살아오진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때가 되면 대학에 진학하고, 때가 되면 면허를 따고, 때가 되면 군대를 가고, 때가 되면 취직을 하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한 번도 제 때에 해보거나, 잘 이뤄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신 나름의 경력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적도 있지만, 그것들이 과연 등가로 비교될 수 있는 것들일까?딱히 자기 비하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은연중에 타인에게 그런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30대 중반이 된 이후로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아직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거나,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할 때면 뭔가 결격사유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엔 이게 나의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이렇게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나의 삶을 제대로 평가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그저 필사적으로 자신이 이뤄낸 것들을 평가받고 싶은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해낸 결혼을 너는 못했지. 내가 이룬 정규직을 너는 못했지. 내가 해낸 것들을, 너는 해내지 못했지 하고.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삶을 과대평가하고 싶은 사람들. 예전엔 그런 사람을 만날 때면 ‘성격 참 이상하네’하고 생각하곤 넘겨버리곤 했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절대 다수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어쩌면 그들도 자신의 결점이 두려운 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는 대신에 어떻게든 자신이 이뤄낸 요구들을 생각하고, 타인의 단점을 들춰내면서,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기를 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는 건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타인의 단점을 들춰내는 건 꽤 즐겁고 나름의 쾌감을 주는 일이니까. 그리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꽤 괜찮은 삶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곤 하니까. 그 과정에서 누군가 조금 우울해지게 되더라도,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니까.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을 동원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걸까, 아니면 극심하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걸까. 스스로든 채울 수 없는 자족감을 채우고자 타인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적어도 건강한 마음은 아닐 것 같다. 어쩌면 그것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에 시달리는 똑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도 나도, 결국엔 똑같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시달리는 사람들인 셈이다.우리의 결여와 결점들은 누구의 시선에서 결정된 것들일까. 우리가 구태여 비슷한 수준으로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면서, 타인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너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건 대체 누구에 의한 것일까. 내가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삶도 꽤 괜찮은데. 좀 부족한 거 있어도 제법 살만한 인생인데. 고민이 많아지는 30대 중반의 하루다.

2023-10-10

꽉 닫힌 마음

명절이 지나면 자취방의 냉장고가 풍성해진다. 엄마가 싸준 음식 때문이다. 갈비부터 시작해 김치찜, 전복장, 닭발, 육개장까지. 어느 것 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게 없다.내가 만들면 왜 이런 맛이 안 날까? 엄마 등 뒤를 괜스레 기웃거리고 요리 비법을 배워보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도 내가 만든 음식은 묘하게 싱겁거나 짜다. 엄마는 그런 내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다. 김치찌개 그거 김치에 물만 넣으면 되는 건데, 뭐가 어렵다고 그래? 그런 말을 들으면 억울하다. 내 말이 그 말이니까. 똑같은 재료로 맛을 내지 못하는 내 문제가 뭔지 나도 참 궁금한 것이다.그런 고뇌가 길어지면 휴대전화를 들고 배달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게 된다. 거기엔 온갖 종류의 음식이 다 있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휘황찬란한 요리는 물론, 아이스커피 한 잔도 속전속결로 배달되는 시대 아니던가. 태국 여행 중 먹었던 것과 똑같은 맛을 자랑하는 똠얌꿍부터 프랑스 유학파 파티시에가 만든 마카롱, 요즘 유행하는 마라탕이나 탕후루도 클릭 한 번이면 집안에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그러니 몸이 지치고 힘든 날엔 자연스레 배달을 찾게 된다. 식재료를 썰고 볶아내고 가지런히 담아서 먹고 치우는 것을 생각하면 배달 음식의 가격이 꽤 합리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문제는 먹고 나서 항상 후회한다는 것. 집에서 만든 밥을 먹을 때의 느낌과는 다르다. 이상하게 속이 더부룩하다. 한두 입은 맛있는데 그 후엔 물려서 쳐다보기가 싫다. 배는 부르는데 어쩐지 헛헛한 기분도 든다.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이 담겨온다는 것도 달갑진 않다. 나의 한 끼에 너무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저번에 주문한 동태찌개는 포장 용기가 덜 닫혔는지 국물이 흥건하게 흘러있었다. 그걸 받아들었을 때의 난감함은 배고픔마저도 잊게 했다. 가게에 항의할까 하다가 그만두지 싶었다. 일부러 뚜껑을 닫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실수한 거지. 누구나 그렇듯이.그러고 보면 엄마의 음식이 담긴 용기는 하나같이 꽉 닫혀 있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도무지 열기가 힘들었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낑낑대고 숟가락으로 텅텅 두드려도 요지부동이던 뚜껑을 만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신경질적으로 쏘아댔다. 왜 이렇게 세게 닫았어? 아무리 해도 못 열겠단 말이야. 그러면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고맙다거나 잘 먹겠다는 말보다 반찬통 못 열겠다는 말이 먼저 나간 것에 후회하는 것도 잠시, 어떻게 알아서 잘 좀 해보라는 엄마의 말에 발끈해서 몇 마디 더 쏘아붙이고 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꽉 닫힌 반찬통을 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게 여겨진다. 뚜껑 하나 못 여는 사람. 내가 먹을 음식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걸까. 거기다 뭘 잘했다고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는 걸까.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너그럽게 넘어가면서 왜 엄마에겐 유독 박하게 구는 걸까. 탓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탓한 내 모습이 참 못났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엄마는 이제 반찬통의 뚜껑을 적당히 느슨하게 닫는다. 대신 비닐로 몇 번이고 감고 또 감는다. 뭐 이렇게까지 쌌대. 괜히 쓰레기 많이 나오게. 나는 또 그렇게 툴툴대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담긴 용기를 열어본다. 맛깔스러운 냄새가 확 끼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역시나 맛있다. 감히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간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 적당히 달짝지근해서 감칠맛이 돈다. 이런 반찬이면 입 짧기로 유명한 나도 공깃밥 두 그릇 뚝딱 비워낼 수 있다. 부른 배를 탕탕 두드리면 자연스레 엄마의 손이 떠오른다. 투박하리만치 길고 곧은 손. 가끔은 엄마가 미련하다고도 생각됐다. 직장 한 번 쉬지 않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 집에서 한 밥을 꼬박꼬박 먹였다. 지금도 그렇다. 명절이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을 내온다. 왜 맨날 저렇게 음식을 해. 그냥 사 먹지, 하면서 혀를 내둘렀던 적도 있다.알고 있다. 온 힘을 주어 반찬통을 꽉 닫는 엄마의 마음을. 외부의 먼지가 들어갈까, 내부의 것이 흘러넘칠까,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얼굴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난 엄마 밥이 제일 맛있더라. 나의 그 한마디로 충분하다는 듯이 소녀처럼 와르르 웃는 엄마.그 웃음을 완벽히 밀봉된 용기에 꽉꽉 채워 아주 오래 간직하고 싶은 요즘이다.

2023-10-10

한글날을 기념하는 방법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10월 9일은 577돌 한글날이었다. 전국적으로 우리 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공유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다. 우리 대학에서도 국어문화원이 중심이 되어서 한글날을 기념하는 학술대회와 한글을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필자는 매년 반복되는 한글날의 각종 이벤트를 무심히 넘기거나 어학 전공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공휴일이란 편안함이 더 크게 다가왔던 탓이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글날에 우리 문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글 창제 및 반포를 기념하는 한글날은 필연적으로 ‘대한민국’이란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우리나라의 세계적 위상이 몇 년 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한류가 있었지만, 최근의 상황은 K-팝, K-푸드, K-콘텐츠 등 다양한 K-컬처에 세계인이 주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BTS’가 상징하는 K-팝과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K-콘텐츠가 앞에서 끌고 K-푸드, K-뷰티 등이 뒤따르는 K-컬처는, 국가적 지원을 동력 삼아서 더욱 그 규모를 키우고 있다.하지만 마냥 자부심을 느끼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지난 8월 140여개국 4만명의 대원이 참석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K팝 콘서트’로 마무리되었다. 알다시피 잼버리는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 등으로 일부 국가 대원이 중도에 퇴소하고, 태풍의 영향으로 야영지에서 조기 철수를 결정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세계적 대회의 파행을 막고자 K-컬처를 대안으로 내세운 정부의 방침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잼버리 정신’과 한참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자랑스러워야 할 K-팝이 이렇게 소비되는 것에 찜찜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영어 중심주의는 어떤가?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 솟아있는 거의 모든 아파트의 이름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영어다. 우리나라에 유학을 온 외국인 대학원생들은 한국어를 몰라도 학위를 받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문해력’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심심한 사과’ ‘사흘’이란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은 한자어나 순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관습적으로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따져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말을 몰라도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심심한 사과’‘사흘’과 같은 단어가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삶의 구조에 있다.한글날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문화를 구분해야 한다. 이념이 당위적으로 한글의 우수성(혹은 K-컬처)을 홍보하는 행위의 근간이라면, 문화는 대중의 정신과 사고에 미치는 한글의 중요성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행위이다. 이제라도 한글이 상징하는 문화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일회성 이벤트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2023-10-10

연륜의 힘, 그리고 그 아름다움

최선희 경운대 교수 “늙은이 너무 불쌍해하지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그래주고 싶어 쓴 것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게 강변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사는 것을 맛있어하면서 살기 때문에 저절로 우러난 소리 같아서 대견할 뿐 아니라 고맙기까지 하다. 물론 내가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단맛만은 아니다. 쓰고 불편한 것의 맛을 아는 게 연륜이고, 나는 감추려야 감출 길 없는 내 연륜을 당당하게 긍정하고 싶다.”박완서 작가가 예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 노년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서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어쩌면 노년을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작가의 이런 각오는 모든 노년세대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나온 삶은 수많은 희로애락과 함께 켜켜이 쌓아온 경험으로 숙성된 내공을 가졌지만 현실적으로 용인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8.5%로 고령사회이고 2024년 내년이면 노년세대가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어 초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 한다. 이런 속도로 인구 노년화가 진행되면 노인 평균연령이 100세가 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고 그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이런 인구 고령화 현상은 자칫하면 노인차별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노인차별주의란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우리가 노인을 향해 갖는 부정적인 태도와 행동을 의미한다. 실제 학생들에게 ‘노인’ 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라 했더니 “고지식하다, 보수적이다, 잔소리와 불평이 많다, 쇠약하다, 지루하다” 등의 부정적인 표현을 많이 했다. 이런 인식은 세대 간 갈등의 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노년의 긍정적인 모습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노년세대가 가진 가장 긍정적인 태도와 의식은 무엇인가. 바로 인생의 연륜이 가진 아름다운 내면세계일 것이다. 연륜은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다. 무수한 나이테를 가진 늙은 수양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며 우리에게 시원한 안식처를 제공하듯이 주름진 노년의 여유로운 표정은 우리의 힘든 삶을 보듬어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이 경험한 인생의 지혜가 우리들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강도는 다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무르익은 그들의 경험은 저마다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다.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었고 이 달 10월은 경로의 달이기도 하다. 매년 이맘때면 100세를 맞은 노인을 위한 청려장(장수지팡이) 전달, 노인복지 증진을 위해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표창, 영정사진 촬영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인구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 고령사회를 앞둔 노년의 시대에 이런 일회성 행사보다 노년의 연륜을 인정하고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한 구체적 정책을 기대해본다.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게 될 노년의 삶, 그대로의 존재가 인정되어 권리와 의무가 부여될 때 그들은 연륜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보물을 풀어놓을 것이다.

2023-10-10

총선과 겹치는 국정감사, 民生을 우선 챙기길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어제(10일) 막을 올렸다.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열리는 이번 국감은 다음달 8일까지 24일간 진행된다. 대구시와 대구·경북지역 공기업과 국립대, 공공기관들도 12일부터 오는 24일까지 국감을 받는다. 16일에는 대구지방국세청과 대구본부세관, 조달청이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서, 17일에는 경북대와 경북대병원, 대구·경북 교육청이 경북대에서 국감을 받는다. 행안위는 23일 대구시와 대구경찰청을 대상으로 국감을 실시한다. 어제 열린 국토교통위 국감에서는 대구경북신공항 사업 추진상황이 현안으로 거론됐다. TK신공항 건설추진단이 국토부 전담조직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구와 경북이 갈등을 빚고 있는 화물터미널 입지와 사업을 추진할 특수목적법인 구성 등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국방부 국감에서는 대구시와 국방부 간의 업무협약체결이 지연되고 있는 대구 군부대 이전 사업에 대한 추진 과정이 주요이슈로 다뤄졌다.우려되는 점은, 이번 국감이 총선일정과 겹쳐진다는 점이다. 중앙선관위는 13일부터 재외선관위 설치를 시작으로 내년 총선 준비 절차에 들어간다. 이 때문에 이번 국감에서 여야는 정국 주도권을 놓고 한 치 양보없는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와 ‘대법원장 공백 사태’ 같은 예민한 이슈가 불거져 국감뇌관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국감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통계 조작 논란, 탈원전 및 이권 카르텔 의혹 등을 철저히 규명하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영장이 기각된 것을 빌미로 윤석열 정부가 야당탄압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국감이 정쟁의 장이 되면서 민생문제가 뒷전으로 밀려선 안 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최악의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힐 기미가 없고, 실질임금은 사상 처음 감소했다. 최근에는 휘발유와 경유가격이 끝없이 오르면서 고물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도 ‘국감무용론’이 나오지 않도록 여야는 민생문제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2023-10-10

하태경 險地출마, 여당 혁신으로 이어져야

심충택 논설위원 내년 4·10총선을 6개월 앞두고 오늘(11일) 실시되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가 주목을 받는 가운데, 지난 주말부터 국민의힘에도 내부혁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부산출신 하태경 의원이 당 혁신을 위한 총대를 멨다. 하 의원은 지난주말 “내년 총선에서 정치적 고향인 해운대갑구를 떠나 서울 험지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3선인 하 의원은 국회의원이 한 지역구에서 세 번 넘게 연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었다.하 의원이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마포을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솔깃하다. 아마 여당 중진, 특히 손쉽게 국회의원 선수(選數)를 늘려온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울산)지역 의원들에겐 하 의원의 서울험지 출마 선언이 ‘올게 왔다’는 압박감으로 작용할 것이다.하 의원의 지역구포기 선언은 당 지도부를 향한 채찍으로 들린다. 지금 여당 지도부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박스권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는데도, 하나같이 먼 산 구경하듯 하고 있다. 오직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공격에만 총력을 쏟으며 반사이익에 기대는 모습이다.하 의원처럼 기득권을 내려놓으며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사람이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내년 총선은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전쟁 같은 선거가 될 것이다. 진영간 이데올로기 갈등이 지금보다 심각한 때는 없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영남권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지역에서 민주당에 졌다.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쯤이면 당이 비상상황에 들어가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당 안팎을 보면 긴장감이나 역동성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총선 승패가 결정될 수도권 판세가 위기상황임을 나타내는 지표가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대통령실 핵심참모나 당 중진들은 쉽게 당선되는 영남권만 기웃대는 모습이다. 여당은 지금 국민에게 혁신과 변화의 에너지를 보여줄 때다. 그러려면 현 정부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중진들이 총선 승리를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당에 헌신해야 한다.여당이 수도권에서 이기려면 중도층 쪽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방법밖에 없다. 중도층은 이념보다는 바람이나 감성에 흔들린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선거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최선의 전략은 당 지도부와 중진들의 기득권 내려놓기다. 집권당내에서 총선불출마나 인적쇄신, 적지 출마론 같은 ‘자기희생적 뉴스’가 쏟아져 나오면 중도층은 여당에 눈길을 줄 것이다. 하 의원처럼 민주당의 수도권 중진 지역구에 일찌감치 출마선언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민주당은 지금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위협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면 이런 일은 다반사로 발생할 것이다.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다. 우리나라가 합리적인 다수 힘으로 운영되는 정상적인 국가가 되려면, 내년 총선에서 이런 세력이 헤게모니를 잡는 것은 꼭 막아야 한다.

2023-10-10

메디시티 대구 위상 살려야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시는 지난 2009년 메디시티 대구를 선언했다. ‘대한민국 의료특별시 대구’가 슬로건이다.대구를 글로벌 헬스케어 허브도시로 육성시켜 대구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대구시의 야심찬 정책의 하나다.대구는 비수도권에서 유일하게 100년 된 의과대학을 품은 도시다. 경북대학 의과대학은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일제 강점기인 1923년 대구의학강습소를 시작으로 대구의학전문학교 등을 거쳐 6·25전쟁 중이던 1952년 국립경북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승격했다.4개 의과대학과 6개 종합병원, 3천800여개 병의원, 2만여 의료인력 등을 가진 대구는 국내 최고 수준급 의료인프라를 가진 곳이다. 대구 의료인의 역량은 코로나19를 극복한 위기 상황에서 잘 드러났다. 코로나 발생 53일만에 확진자 0명의 신기록을 세웠다. 대구 의료인의 코로나 팬데믹 극복은 세계가 인정할 정도다.의료 기술면에서도 우수하다. 대한민국 최초 팔이식 수술 성공과 세계 최초 모발이식 수술 등 자랑거리가 많다. 조선시대 최대 약령시가 대구에 세워져 대구는 한의학 도시로도 명성을 떨친다.이런 역사적 전통과 의료인의 자부심으로 대구는 의료관광산업 분야에서 한해 수 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명실공히 메디시티의 입지를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지방에서 서울로 원정 치료간 암 환자가 100만명에 이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이다. 대구와 경북서도 18만명의 환자가 서울로 원정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의료 역시 타분야처럼 수도권 쏠림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결과여서 안타깝다. 메디시티 대구의 분발이 더 있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0-10

포스코 사상 첫 파업 위기…대화로 풀어야

포스코가 창립 55년만에 처음으로 파업위기에 놓였다. 포스코 노동조합은 지난 주말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10일 오후 중앙노동위원회 중재신청에 따른 기자회견도 가졌다.노조는 “임단협에서 합리적 요구를 했는데도 반영되지 않아 파업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일관 제철소여서 쉬지 않고 가동해야 조업이 가능한 체제다. 만약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포스코는 사상 처음으로 고로 가동이 멈추는 신기록을 맞아야 한다.노조는 기본급 13.1% 인상, 조합원 대상 자사주 100주 지급, 목표 달성 성과급 200% 신설 등 모두 86건의 요구사항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이같은 요구에 대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기본임금 16만2천원 인상, 일시금 600만원 지급, 지역사랑 상품권 50만원 등을 제시했지만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앞서 지적대로 포스코는 일관제철소여서 조업이 중단되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포스코뿐 아니라 협력사는 물론 수 만여명에 달하는 관계사 직원과 가족들에게까지 직간접 피해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포항지역 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 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으로 유가 급등 등 글로벌 경제가 또다시 위협받고 있다. 하반기 경기 반전을 노리는 우리 경제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는 시점이다. 국가 기간산업인 포스코의 파업은 제조업 위주인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회사측 주장에 따르면 노조의 요구사항을 인건비로 계산하면 1인당 9천5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이 정도라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작년 포스코는 힌남노 태풍으로 2조원 손실을 입었다. 지금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영업이익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어려운 상황이다. 노사가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회사는 노조의 합리적 요구를 수용하고 노조도 회사 사정과 국가 경제 등을 고려, 대화로 문제를 푸는 상호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상생의 길이다.

2023-10-10

연구개발비 삭감하면서 의사과학자 양성한다고?

유영희 작가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고전 한 구절 인용하는 방식은 진부하면서도 울림을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며칠 전 ‘논어’ 한 구절을 읽다 보니, 역시 단순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맛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 개의 수레를 보유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는 신중한 태도로 백성의 형편을 잘 헤아려 정책을 실시하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서 백성에게 믿음을 주며,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백성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2024년 예산안은 여러 분야에서 삭감되었는데, 삭감된 내용을 보면 더 놀란다, 현 정부 출범 당시 중점 육성하겠다고 한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우주, 데이터 분양까지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예산 15억원을 비롯하여 과학기술 인력 양성 사업 전반에 걸쳐 940여 억원이 삭감되었다. 이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RD 이권 카르텔 한 마디에 빚어진 사태다. 9월 5일,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가 출범해 과학기술기본법에 있는 절차도 무시했다고 항의하며 예산 지키기에 나섰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낙관하기 힘들다.그런데 한편에서는 대통령의 한 마디로 의전원이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카이스트에서 의사과학자 육성 대학원 설립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보낸 후 카이스트의 의전원 설립이 속도가 붙었다. 포스텍도 2028년을 목표로 의전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은 두 말이 필요가 없다. 화이자에서 mRNA 백신을 개발하여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종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독일의 우구르 사힌, 외즐렘 튀레지 박사 부부가 바로 의사과학자이다. 오랜 기간 과학계의 mRNA 연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여성 과학자 카탈린 커리코는 드류 와이즈만과 함께 mRNA가 면역 체계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발견하여 백신 개발에 기여한 공으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이처럼 중차대한 의사과학자가 우리 사회에서 양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과학자에 대한 홀대 때문이다. 카이스트가 미래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의사과학자를 배출한다고 해도 진료하는 의사의 평균 연봉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로 과연 계속 이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가 하는 현실이 의사과학 연구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금도 과학고등학교 졸업생의 의대 쏠림 현상이 노골적인데, 의전원 졸업생을 의사과학자로 붙들어두기는 더 어렵다. 현재 배출된 의사과학자에 대한 지원이 더 절실하다는 반대 의견이 타당하게 들리는 이유다. 게다가 기초의학을 가르칠 교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카이스트나 포스텍에서 설립할 의전원에서 얼마나 내실 있게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가 하는 비판도 많다.무엇보다 연구개발비는 삭감하면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한다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떤 정책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신중한 절차를 거쳐 백년을 내다보는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온다.

2023-10-09

577돌 한글날을 맞으며

김규인수필가 2023년 10월 9일은 577돌 한글날이다. 문자를 기념하는 날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는 한글이 그냥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지시하에 만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문화의 바탕이 되는 날을 다시 맞는다.세상에는 자기 말을 가지면서도 이를 표현할 글자가 없는 나라가 더 많다. 그런 가운데 너무나도 멋진 한글을 가진 우리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해외에서 한글로 적힌 간판을 보거나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는 한글이 한국 사람답게 만드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마음을 헤아려 만든 한글 창제의 훌륭한 뜻을 알면 마음마저 젖어 든다. 577년 전에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애쓴 통치자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은 가장 기본적 권리이다. 백성을 향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그런 한글이 우리나라에서 수난을 당한다. 젊은 사람들은 말을 줄여 쓰느라 국적도 없는 말을 한다. 처음 듣는 사람은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궁금하여 물어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줄여서 쓰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구슬이 구르는 소리 같은 말이 듣기에도 불편한 말이 된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말을 비트는지 알 수가 없다.오랜 기간 중국과의 문화 교류에 따른 한자가 유입되고, 36년의 침략으로 남은 일본어의 흔적은 수십 년이 지난 아직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들어온 외래어의 영향도 점점 늘어난다. 물건을 팔면서도 경쟁적으로 남의 나라말을 빌려서 쓴다. 교통의 발달로 다른 나라로 이동이 편리한 세상에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자연스러운 범위를 벗어나 인위적으로 늘어나는 경향이 강하다.경제 위기 상황을 맞은 요즈음 외국 언론이나 금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무분별하게 들어온다. 방송이나 신문은 우리말로 순화하지 않은 채 경쟁이라도 하듯 기사를 선점하기에 바쁘다. 뱅크 런, 본드 런, 로크인 효과, 뱅크데믹 같은 단어는 뜻을 짐작만 할 뿐 금방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지금은 한류가 세계 문화의 주인공이다. 우리말로 된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 우리말로 만든 노래를 부르고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도 늘어난다. 한류를 몸으로 체험하고 싶어 비행기에 오른다. 산과 문화재와 현대식 건물이 아우러진 서울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정작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다르게 생각한다. 높이 솟은 아파트에는 ○스테이트, ○○캐슬, ○○파크, ○ 플래티넘, ○샵 같은 외래어를 마주하고 중심가로 들어서면 상가의 간판들은 외국의 도시로 착각하게 한다.

2023-10-09

해결과제 남긴 영양 수비면 능이버섯축제

장유수 경북부 사흘간 영양군 수비면 발리리 일원을 뜨겁게 달궜던 능이버섯축제가 지난 8일 막을 내렸다.영양군과 수비면 능이축제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축제기간 1만여 명의 관광객과 소비자들이 축제장을 찾았고, 지역의 농·특산물의 구매가 이어지는 등 침체된 면단위 농촌 상권 활성화와 지역 농·특산물 판매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적잖은 성과를 거둔 능이버섯축제지만 과제도 남겼다.일회성이 아닌 지역 농·특산물 판매 및 홍보 등 수비면을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킬 원동력이 되기 위해선 능이버섯축제도 발전이 필요한 것이다.우선 축제가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청정자연의 보고 ‘제 1 능이’로 불리는 귀한 능이버섯 고유의 정체성을 살려 다양한 능이버섯요리체험과 직접 구매한 버섯을 손질해 담아 갈 수 있는 등 소비자와 관광객들이 체험하고 참여 할 수 있는 독창적인 프로그램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축제라는 명분아래 단지 장삿속을 채우려한다는 인상마저 느끼게 하는 판매와 먹거리 등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은 눈총을 받았다.특히 능이버섯요리경연대회와 막걸리페스티벌 등은 수비지역 마을주민들만 참가해 능이라는 테마로 소비자와 관광객들이 참여 할 수 있는 다양하고 독특한 축제 문화를 선보였어야 했지만 마을잔치 수준의 축제에 그쳤다는 평가다.또한 축제의 한 축을 차지한 메인무대인 공연장은 전력부족으로 음향의 질이 떨어지는 등 축제장 동선들과 동떨어진 이질감으로 인해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녹아내지 못했다는 쓴 소리도 나오고 있다.교통 부분에서도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행사와 안전과 함께 교통은 가장 역점을 뒀던 만큼 주민들의 큰 불편을 초래하지 않은 채 통제와 안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 단체 관광객들을 위한 큰 그림의 교통 대책은 보이지 않았던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끝으로 주민 참여가 제대로 이뤄진 축제냐는 반문에서 나오는 아쉬움과 기대다. 수비능이축제추진위가 주관하고 수비면 기관들과 자생단체들이 후원하는 등 영양군과 영양축제관광재단도 적극 나서며 함께 했지만 수비면민들뿐만 아니라 영양군민들의 공감대를 얻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행정기관의 의존도는 여전히 높았지만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이번 능이버섯축제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가 이뤄진 객관적인 평가는 중요하다. 이번에 얻은 교훈을 밑거름삼아 미흡한 부분들을 보완하고 수정해 변화시킨다면 지역사회의 경제발전과 함께 관광객들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영양/jang7775@kbmaeil.com

2023-10-09

고딕건축의 통일성을 완성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고딕의 대성당 건축은 서양 중세미술의 결정체라 부르더라도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중세가 추구했던 정신적 가치가 대성당 건축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로 완성된 것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정신과 형태와 기술이 한 지점에서 만나 이루어낸 것이 고딕의 대성당 건축이다.중세 고딕의 대성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12세기 중엽 처음 등장한 고딕양식이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파리의 노트르담이 지어질 즈음 고딕만의 안정된 건축 언어를 찾을 수 있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건축의 초석을 놓은 이는 교황 알렉산더 3세(재위 1159∼1181)인 것으로 알려진다. 1163년 교황이 파리에 체류한 일이 있는데 이 때 성당이 지어졌다. 당시 파리의 주교는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lly)라는 사람이었다. 주교는 건축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을 했고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의 후원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교회건축은 주제단이 있는 동쪽 부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182년 동쪽 부분의 건축이 마무리 되면서 주제단 아래 지하 크립트에 성유물이 안치되었다. 교회건물의 몸통에 해당하는 주랑과 측랑 공사는 1180년과 1200년 사이 완성되었고 1230년경 내부 주랑의 채광을 확보하기 위해 4층이었던 벽면 구조를 3층으로 수정하면서 넓은 창문들을 설치했다. 주랑과 익랑이 교차하는 교차랑 위로 첨탑이 올라갔고 측랑 외벽 버팀부벽 사이사이 공간에 소예배당이 마련되었다. 소예배당은 측랑에서부터 주제단으로까지 연결되어 있어 평면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의 모습이 거대한 배처럼 공간의 통일성을 이루어낸다. 신랑의 천정에는 6분할된 교차형 늑재궁륭이 설치되어 건축의 견고성을 한 층 높여주었다.주제단이 위치한 동쪽 바깥 벽면에 거대한 공중부벽이 설치된 것은 1296년과 1320년 사이이다. 고딕 대성당에 인상적인 외형을 입혀준 공중부벽은 장식적인 요소라기보다 붕괴위험을 낮추기 위한 중요한 건축공법이다. 1258년부터 기존에 협소했던 남쪽과 북쪽 익랑 확장공사가 시작되었다. 익랑의 확장공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가장 눈에 띠는 변화는 남북 익랑 파사드 상부에 크고 경쾌한 장미창이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두 곳의 장미창은 서로 짝을 이루며 북쪽은 구약성서의 장면으로 남쪽은 신약성서의 장면으로 장식되었다.1200년경 시작된 서쪽 정면 파사드 공사가 1245년 무렵 마무리되면서 대성당의 장엄한 모습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십자형 구도의 전형적인 5랑식 바실리카 형식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길이가 122.5미터 폭이 12.5m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웅장하다.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면에는 세 개의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다. 각각의 출입문 위에 설치된 팀파늄은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중앙 출입문 상당 팀파늄에는 ‘최후의 심판’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으며, 우측에는 성 안나, 좌측에는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나타난다. 출입문 바로 위층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 스물여덟 명이 전신 입상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어 ‘왕들의 회랑’으로 불린다.이 조각들은 프랑스 혁명기 때 모두 파손되었다가 19세기에 복원된 것이다. 왕들의 회랑 위층 중앙에는 지름이 9.6미터에 이르는 대형 장미창이 들어가 있다. 장미창 위로 일련의 기둥과 아치가 고딕의 전형적인 창틀 트레이서리 모양으로 줄지어 있어 파사드의 무게감을 한층 덜어주면서 경쾌한 느낌을 불어 넣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파사드 가장 높은 곳에 20미터 높이의 뾰족한 종탑 두 개가 짝을 이루며 위용을 뽐내야 했지만 아쉽게도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안정적이고 네모진 모양의 종탑이 올라갔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10-09

지질 속 생명의 흔적, 의성 공룡발자국

의성 제오리의 한적한 도로변에는 비스듬히 세워진 절벽 모양의 바위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다. 금성산의 화산활동으로 지질의 위치가 변화된 그 바위 위에는 움푹 파인 동그란 자국들이 무수히 남겨져 있다. 이를 전문가들은 공룡발자국이라 했다. 특히 바위 면적 대비 국내 최대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산지와는 다른 특별한 면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일반인 막눈으로는 동그란 알 모양의 자국을 제외하고 발자국처럼 생긴 형태를 구분해 낼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그 많다는 공룡의 보행렬도 글로 된 지식만 확인하고 실물과 연관하지 못했다.제오리 공룡 발자국은 의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질 명소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가운데 하나이다. 아무래도 공룡발자국 화석산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첫 케이스이기도 하고, 1천600㎡라는 작은 면적에 총 384개의 발자국이 고밀도로 남겨져 있으며, 조각류 발자국이 우세한 다른 지역의 화석산지에 비해 용각류가 더 많이 남겨진 희귀한 화석산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로변에 위치하여 지나가다가 잠깐 둘러보기에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공룡은 크게 도마뱀의 골반(용반류)과 새의 골반(조반류)으로 형태를 구분한다. 용각류와 수각류는 도마뱀 골반이고, 조각류는 새의 골반에 속한다.용각류는 주로 4개의 다리로 걸으며, 긴 목과 긴 꼬리·커다랗고 뚱뚱한 몸에 비해 엄청나게 작은 머리를 가진 초식 동물이다. 기린처럼 목을 길게 빼고 잎을 먹을 수 있게 신체가 발달하였다. 쥐라기와 백악기에 광범위하게 퍼졌다가 멸종되었다. 수각류는 주로 이족 보행을 하는 육식형 공룡으로 트라이아스기 말에서 백악기 말까지 생존하였다. 어류나 벌레를 잡아먹는 종·타조처럼 빠른 달리기가 가능한 종·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포식자·벌새처럼 작은 종·악어와 같은 종 등 매우 다양한 종이 이에 속한다. 하지만 생김새만 보면 조반류가 용반류에 비해 더 창의적인 형태를 지니는 듯하다. 조반류는 예전에는 조각류·검룡류·곡룡류·각룡류·후두류로 나누었다. 좀 직관적인 분류명들이라 쉽게 그 특징을 추측할 수 있다. 조각류는 쉽게 얘기하면 새의 튼튼한 다리와 오리주둥이를 닮은 공룡류를 칭한다. 두 발과 네 발을 모두 사용했으며, 이빨이 발달하였다. 검룡류는 꼬리가 검 같거나 검처럼 생긴 침이 있는 종류로 뒷다리가 길고 머리가 작고 목이 매우 짧다. 곡룡류는 등과 옆구리에 가시가 있고 갑옷이나 곤봉 모양의 꼬리를 가진 공룡이다. 각룡류는 삼각형 모양의 큰 머리뼈와 굵은 목 그리고 입이 앵무새 부리를 닮았거나 뿔이 있다. 공룡 중 가장 늦게 등장하였고 백악기 후기에 생존했었다. 후두류는 일명 박치기에 특화된 공룡으로 머리뼈가 엄청 단단하다.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에서는 총 35개의 보행렬이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19개 보행렬은 용각류의 것이고, 14개의 보행렬은 조각류의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수각류의 발자국도 조금 남겨져 있다. 이렇게 적은 면적에 많은 발자국이 남겨져 있는 것은 서식하던 공룡들이 무리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제오리 인근에서는 만천리 아기공룡발자국 화석산지도 발견되었다. 2008년 제오리 인근을 조사하다가 가로 5미터·세로 7.5미터의 바위에 찍힌 발자국을 확인하였다. 총 20마리의 공룡들이 8개의 보행렬을 그렸는데, 총 126개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이 화석은 아기공룡의 보행렬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그 보행렬의 길이가 4.35미터로 세계 최장의 길이라는 점도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용각류 아기공룡의 발자국으로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심층 조사에 의해 두 발로 빠르게 걷다가 잠시 멈춘 후 다시 네 발로 천천히 걷는 조각류 아기공룡의 발자국으로 밝혀졌다. 같은 노면에 수각류와 용각류의 발자국도 함께 있어 당시 공룡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또 제오리 인근 탑리에서는 울트라사우루스 골격 화석이 국내 최초로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남대천 일대에 발가락 마디까지 잘 보존된 공룡발자국 화석산지가 발견되었다. 남대천의 발자국은 20여개의 초식공룡과 8개의 육식공룡으로 추정하고 있다.이렇게 공룡발자국 화석산지가 많은 의성은 공룡들의 세계를 상상해보기에 좋다. 또한 조문국박물관과 고분군, 금성산 칼데라와 빙계계곡과 같은 다양한 지질 환경 등 생각보다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관리나 제반 시설이나 일반인을 위한 설명 등이 매우 미흡하다. 막상 일반인이 찾아가도 이해가 가지 않고 그 가치를 파악할 수 없다면 보존이나 보호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 막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하고 체계적인 보조시스템이 구축되길 기대해 본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10-09

명품 축제 보여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문화란 한마디로 꼬집어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획득하는 법과 도덕, 신념, 예술, 기타 여러 행동양식을 총괄한 것이라 정의했다. 인류의 발전은 문화의 발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나라와 민족에 따라 문화는 각기 독특한 방법으로 전승된다. 특히 전통문화는 그 민족의 지나온 삶의 형태란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날로 존중되는 세상이다. 800년이 넘는 하회마을별신굿 행사를 현대적 양식으로 축제화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8일간 행사 끝에 9일 폐막했다. 하루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리는 대성황을 이루면서 27년째 맞는 탈춤페스티벌은 이제 세계인의 축제로 입지를 잘 다져가고 있다.전국의 많은 도시가 각 지역 특색을 담은 축제를 앞다퉈 벌이고 있지만 안동국제탈춤축제만큼 한국적 전통과 한국인의 삶을 잘 표현한 축제는 찾아보기 드물다. 특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탈을 기반으로 한 축제로서는 전국 유일하다. 행사 때마다 국내외 탈공연단까지 참가해 이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축제 면모를 과시한다.올해는 구 안동역 부지를 중심으로 원도심 일대까지 축제 공간을 넓히고 축제의 킬러콘텐츠인 대동난장 프로그램을 통해 탈을 쓴 사람이 직접 축제에 참여토록함으로써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고 한다. 무엇보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옴으로써 지역축제가 갖는 경제적 성과를 거둔 것은 지역축제로서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1997년 전통문화 계승과 재현을 통해 문화도시로서 자부심을 높일 목적으로 시작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이제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하는 축제가 됐다. 또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자타가 인정하는 축제다.이제는 세계가 주목할 글로벌 축제로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릴 만큼 한국적 문화와 전통이 풍부한 곳이다. 안동이 지닌 고유 문화특성을 바탕으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이끌어간다면 안동이 만들어 세계인이 즐기는 세계적 축제가 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2023-10-09

한글의 맛

홍석봉 대구지사장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한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정철의 사미인곡 일부다. 정철이 지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관동팔경은 가사문학의 극치로 꼽힌다.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동방의 이소요,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이 3편뿐”이라고 극찬했다. 사미인곡 등 3편은 우리나라의 이소(離騷)지만, 한자로는 쓸 수가 없다. 구전과 한글로 전해질 뿐이다. 어떤 이가 칠언시로 ‘관동별곡’을 번역했지만, 아름답게 될 수가 없었다. 내용은 전달할 수 있었지만, 원작의 표현 맛이나 묘미가 살아나지 않았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소서….’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청록파 시인 박두진이 해방의 기쁨을 표현한 ‘해’라는 시의 일부다.국민이 애용하는 시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는 말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라는 표현은 영어로도, 불어로도, 그 어떤 언어로도 그 속에 담긴 애틋한 마음과 벅찬 감흥을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우리 글의 묘미는 한글로 표현했을 때 그 깊이를 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인도의 승려인 구마라습은 “천축인의 찬불사는 극히 아름답지만 이를 중국어로 번역하면 단지 그 뜻만 알 수 있지, 그 말의 오묘한 뜻은 알 수 없다”고 했다.한글의 감칠 맛은 아무리 외국어로 번역을 잘 해도 그 오묘한 뜻과 맛은 표현하기 어렵다. 시어로 남아있는 한글의 아름다움이 더욱 그렇다. 한글 파괴와 줄임말이 난무하는 한글날이 애닯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