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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대기업·협력업체 동반이주 촉발 `공동화` 불 보듯

과학벨트 등 산업 인프라 구축입주기업에 각종 세제 혜택 등대대적 지방지원정책 이뤄져야 국내 최대 수출전진기지인 구미산업단지가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수도권규제 완화 조치는 현재는 잠시 수면 아래 잠복했지만 시민들은 언제 또다시 물 위로 떠올라 핵폭탄 역할을 할 지 불안해하고 있다.현재 수도권완화 정책은 정부의 입법예고나 관보 게재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시행규칙으로 돼 있어 정부나 수도권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지방과 상관없이 수도권규제완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오는 11월 말께 또다시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이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구미, 대구 등 첨단업종 유치에 심혈을 기울여온 지방 산업단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의 허구성과 구미시의 대응방안, 지역국회의원들의 입장, 구미상공회의소의 대책 등에 대해 짚어본다.지방재정 감소·수도권 난개발 등지역 균형발전에 악순환만 초래양 지역 모두에게 `毒`으로 작용◇수도권 규제완화의 허구성현재 수도권은 전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하면서도 인구는 2천474만6천명으로 전국 인구의 49.1 %를 차지하고 있다.또 중앙행정기관 84.4%, 공기업 본사 85%, 100대 기업 본사 92%, 조세수입 71%, 제조업집중률 57%, 은행예금 68%, 외투기업 73%, 벤처기업 77%, 연구개발비 63%, 지난 3년간 수도권 순유입인구 51만7천명, 일자리 증가 98만개 등 우리나라의 행정과 경제교육, 문화, 의료 등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수도권은 매년 증가하는 인구 등 교통혼잡비용으로 12조원, 대기오염개선비용 10조원, 환경개선비용 4조원의 과밀비용을 내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수도권 규제완화를 주장하고 있다.수도권 권역별 공장분포도를 보면 개별입지(59.2%), 산업단지(21.6%) 공업지역(19.2%)이며 성장관리지역 내 산업입지도 산업단지(37.8%), 개별입지(70%)로 되어 있다. 과밀억제권역에도 개별입지(50%), 공업지역(45%)이다. 특히 자연보호권역에도 공장허가를 해줘 개별입지가 96.8%나 될 정도로 수도권에는 무차별적으로 공장이 들어섰다.특히, 수도권규제 완화 때는 경기도는 5천754개에 달하는 대기업 첨단업종이 들어서고 기존 공장도 현재 200%에서 300%까지 증설이 허용된다. 대기업 첨단업종 유치에 공을 들여온 대구, 포항, 구미 등이 대기업들의 신규투자 기피로 앞으로 지역 경제의 산업 공동화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 이유다.이는 지난 2000년도의 46.3%, 지역균형 발전을 핵심 국정으로 내세웠던 2005년의 48.2%와 비교하면 집중도가 더욱 심화해 현재 국가 균형발전도는 수도권 82.7%에 비해 비수도권은 45.7% 에 불과한 실정이다.하지만 수도권 단체장들은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은 국토 균형 발전 정책으로 심장을 묶어 놓을 때 피가 돌지 않는다며 틈만 나면 수도권 규제완화를 입버릇처럼 말한다.이에 지역 국회의원들은 현재 수도권은 피가 너무 많이 돌아 심장이 터질 지경이라며 수도권규제완화는 수도권과 지방 모두에 쓸모없는 정책이라고 반박한다. 특히, 한국과 달리 선진국의 수도권 인구 집중현상은 일본(31.9%) 영국(31.2%), 프랑스(18.9%), 한국(49.6%)로 유독 한국만 수도권집중 현상을 보여 수도권규제완화를 외치는 수도권단체장들의 허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 법률 제정 필요현재 수도권완화 정책은 법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정부의 입법예고나 관보 게재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시행규칙으로 돼 있다.구미지역 국회의원과 행정기관, 경제단체는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은 지방공단 말살정책으로 현재 시행규칙 개정 반대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수도권완화 정책을 개정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성조 의원을 비롯해 국가균형발전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13명(한나라당 8명, 민주당 4명, 자유선진당 1명)은 지난달 4일 국회에서 긴급모임을 갖고 국가균형발전에 반하는 `산집법 시행규칙개정`을 즉각 중단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이들은 성명서에서 산집법은 국가 균형발전차원에서 지난 200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한시적으로 시행한 법인데도 정부가 이 법을 멋대로 해석해 수도권 내의 공장 신·증설과 첨단업종을 확대하는 것은 법의 권한을 넘어선 월권적 행위라며 규탄했다. 또 정부는 지난 2008년 10월 수도권규제 합리화라는 명목하에 세종시 백지화 시도, 수도권 RD 센터 설립규제 완화, 영남권 신공항백지화 등 지방 고사정책을 추진한 데 이어 수도권 규제 완화 시행 규칙 개정안까지 거론하며 지방을 더욱 옥죄고 있다고 비난했다.특히 수도권규제완화 조치는 지방 공단 인재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지방인력 공동화, 세수 감소로 지방재정 악화, 중앙정부의 지방발전 예산 부담 가중 등 지역균형 발전 악순환 등의 결과를 초래해 수도권과 지방 모두 독이 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정부는 헌법이나 수도권정비법 등으로 수도권의 집중을 규제, 억제하고 있음에도 하위 법령인 시행규칙으로 첨단업종 범위를 99개 업종·156품목에서 94개 업종·277품목으로 대폭 확대 조정했다.또 주한미군공여지원특별법에 의한 지원도시 사업구역 내 대기업증설허용, 정비 발전지구 및 과밀억제권역 내 노후공단용도전환 및 행위규제완화, 수도권 노후 공업지역 주거용지 상업용지 전환요건완화, 성장관리지역 대기업 첨단업종 25개 신증설허용 및 10개 첨단업종 신증설확대 등이 시행되면 지방 산업단지는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김성조 국회의원은 “수도권 규제완화 시 수도권은 환경, 교통, 주택, 새로운 신도시 개발 등 난개발로 향후 10~20년안에 큰 재앙이 될 것”이라며 “수도권 규제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40년 동안 지속된 경제정책으로 당장 경제가 어렵다고 지역 균형발전을 깬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미시 수도권규제 완화 대책현재 구미 산업단지에는 입주 업체 수는 1천350개사이지만 일정매출이상 발생하는 구미상의 회원사 수는 650개 정도로 7만365명의 근로자들이 생산활동에 전념하고 있다.특히 이중 첨단업종 신규편입 기업 중 100인 이상 근로자 채용 업체 수는 70개사에 달해 수도권규제완화 조치로 대기업의 수도권 이주시 협력업체 동반 이주로 구미 공단은 공동화 현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앞으로 구미시는 구미 제5 산업단지 9.9㎢ 신설, 경제자유구역 6.25㎢ 조성, 구미 4공단 배후단지 2.44㎢ 개발 등 기업유치와 관련된 각종 개발사업이 계획돼 있어 수도권 규제와 시행령개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구미시는 자체적으로 대책을 수립하는 동시에 지난 3월4일 국회, 지식경제부, 지역 국회의원을 차례로 방문해 수도권규제완화 대응방안 협의하고 지식경제부를 항의 방문했다.또 3월7일에는 구미상의 관계자 9명이 수도권 규제완화 긴급TF회의를 개최하고 포항시 등 도내 11개 기초자치 단체와 공동대응방안을 모색했다. 또 3월말에는 구미상공회의소 목요조찬회에 시민 200여명이 참석, 수도권규제완화 규탄 결의대회를 했다. 구미상공인들은 수도권 규탄 결의문을 정부에 전달한 후 전국 지방 자치단체와 연계한 반대투쟁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남유진 구미시장은 “구미시는 수도권규제완화시 기업유출 방지를 위한 각종 지원활동 강화와 과학벨트 유치 등 산업 인프라 구축과 지방 입주 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지방 산업단지 활성화 대책 등에 대한 대대적인 지방 지원 정책 수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용창 구미상의 회장은 “수도권 규제완화 이후 구미 공단 내 100여 협력업체가 수도권 규제정책에 묶여 수도권 이전을 관망하고 있으나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가 현실화 될 경우 구미공단 내 업체들의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며 “지방을 홀대하는 정부의 각종 조치에 모든 지역은 힘을 합쳐 수도권규제 완화 조치에 심혈을 기울여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남보수기자 nbs@kbmaeil.com

2011-05-06

爐火純靑,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죠

사회간접자본 첫 외국선사 개방업무 `보람`“고향 의성 생각하며 지원 노력 다 하겠다” 경북 의성출신의 김희국 국토해양부 제2차관은 의성군 금성면 청로동에서 출생했다. 청로초등학교와 의성중학교를 거쳐 경북고교와 경북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1981년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부산지방해양항만청 항만물류과장, 건교부 고속철도과장,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기획국장,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4대강살리기 기획단장, 4대강 살리기추진본부 부본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토해양부 제2차관으로 일하고 있다. 얼마전 공직생활 만 30년을 맞은 김 차관을 만나 고향인 의성 이야기를 비롯, 친구들, 공직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편집자주사회 발전 시키고 싶어… 공무원 꿈키워시대마다 중요한 SOC사업 맡아 `자부심`-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부모님들은 상고에 진학해 은행원이나 교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공무원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부모가 농사지으면서 너무 힘들게 사는 것이 가슴아팠고, 대부분이 그렇게 살지만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때 대구시민회관에서 당시 서울대 한완상 교수의 강연을 들었는 데, 주제가 소외였다. 사회가 발전해나가면서 농민이나 어민, 근로자가 계속 소외된다. 그래서 사회의 통합발전을 위해서는 정치나 행정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강연을 계기로 공무원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부모님들은 내무부나 농림부에 가기를 바랬으나, 일본의 메이지유신사를 읽고, 봉건국가에서 산업국가로 갈 때 해운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걸 알게됐다. 그래서 해운항만쪽을 택했으며, 그 이후 1998년도 초대 고속철도 과장을 했고, 노무현정부에서는 혁신도시 초대국장을 했고, MB정부 들어와서는 4대강 사업을 진두지휘해왔다. 시대마다 중요한 SOC사업분야를 맡아 일해와 자부심을 느낀다.-고향인 의성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분교를 다녔기 때문에 6년 내내 1개반에 다녔는 데, 중학교에 가니 5개반이 돼 신기하게 생각했다. 당시에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야 했는 데, 고향 마을에는 전기가 안 들어왔다. 그래서 밤에 공부할 때는 초를 하나씩 들고가서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또 서울에 가면 집집마다 탑을 세워 텔레비전을 본다는 얘기를 전해듣고는 `집집마다 어떻게 돌로 탑을 세우나`하고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새벽에 기차타고 서울 청량리역으로 들어서는 데, 온 시가지가 전기불로 환하게 밝혀져 있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골소년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웃음)-학창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나 선후배가 있다면.▲중학교 동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친구는 씨름선수로 유명한 이준희 감독이다. 현재 도리원으로도 불리는 의성군 봉양면은 씨름선수가 많이 나는 고장이었는 데, 초기 씨름계에서 많은 역할을 했던 김태성씨가 당시 체육선생님이었고, 정해걸 국회의원이 당시 사회선생님이었다. 의성중학교 졸업후 재수해서 경북고에 들어갔다. 700여명을 뽑았는 데, 서울·부산이 평준화되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몰려왔다. 그래서 동문들이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으로 많이 진출했다. 현직에 있는 선후배들을 꼽아보면 56회로는 이현동 국세청장, 김명식 청와대 인사비서관, 57회는 류성걸 기획재정부 차관, 58회에 제가 있고, 59회에 농림수산부 김재수 차관 등이 고위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국토해양부 제2차관이 맡은 소관업무는.▲도로, 철도, 해운항만, 공항 등 네개의 사회간접자본분야와 교통정책·물류정책·해양정책 등 7개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1차관은 토지, 주택, 수자원, 그리고 일반적 기획관리업무를 맡게 된다.-얼마전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됐는 데 어떻게 생각하나.▲우답이 될지 모르지만 대구·경북지역을 위해서 중요한 요소는 포항·울산의 예를 들고싶다. 대구가 성장이나 발전을 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생산기반시설이 취약하고, 한마디로 돈이 없는 도시다. 그것이 우선돼야 한다. 많은 분들이 그럴듯한 국제공항이 있어야 외국인 투자유치도 되고, 산업화 촉진이 된다고 하는 데, 그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선돼야 하는 것이 대구지역 SOC확충이다. 산업공단이나 기지 등 제조업체들이 들어와서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이 창출되는 일이 중요하다.-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이다.▲공항을 결정하기 어려웠던 이유로 기본적으로 공항 수요, 공사비, 환경적 문제 같은 팩트들이 필요하다. 인천공항의 경우 수요는 걱정할 필요없었다. 환경적 문제도 영종도가 수심 1~5미터 정도밖에 안된다. 백지화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고속도로, 산업단지의 원활한 조성, 기타 제조업들이 들어갈 수 있는 대구·경북지역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대구·경북지역에서 해운항만청의 역할은 어떤 것이 있나.▲경북도와 관련된 해운항만은 포항이 가장 중요하다. 포항항만의 최우선 목적은 포항제철소라는 산업단지를 지원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 요즘에는 신항만을 건설해 컨테이너도 처리하고, 러시아 극동항로에 중요한 역할을 하려는 노력, 그리고 울릉도와 독도를 연결하는 베이스기지로 만드는 것이다. 강구항이나 울진항도 어항으로서 지역산업화의 기반시설이 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게 많다. 최근에도 임광원 울진군수가 다녀갔는 데, 산과 바다·온천을 엮어서 관광산업을 촉진하는 게 유일한 울진의 성장전략이라고 강조했다.-해운항만청에 근무하면서 보람있었던 일이 있다면.▲1992년까지 한국의 컨테이너 항만계획을 수립하고, 운영체제 정비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외국 선사에 대해서는 독점적인 전용 터미널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왔으나 그때 개방했다. 개방화시대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국제기준을 이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국제화 추세를 거역하고는 잘 살 수 없고, 살기가 어렵다. 이같은 자연법칙에 가까운 논리를 더이상 애국심으로 커버하기는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우리나라 사회간접자본중 가장 먼저 외국선사에 대해 개방업무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좌우명이 있다면.▲(사무실에 걸린 액자를 가리키면서)저기에 노화순청(火純靑·지극함이 다해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지)이라고 쓰여 있는데, 공무원 생활을 하며 전문성을 확보해서 정책적 실수를 줄여야 한다는 뜻으로 저 말을 늘 가슴에 새긴다. 10년 20년 경험을 축적하면서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행착오 주체도 불분명하고, 국민세금 낭비가 너무 많았다고 생각했다. 노화순청이란 말은 등소평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중국을 시장자본주의로 전환시키면서 최고의 삶의 지표를 저걸로 삼고 살았다고 해서 유명한 말이다. 국가가 아주 유능한 리더들에 의해 이끌어져야 한다는 뜻으로 알고, 약 한달전 공무원 생활 30주년을 맞아 기념으로 저 액자를 걸었다.-국토해양부의 최근 현안은 무엇인가.▲가장 고심에 싸인 문제는 KTX 사고가 자꾸 나서 원인조사중에 있다. 국민들에게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 송구스러운데, 차량 유지보수문제인 지, 공단조직 문제인 지, 아니면 전기문제인지 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조치를 해서 안전한 철도가 되도록 애쓰겠다. 그 다음 현안은 투자배분문제다. 도로분야의 경우 각 지역별로 발달이 안되는 것은 비용편익분석(B/C)이 낮기 때문인 데, 그러면 언제까지나 안 해줄 것이냐가 의문이다. SOC투자를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최선이냐를 고민하고 있다. 각 지역에 비슷비슷하게 균형있게 놔주는 것이 옳은 지, 그렇게 하면 획일적이니까 산업단지는 특정지역에 넣되 결과는 비슷하게 공유하는 다른 시스템으로 가야될 지를 고민하고 있다.-고향 분들에게 인사말을 한다면.▲대구·경북지역이 인구도 줄고,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고, 특히 경북북부지방은 낙후돼 있어 각 의원들이나 지자체 장들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고향을 생각하며 중앙에서 지원을 최대한 열심히 하겠다./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2011-05-06

경북 사과 수출촉진 현지 홍보 행사

경북 농산품, 말레이시아 시장 뚫고 동남아 전역 공략 경북 농산품의 동남아 시장 진출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이전부터 동남아 현지 소자본 바이어들에 의한 국제거래는 있어왔으나 본격적인 경북 농산품 수출 판로 개척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 사과를 중심으로 경북지역 농산품의 최대 수요처는 바로 대만이었다. 그러나 1992년 중국과의 수교 체결로 대만 국교 단절이 이뤄지면서 경북 농산품의 수출시장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통계청에 따르면 1989년 한때 연간 9천t에 이르던 경북 사과의 대 대만 수출량은 국교 단절 이듬해인 1993년 3천428t까지 떨어졌다.이후 IMF까지 겹치면서 경북 사과의 대만 수출량은 1998년 880t이란 최저점을 찍었다.1989년 대만 내 시장점유율 11.6%를 기록했던 경북 사과는 1993년 0.1%까지 하락해 최고 1.6%(1997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대만 내 수입량이 너무 적어, 시장점유율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해도 1998년과 1999년, 2000년 등 3년이나 된다.◇경북 농산품. 생존을 위해 동남아로 눈을 돌리다대만이란 주요 시장을 잃고 경북 농산품 수출은 한동안 표류하기 시작한다.대만 국교 단절 이후 새로 얻은 중국 시장은 한국 농산품이 진입하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 존재했다.먼저 대만과 달리 중국 내에는 값싼 농산품이 즐비했다. 게다가 고가의 한국 농산품을 소비하기에는 국민의 경제요건도 열악했다.실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 농산품의 중국 내 수출량은 그 양이 너무 적어 통계 결과조차 존재하지 않는다.이때 새로운 구세주로 떠오른 곳이 바로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 시장이다.동남아에는 열대 과일이 즐비하지만, 사과처럼 한랭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농산품은 찾아보기 어렵다.물자자원이 풍부한 동남아 지역은 한국과 기후 자체가 너무 달라 농산품이 상호 보완적인 구조를 이루는 셈이다.말레이시아에서 본격적인 동남아 판로 개척에 나선 경북 농산품은 첫해 고무적인 성과를 거뒀다.2008년 경북 농산품의 말레이시아 수출량은 총 1천94t·124만5천달러에 이른다. 2009년에도 1천130t·122만달러를 기록했다.◇천연자원의 보고 동남아. 무한 시장을 개척하라말레이시아의 경우 공업화 등 경제 수준이 우리보다 조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전체면적 32만9천758㎢의 말레이시아에는 총 2천831만명(2009년 기준)이 거주하고 있다.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대지에, 우리나라 절반도 안 되는 인구가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이들의 1인당 소득(GDP)도 우리나라의 약 40% 정도인 7천59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하지만, 말레이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고무, 주석, 목재 등 세계적인 자원 보유국 중 하나다.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고무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팜유는 전 세계 생산량의 거의 60%가 말레이시아에서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말레이시아의 무역은 수출입 모두 동남아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활발하다.주요 수출품은 전기제품,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팜유, 천연고무, 목재이며 수입품은 제조기기, 수송기기, 식료품이다.그러나 말레이시아의 무역은 지금까지 대부분 미국, 싱가포르, 일본, 중국 등이 주로 장악하고 있다.이미 주요 선진국들의 시장 진입이 이뤄진 상황에서 한국의 농산품을 팔기 위한 새로운 방안이 필요한 부분이다.◇경북 농산품. 말레이시아의 입맛을 사로잡다열악한 수출시장 요건에도 불구하고 최근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한국제품은 상당한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다.아시아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서서히 한국제품의 우수성이 현지에 알려지기 시작한 까닭이다.말레이시아 한인회 이강성 회장은 “최근 드라마 등 한류분위기에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한국 제품을 소비하는 풍토가 유행하고 있다”면서 “한국제품 수입액이 지난해 61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매년 15~20%가량 신장하고 있다. 한국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부유층을 상징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특히, 경북지역 농산품은 우수한 품질로 인해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서서히 입지도를 쌓아가고 있다.앞서 밝혔듯이 경북 농산품의 말레이시아 수출은 2008년 이후 매년 상승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전년 동기 대비 53.5%란 경이적인 신장률까지 기록했다.말레이시아-한국 간 무역회사인 `KMT무역`의 이마태오 사장은 “현지에서 한국의 이미지 상승은 놀라울 정도다. `한국 경북 프리미엄 상품`이란 상표만으로도 엄청난 판매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면서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다른 곳보다 고급시장이며, 주위 국가의 테스트마켓(Test Market)이다. 경북 농산품이 말레이시아 진출을 통해 동남아는 물론 이슬람 국가까지의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말레이시아서 신동우기자 beat082@kbmaeil.com

2011-05-06

⒂ 회헌 안향과 소수서원

영주 시내에서 순흥쪽으로 한적한 길을 달리다보면 맑은 시냇가에 울창한 소나무숲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개울 너머 일련의 고건물을 볼 수 있다.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사액서원(賜額書院)인 소수서원이다.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은 1543년(중종 38) 이 지역 출신이자 고려말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처음 도입하여 한국 사상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회헌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아울러 유생교육을 겸할 목적으로 백운동서원을 설립하였다.이곳은 안향이 어린 시절 공부를 했던 숙수사(宿水寺) 터이기도 했다.이후 1548년(명종 3) 당시 풍기군수였던 퇴계 이황이 참된 선비를 양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서원을 널리 보급해야 한다고 하여, 백운동서원에 사액(賜額)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이에 1550년 `소수서원`이라는 현판과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서적을 하사받았다.이는 서원이 국가의 공인하에 발전하고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최초의 서원에 배향된 이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도입한 안향이라는 사실은 참 절묘한 인연인 것 같다. 또 이황이 서원을 널리 보급하고자 했던 것은 을사사화로 고초를 겪은 다음 관료로서 군주를 보필하고 경륜을 펴기보다는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통해 후일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안향의 살았던 시기를 생각하면 이 역시 절묘하다. 올바른 정치를 행할 수 없을 때는 후진 양성에 힘써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안향은 그 삶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700년 전 안향의 삶을 통해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보자.안향은 1234년(고려 고종30) 흥주 평리촌 학교(鶴橋·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 옆의 본가에서 태어나 1305년(충렬왕31)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회헌(晦軒),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초명은 유(裕)였고, 훗날 향(珦)으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조선 문종의 휘가 그의 이름과 같았으므로, 이를 피하기 위해 조선시대에는 안유로 불리웠다.그가 태어났던 시기는 무신정권이 전성을 구가하던 때이며, 그가 과거에 급제했던 해는 몽골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몽골의 본격적인 간섭을 받기 시작했던 1260년(원종1)이었다. 또 그의 관로는 매우 화려했고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지만, 몽골인 출신 권력자의 미움을 받아 한때 관직에서 물러나야만 했었다. 그리고 재상이 된 뒤에는 `행동을 조심하여 감히 다투지 않았다`고 평가받았다. 원나라의 지나친 압박과 견제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고려가 몽골의 간섭을 받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그대로 수긍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안향이 무사안일주의였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재상에 오르기 전 그는 매우 적극적인 관료였다. 1271년(원종12) 서도(西道)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청렴하다는 평을 받았고, 다시 내시원의 관료가 돼서는 내시원의 오래된 폐단을 혁파하였다. 또 1275년 상주판관에 임명되어 3년간 재직하면서 요신(妖神)을 받들고 군현을 횡행하며 관민(官民)을 현혹시키던 여자 무당 3명을 치죄하기도 하였고, 일본 원정을 위한 전함 건조·군량 저축, 가혹한 세금 징수 등으로 곤경에 처한 백성들을 소생시키기 위해 노력을 다하였다. 이를 보면 청렴을 바탕으로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열전을 보면, `안향은 장중(莊重)하면서도 인자하니 사람들이 모두 경외하였다. 재상이 되었을 때 일을 도모하는 것과 판단력이 뛰어나 동료들이 순응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그런데 몽골 출신 관료나 그와 결탁한 관료들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원나라의 제후국으로 격하한 고려의 관료로서는, 몽골 출신 관료를 억제할 힘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아마도 섣부른, 혹은 감정적인 대응은 화만 미칠뿐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현실에서 안향이 기대를 걸었던 것은 교육이었다.사실 안향 자신이 뛰어난 학자였다. 안향은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였다고 하며, 과거 급제 후 비서성이나 한림원과 같은 문한 기관에 주로 임명되었다. 중견 관료되는 국자 사업으로 국학의 생도를 교육하는 위치에 있었다. 재상이 되어서는 집현전대학사나 감수국사와 같은 문한직을 겸직할 정도로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리고 만년에는 항상 주희의 진영을 걸어두고 경모하였으며 마침내 호를 회헌이라고 할 정도로 주희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려고 하였다.그렇지만 그가 자신의 학문 연마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후진 양성이었다. 그가 `국학을 발전시키고 현량한 후진을 양성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아 비록 일을 사직하고 집에 있어도 늘 교육하는 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평가받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안향은 상당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제력을 아낌없이 교육에 투자하였다. 1301년(충렬왕27) 국학(성균관)을 중건할 때 안향은 자신의 저택을 국가에 바치고 토지 30결과 남녀 노비 각 100인을 국학에 귀속시켰다. 조선 전기에 안향의 후손들이 성균관에 입학하였을 때 성균관 노비들이 `우리의 상전이다`라고 했다고 하며, 성균관 관원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후하게 대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안향이 국학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상당한 재산을 기부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가 지공거, 즉 과거 시관이었을 때 급제자 30여 인 모두에게 돈피이불을 선물하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성리학을 도입하였다. 1290년(충렬왕16) 3월 24일 충렬왕, 왕비, 세자가 원에서 돌아올 때 함께 귀국한 안향이 원의 대도(大都)에서 주자서를 필사하고 공자와 주자의 초상화를 모사하여 돌아왔다. 1304년(충렬왕30)에는 국학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섬학전을 확보하고, 그 돈의 일부로 중국에서 육경, 제자(諸子), 사서(史書)를 사와 국학에 비치하게 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개혁적인 후진들이 양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에 의해 원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또 고려의 묵은 폐단을 개혁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나타날 수 있었다.이황이 을사사화를 겪으면서 훗날을 기약하며 후진양성에 힘썼던 것이나 안향이 현실 정치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후진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은 같은 맥락이었던 것이다. 원나라에 비해 열세일 수 밖에 없는 고려의 현실을 직시하고 안정된 내치를 도모하고 문풍을 진작시킴으로써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를 700년 전 안향 선생의 삶을 통해 다시 한 번 배우게 된다./이욱(한국국학진흥원 고전국역실장)

2011-05-06

가볼만한 곳 - 부석사

우리나라 最古의 목조건물 `무량수전` 있는 고찰 부석사로 유명한 영주는 둘러볼 곳과 먹을거리가 많아 풍성한 여행이 기대되는 곳이다. 순흥면 일대의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선비촌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부석사영주의 부석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고찰이다. 부석사 가는 길은 단상에 빠져들기 좋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구간이 짧아 아이들도 별 어려움 없이 일주문까지 걸을 수 있다.신라 문무왕 16년, 서기 676년 의상조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무량수전 외에도 국보급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정겹게 느껴진다.부석사 외에도 영주에서 볼 만한 명소는 소수서원과 선비촌이 있다.소수서원은 조선시대 최초의 사액서원이며 선비촌은 경북의 유교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아이들에게 교과서 밖 학습장으로 손색없는 목적지다.주세붕 선생이 세운 조선시대 최초의 사액서원◆소수서원소수서원은 조선시대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국가 공인 사립대학쯤으로 생각하면 된다.고려 말 유학자 안향을 제향하고 그의 정신을 잇기 위해 주세붕이 세운 사원이다. 퇴계 이황이 군수로 부임하면서 사액서원이 됐다.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인 회헌영정(국보 111호)은 소수서원의 자랑거리이다.조선 중종 37년(1542)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제사 지내기 위해 사묘를 세우고 그 이듬해 안향 선생을 봉안, 학사를 이건해 백운동서원이라 칭했고, 중종 39년에는 안축, 안보를 배향하고 명종 3년에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명종 5년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의 시초가 됐다. 이후 인조 11년(1633년) 주세붕을 추향해 향사를 지내고 있다.소수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원 건물로는 명종의 친필로 된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린 강당과 그 뒤로 직방재와 일신재, 동북쪽에는 학구재, 동쪽에는 지락재가 있다. 또 서쪽에는 서고와 고려 말에 그려진 안향 영정과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가 안치된 문성공묘가 있다.우리나라의 대학자이자 선비로 이름이 높은 퇴계 이황(1501~1570)은 회헌 안향을 사모했다. 두 사람은 동방 성리학의 성현이다. 고려의 안향이 최초로 원나라에서 주자학을 들여왔다면, 그 학문은 퇴계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25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안향의 선학에 대한 퇴계의 외경심과 사랑은 소수서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건물 배치의 자유스러움과 자연스러움에서 당시 학자들의 기품을 느끼게 한다. 서원 입구에는 숙수사 당간지주(보물 제59호)가 우뚝 서 있다. 유생의 터에 보존돼 있는 불교의 상징에서 당시 학자들의 너른 마음을 읽을 수 있다.모든 건물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원 옆으로 낙동강의 작은 젖줄인 죽계수가 흐르고 개울 건너편 아담한 바위에는 주세붕이 직접 쓴 경(敬)자가 붉게 새겨져 있다. `경이직내 의이방외`(敬以直內 義以方外)의 첫 글자로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반듯하게 한다`는 뜻이다. 소수서원의 교훈이자 학문의 목표이며 안향이 우리나라에 주자를 들여오고 전파한 의미이기도 하다.소수서원으로 들어가면 선비촌과 박물관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옛날 가옥에서 전통생활 체험할 수 있는 민속촌◆선비촌선비촌은 전통가옥에서 숙박을 겸해 전통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민속촌.1만8천평 부지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과 아담한 초가 등 12채의 가옥을 비롯해 강학당, 물레방앗간, 대장간, 정자 등 모두 40채의 건물이 조선시대의 자연부락을 원형 그대로 재현했다. 선비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가옥은 넓은 대청 공간이 돋보이는 해우당 고택. 툇마루로 통하는 문을 열면 소백산의 국망봉과 연봉들이 풍경화처럼 한눈에 들어온다.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이 정원처럼 보이는 두암고택과 인동 장씨 종가, 소박한 멋과 절제미가 뛰어난 중류층 가옥인 김상진 고택도 하룻밤 묵어가기에 좋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5-06

근본을 실천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자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한다. 곧 도저히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잘못된 방법을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경우와 애써 수고만 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에도 이르는 말이다. 맹자 `양혜왕(糧慧王)`편에 나온다.전국시대,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유교(儒敎)의 인의(仁義)의 사상과 왕도정치(王導政治)를 설파하던 맹자의 발길이 한때 제(濟)나라로 향했다. 당시 제나라는 서쪽의 진(秦)나라, 남쪽의 초(楚)나라와 함께 대국으로 꼽혔고 선왕(宣王)도 능력있는 군주로 평판이 있었으므로 맹자는 그에게 왕도정치를 일깨워 주겠다는 큰 기대를 하고 찾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오직 힘있는 자가 최고인 패도정치의 시대였다. 선왕은 왕도정치를 설파하러 간 맹자에게 패도정치에 대해 물었다. “춘추시대 패자였던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사업에 대해 얻어들을 수 있겠습니까?”그러나 맹자는 그런 패도정치에 관해서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우리 선생님(공자를 뜻함)의 문도 들은 그들의 사적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후세에 전해진 것이 없어서 제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굳이 무엇을 말하라고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펴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이렇게 말하고 나서 맹자는 과연 자신이 왕도정치를 펼 수 있을지 자신 없어 하는 선왕에게 이렇게 되물었다.“전하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군사와 신하를 위태롭게 해서 제후들과 원한을 맺은 뒤에야 마음이 후련하겠습니까?”“아닙니다. 나는 그렇기 때문이 아닙니다”선왕은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맹자는 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그러시다면 전하의 대망을 알 수 있겠습니다. 천하통일을 하여 사방의 오랑캐들까지 복종케 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와같이 무력으로 소원을 이루려고 하신다면 이는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것(연목구어)`과 같은 일입니다”“아니. 그것이 그토록 무리한 일입니까?”“오히려 그보다 더 심한 셈이지요.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만 구하지 못할 뿐 후에 다른 재앙은 없습니다. 그러나 군대를 일으켜 천하의 패자가 되려고 한다면 마음과 힘을 다하여 노력하더라도 뒤에는 반드시 재앙이 따를 것입니다”자연에는 섭리가 있다 인간사에는 없다. 물고기는 물에 구하고 산나물은 산에서 구해야한다. 지극한 자연의 섭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이 지구상에 인간뿐이다. 물고기는 물에서 구하는 근본을 실천하는 평범한 인간이 되자./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5-04

재경 "의성군향우회"

의성군 하면, 아동 소설 `강아지똥`이 떠오른다. 고 권정생 선생의 대표작인 강아지똥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는 존재인 `강아지똥`도 알고 보면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림책이다. 어찌 보면 척박한 느낌과 황량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의성군 출향인들의 인생역정과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그러다 보니 의성 출신들은 부러진다 하여도 꺾이지는 않는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의성을 의와 예의 고장이라 했으며, 대쪽같은 마늘도 의성의 주요 생산품이 아닌가.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의성군 2대 회장을 지내고 있는 김동건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를 만나보았다.△ 출발향우회 김동건 회장에 따르면, 재경의성군향우회의 출발은 만 4년 전이다. 그동안 의성군 법조인 모임이나 경제계 모임 등으로 꾸려져 오던 향우회 조직이 송경태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명예회장의 주도로 꾸려졌다는 것.즉, “처음에 태동은 송경태 회장님이 발기인들을 모으고, 또 여러분들이 송 회장님을 3번이고 4번이고 찾아뵈면서 조직을 태동시켰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반상회 중심으로 계속 영위를 하다가 송년의 밤과 각종 행사를 진행하면서 조직을 정비하고 2년간의 노력 끝에 탄생하게 됐습니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그러면서 김 회장은 지금의 향우회가 “대표성을 가지는 출향인들의 집결된 모임”이라고 강조했다.현재 재경의성군향우회는 시도민회 등산대회에 열성적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매월 청년회와 등산회, 골프회 등의 모임을 가지고 있다. 또 매년 향우회 송년의 밤에는 500명 이상의 출향인들이 참석하고 있으며 고향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과 장학금 기금 사업을 준비하는 중이다.△ 추억서울과 수도권에서 살고 있는 의성인들의 기억에는 무엇이 있을까.이에 대해, 김 회장은 “가난했다는 것과 그 속에서 고향을 떠나 개척정신이 강하다”며 “잘 살면 안주하고 기득권에 파묻히지만, 못살게 되면 고향을 등지고 사회에 뛰쳐나가야만 한다는 정신이 강하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김 회장은 “판자촌에도 어린 시절이 다 있다. 모래바닥에서 놀면 그곳이 놀이터이며, 어린이들은 모래를 가지고 놀게 된다”며 “고향 의성의 예전 모습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저수지에서 미역을 감고, 달밤에 마라톤 경기를 하고, 얼음이 얼면 썰매를 타고, 또 소풍을 가면 칡뿌리를 캐다 먹는 등 추억과 꿈은 끝이 없다”고 말했다.그리고도 김 회장의 고향 추억 자랑은 끝이 없다. 특히, 의성군 관어대 주변에서 있었던 각종 추억을 풀어내는 데만, 인터뷰의 절반 이상이 걸린 정도.△ 현재그렇다면 지금 타향에서 보는 고향 의성은 어떠한 모습일까.김 회장은 “자기 고향에 긍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왕건 휘하의 홍술 장군이 의성군으로 봉해지면서 내려진 지명이 1천20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그런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다만, 김 회장은 “의성이 비교적 척박한 땅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래서 그런지, 우리 향우회원들의 참여 의식이 높고 고향에 대한 열정도 있다”고 자랑했다.그러자 동석한 이억기 향우회 상임부회장은 “며칠 전 시도민회 등산대회에서 의성군에서만 150명이 참석했다”며 “하도 의성군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참가상을 나누어주는 추첨권을 다시 거둔 일도 있다”고 거들었다.김 회장은 “5월 1일에는 의성군 향우회에서 고향의 비봉산 등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며 “내년에는 청와산을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래출범 5년째를 맞은 재경 의성군 향우회의 미래 모습은 어떠할까.김 회장은 “의성군은 출향인사만 20만이 넘을 것”이라며 “향우회의 역사와 지난 발자취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의성군에 있는 학생들을 서울로 초청해서 만남을 가지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다만, 김 회장은 “향우회라는 것은 모든 회원들이 열정 하나로 뭉치고 참여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신이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며 “다만 충분한 향우회 기금을 만들어 놓지 못한 것이 고민”이라고 말했다.이어 “사실은 향우회 행사에 회원들이 와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며 “다만 젊은 층의 참여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의성 출신 인사 누가 있나의(義)와 예(禮)의 고장이면서 한때는 22만명의 군민을 자랑하기도 했던 의성군.그 연혁만큼이나 출향인사의 면면도 두텁다. 먼저 재경의성군향우회의 1대 회장을 맡았으며 이달 초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한 송경태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명예회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또 권홍사 반도그룹 회장이 있으며, 그 뒤를 김충근 미주제강 대표이사와 로스앤젤레스 한인회장을 지낸 남문기 회장도 있다.전문경영인으로는 웅진씽크빅 김준희 대표이사가 의성출신이며 아이셀론의 이기윤 회장과 서울시내 최대 버스회사인 유쾌하 서울승합 회장, 김종수 보람제약 회장 등 경제계 인물이 많이 포진한 것도 의성군의 특징이다.법조계 및 정계에도 의성출신이 많다. 먼저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는 대표적인 의성 출신이며, 향우회 2대 회장을 맡고 있는 김동건 법무법인 바른 대표 변호사도 의성 출향인이다.또 현직 국회의원인 이두아 의원과 정해걸 의원도 의성 출신이며, 김재원 전 의원도 의성향우다./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11-05-02

<9> 낡은 국수들이 부르는 노래 ①

41년째 이어온 구룡포 장터 국수공장치렁대는 면발새 세월의 더께 켜켜이 구룡포 장터 제일국수공장, 할머니가 쌓인 국수 가락을 한 줌씩 저울에 올려 정확히 가늠하고는 아래 위 척척 길이를 맞춘다. 각을 세운 탁자 모퉁이에서 딱풀 한 점 콕 찍어 흰 종이 띠를 두른다. 벽에 기댄 밀가루 포대들과 긴 국수틀, 추가 달린 묵직한 저울이 할머니처럼 오래 그곳에 살고 있다. 감포가 고향인 이순화 할머니(72세)는 24살에 구평리 당수나무 부근으로 시집을 왔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휘휘 불어오는 바다 가까이에서 호롱불을 밝히고 시어머니와 시누이, 동서 내외가 함께 살았다. 몇 년 후 옹기장수가 세를 얻어 장사를 하고 있던 집을 샀다. 구룡포 장터에 있는 작고 허름한 일본식 목조 가옥이었다. 바람이 큰 날에는 집까지 파도가 밀려왔다. 시어머니께서 옹기장사가 팔다 남은 옹기를 그대로 받아 놓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하게 된 옹기장사. 오천 옹기공장에서 옹기를 가득 실은 달구지를 끌고 소가 비포장 길을 걸어왔다. 외상으로 한 달구지를 받아 다 팔면 갚고 또 받아 팔고. 그렇게 벌어 학고방 같던 집을 조금씩 수리하며 살았다.옹기장사를 할 때 곁에 대보국수공장, 오천국수공장이 있었다. 당시 구룡포에는 영남국수공장, 털보국수공장등 모두 합치면 여덟 개나 있었는데 어디든 국수는 팔렸다.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해 옹기장사는 뒷전이고 날마다 놀러나갔다. 국수공장을 하면 일이 많으니 아무래도 술도 덜 마시고 덜 나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옹기장사를 접고 국수공장을 열었다. 기계를 사들이고 기술자를 고용해 2년 동안 부지런히 보고 배웠다. 일은 고되지만 벌이는 옹기보다 나았다. 할머니 나이 서른한 살에 시작한 일이니 꼬박 41년 동안 가내 수공업으로 국수를 만들어 온 것이다.너나 할 것 없이 식구는 많고 먹을 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시래기고 뭐고 된장 풀어 끓이다가 굵은 국수 가락 뚝뚝 분질러 넣고 양을 부풀리면 온 식구 둘러 앉아 허기를 채웠다. 잔치고 뭐고 큰일을 치를 때도 국수를 삶았다. 나무상자로 네 상자 다섯 상자씩 사다가 가마솥을 걸고는 커다란 채반에 줄을 달아 국수를 잔뜩 올려놓고 물이 팔팔 끓으면 푹 집어넣었다가 건져 찬물에 씻었다. 잘 익어 말간 국수를 한 덩이씩 돌돌 말아 광주리에 쌓았다가 그릇그릇 담아 싱거운 멸치 국물을 얹은 게 고작이었지만 손님들은 국수 그릇 앞에 행복하게 모여 앉았다.밀가루는 포항 도매상에서 가져 왔다. 처음 일을 배울 때는 반죽이 적당치 않아 실패도 했다. 그러나 실패한 국수는 다시 반죽 할 수 있었으므로 몸이 고될 뿐 손해는 없었다. 국수는 굵기에 따라 20반, 22반, 24반, 26반, 27반등 여러 가지인데 숫자가 클수록 면이 가늘다. 지금은 크게 우동, 중면, 소면으로 나뉘지만 예전엔 우동면 보다 훨씬 더 굵은 면도 만들었다. 처음엔 나무로 된 반죽통이 달린 기계를 썼다. 국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대꼬챙이로 일일이 받아 건지고, 걸고, 길이를 눈으로 가늠해서 칼로 잘랐다. 젖은 국수를 널고 말리고 걷어 재단을 마치기까지는 꼬박 이틀이 걸리는데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야속한 할아버지는 생각처럼 일을 많이 도와주지 않았다. 여전히 틈만 나면 친구 찾아 술 찾아 마실을 다녔다. 종종거리며 국수공장 일을 마치면 집안일이 할머니를 기다렸다.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겨우 빨래를 할 수 있었던 고단한 세월이었다.“우리 영감? 살아계셨으면 나와 네 살 차이니 올해 일흔여섯 이지. 그렇게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던 양반은 결국 쉰둘에 위암 수술을 받았어. 그리고 예순에 돌아가실 때까지 대구 병원에 12번이나 입원을 했지. 수술하고 술만 안 잡쉈어도 더 살았을 텐데….”할아버지께서 앓아누우면서 그나마 거들던 손을 놓자 할머니는 두 아들의 힘을 빌어야 했다. 아들들은 기특하게도 할아버지 빈자리를 야물게 채워 주었다. 큰 아들은 단기병으로 지서에 근무 할 때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고 했는데, 아침에 퇴근하면 바로 일을 도왔다. 그리고 다음날엔 종일 마른 국수를 재단까지 해 주고 저녁 무렵 출근을 하곤 했다. 장터에 있던 국수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는 세월에 제일국수공장이 지금까지 남을 수 있었던 건 두 아들 덕이다. 모두 장성해서 번듯한 직장을 가졌지만 지금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말마다 들어와서 할머니와 국수를 만든다. 제일국수공장은 이제 일주일에 한 번 국수틀이 돌아가고 건조장 가득 뽀얀 국수가 널린다.밀가루와 소금 그리고 물이 국수의 모든 재료다. 국수를 만들기 이틀 전, 할머니는 고무통에 소금을 넣고 물을 부어 나무로 휘휘 저어 놓는다. 덜 녹은 소금과 이물질들이 가라앉고 난 뒤 맑은 소금물만 떠서 반죽에 쓰기 때문이다. 반죽통에 밀가루를 세 포대 붓고 그 위에 맑은 소금물과 맹물을 섞어 반죽을 하는데 이유는 소금물로만 하면 국수가 짜지기 때문이다. 간도 간이지만 물과 밀가루의 비율을 잘 맞춰야 되지도 묽지도 않은 반죽이 된다. 그건 오로지 할머니 몫이다. 반죽이 되면 작은 아들은 롤러로 납작하게 밀며 돌돌 감는다. 다 감으면 두벌치기에 들어간다. 처음 밀어 놓은 것을 두 장으로 겹쳐 다시 한 번 조이며 롤러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더욱 납작하고 야물어 진다. 그 후에는 국수 크기에 따라 틀을 끼우고 국수 가락을 뺀다. 요즘은 기계가 좋아 국수를 걸칠 시누대를 차곡차곡 넣어 놓으면 탈카닥 탈카닥 국수 가락을 걸고 올라가고 저절로 알아서 적당한 길이로 잘라진다. 큰 아들은 얼른 시누대에 걸린 국수를 들고 뒷마당과 옥상에 굵기별로 분류해 넌다. 세월이 할머니와 아들들의 손발을 척척 맞게 했다.

2011-05-02

인터뷰-두류공원 숲 해설사 김명선·이은숙씨

“생명의 숲 소중함 일깨워 주는 자연 지킴이” “자연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가를 일깨워 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두류공원 숲 해설사인 김명선(68)씨와 이은숙(여.60)씨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없고, 자연이 인간을 통제한다”며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일반인을 상대로 자연의 소중함을 전해주는 이 일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이들의 최종 목표는 날로 오염돼 가고 있는 지구의 현재 상황을 이해시켜 녹색인간을 만드는 것.“매일 마시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초중고 학생 등 청소년은 물론이고, 심지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조차도 숲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숲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이로움을 주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관람객이 고개를 끄덕일 때 그날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집니다”나무에서 떨어진 씨 하나를 가지고 돋보기나 루페 등 기구를 이용해 관찰시키면서 궁극적으로 화학물질을 덜 써 지구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가는 방향으로 숲 해설을 해주고 있다.요즘은 학교가 창의성 교육을 많이 해 유·초중생들이 특히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김씨는 과거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한 후 경북환경연수원에서 숲 해설사 과정을 졸업하고 올 초 두류공원 숲 해설사로 오게 됐다.예전에 공무원생활을 한 적 있다는 이씨는 봉사활동에 관심이 있어 여러 가지를 살펴보던 중 숲 해설가를 하기로 작정하고 대구 생명의 숲에서 과정을 이수한 후 수목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해 왔다.이들 두사람은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숲 해설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이창훈기자myway@kbmaeil.com

2011-05-02

대구 재발견- 두류공원

이곳에 가면 없는 게 없다. 다 있다. 체육, 교양, 문화, 위락시설을 고루 갖춰 일상에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곳.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에 위치해 있는 두류공원은 165만㎡의 넓은 대지위에서 다양한 시설로 무장하고 있다.반세기 가까운 46년전인 1965년 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돼 인근 주민은 물론 멀리서 가까이서 온 나들이객의 머리를 식혀주고 있다. 두류산과 금봉산을 중심으로 길 건너 이랜드(구 우방랜드)가 들어선 곳은 두류산이고, 문화예술회관 뒷산은 금봉산이다.199종 22만본에 달하는 다양한 종류의 수목과 4계절 꽃이 피는 가로를 조성해, 시민 정서함양에 기여하고 있고, 특히 성당못의 오색 분수는 여름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주요 시설거대한 숲에 둘러싸인 두류공원은 도심에 위치,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는 주요시설을 거의 다 갖추고 있다.체육시설로는 유니버시아드 테니스장, 두류야구장, 다목적운동장, 수영장, 테니스장, 인라인스케이트장, 유도관, 골프연습장, 체육공원이 있다. 교양·문화시설로 두류도서관, 문화예술회관, 인물동산, 2·28기념탑, 야외음악당, 대구관광정보센터가 자리 잡았다. 위락시설은 이월드가 있으며, 기타 여름철 무더위를 식혀 주는 성당못과 분수대, 금용사, 대성사 등이 공원내에 포진해 있다.△야외음악당넓은 잔디광장 앞에 있는 야외음악당은 다양한 공연을 펼쳐, 겨울철을 빼곤 일년내내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히 공연이 있는 날에는 구경꾼 뿐 아니라 산책 나온 사람들, 애완견을 동반한 가족 나들이객, 이들 사이로 곡예 운전하는 자장면과 통닭배달 아저씨까지 가세해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이번달 6일부터 8일까지 `대구 밀레니엄 팔관회` 행사가 예정돼 있다.신라시대부터 시작해 고려시대에 주로 시행되었던 국가적인 문화행사로 임금의 출궁행차와 전통궁중의례, 백희공연, 외국전통문화공연 등으로 꾸며져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6일 오후 7시30분에 개막식과 함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3일간의 열전에 들어간다. 축하공연에는 국악인 오정해씨와 시립국악단의 퓨전 국악연주회가 있다.행시기간 중에는 초조대장경 홍보전시관과 전통문화 체험장 운영도 곁들여 진다.야외 음악당은 고정객석 1천80석을 갖추고 있으며 최대 수용인원은 3만명. 2000년 10월 개장됐다.공연장 주변을 산책하고 있는 김영선(38.달서구 두류동)씨는 “주말이면 공연도 보고, 산책도 할 겸 자주 찾고 있다. 집 가까이 공연시설이 들어서 주차에 신경쓰지 않고 걸어올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공연이 있는 날이면 공원 일대가 너무 무질서해지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시민의식이 좀 성숙해 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이용안내 053)606-6450.△대구관광정보센터시민에게 알차고 유익한 관광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2000년 4월 개소했다.국내·외의 관광정보 수집과 관리 및 제공과 더불어 관광객의 편의 증진을 위해 국내열차표, 항공권 발매와 비자발급 안내도 하고 있다.안내데스크는 직접 또는 전화로 한국관광에 관한 모든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내·외국인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영어 일어 중국어 통역원이 상시 배치되어 있다. 1330 관광안내 전용전화를 운영, 전국민들에게 서비스하고 있다.국번없이 1330을 누르면 관할 관광안내소에 연결된다. 45인승 버스 3대와 17인승 버스 1대로 대구시티투어를 상시운영중이다. 대구시티투어는 대구를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특히 인기 있으며, 현풍권, 화원권, 가창권, 다사권, 도심권으로 나눠 운행된다.1층에는 지역의 특산품인 공예품과 의류, 안경, 우산 등 대구시 공동브랜드인 쉬메릭상품을 전시·판매한다.이용안내 문의는 053)627-8900.△문화예술회관대구시민의 오랜 염원이었던 문예회관은 1981년 기본계획이 수립돼 82년 두류공원내로 결정됐다. 83년 공사가 시작돼 90년 공연관이 우선 개관된 후 91년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 20년간 대구문화예술의 메카로서, 지역문화예술의 선도자로서 기획공연 및 전시 뿐 아니라 교향악단, 합창단, 무용단, 국악단, 극단, 소년소녀합창단 등 6개의 시립예술단체와 지역 예술가들이 창의력을 쏟아내는 활력 넘치는 공간이다.시민의 문화욕구 충족은 물론, 유치원, 초중학생들의 현장학습 체험장소로 인기가 있으며, 인근의 경북지역에서도 단체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최근 취임한 박재환 문화예술회관장은 “21세기 문화예술은 단순히 삶의 질을 높이는 선택의 문제를 넘어, 그 자체가 우리생활의 중심이다”며 “문턱이 높은 곳이라는 편견을 확 바꿔 도심속의 편안한 문화쉼터로 새로운 도약의 닻을 올리겠다”고 말했다.이번달에는 3일 가톨릭대 음대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를 비롯, 11일 대구시립국악단 연주회, 12일 미샤 마이스키 패밀리콘서트, 13일 팝페라 로즈장 내한공연 등 대형공연이 줄지어 예정돼 있다.자세한 안내는 053)606-6114.■ 숲해설 안내두류공원은 숲해설사를 따로 배치해 관람객을 대상으로 상세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참여대상은 누구나 가능하며 연중 2월부터 11월까지 운영한다. 접수인원은 5명 이상 30명 이하로, 인터넷 또는 전화(053-625-1952)로 예약하면 된다.숲해설 장소는 다양한 수종이 식재되어 있는 인물동산, 시계탑 주변에서 주로 한다.시간은 오전 10시에서 12시, 오후 2시에서 4시까지다.예약 신청자가 중복될 때는 단체에 우선권을 부여하며, 예약자가 없을 시는 일반 내방객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또 단체나 기업, 학교 등에서 요청이 있을 경우 현지 출장 해설도 한다./이창훈기자myway@kbmaeil.com

2011-05-02

<9> (주)윈티앤에스

저용량 고효율의 무선통신을 이용한 관제시스템 개발에 성공으로 차세대 IT산업의 선두기업으로 발전하며 기업경쟁력을 높여 현장실용화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윈티앤에스(대표 최기수)를 방문, 공장 관제시스템 기술을 살펴봤다.△㈜윈티앤에스 어떤 회사인가?㈜윈티앤에스는 S/W의 개발과 보급을 목적으로 지난 1993년도에 설립된 이래, 약 1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수많은 부침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차별적인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으로서의 생존의 방법은 이미 개발된 기술의 절묘한 적용임을 알고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그 일환으로 위덕대학교 내의 연구분소를 대전광역시 산업용재유통상가로 옮겨 운영하면서 대덕연구단지에서 일어나는 여러 연구정보를 수집 및 응용개발하고 인적 네트워크 구성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음성적으로 기술지원을 받던 RIST 스마트그리팀과 테크노파트너쉽을 체결해 제도권 내에서 주기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2007년 4월, 포항시 죽도동에서 테크노파크로 입주한 후 여러 기업지원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경쟁력 제고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테크노파크 입주기업이라는 후광효과는 물론 장비 활용, 연구과제 수행, 기업홍보를 위한 직접지원, 지적재산권 출원지원 등은 물론 회의실 등의 공동시설의 활용은 매우 유익하다. 특히 포항테크노파크에서 시행하는 기술사업화 지원사업의 활용으로 ㈜윈티앤에스 `무선통신을 이용한 관제시스템`을 개발했다. 당초 에너지 절감을 위해 작업등의 점·소등 만을 제어하던 단순 제품에서 수신기를 통해 케이블의 온도, 산소 농도, 화재 감시, 출입자 관리 등의 정보를 사무실에서 알 수 있도록 개발된 본 제품은 금년 중에 포항제철소 지하칼버트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윈티앤에스의 SW 개발 및 보급호반 위의 백조가 수면 위를 흐르듯 하지만, 수면아래의 양 발은 수없이 물질을 하는 것처럼, 2011년 4월의 ㈜윈티앤에스는 여느 해와 다르게 튀어 오를 준비와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계절로 치면 이 회사는 봄이다. 봄은 아직 결실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엄동설한을 버틴 자들 만이 향유할 수 있는 기대만발한 축복의 시기이다. 기업도 생물처럼 성장주기를 가지며, 쇠퇴기를 거쳐 다시 태동기로 간다면 이것은 부활이며, 봄이다.지난 1993년 우리나라 회계 프로그램의 대명사 격인 더존과 비슷한 시기에 경쟁제품인 회계 프로그램으로 ㈜다산회계정보(현 회사의 모태 법인)는 설립됐으며, 그 후 약 10여년 간 중소기업 사무자동화를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 및 보급에 정진해 왔다. 설립초기에는 회계관리 프로그램으로 출발했으나, 지역 내 인지도가 상승함으로 규모가 성장해 인사급여, 생산, 판매, 영업, 재고, 자재관리 등으로 확대해 지금까지 약 200여곳의 기업에 적용해 오고 있다.△㈜윈티앤에스의 공장자동화지난 2000년도가 들어서면서 프로그램 개발 및 적용으로 체력을 축적한 후, S/W 개발 능력을 바탕으로 한 자동화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산업과학원, 포스코 등 지역 내 기업의 수주를 통해 임베디드시스템(특정한 제품이나 솔루션에서 주어진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추가로 탑재되는 솔루션이나 시스템), 비전시스템 등의 분야에 괄목한 성과를 보이며 기술력을 인정받았으며, 그 만큼 회사의 외형은 성장해 나갔다. 특히 RIST와 공동으로 개발해 ㈜제일테크노스에 적용한 자동마킹시스템은 그 회사의 급성장에 일조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회사가 성장해 가며 건립하는 1, 2, 3, 5공장에 적용했으며, 광양에 짓고 있는 공장에도 금년 5월 초에 설치키로 하고 제작 중에 있다.이 분야에 대해 깊은 업력이 있는 만큼 ㈜현대미포조선, ㈜융진, ㈜신화테크, ㈜대성메탈 등 20여 기업에 설치했으며, 기술의 발전에 따른 조선사들의 복잡한 요구에 부응한 마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윈티앤에스의 지그비 통신과의 만남… 시련과 비전2008년에 들어서면서 지방 중소기업으로서 S/W분야 및 자동화 분야에 성장의 한계를 느껴, 경주소재 위덕대학교의 RIC(지경부 지정 지역혁신센터) 내에 연구소를 설치해 사업다각화, 더 나아가 업종전환을 위한 시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업계에서는 힘들다고 떠나는 지그비 통신을 만났으며, 현재의 기술이사를 신규로 채용해 응용기술 개발에 전력을 투구했다. RIST의 중개로 광양제철소 전기기술부서에서 공장지하 칼버트에서 낭비되는 전기에 대한 고민이 있음을 듣고 `RF 통신을 이용한 조명제어`로 특허로 출원한 후, 관계자와 만나 현장적용을 추진했다.이 결과 관계사들의 직원들은 에너지 절감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수상도 하고, 언론에서 취재도 했으나, 정작 개발한 이 회사의 상황은 악화만 되어 갔다.2009년도에는 전 공장에 적용될 듯하다 매출급감으로 인한 신사업 중단이라는 조치에 의해 무선통신분야에서 1년 동안 매출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으며, 타 사업분야에서도 동반 위축됐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현장에 적용될 듯 하던 제품은 2010년도 상반기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무선통신분야의 사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를 무렵, 광양제철소의 담당자로부터 설치를 위한 준비를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으며 회사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작년 하반기에 광양제철소 4개 공장에 설치계약을 하고, 금년 1월 말에 준공을 했으며, 그 성능에 지금까지 만족해 하고 있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4-29

인터뷰-최기수 대표이사

“시스템으로 번 돈 시스템에 재투자하죠” - 최근 회사의 근황에 대해.지난 2년간 지그비(ZigBee) 통신을 이용한 응용제품 개발에 매진했다.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고, 또한 알려진 지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확산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오히려 그 가능성에 매달렸다. 초반에 힘들었는데, 이제 적용처도 늘어가고 있고, 이 기술의 적용을 위해 문의를 오는 횟수도 늘어 기대가 크다.- 사업경영철학은?그리 오래도 아니지만, 짧지도 않은 약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이제는 사업이라는 것이 뭔가라는 것이 좀 보인다. 예전에는 혼자서 용을 쓰고, 그래서 돈을 벌면 그게 사업인 줄 알았는 데, 그게 아니라 시스템이 돈을 벌어 주고, 그렇게 번 돈을 시스템에 재투자를 하고, 일부는 사회로 돌리는 것이 사업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시스템의 근간이 동료들과의 관계를 늘 생각하고 있으며, 생각의 공유를 통해 사업과정의 공유, 결과의 공유를 위한 실천을 위해 고민을 하고 있다.- 기업경영의 어려움에 대해.예전에도 지금도 느끼는 것인 데, 기업경영의 요소에서 수 많은 것이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절대적인 4가지 요소가 있다고 본다. 그 4가지에 우선순위는 없는 데, 첫째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아이템이다. 둘째는 돈이고, 셋째는 사람이며, 넷째는 영업이라고 본다. 이 4가지는 항상 물려 있어서 선순환 구조를 그려야 되지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너무나 힘든 데, 지방소재 중소기업으로서 이 중에서 제일 힘든 것은 역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윈티앤에스의 향후 계획은?지그비 통신을 이용한 응용제품이 현장실용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 분야에 매진할 계획이다. 향후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반을 닦고 기업의 경쟁력향상과 원가절감을 높이는 무선통신기반을 이용한 에너지모니터링·관계기능을 총괄하는 저용량 고효율의 IT제품개발에 매진, 기업의 신 성장동력으로 삼을 계획이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4-29

경북동해안 연안 새그림 그린다

연안정비 사업은 침식으로부터 훼손된 해안을 정비해 깨끗한 연안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자연재해로부터 연안을 보호하고 친수연안 공간을 조성해 지역 주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사업이다. 경북도는 포항시, 경주시, 영덕군, 울진군, 울릉군 등 5개 시·군을 대상으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3천341억원을 투자해 모니터링, 연안보존, 해역개선, 친수연안조성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업량은 도 주관 1, 포항 6, 경주 7, 영덕 7, 울진 9, 울릉 5개소 등 35개소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편집자주경북도, 포항·경주·영덕·울진·울릉에 3천341억 투자2019년까지 침식 모니터링·해역 복원 사업 등 펼쳐포항 동빈내항·영덕 강구항·경주 해수욕장 등 정비경북도는 정부의 1차 연안정비 10개년 계획에 따라 2000년부터 2009년까지 630억 원을 들여 28개 사업을 완료했다.이어 제2차 연안정비 10개년 계획에 따라 2010년 97억원을 들여 도 모니터링 3억원, 포항시 34억원, 경주시 7억원, 영덕군 27억원, 울진군 5억원, 울릉군 21억원 등 6개소에 침식 방지시설 설치, 호안정비, 친수연안 공간 조성사업을 펼쳤다.올해는 126억700만원을 들여 도, 포항, 경주, 영덕, 울진 각각 1개소, 울릉 2개소 등 7개소에 모니터링, 해역복원, 잠제, 호안정비, 친수공간 조성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이는 정부가 2019년까지 10년에 걸쳐 해안침식이 일어나고 있는 308개소를 대상으로 제2차 연안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해 벌이고 있는 정비사업의 일부다.대상사업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신청을 받은 후 적합성 등에 대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해양연구원, 엔지니어링업체, 국토해양부 및 관련 지자체와 합동으로 현장실사 후 관련부처 협의와 중앙연안관리심의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경북도의 연안정비 사업△경북도는 국토해양부의 제2차 연안정비 10개년 계획에 연안침식 모니터링 사업이 반영됨에 따라 침식이 심한 지역의 침식 원인을 분석해 연안정비 사업에 참고 자료로 활용코자 연안침식 모니터링 사업을 펼치고 있다.따라서 도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30억원을 들여 기본 모니터링 24개소, 정밀모니터링 14개소 등 38개소에 대해 침식 이력조사, 표층퇴적물 조사, 항공사진 및 위성영상 분석 해안선 측량, 해저질 조사, 수치 모형실험, 파랑관측 등의 침식관련 모든 정보 수집 사업을 펼치고 있다.이미 도는 2010년 2억5천만원을 들여 포항 3, 경주 5, 영덕 4, 울진 10, 울릉 2개소 등 24개소에 대한 기본모니터링 사업으로 침식 이력조사, 표층퇴적물 조사, 항공사진 및 위성영상분석, 하천유입 및 유사량 조사 등을 실시했다.이어 올해는 4억2천800만원을 들여 기본모니터링 23개소, 정밀모니터링 2개소에 항공사진, 위성영상 분석, 수치모형, 파랑관측 등의 사업을 펼친다.경북도는 울진, 영덕, 포항, 경주와 울릉군 등 5개 시군에 걸쳐 30억원을 들여 연안침식모니터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동해안 5개 시·군의 연안정비 사업△경주시는 32억5천800만원을 들여 감포읍 전촌2리 전촌 해수욕장의 연안 보존의 잠제 사업, 120억 원을 들여 감포읍 나정 1리 나정해수욕장의 연안보존으로 호안보수와 잠제 사업, 50억원을 들여 감포읍 대본2리 친수연안의 친수공원 조성, 30억원으로 감포읍 오류리 오류해수욕장에 친수연안의 친수공원을 조성한다.또 24억 원을 들여 양남면 나아리 나아해수욕장에 연안보존을 위해 호안보수와 돌제 사업, 30억 원을 들여 양남면 읍천2리 읍천항에 친수연안을 위한 친수공원 조성, 75억원을 들여 양남면 하서1리 하서 1리 연안보존을 위한 호안보수와 이안제 사업 등 7개소에 361억5천800만원을 투자한다.△포항시는 341억4천400만원을 들여 해도동, 송도동 동빈내항에 친수연안 통수시설을 설치하고, 87억원을 들여 송도동, 죽도동 동빈내항에 친수연안사업으로 친수공원과 인도교를 조성한다.또 368억원을 투자해 남구 송도동 송도해수욕장에 연안보전 사업으로 양빈과 잠제를 설치하고, 7억 원을 들여 남구 동해면 흥환에 친수연안 사업으로 해변 산책로 조성, 20억원을 들여 남구 장기면 신창1리 친수연안 사업으로 친수호안보수 조성, 20억원을 들여 북구 청하면 월포해수욕장에 친수연안 사업으로 친수호안보수를 조성하는 등 6개소에 843억4천400만원을 투자한다.△영덕군은 278억4천100만원을 들여 강구면 강구항에 친수연안사업으로 친수호안신설과 친수공원을 조성하고, 5억원을 들여 남정면 부경리 부경에 연안보전을 위해 호안보수 조성, 30억원을 들여 남정면 장사리 장사해수욕장에 친수연안을 위한 친수공원을 조성한다.또 120억원을 투자해 병곡면 고래불해수욕장에 연안보전을 위해 해변 산책로와 순환양빈시스템을 설치하고, 2억5천만원을 들여 병곡면 금곡-백석리에 연안보전으로 호안시설 조성, 37억원을 들여 영덕읍 금진~하저리에 연안보전을 위해 호안보수 조성, 7억원을 들여 축산면 경정1리 경정해수욕장에 연안보전 호안시설 등 7개소에 502억4천100만원을 투자한다.△울릉군은 23억4천400만원을 들여 울릉읍 도동리-사동에 친수연안을 위한 해변 산책로를 조성하고, 100억원을 들여 울릉읍 사동1리에 연안보전 잠제 조성을, 100억원을 들여 서면 남양3리에 연안보전 잠제 조성을, 100억원을 들여 서면 남양1리에 연안보전 잠제 조성, 100억원을 들여 서면 태하1리에 연안보전 잠제 조성 등 5개소에 423억4천400만원을 투자한다.△울진군 또한 124억1천만원을 들여 죽변면 봉평리에 연안보전을 위한 돌제, 잠제 조성을, 138억원을 들여 근남면 산포리에 연안보전 잠제 설치와 호안보수 조성을, 53억원을 들여 기성면 봉산리에 연안보전 잠제 조성, 53억원을 들여 기성면 망양리에 연안보전 잠제 설치를 한다.또 265억원을 들여 기성면과 평해읍 구산-월송리에 연안보전 잠제와 돌제 조성을, 30억원을 들여 원남면 오산리에 연안보전 순환양빈시스템 조성을, 100억원을 들여 원남면 덕신리에 연안보전 잠제와 돌제 조성, 167억원을 들여 평해읍 직산리에 연안보전 잠제와 돌제 조성, 250억원을 들여 후포면 금음리에 연안보전을 위한 호안보수와 잠제, 돌제 설치 등 9개소에 1천180억1천만원을 투자한다.인/터/뷰 - 김관용 경북지사에 듣는다환경친화 연안 조성해양문화 관광명품도시로 건설천혜의 자연경관을 보유한 울진군, 영덕군, 포항시, 경주시, 울릉군 등 동해안 5개 시군의 훼손된 해안을 정비 복원해 재해로부터 연안을 보호하고 환경친화적인 연안공간 조성으로 지역주민 생활안정을 도모하겠다.또 연안정비 사업을 통해 친환경 녹색도시 구현과 저탄소 녹색성장의 모범사례로 해양문화관광 명품도시를 건설하겠다.정체 수역의 수질을 개선하고 지역상권 회복과 도심 재생에 최선을 다해 관광객 1억 명 유치와 소득증대에도 만전을 기하겠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1-04-29

맛있고 향긋한 봄 산나물축제 울릉서 열려요

5월6~8일 나리분지 등서 다양한 행사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울릉도 신비의 약초, 산나물을 채취하고 직접 맛볼 수 있는 울릉도 산나물축제가 다음 달 6~8일까지 3일간 열린다. 대한민국 최고의 5월 봄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울릉도 산나물축제는 이색 체험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즐거움을 더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이번 축제는 북면 나리분지에서 개최하던 예년과 달리 공연행사 및 부대행사, 참여프로그램은 한마음회관 광장에서, 산나물 채취행사는 나리분지에서 각각 진행된다.특히 육지에서 이번 산나물 축제에 참가하는 관광객에 대해 4~6일까지 입도 객과 7~10일까지 출도객에 한해 (주)대아고속해운과 동해 해상관광 여객선을 이용할 경우 여객운임 20%의 할인혜택(울릉군 홈페이지 참가신청)이 주어진다.축제는 6일 첫날 울릉 한마음회관 본 무대에서 식전공연 및 개막식, 연예인초청 개막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화려한 막을 올린다. 개막 행사에서는 순수 울릉도 웰빙산나물인 미역취와 더덕, 삼나무, 취나물, 명이 나물 등을 넣어 500명이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특별 산채비빔밥을 만들어 시식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이어 쑥떡 만들기 체험행사와 안동 하회탈춤공연 등 각종 부대행사가 이어진다.둘째 날인 7일에는 무료로 관광버스를 이용해 나리분지 체험장으로 이동, 산나물채취 체험활동을 한다.또 울릉산악회 주관으로 울릉읍 내수전에서 북면 섬 목까지 4km 구간에서 울릉도 옛길 걷기 체험행사가 진행되며 도동리 농가를 방문 더덕 캐기 체험행사도 한다.본 무대에서는 산나물요리 경연대회, 쑥떡 만들이기 체험행사, 어린이 보물찾기, 울릉도, 독도 바로 알기 OX 퀴즈대회, 연예인 초청축하공연 및 노래자랑이 진행된다.8일 2차 나리분지 산나물 채취 체험과 해안선이 아름다운 행남 산책로 건강걷기 대회가 열린다.부대행사로 울릉도·독도 사진 전시, 울릉도 산채화분 전시, 먹을거리 장터, 생채 및 특산물상설판매장, 산나물요리 시식회, 울릉도·독도 링 걸기 민속놀이, 산채보자기 판매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한편 산나물 축제는 울릉도 산채의 우수성 홍보, 주민소득 증대, 도시 관광객들의 울릉도 웰빙 산나물 직거래와 관광 비수기 새로운 관광 창출 및 지역이미지 제고, 고향을 떠난 인사들의 고향 맛 체험하기 등의 일환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울릉군은 울릉도의 새로운 이미지 창출 및 군민화합과 애향심 고취, 산채판로 활성화 및 주민소득 증대기여 등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축제를 연출한다는 계획이다.울릉군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신비의 섬 산속에서 천혜의 자생 산나물을 직접 채취하는 즐거움과 웰빙 울릉도 산나물의 참맛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울릉/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11-04-29

울릉도 산나물축제 주요 행사

△개막식 개막식은 울릉도축제위원회가 주관하며 6일 오후 1시30분부터 울릉한마음회관 광장에서 진행된다. 공군부대 재즈 공연과 이벤트회사가 진행하는 울릉도 웰빙산나물 홍보 이벤트, 각설이 공연, 마술쇼, 인기가수 공연 등 다양한 연예인 초청 공연이 울릉 한마음회관 광장 특설 무대에서 펼쳐진다.△특별산채비빔밥 만들기특별산채비빔밥 만들기는 생활개선회 주관으로 6일 오후 3시30분 본 행사장에서 개최된다. 대형 통나무에 울릉도 산 미역취와 부지깽이, 고비, 삼나물 등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산나물을 이용, 한꺼번에 500인분을 만든다.1차 기관장 비비기와 2차 관광객 및 주민이 함께 비비기 등 특수제작 된 대형 통나무에 주민들과 관광객이 함께 비빔밥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쑥떡 만들기쑥떡 만들기는 울릉군 생활개선회가 주관하며 6일 오후 4시30분 한마음회관서 열린다. 햇 쑥을 재료로 전통 떡 만들기 체험공간을 조성, 어린이들에게 교육 효과를 높이고 군민들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켜 축제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울릉에서 자생하는 쑥을 재료로 떡판을 만들어 떡 매로 치는 것을 반복적으로 한다. 관광객과 주민들이 함께 떡매치기에 참여하며 떡이 완성되면 품평회를 거친 후 시식회를 한다.△산나물 요리 경연대회산나물 요리 경연대회는 7일 오후 1시 한마음회관 본 행사장에서 울릉군 여성단체협의회가 주관하며 울릉도의 특산물인 산나물을 이용한 산나물요리 실력을 겨룬다. 관광객 10개 팀과 기관단체 5개 팀이 참가해 산나물 요리경연을 펼치며 심사 후 상품으로 울릉도 오징어, 산나물, 호박엿이 제공된다.△노래자랑 장기자랑대회노래자랑 장기자랑대회는 울릉군축제위원회 주관으로 7일 오후 4시30분 본 행사장 본무대에서 개최된다. 노래자랑 장기자랑 산나물축제에 참가하는 관광객들에게 즐길 거리와 볼거리를 제공 주민과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신나는 놀이 한판을 펼친다.현장에서 30명의 참가 신청을 받아 진행된다. 1~3등까지 고급산채를 시상하고 참가자에게는 오징어 20축, 호박엿 30봉지, 산나물 30봉지 등 특산품이 제공된다.△건강걷기대회건강걷기대회는 7일~8일 오전 9시 울릉산악회 주관으로 진행된다. 웰빙산나물축제에 참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을 주제로 주민과 관광객이 참께 참여해 울릉도 예길을 걸으며 건강을 다진다.7일 오전에는 울릉읍 내수전 정상에서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바다를 조망하며 북면 석포리까지 4km의 울릉도 옛길 등산로를 걷는다.절벽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걸으며 울창한 숲과 발아래로 펼쳐진 청정 동해, 울릉도 유일한 유인도인 죽도와 두 번째로 큰 섬인 무인도 관음도 등 빼어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8일 오전에는 KBS 인기프로 1박2일 프로그램에 소개된 도동좌안 해안을 따라 개설된 산책로와 아름다운 도동등대 주변, 해안 절벽에 세워진 직벽 소라계단(높이 50m)과 바다와 절벽을 연결한 무지개 다리를 걷는다.△산나물채취 체험산나물채취 체험행사는 울릉농업협동조합 주관으로 7, 8일 이틀간 열린다. 오전 8시30분 울릉한마음회관에서 울릉축제위원회가 제공하는 무료 관광버스를 타고 나리분지 산나물체험장으로 이동해 직접 산나물을 채취한다. 울릉군홈페이지 참가신청 선착순 300명(관광객 우선 참여)에 한해 참가할 수 있으며 1인당 참가비는 1만원(중식제공)이고 1인당 1kg만 채취를 할 수 있다. 300명 미만일 경우는 현장에서 접수를 받으며 10명을 한 팀으로 구성한다.△더덕 캐기 체험더덕 캐기 체험은 울릉영농회 주관으로 울릉읍 도동리 지역 농가에서 개최해 무공해 울릉도 더덕을 홍보하고 주민소득 증대에 기여한다.방법은 참가비 1만원을 내고 지정된 농장에서 더덕(1kg)을 직접 캐 가질 수 있고 현장에서 구입도 가능하다.△기타 행사울릉군축제위원회 주관으로으로 7일 오후 4시 행사장 본 무대에서 울릉도 독도 OX퀴즈대회가 마련된다.또 천혜의 비경이 담긴 울릉도와 독도 풍경사진 30여점이 본행사장 특설무대 주변에 전시사진되고 울릉도 자생산나물 30여종의 화분전시회, 먹을거리 장터운영, 생채 건나물, 오징어 호박 엿 등 울릉도 특산품 판매 장터도 운영된다.울릉도 각종 산나물로 만든 전, 떡, 반찬류 등 산나물요리 시식회, 투호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 민속놀이 체험, 울릉도, 독도 링 던지기, 퍼즐 맞추기 행사도 특설무대 주변에서 진행된다.울릉/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11-04-29

⒁수운 최제우와 용담정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조선은 국운의 쇠잔과 제국주의의 침탈로 인해 서서히 어둠과 고통의 터널로 빠져들고 있었다. 밖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 본격화되어 감에 따라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가 붕괴되고, 잦은 `서양 오랑캐`(洋夷)의 위협에 두려움은 높아만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척의 세도정치와 지배계층의 권력 다툼은 정점으로 치달았고, 삼정의 문란과 이를 틈탄 벼슬아치들의 탐학, 잇단 기근과 질병의 창궐은 백성들을 깊은 도탄의 수렁으로 빠뜨렸다. 1811년 홍경래의 난 이래 끊이지 않던 민중봉기가 1862년에 이르러 진주민란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이러한 불안과 고통에 따른 몸부림이었다.시대 도처에 넘쳐나는 고통과 모순은 경주 현곡 출생의 민감한 영혼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를 불러냈다. 6대조 이래 벼슬을 내지 못한 채 기울어져 가던 경주 양반가의 서자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벼슬에 뜻을 두었지만 학문에 몰두하지 못해 여의치 못했고, 변변한 경제적 기반도 없었다. 기울어져 가던 가세는 당시 나라의 형편을 닮아있었고, 그의 불우함과 고뇌는 당대 백성들의 고통과 둘이 아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호구지책으로 나선 떠돌이 장사꾼 생활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수많은 민초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고,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눈뜨게 했다. 이로써 그는 개인적 차원의 아픔을 넘어서 시대를 앓게 된 것이다.그러한 과정에서 그가 얻은 결론은 혼란한 사회와 불안과 공포로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을 구하는 길은 하늘의 뜻[天命]`을 깨닫고 따르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천명을 찾아가는 구도의 걸음은 1856년 울산 처가살이 시절부터 1859년 10월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고향 구미산 용담정에서의 수도로 이어졌다. 그리고 하늘의 뜻을 찾아 받들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은 결국 1860년 4월 5일의 절대적인 종교체험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늘에 정성을 드리던 중 갑자기 몸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하늘의 소리를 듣는 신비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체험은 세상을 구할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으로 이어졌고, 이후 1년에 걸쳐 그것은 말과 행동으로 모습을 이루게 된다. 동학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동학의 포교에 수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오고 동학이 점차 세력을 형성해 가자 정부와 지방의 유림 등 보수 기득권 세력들의 견제와 탄압이 찾아왔다. 그들이 보기에 동학은 본질상 서학과 동일하며 유학의 가르침을 어지럽히는 이단이었던 것이다. 이에 최제우는 1861년 호남지역으로 피신했다 다음해 다시 경주로 돌아왔는데, 이 시기 동안`논학문(學文)`·`안심가(安心歌)`·`교훈가(敎訓歌)`·`도수사(道修詞)` 등을 지어 동학의 교리를 체계화한다. 이후 최제우는 1860년의 깨달음 이래 채 4년이 안 되어 체포되어, 이듬해 3월 대구감영에서 `사특한 가르침으로 올바른 도리를 해쳤다`(邪道正)는 죄목으로 41세의 나이로 참형에 처해진다.`동학`은 동쪽의 진리라는 의미이다. 동학이라고 이름한 것은 서양 제국주의를 지탱하는 정신적 토대인 서학에 맞서는 동쪽, 곧 이 땅의 진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깨달은 진리를 담은 4편의 한문체 논설과 9편의 한글가사는 사후 해월 최시형에 의해 동학의 기본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로 편찬되어 세상에 나왔다.동학 경전은 수운 최제우라는 한 영혼이 시대의 어둠과 고통을 깨치려는 간절한 염원으로 품어낸 사유의 산물이다. 그것은 모순의 현실에 대한 극복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혁적이다. 그런데, 현실을 넘어서는 변혁의 가르침이라 해도 현재의 말과 생각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최제우의 동학은 고립적이거나 평지돌출의 사상이 아니라 그가 접했던 다양한 사상들의 창조적 절충이고 변용(正)의 산물이다. 즉, 그는 유·불·선과 기타 민간신앙 등 전통사상의 계승과 창조를 통해 변혁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전통사상 중에서도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유학, 곧 주자학이다. 그런데 당시 주자학은 비록 영향력을 상실해 가는 과정에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배사상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최제우 자신 역시 양반 집안에 나고 자랐기 때문에 주자학적인 사유형식에 훈습되어 있었다. 따라서 동학의 가르침은 많은 부분에서 주자학적 사유에 뿌리를 둔 논리 형식이나 개념과 명제를 매개로 해 전달되었다.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동학이 전통사상인 유학의 지향이나 사유방식을 적지 않게 공유하고 있다면, 동학의 이론적 창조성과 실천적 혁신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유학자들과 달리 동학 창도자 최제우가 당시 민중들의 고통과 시대의 어둠에 대해 관조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아픔으로 삼아 대면하고 타개하려 했기 때문이다.시대의 고통과 어둠은 더 이상 `누천년에 운이 다한` 유학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현실은 한가한 이론적 분석이 아니라 시대의 고통과 어둠에 맞서고 행동하는 결단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동학은 유학에 의거하되 유학을 넘어서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므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서`에 대적하는 `동`의 진리, 옛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르침, 모순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변혁의 의지를 담고 있다.우리 사상사를 돌아볼 때 동학은 이 땅에서 거둔 창조적인 사상의 목록에 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취 중의 하나이다. 동학에서 우리는 유학이 기획하고 지향했지만 현실적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상의 궁극적 실현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동학은 유학이 봉건사회의 현실적 한계로 인해 이론적 천명이나 불완전한 구현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인간존중과 만인평등 사상을 실현해 낸 것이다. 그것은 최제우라는 시대적 아픔에 동참한 인물의 강렬한 열망과 사상적 반추를 통해 유학을 넘어서는 사상적 개벽과 시대의 어둠을 깨치는 실천적 개벽을 이루어내었기에 가능했다.우리가 동학을 주목하는 것은 그 속에서 자유, 평등, 인권 등 근대적 이념의 자생적 원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학은 부자유스럽고 차별과 부조리한 억압이 넘쳐나는 현실에 맞서 사람은 하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의 인간관을 천명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절대적 자유의 존재이고 평등하고 고귀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동학은 중세의 어둠을 깨치고 왕조의 끝자락에 팽배한 불안을 넘어서서 근대를 향한 빛과 희망을 주었으며 시대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박경환(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2011-04-29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현판 `聖化門` 눈길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구미산(龜尾山) 자락에 있는 용담정(龍潭亭)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도를 얻어 가르침을 펼친 천도교의 발상지다. 용담정은 대신사가 1864년 이단으로 몰려 참형당한 후 폐허로 남아 있다 1914년 복구됐다.성지 입구에 이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는 `성화문`(聖化門)의 친필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과 겨울 각각 한달씩 일반인 단체에게 개방되는 수도원에는 연간 500여명 안팎이 수련을 위해 찾는다.용담정 아래 용담수도원을 세우고 주변 일대를 공원처럼 단장했다.주차장에서 바로 정문인 포덕문(布德門)이 보인다. `포덕`은 한울님의 덕을 세상에 편다는 뜻. 문짝은 없이 네 개의 석주를 일직선상에 세우고 그 사이사이에 기와지붕을 얹었다. 출입구를 세 칸으로 나눈 뜻은 천도교 세 가지 기본 교리를 상징하겠다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사람을 한울님같이 섬기자`는 사인여천(事人如天), `모든 사람이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이다.포덕문을 들어서 300m쯤 숲길을 오르면 오른편에 용담수도원이 보인다.정면 3칸, 측면 8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평범한 전통 한옥 양식이지만 콘크리트 건물이다.수도원 외벽이 모두 백색이다. 이는 한울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안정과 평화를 나타내는 한울님의 정적인 마음이다.다시 100m쯤 오르면 성화문(聖化門)이 나온다. 성스러운 공간으로 진입하는 문이다. 전통 한옥의 목조 3칸 대문인데, 가운데 문짝에 궁을(弓乙)의 문양이 선명하다. 궁을은 수운 대신사가 한울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영부(靈符)를 형상화한 것이다. 마음 `心`자를 표현한 것인데, 모양이 태극(太極) 같기도 하고 활 `궁(弓)` 자를 나란히 놓은 것 같기도 하다.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문득 길이 10여m의 평범한 석조 다리 용담교가 나타난다. 그 너머에 용담정이 있다.정면 5칸 측면 3칸의 아담한 크기로 용담정은 있다. 별 특징 없는 기와지붕의 전통 목조 한옥.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에 대신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영정 양 옆에는 궁을 영부가 또한 모셔져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4-29

또 하나의 석굴암, 보안암(普安庵)

시집간 딸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문화재 보존과 원형 복구 기술 개발을 위해 건축환경학적 측면에서 연구를 해오던 필자였다. 토함산 석굴암 석굴의 원형 복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와 가장 유사한 또 다른 석굴을 찾아 석굴의 실내 환경 측정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했었다. 우리나라의 석굴 수는 대략 180여개가 된다. 그 중 토함산 석굴과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해 찾은 곳이 경남 사천시 천왕산 해발 570m 동쪽 기슭에 위치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 `다솔사 보안암석굴`이었다. 판석(板石)을 이용해서 만든 이 석굴은 보는 순간 모든 조건이 토함산 석굴 원형복구에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토함산 석굴암의 석굴은 정상 동쪽 바로 아래 경사면에 작은 평지를 조성하고 그 곳에 대좌(臺座)를 놓고 결가부좌한 본존불을 봉안한 후 그 좌우에 팔부중과 인왕상 그리고 사천왕상을 배치했다. 다시 그 위에 커다란 판석(板石)을 가구(架構)하여 전방후원(前方後圓)의 석조건축으로 본존불 상부를 궁륭형 돔(Dome)식으로 구축한 축조굴이다. 1913년부터 1915년 사이 일본인에 의해 1차 훼손된 석굴암은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끝내 원형복구에는 실패했다. 단지 석굴 내 습윤을 방지하고 이끼가 끼지 않도록 공기조화설비를 갖춘 지금의 석굴 구조로 변모시켜 놓았을 뿐이다.석굴사원이란 한 마디로 바위를 뚫어 만든 사원을 말한다. 그런데 토함산의 석굴은 인도나 중국의 석굴사원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암질(岩質)이 다르다. 인도나 중국은 사암(沙岩)이거나 흑대리석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뚫기가 매우 어려운 화강암이다. 결국 개착석굴(開鑿石窟)이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실이 경사지를 `ㄴ`자형으로 고르고 축대를 쌓아 평지를 만든 다음 그 곳에 특이한 형식의 석굴을 조성한 것이다.토함산 석굴암과 유사한 석굴을 찾긴 했지만 난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암자에는 비구니 스님 두 분이 계셨는데 석굴에서는 참배 외에는 다른 어떤 행위도 일체 금한다는 것이었다. 석굴 실내 환경 자료 수집을 위해서는 온열환경 측정은 기본이고 촬영도 해야 하는데 실로 암담한 노릇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스님께 고3 딸의 수험을 핑계로 천배를 올리겠다하고 부인이 2시간여 기도하는 동안 실내온열환경을 숨죽여가며 측정하여 데이터를 손에 넣고 부리나케 하산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찍은 사진이 모두 반씩만 현상된 게 아닌가. 황당했다. 다시 찍으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때 고3이던 딸은 그 후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고 10년 후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지만 토함산 석굴암 석굴 원형 복구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영남이공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2011-04-28

우리의 위대한 전통문화 단단히 지키자

“한단의 걸음걸이” 곧 자기 분수를 잊고 무턱대고 남을 흉내내는 일을 빛댄 말이다. `장자`, `추수(秋水)`편에서 유래한다.옛날 연나라의 서울인 수릉에 한 젊은이가 살았다. 연나라는 작은 나라였다. 그젊은이는 보잘것없는 작은나라에 살고있는 처지를 한탄하며 큰 나라인 조나라를 동경했다.어느날 그는 드디어 조나라의 서울인 한단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보니 수릉 사람들의 걸음걸이와는 무척 달랐다. 젊은이는 열심히 한단 사람들의 걷는 모양을 배웠다. 그러나 한단의 걸음걸이를 다 배우기도 전에 그만 옛날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걷는 법을 아예다 잊은 그는 겨우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이 이야기는 `장자`, `추수`편에, 궤변론자인 공손룡과 위나라공자 위모의 대화에서 나온다.공손룡이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자. 위모가 우물 안 개구리는 밖의 세상을 알수 없고. 수릉의 젊은이는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울 수없다고 하면서 비웃는 대목에서 나오는 얘기이다.거리에 나가보자. 아니. 나갈 것도 없이 잡지나 텔레비전 화면을 들여다보자. 무수히 많은 수릉의 젊은이들이 있다.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모를 정도로 외모들이 많이 변했고. 문화가 변했다.이미 문화면에서 국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세계화시대에 살면서 외국 것을 모방하지 말라고 외쳐도 그것은 이미 설득력을 잃는다 문화는 지역과 시간의 편차 없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네것 내것 가리지 않고 골고루 여러 문화를 접할 수 있고 습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또 자기 문화만을 고집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를 열린 시각에서 바라볼수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문제는 `줏대`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내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내 것 가운데 탁월한 점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남의 것만 흉내 내는 것이 문제이다.자기 줏대도 없이 유행만 따른다면 그것은 그저 소비적인 모방에 불과하다.오천년 동안이나 집적된 좋은 우리 것들을 돌보지 않고 그저 새로 들어온 남의 것만 따라다닌다면 우리는 영혼의 한 갈래를 잃는 것이나 같다. 흉내내다 보면 그문화의 영혼만 종속되어 버리고 마는것이다. 그래서 문화 패권주의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것은 소중한것이다. 위대한 전통문화 이제부터 단단히 지키자./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4-27

희극과 비극사이 `無言의 이미지` 몽타주화

누구나 순간의 찰라에서 만질 순 없지만 감지할 수는 있었던 그 불편한 무엇이 있을 것이다.나는 유독 이상하게도 그 불편한 무엇이 무언으로도 형용될 수 없을 때면 날카롭게 팽창되어가는 답답함에 알 수 없는 묘한 감질 맛을 느꼈다.그런데 작업이란 그랬다.나의 기만일지도 모르는 이 방식들이 영원한 비밀일 수도 혹은 자위적인 감동의 봇물처럼 쉽사리 터질 수도 있을법한 그것들을 유연하게 의식하게하고 자각하게 만들었다.내가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사사로움 앞에 억지식의 눈돌림으로 감추었던 누구에게나 필연적이고 개연성있는 무언들의 비겁하고 어리석은 순간들의 `화`나 `회의심`의 배설물들을 달콤한 해악적인 시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그리고 여기서 나타나는 모순된 불순물들의 희극과 비극사이에서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이 주제를 현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때론 치졸한 방법으로 때로는 애매모한 위트 섞인 농담마냥 넌지시 던져주고자 하였으며 실천 없는 발언과 행동으로 무모한 소비를 낳게 하는 모든이의 철학에 잠시나마 드라마틱한 순간적인 동요로 결코 쉽게 웃어 넘길 수 없는 기묘하고 불편한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즉, 일종의 반어적인 표현방법으로 왜곡,변형시켜 탈바꿈하여 발상은 시인의 것과 비슷하지만 머릿속의 질서없이 뒤엉킨 하나하나 생각들을 조합하여 언어로 포착할 수없는 무언의 이미지들을 몽타주화시켜 시각적 언어의 행위를 슬며시 들어내어 아이러니한 수수께끼를 던져주고자 하는 것이다.♠ 서양화가 김종희-2011 수성아트피아 뉴프론티어 - `한계`개인전-2010 스페이스 가창 129 - 신진작가 발굴 프로젝트-2010 저탄장 프로젝트 ` 폐허의 감성 `-2010 종로 `주민과 함께 DESIGN하는 살고 싶은 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2010 작은공간이소 - 젊은실천 프로젝트 그룹전-2010 space9 - `NEON GORE` 퍼포먼스-2008 계명대 서양화과 졸업

2011-04-27

사물과의 상응으로 피어난 무늬들

이하석 시인의 제9시집 `상응`은 좀 특별나다. 아담한 크기의 시집 판형과 거기에 수록된 시편도 고작 32편이어서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기다란 시나 산문시가 60편을 넘어 70편에 가까운 일반적인 시집들과는 비교가 된다. 부피가 작고 수록된 편수도 적지만 그의 시들이 내장하고 있는 의미는 자못 깊고도 크다. 그 가운데 `청도 냇가에서 대 무늬진 돌을 주워 동풍`이라 이름 짓고`라는 좀 길고 독특한 제목의 시 한 편을 읽어본다. “속속들이 두근대는 동부새에, 상기 성깔 남은 소소리바람에, 짐짓 명랑한 듯 퍼덕이는 동풍에 휘는-꼿꼿하게 휘는-겨울, 대나무들. 누워서도 안간힘으로 버티면서 마디마디 곧게 설레는, 동부새에 소소리바람에 동풍에 눕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마디마디 한 마디로 일어나는 대나무들의 푸른 물음들. 봄으로 쓸리는, 서걱대는, 헛될 수 없는 말의 카랑카랑한 잎사귀들. 동부새를 소소리바람을 동풍을 안으려 흰 겨울 비탈에 서는 이가 그렇게 온몸 흔들리며 안간힘 하며 휘젓는 칼날의 춤. 마구, 또 기어이 일어나 제 온몸의 빗자루로 서서 성긴 적멸의 어둠을 쓴다.”사물과 사람 그리고 시간의 상응(相應)으로 빚어진 삶의 비의가 깊이 새겨진 작품이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지만, 사랑의 말은 여전히 동튼다고 쓴다.”라는 시인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이종암(시인)

2011-04-27

지역 전통도가 `청슬도가` 웰빙막걸리 `옹해야` 출시

우리 전통주 `막걸리`가 최근 항암물질 성분 발견으로 또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1ℓ당 파네졸 함량이 0.15~0.5㎎으로 포도주와 맥주(0.015~0.02㎎)의 무려 10~25배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막걸리가 제2의 도약기를 맞았다.이런 가운데 최근 젊음과 열정으로 뭉친 30대들이 50~60대 장노년층이 주를 이룬 지역 막걸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어 눈길을 끌고 있다.■30대 젊음과 열정 녹아든 `청슬도가`포항에서도 특히 청정지역으로 소문난 북구 기북면 관천리에 최근 전통도가가 문을 열었다.맑을 청(淸), 큰 거문고 슬(瑟), `맑은 소리를 내는 큰 거문고`라는 뜻의 `(주)청슬도가`다.막걸리 열풍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청슬도가는 독특하고 깊은 술맛과 인적구성, 이 두 가지를 승부로 내걸었다.술 맛은 양조장이 청정지역에 위치해 있고 우리쌀을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하지만 무엇보다 청슬도가의 가장 큰 경쟁력은 30대의 파워다.청슬도가는 대표와 연구를 맡은 한정길(39)씨와 기획·홍보의 정광욱(36)씨, 판매·자금관리의 김정배(33)씨, 세 명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사업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이들은 포항 철강공단 한 회사의 직장동료였다.중국, 멕시코, 베트남 등 각각 다른 해외팀에서 근무하다보니 얼굴을 보며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그러다 귀국 후 오랜만에 함께 경주 남산산행을 간 어느 날, 칼국수 집에서 마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청슬도가 탄생의 계기가 됐다.막걸리와 함께 허심탄회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막걸리 사업을 해 보면 어떻겠냐는 농담 섞인 진담이 나왔다. 그 당시만 해도 막걸리의 대중성이 낮아 당장 적극적으로 실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회사를 정리하고 전세자금과 대출 등 각자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으기 시작하면서 사업은 구제화됐다.양조 경험이 전혀 없었던 탓에 술 만드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포항 뿐 아니라 경주, 부산, 대구, 전주 등 전국의 유명한 양조장은 모조리 쫓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양조장이 영세하고 고령자가 운영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고 더 큰 자신감을 얻었다.몇 달 동안 눈으로, 귀로 습득한 양조 상식은 포항에서 유일하게 전통주 교육을 실시하는 청목 전통주 연구소를 접하면서 체계화됐다.그러나 도가를 본격적으로 건립하면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자금을 모으기는 했지만 땅을 사고 공장을 짓는 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렇다고 매출실적이 있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중기청에서 창업자금을 지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몇 번의 수정 보완 작업 끝에 자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난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통주 교육을 통해 술 만드는 방법은 배웠지만 대량으로 만드는 기술은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술 맛이 일정하지 않아 원인을 찾아야 했지만 노하우가 부족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수 십 번, 반복하고 반복한 끝에 만족할 만한 양조기술을 찾았고 최근 첫 작품 `옹해야`를 출시했다.■105m 천연암반수 웰빙막걸리 `옹해야``옹해야`는 천연암반수에 솔잎을 첨가한 웰빙막걸리다.주요 공략층은 20~40대 젊은 입맛이지만 입국방식과 누룩을 활용한 전통 제조방식을 모두 적용해 사실상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옹해야의 가장 큰 특징은 물이다.현재 유통되는 막걸리 상당수가 수돗물을 사용해 간혹 화학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지만 옹해야는 기북지역의 105m 천연암반수를 사용해 이 같은 단점을 보완했다. 특히 올 초 실시한 수질 검사에서 옹해야에 사용되는 지하수가 음용수로 판정받아 품질 우수성을 드높이고 있다.생산방식도 눈에 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막걸리의 90% 이상은 일본식 방식인 입국 제조방식을 사용한다. 입국은 일정한 맛을 유지하고 생산성이 좋지만 깊고 풍부한 맛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반면 누룩을 사용하는 전통방식은 깊고 풍부한 맛이 좋지만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어렵고 생산성이 낮다.청슬도가는 이 두 방식의 장점만을 골라 새로운 제조방식을 개발, 옹해야를 출시했다.마지막 특징은 솔잎을 첨가했다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솔잎을 술에 첨가할 경우 솔잎 자체를 첨가해 향만 내고 솔잎은 버리게 된다. 그러나 옹해야는 솔잎을 말려 분말로 만든 후 술 재료와 함께 발효시켜 첨가해 솔잎 효능을 100% 살렸다.이 같은 특징으로 옹해야는 올 초 건립된 위덕대학교 막걸리 연구소가 외식 산업학부 학생 23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블라인드 테스트에 두 개 제품을 출시, 타사 유명제품(4개)들을 모두 제치고 두 제품 모두 1·2위를 차지했다.청슬도가는 옹해야에 이어 올 연말 프리미엄 막걸리를 출시하기로 하고 현재 대구대학교 생명공학과 강선철 교수와 포항테크노파크 바이오센터와 공동으로 개발 중이다. 또 내년 후반기에는 기북지역의 청정 사과를 이용한 청주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 같은 꾸준한 제품 개발을 통해 청슬도가는 단순한 막걸리업체에서 벗어나 종합주류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계획 중이다.한정길 대표는 “옹해야는 100%지하수를 활용한 웰빙막걸리다. 특히 우리 청슬도가는 품질보증을 위해 지역에서 운영 중인 다른 업체와 달리 생산과 유통, 홍보를 직접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며 제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최승희기자 shchoi@kbmaeil.com

2011-04-25

경북 해양문화 속 人·生·길 <8> 저 바다에 고래가 살았다 ③

80년대 중반부터 고깃배는 사라지고새로 허가받을 날 기다리다 세월만… 그 당시만 해도 뱃사람들 하는 일에는 일본 사람들 풍습이 쪼매씩 남아 있았다. 그네들이 이래 보믄 말이지. 무신 날만 되므는 찹쌀모찌 그거를 마이 맨들았그든. 집을 새로 지우든지 배로 새로 하믄 큰 다라이로 한 가득 모찌를 맹글어가 속에다가 돈으로 옇는기라. 떡마다 다 옇는기 아이고 드문드문 옇지. 그래가 다라이로 이고는 젤로 높은 데로 올라가가 이래저래 막 떤지는기라. 이짝으로 내삘고 저짝으로 내삘고. 그라믄 돈 든 모찌로 주워야 재수로 좋타꼬 마캐 몰리 가그든. 묵을 기 읎??시절이니 가릴 기 뭐이 있겄노,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지. 와 떡을 떤지고 했나 인자 가마이 생각해 보믄 그기로 주울라카믄 수그리야 안되나. 배도 글코 집도 글코 그 앞에서 수그리믄 절로 하는택이 아이가. 우리 배들도 그기를 쪼매썩 따라하곤 했다. 그라지만 인자는 누가 그란 거로 하나? 전번에 우리 사우도 배 새로 한다 캐서 포항 가 봤드이 그마이 쓸데읎??짓으로 안하데. 배에서 이래 내려오는 나무를 하나 놔놓고 거다가 음식을 잔뜩 채리더라고. 채리가지고는 마 여럿이 모여가 묵고, 다 묵고 난 뒤에는 배에서 내리놓구 말드라. “살아 생전에 다부 고래잡을 날 있을라는가”“기적 울리는 고깃배 기다릴 날 있을라는가”가마보자. 내가 고랫배로 73년도에 시작해가 85년도에 마쳤으이 어불더불 십이 년이나 한기라. 그때 전국에 고랫배가 스물 한척인데 스무 척이 경남이고 한 척이 경북인데 그기 우리 배 용운호였는기라. 하마 내 나이 팔십 둘이니 손 놓고도 20년이 훌쩍 지났구마. 그때는 이 나라 저 나라 고래잡는 나라끼리 조합맨키로 계가 있았는데 영국 아주머이가 대장이라. 85년도에 그 아주머이가 말하기를 딱 5년만 잡지말자 캤지. 그 이유가 말이다. 이래 잡아 들루다보믄 씨알이 다 말라뿐다, 그라이 쪼매 쉬었다가 다부 잡자 그 말이었재. 그라이 5년 후에는 허가를 다부 해가주고 고래를 잡는다 캤는기라.그 당사 우리 촌놈들이 중앙청에 참 마이 올라갔데이. 가이 첫 먼저로 느그가 그간 잡은 맨큼 뭐이든 허가로 바꿔 주끄나 하데. 그래 다부 울산에 내리가이 돈 있는 놈으는 트롤선 할라 이라고 우리 같이 돈 읎??놈들은 우짜든동 배로 지대로 값을 쳐가 팔라 카고 지각각 원하는 기 달랐는기라. 와 그렇노 하믄 죽변부터 저 속초꺼정 스물 한척이나 트롤선으로 허가를 내줘뿌믄 우리는 마캐다 앤 죽나. 그래 마 막 데모를 해가 트롤선 허가로 막았지. 그라이 이번에는 지각끔이라. 콜프장 허가 받는 놈, 택시 허가 받는 놈, 지 원대로 받드라. 우리는 뭐나 규모도 약하지럴 돈도 읎지?? 돈 있는 놈이사 즈들 뜻대로 하지마는 읎??놈들은 이도 저도 숩지 않은 기라. 그래 스물한 척에 세 척일랑 고래가 올개는 어데로 가고 오는지 살피는 수용선으로 하고 열여덟 척만 허가를 바꾸차 이래 됐다. 한 사람이 두 척 세척 가진 경우에는 이나저나 뭐이 아숩겠노.내는 아무것도 바꾸치 않고 고래를 앤잡아도 고랫배 허가를 가주 있겠다 한기라. 그라지만 그게 어데 쉽나. 바다에 나가 고래로 잡으므는 괘않지만 월급있재, 또 묵여야 되재, 행여 고래 잡아 들루나 감시하는 영국사람 따라 댕기는데 그눔 월급꺼정 줘야되재. 그라고 또 돌아 댕기는 장소 죄다 적아가 영국에 마캐 보고꺼정 해야 하는 기라. 속시끄럽기가 이만저만이 아이지. 그래 마 이래저래 5년이 지나이 이기 뭐 아무 소식도 읎는??우야노. 치아뿌리야재.대구 동청에 가믄 서류가 한 짐이라. 5년 후에 다부 한다고 말해놨으이 고랫배 안하는 사람도 서류를 여가 앤글나. 고랫배 타던 선원들도 옇고, 오징어배 타던 선원들도 옇고 마캐다 고랫배 할라 캤다. 내는 솔직한 말로 그때는 마 하믄 하고 말믄 말고 했지. 해상업이 어데 좋은 일만 있나 바람만 불어도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오는 긴데.그란데 또 몇 년 지나 중간에 뭐시라 고랫배 우짜고 저짜고 말이 있는 기라. 그래 내 생각했지. 고랫배가 스물한 척에 세 척이 지금도 있으이 나무지 열여덟 개를 다부 허가로 주믄 우얄까? 하지만도 세 척을 줄똥 열 척을 줄똥 모르지. 대통령이 빽이 있다고 마음대로 하나, 경상도에 고랫배 죄다 주믄 전라도는 농사만 짓나. 전라도도 배하고 싶은 사람 있다는 말이지. 형님요, 내 좀 허가 주소 하믄 앤 줄 수도 읎?? 그렇다고 빽으로 주나. 빽으로 주믄 대가리 싸움나지. 그라믄 예전에 고랫배하던 사람들로 우선 시킬랑가? 그라믄 뭐하노. 생각하나마나 을매 안가가 쏘옥 드가뿌고 말드만, 요순간에 고랫배가 또 들썩들썩 하는 기라. 인자 포항방송국에서 고래가 이만치 있는데 잡아가 일본에 수출로 하믄 몇십 억썩 벌어가 올 낀데 이기 와 안하고 이라노 하매 앞으로 고랫배 허가를 내 줄라카믄 전에 경험 있는 사람으로 줄라꼬 했단 말이다.그때 우리 큰 아들이 그라데. 아부지요. 고랫배하던 사람들이 다 살았나카믄 몇 키 안 남고 다 죽았어요. 지가 아부지 뭐시 해가 될똥 앤 될똥 그거는 모르지마는요 한 분 해볼끼요. 그래 마 니 맘대로 해봐라 했더이만 차로 타고 울산으로 부산으로 어데로 앤댕긴데가 읎드?? 언젠가 서울서 대학 선생들이 낼로 찾아와서는 이래저래 묻고해가 내 잡은 나가수 고래 사진도 우예 알아가꼬 책에 얹아 놨드란 말이지. 근데 이 사람들이 보이 몇 년도에 어느 배가 몇 마리 잡고, 어느 배가 몇 마리 잡았는지 싹 다 기록해 놓은 기라. 그래 우리 아들이 그기를 가주고 참작을 해가 용운호가 언제 어느 놈 몇 마리, 흥안호가 언제 어느 놈 몇 마리, 이래 서류로 꿰매가 올리 놓기는 했다. 마 안되믄 고만이고 올리나 보자고 올리는 놨다마는 앤즉까지 소식 한 장이 읎?? 모리겠다. 살아생전에 다부 고랫배 몰고 나가 고래 잡을 날 있을라는가. 항구다방에 앉아 저거 바다로 보믄서 빽빽 기적 울며 들아오는 배 기다릴 날 있을라는가.

2011-04-25

6·25전쟁 후 이중섭 자신과 조카, 그리고 대구시민 그려

천재화가 이중섭은 가장 한국적인 작가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화가다.소와 어린이의 모습을 주된 테마로 작품활동을 한 이중섭이 대구에서 유일하게 남긴 대구지역 관련 그림이 있다. `동촌 유원지` 가 바로 그것.6·25전쟁 당시 대구로 피란을 내려온 이중섭은 예술인들이 모여 있던 중구 향촌동에서 여러 예술가와 교류를 하면서 궁핍한 생활 덕분에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는 등의 활동을 해왔지만 정작 대구와 인연이 있는 그림은 거의 그리지 않았다.6·25전쟁이 끝난 후 평화로운 일상이 되면서 이중섭 화가는 조카 영진과 모처럼 당시 대구시민의 휴식처였던 동촌 유원지를 찾았다.조카인 영진은 당시 군인이었고 모처럼 휴가를 나와 작은 아버지인 이중섭 화가와 나들이를 했던 것이 동촌유원지 그림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이중섭의 동촌유원지에도 전쟁이 끝나고 나서 평화롭게 물놀이를 즐기는 대구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 이곳을 대구시민들이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가 있을 정도다.동촌유원지 그림을 자세히 보면 특이하게 그림의 오른쪽 아래의 두 남자가 등장하고 있다. 바로 화가 이중섭 자신과 조카 영진의 모습이다.전쟁이 끝나고 나서 오는 여유로움에 이중섭은 특유의 자신의 모습과 함께 조카 영진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냈다. 그림에서도 이중섭 화가는 기분 좋은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고 정겹게 조카의 손을 잡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한때를 엿보게 한다.화폭의 화면을 뒤덮은 푸른색의 커다란 물방울들은 동촌유원지에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표현한 것으로 미술 전문가들은 알려주고 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4-25

대구 재발견- 동촌유원지

내년 6월 유람선 떠다니고 카누·조정 등 다양한 레저활동 가능오감체험형 공간으로 관e´?객 유치·지역경제 활성화 도움 기대 금호강변에 위치한 145만4천500여㎡(44만평)규모의 동촌유원지는 오래전부터 대구시민들의 휴식처와 위락시설로 사랑받아 왔다.교통이 편리해 금호강을 끼고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꽃을 배경으로 그네뛰기를 즐겼고 여름에는 수영과 오리배 놀이, 가을에는 밤 줍기 등이 이어지는 대구시민이 즐겨찾는 유원지다.또 각종 위락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도로가 놓여져 있고 수량이 풍부한 금호강에 조교가 가설돼 있으며 우아한 아양교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다.동촌유원지에는 구름다리, 유선장, 체육시설, 유기장 및 상가 60여 곳 등 각종 위락시설, 파고라, 식수대, 벤치, 영남 제1관, 자전거 경기장, 실내 롤러 스케이트장, 야외수영장, 골프장 등 다양한 즐길 거리와 놀거리가 있다.내년 6월 유람선 떠다니고 카누·조정 등 다양한 레저활동 가능오감체험형 공간으로 관광객 유치·지역경제 활성화 도움 기대■대구시민들의 휴식처로 리턴 중한때 금호강이 심하게 오염되면서 동촌유원지에 대한 대구시민의 사랑이 멀어졌지만 지난해 전국평생학습축제가 열릴 정도로 최근에는 대구시민들이 몰리는 휴식처로 되돌아오고 있다.그동안 동촌유원지를 살리려는 각계의 노력과 함께 대구시가 40년 이상 노후된 동촌유원지 일대를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핵심 프로젝트인 금호강 생태하천 조성사업에 포함시켜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도 대구시민의 사랑이 돌아온 원인 중 하나다.금호강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국토해양부에서 실시설계가 완료돼 대구시가 사업시행을 전면 위탁받아 전 구간에 대한 공사에 착수했으며 오는 8월에 개최되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전까지 모든 공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4월1일 현재 금호강 생태하천 조성공사는 총 공정의 38% 공정률을 보이고 있고 오는 5월 동촌보, 무태보 완료 및 오는 6월 동촌보도교 및 하도 준설 완료, 오는 7월 주요구간 자전거도로 및 산책로 완료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2012년 6월이면 모든 공사가 끝난다.■수준 높은 생태공원 변모이 사업에는 모두 2천594억원(공사비 1천825억원, 보상비769억원)이 투입돼 금호강 41.4km 전 구간에 걸쳐 하천 고유의 이·치수 기능 강화와 생태환경 개선, 수변 친수공간 조성 등으로 꾸며지게 된다.세부적으로는 수질 개선과 홍수 예방을 위해 낙동강 합류부에서 화랑교까지 30㎞ 구간의 하상 퇴적물을 준설해 기존 콘크리트 보인 무태보와 동촌보를 공기압식 고무보로 대체하고 가창댐보다 많은 1천100만㎥의 수량을 확보할 계획이다.이렇게 되면 충분한 수량과 수준 높은 수변경관을 자연스럽게 확보, 최소 수심 1.8m 이상을 유지하면서 유람선이나 수상스키, 카누, 조정 등 다양한 수상레저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도 변모하게 된다.특히 시민들이 친근하게 이용하는 하천으로 만들기 위해 4개의 가동보를 신설 또는 개량하고 금호강 19개소를 특색 있는 테마별 친수공간으로 조성한다.이재만 동구청장은 “동촌생태공원 조성으로 금호강 동촌유원지내 경관보도로와 실개천, 자전거도로 및 산책로, 접안시설, 중앙광장, 야생초화원, 포켓쉼터 등 경관성과 환경보전을 최대한 반영한 수변자원의 활용하겠다”면서 “오감체험형 체험공간 조성해 관광객 유치 및 지역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대구의 한강동촌유원지 일대는 6만5천㎡의 수변공간을 하천생태원을 비롯한 다목적 놀이마당, 수변무대, 접안시설, 생태수로 등으로 꾸며진 품격 높은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아울러 동촌유원지를 방문하는 시민들이 한번쯤은 찾는 동촌구름다리가 노후돼 대체할 새 다리가 가설된다.효목동과 방촌동을 연결하는 경관보도교를 자전거와 보행자가 함께 통행할 수 있도록 신설, 새롭게 태어나는 금호강의 상징적 랜드마크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또 금호강 에코트레일을 조성해 낙동강과 연결하면서 안심지구 등 18개소에는 지구별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 마라톤 코스 등으로 꾸며져 대구의 한강이상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동구청은 대구시의 이같은 사업에 발맞춰 동구 동촌유원지 일대를 자전거 명소가 될 수 있도록 꾸미고 있다.동촌유원지 인근 지하철역에 `자전거 주차장`을 만들고 경주 보문호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전거 임대사업을 펼치기로 하고 오는 12월 말까지 545㎡ 규모의 자전거 주차장을 지하철 1호선 동촌역 앞에 만들어 150대의 자전거를 세울 수 있도록 한다.조영성 대구시 낙동강살리기추진단장은“오는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이전까지 가동보, 경관 보도교, 자전거 도로 및 산책로를 조성하는 등 오는 2012년 6월까지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라면서“서울의 한강과 같은 도심 하천으로 마무리되면 재해없이 항상 맑은 물이 흐르는`행복 금호강`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4-25

인/터/뷰 서자원 동구청 건설과장

“보도교 새로 생기면 금호강의 명물될 것”“서울의 한강처럼 금호강도 생태하천으로 변모해 대구시민이 가장 아끼는 동촌유원지로 변모하게 된다”고 말한 서자원 동구청 건설과장은 “금호강은 대구의 한강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특히 서 과장은 “대구 시민들의 향수깃든 동촌유원지의 구름다리를 대체할 동촌 보도교를 새로 건설해 금호강의 명물로 만들겠다”면서 “팔달교와 노곡교 사이의 섬 22만㎡ 규모의 하중도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금호강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된다”고 밝혔다.또 “오는 8월에 열리는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이전에 가동보와 경관 보도교, 자전거 도로 및 산책로 조성을 추진해 오는 2012년 6월까지는 기타 사업들을 완료할 계획”이라며 “금호강 생태하천 조성사업이 마무리되면 금호강은 시민들에게 여가공간 제공으로 풍요한 생활을 가능케 한다”고 자랑했다.이어 “서울 한강과 같은 도심하천인 금호강의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경산시계에서 낙동강 합류점까지 41.4km의 금호강 구간에 모두 1천744억원의 국비를 투입한다”면서 “하도준설, 가동보 설치, 경관 보도교 건설, 자전거 도로 및 산책로 조성 등을 추진해 명실상부한 대구의 휴식처로 재탄생하게 된다”고 말했다.“여기에다 수질 개선과 홍수 예방을 위해 낙동강 합류부에서 화랑교까지 30km 구간의 하상 퇴적물을 준설해 수량을 확보하게 된다”고 말한 서자원과장은 “수변 레포츠장 활용을 위해 기존의 콘크리트보인 무태보와 동촌보를 공기압식 고무보로 개체하면 가창댐의 저수량 900만㎥보다 많은 1천100만㎥의 수량을 유지하게 된다”고 언급했다.이와 함께 “시민들이 친근하게 이용하는 하천으로 만들기 위해 금호강 19개소를 특색있는 테마별 친수 공간으로 조성하고 동촌유원지와 달서천 합류점 구간 왕복 40km는 백리길 조깅코스로 특화할 방침”이라며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는 자연 친화적인 포장재 사용으로 하천과 잘 조화되도록 조성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서자원 건설과장은 “개발이 완료되면 금호강은 재해에 안전하고 항상 맑은 물이 흐르는 깨끗하고 건강한 “행복 금호강”으로 탈바꿈하게 된다”면서 “동촌지구 등 금호강에 접한 연안지역의 획기적인 발전과 함께 국제도시 대구의 위상을 제고 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4-25

포항TP 입주기업 탐방<8> (주)유비

IT가 대세인 시대에 웹사이트, 쇼핑몰은 이제 흔한 단어가 됐다. 몰라서는 안될 정도로 우리생활 깊숙한 곳까지 다가와있다. 우리 실생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고객들부터 웹사이트, 쇼핑몰 제작이 조금이라도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역 IT·쇼핑몰 선두주자 ㈜유비(대표이사 유창욱)를 만났다.◇㈜유비는 어떤 회사인가.㈜유비는 `Your Bussiness Agency`. `고객을 성공시키는 기업`이란 슬로건으로 홈페이지 및 쇼핑몰제작과 유지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지역에 몇 안되는 전통파 웹에이젼시이로 올해로 창립 10년차가 되는 회사다. ㈜유비는 웹에이젼시를 중심에 두고 포스코인재개발원에 IT출강 교육과 동해지역의 수산물과 건어물 등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쇼핑몰 `동해사람들`을 운영하고 있다.지난 2002년 웹브라우져 기반에서 고객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비즈헬퍼`란 사업아이템으로 창립한 ㈜유비는 개발 아이템 `비즈헬퍼`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망한 것은 아니라는 의지로 개발로 얻게 된 고객관리·웹메일·로그분석 등 여러 기술을 바탕으로 2003년 하반기부터 웹에이젼시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희망을 꿈꾸고 있다.2003년 하반기부터 홈페이지 제작 영업을 시작해 회사를 운영했지만, 노크를 시작한 시장은 의외로 제작단가가 낮고, 또 개발기간과 경비에 대한 고객의 이해가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잘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원칙만을 갖고 시작한 ㈜유비의 도전은 여러면에서 무모했다. 결국 초기의 실수는 IT분야 사업을 하기 위한 비싼수업료를 톡톡히 낸 샘이 됐지만, ㈜유비가 둥지를 틀었던 선린대학 창업보육센터의 지원과 지인들의 도움, 또 유능한 직원들의 경험이 지역에서 전통파 웹에이젼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특히 직원들과 같이 고민해 제작한 고객관리 툴이 홈페이지 제작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되면서 점차 고객사가 늘면서 안정을 찾게 됐다.◇㈜유비의 사업성과현재 ㈜유비는 포항MBC, 동국대학교, 포스코교육재단, 포스코 계열사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250여개 이상 구축했다. 또 고객사 초기 미팅부터 웹 기획과 그리고 고객사에서 원하는 디자인 시안을 제공하고, 복잡한 구성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스토리보드를 통해 고객의 요구사항을 정리·제작해 그 완성도가 높은 것이 장점으로 볼 수 있다.특히 전통파 웹에이젼시 답게 ㈜유비는 지난 2004년부터 자체적으로 준비했던 웹표준 코딩능력을 바탕으로 웹접근성 및 장애인접근성을 100% 통과하는 웹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또 유비에서 제작한 웹사이트는 기본적으로 웹표준을 준수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브라우져 환경이 다른 나라에서도 이상없이 구동하므로 외국에 고객사를 둔 기업들은 웹사이트 제작 시 이점을 참고하는 것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점을 ㈜유비는 안내하고 있다.㈜유비는 지난 10년 동안 각 대학과 직업훈련전문학교들과 다양한 산·학 협력을 체결해 지역에서 웹 관련 기술을 공부하고 취업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 창업보육센터 기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기술력 또한 인정 받았다.특히 `동해사람들`에 관련된 실용신안과 상표등록, 고객관리에 관련된 프로그램 등록 등 자체 지적재산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현재 ㈜유비는 스마트폰 열풍에 맞춰 모바일사이트 제작에 초점을 맞춰 자체 교육을 지원하고 의로 받은 모바일 사이트를 제작하고 있다.◇㈜유비의 미래성장현재 ㈜유비는 창립 10년과 동시에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현 조직도를 IT기술력 업그레이드 방향으로 재편하고, 집중분야를 웹표준과 모바일사이트 중심으로 보고 하이브리드앱 개발력에 회사의 비전을 걸고 있다.㈜유비는 지난 1998년부터 붐을 타기 시작한 홈페이지 제작시장(웹에이젼시)이 어떻게 활발하게 됐는지를 학습했던 경험을 살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하이브리드앱 전문 기술연구소를 2011년 5월 회사 내 개소 할 계획이다.`하이브리드 앱`은 기존 앱의 장점과 모바일사이트의 장점을 두루 갖춘 방식으로 `하이브리드 앱`에는 HTML5, CSS3 등 기존에 익숙한 툴에서 벗어난 툴을 활용 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존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업과 더불어 새로운 툴을 익히기 위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이에 ㈜유비는 기술연구소를 통해 집중력과 다양한 개발사례를 통한 경험을 높여 지역 모바일 시장을 충분히 리드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기술연구소 개소와 맞춰 ㈜유비는 새롭게 개발자와 웹디자이너 그리고 기획자를 추가로 선발하고 있다. 지역 전통파 웹에이젼시 ㈜유비는 포항테크노파크와 포항소프트웨어지원센터의 하이브리드앱 기술연구소에 대한 지원과 또 서울에 본사를 둔 모바일 전문회사인 유누스와의 협력에도 기대를 하고 있으며 서울, 경기권 이상의 기술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임직원 모두가 협력해 뛰고 있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4-22

인터뷰-유창욱 (주)유비 대표이사

“웹사이트·모바일사이트 연동되는 기술 확보 절실” - ㈜유비 창업배경은.△㈜유비는 고객관리(CRM)를 인터넷환경에서 자동화시키고,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다면 상공인과 세일즈맨에게 꼭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비즈헬퍼라는 고객관리 사이트를 제작하기 위해 창립했다. 하지만 인터넷 시장에 대한 경험부족 등 여러 요소 등으로 개발 경험만 간직한 채 창업 1년 후 개발을 중단해야 했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바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웹에이젼시로 방향을 전환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향후 지역IT산업과 웹, 온라인쇼핑몰 관련 전망은.△분명 지역에도 컨버젼스 시장에 대한 연구와 사례가 나오겠지만, 그 분야는 생활환경에 맞춘 스마트그리드 시장에 먼저 오리라 생각한다. 웹에이젼시 시각에서 전망한다면, 모바일 환경을 고객에게 제공해주지 못한다면, 고급시장으로 접근을 포기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홈페이지를 제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웹환경이 아닌 모바일 환경에서도 구현될 수 있도록 제작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이 웹사이트와 모바일 사이트가 연동되는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 온라인 쇼핑몰은 대형 오픈마켓(옥션)과 같은 지역 오픈마켓(포항옥션)이 만들어져 중·소형 쇼핑몰을 흡수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관련분야 창업과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웹분야의 기술은 너무나 빠르고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지난 1998년 웹이 일반인들에게 소개됐고 또 그 중심에 있던 PC가 이젠 휴대폰으로 옮겨가고 있다. 관련된 기술들이 얼마나 많고 진보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진보된 기술과 앞으로 발전될 그림을 먼저 상상하면서 창업을 준비하면 좋을 것 같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이 분야가 많은 공대 학생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현실은 더욱 스스로가 전문가로 인정받는 기회가 많다는 점으로 이해하고 승부를 건다면 비전이 뚜렷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4-22

민선 5기 300일 맞는 구미시

강한 경제 더 큰 구미 건설을 기치로 힘차게 출발한 민선 5기 구미시정이 곧 취임 300일을 맞는다. 민선 5기 출범 첫날, 남유진 시장은 모든 취임행사를 생략하고 환경미화원과 함께 새벽 거리 청소, 기업체 현장방문, 농촌 봉사활동 등 주로 민생현장에서 업무를 시작했다.그러나 지금은 강한 경제 더 큰 구미건설을 목표로 독일, 일본 등 해외 순방과 국내 기업유치로 전국 기업 유치에 심혈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이런 남 시장의 노력은 소통과 화합의 시정추진과 더불어 인구 증가를 위한 기업 유치 등 경제시정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고 있다.민선 5기 `80개사·10조 달성` 목표로 글로벌 첨단기업 대상 투자유치 주력시민 공용자전거 도입·낙동강 녹색체험관 개관 등 녹색도시로 빠르게 변화◇ 올해 국내기업 5개 3조·국외기업 5개 5천억 유치구미시는 올해 투자 유치목표를 국내기업 5개 3조원, 외국기업 5개 5천억원으로 정했다.총 10개 기업 3조5천억원을 달성해 총 9천117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글로벌 첨단기업인 LCD, LED, 광학기기, 첨단의료기기, 신재생에너지 산업 등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을 유치해 민선 5기 총 목표액인 80개사 10조 원을 달성해 나갈 계획이다.지난해 달성한 13개사, 2조 2천억원의 투자유치액보다 올해는 무려 1조3천억원이나 늘어난 규모로 산업구조의 다각화와 신성장동력산업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진다는 계획이다.시는 앞으로 5공단과 경제자유구역 등 대형 투자 유치 성과를 내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해마다 대일 무역수지 적자 폭 감소구미시는 인구증가 기업 투자 유치 못지않게 대일 무역적자 해소에도 심혈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특히, 대일 무역수지 적자폭은 전국적으로 해마다 계속 증가 추세지만 구미시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폭은 해마다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구미시의 대일무역수지적자액은 2004년 39억9천400만 달러, 2006년 23억1천700만 달러였으나 지난해는 13억 달러로 30%가까이 줄었다.이런 현상은 구미 4단지 외국인 전용단지에 아사히, 도레이 계열사를 비롯한 일본계 기업의 입주가 늘어나면서 수입대체효과가 발생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하지만 아직도 전체 수입대비 대일수입 비중이 27.5% 정도로 높아 이 문제를 해결코자 부품소재 전용공단에 대한 글로벌 첨단기업 유치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시는 일본, 미국, 스페인 등 세계 각국의 부품소재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첨단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5공단 조성 투자유치 총 목표액 80개사 10조원구미가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 사업들의 추진전망도 매우 밝다.4공단 확장단지는 95% 이상 보상이 추진됐고 분양도 완료됐다. 앞으로 5공단 보상과 구미경제자유구역도 애초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될 전망이다.특히 구미시는 대구 등 다른 지역은 사업시행이 표류하고 있지만 구미는 흔들림 없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구미시의 지난해 총 수출은 대구시(52여억 달러)보다 6배나 많은 306억 달러이고 전국 총 수출액의 6.6%를 차지, 한국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또 앞으로 구미 4단지 확장, 5단지 조성과 노후화된 1공단 산업단지 구조고도화하고 대우일렉 부지 36만5천여㎡ 부지 리모델링사업을 올 12월말 완료해 전자의료기기, 그린에너지, IT 융·복합소재, 정밀금형 등의 업종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집적화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이들 사업이 완료되면 구미시는 인구증가는 물론 수출액도 늘어나 구미시의 강한 경제가 현실화할 전망이다.구미시 황종철 투자통상과장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자치단체가 매년 인구감소 추세에도 구미시는 매년 인구 증가 현상을 나타낸다”며 “이는 국내외 기업유치 노력과 5공단 조성 등 미래성장 인프라 확충 등 시민들의 살기 좋은 정주여건 개선에 적극적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일자리 창출 7만개로 인구증가 50만시대 진입지난해 8월 26일자로 구미 인구가 40만명을 돌파했다. 1978년 시 승격 당시 8만9천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1995년 시군 통합 당시 30만 명에서 마침내 40만명 시대를 연 것이다. 또한, 구미시는 일자리 창출 7만개를 위한 노력으로 지난해 9월1일 정부로부터 2010년 상반기 일자리 창출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3억 원의 재정 인센티브를 받고 전액 일자리창출에 재투자했다. 또 전국 최초의 고용안정과 노사평화를 위한 위 투게더 운동(We Together)확산과 희망 일자리 창출 TF팀 운영, 일자리창출전략위원회 구성, 중소기업 취업박람회, 읍면동 찾아가는 현장채용박람회 등 기업체, 교육기관 등 민관이 합심 노력해 큰 성과를 이뤄냈다. 앞으로 5공단, 경제자유구역 등 대형사업들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어 인구증가는 더욱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더 낮게 더 가까이, 40만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지난 4년간 구미시의 시정목표는 미래는 지금이 아니면 없다는 일념으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면 민선 5기는 40만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으로 정해 소통과 참여의 폭을 넓혀가는데 초점을 맞췄다.남 시장은 조금 늦게 가더라도 시민의 동의와 합의로 소통하는 열린 시정을 열어가겠다는 철학이다. 퇴근길 시민과의 대화를 정례화하고, 민생현장 자전거 투어와 기업현장 방문, 직원 현장회의 등을 개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생활 밀착시정을 실천해오고 있다.행정 내부적으로도 사무위임 및 전결규정을 개정해 결재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실·국장 중심의 책임행정체제를 구축했으며, 주요 시책추진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양방향 소통시스템을 강화했다.◇ 녹색성장 선도도시 본격 시동지난 6월 전국 10대 자전거거점도시로 선정된 구미시는 7월부터 시민 공용자전거를 본격 도입했다.구미시는 도내 최초로 전 시민 자전거보험 가입과 자전거 안전교육장, 시범공원 조성, 자전거 출퇴근 도로 구축 등 자전거 이용확산을 위한 거점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또 동락 공원에는 구미과학관개관과 낙동강 녹색체험관 개관, 지산수우지역 생태하천 조성사업도 원활하게 추진되고 있어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체험과 녹색수변도시로 새롭게 태어날 전망이다. 또 전국 10대 자전거 거점도시와 도심중앙을 흐르는 금오천 및 구미천이 국토해양부의 물 순환형 수변 도시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 낙동강 살리기와 연계한 새로운 친수공간 조성 등 녹색성장 선도도시 추진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어 미래 녹색성장도시로 빠르게 변화중이다.남유진 시장은 “지난 시정은 40만 시민과 함께 구미의 미래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시민생활현장에서 지역발전 방안을 함께 고민했다”면서 “앞으로는 힘차게 뻗어 나갈 구미의 미래 동력을 확보해 강한 경제 더 큰 구미 건설에 주력해 구미시의 위상을 더욱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남보수기자 nbs@kbmaeil.com

2011-04-22

⒀영남 퇴계학맥의 숨은 주역, 정부인 장씨

기호학파와 함께 조선후기의 학술사와 정치사를 양분했던 영남 퇴계학파는 내부적으로 두 갈래의 학맥으로 분화된다. 서애 류성룡을 계승하는 서애학맥과 학봉 김성일을 이어받는 학봉학맥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학봉계는 학봉에서 시작해 경당 장흥효-석계 이시명-갈암 이현일-밀암 이재-손재 남한조-대산 이상정-정재 유치명-서산 김흥락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한다. 여기서 경당에서 갈암으로 이어지는 초기학맥은 일종의 가학(家學)적 연원관계를 이룸으로써 학봉학맥이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인 촉매 역할을 했다.이 가학의 성격은 석계가 경당의 사위이고 갈암이 석계의 아들이라는, 초기계보 사이에 존재하는 혈연적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따라서 이 계보는 자연스럽게 이 관계를 연결시키는 한 여인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그 여인을 매개로 경당은 아버지이고 석계는 남편이며, 갈암은 아들인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남 퇴계학파의 중심적인 줄기 가운데 하나인 학봉학맥의 초석 형성사의 숨은 주역, 그가 바로 정부인(貞夫人) 장씨(張氏)이다.정부인의 이름은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다.`정부인`은 아들인 갈암이 뒤에 이조판서를 역임함으로써 추증받은 품계이다.임진왜란이 끝나던 해인 1958년 11월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경당 장흥효와 안동권씨 사이에서 무남독녀 외딸로 태어났다.경당은 영남 퇴계학파의 초기학맥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통상 퇴계문하의 고제로 월천 조목과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그리고 한강 정구 네 사람을 꼽는다. 경당은 이들 가운데 월천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에게 모두 배움으로써 퇴계학의 적통을 이었다. 이는 그가 자신의 호를 퇴계철학의 중심개념인 `경(敬)`에서 따와 `경당(敬堂)`이라 한 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정부인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학문과 덕성에 대한 소양을 익혔다. 한 번은 경당이 제자들에게 중국 송나라의 사상가 소강절이 주장한 천지자연의 변화원리인 원회운세(元會運勢)의 이치에 대해 말하였으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정부인이 그 수치를 정확히 계산해 대답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정부인은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에도 남다른 성취를 보여 아들을 군대에 보낸 이웃집 노파의 애끓는 모정을 읊은 학발시(鶴髮詩)를 비롯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의 소중함을 노래한 경신음(敬身吟), 보슬비의 운치를 운율감 있게 노래한 소소음(蕭蕭吟), 성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노래한 성인음(聖人吟) 등의 시를 남겼다.이 가운데 성인음은 다음에서 보듯이 마치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뵈”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하는 퇴계의 도산십이곡 가운데 제9곡을 연상시킬 정도로 성인의 자취를 배우고자 하는 여군자(女君子)의 열의를 엿보인다.성인의 때에 태어나지 못해성인의 모습 뵙진 못했으나성인의 말씀은 들을 수 있으니성인의 마음씀은 족히 알겠네정부인은 19세 되던 해인 1617년 영해 나랏골에 살던 8살 위인 석계 이시명에게 시집을 갔다. 당시 석계는 이태 전 부인을 사별하고 슬하에 1남 1녀를 둔 상태였다. 때문에 정부인으로서는 석계와의 결혼이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정부인은 결혼 후 전부인의 소생을 친자식보다 더 살뜰히 키워 여섯 살이던 아들 상일을 매일 5리나 떨어져 있는 선생의 집에 업고 다니며 글을 가르쳤고, 나중에 자신의 소생들이 무엇을 물어오면 반드시 형에게 물어보게 함으로써 집안의 위계를 세웠다. 나랏골 재령이씨 충효당 가문을 연 시아버지 운악(雲嶽) 이함(李涵)이 이를 보고 자신의 손자는 어미를 잃은 것이 아니고 죽은 어미가 살아온 것이라고 이웃들에게 말했을 정도였다.전 부인 소생을 포함해 정부인은 슬하에 모두 7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웠는데, 그 가운데 둘째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 셋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넷째 항재(恒齋) 이숭일(李崇逸)은 학문적으로도 큰 성취를 이루어 영남 퇴계학맥의 중심인물들로 활약하였다.특히 갈암은 영남남인의 영수로서 당시 정적 관계에 있던 서인을 상대로 정국을 주도함으로써 영남학파의 정치적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갈암은 정부인의 생애를 기록한 글에서 어머니는 시부모를 지극한 효도로 섬겼고, 60년 가까이 아버지와 살면서 늘 받들어 공경하고 서로 대하기를 손님과 같이 하였으며 매사를 반드시 아버지께 여쭌 뒤에 행하였다고 회고하였다.정부인은 이처럼 시집살이를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친정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시집 온 후 1년에 한 번은 문안을 갔고 어머니와 사별한 후 아버지 경당 선생이 재혼해 3남 1녀를 두고 돌아가시자 어린 동생들과 계모를 아예 시집 인근으로 이주시켜 보살폈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신주도 모셔와 제사를 거르게 하지 않음으로써 친정의 가계가 보존되도록 힘을 기울였다.정부인의 부덕(婦德)은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라는 책자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이 책은 정부인이 노년에 자신의 살림지혜를 종합하여 모두 146종의 음식조리법을 소개한 것으로, 영남 양반가의 음식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그런데 이 책 속에는 영남 양반가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전통이 스며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음식디미방`과 함께 영남 양반가의 음식문화를 오늘까지 전하는 대표적인 조리서로 `수운잡방(需雲雜方)`이 있다. 안동 예안에 세거하던 광삼김씨 예안파의 김유(綏)가 지은 것인데, 석계의 첫 부인이 바로 이 김유의 증손녀이다. 따라서 `음식디미방` 속에는 정부인의 친정인 안동장씨 경당문중과 시집인 재령이씨 충효당 그리고 광산김씨 예안파 이 세 가문의 음식문화가 고스란히 집대성되어 있는 셈이다.그야말로 영남의 음식문화를 오늘까지 전하는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박원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201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