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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자 떠나자, 경북 동해 바다로!

명사십리 백사장 환상의 음악분수고래 춤추는 파란 영덕이 부른다 영덕은 청정자연에 더해 좋은 교통접근성이 가장 큰 장점이다. 대포고속도로 포항 요금소를 빠져나오면 불과 40여분만에 다다른다. 영덕에는 64㎞의 청정바다가 펼쳐져 있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명사 이십리 고래불해수욕장,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싸인 대진해수욕장, 동해 일출 명소인 장사해수욕장이 피서객을 반긴다. 군청서 관리하는 해수욕장은 말할 것 없고 해안마을 곳곳이 피서지다. 비지정 해수욕장은 15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개장한다.거기다 팔각산과 칠보산 등 명산, 깊은 계곡을 흘러내리는 맑은 물, 울창한 산림이 만들어주는 청명한 공기가 있다. 자연 그대로 절경을 이룬 옥계계곡과 용추계곡, 오천솔밭 등은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저절로 멈추게 한다. 이들 자연 유원지는 최근 들어 더 인기다. 가족과 함께 조용히 자연 속에서 피서하려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것이다. 이들 피서지는 16일부터 8월28일까지 운영된다.무려 4차례에 걸쳐 전국 최우수로 선정된 고래불해수욕장의 깨끗한 명사십리 백사장과 야경은 절로 탄성이 솟게 한다. 한여름밤을 수놓는 음악분수대는 그야말로 고래가 춤추는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해 매일 저녁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인근에서는 전설의 복원을 꿈꾸며 만든 `고래불 조형물`이 피서객을 기다린다.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이 유년시절을 보낼 때 이야기가 그것이다. 괴시마을 앞 상대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고래가 하얀 분수를 뿜으며 놀고 있는 모습이더라고 해서 시를 읊었다는 얘기다. `고래불`이란 이름도 그래서 생겨났다고 했다. 이 고래불조형물은 음악분수대와 멋지게 조화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연출,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름의 낭만을 선사한다.해수욕장 별로는 이색 이벤트와 테마 있는 축제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동해의 청정바닷가 백사장에서 하는 백합줍기(고래불), 수중 풋살대회(대진), 해양레저 이벤트(장사)가 피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영덕해수욕장 문화관광체험(7월30~8월2일, 장사·대진·고래불), 오십천둔치 황금은어축제(7월29~31일), 달맞이 야간산행(7월16일· 8월13일, 창포해맞이공원), 블루로드 걷기 및 괴시전통마을 고택공연(7월23일), 삼사해상공원 토요 상설공연 등이 마련돼 있다.괴시 전통마을인 괴정(槐亭)에서는 전통문화 체험장이 상시 운영된다. 각종 민속놀이, 다도, 제례상 차리기, 전통한복 입기 등의 우리 전통을 체험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소중한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다. 신돌석장군 전국궁도대회(7월23~25일), 추계 한국중등(U-15세) 축구연맹전(8월16~26일) 등 스포츠행사도 계획돼 있다.영덕군청은 관광객 200만명 유치를 목표로 관광이미지 제고를 위한 손님맞이 준비에 열심이다. 올해부터 일반해수욕장 3개(고래불·대진·장사) 운영 방안에 대해 컨설팅을 실시, 수상 인명 구조요원 및 관리인력의 효율적인 배치를 통해 안전사각지대를 최소화시키기도 했다. 또 해수욕장 안전관리 융합행정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해수욕장 운영 통합 지침도 마련해 가동 중이다.영덕/이동구기자 dglee@kbmaeil.com

2011-07-15

다양한 축제가 있는 경주가 좋다

경주의 5개 해수욕장도 15일 일제히 개장한다. 운영기간은 다음달 21일까지 38일간이다. `안전과 청결`(Safety Clean)을 테마로 정하고, 14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경주 역시 올해의 특징은 단순 해수욕장이 아니라는 점. 지난해와 달리 다양한 해양축제과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다. 오는 23일(토)·31일(일) 오류·전촌해수욕장에서는 `바다콘서트`가 열린다. 30일(토) 나정해수욕장에서는 `해변가요축제`가 계획돼 있다. 경주시청이 주도하는 바다체험장도 마련된다. 이를 위해 전촌항 인근에 낚시어선 45척으로 저인망 어로체험장을 꾸며놨다.오류해수욕장은 2만5천명이 들어갈 수 있는 3만3천57㎡(1만평) 백사장을 갖췄다. 300대 주차공간, 샤워장 2곳, 화장실 등이 마련돼 있다. 지난해엔 13만7천명이 피서를 다녀갔다. 비슷한 넓이의 전촌해수욕장도 200대 주차공간과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다. 관할 감포읍사무소가 현장에 하루 25명을 상주시키며 피서객을 뒷바라지하는 `바다 읍사무소`를 운영한다.3만9천669㎡에 달하는 봉길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500m에 달한다. 1982년부터 지방정부가 관리하기 시작했으며 13개 음식점과 민박·펜션 16개가 있다. 상가번영회가 중심돼 바가지 요금, 불친절 등의 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종천과 인접했으며, 양북면은 `바다 면사무소`를 개설했다.양남면 수렴리 1만9천834㎡ 크기의 관성해수욕장은 일반 피서객보다 울산지역 대기업 사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하계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현대미포조선, 현대자동차, 현대하이스코, 현대모비스 등 13개 업체가 휴양캠프를 차린다.경주 5개 해수욕장 내장객은 2009년 이후 매년 대폭 증가하고 있다. 2009년 78만1천620명, 2010년 131만5천명에 달한 것이다.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관성해수욕장이다.경주/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2011-07-15

가창호 상수원구역지원비 갈등 (2) 법리적 판단의 쟁점

이번 사건의 핵심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평등권 문제로 불거지는 원주민과 준주민과의 관계설정, 그리고 주민추진위원회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의 합법성여부. 즉 추진위의 의사결정과정에 하자가 없었는가 하는 점이 공판과정에서 치열한 다툼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절대적 평등, 상대적 평등하나는 평등의 문제다. 즉 법 앞에서 절대적 평등이냐 아니면 상대적 평등이냐의 개념이다. 요즘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전교조와 교육청간의 의견 충돌과 비슷한 입장이다.전교조는 교실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접받아야 하는 절대적 평등을 내세운다. 교육을 받는 학교에서까지 재산상태를 기준으로 급식기준을 정하는 것은 평등을 원칙으로 한 법정신에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이에대해 일선 행정부서나 진보교육감이 아닌 교육청 등은 획일적인 평등은 여러 가지 정황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즉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고 재산이 적은 사람에 대해 선택적으로 지원해주는 상대적 평등의 이념 적용은 한정된 재원 등을 고려할 때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쉽게 말해 대기업 총수의 자녀에게까지 무상복지 실현은 사회전체적으로 볼 때 좀 더 연구하고 합의점을 이끌어내기 위한 충분한 과정 등이 수반되어야 하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번 사건에서 원고측은 법 앞에서 모든 사람은 다 공평하게 대접받아야 하는 절대평등의 입장이다. 우리나라 헌법 조문을 다 뒤져도 늦게 이사왔다고 해 차별받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행정부 주민지원비 지침 어디에도 늦게 들어온 사람에 대한 언급이 없다. 지원대상은 상수원보호구역안에 거주하거나 당해 구역안에서 농림·수산업 등에 종사하는 자. 상수원보호구역지정으로 인한 행위금지 또는 제한을 당해 구역안에서 생업을 유지하기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로인해 원고는 상수원보호구역안에 거주하는 자로 당연히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의사결정과정의 하자여부원고측은 상대 추진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하자가 있어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추진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회의과정 등 여러 방면에서 불법행위 부분이 만연해 있었다고 보고 있다. 늦게 이사온 사람의 경우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 회의사실을 알려주지도 않는 등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원고 이씨는 “마을 회의장에 가, 발언기회를 달라고 요구 했으나, 사소한 시비로 멱살까지 잡히는 등 추진위원들이 처음부터 참여시킬 의사가 없었던 것 같다”며 추진위의 독단이 있었다고 주장했다.마을회의도 추진위에서는 동네 스피커로 알렸다고 주장하나 스피커가 들리지 않는 동네도 있는 등 전체적인 고지가 되지 않아, 이 부분도 하자가 있다는 입장이다.또 돈의 집행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지원금을 받다가 이후에 못받은 사람도 있었으며, 한 가구에서 두사람 몫을 탄 경우도 있는 등 돈의 분배과정도 뚜렷한 원칙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집행됐다고 주장했다.집행된 돈도 일률적이지 않고 차등 지급했으며, 올해 많이 받은 사람은 다음 연도에는 적게 지급하는 등 원칙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고무줄잣대로 지급했다고 비난하고 있다.늦게 들어온 사람들이 계속 항의를 하니까 처음에는 7대3, 6대4 분배를 제의했다가 이마저 지키지 않는 등 무원칙으로 일관했다는 것.하지만 상대측의 주장은 다르다. 처음부터 군에서 추진위원회의 회의결과를 존중해 추진위 결정사항대로 지급했고, 여러 회의과정은 마을규약 등을 근거로 마을회의에서 결정하는 등 나름대로 법원칙을 준수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원고측은 마을규약도 늦게 들어온 사람이 항의하니까 주변 동네의 규약을 급조하는 등 처음부터 있지 않았고 편의위주의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했다고 반박하고 있다./이창훈기자myway@kbmaeil.com

2011-07-14

가창호 상수원구역지원비 갈등 (1) 배분차별 납득 못해 법에 호소

대구 도심에서 불과 10여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산수와 맑은 공기로 도시민이 한번쯤은 살고 싶어하는 달성군 가창면 오리와 정대리 일대.수성구민의 식수원인 가창호를 끼고 있어 경치도 아름답지만 특히 비오는 날, 물안개라도 피어 오르면 한 폭의 산수화속에 살고 있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비경이 빼어나다. 이렇다 보니 수년전부터 이곳에는 별장이나 전원주택 등이 들어서 주변 땅값도 많이 올랐다. 이런 조용한 마을이 최근 소송에 휩싸였다.가창호 상수원호보호구역내 주민들이 행위규제 대가로 환경부와 대구시로부터 받는 물값의 분배를 놓고 소송까지 간 것. 상수원보호구역내 주민지원비로 빚어진 갈등의 쟁점과 원인 및 문제점, 대책, 타 상수원보호구역의 주민지원비 사용 예, 전문가 의견 등을 짚어본다.편집자주“당연한 거주자에 불평등한 혜택 대응할 것”“이주민들 지원비 탐내는 것은 `어불성설`”1)갈등의 쟁점은(원고와 피고측 주장).최근 달성군 가창면 오2리 주민 임모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1년 전에 담장을 쌓은 것에 대해 군에서 조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즉 논에다 무허가로 쌓았기 때문이라는 것. 임씨는 시골에서 이런 일로 조사까지 나오는 것은 동네 주민 누군가가 제보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 허탈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임씨는 소송이 벌어지자 반대편의 누군가가 악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군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듯 사소한 일로 이웃 주민간에 불신이 팽배해진 것은 다름아닌 상수원보호구역내 주민지원비 문제로 주민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오2리 주민 이모씨 등 11명은 지난 5월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에 같은 마을 유모 이장 등 8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지난달 1차 공판이 열렸다.△원고측 입장.5년전에 이 동네로 이사왔다는 이씨 등 원고측은 수도법에 의한 상수원보호구역 주민지원사업 지침 어디에도 주민지원비를 원주민에게만 줘야 한다는 문구는 없다는 입장이다.즉 지침에는 `상수원보호구역안에 거주하거나, 당해 구역안에서 농림·수산업 등에 종사하는 자·상수원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한 행위금지 또는 제한으로 당해 구역안에서 생업을 유지하기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자`로 정의돼 있다. 이 문구에 의하면 이사 온 주민들도 당연히 거주자라는 것이다.원주민과 이사온 주민을 차별하면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헌법정신에도 어긋나고, 같은 주민인데 누구에게는 혜택이 돌아가고 누구에게는 안 돌아가는 것은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아 수차례 시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할 수 없이 소외된 주민들이 뜻을 모아 소송까지 제기했다고 말했다.또 주민지원비도 적은 돈이 아니라 1년에 2억원에서 3억원 정도 배정돼 가전제품을 비롯 학자금, 의료비, 집수리비용 등이 지원되는 현실에서 단지 원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제외시킨다는 것은 역차별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처음부터 이 돈을 받기 위해서 이사온 것은 아니지만 같은 상수도 보호구역안의 한마을에서 누구는 혜택을 보고, 누구는 보지 못한다는 것은 수차례 고민을 해봐도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납득이 안 돼 법의 심판을 받고자 한다는 입장이다.△피고측입장이 마을 이장 유씨와 강모 추진위원장등은 이씨 등의 주장을 전면 반박한다. 가창댐이 들어서기 전부터 선대 대대로 이곳에서 살다, 가창댐의 건설로 일부 마을은 수몰되고, 맞은편 오2리 쪽으로 이사를 하는 등 생활터전을 잃었고, 상수원 보호구역지정으로 인한 행위제한을 보상하는 성격의 주민지원비는 당연히 원주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30년이상 이곳에서 대대로 살며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한 사람과 몇 년 전에 산좋고 물좋은 곳을 찾아 이사온 사람들과 어떻게 똑같은 보상을 할 수 있느냐는 것.1972년 가창호 상수원 보호구역지정이후 처음에는 주민지원비가 없었다. 1996년부터 공동사업이 추진됐으며, 2001년부터 개인가구별로도 지원되고 있는 주민지원비를 중간에 이사 온 사람들이 받기를 희망하는 것은 어불성설 이라는 주장이다.그리고 이사온 사람은 처음에 이런 지원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왔다, 지원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바란다는 것은 무임승차와 같은 이치라는 입장이다.추진위원장 강씨 등은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한 불편으로 과거 땅값도 상당히 쌌고, 집 증개축이나 수리 등 여러 제약을 장기간 받아와 이를 보상하는 성격이 짙은 돈이므로 늦게 이사온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추진위원장 강씨의 아들은 1년에 300, 400만 원 정도 돈이 나온다는 걸 아면 대구시내 사람중 여기로 이사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이창훈기자myway@kbmaeil.com

2011-07-13

정확하고 과학적인 관찰 통해 사물을 바로 표현하자

춘추필법(春秋筆法) `춘추필법(春秋筆法)`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형식적이고 간결한 문장을 통해 엄격하게 포폄(褒貶)을 가한 `춘추(春秋)`의 독특한 필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자포폄(一字褒貶)`, `진언대의(微言大儀)`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춘추란 춘추시대노나라 은공(隱公) 원년(B.C. 722)부터 (哀公) 14년(B.C. 482)에 이르는 12공 242년 간의 기록을 담고 있는 역사서이다. 이것은 원래 노나라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일기체의 궁정연대기(宮庭年代記)인데, 공자가 여기에 자신의 독자적인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미묘한 필법 아래 필삭(筆削)을 가했다. 이를 가리켜 춘추필법이라 한다. 공자의 기준은 `명분을 바로잡은 (正名分)`과 `포폄에 의거함`이었다. 그 예를 들어보자우선 사물의 명분을 바로잡기위해 공자는 단어하나의 선택에도 신중을 기했다. 예를 들어 `희공(僖公)`16년 조에 `운석이 송나라에 다섯 개 떨어졌다`라고 쓰지 않고 그렇게 쓴 것은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서 살펴본 후에 돌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 그것을 헤아려보니 다섯개임을 알았기 때문에 사실을 안 순서를 살려 `운석우송오(隕石于宋五)`라고 표기했다는 것이다. 즉 정확하고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사물을 바로 표현한 것이다. 또 오(吳)와 초(楚)나라 임금을 자(子), 제(薺와 진(晉)나라 임금은 후(侯)라고 불렀으며, 송나라는 비록 약소국이었지만 긍 임금을 공(公)으로 높여 표기한 것은 전통을 고수하려는 `정명분`에 속하는 것이다.포폄에 있어서 각각의 상황과 사건의 원인 선악(善惡)의 소재에 따라 달리 표현되었다. 선공(宣公) 2년 조에 `진나라 조순(趙盾)이 그의 군주 이고(夷皐)를 시해했다`라는 기사가 있는데, 원래 임금을 죽인 자는 조순이 아니라 조천(趙穿)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순이 죽였다고 한 것은 조순이 조천을 토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순의 책임이라고 보아 그렇게 적었다는 것이다.또 은공 4년 조에는 `위(衛)나라 사람들이 주우(州旴)를 복에서 죽였다`고 되어있는데, 여기서 임금을, 군(君이라고 하지 않고 주우라고 한 것과 임금을 죽인 경우에 쓰는 말인 `시(弑)`를 놓아두고 `살(殺)을 쓴 것은, 원래 그가 토벌의 대상이었으며, 위나라 사람들이 외세의 힘을 빌어 위나라 땅이 아닌 복땅에서 그를 죽였음을 나타낸 것이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7-13

빛과 공간에서 미술을 고민하다

나의 작품세계를 굳이 정의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빛과 공간`의 어우러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선택하는 소재는 모과 열매나 목련 등 다분히 평범한 사물이다. 그래서 결국 관객들은 나의 작품 역시 자연물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요즈음의 트렌드에 속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그러나 나의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관찰해보면 결코 묘사주의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미술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빛과 공간성, 그리고 회화적 표면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내가 추구하는 빛은 매우 소박하고 사색적인 빛이다. `향기가득` 또는 `하늘보기` 등 작품 제목이 암시하듯이, 나는 빛을 통해 향기를 맡고 빛을 통해 하늘을 본다. 나는 빛이 연출하는 이런 다양한 뉘앙스를 의식하면서도, 회화의 다른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인 화면의 공간감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사실 내가 묘사한 사물들은 공간을 암시하는 바탕 효과가 없었다면 별 의미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지를 붙이고 자유분방하게 물감을 칠한 흔적들은 바로 내 자신의 마음속을 부유하는 비현실적 공간이다. 배경 공간과 묘사된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조화 또는 긴장감 때문에 그의 그림은 보다 풍성해진다.나는 이러한 회화적 표면의 긴장감이 주는 매력과 물체를 치밀하게 재현하는 묘미 가운데에서 갈등하는 듯하다. 작품을 제작하면서 화가는 언제나 갈등과 선택의 순간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그 갈등의 깊이에 따라 작품의 밀도는 한층 깊어질 것이다. 학창시절 사회적 현실과 예술이라는 무게 때문에 고민했던 경험도 나에게는 오늘의 작품을 제작하게 된 좋은 경험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의 고향인 경북 의성의 어느 마을에서 바라보았던 하늘과 갖가지 사물들도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나의 작업에 무의식적인 영향을 주었음을 간과할 수도 없을 것이다.◆서양화가 김광한- 대구예술대 서양화과 졸업- 초대개인전 및 부스개인전 다수2010년 통인 옥션 갤러리 초대전2010년 한국현대 미술제(한가람미술관)2009년 한국구상대제전(한가람미술관)2008년 골든 아이아트페어 (서울코엑스)2007년 일본 키타큐슈2005년 아트서울전(한가람미술관)

2011-07-13

극렬 감정분자가 부르는 노래

김달진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박정대 시인, 그는 현재 `무가당 담배 클럽`이라는 정체모를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슨 결사대 같은 그 동인이 어떤 모임인지 정체는 알길 이 없다. 박정대 시인이 부르는 노래는 술과 담배와 음악을 밑불로 하여 끝없이 타오르는 센티멘털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스스로 “담배를 피워 물고 저녁마다 감정의 확산을 꿈꾸는 나는 자생적 감정 빨치산”이라고 한다. 이러한 “극렬 감정분자”의 노래는 새들이 추위를 피해온 북 호텔과 리스본 야간비행, 백남준의 노트, 추락한 천사들의 가슴속, 알제리 기타, 갈라파고스 고독의 제도, 가우디 아파트, 체 게베라, 라벤더 안개 등 시간과 공간의 단절을 뛰어넘어 흘러가고 존재한다. 박정대는 `가우디 아프트`에서 “사랑은 그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아름다운 건축 그러나 아무나 꿈꿀 수 없는 갸륵한 심장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순서도 없고 배열도 없”는 감정의 `백야 무한증폭기`같은 박정대의 노래는 “두서없이” 출렁대는 술처럼, 흘러가는 담배연기처럼 독자의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이러한 박정대의 노래는 “세상의 모든 음악으로도 감싸 안을 수 없는 본질적 고독은 어디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니 그 물음에 대해 박정대 시인 스스로의 답을 구하려 떠돌아다닌 항적의 결과물이다./이종암(시인)

2011-07-13

“상수원보호구역 주민지원비 배분해달라”

상수원보호구역 주민지원비 분배 문제로 달성군의 조그마한 마을이 갈갈이 찢어져 시비를 법정까지 이어가고 있다. 안타깝기도 하려니와 이 재판 결과에 따라 다른 유사 분쟁 판단의 사법적 지침이 될 가능성이 있어 앞으로의 귀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관련기사 7면지난 6월28일 오전 11시 대구 서부지방법원 23호 법정. 달성군 가창면 오2리 거주자인 이모씨 등 11명이 같은 마을 유모 이장 등 8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차 공판이 열렸다. 재판에는 원고측인 이씨와 최모 변호사, 피고측에는 이모 변호사가 참석했다.시비의 요지는 달성군 가창면 오2리에 몇년 전 이사 와 사는 이씨 등이 상수원보호구역 내 거주자를 대상으로 해서 지급하는 주민지원비를 배분해 달라는 것. 이씨 등은 일단 3천만 원의 소를 제기했고, 정보청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금액을 올릴 예정이다.가창호 상류인 오2리에는 2001년부터 매년 주민 지원비가 나오고 있다. 2001년 6천만원, 2002년 3천만원, 2003년 6천380여만원, 2005년 1억2천8천900여만원, 2007년 2억580여만원, 2008년 3억4천900여원만원, 2009년 3억6천400여만원, 2010년 3억1천여만원 등 지금까지 나온 게 15억원에 이른다.이 주민지원비는 농로포장, 마을회관 신축 등 마을공동사업을 비롯, 물탱크 설치, 심야전기보일러 설치, 냉장고 등 가전제품 구입비, 주민자녀의 학자금, 의료비 등 주민 개인 지원에 쓰였다. 이 돈을 70여 명인 마을 주민들에게 나눌 경우 매년 한 가구당 400만~500만 원 정도 배분될 것으로 알려졌다.이씨 등 원고측은 주민 마을 지원사업용인 이 돈이 현재의 주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기존 원주민들에게만 배정돼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지원금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 지급되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고도 했다. 이 마을 임모씨는 “과거 세탁기를 받았는데 정보공개 자료에는 안받은 걸로 돼 있는 등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반면 피고측인 마을 이장 유씨와 전직 추진위원장 강모씨 등은 “주민지원비는 선대부터 이곳에 살다가 가창호가 들어서서 행위제한을 받은 사람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주는 것”이라며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을 위해 쓸 돈이 아니다”고 했다.이같이 마을 주민들을 갈라놓는 일이 벌어지자 일부에선 달성군청의 행정지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엄정한 잣대로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달성군청 관계자는 “그 당시는 뚜렷한 행정지침이 없어서 추진위원회 결정을 존중했다. 올해부터 새 지침이 내려와 새 기준이 생겼으니 그에 따라 집행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창훈기자

2011-07-13

북구 칠곡3지구

2014년 도시철도 3호선 달리면 지역발전 가속화 대구시 북구 구암동, 국우동, 학정동 일대 칠곡 3지구는 현재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2013년 개청을 목표로 강북경찰서가 신축중이고, 도시철도 3호선이 강북을 가로지르는 팔거천을 따라 교각공사가 완공돼 선로 공사가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구 동호동에서 수성구 범물동까지 23.95㎞를 잇는 도시철도 3호선은 총 사업비 1조4천282억원(일반지하철 공사비의 40%수준)이 투입돼 오는 2014년 6월 개통 예정이다.최근에는 북구 주민의 뜨거운 감자였던 국우터널이 무료화 하기로 결정돼 주민들에게 기쁨을 더하고 있다.칠곡 3지구는 북부지역 개발을 통한 지역간 균형발전을 목표로 지난 1994년부터 2000년 말까지 6년간에 걸쳐 조성됐다. 67만4천여평의 부지에 단독주택 1천205호, 공동주택 1만7천760호 등이 건립돼 북구주민 46만여명의 15%인 6만8천여명이 이곳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계획도시로 각종 인프라라 잘 구축돼 있어 다른 칠곡지역에 비해 아파트가격도 비싼편이다.33평형의 경우 칠곡 1,2지역의 경우 아파트연식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1억 2천~3천만원정도의 가격대이나, 3지구는 2억2천~3천만원 수준으로 같은 지역에서도 1억이상의 가격 편차가 날 정도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다양한 인프라 구축된 계획도시 자랑행정 금융 쇼핑 등 원스톱으로 해결■원스톱으로 자체해결.대다수의 신도시가 그러하듯 칠곡3지구도 구역안에서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반듯한 도로위에 시내를 중심으로 상업지역, 주거지역, 공원 등이 배치돼 주민들이 동선을 따라 행정업무, 금융, 쇼핑, 레저 등을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다.인근에 경부고속도로 북대구IC가 있어, 구미, 김천 등지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특히 많이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정서도 대구의 다른 구와는 약간 동떨어져 있다. 20여명의 구의원 중 민주노동당 1명, 국민참여당 1명, 친박연합 1명, 무소속 1명 등 야당이 골고루 분포돼 있는 이색지역으로 자리매김 했다.주민 권성희(45·여·구암동)씨는 “이 지역은 여당 일색인 다른 구와는 조금 틀린다. 젊은층과 인근도시의 근로자 비중이 높아 야당정서가 상당히 녹아 있다. 무조건 여당정서에 기대 표를 달라면 안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그동안 대형병원이 없어 시내까지 나오던 불편도 지난해 경북대병원이 들어서 주민들의 의료편의까지 해결됐다.■주민들의 쉼터 공원, 특히 많아.칠곡3지구에는 구암, 함지공원 등 동천동에 9개소, 국우동 10개소, 구암동 13개소 등 32개소의 공원이 들어서 주민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있다.특히 번화가에 있는 함지공원은 주민을 비롯, 각 단체에서의 행사장소로 인기가 있다. 도심에 붙어있어 지나다니는 사람을 자연적으로 불러모을수 있다보니, 단골 모임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실정이다.주민들은 “함지공원은 접근성이 편해 노래자랑 등 행사가 수시로 열린다. 특히 주말이면 행사로 늘상 손님들이 북적거려 주차장소가 모자라는 등 공원이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함지공원에 비해 구암공원은 산책과 휴식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구암공원은 호수를 끼고 있어, 저녁식사후 조깅이나 산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쉼터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비가 내린 일요일 구암지에는 저수지를 약 30% 정도 덮고있는 연꽃으로 한층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비속에서도 10여명의 사람들이 호수주위를 돌고 있었으며, 한 단체서는 인근 어르신을 초청, 식사대접을 하고 있는 등 도심속의 소공원으로 늘상 주민과 함께하는 쉼터로 자리잡았다.■국우터널북구주민에게 뜨거운 감자로 인식됐던 국우터널이 무료화 된다.대구시는 최근 국우터널의 통행료 징수기간이 내년 7월31일부로 만료되면 무료화하여 일반도로로 관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혀 북구주민의 숙원이 해결됐다.국우터널은 지난 1995년에 착공해 1998년 완공된 폭 31m 길이 1.6km 규모의 유료도로로 대구도심과 칠곡 지역을 잇는 유료터널로서 1999년 8월 1일부터 지금까지 10년여 동안 소형 500원, 대형600원의 통행료를 받아 왔었다.그동안 북구주민은 국우터널의 통행료징수에 대해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며, 이번에 구의회, 구청, 주민 등이 총력을 모은결과 무료화를 이끌어 냈다. 하루 약 5만대의 차량이 통행되는 국우터널이 무료화 됨으로써 이곳의 주통행객인 칠곡의 많은 주민이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칠곡에서 시내로 출근, 매일 터널을 이용하고 있다는 주민 김민규(48)씨는 “국우터널 무료화로 지역주민들의 부담감이 많이 줄 것이다. 이번조치에 대해 환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팔거천칠곡은 지역을 가로지르는 팔거천을 중심으로 동쪽 위쪽은 3지구 아래쪽은 2지구, 서쪽은 1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북구청은 도심속을 관통하는 팔거천을 생태하천으로 만들기 위해 1단계 사업에 이어 거동교에서 대동교까지 1.13km를 오는 2013년까지 정비할 계획이다.정비사업은 하천호안을 비롯해 물길을 정비하고, 둔치에는 잔디광장과 생태초화원, 휴게공간 등을 조성, 주민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하천경관도 바꾸기로 했다.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설치하고, 제방위에는 왕벗나무를 심어 특화된 경관을 연출한다.2단계사업이 마무리 되면 나머지 구간인 대동교에서 금호강에 걸치는 5.1km는 도시철도 3호선이 개통된 후인 2015년이후 정비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이곳 역시 생태환경복원과 친수공간으로 꾸민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1-07-11

이동욱 대구시 북구의원

“청정산업 유치 등 경제분야 도약 필요”“북구는 미래를 위한 변화가 많은 곳입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깨끗한 공기, 사통팔달의 도로망으로 교육환경과 일자리분야만 업그레이드 되면 대구에서 가장 살기좋은 곳으로 확신합니다”이동욱 구의원(국우·동천동)은 2014년에 개통될 도시철도 3호선, 올해 준공되는 대구재활전문병원, 칠곡경북대병원 개원등으로 북구의 숙원사업이 어느정도 마무리 돼 주민복지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뤄진다고 말했다.하지만 경제분야에서는 더욱 도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구적인 생산시스템 부재로 베드타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향후 지역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청정산업 유치가 절실하다고 밝혔다.“칠곡은 인근 구미나 왜관 등지의 근로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수한 대구의 교육인프라 활용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칠곡도 교육 분야에서 좀 더 많은 인프라 구축이 필요합니다”팔거천을 따라 건설되고 있는 도시철도는 그 동안의 교통문제 해결 뿐 아니라 출근길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지역주민에게 명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또 최근 주민의 핫 이슈였던 국우터널의 무료화 결정은 칠곡주민에게 엄청난 선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동안 정당활동을 하다 지난해 선거에서 당선된 이동욱 초선의원은 `살기좋은 칠곡, 더불어 사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주민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1-07-11

`알찬 신문` 대구·경북 미래 밝힌다

`경북매일`은 오늘 6000호를 발행하기까지 무엇을 보도해 왔을까? 역사의 거울인 신문의 1면 기사들을 통해 경북매일은 어떻게 걸어왔고, 역사는 어떻게 흘러 왔는지를 함께 살펴보자경북 등록 1호 신문인 `경북매일` 창간호(1990년 9월23일자)에는 `인간 회복의 당위성을 지닌 참 신문 제작`을 향한 각오와 포철(현 포스코)이 법인세를 추징당했다는 기사가 실렸다.1997년 12월26일자에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포항과메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된 제1회 포항과메기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소식이 담겼다.과메기 축제는 이제 포항 외에 서울 등 전국 주요도시와 외국에서도 열리고 있다.같은 해 7월17일자에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옥수 신창원이 탈옥 2년6개월만에 전남 순천서 TV 수리공 제보로 검거됐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같은 해 6월16일에는 서해서 남북 함정이 교전했다는 기사가 1면 머리를 장식했다.2000년 6월10일 자에는 포철의 완전 민영화 소식을 전했다.나흘 뒤 6월14일자에는 남북 정상이 만나는 소식을 특집했다.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만남으로 인해 전세계 시선이 한반도로 집중됐고 양측은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했다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6000호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령 3000호는 같은 해 9월22일자였다.그날 3000호 특집에는 잡초에 묻힌 경북 농공단지 현장 르포를 통해 농촌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같은 해 12월11일 자를 통해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김대중 대통령이 새천년 첫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인권 평화를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한 각오도 함께 소개됐다.2001년 10월9일 자에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아프카니스탄을 공습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고, 같은 해 12월1일 자는 하종갑 작가의 새 만화 `고지비` 연재 안내와 함께 지면 대쇄신을 알렸다.2002년 4월16일 자에는 중국 민항기 김해공항 추락사고의 안타까운 소식이 올랐다.보도는 128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실종됐으며 그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민 73명이 탑승해 20여 명이 생존했다고 했다.같은해 4월26일 자에는 지금도 매년 어린이 날 펼쳐 오고 있는 제1회 경북어린이 백일장을 개최한다는 사고가 실려 있다.2002년 5월29일 자는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축제인 한일월드컵 개막을 알렸다.한국은 6월4일 폴란드와의 첫경기 승리를 시작으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냈다.같은 해 9월2일 자에는 15호 태풍 `루사`로 인해 김천 등이 물바다를 이루면서 사망 실종자가 89명에 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1면 머리기사로 실려 있다.같은해 12월20일 자에는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 기사가 1면 머리를 장식했다.`민초들의 반란`이라는 분석까지 붙은 16대 대선에서 당선한 노무현 당선자는 “대화와 타협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갈 것”고 밝혔다.2003년 1월27일 자에는 사상 초유의 인터넷대란으로 전국이 마비됐다는 소식이 실렸다.같은 해 2월19일 자에는 대구지하철 방화로 사망자가 130명이 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1면 머리를 무겁게 했다.같은해 10월3일 자에서는 프로야구 이승엽 선수가 아시아 홈런 기록인 56호 포를 날렸다는 소식이 읽는 이를 즐겁게 했다.2004년 11월15일 자에는 대구~포항 고속도로 개통에 앞서 경북매일신문이 주최한 전국 인라인 마라톤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는 소식이 보인다.2005년 6월23일 자에는 창간 15주년 특집으로 대구·경북의 기를 살리자는 기획물이 실렸다.100년 후 먹고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이 1면 머리기사로 오른 것이다.같은 해 10월4일 자에는 관람객 11명이 압사하고 77명이 부상한 상주 자전거축제 가요콘서트 야외녹화장 사고 소식이 사회면을 채웠다.같은 해 11월3일 자에는 전국적으로 주민투표까지 실시되며 유치가 과열됐던 방폐장의 경주 입지가 최종확정됐다는 소식이 1면을 채웠다.2006년 3월13일 자에는 포항신항 개항 후 북한 선박이 첫 입항했다는 소식이 1면을 장식했다.같은 해 7월14일 자에는 포스코 창사 이래 초유의 사태였던 건설노동자들의 포스코 본사 기습점거 사실이 톱뉴스로 올랐다.같은 해 9월27일 자 1면에는 울릉도에서 독도를 촬영한 사진물이 게재돼 눈길을 끌었다.2007년 12월20일 자는 17대 대통령으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는 소식을 알렸다.1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부제와 함께 이 당선자가 밝혔다는“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 섬길 터”라는 당선 소감이 곁들여졌다.2008년 4월9일 자는 `대한민국 우주로 가다`라는 제목 아래 첫 우주인 이소연씨를 소개했다.4월10일 자에는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대구·경북 27곳에서 17곳을 승리했지만 사실상 참패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같은 해 6월9일 자에는 새 경북도청 입지로 안동·예천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10만 거점도시로 성장시키겠다며 2010년 착공 2013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는 부제가 달렸다.2009년 5월25일 자에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국민장을 치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실려 있다.이명박 대통령이 봉화마을 분향소를 방문해 조문했다는 부제가 달렸다.같은 해 8월19일 자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실려 있다.1면 사진은 평생 정치적 동지이자 경쟁자로 함께 해온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상 모습이었다.같은 해 9월21일 자 머릿기사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포항 영일만항 개장식 소식이 올랐다.같은 해 9월23일 자는 `포항스틸러스 마법은 진행형`이라는 제목의 아시아 축구제왕 등극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채웠다.12월7일에는 경주 관광버스 추락 사고로 16명이 사망했다는 듣기 힘든 소식이 실렸다.2010년 1월12일 자에는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확정으로 대구·경북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과학비지니스벨트 좌초, 첨단의료복합단지 반쪽, 신재생에너지사업 중복`등의 부제가 눈길을 무겁다.같은 해 1월15일 자에는 대구·경북지역 학생기자를 처음으로 모집하는 사고가 1면에 게재됐다.4월16일 자에는 천안함 함미 인양 사실을 보도했다.그러나 실종장병들은 끝내 살아서 귀대하지 못했다는 게 핵심이었다.같은 해 7월12일 자는 포항유흥주점 여종업원들의 사채를 둘러싼 잇따른 자살사건을 1면 머리기사로 전했다.같은 해 8월30일엔 경북매일 기자들이 한국 기자협회에 가입했다는 내용이 보인다.올해 2011년 1월4일 자는 포항 사상 최악의 눈 폭탄으로 도시가 마비됐다는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3월14일 자에는 일본열도를 덮친 쓰나미를 보도했고 3월31일에는 신공항 유치가 물거품 됐다는 소식이 있었다.5월9일에는 구미 등의 49만 가구 단수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고, 5월16일에는 과학벨트 유치를 염원하며 분노하는 시민의 마음으로 1면이 가득 찼다.5월20일 자에는 왜관 미군기지에 33년 전 고엽제 250드럼을 묻었다는 증언에 따라 지하수 오염 가능성을 걱정하는 기사가 실렸다.6월27일 자는 왜관 `호국의 다리`가 두 동강난 사실을 전했다.지난 7월7일에는 한국이 30년만에 다시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1면을 통해 전해졌다./정리=사회부·경제부 /사진=이용선기자

2011-07-11

경북 해양문화 속 人·生·길 <19> 내 고향은 딴봉입니다 ② 포항시 송도동 형산강

제철소 건설로 물속에 묻힌 고향생계 찾아 뿔뿔이 타향살이 설움 한국 철강 산업 발전의 꿈은 1960년 대 종합제철 건설 계획 수립으로 구체화 되었다. 비록 자본 기술 경험도 없는 무의 상태였지만 박태준 사장을 비롯한 34명은 1968년 4월1일 회사 창립식을 갖고 일관제철소 건설의 대장정을 시작하였다. 1970년 1기 설비 착공식을 가진 포항제철소는 3년 만에 1973년 7월 3일 준공식을 가졌다. 당시 송정리 일대 주민들은 이주 마을인 연일 새마을동네나 해도동 일대에 조성된 주택, 또는 도구 일월동 부근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러나 103만t 체제의 1기 설비로는 우리나라의 철 소요가 절대 부족하였고 그에 260만t 체제의 제2기 설비 확장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부족한 공장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형산강 하류의 땅을 이용하기로 하고 1974년 형산강 유로(강 하구의 물줄기)를 포항 시가지 쪽으로 변경하기 시작했다. 75년 딴봉마을 쪽으로 물길을 돌리고 딴봉 일부의 토양을 퍼서 매립한 후 성토 작업은 끝났으며 이어 2고로 공사가 시작되었고 76년 5월31일 드디어 2기가 준공 되었다. 그 후, 경제 대국으로 가는 역동적 발걸음이 되었던 포항제철소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기업으로 세계시장에 우뚝 섰다. 고향을 물속에 묻은 아픔은 아직도 가슴에 생생하지만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선택이었고 거부할 수 없는 희생이었다는 딴봉 사람들. 36년이란 긴 세월 형산강 물줄기 무심히 흐르는 동안 딴봉사람들은 어떻게 살아 왔고 살고 있을까. 서른 초반 대가족과 이주한 사람이 칠순 바라봐2007년 세운 `딴봉회관` 향수 달랠 유일한 공간“주민들의 이주는 그리 길지 않았어요. 공무원들이 나와서 둘러보고 논과 밭을 기준으로 평당 2천800원 정도 책정된 가격을 통보 하였습니다. 형식상 합의 수용이 되자 이주가 시작됐고 마을 사람들은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지요. 그나마 대책이 있었던 사람들은 서둘러 떠날 수 있었지만 막막한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밥을 먹다가 갈대울타리 너머를 바라보면 중장비가 길을 밀어내고 있었어요. 저도 울며 겨자 먹기로 300만원 남짓한 돈을 찾았지요. 하지만 앞날은 까마득했습니다. 송도와 해도에 집을 마련해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1차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도구 일월동이나 연일 새마을 동네로 가서 세를 들기도 했지요. 대부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며 형산강 물줄기를 바라보았지만 간혹은 대처로 떠나 소식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날, 딴봉회관에서 석재화(67)씨를 만났다. 54평 남짓한 대지에 32평 규모로 지어진 그곳은 딴봉 사람들의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2007년 1월에 마련한 회관 벽에는 향수를 달래며 가진 모임의 단체사진이 차례차례 걸려 있었다. 노모를 포함해 열 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이끌고 딴봉을 떠나던 서른 초반의 석재화씨도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배운 건 없고 푸성귀 심어 거두는 재주가 전부인데 그럴 땅도 없으니 할 일은 노동뿐이었지요. 그러나 그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불규칙한 일자리와 수입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1977년 가족을 송도에 두고 배를 탔지요. 부산과 일본을 오가며 화공약품을 실어 나르는 삼부해운 3호였는데 봉급은 적었고 몰래 외제품 장사를 해야만 돈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그 재주도 없는 사람들은 뒷돈도 챙기지 못했고 독한 약품들을 취급하다보니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저도 1년 반 정도 배를 타고는 결국 송도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그러나 그는 1년 후 다시 해외개발공사에 이력서를 내야했다. 그리고 김해 공항에서 오사카로 가서 배를 탔다. 일본서 철재를 싣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풀어 놓고 다시 곡물을 싣고 돌아와 일본 각지에 풀어 놓는 배였다. 선주는 일본인이었으나 다행히 선장을 비롯한 27명의 선원은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덕분에 명절이면 배 위에서 명절상을 차리고 향수의 시름을 덜 수 있었다. 월급은 회사에서 직접 집으로 송금하였으므로 가족들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리고 84년 겨울, 5년 남짓 탔던 배에서 하선을 하고 돈을 조금 만들어 송도에서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집을 지어 팔며 조금 일어서는 듯 했으나 위기는 인생살이 굽이굽이 끊이지 않고 왔다. 다른 사람들의 근황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근근이 자망선으로 배사업을 하는 친구들과 청림, 도구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이들도 있지만 서울, 강릉, 울산, 대구로 돈벌이를 찾아 떠난 이들은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객지생활을 하는 형편이었다.“85년부터 딴봉마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모임을 할 마땅한 장소도 없었지만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밥을 나누는 일은 행복했지요. 2006년 모임에서 우리 딴봉 출신의 유순자(67)씨가 마을회관을 건립하기로 마음먹고 사비를 털어 대지를 구입하고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1월 지금의 딴봉회관을 준공 하였지요. 규모가 제법 컸던 1차 이주민들은 훗날 제철소의 지원으로 자녀들을 위한 장학회를 설립했습니다만 딴봉은 관도 회사도 지역사람들도 모두 잊어버린 마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고향 딴봉은 잊어서도 잊혀서도 안 되는 포항 사람들 모두의 고향이고 역사입니다.”형산강 둔치에 선 그의 가슴이 스르르 아프다. 어린 시절 추억이 생각나고 세월에 쉬이 늙은 몸이 야속하다. 6·25 사변 중에 북한군이 못 넘어 오도록 솔안다리를 끊었을 때 딴봉 둑을 따라 피난을 가던 사람들, 부녀자와 아이들을 배에 태우고 뱃머리를 붙들고 헤엄치며 넘어가던 사내들의 모습, 시체들이 둥둥 떠내려가던 그 강을 바라보던 딴봉이다. 어떻게든 함께 살아보자고 근대화의 물결에 삶터를 내어주고 물에 잠긴 내 마을 딴봉이다. 저 우뚝 선 공장에 가서 힘차게 망치질을 하고 싶은 꿈을 꾸던 사람들이다. 살로, 삘로떼가 날던 갈대밭은 다시 오지 못해도 후손 대대로 딴봉을 기억할 표석은 이 강가에 서야 한다. 바람이 그의 이야기를 물고 상류를 향했다. 비늘처럼 일어선 물결에 강이 꿈틀거렸다. 멀리 형산(兄山)과 제산(弟山) 사이로 노을이 지면 강 너머 포스코는 오색찬란한 빛을 밝힐 것이다.

2011-07-11

"독자와 함께 시대를 호흡해 나가겠습니다."

발행인 편지 경북매일이 지령 6000호를 맞았습니다. 발행인으로서 먼저 독자 여러분과 대구 경북 시도민들께 큰 절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맑고 정직한 신문`을 모토로 하는 경북매일은 1990년 2월10일 경상북도 1호 신문으로 등록한 뒤 발전을 거듭, 1993년 1월20일 1천호를 찍었고 21년여 만인 오늘 지령 6천호를 만들어 냈습니다.경북매일은 대구 경북 시도민들의 관심을 충실히 반영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매체가 되기 위해 그동안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2005년 2월에 한국신문협회에 가입했고 그해 9월 한국ABC 협회에도 가입해 명실공히 전국적인 지역 일간지로서의 토대 또한 차곡차곡 쌓았습니다.경북매일은 앞으로의 무한경쟁시대에 대비, 최근 더욱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한국기자협회에 가입했고 올 1월부터는 제호를 경북매일로 바꿨습니다.또 주 2회 24면 발행을 단행했습니다. 독자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발행부수도 증가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거대 자본과 중앙의 논리를 앞세운 수도권 중심의 중앙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조건에서 이루어낸 성과라 스스로 자랑스럽습니다.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되돌아보면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영광 보다는 좌절과 인내가 필요한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과 지역민들의 격려가 큰 힘이 돼 경북매일은 고통스럽고 험난한 질곡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경북매일이 올곧게 갈수 있도록 지도하며 따듯한 위로를 보내 주신 지역민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언론 환경은 날로 척박해지고 있습니다. 중앙 메이저 언론사의 물량 공세 속에 공중파 TV 와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의 가세, 여기에다 케이블 TV와 종합편성채널까지 끼어들면 지방에서 발간되는 경북매일은 더욱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경북매일은 이런 위기의 시대를 오히려 반전의 계기로 삼겠습니다. 작지만 강한 신문으로 시대와 함께, 독자와 함께 호흡하기 위해 어떤 고통도 극복해 나갈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변화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사랑하는 경북매일 독자 및 대구 경북 시도민 여러분,경북매일은 앞으로 지면을 통해 시대와 호흡하고 중앙과 지역 간 소통을 위한 신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또 독자 여러분들의 뜻을 더 잘 받들고 도움이 되는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나아가 기다려지는 신문, 읽으면 행복해지는 신문을 제작하도록 고민하겠습니다. 경북도 등록 1호 일간지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지면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를 통해서도 지역민과 더 가까워지는 경북매일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지령 1만호, 10만호를 만들어 가겠습니다.독자와 지역민들의 변함없는 관심과 편달을 당부 드립니다.2011년 7월 11일경북매일 발행인 최윤채 올림

2011-07-11

경북매일, 경북 신문 중 첫 6000호

대구·경북 언론 어떻게 변해 왔나 6000호 발행은 `경북매일`이 경북지역 신문 중에서 처음이다. 대구·경북을 통털어서는 연륜이 더 오랜 신문이 있지만, 두 권역이 나뉘고 난 후 경북에서 신문이 태어나기 시작한 건 21년 전부터이고 경북매일이 그 첫번째 신문이기 때문이다.그럼 그 이전 대구·경북 지역 신문들은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성장해 왔을까?전문 자료들에 따르면 대구·경북에 처음 그런대로 형태를 갖추고 나타난 신문은 1901년 대구일본인협회에서 주간지 형태로 발간한 `달성주보`였다. 하지만 등사판으로 제작되던 달성주보는 4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유신정권 언론정책으로 대구·경북권 `1도 2지` 체제 형성민주화 때 속속 복간… 1990년 경북 최초 `경북매일` 창간신문시장에도 거대자본 위세 거세져 지방언론 존립 위협1906년 1월엔 대구 일본거류민단 유지 30명이 민영신문인 `대구일보`를 창간했다. 그러나 2호에 `반신불수의 한일협약`이란 사설을 실었다가 곧바로 폐간됐다.같은 해 3월 일본인과 지역 유지들이 동참해 `대구실업신보`를 격일간으로 발행했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다음해 1월 일본인에게 경영권이 넘어갔고, 일간으로 발간 주기가 바뀐 뒤 `대구신보`가 됐다가 다시 `대구일일신문`으로 바뀌었다.대구일일신문은 일제시대 총독부 시책의 선전뿐만 아니라 한민족을 멸시하는 보도를 일삼아 민족감정을 격발시켰다. 그럴 때 일본거류민단이 1908년 9월 `대구시보`를 창간했으며, 당시 경상관찰사이던 박중양의 중재로 대구일일신문과 합병해 같은 해 10월 `대구신문`으로 제호를 바꿨고 1912년엔 `조선민보`로 변경했다.1924년에는 `대구상보`로 출발한 `남선경제신문`이 발행됐다. 1928년 10월에는 `대구일보`가 창간됐다. 이후 1940년대에 들어 일본은 전쟁으로 인한 물자부족을 이유로 일도일지(一道一紙) 정책을 내세워 앞서 본 조선민보와 대구일보를 `대구일일신문`으로 통합됐다.1945년 광복이 오면서 우리 손으로 만드는 신문들의 창간이 활발해졌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문을 닫은 대구일일신문 사원들이 그 기계 등을 접수해 `대구일보`를 창간한 게 대표적 경우였다. 같은 해 10월엔 광복 후 첫 민족지를 표방하는 `영남일보`가 창간됐으며, `민성일보` `경북신문`이 뒤를 이었다.1946년엔 대구일보가 `대구시보`로 제호를 변경했고, 같은 해 전국 지방지 첫 경제신문인 `남선경제신문`이 창간됐다. 남선경제는 1950년 천주교대구교구유지재단에 인수돼 `대구매일신문`으로 제호가 변경됐다.그런 중에 6·25전쟁이 터지자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들로 대구는 북새통을 이뤘다. 영남일보는 당시 전국 최대 일간지로서 신속한 전황 보도에 앞장섰다. `대구시보`는 1953년 6월1일 경영권이 바뀌면서 다시 `대구일보`로 되돌아갔다.하지만 군사독재가 시작된 후 대구권 신문들은 많은 곡절을 겪어야 했다. 1946년 7종이었던 일간신문이 1961년 5·16 직후, 1970년대 초반 10월 유신 후, 1980년 말 신군부 쿠데타 후 등 세 차례에 걸쳐 폐간 또는 통합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그 첫 희생물은 대구일보였다. 대구일보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 전단지 인쇄사건으로 1972년 3월30일자로 폐간됐다. 그럴 때 유신정권 언론정책의 일환으로 내세워진 것이 `지방지 통폐합 정책`이었다. 그렇게 해서 대구권에서는 1972년 `대구일보`와 `대구경제일보`가 폐간되어 대구·경북에는 2개 신문만 남게 됐고, 1도2지(一道二紙) 체제가 만들어졌다.다음 희생양은 영남일보였다. 1980년 7월 중순부터 비상계엄 아래 사전검열이 시행돼 신문들이 위기에 몰리던 중 그해 11월 1도1지 정책이 제시되면서 `대구매일신문`으로 흡수통합된 것이다. 창간 35년 만에 지령 1만1천492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됐다.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것.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의 길에 접어들면서 신문 목을 죄던 언론기본법이 폐기됐다. 신문의 신규등록이 가능하게 됐으며, 그와 함께 일도일지 정책으로 폐간됐던 신문을 중심으로 속속 복간이 이루어졌다. 영남일보는 1989년 4월 복간했고, 대구일보는 2001년 11월 재창간 됐다.하지만 신생지들의 앞날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한번 잃어버린 기반을 제대로 만회하기는 너무도 힘겨웠다. 경영난이 겹쳤고 경영권자가 잇따라 바뀌었다. 그런 가운데 많은 기자와 종사자들은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가야 했다. 영남일보 경우 2002년 11월7일 회사정리 계획안이 법원으로부터 인가 결정 받고서야 제 길을 갈 수 있게 됐다.저런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구가 광역시로 분립한 이후 경북에서는 처음으로 1990년 중반 `경북매일`이 창간됐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현재 대구·경북에서는 매일신문, 영남일보, 대구일보, 대구신문, 경북매일, 경북일보 등등이 발간되고 있다.하지만 외환위기 사태 이후 비수도권 경제가 약화되면서 언론의 여건도 매우 나빠졌다. 반면 거대자본에 의지한 서울권 신문들은 계속 비대화돼 비수도권 독자들까지 잠식 중이다. 더 악화되도록 방치한다면 지방의 고민을 함께 하고 지역 여론을 한데 모으면서 지역 발전의 견인차가 될 지방언론이 존립마저 위협받을 상황이다./이곤영기자lgy1964@kbmaeil.com

2011-07-11

지역 언론사들 앞다퉈 본사 이전… 사세 확장 격돌

소설 2014년 새 도청소재지 언론 가상도 이제 얼마 후면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옮겨간다. 얼핏 듣기에 단순히 지방정부 기관들이 몇몇 다른 도시로 옮겨가는 정도로 여겨질 수 있는 일이다.하지만 다른 지방 전례를 보면 이건 그런 정도로 끝나는 사소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드디어 대구와 경북이 실제적으로 나뉘어지는 사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말만 나뉘어졌을 뿐 그 둘이 느낌으로는 하나일 뿐이지만 앞으론 달라진다는 뜻이다.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지역언론에도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대구에는 대구의 언론이 있고 경북에는 또 경북대로의 언론이 독자적 영역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앞서 둘로 나뉜 부산과 경남 사이에 그런 일이 생겨 있다.경북도청이 옮겨갈 즈음 이 땅 언론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신문기자였고 지금은 방송기자로 일하고 있는 소설가의 상상력을 통해 그 앞날을 그려보자.2014년 6월 초여름. 경북 안동시 풍천과 예천군 호명을 아우르는 경북도의 행정타운 건설현장은 유난히 더웠다. 얼마 전 이곳에 문을 연 커피숍에 모여 앉은 기자들은 기대에 들뜬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오는 9월 도청과 도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유관기관들이 이전해오는데 따른 기획 아이템을 구상하느라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기자들은 취재와 기획 아이템을 찾는 것도 문제지만 일찍 찾아온 더위 때문에 녹초가 됐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행정타운의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곤했다.3년 전만 해도 경북도청 이전이 계획대로 전개될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러나 도지사는 올 연초 신년사를 통해 6월이면 안동시 행정타운에 신축 중인 신청사가 준공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8월말까지 대구에서 안동으로의 도청 이전 작업을 완료하고 9월에는 역사적인 경북도청 이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를 것이라는 스케줄을 내놓았다.풍천의 행정타운 건설현장 가운데 우뚝 솟은 경북도청 신청사 주변으로 경북지방경찰청과 경북도교육청이 나란히 위용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는 이들 관공서 건물이 썰렁한 느낌이었지만 일부 기업이 신축한 빌딩과 몇몇 상가건물이 그나마 중간에 끼어 숨통을 트게 했다.A사 기자 한승기(가명)는 에어컨 바람을 쐬며 냉커피를 마시다말고 투덜댔다.“행정타운이라는 것이 관공서 빼놓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문제야. 업무용 빌딩과 상가와 정주기반이 다 갖춰지기 까지는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말야…. 안 그래요?”한 기자는 오는 9월 도청이 이전해 온다 해도 인구 10만 명의 정주여건이 갖추어진 완벽한 행정타운이 들어서는 것은 아니니까, 어차피 행정 신도시 건설이 완공되는 2027년까지는 고생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겁을 주었다.기자들은 6월 중순인데도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뛰어넘자, 점심을 먹고 난 뒤 에어컨이 잘 돌아가는 커피숍에서 들어가 좀처럼 일어설 생각들이 없었다. 기자들은 커피를 마시며 본격화되고 있는 도청 이전의 스케줄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B사 기자 정충기(가명)는 행정타운에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언론사들의 미래를 제법 그럴싸하게 분석했다. 독립사옥을 신축한 언론사도 있는가 하면 빌딩을 임대해 입주하려는 언론사도 있었다.“기자들이야 행정신도시 환경에 재빨리 적응하고, 취재원 확보하고, 도청 이전에 따른 경제효과와 행정타운의 기능과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찾아내 기획기사를 쓰고…. 뭐 그렇게 하면 되지만 경영진들은 살얼음판 걷는 기분일 거야.”정 기자의 말대로 언론계에서는 도청 이전과 동시에 취재와 편집기능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도록 준비한 신문사로 4~5개 사를 꼽았다. 포항과 대구에 본사를 둔 신문사들이 도청 소재지를 새로운 고지로 삼아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안동시 풍천의 행정타운에 가장 먼저 신사옥을 건립한 A일보는 벌써 2년 전에 본사가 있는 포항을 포기하고 아예 안동으로 이전하기로 내부 결정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A사 대표이사 박만수(가명)는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해 5월 제주에서 열린 신문협회 모임에서 타사 사장들에게 자사의 계획을 밝혔었다.“포항에 있는 본사를 완전히 폐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 본사 체제를 유지할 겁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도정의 중심인 안동에다가 제1본사의 기능을 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A사 한 기자는 그런 사실을 뒷받침하듯 말했다.“우리 회사는 늦어도 8월까지 편집국과 광고부의 인력 절반을 안동 본사로 발령을 낸다는 내부 지침을 한 달 전에 통보 받았는걸.”포항에 본사를 둔 B사 역시 A사에 대응해 안동 행정타운에 신사옥을 건립 중에 있었다. 도청의 행정기능이 대구를 벗어나 독자적인 공간을 무대로 전개되는 만큼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이라고 했다. B사도 A사 처럼 양 본사 체제로 업무를 확대하는 방향이었다.이들 A, B사 보다는 늦게 결정을 내린 C사는 아예 본사를 안동 행정타운으로 완전히 옮긴다고 했다. 언론계에서는 C사 경영진의 생각이 A, B사와 다르다고 보고 있다. C사는 포항에 대한 미련 때문에 본사 기능을 둘로 쪼갤 경우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꼴이 된다고 분석한 것이다. C사의 대표이사 김수기(가명)는 지난 1월 신년교례회 자리에서 기관장들과 환담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었다.“포항의 광고시장이 상대적으로 좋고 충성도 높은 독자도 많은 것은 인정합니다만, 신문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도지(道紙)를 표방한다면서 포항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가당착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지방신문이 살기 위해서는 도정의 중심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C사 기자 조부영(가명)은 자기 회사 사장의 말에 힘을 실려주려는 듯 말했다.“9월 까지 안동 행정타운으로의 본사 이전을 한다는 통보를 받았지. 그리고 포항의 본사를 안동으로 옮기는 대신 포항에는 별도의 취재본부를 둘 계획이라고.”대구에 본사가 있는 D사 기자 김도영(가명)은 대구지역 신문사들은 포항에 본사가 있는 A, B, C사와는 다르다고 말했다.“대구광역시가 갖고 있는 정서는 기초자치단체인 포항과는 확연히 다르지. 우리 신문사는 대구라는 지방도시를 밑거름으로 성장해온 터라, 자칫 도청 이전지로의 신문사 기능을 이전할 경우 역풍에 휘말릴 위험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어. 그 때문에 양 본사 체제라는 카드도 선뜻 내놓을 수 없다는 거야. 대구는 보수적 성향이 짙은데다가 결집력이 높은 지역적 특성으로 `우리 것` 이라는 자부심이 센 도시거든.”김 기자는 자기 회사 편집위원 정영호(가명)가 대구광역시 간부들과의 식사자리에서 했던 말을 흉내 냈다.“대구시민들이 D일보가 우리 신문인줄 알았는데 어느 날 안동의 경북도 행정타운으로 신문사 기능을 분산한다던지 혹은 이전한다는 소리가 나왔을 때, 무슨 소리를 하겠습니까? 뻔한 거 아닙니까? 차라리 안동에 있는 기존의 취재본부를 강화시키는 정도라면 모르겠지만요.”대구에 있는 E사의 기자 이주형(가명)은 자기 회사의 입장도 비슷하지만, D사와는 달리 경북도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내부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편집국장이 회의 자리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대구광역시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북도 역시 그만 못지않아. 지금은 경북도 산하 기관이 모두 대구시내에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막상 도청 산하 기관이 몽땅 안동으로 빠져 나간다치자. 신문사로서는 안동의 경북도 행정타운을 놓을 수가 없을 거니까.”이 기자는 그 때문에 자기 회사는 대구와 안동의 양 본사 체제로 가동하는 쪽으로 내부 조율이 끝났고, 9월 도청 이전과 함께 안동본사 개소식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기자들은 커피숍을 떠나 슬슬 회사로 복귀할 준비를 하면서 하품을 했다. 이미 선발주자로 안동에 상주하고 있는 기자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신문사들의 사옥 이전에 따른 비용부담과 직원들의 정주여건 해결 등을 문제로 열을 올렸다. A사 황 기자는 “직원들의 이사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문제지만 자녀들의 학교 문제가 더 크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결국 얼마 동안은 안동의 신행정타운에 문을 연 언론사 소속 직원들은 주말이 오면 대구나 포항으로 자동차를 몰고 달려가는 주말부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본사 이전에 따른 비용부담도 문제로 떠올랐다. C사 조 기자는 “가뜩이나 경영이 어려운 신문사인데 신사옥을 건립하면서 부채비율이 너무 높아질게 뻔하다”면서 “본사 이전 이후 경영정상화가 늦어질 경우 자칫 부도가 날까 두렵다”고 말했다.행정타운 상가 커피숍에 모여 앉은 기자들은 자리를 일어서면서도 오는 9월에 이전을 완료하는 경북도 신청사 시대에 부풀어 있었다. 기자들은 9월이면 도청과 도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유관기관들이 이전을 해오지만, 기자들에게는 선구자적인 희생이 요구될 것이라 데 공감했다. 2020년 까지는 자족인구 10만 명을 위한 기반시설과 정주여건이 완성되고, 2027년에는 행정복합 자족도시로 완성된다는 청사진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짧지 않은 기간을 지혜롭게 극복해야하는 언론사의 경쟁력 부분에 대해 저마다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태양이 기자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9월 도청 이전에 맞춰 생산해 낼 기획 아이템과 특집기사를 고민하느라 골머리를 썩이던 D사 김 기자가 불쑥 눈앞에 우뚝 모습을 드러낸 경북도청 신청사를 바라보며 구구단을 외듯 슬로건을 외쳤다.“전통이 살아 있는 문화도시! 저탄소 전원형 생태도시! 명품 행정도시!”C사 조 기자는 달구어진 자동차 문을 열면서 다음달 1일 개통되는 안동시 풍천면 행정타운에서 포항으로 연결되는 4차선 국도 62km를 떠올렸다.“그래도 1시간 넘게 걸리던 운행거리가 절반 가까이 단축된다니 천만 다행이지 뭐야!”조 기자는 이번 주말 자동차를 달려 가족이 기다리는 포항으로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6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경북도 신청사를 들락거리는 차량행렬이 활기찼다. 나무를 심는 조경회사와 사무실 집기를 실어 나르는 트럭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기자들은 안동시 풍천 행정타운 북서쪽의 유난히 푸른 검무산을 바라보며 9월에 펼쳐질 경북도의 새로운 역사의 현장을 저마다 상상하느라 더위도 잊었다./글=조중의(소설가·포항CBS보도국장)

2011-07-11

대구는 동계스포츠 메카… 지역 출신 빙상선수들 선전

경신고·정화여고 국가대표 10여명 배출장권옥 감독, 미국서 인정 안톤 오노 지도중·고때 딴 도시 전학간 특출한 인재도 상당수 대구출신 빙상인 중에는 국가대표를 거친 쟁쟁한 인물이 많다.특히 대구 경신고와 정화여고는 대구 경북 빙상의 메카라고 할 만큼 쇼트트랙 국가대표를 10여명이나 배출한 명문으로 전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경신고 출신으로는 현재 러시아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는 장권옥(45)감독, 미국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전재수(43)감독, 영국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전재목(37) 감독, 올해 제25회 동계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출전한 김성일(20·단국대) 선수, 민용(30)선수, 스피드스케이팅을 하다 최근 은퇴한 정선현씨 등 6명이 유명하다.장권옥 감독은 미국 쇼트트랙 감독을 맡아 안톤 오노를 키운 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미국에서의 실력을 인정받아 동계 종목의 강국인 러시아 감독을 맡을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과 러시아를 한국 쇼트트랙의 최대 경쟁국으로 성장시킨 것이다.미국과 영국에서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내고 있는 전재수·전재목씨는 형제로 유명하다. 이들의 현역 쇼트트랙 선수시절의 뛰어났던 기술은 지금도 따라갈 선수가 없을 정도여서 조만간 한국의 쇼트트랙을 위협하는 선수들을 키워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용 선수는 현재 쇼트트랙에 대한 열정으로 박유석 경신고 코치와 함께 맹연습하며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정화여고 출신으로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남아공까지 갔던 김소희(34)씨,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3천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상미(31)씨, 2011년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로 출전한 김보름(17)선수 등 3명이 손꼽힌다.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를 맡았던 김소희씨는 계명대를 졸업하고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3천m 계주 금메달, 1천m 동메달, 1994년 세계선수권대회 1천m 및 1천500m 금메달을 획득하고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소 주임연구원으로 있다.안상미씨는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 출전해 전이경, 원혜경, 김윤미와 함께 3천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계명대를 졸업한 후 2001년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하다가 강릉시청 실업 선수로 옮겼으며 은퇴 후엔 대구시체육회에 근무하기도 했다.현재 빙상 종목 유일한 국가대표인 김보름은 원래 쇼트트랙을 하다가 스피드스케이트로 전향한 선수로 기량이 점점 향상돼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현재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를 맡고 있는 송경택(27)씨는 중학교 때 서울로 전학 갔지만 고향은 대구이며, 은퇴한 서호진씨도 서울로 전학 간 경우다. 진선유(22) 단국대 코치는 경북여고 재학 중 빙상의 꿈을 키우기 위해 서울로 전학 갔고, 대구여고 출신 전다혜(22) 선수는 전북도청 소속 실업선수로 활약하고 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7-08

“겨울 스포츠를 키워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치를 계기로 한국의 동계스포츠를 키우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한국은 그동안 쇼트트랙 강국으로만 통해 오다가 작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피겨여왕으로 탄생했고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도 금메달을 휩쓸어 빙상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동계스포츠의 양대 축인 스키와 썰매에서는 세계 무대에서 입상한 선수가 없는 등 열악하다.이 지역 또한 대구의 쇼트트랙, 경북의 컬링을 제외하고는 스타급 선수를 배출한 종목이 없고 인프라도 변변찮다. 지역 동계스포츠 스타 발굴과 인프라 구축, 학교팀 및 실업팀 창단 등 종목 활성화가 시급한 상황이다.◇빙상의 메카 대구·경북 = 대구·경북 빙상인들은 겨울철 대구 수성못과 동촌 등을 훈련장으로 활용하며 빙상종목의 맥을 이어왔다.인프라는 열악했지만 지역출신 빙상스타 김소희(정화여고·계명대 졸업) 선수가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500m와 30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3000m에서 금메달,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것을 계기로 당시 빙상연맹과 아이스하키협회에서 빙상종목 선수 육성을 위해 대구시청에 실내빙상장 건립을 요청, 국제규격의 대구실내빙상장이 탄생하게 됐다.1995년 국제 규격의 대구실내빙상경기장이 준공되면서 쇼트트랙을 비롯해 스피드 스케이팅 훈련장으로 활용, 빙상 인구의 저변확대와 선수육성 등 동계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이후 1995년 처음으로 전국 10여 개 시·도에서 480여명의 초등학생이 참가한 제1회 교보생명컵 전국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 대회가 열렸다. 이어 전국 시·도에서 154명의 우수 선수들이 참가한 제11회 회장기 전국남녀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 대회도 유치돼 본격적인 빙상 메카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했다.그 뒤 1997년 제1회 대구시장기타기 빙상경기 대회를 개최하는 등 빙상종목에 집중 투자하며 대구는 안상미(정화여고·계명대 졸업) 선수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3000mR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데 이어 2005년 진선유(사대부중 졸업) 선수가 세계선수권 종합1위,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3관왕,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3관왕(1000m, 1500m, 3000mR) 등 2000년대에 들어서며 국가대표 절반 이상이 대구 출신 선수들로 채워질 정도에 이르렀다. 대구의 빙상 황금기가 도래한 것이다다.하지만 대구는 동계종목 인프라 부족과 그에 따른 선수육성의 어려움 등으로 여전히 빙상종목만 명맥을 유지할 뿐 다른 동계종목은 전국체전에서조차 입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최근에는 김연아가 피겨여왕으로 등극하며 종목 무게중심이 쇼트트랙에서 피겨로 넘어가고 있고, 스타선수 부족으로 빙상종목의 관심도마저 점차 퇴색하는 실정이다.◇빙상종목 선수 육성과 인프라 마련 = 우리나라는 지난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를 따내며 종합 5위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종목은 여전히 빙상에 치우쳐 있다.따라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상황에서는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뿐만 아니라 스키, 컬링, 아이스하키, 루지 등 종목의 다양화와 우수선수 육성은 물론 동계종목 인프라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국제 이벤트는 유치했으나 빙상종목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불모지인 현 상황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남의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지역의 경우에는 동계종목의 훈련장으로는 15년이 넘은 대구실내빙상장과 경북 의성의 국제컬링장이 유일하다. 게다가 대구실내빙상장은 쇼트트랙은 물론 피겨, 아이스하키 등 빙상 종목의 훈련장으로 활용되며 일부 종목은 밤 12시를 넘어 훈련을 해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따라서 지역에서는 빙상종목 중에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과 쇼트트랙 경기장,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건립해 선수들이 훈련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11-07-08

“평창대회 메달 꼭 안기고 싶어요”

의성여고 선수 6명 주니어 국가대표로 맹활약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이 전해진 7일 의성군 의성읍 의성컬링센터에서는 미래의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는 어린 선수들이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더운 바깥 날씨와 다른 영하의 경기장이지만 선수들 이마엔 구슬땀이 맺혀 있었다.의성여고 2년 김경애양은 “평창올림픽 개최 소식을 듣는 순간 몸에 전율이 왔다”며 “열심히 해 국가대표가 돼 메달을 따고 싶다”고 했다. 의성여고에는 현재 8명의 선수가 있으며 이 중 6명은 주니어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을 정도로 수준급이다.특히 김경애 선수는 대회에 나갔다 하면 최우수 선수로 뽑힐 만큼 발군의 실력을 갖춘 유망주다.의성여중 2학년 때 주위 권유로 시작했다가 3년 만에 국가대표 에이스를 노릴 만큼 큰 재목으로 성장했다.김 선수는 “일단은 2014년에 열리는 소치올림픽때 국가대표가 되는 게 목표다. 그 이후 평창대회까지 열심히 해 조국에 메달을 안기고 싶다“고 다부진 모습을 보였다.경북 의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컬링의 메카다.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의성여고 외에 남녀 초등부를 시작으로 중, 고, 일반부 등 모든 연령대에서 컬링팀이 조직돼 있어 군 전역이 컬링 열기로 후끈거린다. 현재 의성의 컬링선수는 약 130여명으로 저변이 매우 넓다. 이 가운데 꿈나무랄 수 있는 남녀 초·중·고 팀에는 팀당 5명씩, 모두 30명의 어린 선수들이 학업과 컬링을 병행하며 내일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맷돌 모양의 둥글넓적한 돌(스톤)을 살며시 굴린 뒤 빗자루처럼 생긴 막대(블러시)로 얼음 바닥을 비벼가면서 돌의 움직임을 조절해 상대팀 돌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면서 점수를 올리는 컬링은 무엇보다 2명(2인조), 혹은 4명(4인조)의 호흡과 집중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경기다.서구에서는 한 가족이 같은 팀을 이루는 일이 많은 다소 특이한 종목으로 통한다. 의성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모와 함께 컬링을 즐기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친척 남매가 같은 길을 걷는 등 가족이 함께 하는 스포츠로 자리잡는 분위기다.그러나 어린 선수들이 이렇듯 장차 컬링 세계 최강을 꿈꾸며 묵묵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컬링의 갈길은 아직 멀다.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비인기 종목인데다 올림픽 출전도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의성여고 김경섭 컬링감독은 “`몸으로 두는 바둑`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컬링의 특성상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모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평창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의성 컬링이 한단계 더욱 발전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1-07-08

대구·경북 실내빙상장 고작 2곳… 유망주들이 떠난다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걸 계기로 대구·경북의 동계스포츠 수준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동계 종목 학교 교기 육성과 빙상 환경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7일 지역 빙상계에 따르면 대구의 경우 현재 동계 종목을 교기로 정한 학교는 고교 3개, 중학교 3개, 초교 8개 등 13개교에 지나지 않는다.시설도 열악해 대구 경우 학생 선수들이 빙상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은 대구실내빙상장 단 한 곳 뿐이다. 또 이 대구 유일의 실내빙상장 경우에도 동호인들과 학교체육 등으로 인해 쇼트트랙과 스피트스케이팅 선수들이 연습할 여유를 빼앗기고 있다. 게다가 시설 노후화로 실내가 춥고 빙질 유지가 잘 되지 않는 열악한 상태에 처해 있다.경북 경우 전체 972개 초중고교 중 빙상·스키 등 동계스포츠를 교기로 선정해 육성하는 곳은 거의 없다. 다만 의성에서 컬링 종목의 육성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안동의 길주초교, 안동대부설초교, 안동서부초교, 복주초교, 강남초교, 송현초교, 길주중, 성창여고 등 8개 학교 정도에서만 빙상이 육성되고 있다.경북도내 시설 또한 미약해 의성의 컬링장을 제외하고는 구미·경주·안동 등 큰 도시에조차 제대로 된 실내빙상장이 없다. 때문에 안동 빙상선수들은 겨울철 인근 암산유원지에 가 연습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이렇게 여건이 열악하자 지역의 유망 선수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서울이나 경기지역으로 전학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경신중 출신 임효준 선수는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해 대구·경북지역 빙상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진학해 지역 빙상계를 허탈하게 만들었다.이런 일은 어제 오늘의 일만도 아니다. 전국적 명성을 얻어 있는 빙상계의 진선유 코치, 송경택코치, 서호진 선수 등도 이미 중학교나 고교 재학 중 서울로 전학 갔다. 그나마 지역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선수들은 단국대와 한국체대에 진학해 추가로 대구를 빠져 나갔다. 때문에 이 지역은 후배들을 다독여줄 선배가 없는 상태가 돼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하고도 마치 빙상의 불모지처럼 비쳐지게 됐다고 빙상인들은 안타까워했다.저렇게 환경이 취약해지면서 대구 경우 학교 교기 선수가 초교 60명, 중학교 25명, 고교 17명 등 모두 105명에 그치고 그마저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10여년 전에만 해도 역내 빙상 선수층은 500명 이상에 달했고, 장권옥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 등 20여명의 유명한 인재를 배출하기도 했다.또 경북에선 의성의 컬링팀들이 전국 대회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등 현재도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 올해 초 동계체전에서 의성여중이 다시 금메달을 따 3연패를 달성했고, 의성고·의성공고가 은메달, 의성중·의성여고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도교육청은 컬링을 동계체전 전략종목으로 선정, 경기단체 및 각 팀 책임 아래 특별훈련 및 현지 적응훈련을 실시 중이다. 의성에선 현재 의성여중이 컬링을 교기로 선정해 선수를 키우고 있고, 의성남부초교, 의성중, 의성여중, 의성고, 의성공고 등에 컬링팀이 만들어져 육성되고 있는 것이다.대구의 현실에 대해 경신고 박유석 빙상코치는 “노후된 대구실내빙상장의 열악한 여건 탓에 운동할 장소가 없는 현실이 대구 경북을 빙상의 불모지로 만들고 있다”면서“이로인해 대부분의 유망주들이 학교 교기에 의지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코치를 찾아다니며 연습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도의 특성상 도시지역일지라도 인구가 많지 않아 제대로 된 빙상경기장이 없는게 현 실정”이라며, “앞으로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도교육청차원에서도 동계스포츠 육성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김영태·이창훈기자piuskk·myway@kbmaeil.com

2011-07-08

의성 컬링 꿈나무들 세계 정복을 꿈꾸다

국내 컬링의 본고장 의성 동계 스포츠의 꽃 피운다 2018 평창 올림픽 유치로 경북 동계스포츠도 새 도약의 계기를 맞으면서, 국내 동계스포츠 지존의 자리를 지키며 세계적인 경쟁력까지 갖춘 경북 의성의 컬링을 세계화 실현의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국내유일 전용구장 국제경쟁력 갖춰지역팀 동계체전 전종목 석권 기염`국제대회 유치` 관광상품으로 개발빙판 위의 체스로 불리는 컬링은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등의 정식종목이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50여개 국이 세계컬링연맹에 가입해 있고 특히 유럽과 북미에서 동계스포츠의 꽃을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우리나라에는 1994년에 도입됐고 경북에는 1995년 본격 시작된 뒤 국내 컬링의 맹주 역할을 맡았다. 2006년 의성군에 국내 유일의 컬링전용구장까지 건립, 국내 컬링의 본고장으로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의성군에는 의성초교, 의성남부초교, 의성중, 의성여중, 의성고, 의성여고, 의성공고에서 컬링 선수단을 운영 중이다. 이후 경북의 컬링은 2010년 동계체전에서 8개팀이 출전해 금메달 6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 전종목을 석권하는 등 국내 대회 지존의 자리를 뺏기지 않고 있다. 더욱이 1996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국가대표의 핵심멤버가 모두 경북선수로 선발돼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했고, 그동안 2002년 아시아태평양선수권대회와 2003년 아오모리아시안게임,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1위에 오르는 등 국제 경쟁력까지 갖췄다. 오는 평창 올림픽에서도 한국의 금메달 유력종목으로 지목되고 있어 체계적인 선수육성과 지원대책이 필요하다. 경북컬링협회는 이번 평창 올림픽을 계기를 컬링을 스포츠문화관광상품으로 개발해 나갈 것을 제안했다.국제대회를 개최하면 외국인 입국에 따른 경제유입 효과가 엄청나고 또 지역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를 높여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선진국에 인기가 있는 컬링대회를 열어 TV중계를 통해 대회홍보 및 경제활성화의 동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경북컬링협회 김경두(55) 회장은 “국제컬링대회를 의성을 대표하는 스포츠문화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와 전문인들이 함께 힘을 합쳐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금 각 지자체들이 스포츠마케팅을 지방경제 활성화의 수단으로 삼아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며 “컬링은 경북도 동계체육의 대표 브랜드로 이미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평창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지역 동계체육 발전과 의성의 세계화를 위한 수단으로 더욱 육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2011-07-08

대한민국, 아시아 관광 허브로 떠오른다

7일 광화문 KT사옥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는 국내 관광업계에 엄청난 특수(特需)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된다.올림픽 기간 한국을 찾을 각국 선수단과 보도진, 관광객으로 인해 발생하는 항공·숙박·관광 수요는 물론 그로 인한 전후방 파급효과와 아시아 관광 허브로서의 위상 제고, 한반도 평화정착 기여 등의 부수효과까지 감안하면 올림픽 유치로 인한 유무형의 특수 효과는 훨씬 클 전망이다.산업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따른 총생산액 유발효과는 약 20조4천973억원으로 추정되며 23만여명의 고용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인한 관광산업의 생산유발효과는 6천684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는 2천799억원, 고용유발효과는 약 9천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가장 큰 수혜가 기대되는 업종으로는 건설, 항공, 숙박 등이 꼽히고 있다.특히 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건설업계는 평창 올림픽 유치가 `가뭄 끝의 단비`가 될 전망이다.산업연구원은 동계올림픽 개최에 따른 건설업의 총생산 유발효과는 7조8천839억원이며, 강원지역에서만 8만3천979명분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했다.경기시설 마스터플랜에 참여했던 설계사무소 희림은 빙상경기장 13개 중 7개만 완공된 상태라 아이스하키 경기장,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등과 선수촌, 미디어촌 시설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밝혔다.또 평창이 경쟁도시에 비해 오락시설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점을 감안할 때 오락시설과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 등에 대한 추가 발주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호텔과 경기장 수주 실적을 갖춘 대형 업체들은 이미 준비태세에 들어갔다.지역공사는 지역업체가 일정 부분 참여하도록 하는 규정에 따라 강원지역의 다수 영세 건설업체들도 `올림픽특수`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또다른 수혜업종인 항공업계도 올림픽 유치로 인한 특수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올림픽 기간에 한국을 찾는 선수단과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항공 수요도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통상 동계올림픽에는 약 80개국, 2천500명 안팎의 선수단이 참가하고, 선수단보다 수십 곱절 많은 관광객이 개최국을 방문한다.여기에 올림픽 몇 해 전부터 올림픽 시설을 사전 점검하는 차원에서 각종 대회가 열릴 뿐 아니라 올림픽으로 인한 관광산업의 연계 발전 효과까지 감안하면 항공업계는 예상보다 큰 특수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조양호 회장이 유치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유치의 전면에 나선 대한항공은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지난 몇 년 동안 공격적인 투자로 외형을 확대해 온 대한항공은 올림픽 유치 성공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상승을 등에 업고 세계 최정상급 항공사로 도약을 노리고 있다.아시아나항공과 저가항공사들 역시 동계스포츠 활성화에 따라 해가 갈수록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주변국 관광객들의 방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며 호황을 기대하고 있다.겨울보다는 여름이 성수기인 업계 특성상 겨울철 승객이 늘어나면 더욱 안정적인 회사 운영이 가능한 것도 항공업계가 특히 동계올림픽 유치에 반색을 하고 있는 이유다.물류업계 역시 올림픽 특수를 예상하고 있다. 수십 개국이 참가하는 올림픽에서 각국 선수단의 물자와 방송기자재 등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 대회에 주관 물류사로 참여한 대한통운은 “올림픽 기간에 물자를 나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뿐 아니라 고속도로, 철도망 등 인프라 선진화에 따른 물류비 절감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호텔업계도 반색하고 있다.그동안 국내 호텔업계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주로 중국·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 치우쳐 있었으나 이번 동계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동계올림픽 강국이자 선진국인 유럽·미주 지역의 관광객들이 늘어 수익분산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또 각국의 고위 인사들과 관광객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적 행사를 통해 국내 호텔업계의 서비스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 대상 중저가 비즈니스 호텔 건립사업도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국내 대표 수출업종인 전자업계 역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인한 내수 활성화와 국가 브랜드 상승에 따른 신흥시장에서의 인지도 제고로 전반적인 매출 상승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산업연구원은 평창 올림픽 개최가 전기 및 전자기기 분야에 총 1천821억원의 총생산 유발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분석했다.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진국 시장에서는 우리 브랜드가 충분히 알려져 있지만 신흥시장에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진다”며 “올림픽과 같은 큰 이벤트를 유치하면 해외 수출에 큰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이건희 회장이 유치전 전면에 나섰던 삼성전자는 이 회장 명예회복 효과는 물론, 무선통신기술분야 올림픽 공식 후원사로서 특수도 누릴 전망이다./연합뉴스

2011-07-08

올 여름 휴양관광 시원한 군위로 떠나자

새 단장 백송스파비스호텔 업무연찬·수련회 등 교육장으로 각광인근 삼존석굴 오도암 한밤마을 돌담길 돌면서 휴식 즐길 수 있어 경북의 중심 군위군이 대구를 비롯한 인접 대도시의 접근 편리성으로 인해 새로운 휴양관광지로 뜨고 있다. 군위삼존석굴 등 지역 역사문화재와 수려한 자연경관에 더해 온천휴양시설이 속속 개장을 하며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특히 최근 부계면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백송스파비스호텔과 온천이 새단장하고 문을 연 후 대구 경북 공무원과 대학, 각 단체 등의 업무연찬, 수련회 등의 교육장으로 각광받으며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다.각 지방자치 단체마다 지역 문화재와 축제 등을 이용한 미래 꿀뚝없는 산업으로 각광받는 관광산업 활성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이곳 휴양시설은 외지 관광객 유치와 지역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며 군위 관광산업 활성화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백송스파비스온천관광호텔호텔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유치된 큰 행사를 보면 경일대학교 신임교원 연수회(참석인원 100명), 대구 내일교회 초등·중등부 수련회(150명), 대구대학교 지역사회복지연구원(50명), 사회복지과 수련회(150명) 등이 열렸다.3월에는 경북과학대학교 의료경영학과 수련회(150명), 의성 국제연날리기대회 참가자 만찬(100명), 경일대 의장단 수련회(300명), 경산1대학 의장단 수련회(100명)도 있었다.4월은 경북도청 새마을과(100명) 및 치수방재과(100명), 민생경제과(100명), 자치행정과(100명) 업무연찬회가 잇따라 개최됐고 ROTC 전국 회장단 연찬회(150명), 대구한의대 의장단 수련회(150명), (주)대구텍 경로잔치(300명), 군위군새마을지회 새마을의 날 제정기념식(300명) 등도 이어졌다.5월 42건, 6월 45건에 달했고 이달들어도 지금까지 32건의 교육 및 연수회가 예약돼 있는 등 이달에만 50여건 이상의 크고 작은 행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최근 업무 연찬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B(51·대구시)씨는 “팔공산자락에 위치한 이곳 휴양시설은 물 맑고 공기좋고 산행하기도 좋다”며 “나중에 꼭 한번 다시 오고 싶고 특히 가족, 친구, 기업 및 단체의 모임장소로 권하고 싶다”고 극찬했다.또한 기업체 간부 C씨는 “기업체나 공공기관의 연수와 세미나 등을 위한 첨단장비와 기자재가 잘 갖춰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아늑한 분위기와 음률이 흐르는 라운지에서 멋과 향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백송스파비스온천관광호텔은 군위군 부계면 춘산리 32번지 일대에 대지면적 1만2천734㎡, 건축면적 2천474㎡, 연면적 6천394㎡의 규모로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건물에 객실 30실을 비롯해 물놀이장 등 종합휴양시설도 갖춰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휴양지로 적합하다. 또 180여대를 동시 주차할수 있는 주차공간도 확보하고 있어 연찬회, 연수회, 교육장으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유황온천특히 지하 700m에서 솟아오르는 화산 암반층의 용출수를 그대로 공급하는 유황 온천은 군위의 새로운 명소로 부족함이 없다.호텔 내 대형온천탕을 비롯해 송림으로 둘러싸인 야외노천탕은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온천욕과 삼림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둘러싸인 울창한 숲에서 들리는 산새들의 노래소리는 기분을 더욱 상쾌하게 해 준다.저녁 무렵이면 붉은 노을을 볼수 있고 겨울 눈 오는 날에는 설욕과 함께 아름다운 설경을, 봄에는 벚꽃, 진달래 등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수 있는 등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멋을 느끼게 한다.또 대형온천탕(남·여) 및 야외노천탕, 물놀이장, 그릴(커피숍, 레스토랑, 라운지), 비즈니스센터, 대·중·소 연회장 및 세미나장, 야외공연장(족구장, 배구장, 서바이벌 게임장), 고품격 전문출장 파티(개업식, 준공식, 체육대회, 피로연, 집들이, 돌잔치, 칠순잔치), 대형서틀버스 등 모든 편의기반을 완벽하게 갖췄다.온천수는 중탄산(20여종의 희귀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군위의 새로운 자랑거리가 된 온천은 강알카리 특유의 계란 냄새와 매끄러운 특성을 갖고 있어 비누를 사용하지 않아도 피부가 부드러워짐을 느낄 수 있다.유황천으로 목욕을 한 뒤에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것보다는 자연바람으로 말리는 것이 피부 건강에 좋다는 것이 백송스파비스 관광호텔 측의 설명이다.온천수는 유황과 환산염, 스크론틈, 스트론튬, 불소 등이 함유돼 온천수로는 최고라는 데 이견이 없다. 게다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물질인 스트론튬은 노화방지와 세포재생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중탄산은 신경통과 관절염, 위장병 등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천20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온천 공간은 가족단위 이용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주민들은 팔공산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천연온천수가 함께 어우러져 각종 문화재와 볼거리가 주위 곳곳에 널려 있어 도시민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고 풀어주는 최고 휴양지라며 손가락을 치며 세운다.▲연계 관광지주변의 주요 문화 관광지로는 부계면 남산리 산 16번지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암인 국보 제109호 군위 삼존석굴이 있다. 동산리 산1번지 팔공산 제일의 명당 비로봉 청운대 절벽 아래 원효대사가 창건해 10여년간 수도하면서 오도(悟道)한 곳이라해 불렀다는 오도암이 있다.또 삼존석굴 옆 양산서원 뒷마당 작은 건물 안에 보관하고 있는 고려의 간추린 역사, 우의정울 지낸 홍여하 선생이 편찬한 휘찬려사 목판(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 육지 속 제주도라 불리는 굽이굽이 6.5km 명품 돌담길인 한밤마을, 한밤마을 대청, 수백년 된 소나무 숲 송림, 남천고택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대구에서 팔공산 파계사 방면으로 한티재를 넘어 군위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삼존석굴, 대율리 한밤마을에 이어 백송스파비스온천 관광호텔이 모습을 드러낸다.김하영 백송그룹 회장은 “군위삼존석굴, 한밤마을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백송스파비스호텔과 온천은 자연과 함께 조용한 휴식을 보내실 수 있어 도심에서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전국 최고 관광호텔과 온천 1번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군위/김대호기자 dhkim@kbmaeil.com

2011-07-08

대구의 숨은 마을 옻골과 백불고택(百弗古宅)

지금은 대구국제공항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오랫동안 대구시민들에게는 동촌비행장이었다. 그 동촌비행장 북측에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마을 집성촌이 있다.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된 `옻골마을`이다. 옻골마을은 임진왜란 때 대구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태동 최계의 아들 대암 최동집이 1616년에 정착한 후 경주최씨 광정공파(匡正公派)의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동성촌락으로 현재 2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필자는 사성공파(司成公派)이긴 하지만 동성의 조상들이 오래전에 이곳에 터를 잡은 곳이라 생각하면 이곳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느낌이 남다르다.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수령 350년이 넘은 회화나무 두 그루가 먼저 반겨준다. 마을 입구에는 울창한 회화나무 숲으로 가려져 있고, 멀리 마을 뒷산 정상에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보이는데, 마을 사람들은 거북이 모양을 한 `생구암(生龜巖)`이라고 하고 거북이는 물이 필요한 동물이기 때문에 마을 입구에다 인공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을 음의 기운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마을 입구에 숲을 조성해 바깥에서 마을이 보이지 않도록 하였으며 그래서 수차례의 전란에도 이 마을은 전혀 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마을 주변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골`이라 불렸다는 이 마을의 숨은 매력은 총길이 2.5km에 이르는 아름다운 토석담장길이다. 이 담장길은 바른 듯하면서도 조금씩 꺾여서 중요한 끝은 보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담장길의 모든 중심은 마을 안쪽에 위치한 종택으로 향하고 있음이 흥미롭다.이 마을 중앙 최상부에 위치한 종가 백불고택(百弗古宅)은 대구에 있는 조선시대 상류주택 중 가장 오래된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재실로 구성되어 있고 정침은 `口`자형 배치로 폐쇄적 공간을 취하고 있다. 최동집의 손자 최경향이 1694년에 건립한 이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랑마루 앞에 걸린 `백불고택`이라는 커다란 현판이다. `백불`은 백불암 최흥원 선생의 호이다. 사랑채 외관상 큰사랑과 작은사랑 지붕 높이가 다른 것도 이채롭다. 지붕이 높은 쪽이 종가의 최고 어른이 거처하는 곳이고 낮은 쪽은 그 다음 어른을 모시기 위한 대목의 배려이기도 하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사랑채의 기둥이다. 사랑채의 전면 기둥은 둥근 모양(天), 가운데 기둥은 팔각기둥(人), 안쪽 기둥은 사각기둥(地)을 사용하여 음양 사상과 천지인(天地人)의 영향을 건축 치목수법에 받아들여 위치에 따라 사용부재의 모양을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대구의 숨은 마을 옻골의 고즈넉한 토석담장길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옛 정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훌륭한 피서법이 될 듯하다./영남이공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2011-07-07

인생이란 한바탕 꿈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 곧 덧없는 한때의 꿈 훅은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한단지몽(邯鄲之夢)이 있다. 당대(唐代)의 전기작가(傳奇作家) 이공좌(李公佐)의 소설 `남가태수전`에서 비롯된 말이다. 당(唐)나라 德宗(덕종) 때 광릉(廣陵)지방에 순우분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나무 그늘에서 잠이 들었는데 어디선가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들은 순우분 에게 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槐安國王)의 명을 받고자 대인을 모시러 온 사신입니다. 저희 와 함께 가시지요. 순우분은 얼떨떨했지만 사신이 권하는 대로 그를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국왕이 성문 앞에서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한편 그를 당장에 부마로 삼았다. 순우분 이 그곳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왕이 그를 불러 남가지방을 다스려 달라고 부탁했다. 남가군(南柯郡)에 부임한 순우분은 20년동안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고 결국 그 공은 단라국(檀羅國)이 군대를 몰고 침략해 오는 바람에 크게 곤욕을 치렀다. 더욱이 그동안 그와 함께 고락을 나누었던 아내마저 병으로 사별한 뒤 그는 허무함을 느끼고 관직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은 遷都(천도)해야 할 조짐이 보인다 면서 순우분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잠이 깨고 보니 수십 년 간의 그일들이 모두 꿈 이었다 순우분은 기이한 생각이 들어 자던 홰나무 뿌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꿈에서처럼 과연 구멍이 있긴 했다. 구멍 속을 자세히 살펴보니 넓은 공간에 수많은 개미때가 두 마리의 왕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괴안국 이었고 두 마리의 왕개미는 국왕과 왕후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뻔은 가지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남가군 이었다 순우분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마침 그날 밤에 큰 비가 내렸고 다음날 순우분이 다시 홰나무 구멍을 살펴보았을 때는 개미는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순우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괴안국 국왕이 천도해야할 조짐이라고 말했던 것이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순우분은 한 순간의 꿈속에서 스쳐보냈던 20여 년을 떠올리고는 인생이란 바로 그와 같은 한바탕 꿈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 인생은 꿈이다. 그러나 그 꿈속에는 근면·성실·배려·노력하는 아름답고 위대함이 살아있는 행복한 일상이다./쌍산 김동욱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2011-07-06

경북 해양문화 속 人·生·길 <18> 내 고향은 딴봉입니다 ① 포항시 송도동 형산강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곳이다.”모친은 딴봉을 돌아보며 그만 주저앉아 울었다. 옹기종기 어깨를 기대고 살던 낮은 슬레이트 지붕과 골목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푸성귀를 심어 밤낮으로 돌보던 밭도 파헤쳐졌다. 중장비들이 내는 소리에 갈대밭 살로 떼가 날아올랐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깨진 종바리까지 살뜰히 챙겨 수레에 실었지만 추억은 데려오지 못했다. 집과 땅에 대한 보상금 300만원으로 골든당 옆에 겨우 집 한 칸을 마련하고 열 식구의 세간을 풀었다. 하늘을 가린 지붕 아래 몸은 눕혔지만 막막했다. 아,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형산강 하구 물빛만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그곳엔 오래전 딴봉이 있었다. 따로 떨어진 봉긋한 마을이라 해서 딴봉이라고 했을까? 딴봉은 송도에서 둑으로 연결된 섬 아닌 섬이었다. 파도가 치면 물이 에돌아 나가던 곳. 강의 모래가 퇴적된 넓적한 땅 위에 약 100여 호가 옹기종기 살았다. 일제강점기때 심은 방풍림 소나무가 있을 뿐 능선 낮은 산도, 마을 어귀마다 부표처럼 선 오래된 당산 나무 한 그루도 없었다. 기와집 몇 채에 슬레이트나 초가지붕이 대부분이었던 가난한 마을, 초가지붕이 낡으면 연일이나 대송에 가서 나락 짚을 사다가 집집마다 새지붕을 얹곤 했다. 갈대를 베어다 울타리를 두르고 밭을 일구어 온갖 채소를 심고 바닷물을 받아 소금을 고며 온 몸으로 삶을 일구던 순한 사람들이 거기 살았다.초여름이면 갈대숲으로 살로, 삘로라 불리던 철새들이 날아왔다. 자그마한 덩치에 다리가 가늘고 긴 회색빛 새들. 팽이치기 막대놀이가 싫증이 나면 아이들은 소총이나 말총으로 만든 덫을 들고 새잡이에 나섰다. 딴봉에는 말이 없었지만 죽도시장에는 짐을 실어 나르는 말이 많았다. 말총은 소총보다 훨씬 질겼으므로 아이들은 간혹 남빈동까지 말총을 뽑으러 가기도 했다. 궁둥이 쪽으로 살살 다가가 손가락으로 꼬리털을 감아 당기면 화들짝 놀란 말이 뛰었다. 아이들도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그렇게 뽑아 온 긴 털을 한 줄로 이어 군데군데 올가미를 만들어 바닥에 놓고는 “살로야, 삘로야” 불러대며 살살 새떼를 몰았다. 새들은 쉬이 날지 않고 뛰듯이 걸었는데 어쩌다가 덫으로 놓은 훌치기에 발목이 걸리면 사냥은 성공이었다. 신이 나서 나무를 주워 다가 불을 피우고 입가에 검정을 묻혀가며 새를 구워 먹었다. 갈대밭을 뒤져 새알을 주워 깨 먹기도 하고 삶아도 먹었다. 물이 좋은 형산강에서 재첩과 조개를 줍고 고스라지를 낚으며 종일 놀다보면 상류쪽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번졌다.딴봉 아이들은 영흥초등학교에 다녔다. 아침 일찍 둑길을 걸어 송도 솔밭을 지났다. 솔밭에는 고아원이 있었는데 아이를 잃어버리면 찾을 수가 없다고 할 만큼 울창했다. 봄이면 솔잎의 새순을 끊어 먹느라 지각을 하기도 했다. 봄풀들 사이로 삥기도 올라왔다. 삥기 속에는 솜처럼 포근한 것이 들어있었다. 맛있었다. 솔밭을 지나면 동빈내항을 가로 지르는 꺼먼 다리까지 은백양나무 가로수가 양쪽으로 나 있었다. 바람이 불면 은백양나무 초록 잎사귀와 뒷면의 은빛이 팔랑거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동빈내항 물줄기는 맑았다. 나뭇가지에 줄을 달아 넣기만 하면 물고기가 올라왔다. 보리가 자라면 보리서리를 했고 은백양나무 너머 밭에서 가지도 토마토도 몰래 따 먹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엔 송도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한 여름 송도해수욕장은 언제나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긴 백사장 가득한 피서객들 사이를 비집고 첨벙첨벙 물속으로 들어가 놀았다. 어찌나 모래가 고운지 한 참을 들어가도 부드러운 촉감이 발바닥을 간질였다.가끔 칠성천까지 가서 놀았다. 칠성천엔 돛을 단 배가 지나기도 했다. 배가 지날 때마다 돛이 걸리지 않게 들어 올리던 나무다리도 있었다. 겨울이면 꽁꽁 언 칠성천은 색다른 놀이터가 되었다. 종일 앉은뱅이 썰매를 타고 팽이를 치며 놀았다. 봄이 올 무렵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고무 얼음이라 부르며 서서히 꺼지는 얼음을 풀쩍풀쩍 건너다녔다. 간혹 굼뜬 녀석들은 얼음과 함께 빠지기도 했다. 그 추운 날, 모닥불을 피우고 쫄딱 젖은 옷을 말리면서도 행복했다.배작업을 하는 집도 몇 있었지만 딴봉 사람들 대부분 채소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작은 땅에 심은 채소들은 가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부추, 얼갈이배추, 시금치를 심어 부지런히 가꾸어도 열 식구 배곯는 날이 더 많았다. 여름철이면 아무리 아까워도 채소가 상하면 모두 버려야만 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리어카 가득 채소를 싣고 죽도시장에 나가 팔아도 국밥 한 그릇씩 사 먹이면 남는 게 없었다. 갈대밭 가에 염전이 있었다. 바닷물을 태양에 말리는 서해안의 염전과는 소금을 만드는 방법이 달랐다. 흙을 평평하게 깔아 놓으면 그 위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그러면 그 흙을 짜서 움막을 지어 놓고 흙에서 나온 바닷물을 어마어마하게 큰 솥에 고으면 소금이 되었다. 움막을 지었던 흙을 다시 깔아 바닷물이 들기를 기다렸다. 간혹 나무로 된 물레방아 비슷한 것을 발로 밟아 바닷물을 끌어올리기도 하였다. 바닷물 탓인 지 흙의 성분 탓인지 모르지만 소금의 질이 좋았다. 처음엔 누르스름하다가 이내 하얗게 변했다. 손가락으로 찍어 먹으면 짜디짠 소금도 달달했던 시절이었다.사람들이 모두 딴봉을 떠나자 덩치가 큰 준설배가 마을의 모래를 퍼 날랐다. 작업 속도는 매우 빨랐다. 갈대도 자갈과 함께 퍼 올렸다. 간혹 물고기도 따라 나왔다. 할아버지가 세상 마지막 숨을 놓으신 딴봉, 아버지가 어머니를 맞아 첫 밤을 보낸 딴봉, 오랜 세월 굴뚝 연기로 저녁을 접고 다시 아침을 펴던 고즈넉한 강가 마을 딴봉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새들의 여린 부리가 연신 모이를 쪼던 딴봉이 강물에 그렇게 덮여가고 있었다.계속글 권선희시인

2011-07-04

수성구 진밭골

밤낮 산책·운동 즐길 수 있는 시민 휴식·수련 공간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814번 버스 종점에서 진밭 1·2·3교를 지나 병풍산으로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저수지가 보이고 맨끝의 식당촌이 보인다. 이곳까지 약 2.6km 구간이 진밭골이다.진밭골이 있는 범물동의 유래부터 심상치 않다. 밤만 되면 범이 나타나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심심산골이었고 계곡 밑에 샘이 있어 범물동이라 불렸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진밭골 좌측 용지봉 밑 마을에서 바라본 능선의 지형이 용지봉 부분은 `무릇 범(凡)`자, 좌측 능선과 계곡 부분은 `내 물(勿)`자 형태라서 범물동이라는 설도 있으나 둘 다 `설`일 뿐이다.진밭골은 대구 사투리로 물이 많아서 땅이 질다는 의미의 `진`과 `밭`이 합쳐져서 생겨난 지명으로 알려졌고 최근들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제기될 만큼 봄이 되면 진달래가 많이 핀다.진밭골은 약 400여년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피해 경주최씨와 전주최씨 일가가 피난 들어올 정도로 오지 중에 오지였다.산림욕장·야생화군락지 인기청소년수련장·산림공원 조성■ 대구시민의 휴식처로 주목지금은 주말만 되면 진밭골로 향하는 차량들로 산책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우측에는 해발 680m의 용지봉, 좌측에는 가락골, 정면에는 해발 620m의 병풍산이 자리잡고 있다.도심속에서 깊은 산골의 묘미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인데다 주위 환경이 빼어나고 물 맑고 공기가 좋아 대구시민의 휴식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특히 여름철이면 폭염이 이어지는 대구 도심에서 벗어나 깊은 산의 시원하고 아늑한 묘미를 체험할 수 있는 진밭골은 최근들어 산책코스와 등반코스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진밭골에는 식당들이 모여 있다. 진밭골 10가구와 가락골 6가구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 각종 닭요리와 오리, 꿩 등을 위주로 하는 메뉴를 지니고 있고 족구장이 갖춰져 있어 동호인들이나 직장인들의 모임도 심심찮게 열리는 곳이다.과거에는 직접 키운 가축들을 조리했으나 몇년전부터는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일부는 외지에서 사들여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밭골 음식점의 조금 아쉬운 점은 진밭골하면 바로 떠오르는 특별한 음식이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쫄깃쫄깃한 육질을 자랑하는 간장 닭이 유명하고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판매하고 있다.최근에는 가락골 6가구의 음식점이 거의 문을 닫은 상태로 현재는 진밭골의 10가구만 운영되고 있다.가락골은 백련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일반인들의 출입이 드물고 대부분 내왕객이 사찰을 찾는 불교 신자들이었기 때문일 듯하다.■ 도심 속 명물 산림욕장진밭골과 가락골은 수성구에서 상수도가 없는 120가구 중 한 곳이다.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산 중턱에 자리잡은 진밭골과 가락골에는 상수도 설비를 할 수 없어 수돗물 공급이 불가능하다” 면서 “앞으로도 상수도를 개설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그래서 가락골과 진밭골 16가구는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다.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진밭골은 현재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중에 있다. 우선 진밭3교를 지나면 범물동 38번지 국유림 10ha에 사업비 4억여원을 들여 수성구청이 지난해 10월 완공한 산림욕장이 등장한다.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데크계단과 목조 구름다리가 보이고 봄이면 흐드러지게 필 진달래 관목이 줄을 잇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신선한 공기와 진한 숲의 향기를 뿜어낸다.등산로 주변에는 창포와 원추리, 초롱꽃, 무늬둥글레 등 14종의 야생화 700여그루가 심어져 있는 야생화군락지가 조성되어 있어 산속에서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야생화군락지의 야생화는 대부분 7~8월이 되면 꽃을 피워 산림욕장을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느낌과 함께 숲속 의 식물교육 장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치유의 숲은 소나무와 참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공기와 진한 숲의 향기를 한껏 들여 마시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직은 명소로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편하고 여유롭게 산림욕을 즐길 수 있지만 조만간 산림욕을 제대로 하려면 줄을 설 날이 멀지 않다는 것이 등반객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청소년수련관 건립 중또 청소년수련관이 범물동 1118-1번지 등 6필지에 대지 1만3천671㎡, 지하1층 지상3층의 1천839㎡ 규모로 40억여원을 들여 오는 2012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건립되고 있다.이곳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생활관과 강당, 체육시설, 문화창작방, 야외집회장 등이 들어서 자연속에서 청소년들의 교육과 문화, 체육, 여가를 제공하는 등 심신을 단련하는 전담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청소년수련원 건립과 함께 수성구청은 범물동 진밭1교에서 ~ 취락지구까지 2.6km 구간에 대해 2012년 12월까지 80억원들 들여 현재 3~5m인 도로폭을 10m로 확장, 정비하게 된다.현재는 개울목식당까지 약 1km구간에 도로포장이 완료돼 1.6km구간만 남았다.여기에다 진밭골 입구 우측편 수성구 범물동 산 191번지 일원 3.8 ha에 사업비 5억원을 투입, 올 10월까지 산림공원을 조성하고 있다.이곳에는 조경과 위생, 교육시설, 체육시설 등이 들어서 진밭골 꼭대기까지 가기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수변과 연계한 친환경적 휴양시설로 꾸며져 자연체험 및 휴식 등 재충전의 장이 될 전망이다.■ 대구 유일의 도깨비도로새롭게 포장된 진밭골 포장도로를 오르다 보면 몇분 지나지 않아 대구 유일의 도깨비 도로를 만난다. 분명 오르막길인데 내리막길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곳으로 약 100여m 정도 이어져 있다.제주도 명소 중 한 곳인 `신비의 도로`와 마찬가지로 내리막길처럼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운 뒤 변속기를 중립에 놓으면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닌 뒤로 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도깨비도로를 처음 발견해 수성구청 사이버기자단에 제보한 장재수씨(수성구 수성4가동)는 “우연히 진밭골에 차를 타고 가다가 분명이 오르막길인데 내리막으로 보여 혹시나 도깨비도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차를 세우고 기어를 중립으로 놓으니 차가 뒤로 슬슬 내려가는 것을 체험했다”고 밝혔다.아직은 `도깨비 도로`라는 팻말은 없지만 입소문이 나서 주말에는 이 일대 차량이 잠시 정차하는 소동이 벌어질 정도로 진밭골의 새로운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이진훈 수성구청장은 “평소 진밭골은 많은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반해 기반시설이 부족해 불편이 있었다”면서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지속적인 개발사업을 통해 휴식 및 수련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7-04

인터뷰-이종완 수성구 범물1동장

“도시에 보기드문 깊은 계곡 맑은 공기”“청소년 수련원이 완공되고 진밭골 도로가 모두 정비되면 청소년들에게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대구시민들의 휴식처로 더욱 주목을 받을 전망”이라는 이종완(53) 범물1동장은 “여름철에는 특히 멀리 가지 않고도 산골을 체험할 수 있는 휴식처로 자리를 잡게 된다”고 말했다.“봉명초등학교에서 진밭골까지 등반로는 2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별다른 무리없이 등산을 할 수 있는 코스로 유명하다”면서 “조금 난이도가 필요한 이들은 여기서 다시 용지봉과 목련시장 뒤까지 등반하는 4시간 코스가 적당 할 것”이라고 권했다.진밭골은 여름철만 되면 몸살을 앓는다. 하루 동안 범물1동 공무원 10여명들이 수거하는 쓰레기만해도 1t 규모이고 주말이면 이보다 더 많은 양이 쏟아진다. “가져온 쓰레기를 제발 도로변에만 두면 좋겠다”는 이 동장은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은 계곡에 방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파묻거나 숨겨 쓰레기 수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시민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이 동장은 진밭골 10가구 음식점에 대해서도 “상인회가 조직돼 바가지 요금을 씌우지 않으면서 맛있고 정갈한 음식을 대구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일품”이라고 운을 떼면서도 “닭고기 메뉴가 대부분을 차지해 진밭골 대표 음식 메뉴 개발이 가장 아쉽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그에게 진밭골 도로 확장은 한편 반갑고 한편은 걱정이다. “현재 개울목식당까지 1km 구간까지 포장이 돼 시민들의 접근성은 용이해 졌지만 10m로 확장되면 도로변에 주차된 차량으로 등반객이나 산책객들이 불편을 겪을 것이 걱정”이라며 “자투리 땅을 이용해 시민들이 쉴 수 있는 운동시설이나 의자를 설치하면 좋겠다”고 건의했다.이종완 범물1동장은 “앞으로 대구 대공원지역에 포함돼 있는 진밭골은 개발을 통해 더욱 대구 시민의 휴식처로 거듭나게 된다”면서 “도심속에 보기드문 산골 진밭골을 아껴 후대까지 대구의 명물이 될 수 있도록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김 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1-07-04

포항테크노(바이오) 정보지원센터

바이오 기업 연구개발서 시제품 생산까지 책임진다 최근 신성장동력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바이오 산업. 첨단장비를 이용한 바이오소재 활성 및 약효평가, 신약·기능성 식품의 안정성 및 유효성 검증, 분자영상 기술을 활용한 질병의 진단과 예방기술 구축을 통해 바이오 신산업 창출을 목표로 현재는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기반구축 마무리 단계에 있는 포항테크노(바이오)정보지원센터를 방문해 바이오산업을 전망해 봤다.작년 7월 설립 기반구축 완료바이오 기업 역량강화 본격화6개업체 자금 20억원 지원`영일만 친구` 막걸리 공동개발△포항테크노(바이오)정보지원센터는지난 2007년 8월1일~2011년 6월30일까지 지식경제부 지역전략산업진흥사업(기반구축)에 선정돼 2010년 7월에 포항시 남구 지곡동 포항테크노파크 내에 총 면적 2천986.61㎡에 지하 1층~지상 3층으로 설립된 기관이다.포항테크노(바이오)정보지원센터(센터장 김경태)는 첨단장비를 이용한 바이오소재 활성 및 약효평가, 신약 · 기능성 식품의 안정성 및 유효성 검증, 분자영상 기술을 활용한 질병의 진단과 예방기술 구축을 통해 바이오 신산업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11년 6월30일까지 기반 구축을 완료한 후 본격적으로 효능검증 서비스 및 지역 바이오 기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센터 설비포항테크노(바이오)정보지원센터에는 바이오소재의 효능검증을 위한 국내 최고 사양의 첨단장비를 구축(예산액 80억원) 중 이다. 특히 신물질 투여에 따른 실험 동물 체내 활성을 연구하기 위해 PET/SPEC/CT를 포함한 동물 생체 영상 분석 장비를 구축중이며, 살아있는 세포의 실시간 관찰이 가능한 고해상도 현미경을 비롯한 세포 영상 분석 장비, 바이오소재의 질량 및 중금속과 잔류농약 등의 분석이 가능한 LTQ orbitrap MS, HPLC, GC, ICP-MS 등의 성분분석장비, Video-tracking system, Activity wheel, treadmill 등 동물행동성·약리측정장비 등 총 60여종의 장비가 구축돼 있어 지역 바이오 기업의 연구 개발 역량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수도권이나 해외에 의존해야 했던 약효검증이나 효력평가 등에 대한 검증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바이오 산업의 연구 개발 역량을 높일 전망이다.△센터 기업 지원포항테크노(바이오)정보지원센터는 기업의 연구 개발에서 시제품 생산까지 다양한 기업 지원 사업을 지원한다. 대표적으로 경북생물한방산업기술지원사업은 식품바이오소재 기업을 대상으로 제품안정성 및 효능평가지원, 기업현장 기술지도(컨설팅)지원, 신(시)제품개발 지원, 현장기술도입지원 분야를 지원하고 있으며, 2011년 6월 현재 20여개사가 회원사로 가입해 회원사별 맞춤 지원을 통한 기술 사업화 지원을 수행하고 있다.또한 지역 내 6개 바이오 기업-㈜메디플, ㈜메디웨이코리아, 제노마인㈜, ㈜아라, ㈜푸드사이언스, ㈜더바이오-의 기술 사업화 촉진을 위해 총 20억원의 예산을 지원했으며, 이를 통해 기업들의 다양한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센터 내 구축되어 있는 첨단 장비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회원사로 등록되어 있는 바이오기업 및 기관에게 장비활용 사용료 할인, 신규장비 도입 시 우선 이용 제공 등의 다양한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회원 기업 및 지역 바이오 기업들의 연구 개발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특히 2010년에는 포항테크노(바이오)정보지원센터와 포스텍이 공동개발 및 특허출원한 후 지역 내 업체(동해양조장, 포항탁주합동제조장)에게 기술해 `영일만친구`라는 포항 대표 막걸리를 탄생시켰으며, 이는 대표적인 산·학·연의 협력 사례로 손꼽힌다. 또한 단순히 막걸리 판매 촉진만이 아닌 지역 쌀 소비의 일환으로 포항쌀 100%로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지역 쌀 소비 촉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불러 일으켰다.또한, 포항의 신성장동력으로 BT 융합 화장품 소재개발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있으며, 화장품 기업 유치에 역량을 쏟은 결과, 작년 7월 센터 준공 이후 화장품 소재 기업 2개사(메디웨이코리아, 뉴앤뉴)의 입주 유치를 성공시켰다./황태진기자 tjhwang@kbmaeil.com

201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