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몽골 울란바타르! “갑자기 웬 몽골”하며 의아해 하시겠다. 세월호 이후 체험 학습 전 사전답사가 의무화 되다시피 했다. 산자연중학교에는 해외이동수업이라는 특성화 교과가 있는데, 올해의 주제는“기후변화, 사막화 현장을 방문해 환경 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림 사업에 참가함으로써 환경 난민 구호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그래서 방학을 이용해 몽골로 사전답사를 온 것이다. 혹 일반 학교에서 실시하는 외유성 해외수학여행을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꼭 영하 30도를 오가는 몽골로 직접 초대해, 숨 쉴 때마다 그 숨이 얼음이 되는 체험을 같이 해보고 싶다. 해외이동수업은 학생들에게 글로벌 시대에 맞는 국제 감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교과로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학습과 여행의 관계는 물론 나눔과 배려, 참 봉사정신을 배운다. 이렇게 말하면 국내에서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산자연중학교에는 지역사회탐방, 산지여정, 친환경봉사활동 등 국내에서 학생들이 나눔과 배려, 참 봉사정신을 배울 수 있는 특성화 교과들이 개설돼 있으며, 해외이동수업 전후로 학생들은 이들 특성화 교과들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현지답사 이틀째, 현지 가이드의 말이다. “올 겨울은 정말 안 추워요. 이렇게 안 추운 적은 없어요. 작년에는 눈만 빼고는 모든 곳을 칭칭 감고 다녔데,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반팔을 입어도 되겠어요” 그 때 바깥 기온을 보았다. 낮인데도 영하 19도였다. 사실 처음에는 필자도 걱정했던 만큼의 추위는 아니라는 생각에 출발할 때의 걱정이 기우(杞憂)였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 현장 한 가운데 있어서 그런지 영하 19도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영하 19도는 역시 영하 19도였다. 옷을 껴입었었지만 옷을 뚫고 들어오는 냉기는 분명 국내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뼈 속까지 파고드는 한기에 필자는 두고 온 겨울옷들이 한 없이 그리웠다. 그 그리움은 저녁이 되면서 서러움으로 바뀌었다, 정말 숨 쉬는 대로 그 숨이 얼음이 되는 영하 30도. 그래도 몽골 사람들은 예전에 비하면 추운 것도 아니라며 안에 입은 반팔 옷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도대체 예전 날씨는 어떠했다는 건지?
답사기를 정리하면서 필자는 문득 가이드의 질문이 떠올랐다. “인천 폭력 여자는 어떻게 됐어요?” 씁쓸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그러다 봇물처럼 터져버린 어린이 집 뉴스들이 생각났다. 필자는 희망이 터지기를 바랐는데, 희망 대신 어린이 집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왜 그 폭력 교사보다 대한민국 언론이 먼저 생각났을까. 어린이 집을 다루는 언론들의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주린 승냥이 같았다. 몰아가기 식 수사가 아니라 몰아가기 식 보도. 누가 뒷북 코리아, 냄비 언론 아니랄까봐 오랜만에 이 나라가 하나 되어 뜨겁고, 시끄러웠다. 물론 지금은 연말 정산에 그 뜨거운 자리를 내줬지만. 대한민국 어린이 집을 확 바꿀 것 같이 떠들어대던 언론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지,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왜 모든 어린이 집을, 교사들을 범죄 집단으로 만들었는지 따져 묻고 싶다. 답답한 마음이 하도 커 이상화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하늘과 들`에 `언론과 정치`를 넣어 읽어보자. 언론과 정치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던가 아니면 제발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애꿎은 사람들을 잡지 말라고.
곧 개학이다. 필자는 내일의 영하 30도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왜 “대한민국 중학생의 자리를 찾아주지 못하느냐”며 따지고 묻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눈이 두렵다. 경상북도 교육청은 산자연중학교 학생들도 대한민국 중학생들임을 제발 알아줬으면 좋겠다. 기적조차 죽어버린 대한민국, 경북, 교육이 아니길 영하 30도 몽골에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