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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 역할 관념을 삐딱하게 들여다보기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학과“커서 뭐 되고 싶니?” 누구나 어릴 때 한번쯤은 들어본 질문이다. 필자의 어릴 적 꿈은 간호원이었다. 슈바이처 박사와 나이팅게일 전기집을 읽으며 그 위인들처럼 누군가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의사가 아닌 간호원이었던 이유는 성 고정관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 필자가 속한 시대나 지역 모두 보수적이었다. 그런 환경 가운데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성 역할을 배워서 의사나 군인, 경찰은 모두 남성이 담당할 직업이고 간호원이나 비서, 주부는 여성이 해야 할 일로 여겼던 것이다.어린 시절 병원놀이를 할 때면 필자는 주로 간호원 역할을 하고 남자아이가 의사 역할을 맡았던 기억이 있다. 전통적인 성 관념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다혈질적인 기질은 어쩔 수 없었는지 남자 아이들이 필자를 무서워했었다고 당시 유치원 담임선생님과 초등학교 동창들이 한결같이 증언했다. 남자아이들을 두려워 떨게 만든 기억은 없으나, 의사역할을 했던 남자아이가 무엇을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귀찮을 만큼 내게 물어보며 허락을 구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으므로 그들의 증언이 영 틀린 것 같지는 않다.성인이 된 후, 도미하여 공부하는 동안 다양한 사회문화를 경험하면서 비로소 자신을 가두었던 껍질을 깰 수 있었고, 비록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지만 전통적인 성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 정체성을 얻을 수 있었다.주변을 돌아보면 여전히 전통적인 성 관념의 잔재들이 있다. 예컨대, 시청률을 불문하고 한국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성별 특성은 특히나 고정돼 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아버지는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반면, 어머니는 감정 기복이 크고 수다스럽고 갈등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이미지로 그려진다.남녀노소가 잘 아는 국민동요 `아기 곰 세 마리`에서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는 성에 따른 캐릭터를 정형화하는 사례다. 유아들이 좋아하는 동요 `어른 되면`에서 `아빠처럼 넥타이 매고 있을까, 엄마처럼 행주치마 입고 있을까` 역시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원화해 묘사한 예가 된다.텔레비전이나 영화, 다양한 대중매체에 노출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에 관한 편향된 관점을 체득하게 된다. 성에 관한 특정 관점을 아주 어린 시기부터 배우게 되는데 만 4세부터 성 고정관념을 발달시키기 시작한다. 만 5세가 되면 성 역할 선호가 분명해져 특정 놀이나 활동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유를 “그건 남자(혹은 여자)가 하는 거야” 라고 말하기도 한다.성 역할은 특정 문화권 내에서 성별에 따라 개인이 습득하는 경향성이나 선호, 행동을 의미한다. 즉, 성역할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요구나 기대에 의해 습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아들의 성 역할 관념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정 내 부모의 가사나 양육을 분담하는 방식을 보면서, 혹은 자신에 대한 부모나 교사의 기대가 자신의 성별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형성된다.유아들의 성 역할 경험이 정형화 돼 있을 경우, 유아의 성장 가능성의 범위나 향후 누릴 다양한 삶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 유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배울 필요가 있으며, 가정 내에서 가사를 가족 구성원이 분담함으로써 성별에 따른 일이 정해져 있지 않음을 생활 중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나 교사가 남자아이에게는 큰 직책을, 여자아이에게는 보조적인 일을 맡기거나,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에게 좀 더 호의적인 미소와 태도로 대할 때, 유아들이 전통적인 성 역할을 배우게 된다. 유아들이 성 역할 관념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성에 따른 고정된 행동과 생각이 무엇인지 성찰해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유아들의 시각을 제한할 가능성에 대해 점검해 봐야 한다.

2015-03-02

손으로 만나는 포항

▲ 신상구위덕대 교수·자율전공학부 지난해도 포항엔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수많은 사람이 밤하늘 가득한 불빛의 아름다움에 열광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 왜 포항에서 불꽃은 쏘아 올려져야 하는가.많은 수의 사람들은 불빛 축제의 당위성을 `연오랑 세오녀` 설화에서 찾는다. 해와 달의 상징인 `연오랑 세오녀`와 관련한 설화가 이곳 포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까.지금 호미곶에는 상생의 손이 있다. 바다에 오른손, 육지에 왼손. 어느 사이엔가 포항하면 호미곶에 있는 `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손과 `연오랑 세오녀`가 포항과 관련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손은 어찌해서 포항과 관련을 지닐까.`손과 연오랑세오녀, 그리고 포항`과의 관련성을 찾는 것은 불빛축제와 호미곶해맞이축제 등 포항축제를 고민해야 하는 나의 입장에서도 반드시 풀어야 할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올해도 내년에도 `호미곶해맞이축제`는 계속될 것이고, 호미곶의 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런 와중에 정신이 번쩍 뜨이는 말씀을 들었다. 포항의 지형이 오른손을 닮아 있다고. 그러고 보니 포항의 지형은 오른손과 많이 닮아 있다. 호미곶이 있는 곳이 엄지손가락에 해당한다. 엄지에서 검지까지가 구룡포에서 영일만으로, 칠포로 이어지는 바닷가이다.손을 오무려 보자. 다섯 개의 손가락이 모이는 곳에 형산강의 물줄기가 이어져 있다. 형산강 주변을 따라 연일읍 중명ㆍ자명리, 동해면 도구, 오천읍 세계리 등이 있다. 곧, `연오랑 세오녀` 설화와 관련되어 있는 곳이다.손의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손은 나와 남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오른 손을 내밀면 상대와 악수를 하는 것이고, 내가 오른 손으로 상대의 왼손을 잡을 때 나란히 다정하게 걸어가는 것이다. 친구를 뜻하는 한자 벗(友)은 오른손(又)과 왼손(巾)이 서로 잡은 모습이다. 서로 맞잡고 가는 길에 문화가 이어지고, 문화와 문화의 접점이 생긴다. 교류의 문화는 손을 맞잡을 때 형성이 되는 것이다. 또한, 손은 우리들의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통로다. 손이 없다면 생활에 필요한 도구는 만들어질 수 없다. 손이 없다면 도구를 사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손가락은 다섯 개다. 포항에는 다섯 개의 섬(五島)이 있었다고 한다. 다섯이란 숫자와 포항이 관련을 맺는 이유이다. 다섯은 오행(五行)과 관계 지을 수 있다. 오행 곧, 수화목금토(水火木土) 다섯 기운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척도이다.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에는 “사람이 다섯 가지의 기운을 통해서 모양과 말과 눈과 귀와 생각이 갖추어진다”한 게 이것이다.이처럼 손은 문화와 문명을 만들고 이어준다. 더불어 손바닥을 펴고 있으면 만물을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친교할 수 있는 손이 되는데, 반대로 주먹을 쥐면 도전과 응전을 뜻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보니 `상생의 손`은 절묘한 신의 한 수가 아닌가. 오늘 다시 찾은 해돋는 동해의 바닷가 호미곶에 불쑥 내민 손은 그래서 참 반갑다.손은 내게 말한다. 도전하자. 화합하자. 배려하자. 소통하자.

2015-02-27

교육 싱크홀(sink hole)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얼마 전 서울 용산역 부근에서 일어난 마술 같은 일을 언론을 통해 보았다. 길 가던 사람들이 정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대낮 길거리에서 마술 쇼라도 열렸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마술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우리는 뭔가 없어졌을 때 농담조로 말 한다.“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그런데 멀쩡히 길 가던 사람들이 땅으로 꺼져버렸다.몇 해 전부터 중요하게 보도되고 있는 싱크홀 사건이다. 다행이 깊이가 깊지 않아 큰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강조되고 있는 안전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언론은 싱크홀을 안전한` 도시를 위협하는 새로운 재난` `도시를 삼키는 구멍`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싱크홀은 인류가 당면한 현대 재난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들은 규모가 작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이 예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길을 걷기가 겁난다.그럼 싱크홀은 왜 생기는 걸까. 그 이유를 검색해보면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지하수가 빠져 나간 곳에 지반이 약해져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분별한 도시개발 때문이라는 견해다. 이 중 어떤 것이 정확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지금껏 우리가 안심하고 서 있는 땅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열자(列子)` `천서(天瑞)편`에 나오는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다.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할 때 쓰는 말인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기(杞)나라에 하늘이 떨어지고 땅이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되어서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는 사람이 있었다. 이를 걱정하던 친구가 그 친구에게 말했다. “하늘은 기(氣)가 쌓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네. 기란 어디에도 있는 것이어서 우리가 몸을 굽혔다 폈다 한다든지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는 것 등 모든 것이 다 하늘 속에서 하고 있는 것이 된다네. 그러니 하늘이 떨어질 리가 있는가?” “땅이란 흙이 모인 것으로, 흙이란 천지사방을 모두 메우고 있기 때문에 걷고 밟고 하는 모든 것이 땅에서 하고 있는 것이라네. 땅 역시 무너질 리가 없지.”이 말은 그 당시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분명 틀린 말이다. 땅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이 현대에 살아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싱크홀만 본다면 분명 기우에 대한 뜻풀이는 달라져야 한다. 그렇다고 기(杞)나라 사람처럼 걱정에 파묻혀 살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연이 보내는 메시지에 귀 기우려야 할 때가 된 건 확실하다. 땅이 무너지고 있는데 하늘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 유독 땅만이 아니다. 가장 크게 무너진 것은 민심이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청년들의 가슴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큰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으로 희망과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 사회 지도층들은 틈만 나면 말한다. “청년이 나라의 희망이자 힘”이라고. 과연 이 말에 대해서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말대로 한다면 지금 이 나라의 청년들은 희망도 힘도 다 잃었으니까 이 나라도 희망과 힘을 잃은 것이 된다. 즉 미래가 없는 나라가 이 나라라는 말이 된다.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논리가 어쩌면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 병자호란보다 더 무섭다는 실업난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 나라의 청년들! 이순신처럼 장렬히 전사하지 말고 부디 끝까지 살아남아 이 나라의 새로운 희망과 힘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리고 기성세대들도 지금만 살고 말 것이 아니라면 우리 청년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자신의 기득권을 청년들에게 조금씩 양보해야 할 것이다.교문마다 입학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 신입생들은 희망을 가지고 3월 교문을 들어 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교육 싱크홀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빼앗기고 만다. 부디 2015년에는 단 한명의 학생도 교육 싱크홀에 빠져 사라지는 학생들이 없기를 기원한다.

2015-02-25

봄날의 서정(敍情)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꽤나 긴 설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 온 월요일 아침이다. 연휴 첫날엔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 일이 어색하게 생각되더니만, 며칠 동안 느슨한 차림으로 편안함에 익숙해 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오히려 출근길이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설을 쇠면서 서로에게 했던 수많은 덕담(德談)들을 떠올리며, 좋은 마음가짐과 선한 행동으로 바람직한 을미년 한 해를 살겠다고 다짐을 하니 이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입춘이 지난 지가 한참이라 그런지 아침 공기가 제법 훈기를 내뿜는 것 같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산뜻해진 것 같고, 겨우내 얼어붙은 땅들도 녹아 질퍽해지고 있고, 추운 겨울을 온 몸으로 버텨낸 나무들의 가지에는 어느덧 새싹이 움트고 있다.그렇다. 봄은 말없이 오고 있었다. 박재삼 시인은 `無言(무언)으로 오는 봄`이라는 시에서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천지신명(天地神明)께 쑥스럽지 않느냐/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호들갑이라고는 전연 없네/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그 무지무지한/추위를 넘기고/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할 말이 가장 많은 듯한/그것을 그냥/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이 엄청난 비밀을/곰곰이 느껴보게나”라고 했다. 말없음은 말없음으로 읽을 수 있을 뿐, 대자연의 순환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조선조 후기의 가객 안민영이 “어리고 셩근 매화(梅花) 너를 밋지 아녓더니/눈 기약(期約) 능(能)히 직켜 두 세 송이 피엿구나”라고 읊었듯이, 하기사 제주의 이중섭 미술관 정원에 핀 매화는 한라산의 눈바람을 이기고, 지난 1월 말에 이미 봄을 전하지 않았던가.윤동주 시인은 `봄`이라는 시에서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삼동을 참어온 나는/풀포기처럼 피어난다/즐거운 종달새야”라고 했다. 도시 생활에서 노란 배추꽂과 종달새를 구경하기는 어렵겠지만, 조만간 개나리와 진달래꽃은 볼 수 있을 것 같다. 윤동주 시인은 이 시를 쓰면서 만물의 혈관 속에 시냇물처럼 흘러 생명을 재생시키는 봄의 경로처럼 우리의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다시 피어나기를 소망했으리라.오세영 시인은 `봄`이라는 시에서 “봄은/성숙해가는 소녀의/ 눈빛 속으로 온다/흩날리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봄은/피곤에 지친 춘향이/낮잠을 든 사이에 온다/눈뜬 저 우수의 이마와/그 아래 부서지는 푸른 해안선//봄은/봄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의/가장 낮은 목소리로 온다/그 황홀한 붕괴, 설레는 침몰/황혼의 깊은 뜨락에 지는 낙화”라고 했다. 앞의 윤동주 시인이 자연에서 봄의 소리를 들은 것과는 달리 오세영 시인은 `소녀, 춘향, 사람` 등 사람에게서 봄을 발견하고 있다. 이처럼 봄은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닌다.남도민요 중 `봄노래`인 “에야 뒤야 어야 뒤야 봄이 왔네 봄이 왔네 에야 뒤야 봄이 왔네 왔네//먼산에 아지랭이 아른아른거리고 시냇물도 주르르르르 노래한다 춤을 춘다 새들도 짝을 찾아서 봄노래를 부른다 봄노래를 부른다. 봄봄봄봄 봄 봄봄 꽃망울은 방긋 웃고 방실 방실방실 웃음지며 벌나비 잠을 깨고 각시님도 춤을 추네 춤을 추네”를 듣고 있으면, 온 몸이 들썩여진다. 여기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봄 편을 들으면,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겨울 내내 꼭 닫아 두었던 창문을 열어젖히고,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사무실 또는 집안 정리를 하게 될 것이다.만물을 약동하게 하는 봄 앞에서, 메마르기 그지없는 우리의 이성 저 너머에 있는 서정을 일깨워 보는 것은 어떨까.

2015-02-24

설을 맞이하는 몇가지 풍경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의정부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위급한 목숨을 구해 낸 이승선씨, 차가 없어 매일 2시간 정도 잠을 자고 34㎞를 걸어서 출퇴근하는 제임스 로버트슨씨에게 자동차를 선물한 미국 시민들, 이들의 이야기는 까칠한 갑질과 복잡한 정치성을 넘어선 인간 본성의 높은 차원을 보여주며, 며칠 후 설을 맞는 우리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설은 한 해 중에 처음으로 맞는 명절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정성을 들여 준비하고 맞이하는 것 같다. 오늘 아침은 문득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설을 준비하고 보내는 풍경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어, 뉴스들을 뒤적이며 정리해 보기로 한다. 우선 설 차례 상차림 비용이다. 설 차례상은 지역마다 집집마다 차례상에 놓이는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공통분모가 될 만한 음식들의 재료를 대상으로 그 비용을 환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4인 가족 기준 제수용품의 구매비용은 지난해에 비해 5.7%가 증가한 21만 7천374원이라고 한다. 설 준비 기간 중 돼지고기와 쇠고기 등의 육류는 물론이고, 참조기, 명태살, 황태포 등의 건어류, 시금치, 대추 등의 야채들도 가격이 올랐고, 과일은 사과를 제외한 단감과 배의 가격만 다소 내린 실정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제대로 된 식재료의 유통이 관건인 것 같다. 양심 없는 일부 업자들 때문에 유통기한이 지난 썩은 고기를 먹은 소비자가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설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세뱃돈이다. 아이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웃어른들께 절을 하면, 어른들은 덕담과 함께 복주머니에 세뱃돈을 담아주시던 아름다운 풍경이 떠오른다. 세뱃돈을 들고 마냥 기뻐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느 날 어른이 되고 보니 새뱃돈을 준비하는 데도 신권을 마련하는 정성이 깃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른들의 빈틈없는 지혜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는 은행과 지점마다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한 사람당 1만 원 권은 20만 원 선, 5만 원 권은 50만 원 선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고 한다. 외환은행은 외화 세뱃돈 1만5천세트를 판매하며 이색적인 풍경을 선보이고 있다. 미화 2달러를 포함해 유로화, 중국 위안화, 캐나다 달러, 호주 달러 등 외국 화폐와 화폐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첨가된 신권 세트이다. 시대가 글로벌시대로 변하다 보니 세뱃돈의 풍경도 글로벌화되는 것 같다.설은 고향을 떠나 있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기도 하다. 귀성열차 예매시간에 열차표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워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귀향하는 경우,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사람들은 고향으로 향한다. 국토교통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는 설 연휴기간 중 귀성은 설 하루 전인 오는 18일 오전에, 귀경은 설 당일인 19일 오후에 고속도로 혼잡이 가장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도시별 소요시간은 귀성의 경우 서울~대전 간 4시간 40분, 서울~부산 간 7시간 20분, 서울~광주 간 6시간 40분, 서서울~목포 간 7시간 40분, 서울~강릉 간 5시간으로 예상했다. 귀경방향은 작년보다 휴일이 1일 더 있기 때문에 소요시간은 10~20분정도 단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간이 아무리 걸리고, 가는 길이 지루하다고 하더라도 고향에 가는 이유는, 고향이 주는 안락함 때문일 것이다.설 연휴 기간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해서 해외여행을 가는 여행객이 역대 최다인 78만명이 넘을 것이라 하고, 마트들은 다양한 설 선물세트를 판매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며, 누구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러 갔다고 하며, 주요 문화기관들이 문화행사를 마련한다고 하고, 2015년 을미년의 설맞이 풍경은 작년과 비슷한 그리고 또 다른 풍경을 보이고 있다. 모쪼록 경북매일신문 구독자들은 을미년에 뜻 두신 일들 다 이루시길 빈다.

2015-02-17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 류영재 미술교사·화가언제부턴가 인문학이란 말이 난무하고 있다. 인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닌데 왜 지금 이토록 인문학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오늘날 사람들이 수많은 정보와 물질문명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바, 인문학이 그 좌표를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문명이란 업적을 축적해왔고 문명은 인간의 편의에 기여해왔다. 그런데 현대문명은 그 발달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인간정신을 추월해버렸고, 인간과 문명은 마치 주객이 전도된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명의 사용이 두렵거나 사용방식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숫제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문명화를 강요하여 현대문명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과연 인간을 위한 문명인지 문명을 위한 인간인지 혼란스럽다.지난 30여년을 미술교사로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고, 예술활동을 삶의 원천으로 믿고 살아온 필자 또한 현대 물질문명과의 괴리로 교단에서나 화단에서 좌표를 잃어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노교사가 되어 버린 나는 요즘 아이들과의 소통이 어려울 때가 있으니, 그들이 쓰는 용어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고, 유교적 전통방식의 교육을 받은 내 가치관으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일들도 가끔 생긴다. 그것을 내 가치기준으로 판단하여 교육하면 구태의연한 잔소리로 받아들일 것이니 아이들에게 촌(?)스럽게 비쳐질까 염려되어 스스로 머뭇거리기도 하는 지경이다.예술도 그렇다. 자연을 큰 스승으로 여기고 재료와 대상에 충실하며 개인의 정서와 시대의 아픔을 화면에 은유하려 애쓰던 작업이 과연 이 시대에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 뭔가 더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야 비로소 이 시대의 예술이 아닌가 하는 강박 또한 부정할 수 없는 내 모습이다.Who am I?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갈등을 하며 살고 있다. 그 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른다는 것이며, 옳고 그름을 떠나 내 삶 또한 쉬지 않고 흘러서 인생의 종착역을 향하여 달려간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인문학적 특성인 사변적 인간으로 변하고 만다. 현대문명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과연 물질문명에 대한 패배일까, 아니면 현대화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런 종류의 갈등은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 인간들의 화두였었다.인류 최초의 성문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에도 `요즘 아이들이 영 버릇이 없다`는 기록이 있다니 인류의 현재 모습은 늘 그랬던가 보다. 세상에는 언제나 노인이 있고 젊은이가 있고 어린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성장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데, 시간에 맞추어 성숙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어른이 되었을 때의 나는 이전 시대의 어른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고, 이 시대의 어른으로 진화하고 성숙하여야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어른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현대는 각종 유형의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문명은 우리를 때리지도 욕하지도 않았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것은 인간의 잘못이지 문명의 탓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현대문명의 놀라움에 지레 겁을 먹었거나 혹은 우리가 추억하는 안락한 과거의 기억에 매몰되어 세상 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현대문명의 무시무시한 위력은 나이든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것은 분명하다.혼돈의 시대, 인문학 공부를 통하여 역사 속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되짚어 보는 성찰이 필요한 시대이다. 혹 우리 스스로가 노력하지 않으면서 세상과 시대를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시대의 좌표가 어디로 향하여 있는지, 현대의 패러다임은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2015-02-13

각급 학교 vs 각종 학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제1회 산자연중학교 졸업식`. 작은 구멍가게 하나 없는, 네온사인은 생각지도 못하는, 고라니 가족들이 산책을 다니는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시골 길에 현수막이 걸렸다. `제1회`를 읽어 주는 건 입춘을 지나온 봄바람과 하루에 두 번뿐인 시내버스밖에 없다. 비록 세상, 정확히 말해서 경상북도 교육청으로부터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학교지만, 그래도 2014년을 잘 살고 졸업식을 한다. 뭐가 그렇게 잘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 물어준다면 필자는 할 말이 많다.첫째, 서울, 경기, 대구, 부산 지역 고등학교 입시에서 산자연중학교 1회 졸업생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둘째, 비록 교육청으로부터 모든 교육 공모전에서 소외된 학교이지만, 수학여행 우수사례 공모전 교육부장관상 수상 등 다양한 교외 대회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내었다. 셋째, 많은 농산어촌 학교들이 학생 수 급감으로 통합 또는 폐교를 걱정하지만, 신입생 배정에도 빠져 있는 산자연중학교는 2월 첫째 주 기준으로 10명이 훌쩍 넘는 2015년 전입학생을 확정지었으며, 지금도 꾸준히 전입학 상담을 하고 있다.학교 자랑을 하고자 글을 시작한 게 아닌데, 교육청의 처사에 하도 화가 나서 그만 학교 자랑으로 글을 열었다. 인근 초등학교에 있는 6학년을 산자연중학교로 강제 재배정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서울, 부산, 대구 등지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명품 경북 교육을 받기 위해 산자연중학교로 재배정을 해달라고 하는데, 교육청에서는 해 줄수 없다니…. 이럴 거면 처음부터 학교라는 이름을 붙여주지나 말지, 세상에 이런 차별이 어디 있을까.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전학 전과 후가 너무나 다른 삶을 산다. 산자연중학교로 전학 오기 전에는 분명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의무 교육 혜택을 다 받는 대한민국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산자연중학교로 전학 오는 순간 그 간의 모든 지원이 사라지면서 헌법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국적불명(?)의 학생이 된다. 정말 마술도 전학 전과 후가 이렇게 완벽하게 달라지는 마술은 없을 것이다. 마술은 눈속임이지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 받는 차별은 결코 마술이 아니다. 마치 괘씸죄에 걸린 것처럼 전학 전과 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각급(各級) 학교와 각종(各種) 학교. `급(級)`과 `종(種)`의 차이뿐인데, 이 둘의 차이는, 아니 차별은 하늘과 땅보다 더 심하다. `각급`이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계급`이라는 말처럼 보이고 들린다. 그래서인지 두 학교의 차별은 마치 계급 사회에서나 있음직한, 아니 계급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그래서 필자는 외친다, “교육 평등은 절대 없다”고.공문을 보면 교육계의 주요 일들을 알 수 있다. 작년에는 안전과 관련된 공문들이 쏟아졌었다. 아까운 목숨들을 앗아간 세월호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 알 것이다. 요즘 공문의 대세는 졸업식이다. 내용은 건전한 졸업식 유도 및 순찰 강화. 공문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섭다. 순찰에는 학교 생활지도 교사들과 장학사, 그리고 경찰까지 다수 포함되어 있다.언론은 “밀가루와 달걀은 애교, 교복 찢기는 필수, 교복 벗기기와 졸업빵은 필수선택”인 졸업식의 진화 모습을 여과 없이 학생들에게 보여 주면서 학생들을 학습시켰다. 그 덕분으로 이젠 더 이상 송사와 답사, 그리고 졸업식 노래를 부르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졸업식은 좀처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하지만 산자연중학교에는 졸업빵은커녕 밀가루 폭탄 같은 것은 절대 없다. 후배들은 선배들을 위해 추억 노트를 만들었다. 선생님들은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중학교 생활 모습이 담긴 추억의 동영상 제작과 축가를 준비했다. 졸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모두들 잘 안다. 졸업식 당일 산자연중학교 교육 공동체 전원은 두 손을 모아 졸업생들은 물론 재학생들도 차별과 천대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교육 판에서 더 이상 각종 학교 출신이라고 차별을 받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2015-02-11

포항은 왜 창조와 혁신에 올인해야 하는가?

▲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함에 있어 필요한 요소들은 매우 다양하다.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동과 자본이라 할 수 있다. 경제를 이루는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생산과 소비도 중요한 요소다. 생산활동의 결과는 국내 및 해외수요에 충당되며 국내 수요 중 일부는 설비투자 등의 고정자본으로도 형성된다. 또한 소비는 경제주체인 가계가 주도적으로 소비활동을 수행하지만 정부부문에서도 흔히 관급공사의 발주나 조달물자의 조달이라는 이름으로 조세로 거두어들인 재정자금을 바탕으로 적지 않은 소비활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최종적으로 국가경제 활동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규모가 커질수록 경제는 성장한다.이러한 경제 성장과 관련한 요소들이 왕성하게 선순환 되는데 크게 기여하는 것은 인구구조와도 관계가 깊으며 특히 고도성장은 대부분 인구보너스(demographic bonus)기에 찾아온다. 이미 선진국들이 경험했고 우리나라도 경험했듯이 인구보너스기에는 `많이 낳고, 많이 죽는`사회에서 출생률과 자녀수가 감소하는 사회로 전환되더라도 인구구성비에서 생산연령인구가 많아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고령자가 적고 노동력이 풍부해 사회보장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아 경제가 성장하기 쉬운 인구구조라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1960년대부터 시작해 1990년대에 이 시기가 종료됐기 때문에 단지 부동산버블이 붕괴된 것 만으로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겪게 됐다기보다는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도 일정부분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인구구조의 변화가 경제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인구오너스(demographic onus)기라 부른다. 오너스는 보너스의 반대로 `부담`이라 할 수 있다. 일하는 사람보다 부양대상이 많아지는 상황이다. 이처럼 인구오너스기를 맞이하게 되면 노동력인구가 감소하고 점차 현역세대보다 은퇴세대가 많아져 이들을 부양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유지도 곤란해진다. 젊은 청년세대는 은퇴세대의 부양부담으로 인해 자산의 축적도 어려워지게 된다.그런데 대다수 선진국들이 이러한 인구오너스기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는 외국인 청년층의 이민 정책 등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있다. 유럽, 일본 등이 저출산 고령화와 더불어 늘어나는 사회복지예산에 허덕이고 있는 것과 달리 지속적인 이민과 이민계층의 높은 출산률 등이 미국사회에 젊은 노동력을 끊임없이 제공하면서 인구오너스의 약점을 크게 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미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단순히 인구구조 요인만으로 분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자유와 창의를 기반으로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는 끊임없는 혁신이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이는 외부로부터 젊은 노동력을 유인하는 등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 나머지 부족한 부분들을 넘치도록 메꾸고 있기 때문이다.이제 포항을 돌아보자. 포항지역의 고도성장기도 이제는 인구사회구조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조만간 현역세대들의 다수 은퇴를 앞두고 있다. KTX 포항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변화가 포항의 인구를 늘리고 청년인구의 유출을 막고 오히려 유입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며,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인구동태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기 힘들다.그렇다면 포항에 나머지 남는 하나의 대안은 혁신밖에 없다. 그동안 포항시가 내세웠던 감성적인 슬로건이었던 여성도시, 감사도시, 행복도시 등은 포항의 경제성장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다. `창조도시 포항`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지역내에 갖추어져 있는 연구개발 인프라를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창업과 기술혁신을 통해 지역경제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고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다수 창출해 유능한 젊은 인재의 지역 유입이 가속화되도록 해야만 포항경제는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의 창업활동과 혁신이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대내외적으로 가시화될 때 비로소 포항이 `창조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2015-02-10

천재를 지켜내는 사람들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천재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글을 빌헬름 바이세델이 골라서 엮은 `KANT BREVIER`를 손동현, 김수배 선생님이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약동하는 자유`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책이 있다. 그 책을 읽어 보면 칸트는 몸이 그리 건강하지 못했지만, 정신력으로 몸의 허약함을 극복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칸트는 `학부들 간의 논쟁`이라는 글에서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은 그 원인이 나의 신체 구조에 있었으므로 여전했지만, 나는 그러한 고통이 나와는 무관한 일인 양 그것으로부터 나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림으로써, 그 고통이 나의 생각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신체의 고통이 엄습해 올 때 정신이 더 약해지는 것이 범인들의 속성이건만, 천재가 지닌 강인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신체의 고통을 넘어서 위대한 정신세계를 보여 준 천재가 또 있다. 얼마 전, 루게릭병을 앓으면서 우주의 비밀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삶을 그린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제임스 마쉬·2014)`에서도 강한 정신력을 가진 스티븐 호킹(에디 레드메인 분)의 모습이 많은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사실 영화의 전반부는 제인 와일드(펠리시티 존스 분)의 계산적이지 않은 헌신적인 사랑이 관객들을 더 감동시켰지만, 영화 전반을 통해서 볼 때 스티븐 호킹의 강인한 정신세계는 인간의 위대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장엄함을 느끼게까지 해 주고 있다. 그가 `인간의 노력엔 그 어떤 한계도 없습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라는 말을 기계를 통해서 전할 때, 온전한 육체를 가진 우리의 고개를 한없이 숙이게 만들었다.신체적인 고통 말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천재도 있다. `뷰티풀 마인드`(론 하워드·2002)는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일생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1949년 20살의 나이로 27쪽 짜리 논문을 발표할 만큼 뛰어난 천재 청년 존 내쉬는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떠오르는 인물이었다. MIT 교수였던 그는 정부 비밀요원 윌리엄 파처를 만나 소련의 암호 해독 프로젝트에 비밀리에 투입된다. 그 무렵 자신의 수업을 듣던 물리학도 엘리사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엘리사와의 결혼 후에도 존은 윌리엄과의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수행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현실과 환영의 구분을 할 수 없는 정신분열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제인처럼 헌신적인 아내 엘리사의 노력이 관객을 감동시킨다. 결국 존 내쉬는 지인들과 아내의 노력과 기다림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아버지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는 천재도 있다. `샤인`(스콧 힉스·1997)은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노아 테일러 제프리 러쉬 분)의 일생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엄격하고 독선적인 아버지 피터(아민 뮬러-스탈 분)는 어린 아들 데이비드를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미국 음악학교 유학 제의가 들어와도 거절하며 아들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아버지이다. 데이비드는 유명한 노 여류작가인 캐더린 수산나 프리차드(구지 위더스 분)의 도움으로 정신적 성장을 한다. 그는 아버지의 권위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 유학의 길에 올라 성공을 거두지만,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신경쇄약 증세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10년 동안 정신병원 생활을 하게 되는 동안, 길리언(린 레드그레이브 분)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의 천재성은 회복된다.천재가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함에는 이의가 없다. 위의 이야기들은 누군가 천재를 알아보고 키우고 지켜내는 안목 있는 일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이야기들이다.

2015-02-09

장명숙 선생님 감사합니다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난 주말 정신없이 보냈던 연말연시 분위기도 어느 정도 가라앉고 올 한 해를 준비하기 위한 각 부서의 결의와 신년 계획서 작성이 한창인 사무실을 조용히 빠져 나와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최근 개인간 소통(communication)의 새로운 매체로 각광을 받고 있는 `밴드`가 대중화되면서 그동안 만날 수 없었던 초등학교 동창들의 만남이 부쩍 늘어났고, 6학년을 함께 생활했던 반창들이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했다는 연락을 받고,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여행을 갖기 위해서였다. 30여년만에 만나 서로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동창들의 만남도 반갑지만,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는 제안은 전국에 흩어져 있던 동기들을 한데 모으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 셈이다.부산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광안리횟집에서 만난 남·녀 동기생들과 선생님은 37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무색해 질 정도로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따스한 재회의 시간이 이어갔다. 한 학년 전체가 네반 밖에 되지 않던 조그마한 학교였기에 동창들의 얼굴은 웬만하면 모두 기억할 것 같았지만 정작 만나고 보니 동창은 고사하고 한 교실에서 뒤엉켜 지내던 반창들의 얼굴마저도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기억 속에서 가물거렸다. 유쾌한 술잔들이 오가며 불현듯 떠오른 기억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새삼 확인하고 다시 한번 깔깔거리며 웃는 웃음소리가 겨울밤의 깊이만큼이나 오래 토록 이어졌다. 열살을 갓 넘긴 미소년과 미소녀들의 청순한 몸짓들이 하얀 거품이 되어 광안리 바닷가를 하얗게 물들여만 갔다.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 왔던 삶의 애환을 안주 삼아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한창 피워 나가던 와중에 담당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우리 모두를 잠시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 들게 만들었다. “교육대학을 졸업해 아무것도 모르고 부임해 처음 만난 제자들이였는데도, 아직까지 선생님을 기억해줘서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못하고 보살펴 주는 요령도 몰랐던 새내기교사였지만, 30여년 교직생활을 이어오면서 아직까지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제자들이 여러분이며, 또 가장 보고 싶었던 제자들도 여러분이었습니다. 70년대가 다 그러했지만 유난히 빈부의 격차가 심했던 우리반 친구들이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어린 제자들에게 있었던 조그마한 마음의 상처들을 제대로 안아 주고, 치유해주지 못했던 아쉬움은 아직까지 앙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줘서 너무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합니다. 이젠 나도 손주들을 돌봐주는 할머니가 됐지만, 여러분들도 자식들을 대학과 군대에 보낸 나이가 되었다는 소리에 덧없이 지나가 버린 세월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학창시절 수많은 선생님과 함께 했던 만남과 가르침이 새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흔히 부모의 은덕은 낳아서 길러준 은덕이며, 스승의 은덕은 가르쳐 사람 만든 은덕이라고 한다. 훌륭한 사람 되라고 가르쳐준 스승의 은덕은 부모의 은덕에 못지않게 소중하고 귀중한 은덕인 셈이다. 가르침의 크고 작음을 떠나 제자들이 늘 바라 볼 수 있는 촛불 같은 존재로 함께 한다면 진정한 선생님이며 스승이 되는 것이다. 제자들의 두 눈이 밝음에 트일 때까지, 어둠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를 다하여 타오르는 하나의 촛불처럼 영원히 빛나시길 바랄 뿐이다. 장명숙 선생님 참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2-05

몽골 교육 > 경북 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영하 30도의 한기가 아직 몸속을 돌고 있는 것 같다. 간혹 숨이 얼어붙는 꿈을 꾸기도 한다. 연기만 보면 몽골 매연이 생각나 자동적으로 입과 코를 가린다. 눈빛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가방부터 감싼다. 요즘 후유증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필자에겐 더 큰 후유증이 있다. 그건 바로 교육 비교에서 오는 후유증이다. 물론 단순 비교는 안되겠지만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조건을 단다면 독자 여러분은 몽골 교육과 경북 교육 중에서 어느 쪽이 소외된 이들을 위한 참교육을 실천하고 있다고 보는가. 필자의 답은 몽골이다.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경북, 아니 한국보다 몽골이 한참을 앞서 있음을 필자는 몽골 현지에서 확인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는 이 결론 때문에 불면 등 필자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필자는 이번에 실감했다. 요즘 신상(身上) 털기에 여념 없는 대한민국이지만 그래도 몽골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이 많이 생각났다. 그 이유는 영하 30도를 견디게 해 준 건 따뜻한 동포애 때문이다. 현지 분들의 도움도 컸지만, 동포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다음 기회에 꼭 몽골에서 열심히 살아가시는 동포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몽골에서 새 교육 역사를 써 가시는 수녀님들을 소개한다. 아직 필자는 종교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자랑하듯, 아니면 경쟁하듯 외형만 키워가는 종교 시설들을 보면서 필자는 비판보다 비난을 많이 했다. “과연 절대자가 저토록 큰 종교 시설을 원했을까?”라고 정말 물어보고 싶다. 모든 종교의 절대자들은 항상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편에서 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외형만 키우는 건 아니다 싶다. 차라리 초대형화, 초호화 할 돈으로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살기가 조금은 더 좋아질 것이다.종교를 비판하기 위해 시작한 글이 아닌데, 외형을 키우기보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면서 어려운 이들과 진정으로 함께하는 종교인들이 많다는 것도 필자는 잘 안다. 그 중 대표적인 분들이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 초등학교를 개교한 수녀님들이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수녀님들에게 불경스러운 일인지 알면서도 필자는 그분들의 소중한 마음이 경북도 교육청에도 꼭 전해져서 더 이상 이 땅에서 의무교육에서 소외된 학생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녀님들의 이야기를 한다.수녀님들께서는 10여 년 전에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가난 때문에 꿈과 희망이라는 것을 가져보지도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하는 몽골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개교 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비록 집은 어렵지만 예전에는 엄두도 못내는 꿈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아이들이 참 밝았다. 초등학교 다음으로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받은 감명에서 필자는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겔(몽골 전통 가옥) 한 동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몽골 교육청의 대표 유치원이 된 그 유치원을 보면서 필자는 필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일수록 더 나은 공교육이 제공돼야 합니다”라는 원장 수녀님의 말씀과 “교육청에서 교과서도 지원 안 해줍니까. 몽골 교육청에서는 그래도 교과서와 교사 임금은 지원해주는데…”라며 안타까움에 말씀을 잇지 못하시는 수녀님의 마음을 경북도 교육청에 꼭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교육이 한 아이를, 나아가 한 집안을, 그리고 더 나아가 한 국가를 일으키는 길임을 필자는 몽골 교육에서 배웠다. “아이들을 위해 투신하고 싶지만, 아직 언어가 서툴러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더 노력해서 아이들을 위해 투신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교장선생님까지 지내신 한 수녀님의 말씀을 이 땅의 교사들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2015-02-04

유아교육기관의 학대 사건과 대책

이수원대구대 교수·유아교육과최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유아를 상대로 한 학대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국회의원들은 유아교육기관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노년층 인력을 고용해 교육현장에서 학대 여부를 감시하는 방안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이에 한걸음 더 나아가 모 국회의원은 `실시간`CCTV를 설치해 학부모가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학대 방지에 대한 서약서를 교육청에 제출하는가 하면 몇몇 원장선생님들은 선생님들에게 아이를 만진다든가 동작을 크게 해 CCTV상으로 봤을 때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도록 당부하기도 했다.잇따라 학대사건이 생기자 일부에선 유아교사 자격증 취득의 낮은 진입 문턱을 지적하며 교사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문성이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전문적 지식과 기술, 소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유아교사의 전문성은 무엇일까? 노래하고 율동하며 동화책을 읽는 등 아이들의 활동 모습을 교실 유리창 너머로 얼핏 보면,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 소절의 동요를 부르며 몸동작으로 가사 내용을 표현할 때 중요한 것은 몸동작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창의적인 표현이며,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것을 몸동작으로 표현함으로써 얻는 카타르시스다.이처럼 성인 구경꾼의 눈에 비치는 교실 내 활동 모습은 단순할지 모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아교사의 전문성은, 아이들이 율동을 `왜`해야하며 이들의 활동을 `어떻게`지원할 것인지를 아는 지식에서 비롯되며, 아이들의 창의적인 표현을 격려하기 위해 개방형 질문을 하고 다양한 표현을 지원하는 능력에 있다.뿐만 아니라 교사 전문성의 요소에는, 발달과 개인적 특성에 대한 이해, 아이들이 교육적이고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능력,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맞닥뜨릴 때 의사결정을 할 능력, 다문화 및 정보기술화 등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해 새로운 지식과 패러다임을 습득하고 이를 교육현장에 접목하는 능력, 자신의 삶뿐 아니라 아이들의 삶과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러한 교사 전문성의 내용과 깊이를 고려할 때 단기간 혹은 속성 교사양성과정은 쇄신돼야 한다.재직중인 교사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전문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유아교육 기관에서는 아이들을 교육하고 돌보는 일 외에 잡무가 많아서 교사 입장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개발할 여력이 없다. 기관의 행정이나 잡무를 맡을 보조교사를 고용하고, 교사가 대학원에 진학해 소정의 재교육을 받고자 할 때 시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 개별 유아교육기관이 교사 재교육이나 보조교사의 투입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므로, 국가가 이를 담당하거나 각 기관이 교사 전문성 개발을 위해 투자할 때 국가차원에서 해당 기관에 인센티브를 넉넉히 제공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교사도 사람이기에 주변의 감시·감독보다는 스스로 `유능하고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문성은 사회가 전문직으로 인정해주고 대우해줄 때 갖춰질 수 있으며 또한 직무 수행에서 자율성을 인정받을 때 발휘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학대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유아교사가 전문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교사 양성과정을 강화되는 동시에, 유아교사가 제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인정받고 기대 받는 일이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제도와 지원, 사회적 기대와 처우는 감시와 처벌에 우선돼야 할 것이다. 학부모를 안심시킬 수 있는 것은 모 국회의원이 제안한 `실시간 CCTV`일까 아니면 `제대로 교육받은 교사`일까? 이미 학대가 발생하여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형국이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외양간을 `대충` 고칠 수 없는 노릇이다.

2015-01-29

기적조차 외면할 한국, 경북 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몽골 울란바타르! “갑자기 웬 몽골”하며 의아해 하시겠다. 세월호 이후 체험 학습 전 사전답사가 의무화 되다시피 했다. 산자연중학교에는 해외이동수업이라는 특성화 교과가 있는데, 올해의 주제는“기후변화, 사막화 현장을 방문해 환경 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림 사업에 참가함으로써 환경 난민 구호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그래서 방학을 이용해 몽골로 사전답사를 온 것이다. 혹 일반 학교에서 실시하는 외유성 해외수학여행을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꼭 영하 30도를 오가는 몽골로 직접 초대해, 숨 쉴 때마다 그 숨이 얼음이 되는 체험을 같이 해보고 싶다. 해외이동수업은 학생들에게 글로벌 시대에 맞는 국제 감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교과로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학습과 여행의 관계는 물론 나눔과 배려, 참 봉사정신을 배운다. 이렇게 말하면 국내에서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산자연중학교에는 지역사회탐방, 산지여정, 친환경봉사활동 등 국내에서 학생들이 나눔과 배려, 참 봉사정신을 배울 수 있는 특성화 교과들이 개설돼 있으며, 해외이동수업 전후로 학생들은 이들 특성화 교과들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현지답사 이틀째, 현지 가이드의 말이다. “올 겨울은 정말 안 추워요. 이렇게 안 추운 적은 없어요. 작년에는 눈만 빼고는 모든 곳을 칭칭 감고 다녔데,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반팔을 입어도 되겠어요” 그 때 바깥 기온을 보았다. 낮인데도 영하 19도였다. 사실 처음에는 필자도 걱정했던 만큼의 추위는 아니라는 생각에 출발할 때의 걱정이 기우(杞憂)였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 현장 한 가운데 있어서 그런지 영하 19도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영하 19도는 역시 영하 19도였다. 옷을 껴입었었지만 옷을 뚫고 들어오는 냉기는 분명 국내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뼈 속까지 파고드는 한기에 필자는 두고 온 겨울옷들이 한 없이 그리웠다. 그 그리움은 저녁이 되면서 서러움으로 바뀌었다, 정말 숨 쉬는 대로 그 숨이 얼음이 되는 영하 30도. 그래도 몽골 사람들은 예전에 비하면 추운 것도 아니라며 안에 입은 반팔 옷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도대체 예전 날씨는 어떠했다는 건지?답사기를 정리하면서 필자는 문득 가이드의 질문이 떠올랐다. “인천 폭력 여자는 어떻게 됐어요?” 씁쓸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그러다 봇물처럼 터져버린 어린이 집 뉴스들이 생각났다. 필자는 희망이 터지기를 바랐는데, 희망 대신 어린이 집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왜 그 폭력 교사보다 대한민국 언론이 먼저 생각났을까. 어린이 집을 다루는 언론들의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주린 승냥이 같았다. 몰아가기 식 수사가 아니라 몰아가기 식 보도. 누가 뒷북 코리아, 냄비 언론 아니랄까봐 오랜만에 이 나라가 하나 되어 뜨겁고, 시끄러웠다. 물론 지금은 연말 정산에 그 뜨거운 자리를 내줬지만. 대한민국 어린이 집을 확 바꿀 것 같이 떠들어대던 언론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지,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왜 모든 어린이 집을, 교사들을 범죄 집단으로 만들었는지 따져 묻고 싶다. 답답한 마음이 하도 커 이상화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하늘과 들`에 `언론과 정치`를 넣어 읽어보자. 언론과 정치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던가 아니면 제발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애꿎은 사람들을 잡지 말라고.곧 개학이다. 필자는 내일의 영하 30도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왜 “대한민국 중학생의 자리를 찾아주지 못하느냐”며 따지고 묻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눈이 두렵다. 경상북도 교육청은 산자연중학교 학생들도 대한민국 중학생들임을 제발 알아줬으면 좋겠다. 기적조차 죽어버린 대한민국, 경북, 교육이 아니길 영하 30도 몽골에서 빌어본다.

2015-01-28

때로는 우리의 청년들도 마리오 루폴로처럼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OECD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각종 경제지수 및 보건의료지수 등이 상위권에 있음에 반해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스스로 측정하는 지수가 행복지수인데, 이는 스스로 생각해 볼 때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다는 의미다. `지수(Quotient)` 또는 `수량(Quantity)`라는 말이 우리 인간의 삶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까. 경제지수가 아무리 높아도 `하우스 푸어`, `열정 페이` 같은 비경제적인 문제가 남듯이, 행복지수가 아무리 낮아도 행복하지 못함의 틈새 어디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행복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지수 또는 수량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다. 춥고 텅 빈 겨울의 한가운데 앉아서 행복지수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간 우리의 대학생들이 떠오른다. 행복이라는 말을 새겨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돌아간 학기 중의 일상을 벗어나, 가족들과의 만남 가운데서 자신을 찬찬히 살펴보며 여유 있는 행복을 만끽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좋을 텐데 라는 바람을 가져 본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을 스치는 영상들은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열중하는, 취업준비를 위해 토익 점수를 올리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가를 열심히 헤매고 있는 학생들이니 어쩌면 좋으랴. 대학생들에게 방학 중의 아르바이트와 취업준비는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학기 중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는 빡빡한 방학이라면, 그야말로 학교에서 또는 학교 공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방학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미국 윌리엄스 칼리지의 경우 겨울 1개월 동안 윈터 스터디제를 운영하고 있다. 짧지만 봄, 가을 학기와 비슷한 비중을 가진 학기인데, 이 기간에는 교수나 학생이 독립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거나, 새로운 스킬을 배우거나,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서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정규 교과와는 다르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지수와 교육효과를 높이는 결과를 낳는 학기 제도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감에 빠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영화 `Il Postino`(1994)의 주인공 마리오 루폴로가 떠오른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불타는 인내심`(1985·우리나라에서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번역)을 각색한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 칼라 디 소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면 어부로 일생을 사는 운명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마리오라는 청년은 어부가 되기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던 중, 칠레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가 마리오가 사는 마을로 망명을 오게 된다. 우체국에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네루다의 우편물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 우편배달부를 모집한다. 약간의 문해력을 지닌 마리오는 대시인 네루다의 우편물을 가져다주는 배달부가 되어 네루다와의 만남을 시작한다. 임시직이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마리오 청년은 네루다의 시에 빠져들게 된다. 이들의 만남은 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지로까지 발전하고, 마침내는 네루다가 마리오의 연애를 도와 행복한 결혼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어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와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마리오의 표정은 너무나 다르다.독일 철학자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행복의 조건을 `그대들의 이성, 그대들의 심상, 그대들의 의지, 그대들의 사랑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행복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했다. 우리의 대학생 청년들도 한 방향으로만 달리지 말고, 방학 때만이라도 마리오 청년처럼 해 보면 어떨까.

2015-01-27

오페라이야기

▲ 김기덕 대구수성아트피아 사업기획부장오페라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종합예술이며, 화려하고 극적이지만 사치스런 면이 있다. 그리고 오페라를 감상하려면 높은 지적 수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 오페라라고 하면 거부반응을 가지기도 하고, 아주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대구의 국제 오페라 축제가 탄생하면서 관객층도 많이 생겼고, 그 수준 또한 선진 도시에 못지않다. 겨울 오페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푸치니의 `라보엠`을 꼽을 수 있다. 이 오페라는 푸치니 작품 중에서 대중적인 작품이다. 연인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있고,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의 낭만도 있으며, 비극적인 부분 또한 일상의 추억처럼 가지고 있다. 아름다움만 있는 게 아니라 이루지 못한 아련한 추억도 있다는 것이다.푸치니의 `라보엠`은 그의 작품 `토스카` `나비부인`과 더불어 푸치니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라보엠`은 푸치니 나이 37세(1897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그의 추억도 곁들여 있다고 한다.연주시간은 제1막 32분, 제2막 18분, 제3막 22분, 제4막 25분 총 1시간 40분이며, 주요 등장인물은 미미(가난한 처녀), 뮤제타(미미의 친구), 로돌포(시인), 마르첼로(화가) 등이 나오는데 베르디 오페라의 직계라 할 수 있다. 특히 가장 풍부한 선율로 극적인 효과를 잘 발휘하고 있는 점에서 그의 최대걸작으로 꼽힌다. `보엠`이란 말은`보헤미안 기질`이란 뜻으로, 예술가 또는 그의 족속들이 세속적인 풍습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지내는 사람들을 말한다.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프랑스의 시인 뮈르제(Murger, H. 1822~1861)의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La vie de Boheme)`에서 지아코사와 일리카가 대사를 쓴 것이다. 극 중에는 세 사람의 예술가와 한 사람의 철학가가 다락방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그중 시인 로돌포는 같은 다락방에서 수놓는 병든 처녀 미미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가난했기 때문에 부양할 힘이 없어 죽게된다. 이러한 비련과 결부시켜 본다면 화가 마르첼료와 거리의 처녀 뮤제타와의 현실적인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싸움과 젊은 네 사람의 우정을 교묘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보헤미안의 생활의 슬픔과 기쁨 등이 잘 표현된, 한없이 아름다운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작품을 보면 먼저 전체 4막의 줄거리로 돼있다. 1막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의 동료들과의 들뜬 즐거움이 묘사되고, 이룰수 없는 사랑의 여인 미미와의 만남이 있다. 필자는 `라보엠`을 공연 하면서 1막의 즐거움, 그리고 그리움과 비극의 시작부분들에 도입된 음악들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연인과의 만남이 있고, 아름다운 이중창과 멋진 아리아(`그대의 찬손`)가 있기 때문이다. 2막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로 밀리는 인파속에서 로돌포, 미미, 뮤제타 등이 나와 연인과 친구들의 재미있는 일상생활이 전개된다. 3막에서는 폐병으로 쇠약해진 미미, 동거하는 로돌포와의 식어가는 사랑이야기와 더불어 미래의 이별을 예고하는 이야기 등이 전개되며, 4막에서 로돌포, 미미, 뮤제타 등이 등장하면서 미미의 죽음을 암시한다. 결국은 로돌포의 가슴속에서 묻혀 미미는 로돌포의 외침을 뒤로한 채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막이 내려진다.간단히 요약해 봐도 이탈리아 사실주의(verismo) 오페라 답게 현실적이며 정열적인 내용이다. 아마도 가장 진실하게 구성되고 사실적인 오페라를 꼽으라면 푸치니의 `라보엠`일 것이라고 감히 정의해 본다.인간은 누구나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다. 만남과 헤어짐은 동그라미속에서 머물고 이어지며, 그렇게 인간은 성숙해가지 않을까. 이 겨울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라보엠의`그대의 찬손`아리아를 들으며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면 어떨지.

2015-01-23

희망보다 기적이 필요한 한국, 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한 주 내내 마음 답답한 이야기들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단연 인천 어린이 집 이야기. 그 다음으로는 9%를 넘는 청년 실업률 이야기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없는 경제 이야기. 그리고 각종 흉악범 이야기. 아직 2015년을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이리 답답하기만 한지. `괴물 교사`로 불리는 어린이 집 교사의 폭행 동영상은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피해 학생이 4살 여아(女兒)라서 분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워킹 맘들은 물론 오랜만에 국회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솔직히 필자도 놀랐다, 마치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을 보는 듯해서. “꿈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어느 학부모의 피켓이 왜 자꾸 눈에 아른거리는지.“처음이다, 그 전에는 절대 그런 적 없다,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쳐 주고 싶었다” 등등 가해 교사는 할 말이 많다. 같은 교사로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았지만,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대한민국 언론의 끈기 있는 방송 덕분에 필자마저 죄인이 됐다. 4살 여자 아이의 내동댕이쳐지는 모습과 아픔을 참고 오뚝이처럼 자신을 혼낸 선생님 앞에 다시 서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죄송함과 미안함에 그저 마음이 먹먹해졌다.그런데 그 먹먹한 마음 한 편에 왜 불현 듯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을까. 절대 폭력을 가한 어린이 집 교사를 옹호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없다. 분명 이유를 불문하고 그 어린이 집 교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재발해서는 안된다. 글을 쓰면서 필자의 마음에는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더 또렷해졌다.그러다 생각났다. 교사들도 갑과 을이 있다는 사실을. 교사라고는 하지만 어린이집, 사설 유치원, 각종학교 교사들과 일반 초중등학교 선생님들은 모든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처우 문제에 있어서 전자의 선생님들은 정말 근로 기준법에서 정하는 최저 근로 환경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근무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을(乙) 교사다. 하지만 후자의 교사들은 럭셔리 그 자체로 생활하는 갑(甲) 교사다.필자 또한 을(乙) 교사이어서 그런지 이번 사건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봤다. 요즘 부모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품에서 내놓는다. 사실 아이들, 특히 영유아기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은 집에서 부모님의 따뜻한 품에서 이뤄지는 부모 품 교육이다. 하지만 이 나라의 현실이 그렇지 않음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맞벌이가 보편화 된 사회, 또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이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어린이 집과 유치원에 맡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수업료를 낸다. 그리고 잠시 잊고 열심히 일은 한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을 생각하고, 더 힘을 낸다.그런데 과연 내 아이를 돌봐주시는 선생님을 생각하는 부모는 몇 명이나 될까. 스승의 날이나, 명절을 제외하고 과연 자신들의 자녀를 맡아 돌봐주는 선생님의 노고에 진정으로 감사해 하는 부모는 또 얼마나 될까. 이 물음에는 필자도 떳떳하지 못하다. 필자 또한 초등학교 돌봄 교실에 아이를 맡겨 놓고 필자의 아이만 생각했지, 돌봄 교실 선생님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내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내 아이를 교육해 주시는 선생님께서 먼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필자는 놓치고 있었다.세월호 사건 때 필자는 `뒷북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몇 차례 글을 썼다. 그런데 여전히 이 나라는 뒷북치기에 바쁘다. 이제 와서 모든 어린이 집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야단이다. 필자는 묻고 싶다, 과연 CCTV로 모든 것이 해결 되는지. CCTV 설치에 앞서 어린이집, 사설 유치원, 각종학교 교사들의 근무 여건은 어떤지에 대해 먼저 조사해 볼 생각은 없는지. 그런데 답은 너무도 뻔하다. NO. 이 나라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희망보다 기적이 필요한 한국, 교육의 앞날이 걱정된다.

2015-01-21

피데기

▲ 김영식 시인노을 너머로 피득피득 날아가는 것들이 있다. 가을빛 바랜 툇마루에 앉아 방금 걷어온 오징어를 손질하다 보면, 그걸 회한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맺힌 소리라고 해야 하나? 희수의 어머닌 반쯤 감긴 눈으로 축축한 오징어를 편다. 반 쯤 말린 것, 다 마르지 않은 것. 이맘때쯤엔 첫서리가 내리고, 바닷가 벼랑 틈마다 해국이 피고, 갯바위 위론 물오른 김들이 거뭇거뭇 검버섯처럼 돋아났다. 팔삭둥이처럼, 그 팔삭둥이의 에미처럼, 자신의 생을 반 밖에 완성하지 못한 것들의 쓸쓸한 건조. 투명한 속살을 만지다보면 안다. 눈물 같은 것, 눈물의 속살 같은 것. 밤바다는 무슨 기도가 많아 수평선 가득 연등을 매달아놓은 걸까? 심해에 제 생을 드리우는 채낚기어선들의 어로(漁撈). 나는 쪼글쪼글해진 몸뚱이를 펴고, 어머닌 차곡차곡 축을 만들고. 처마 끝에 별이 뜰 때까지. 그 별 중 몇 개 감나무 끝에 까치밥으로 흔들릴 때까지. 피득피득 상강(霜降)의 하늘 위로 오래 날아가는 것들이 있다.가을이 되면 구룡포 밤바다엔 무수한 채낚기어선들 불빛이 내걸린다. 대낮처럼 집어등을 밝힌 어선들은 다음 날 아침 싱싱한 오징어를 포구에 부려놓는다. 집집마다 피데기가 속곳처럼 널리는 것도 이때쯤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수개 월 흉어기동안 허깨비 흉흉하게 나돌던 골목엔 수혈 받은 듯 활기가 넘쳐난다. 집집마다 웃음꽃이 피어난다.어릴 적, 가을이 오면 먼저 해야 하는 작업들이 있었다. 오징어 건조를 위해 사전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마루 밑에 여름잠 자던 나무기둥과 대나무로 만든 침(針)을 꺼내 햇볕에 말렸다. 새끼줄을 사오고 마당과 골목에 기둥을 세울 구덩이를 팠다. 구덩이 간격은 오징어를 널어도 줄이 처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대략 십 미터 정도였다. 먼지가 쌓인 창고와 빈 방을 깨끗하게 비우는 것도 이때쯤이다. 말린 오징어를 판매하기 전에 쌓아두기 위해서였다.손이 열 개라도 바쁠 때였다. 아침에 어머니가 사온 오징어가 마당에 도착하면 어른들은 배를 갈라 내장을 덜어내고 우물물에 씻었다. 어린 우리들은 귀 부분에 대나무침을 꽂았고 새끼줄에 널기도 했다. 그러곤 부랴부랴 밥을 챙겨먹고 학교로 갔다. 학교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와 피득해진 발을 갈랐다. 그대로 두면 서로 달라붙어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저녁이 되면 널린 오징어들이 파랗게 빛을 뿜었다. 그것은 꼭 반딧불이 같았다. 밤하늘로 날아가는 수많은 반딧불이처럼 오징어들도 은하수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반딧불이가 바다로 날아가 오징어가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밤이면 건조대 사이로 숨바꼭질을 했다. 키 높이보다 더 높게 널린 오징어들 뒤에 숨으면 술래가 찾기 어려웠다. 말린 오징어들은 오천이며 영천 등지에 장이 서는 날 팔려나갔다. 그런 날 아침이면 온 집안이 부산했다. 건넛방에 재어둔 것을 꺼내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보자기에 쌌다. 전문 판매업자에게 넘기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직접 보따리에 싸서 이고 장으로 나가면 값을 더 받았다.지금은 집집마다 오징어가 널려 있는 풍경을 보기 힘들다. 전문적으로 건조하는 덕장에 가야만 그런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어촌에 유휴노동력이 줄어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삶의 방법들이 더 이상 일차 노동에 기대지 않을 만큼 변해버렸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피데기는 다 마르지 않은 오징어를 지칭하는 말이다. 다 마르지 않은 것, 제 생을 완성하지 못한 것, 피데기에는 그런 쓸쓸한 애환 같은 것이 스며들어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미완성의 삶을 사는 게 아닐까? 미완성이라 인생은 더 아름다운지도. 피데기를 보면서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부족하게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2015-01-20

을미년 청양(靑羊)띠 해의 바람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을미년(乙未年) 청양(靑羊)띠의 해가 동해바다에서 힘차게 쏟아 오른 지도 벌써 수일이 지났다. 연말과 새해가 교차하는 시간이 되면 지나온 날들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새롭게 펼쳐지는 미래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으로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으로 보면 필자는 아직 청년인 것 같다.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이 가지는 삶에 대한 가치관이 녹슬지 않고, 모험심과 진취적인 도전정신이 아직 살아있다면 이는 분명 청년이라고 불러도 무관할 것이다.사실 필자에게 올해는 지난 여느 해 보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한해이다. 2015년은 삶에 대한 전환점으로 생각하며 미래에 대한 깊은 사찰을 갖게 해주는 `지천명(知天命)`이라는 오십의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막상 새해를 맞고 보니 힘차게 요동치는 청년의 심장을 갖고 싶은 욕구가 더욱 간절해진다. 논어 위정 편에 나오는 말처럼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된다(五十而知天命)”는 의미가 필자에게 올 한해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조심스럽게 사색케 해준다.지난해는 갑자년(甲子年) 청말의 해였고 올해는 을미년 청양의 해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는 `갑(甲)질`로 우리사회가 참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겪었던 한해였다면, 올해는 그 `甲질`에 대한 `(을)乙`의 정당한 요구와 행동들이 연초부터 언론을 장식해 가고 있다. 이제 그만큼 우리사회가 성숙하고, 사회로부터 소외 받던 구성원들에게 정당한 권리가 인정받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의 아픔과 땅콩회항에서 비롯된 대한항공 사태의 분노는 우리사회의 조직 속에서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행동들이 더 이상 무시되고 소외시 돼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전해 주었다.돌이켜보면 필자 역시 전문분야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甲이 아닌 甲의 우의적 위치에서 수많은 업무를 처리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업무의 편리함이나 전문성을 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진행했던 일들이 상대에게는 뜻 하지 않은 아픔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지천명이 되면서 하늘이 나에게 내린 사명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하늘의 뜻은 결코 이처럼 甲의 횡포가 아닌 乙의 입장에서 乙을 이해하고 행동하며 배려하라는 의미로 필자에게 준 선물로 생각된다.을미년(乙未年)의 `을`은 `청색(靑)`을 의미한다. 특히 청양의 해인 올해는 푸른색이 가지는 진취적이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에 온순하며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인`양(羊)`이 함께 있는 해이니 분명 역동적인 한해가 될 것으로 믿는다. 고대부터 양은 순종과 희생을 대표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성경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동물이 양이며,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 역시 양으로 기록되고 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양떼를 키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는 선한 목자의 상징적으로 종교적 지도자와 성직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희생이 되어 제물로 바쳐지는 양을 의미한다는 용어로 사용 되는 `희생양`, `속죄양`과 같은 단어 역시 `양`의 순수함과 희생정신을 새롭게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인 것 같다.올해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는 억울한 `희생양`의 해가 아닌 수많은 양떼의 무리 속에서도 서로를 위해주며 양의 고귀한 희생정신의 의미를 이해하며, 소중히 간직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2015-01-19

아직, 2014년! 이젠 경북교육청이다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필자는 작심삼일 법칙에 걸리고 말았다. 분명 지난주에 말은 주술적 힘을 가지고 있어 긍정적인 말만 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한 주도 못 지키고 어기고 말았다. 사실 해가 바뀌었지만 달력만 달라졌을 뿐 그 어떤 것도 바뀐 게 없다. 여전히 구제역은 축산 농가들을 괴롭히고 있고, 더 많은 `장그래`들이 아직 새벽시장을 떠돌고 있다. 땅콩 비행기는 여전히 하늘을 날아다니고, 갑들의 갑질은 육해공을 넘어 지하 세계까지 점령 했다. 화마(火魔)는 연초부터 의정부에서 아까운 목숨들을 제물로 거둬갔다. 방학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방학이 없다. 등교시간만 9시로 하면 뭐하나. 방학 중 강제 보충수업은 이제 고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 내려왔고, 인성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지만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바닥을 뚫고 곤두박질치고 있다. 사교육 방지법,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노력 등 공교육 재건을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지만 학생들은 학교 밖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고, 그래서 학교 밖 청소년들은 해가 거듭할수록 급증하고 있다.청와대는 조롱의 대상이 됐고, 그래서 일본의 철없는 행동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테러를 막지 못한 정부를 규탄하는 테러규탄 시위에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다는 해외 뉴스에도 정치권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전당대회 등 자신들의 일에만 바쁘다.정말 이 나라는 진화와는 관련이 없는 나라인가. 아니면 진화의 뜻을 모르는 나라인가. 검색창에 진화를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 나온다. `진화(珍貨·진귀한 물품), 진화(珍話·이상야릇한 이야기), 진화(鎭火·불이 난 것을 끔), 진화(進化·일이나 사물 따위가 발달해 나감)`.이 중 우리나라 정치권에 해당하는 진화는 아마도 `이상야릇한 이야기`의 진화(珍話)나 국민들이 애써 살려 놓은 희망의 불을 끄는 진화(鎭火)일 것이다. 정치하시는 분들은 언제까지 시행착오만 하고 있을 건지, 또 우리들은 언제까지 참고 지켜봐줘야 하는지. 정말 이러다 우리나라를 살릴 골든타임을 놓치지나 않을지.`시작이 반이다`는 말이 있다. 벌써 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이러다 시작도 못해보고 2015년을 그냥 넘기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신년벽두부터 망정 맞은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변한 게 무엇이 있는가. 변한 것은 2014가 2015로 바뀐 것 밖에 없다.우리에겐 아직 진정한 2015년은 오지 않았다. 힘들더라도 제발 버려야 할 것은 버리자. 해묵은 것들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절대 우리에게 희망찬 2015년은 없다. `탄도괄장 음회세위`(呑刀刮腸 飮灰洗胃)(南史)라는 말이 있다. `칼을 삼켜 창자를 도려내고, 잿물을 마셔 위를 씻는다` 즉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새롭게 시작 한다`는 뜻이다.우리 모두는 희망가를 부르기를 원한다. 절대 절망을 말하고 싶지 않다. 국민들은 해묵은 것들을 털어낼 준비가 됐다. 지도층에 계시는 분들만 마음먹으면 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이 결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김영란 법` 같은 법까지 제정할 필요가 없다. 욕심만 조금만 버리면 된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조금만 더 생각하면 된다. 그들을 위해 내 것을 조금만 포기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하지만 2014년 12월 교육부는 `사립 대안학교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통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정부는 `세월호 여객선 사고 이후 교과과정 상 체험학습이 중심인 대안학교의 안전한 교육 환경 조성을 위해` 처음으로 사립 대안 학교에 시설비 지원을 했다. 대구·경북에서는 유일하게 산자연중학교가 선정됐다. 늦었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가는 교육부에 큰 박수를 보낸다. 교육부도 대안학교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 했다. 이젠 경상북도 교육청 차례다. 2015년, 경북교육청의 현명한 선택을 믿는다.

2015-01-14

화가로서의 급수

▲ 권정찬 화가·경북도립대학 교수가끔 수준이 낮은 그림을 들고 와서는 어디 공모전에 대상작가이고 심사위원이라 하면서 그 정도 되는 작가인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만큼 화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은 누가 진정한 화가인지 등급을 매길 수가 없다. 하기야 예술에 무슨 등급이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기도 하다. 80년대만 해도 국전의 추천 초대작가가 되면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 소위 밥 먹고 살기편한 대우였는지도 모른다. 그 만큼 공모전에 죽어라 매달리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러한 공모전은 전국에 수도 없이 생겨나고 미술대전도 도전도 시전도 모두 시들해졌다. 상을 받고자 한다면 미협 선거와 관련한 공헌도 해야 하고 심사에 자주 참여하는 스승이나 지인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 실력보다는 줄이란 셈이다.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공모전의 상으로는 인정하기 싫은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된 시대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유명작가라고 할 수가 있을까? 참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설명하려면 꾸준한 실력을 보여주는 것에 가장 많은 점수를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전의 시대에는 그래도 엉터리 작품이 상을 받거나 특선을 하는 경우가 적었다. 많은 작품을 뽑지도 않았다. 그래서 실력을 겨루는 장으로는 최고였던 셈이다. 그것은 기초가 되어있지 않는 작가는 넘보지 못하는 성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밤을 지새우면서 작업에 매달리는 분위기가 지속됐다.하지만 요즘은 급하게 인정을 받으려는 자세가 앞서다 보니 작품보다는 많은 발표에 중점을 두는 작가들이 많다. 자신의 작품이 개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남의 작품을 도용해가면서 작품을 양산해서 숨 돌릴 틈 없이 전시를 하는 분위기이다. 물론 가족이나 지인의 우선적 금전 지원이 큰 몫을 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가족, 친척, 동창, 계모임에서 작품을 사주는 소위 인맥을 이용한 판매로 대가가 된 것처럼 뽐낸다. 물론 이러한 작가들은 영세한 화랑들의 사냥 표적이 된다. 소위 팔아주는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대학출신도 아카데미출신도 상화작가도 돈만 있으면 작가가 쉽게 된다.작가가 되는 길은 참으로 험난하다. 기초를 다지고 자기 것을 찾고 평론가와 유명화랑의 부름을 받을 정도가 돼야만 그래도 작가라 할 수가 있다. 정말 작품을 좋아하는 고객층의 호응도 중요하고 언론의 객관적이고 냉정한 보도에도 한 몫을 해야 할 것이다.그러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열정과 기다림뿐이라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중국은 화가의 기준을 1급 대사, 2급, 3급 등으로 급수를 둔다. 물론 예술에 무슨 급수가 있나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수많은 작가를 쉽게 접근하기에는 그러한 급수도 괜찮다고 보여진다. 중국의 1급 대사는 대단한 작가들이다. 1천만이 넘는 화가들 가운데 매겨진 등급이다. 그리고 화단에서나 사회에서나 그렇게 인정을 한다. 작품 값도 대단하다.한 예로, 필자와 같이 전시회를 한 중극의 짱따화 작가의 경우 전지 한 장에 5천만원이 호가하는 1급 작가이다. 그는 북경공항에 중국전통이미지를 홍보하는 작가이고 미국 맨해튼에 정부가 30억을 들여 광고탑을 세워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중국 각지 미술관에 모사품이 소장될 정도이다. 그는 제백석 제자로서 자기만의 독특한 선화적 이미지 작품의 기틀을 마련했다. 주위에는 당원, 기업인도 있고 배우, 가수, 전통악기 연주가, 영화인, 의상디자이너, 모델 등 수많은 애호가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짱따화의 그림이 좋아 모인 사람들이다. 선후배나 이웃도 친인척도 아니다.지금의 시대화가들은 모두 성급하다. 그렇다고 기초를 등한시하고 내 것도 없이 서둘러 간다면 결과도 결과 이지만 가족이나 주변 친인척, 지인들의 마음과 믿음에 상처를 줄까 두렵다.

2015-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