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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김영식 시인가을은 곁의 계절이다. 더위로 소원했던 관계들이 조금씩 그 거리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가을마당이 멍석을 내어놓듯 사람들은 제 안에 꼭꼭 접어뒀던 곁을 꺼낸다. 먼지도 털고 구겨진 곳을 펴기도 하면서. 그럴 때 곁은 오롯이 외부를 지향한다. 곁은 단음절이지만 복수(複數)이고 격음이지만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곁이거나 다른 이의 곁이 되길 원한다. 곁은 모닥불처럼 제 온기를 나눠주며 고목처럼 그늘을 펼쳐 타자를 품어준다. 곁불, 곁눈, 곁순 등 기준이 되는 대상으로부터 공간적, 심리적으로 가까운 쪽을 말하지만 실제론 후자가 더 많이 작용한다. 거리는 지척이지만 마음이 멀어졌을 때 우리는 곁에 있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곁을 준다는 말이 있다. 마음을 준다는 의미이다. 등불이 제 밝기를 주변으로 펼치듯 자신의 일부를 떼 내어 다른 이에게 건네준다. 곁은 대개 제한적이라 이기(利己)적인 것 같지만 그 근본정신은 이타(利他)이다. 곁은 대체로 그윽하고 은은하다. 그러므로 시끄러운 것은 곁이 아니다. 간혹 곁을 자기과시용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결코 본질이 아니다. 곁은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다. 자기를 넘어선 위로이고 봉사이며 희생이다.티베트의 라다크 어머니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밭일을 할 때나 차를 마실 때, 동네잔치가 있을 때에도 아이와 항상 동반한다고 한다. 그것이 아이의 정서와 인격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럴 때 곁은 무조건적인 헌신이다.버림으로써 완성되는 곁도 있다. 독수리는 새끼를 부화하였다가 때가 되면 전부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다고 한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다친 것들은 버려두고 건강한 상태의 새끼만 물고 와 자신과 같은 하늘의 제왕으로 키운다고 한다. 시련을 이겨낸 어린 새는 다시 어미의 곁을 확보한다. 곁의 냉정함이다.`내 사랑 내 곁에`라는 영화가 있었다. 가수 김현식의 동명의 노래를 영화한 것이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남자와 장례지도사인 여자가 만나 사랑하게 된다. 남자는 숟가락 하나 손에 쥐기도 힘들지만 늘 자기 곁을 지켜주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 그러나 조금씩 걷지 못하게 되어 몸져누우면서 언어장애가 오고 급기야는 사망하게 된다.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아내 역 하지원의 연기가 돋보인 영화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곁이 되어준 사랑이야기이다.가을이 되면서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졌다. 이럴 때 보통 혼자인 사람을 두고 `옆구리가 시리다`고 얘기한다. 곁을 나누고 곁을 내어줄 연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곁`은 `시리다`의 반대말일 수도 있겠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낙엽들이 하나, 둘 나무를 떠나고 있다. 가을에 유독 우울해지는 건 우리 몸 안에 있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증가하는 때문이라고 한다. 멜라토닌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안타까운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곁을 잃었다. 남은 이들은 아직도 단장(斷腸)의 아픔과 슬픔을 견뎌내고 있다. 세상 무엇도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할 것이다. 자식과 부모와 연인을 가슴에 묻은 사람들은 차마 그 곁을 놓아버리지 못한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상실의 자리는 더 외롭고 허전할 것이다. 곁불이라도 피워 시린 마음들을 쬐어주고 싶지만.이런저런 일들로 이 가을, 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우리의 곁을 조금 나눠주는 것은 어떨까? 다가가 여름내 젖은 곁을 꺼내어 말려주는 일, 우는 곁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어주는 일, 곁과 곁이 만나 뜨겁게 껴안는 일, 그럴 때 곁은 비로소 자신을 완성한다. 그런 따뜻한 곁이 못내 아쉬운 시간이다.

2014-09-26

경북 교육청에는 없다

▲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사문제입니다. 아래에 열거된 학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평동중학교(광주·공립), 두레자연중학교(경기 화성·사립), 이우중학교(경기 성남·사립), 헌산중학교(경기 용인·사립), 중앙기독중학교(경기 수원·사립), 한겨레중학교(경기 안성·사립), 팔렬중학교(강원· 사립), 동화중학교(전북 정읍·공립), 지평선중학교(전북 김제·사립), 용정중학교(전남 보성·사립), 성지송학중학교(전남 영광·사립), 청람중학교(전남 강진·공립)`답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잠시 정리를 해드리자면, 일단 위에 열거된 12개 학교는 모두 중학교(공립 3개교, 사립 9개교)입니다. 그리고 지역과 학교 수를 보면 광주 1곳, 경기 5곳, 강원 1곳, 전북 2곳, 전남 3곳입니다. 아직 답을 모르시겠습니까. 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상북도 교육청 관계자들도 모를 수 있으니까요.위의 학교들을 사람들은 흔히 일반학교와 달리 이 학교라 부릅니다. 이들 학교는 제도권 학교들이 감히 엄두도 못 내는 학생들의, 학생들을 위한, 학생들에 의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무의미한 학교 시험과 점수를 위해 아까운 시간을 죽이는 교사나 학생들은 원시인이 됩니다. 또 이들 학교의 교실은 콘크리트로 만든 네모난 상자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교실이 됩니다.그럼 교과서는 어떨까요? 사(四, 死)각 교실에 갇혀 하루를 보내는 대한민국 대다수 학교들의 교과서는 교실 모양만큼이나 내용과 모양이 똑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배우는 학생들 또한 똑같아집니다. 하지만 위의 학교들은 교실이 다르듯 교과서 또한 확연히 다릅니다. 혹 인쇄된 교과서가 있다 해도 그것은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 학교의 교과서는 학생들이 직접 만듭니다. 학생들이 보고 느끼는 것은 모두가 교과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교과서 갇힌 일반학교 학생들과는 달리 개성이 넘칩니다. 개성은 창의성으로 이어지고, 창의성은 분명 문화 강대국 코리아를 이끌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아직 답을 모르시겠습니까? 혹 이 문제를 왜 풀어야하는지 의문이 드시는 분은 지금 이 나라 교육을 한 번 생각해보시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꼭 찾아야겠다는 의무감이 드실 겁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이들 학교들을 예전에는 대안 학교라고 했습니다. 답을 찾으셨습니까. 맞습니다. 이들 학교의 공통점은 바로 `특성화 중학교`라는 것입니다.`특성화 중학교`라는 용어가 낯선 분을 위해 잠시 설명 드리면, 위에서도 언급했듯 특성화 중학교를 예전에는 `대안 학교`라고 불렀습니다. 솔직히 대안 학교라 하면 지금도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마치 별난 학생들만 모아 놓은 교육계의 별난 섬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교육이 죽은 지금 대안 교육의 위상은 분명 달라졌습니다. 공교육 문제의 해결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자유학기제, 창의·인성교육, 특기적성교육은 오래전부터 대안 학교의 기본 교과였습니다. 이 교과를 특성화 교과라 하는데, 특성화 중학교란 이들 특성화 교과를 교육의 중심으로 삼는 학교를 말합니다.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위에 열거된 학교들은 각 지역 교육청으로부터 학교 운영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전폭적으로 지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큰 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부러움 가득한 마음으로 손바닥이 터지도록 광주, 강원, 경기, 전북, 전남 교육청 관계자들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특성화 중학교를 5곳이나 운영하는 경기도 교육청은 현 교육 문제를 해결한 교육청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혹 독자 여러분! 여기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까.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은 특성화 중학교를 운영하는 시도교육청을 다시 한 번 보세요. 찾으셨습니까. 이상한 점은 바로 경상북도 교육청은 없다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왜 경상북도 교육청에는 없을까요?

2014-09-23

대구사진비엔날레의 문화·예술적 위상을 위해

▲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9월이 시작되며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서 개최되는 문화행사들을 통해 가을의 여유로움과 풍성함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9월초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와 광주비엔날레를 필두로 지난 12일에는 대구사진비엔날레가 개막됐다. 그리고 오는 20일에는 부산비엔날레가 개최돼 국내 주요도시에는 말 그대로 비엔날레의 천국이 된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 형식의 문화행사는 이 밖에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전북세계서예비엔날레 등을 덫 붙일 수 있다. 깊어져 가는 가을의 감성을 마음으로 느끼며 새로운 에너지를 마음껏 충전할 수 있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뚜렷한 성격이나 국제행사의 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기획력과 행사장 구성은 도리어 관객들에게 비엔날레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 보다 세심하고 체계적인 운영이 요구되고 있다.`비엔날레(biennale)`라는 용어는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으로 미술 분야에서 2년마다 열리는 전시 행사를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길며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베니스 비엔날레이다. 1895년에 창설된 베니스 비엔날레는 2년마다 6월에서 9월까지 여름 동안 27개국의 독립 전시관과 가설 전시관을 설치해 세계 각국의 최신 미술 경향을 소개하는 장(場)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탈리아의 도시 베니스에서 관광도시라는 지역특수성을 기반으로 기획된 행사였다. 실험성과 지역성, 젊은 미술가를 육성한다는 순수미술행사로서 개최 당시 행사취지와 함께 관광산업과의 연계한 수익 창출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후 실추된 이탈리아 미술의 위상을 재확립하겠다는 의도로 함께 깔려 있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미술의 형태가 바뀌듯, 비엔날레의 목적과 의미 또한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긴 비엔날레 역사를 지닌 유럽지역에서도 제도에 대한 비평과 함께 새로운 모색이 시작됐다. 국가·지역적인 구분은 1990년 이후로 서서히 무의미해지기 시작하면서 보수적이던 베니스 비엔날레도 이제 외국의 큐레이터가 국가관의 커미셔너를 맡고 작가를 초대하는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지난 20세기에는 다양한 문화·지역권의 국가들이 마치 현대미술의 올림픽을 개최하듯 다양한 비엔날레를 통해 자국의 문화·예술과 함께 동시대 미술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평가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러한 비엔날레의 국제적 흐름에 맞춰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국내의 유사한 미술행사와 다른 차별성과 방향성은 과연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새삼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2006년을 시작으로 올해 5회째를 맞는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는 `기원, 기억, 패러디(Origins, Memories Parodies)`이라는 주제로 대구문화예술회관과 대구예술발전소, 봉산문화회관, 대구지역 화랑가등에서 주 전시와 부대행사를 마련한다.31개국 250여명의 작가들이 참가해 인간의 눈이 아닌 기계의 눈으로 담기 시작한 사진의 기원(起源)과 사진술이 만들어낸 복제와 기억, 나아가 사진의 예술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문화적 산물로서의 사진이 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행사로 진행될 예정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역사가 짧은 비엔날레가 넘쳐나다 보니 확실히 자리를 잡은 극소수의 비엔날레를 제외하고는 이들의 정체성 확립과 차별성이 세계 예술계의 새로운 담론으로 부각 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최됐던 광주비엔날레가 109억원 과 부산비엔날레가 37억 원의 예산으로 지난 행사를 치른 반면, 2012 대구사진비엔날레는 겨우 16억원의 예산만이 집행됐다. 올해는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넉넉지 못한 예산 때문에 진행의 어려움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벌써 부터 들여오고 있다. 대구사진비엔날레도 이제 지역 문화행사의 개념을 넘어서 세계유수의 비엔날레와 견주어 손색이 없을 국제행사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예술인들과 행정기관의 새로운 인식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2014-09-22

포항이 명실상부한 창조도시가 되려면

▲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그동안 포항시를 나타내는 이름은 수없이 많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철강도시라는 얼굴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다만 2000년대 들어선 이후 포항시 스스로 조금은 다른 얼굴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환동해중심도시, 로봇시티 선언 등은 물론 행복도시, 감사도시 등 많은 얼굴을 내세웠었다. 하지만 이러한 얼굴들은 포항시민 전체가 피부로 느낄 정도로 인식되지는 못한 인상이다. 한편 최근 포항시가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도시의 얼굴로 내세운 얼굴은 이제 창조도시다. 이름 자체만으로는 다소 추상적인 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철강이라는 강인한 이미지와 그간의 감성적이었던 이름 대신 무언가 새로운 그리고 역동적인 것을 기대할 만한 이름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과연 무엇을 창조하는 도시가 될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경제성장에 있어 기술혁신 등으로 불리는 창조적 이노베이션을 통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창조경제다. 포항은 사실상의 창조도시였다. 척박한 해안가의 마을이 세계 Top 10에 들어가는 철강회사를 지닌 강소도시로서 우뚝섰기 때문이다. 또한 포항운하와 같은 새로운 관광지점이 생겨나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를 통한 지역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것도 국내에서 자랑할 만한 창조경제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핵심적인 창조경제는 지역내 기업, 가계, 산업, 재정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고용창출을 수반하는 기업의 육성이라고 본다. 연구개발 성과의 결과물로서 지역내 기업을 창업하고 잘 키워 강소기업이 된다면 새로운 성장동력이 확보되고, 고용의 창출과 더불어 젊은이의 유입으로 도시고령화가 억제되며 지방재정도 튼실하게 할 수 있는 두 마리 이상의 토끼도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기업을 키울 것인가? 단순히 영세적인 소기업만 양산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는 글로벌 니치 탑(GNT:Global Niche Top) 기업 또는 글로벌 히든 챔피언(GHC:Global Hidden Champion) 기업이라 불리는 강소기업을 떠올려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GNT 또는 GHC라 불리는 강소기업의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세계적인 시장, 좁은 분야, 시장점유율 넘버원인 기업들을 말한다. 조용히 세계시장을 한손에 쥐고 있는 기업들인 것이다.포항이 앞으로 창조도시를 표방하려면 바로 이러한 기업들을 육성해야만 한다. 주로 일본과 독일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은 3가지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세계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시장이나 제품의 영역을 매우 좁혀 진출하였다. 둘째, 만든 제품(하드웨어)은 물론 다양한 서비스까지 조합한 전체에서 고객의 신뢰를 유지시켰다. 셋째, 경쟁력을 유지함에 있어 모든 것을 자사에서만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때에 따라 부족한 경영자원은 적극적인 아웃소싱을 통해 보완해나갔다.포항이 창조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앞에서 언급한 강소기업의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하겠지만 굳이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넘버원을 노릴 필요는 없다. 작게는 국내 넘버원 더 작게는 대구경북, 내지는 포항에서 만이라도 넘버원을 우선 목표로 기업 창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다만 무조건 창업기업이면 지원하기보다는 매우 좁은 시장이라도 넘버원이 될 수 있겠는지를 충분히 사전에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창업기업 자체에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지역의 다른 기업과 연대하면 좋은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창업의 꿈을 키우고 있는 예비창업자나 연구개발자들도 우선 창업을 서두르기 보다는 창업 이전단계부터 사전에 자신들이 추구하는 시장의 수요와 진출대상을 염두에 두면서 출발점부터 히든챔피언을 노리는 사업계획을 구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시간을 갖고 이러한 기업들이 하나씩 나타나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다면 포항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창조도시로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벤치마크의 대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2014-09-18

푸른 시인학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가정통신문 속 글자들이 울긋불긋 가을물 드는 요즘이다. 산자연중학교 학부모들의 눈길이 스치는 글자마다 맑은 풀벌레 소리 향기롭다. 풀벌레들은 집배원이다. 소식 전하기를 마친 풀벌레들이 만든 깊은 가을 밤 속으로 한가위 노란 달이 풍덩 빠졌다. 달은 밤새 자신의 몸을 풀어 더 풍성한 아침을 해산한다. 가을 달이 품은 산, 들, 바다 모두 가을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가을 산과 들, 바다를 찾는지 모른다.산과 바다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을을 만난다. 가을과 책은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 선조들의 통찰력이 놀랍다. 가을에 살찌는 건 유독 말(馬)뿐만은 아닐 것이다. 가을과 책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람들도 마음과 삶이 풍성해질 것이다. 비만 걱정 없는 이 풍성함을 독자 여러분께 선물하고 싶다.이와 더불어 마음을 더 값지게 살찌우는 문학 강연을 소개한다. 1999년부터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6년 동안 지역 문학 융성을 위해 개교하는 `푸른 시인학교`다. 푸른 시인학교는 포항 지역에서 시 창작 활동을 하는 푸른시 동인(회장 김말화)들이 문학, 특히 시 강연에 목말라 하는 포항 및 인근 지역민들을 위해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유명 시인(2013년 이병률 시인, 2012년 이정록 시인, 2011년 나희덕 시인 등)을 초청하여 그들의 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초청 시인들로부터 시 창작에 대해 지도 받는 시인학교다.올해 푸른 시인 학교 초청 선생님은 전동균 시인이며, 오는 20일 토요일 늦은 7시 두호동사무소 회의실에서 개교한다. 해가 갈수록 지자체들의 문학에 대한 지원이 각박해지고 있는 요즘 사비를 털어서라도 지방 문학의 맥을 지키고, 시민들의 문화 감수성을 살찌워 조금이라도 사람 사는 맛 나는 지역을 만들고자 하는 푸른시 동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수도권과 지방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양한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가 없는가이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 역시 문화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영화관, 대형 쇼핑점 등 웬만한 소비 인프라들이 지역에도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지역에 산다는 게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다.하지만 역시 부족한 게 있다. 그건 바로 공연·강연 문화다. 연극, 뮤지컬, 문학 강연 등은 아직 지역에서는 별나라 이야기다. 소도시에서 연극을 보고 싶다는 것은 정말 꿈과 같은 이야기다. 그래도 연극은 대도시에 가면 볼 수나 있지 문학이 죽어가는 사이버 사회에서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문학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자리는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해마다 열리는 푸른 시인학교가 놀랍다.문화의 중요성을 인지한 현 정부에서 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하여 문화 부흥 융성을 위해 영화관, 미술관, 박물관, 경기장 등에서 여러 가지 할인 행사를 하고 있지만 사실 이 제도를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은 항상 의욕적이다. 그 의욕이 끝날 때까지 반만 남아 있어도 그 제도는 성공한다. 하지만 지금껏 정부 주도로 시행된 많은 제도 중 정권이 바뀌어도 명을 유지하는 제도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얼마는커녕 거의 전무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의욕으로 넘치니까. 그래도 `문화가 있는 날`만은 잘 정착 되어 이 나라가 단지 문화 소비 강국이 아닌 문화 창조 선진국이 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문화 강대국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정부와는 달리 해가 갈수록 지자체의 문화행사에 대한 지원은 줄고 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해마다 무료로 열리는 푸른 시인 학교가 삭막해져가는 이 사회의 오아시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을밤 푸른 꿈을 꿀 수 있는 가을 소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푸른 시인학교 2014년 9월20일 토요일 늦은 7시 두호동사무소!

2014-09-16

쥐돌고래에 대한 예의?

▲ 김영식 시인내 호주머니 속엔 쥐돌고래 한 마리 살고 있지요. 푸읏푸웃 머리엔 언제나 시든 제라늄 화분 하날 얹고. 놈은 하릴없이 뒷골목을 배회하거나 어디 공짜로 삼킬만한 멸치 떼가 없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게 일상이지요. 녀석이 우울할 때마다 혓바닥을 긁어주거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지만. 삶이란 게 그렇지요. 그건 온전히 자신만의 몫이니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겠어요. 둘러보세요. 지금 누군가 호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고 당신 옆을 스쳐간다면 그는 분명 돌고래 한 마리를 키우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면 범고래거나 흰수염고래일지도 모르지요.아침마다 호주머니 속 쥐돌고래를 꺼내 굽은 등을 펴고 지느러미를 닦아주지요. 그럴 때마다 놈은 비장한 각오를 다지지만, 그건 이미 바람 빠진 부레나 다름없다는 걸 진즉부터 알고 있지요. 비호처럼 생선을 낚아채던 이빨은 썩은 나무토막처럼 무디어진지 오래이고요. 비로드처럼 매끈한 피부는 주름살이 물결을 이뤘고 세상 끝까지 헤엄쳐갈 것 같던 지느러미는 녹슬어 작은 파도에도 삐걱거리기만 하지요. 풍랑주의보의 거친 바다를 헤엄쳐 다니던 그 위풍당당한 정신의 콧대는 어디로 간 걸까요?가끔씩 놈은 뒤통수를 긁적여 낡은 화분 하나를 끄집어내지요. 마술사가 장미나 비둘기를 꺼내듯. 그건 녀석이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지요. 그러나 제라늄 한 송이가 어떻게 태산 같은 슬픔을 위로할 수 있겠어요. 한때는 그 제라늄이 분수처럼 형형색색 춤을 추고 물방울보석들이 루미나리에처럼 밤하늘을 수놓을 때도 있었지요. 그땐 삶이 얼마나 희열에 차 있었고 미래가 가슴 부풀었는지. 이젠 다음 장이 다 보이는 카드놀이처럼 시들해버린 지 오래지만요.먹일 찾아 낭떠러지로 질주하는 스프링복처럼 놈은 종일 도시의 변두리를 회유하지만 기껏 구름의 뒤통수나 좇는 게 일쑤. 부리의 기억을 잃어버린 이 이빨고래아목의 포유류는 사랑을 고백하는 꽃도 되지 못하고 제 등을 갈라 사막의 내게 물 한 모금 축여주지 못합니다. 순한 들쥐의 주둥이를 유전(遺傳)한 잿빛 몽유는 그러므로 무지개가 아닙니다. 불멸은 더욱 아니지요. 수평선을 꿈꾸지만 단 한 번도 심해에 닿아본 적 없는, 쓸쓸한 은유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나는 오늘도 오거리에서 육거리로, 시장에서 역전으로 샛바람처럼 떠돌지요.가끔씩 그물에 걸리거나 해안가에 떼를 지어 난파된 녀석들의 소식을 듣곤 하는데요. 돌고래의 지능지수는 유아정도 수준이라는데 녀석들의 죽음이 때때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호주머니 속 쥐돌고래를 유기해버렸거나 삶에 지친 쥐돌고래들이 스스로 그 아스라한 삶의 끈을 놓아버린 때문이 아닐런지요. 어쩌면 물질만능의 이 부조리한 사회적 현상 때문인지도 모르겠지요.장미는 보도블록 위에서, 색색의 풍선을 들고 가던 아이들은 뒷골목에서 일찍 시들어버린 지 오래. 누군가는 아파트 아래로 투신하고, 또 누군가는 신용불량의 내일을 하수구에 폐기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저녁은 언제나 죽은 물고기처럼 떠밀려오지요. 지금은 눈 먼 새들이 제 몸을 쪼아 먹는 흉어기…. 그래도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 오늘도 호주머니 속에 놈을 쑤셔 박고 귀가하지요. 투덜거리는 입속으로 썩은 청어 몇 마리 던져주면서.

2014-09-12

생활 속에서 즐기는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최근 강정 고령보와 함께 낙동강의 새로운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는 디아크(The ARC)에 다녀왔다. `2014 강정대구현대미술제`개막식 참석과 전시 작가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한 자리였는데 주차장은 이미 인근 주민들과 행사를 즐기기 위해 참석한 관람객들의 차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개막행사가 열리는 광장으로 들어서면서 색다른 관경에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한여름 밤 무더위를 피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시원한 낙동강 야경을 즐기며 편안하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곳이 인근 주민들에게는 대구의 여름을 즐기는 이색 휴양지임을 알 수 있었다. 맛있는 야식과 함께 잔디밭에 설치되어 있는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피서객들을 보며 미술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강정 대구현대미술제`의 유래는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계명대학교 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1974년)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50여명으로 시작된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는 이듬해에는 참여 작가가 100여명으로 늘어나면서 미술관 전시와 함께 보다 실험적인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와 퍼포먼스, 야외설치 작업을 대구 근교에 위치해 있던 낙동강변에서 펼치며 새로움과 실험성을 선보일 수 있었다. 지금처럼 인근의 고층 아파트와 조화롭게 정리된 수변공원의 다양한 시설물들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그저 강변의 모래사장이 전부였던 벌판에서 강정의 현대미술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기존 관념적인 예술의 형식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무언가 새로운 의미가 담긴 미술을 추구하며 의외성이 수반된 활동과 결과물들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어떤 충격을 주는가를 살펴봤던 다양한 퍼포먼스와 야외설치는 이제 한국현대미술의 전설이 돼 버렸다.1970년대 작가들에게조차도 생소했던 현대미술과 설치, 퍼포먼스는 당시 새로운 조형예술을 추구했던 실험 작가들에게도 엄청난 모험이었으며 도전이었을 것이다. 어떤 관객들도 눈여겨 봐 주질 않았지만 당시 강정 현대미술제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그들 작품들이 30~40년이 지나면 보편적인 조형작품들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까? 흥겨운 클래식 연주곡과 함께 낙동강의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조형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가족들의 모습들에서 당시 참여 작가들의 위대한 예지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당시 무모했지만 확신에 차 있었던 작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처럼 세련된 미술제를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당시 30대의 청년작가로 활동했던 노화가의 인터뷰 중 아직 귓가에 맴도는 말이 생각난다. “당시 우리는 현대미술이 뭔지도 몰랐고 그저 미술을 즐기며 미술과 놀았을 뿐이었다. 미술을 통해 뭔가를 얻고,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와 역할을 하려고 애쓰질 않았다. 그저 할 줄 아는 게 미술뿐이었기에 미술을 통해 나를 말하고 싶었다.”라는 말은 지금도 우리가 미술을 통해 추구해야 하는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하다. 멀리서 보면 낙동강변에 불시착한 은색 우주선처럼 보이지만 물고기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해서 지었다는 디아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강정 현대미술제`는 이미 미술이 현대인들의 일상 한가운데 다가서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해준다. 우주선이든 물고기이든 현대미술은 작가 의도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며 즐기느냐 하는 감상자의 자유로움으로 더욱 살찌게 된다고 생각한다.

2014-09-05

산자연중학교 풀꽃 퇴임식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이 선생, 다른 건 다 필요 없습니다.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자리만 마련해 주면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만든 야생화 꽃다발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35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 하시는 산자연중학교 김지백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금 한 직종에서 35년을 근무한다는 것이 직업계의 전설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35년은 이제 겨우 10년을 조금 넘긴 필자에겐 감히 상상도 못할 숫자다.최근 명예퇴직 신청 교사가 급증해 그 수요를 다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명예퇴직 조건이 20년 이상 근무한 교사인 것을 생각하면 분명 그 분들도 교육 발전을 위해 큰 노력을 했고, 그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명예퇴직의 이유를 보고 필자는 교사라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물론 명예퇴직을 신청한 모든 교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많은 이유들 중 필자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퇴직금 및 연금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퇴직을 한다는 것이다. 국민 연금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공무원 및 사학 연금을 대폭 뜯어고치겠다는 말에 많은 교사들이 놀란 모양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너무 씁쓸하다. 교직을 성직, 전문직, 노동직이라고 하는데 최근 들어 노동직에 대한 이미지만이 너무 강조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불편하던 참이었다. 교무실에서 개성 강한 교사들을 한 곳에, 그것도 신속하게 모을 수 있는 유일한 화제는 아마 성과급 이야기일 것이다.필자를 부끄럽게 만든 두 번째는 수업에 대한 부담과 학생 지도의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이해간다. 열린 교육이다 뭐다 해서 교육에 시장 경제 원리가 도입 된 이후부터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는 없고, 교육 수요자와 공급자만이 존재하게 됐다. 사제 간의 정 대신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냉철한 계약만이 존재하는 학교는 더 이상 학교라고 하기 보단 시장에 더 가깝다. 시장에서는 고객, 즉 수요자가 왕이다. 모든 공급자(교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요자(학생)를 무조건 만족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은 공급자는 교육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교육청과 학교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단어는 아마 `민원`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걸 잘 아는 교육 수요자들은 어떤 분쟁이 있으면 항상 마지막엔 이 카드를 꼭 쓴다. 그러면 모든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 된다.아마 20년 전에 교직생활을 하신 분들은 분명 이런 상황들이 많이 힘들 것이다. 거기다 요즘엔 학생 인권이다 뭐다 해서 학생들을 `슈퍼 갑`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날이 갈수록 선생하기 힘들다”라는 교사들의 넋두리가 충분히 이해간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신세계 치과 이재윤 원장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30대는 어려운 것을 가르치고, 40대는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50대는 아는 것을 가르치고, 60대는 기억나는 것만 가르친다”교육계의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35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 하시는 김지백 교감 선생님의 정년 퇴임식은 실로 뜻 깊다. 그래서 필자는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또 35년에 걸맞은 거창한 퇴임식을 마련해 드리고 싶어서 말씀드렸다가 얼굴만 붉어지고 말았다. 그 때 붉어진 얼굴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지금의 교사들이 노동직과 전문직에서 줄타기를 할 때 교감 선생님께서는 흔들림 없이 성직의 길을 가섰던 것이다. 그 길이 바로 소명의 길이요, 진정한 사도의 길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최선을 다한 길에는 미련이 없는 법이다. 미련은 욕심의 다른 말이다. 미련이 없다는 것은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볍다. 그러기에 새로운 시작이 쉬운 것이다. 지난달 29일 산자연중학교 도서관에서는 야생화 교육을 실천하는 전민영 선생님과 야생화를 닮은 정승원 학생이 부추 꽃, 망초, 고마리로 만든 야생화 꽃다발을 가슴에 꼭 안은 김지백 교감 선생님의 풀꽃 퇴임식이 열렸다.

2014-09-02

기억과 희망의 방문

▲ 정석수 구미종합사회복지관장·신부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한국 방문은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에 이어 세 번째이다. 이번 방문도 여러 면에서 한국 교회와 사회에 많은 의미를 던져 줬다. 일차적으로 아시아 청년대회를 통해 한국의 가톨릭교회를 사목방문 하신 것이지만 나아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분들을 만났다. 특히 어린아이로부터 시작해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까지 또한 다양한 종교와 종단의 대표들까지도 만났다. 가톨릭교회교리서 882항에서 교황을 설명하고 있다. `로마 교회의 주교이며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요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온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해 완전한 보편 권한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보편적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 교황님은 권위적이지 않은 소탈한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서시고 귀담아 들으며 마음을 표시했다. 특히 어린아이를 축복해 주시고, 손가락을 빨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당신의 손가락을 빨도록 손을 내밀어 주시는 모습에서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런데 시복식 장소에 집결해 있던 세월호 가족의 노란 물결에 동참하시듯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가고 손을 잡아주시며 위로하시는 모습과 명동성당에서 일제의 만행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만날 때 가슴깊이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이로써 많은 이에게 열려진 당신의 진실한 면모로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지난 14일 청와대에서 행한 도착 인사말에서 당신의 방문 목적을 드러내었다.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를 통해 방문하면서도 동시에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식이라는 두 차원은 서로 보완의 관계에 있음을 설명했다. 이러한 면은 같은 날 한국 주교단과의 만남에서 간략하게 “기억의 지킴이가 되고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기억의 지킴이는 과거의 은총을 기억할 뿐 아니라 그 이상을 의미하는데, 기억의 창고에서 영적 자산을 꺼내어 미래를 향한 도전에서 지혜롭게 결단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희망의 지킴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을과 자비의 복음이 가져다주는 희망”, 그 희망을 세상에 나누도록 초대받았다는 것이다. 이 초대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 특히 난민과 이민 및 사회 변두리에 내몰린 이들과의 연대까지 포함한 것이다. 평신도 사도직 대표들을 만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으로 연대하며 실천하는 신앙을 강조했다. 현세 질서를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우고 완성시키며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교회의 사명 및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단체 활동을 높이 치하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수준에서 나아가 `인간 증진이라는 분야에 더 많은 노력`을 하도록 격려하며 `더욱더 알찬 평신도 양성`을 촉구했고 성찬의 희생 제사에서 영감과 힘을 얻도록 말씀했다.이밖에도 수도자들과의 만남과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도 있었고 다양한 종교의 지도자들을 만나며 삶이라는 길에 함께 걸어가기를 초대했다. 짧은 일정 많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갈 수 없었던 팽목항의 가족을 향한 짧은 편지를 전하는 모습은 여전히 가슴 뭉클하게 한다. 일일이 이름을 적어 하느님께 청하는 목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용서를 강조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남북으로 분열돼 있는 현실과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고 상처 입은 이 사회에 던지는 울림은 크다.이제 그 위로의 손길, 다정한 눈길, 마음을 나누는 발길은 우리의 실천 몫으로 남았다. 따라서 역사에서 희망을 찾아내어 신뢰를 구축하고 미래의 청년들과 아이들을 위해 장을 펼쳐 새롭게 도전에 하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한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공동선을 추구해 철조망 너머의 형제들까지 사람을 중심으로 함께 공동선을 이룰 수 있도록 도전의 발길이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2014-08-27

교육청에 묻다!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참으로 긴 가을 장마다. 이젠 장마의 계절 수식어는 여름보다 가을이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진다. 가을 장마 끝 무렵에 각급 학교는 개학을 했다. 방학 같지도 않은 방학에 학생들은 오히려 더 탈진한 상태로 자신들의 학교로 돌아갔다. 인권이다 뭐다 해서 집보다 더 시설 좋고 편해진 학교에서 학생님들은 방학 보충과 학원 때문에 즐기지 못한 여름 피서를 빵빵하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과 한 몸이 되어 마음껏 즐기신다. 등이 아프도록 잠을 자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혹 누군가가 자신들의 잠을 방해하거나 자신들의 행동에 입을 대면 핵폭탄 보다 더 무서운 말인 “학교 안 다닌다”는 말 한 마디면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 된다. 교실 전쟁에서 승리자는 늘 학생님들이다. 승리자들은 언제 그렇듯 더 기고만장해진다.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르면 결국 승리자께서 교문을 박차고 학교를 나가신다. 그들을 사회에서는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부른다.그들은 학교 밖을 나가서도 언제나 당당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교육부, 여성가족부, 심지어 경찰청 등 정부 조직 산하의 거대 후원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다 자상하신 국회의원들은 그들을 위해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 법률(법률 제 12700호)`까지 제정했다. 이 법에 의해 그들은 상담 지원, 교육 지원, 직업 체험 및 진로 지원, 자립 지원`등 엄청난 지원을 받는다. 혹시나 지원이 부족할까봐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센터`까지 뒀다. 이즈음 되면 대한민국에서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을 한 번 쯤은 즐겁게 고려 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든다.이유야 어떻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돕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지원 프로그램이 더 활성화 되어 이들 학생들이 하루 빨리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또래 친구들과 같이 공교육 품 안에서 자신들의 꿈과 끼를 찾고 행복한 학교 학생 생활을 하길 필자도 간절히 소원(所願)한다.그런데 여기서 정말 궁금한 게 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들이 과연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교를 박차고 나간 학생들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결과는 가히 희망적이지 않다. 사업 초기라 결과를 단언하는 것이 시기상조이지만 결과는 결국 혈세 낭비가 될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혈세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필자는 몇 주 전부터 `잠재적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외침만 있을 뿐 메아리는 전혀 없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데 교육부와 교육청 교육 관료들은 더 큰 일을 하셔야 돼서 그런지 그 순서 따위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학교 밖 청소년을 줄이는 방법은 학교 밖 청소년이 된 학생들을 개화해서 학교로 돌려보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절대 궁극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분명한 건 더 이상 학교 밖 청소년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고 당장 학업을 중단한 학생 몇 명을 학교로 돌려보내 그 수를 줄이겠다는 생각은 정말 탁상공론의 전형적인 예밖에 되지 않는다.필자는 최근에 수시로 교육청에 전화를 한다. 왜냐하면 의무교육 대상자인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교육복지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할 때마다 필자는 좌절한다. 그리고 똑 같은 말만 계속 듣는다. “설립자는 학교운영에 있어서 학교 설립 시부터 존속 시까지 경상북도교육특별회계의 재정 지원 없이 법인전입금과 학생수업료 등 자체경비로 운영한다”정말 묻고 싶다. 이런 조건을 달고서라도 학교를 개교할 수밖에 없었던 그 절박함을 교육청은 아는지. 교육청은 대안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공교육 떠날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엄연히 공교육의 피해자인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각종 대안학교 학생들은 그 피해를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는지. 그럼 이들 학생들도 학교 밖 청소년이 돼야 하는지.

2014-08-26

교육계의 `명량`을 이끌 성웅은?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교황께서 방한 하셨다. 종교를 떠나 세계의 큰 어른께서 우리나라를 찾아주신 것이기에 기쁘기 그지없다. 하지만 타종교에서는 이를 두고 또 말들이 많다. 이를 보면서 참으로 모래알 같은 나라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너머 불안하기까지 하다. 모래알 위에 세워진 이 나라가 언제 붕괴 될지 몰라서. 윤 일병 사건 등을 통해 우리는 강인한 정신력의 산실이라고 믿었던 군대의 몰락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회4대 악(惡)의 진원지 중 하나가 되어버린 학교는 그 몰락이 군대보다 앞섰다. 정치의 몰락은 그 시기조차 알 수 없다. 군대, 학교, 정치는 한 나라의 근원적인 버팀목들이다. 그 버팀목들이 부재한 나라는 분명 붕괴 될 수밖에 없는데, 과연 대한민국의 군대, 학교, 정치는 어떠한가?어쩌면 이 불안들이 `명량`이라는 영화를 탄생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명량`의 시대적 배경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정치 불안 및 불신, 국론 분열, 국민들의 생활고(苦) 등 너무도 많은 점에서 닮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혼돈의 시대다. 하지만 다른 것은 그때는 혼돈을 잠재울 영웅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이 바로 그 영웅, 아니 성웅(聖雄)이다. 이순신이라는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리더십을 겸비한 리더가 있었기에 당시 사람들은 그를 구심점으로 임진왜란이라는 큰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 혼돈을 잠재울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과연 있기나 한가? 얼마 전 몇몇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마치 이 난세를 구할 영웅인 듯 설쳐됐지만 혼돈만 가중시키고 쫓겨났다. 사회가 점점 더 큰 혼돈에 빠지는 것을 보면 현대판 영웅은 분명 없다.`명량`의 인기를 보면 국민들은 살신성인 하는 이순신 같은 성웅을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필자도 오래 전부터 교육계의 이순신을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열린 교육이다 뭐다 해서 영웅 흉내를 내는 이들만 어디서 불쑥 나타나 교육계를 뒤흔들어 놓고는 무책임하게 금방 사라져버렸다.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자신들이 마치 교육계를 바로 세울 영웅인양 떠들어대면서 뭔가 바꿔보려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왜 필자 눈에는 그것이 다 교육 쇼처럼 보이기만 할까. 교육이 정치를 닮아서는 절대 안 되는데, 지금의 사회 구조상 정치에 복속된 것이 교육이라 정치를 따라 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교육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정치인이 돼서는 안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진정한 교육계의 성웅은 없는가!필자는 그 성웅이 하루 빨리 나타나 교육 역차별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학생들을 구해주길 매일 매일 기도한다. 하지만 믿음이 없어서인지 교육 사각 지대에서 고통 받는 학생들은 더 늘어나고 있다. 교육복지사업이다 뭐다 해서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보다 더 큰 세금 낭비는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교육복지사업은 사업 대상 학생들을 슈퍼 갑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감사함을 알고 그 감사함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본 학생들 대부분 슈퍼 갑이었다. `보편적 교육 복지` 좋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퍼주기식 복지는 절대 안 된다.필자는 중학생인 본교 학생들의 교육 복지를 위해 교육 복지의 가장 기본인 급식비, 교과서 대금 등과 관련해 경상북도 교육청에 여러 차례 질의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늘 싸늘한 NO였다. 학교 설립 조건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럼 묻고 싶다. 어떻게 보면 교육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본교 학생들은 어디서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본교 학부모도 엄연히 납세자들이고, 납세의 의무를 다한 이상 세금의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래서 다시금 촉구한다. 경상북도 도의회는 각종학교 학생들도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야 최소한의 기본적인 교육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루 속히 `각종학교 학생들에 대한 지원 조례`를 제정할 것을.

2014-08-19

뙤창

▲ 김영식 시인감꽃이 떨어지고 채송화가 피었다 졌다. 멧새 떼가 날아오르고 도둑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지나가고 엿장수아저씨가 지나가고 방울장수아주머니가 지나가고 여우비가 지나가고 함박눈이 지나가고. 지나간 것들은 모두 그리움이 됐다. 초가집 방 안에서 밖을 내다보기 위해 출입문에 매단 창이 뙤창이다. 앉은 사람 눈높이에 맞춰진 그것은 크기가 커봤자 가로세로 십오 센티미터를 넘지 않았다. 어떨 땐 금이 가서 반창고로 길게 늘여 붙이기도 했다. 낮이면 뙤창은 사진기가 되었다. 카메라 렌즈를 밀었다 당겼다하며 저 혼자 쉴 새 없이 풍경들을 찍어댔다. 흑백으로 인화된 바람과 구름과 햇살이 차곡차곡 내 안의 사진관에 담겼다.생각해보면 모든 바깥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지금의 큰 창들은 어딘가 작위적이고 그윽한 정서가 없다. 하지만 초가집 방문에 있는 듯 없는 듯 붙어있는 뙤창은 그야말로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다 할 것이다. 어쩌면 그건 초가집의 눈(目)이거나 귀(耳)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주 뙤창이 귓밥을 오므려 가만히 문밖의 인기척을 듣거나 손을 이마에 얹고 골목길을 살피는 걸 본적이 있다.뙤창을 통해 밖을 살피려면 우선 출입문에 바짝 얼굴을 갖다 붙여야 했다. 창과 내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조우하게 되는 순간이다. 처음엔 유리의 차가움 때문에 섬뜩해지지만 어느새 체온을 나누게 된 양자는 한 몸이 된다. 그 곳으로 단절되어 있던 바깥을 불러와 방안의 나를 고요하게 응시하는 것이다. 그럴 때 뙤창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이곳과 저곳의 구분을, 타자와 나의 간격을 무애(無碍)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돼준다.경치가 아름다운 곳마다 펜션이며 찻집 등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크고 화려한 건물들은 다투어 커다란 창을 내어 자연을 독점한다. 대상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물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고만 든다. 또한 상업적으로 이용한 후 가치가 떨어지면 미련 없이 폐기처분하고 만다. 그러나 뙤창은 자연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에 따라 왜곡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의 상태를 전달한다. 획일적으로 정의하지 않으며 원래의 자리에 두고 그윽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사물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개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겨울아침이면 뙤창에 성에꽃이 가득 피어났다. 그건 겨울이 보낸 그림엽서였다. 눈의 왕국에서 보낸 순백의 상형문자들은 내가 미처 해독하기도 전에 암호처럼 사라져버렸다. 밤이면 천문도(天文圖)가 된 창으로 별들이 내려와 박혔다. `저 숱한 별들 가운데 가장 갸날프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곱게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어린 양치기가 되어 세상의 변방으로 흘러가곤 했다. 나폴리, 시드니, 리오데자네이루. 호주머니에 넣고 가슴 콩닥거리던 푸른 차표는 이제 없다.집이라면 초가집이 되고 싶다. 내 가슴 한 쪽 한지 곱게 바른 격자무늬 방 한켠 작은 액자 하날 내걸고 싶다. 스크린 같은 그 위로 강물이 흘러가고 십자성이 흘러가고 물푸레나무와 패랭이꽃과 뱃고동소리와 돌고래 떼와 그리고 한 소녀의 얼굴이. 그리운 것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나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도란도란 여생을 늙어가고 싶은 것이다.*알퐁스 도테의 `별`에서 인용

2014-08-18

장마가 끝나면 챙겨봐야 할 미술품 관리법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예전처럼 지루한 장마가 이어 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름과 함께 찾아오는 국지성 장대비는 생활공간에 눅눅한 기운과 함께 습한 환경을 만들어낸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장마철만 되면 이러한 생활의 불편함 중에서 곰팡이 균으로 인한 문제는 여러 가지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햇볕이나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주택에서는 습기로 인해 생겨난 곰팡이 균들이 건강을 위협하기도 해서 각별히 주의가 요구되기도 한다. 입다가 벗어놓은 옷가지에서부터 먹다 남은 음식물, 심지어 거실 한 가운데 걸어 놓은 그림액자까지 이러한 환경들은 장마철, 곰팡이들이 생겨나기 쉬운 요소들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장마철에 고가의 미술품을 소홀히 관리해 생겨난 곰팡이의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한 경우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갤러리로 그림을 직접 들고 오는 경우도 생겨난다. 이처럼 여름철 장마나 습기로 인해 생겨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미술품의 올바른 관리와 보관법에 관해 다시 한 번 챙겨봐야 할 것이다.그림을 손상 없이 오랫동안 감상하려면 온도와 습도를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관리법이다. 다른 계절에 비해 습기가 높은 여름이나 낮은 겨울만큼은 그림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이다. 특히 습기가 많은 여름은 곰팡이 때문에 그림이 상하기 쉽고, 한번 곰팡이가 생긴 그림은 원상태로 회복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에 그림에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들이다. 곰팡이는 섭씨 23℃, 습도 70% 이상에서 잘 생기므로 시중에 나와 있는 가정용 제습기나 제습기능이 있는 에어컨을 이용해 습도와 온도를 조정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그림을 여러 점 함께 겹쳐서 보관하다 보면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생기는 경우도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습기가 많은 창고나 사무실에서는 그림을 펼쳐서 공기가 자연스럽게 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숯이나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습용품을 함께 두어 한시적이지만 습기를 적절히 제거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장마철이 끝난 다음, 공기가 통하는 서늘한 곳에 그림을 내놓고 바람을 통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이때 부드러운 솔이나 붓으로 그림 위의 먼지를 털어 주거나 유리액자에 들어 있는 그림은 액자를 벗겨 바람에 노출시키는 것이 곰팡이 균에서 미술품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혹시나 습기로 인해 눅눅해졌다고 해서 드라이어로 말리거나 직사광선에 직접 노출시키는 일은 절대 삼가 해야 한다.특히 한지로 제작된 한국화 액자나 병풍은 곰팡이 균에 약하므로,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하는데 일단 생겨난 곰팡이는 가정에서 완벽하게 제거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가까운 표구사나 액자가게에 곰팡이 제거를 위해 수리를 의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초록빛을 띠며 생겨난 곰팡이를 붓으로 털었다고 해서 그 곰팡이가 완전히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든 습한 환경이 다시 만들어지면 제거된 것으로 알았던 곰팡이들은 다시금 번식을 시작하게 된다.미술품은 그 가치의 높고 낮음을 떠나 소중하게 관리하는 습관이 미술과 좀 더 친숙해 지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번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벽에 걸어 두었던 그림액자들을 모두 내려서 먼지도 제외하고 습기로 인한 곰팡이가 생겨나지 않았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2014-08-13

교육 역차별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연수 마무리 프로그램으로 국립 대전 현충원을 참배했다. 어쩌면 많은 국민들은 현충원을 정치인들의 정치 쇼 장소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또 국민들을 그렇게 만든 언론계의 자성을 바라며 현충원 앞에 섰다. 비록 시커먼 양복은 아니더라도 교사로서의 품의를 손상시키지 않을 복장으로 연수생들은 현충원 앞에 도열했다. 안내를 담당하는 현충원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열을 갖췄다. 뉴스에서 많이 나오는 장면이라 조금은 거부감이 갔지만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안내에 따랐다. 줄을 맞추면서 중등 1정 교사 연수와 현충원의 관계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정치인들이 현충원을 찾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했다.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당신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당신들께서 목숨으로 지키신 이 나라를 이끌어갈 우리 청소년들을 목숨 바쳐 가르치겠다는 다짐의 자리라는 큰 뜻을 이해하면서 다른 연수생들을 살펴보았다. 모두들 필자와 생각이 비슷한지 엄숙한 표정이었다. 표정에서 결연한 의지까지 읽을 수 있었다. 현충탑 분향 후, 묵념을 했다. 분명 지금까지의 묵념과는 달랐다. 묵념이라는 안내자의 말에 묵념이 아니라 기도가 이뤄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히 살겠습니다”현충원 참배 후 충북 Wee 스쿨 `청명학생교육원`을 견학했다. 대안 교육을 하고 있는 필자이기에 연수 프로그램을 처음 받고 제일 기대했던 프로그램이었다. 학교 부적응에 의한 중도 탈락 학생 수가 매년 증가 하고 있고,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특별 지원` 등 위기 학생들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기는 하나 그 숫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중도 탈락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잠재적 위기 학생`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인성교육, 자유학기제, 선행학습 방지법 등 공교육으로부터 마음 떠난 교육수요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이 계속 되고 있지만, 공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밑바닥에서 여전히 움직일 기미를 보이질 않고 있다. 대신 학교폭력, 학생 자살 등 교육 불신을 나타내는 수치는 급상승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수치가 `학교 밖 청소년` 수치다.`청명학생교육원`은 바로 학교 밖 청소년이 되기 전단계의 학생, 즉 위기 학생들의 재활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이다. 교육원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필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규모나 시설 면에서 여타 대학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대학 규모의 시설에서 40명 안팎의 학생이 수업을 받는다는 말에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무상으로! 선진(先進) 충북 교육이 정말 부러웠다. 그리고 경북교육청의 대안 교육 지원 정도를 생각해 보았다. 에휴!시설을 둘러보는 내내 필자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어렵게 교육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대안 학교 학생들이 떠올랐다. 중학교 교육은 의무 무상교육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학교 설립 인가 조건`이라는 문구에 묶여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급식비는 커녕 교과서도 학생들이 사야 한다. 일반 학교에서는 교육복지사업비 등 돈이 남아돌아 문제인데, 어떤 학교는 모든 것을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이 불편한 진실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것이 교육 역차별이 아니고 뭘까. 복지가 최우선인 이 사회에 교육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이 많다는 걸 대통령은 아시는지.최근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방안들이 마련되고 있다. 그런데 학교안 위기 청소년, 즉 잠재적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 소식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학교 밖 청소년을 줄일 수 없다. 학교 밖 청소년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잠재적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관리부터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경상북도 의회에 강력히 건의한다. `잠재적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교육비 지원 조례`를 하루 속히 제정할 것을!

2014-08-12

젊은이들의 성장 토대를 닦자

▲ 정석수 구미종합사회복지관장·신부무더위의 절정에 도로의 여기저기에서 구멍이 뚫렸다는 소식이다. 비단 구멍은 땅에만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슴에도 뚫려 닫힐 줄을 모른다. 평범한 이십대의 젊은이들이 모여 생활하는 군대에서 있을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병장은 입대 전 열심히 생활을 하였던 젊은이였다. 그러나 고참병들에게 받았던 것을 고참이 되어 후임병사에게 되돌려 주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고(思考)의 깊이를 보게 한다. 나쁜 모습을 걸러내는 가치여과기가 작동되지 않았음을 보게 된다. 솔로몬 왕은 “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다니면 지혜를 얻지만, 미련한 사람과 사귀면 해를 입는다”고 했다. 짐 론은 “우리는 가장 많이 어울리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 된다”고 했다. 인위적으로 선택권 없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군대문화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국가안보를 위한 훈련에 충실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여가 시간에 독서를 통해 인성을 성장시킬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리라 본다. 나아가 사회에서 경험하지 못한 리더십을 배우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울러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군대,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기회를 마련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젊은이들이 따뜻한 인성으로 서로가 서로의 평균값을 올릴 수 있는 지혜를 얻지 않을까!세월호의 아픔이 아직도 아물지 않아 잊을 수 없는 4월 16일 됐다. 그 상처에 희망을 보게 된 것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노력 및 몇몇의 직원들이었다. 이분들은 죽음의 위기에서 발휘한 행동에서 소중한 가치를 발휘하여 생명을 살려내었다. 그렇지만 책임의 자리에서 벗어나 자기만 살겠다고 탈출 한 이들을 통해 본 것은 무엇인가? 그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던가! 평소 그들의 가치관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이켜 보게 한다. 정말 소문대로 그들만의 구원이었을까?월리엄 글라써 박사는 정신건강의 핵심적 요소로 행복과 쾌락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행복은 당신의 삶에서 중요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더 가까워지도록 행동하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고, 이와는 달리 쾌락은 주로 약물 중독, 도박, 성 관계와 같이 짧은 시간동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행복보다 더 기분이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쾌락에 속아서는 안 되며, 쾌락과 행복은 서로 다른 경험임을 알아야 한다” 군대에서도 중요한 사람과 함께 하고 함께 하도록 나아가게 안내해 주는 역할도 있다고 본다. 이탈리아 속담에서 “선인과 어울리면 선인이 하나 늘어난다”고 했다. 그처럼 중요한 사람은 직접 대면할 기회를 갖기는 어렵겠지만 책을 통하여 얼마든지 시공을 초월하여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주인공의 삶은 힘든 시기를 이겨낼 힘을 기르게 하고 일으켜 세워주며 성장하도록 동반해 줄 것이다.김해의 여중생들이 한 여고생에 대한 행동으로 모두를 경악하게 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행동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쾌락에 빠진 모습이라 할 것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한 행위는 어떤 것으로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지 각자 자신의 행위를 검토 평가하는 마음의 여과기가 재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겠다.윌레스 위틀리는 “행동하기 전에 환경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마라. 행동을 통해 환경에 변화를 일으켜라. 더 나은 환경으로 나아가려면 현재의 환경에 손을 써야 한다”고 했다. 손 놓고 기다리면서 더 나아지기를 기다릴 순 없다.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작은 행동이라도 나서야 한다. 긍정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장도 아울러 동반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터전에서 긍정적 변화를 선택하고 그 행동에 책임을 감수함으로써 성장의 토대가 닦아질 것이다. 또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 학생시기, 나아가 젊음의 한 축을 이루는 군대의 시기에 자신의 삶에 중심을 잡고 이웃의 수준이하 행동을 걸러낼 수 있는 마음의 여과기가 잘 작동하도록 다양한 차원에서 시스템이 구축됐으면 한다.

2014-08-08

14년만의 연수와 교사 이래용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학생들도 방학이 없지만 필자 또한 방학 없는 방학을 보내고 있다. 학생들은 방학이 없다고 좌절하지만, 미안하게도 필자는 아니다. 방학 없는 이번 방학이 필자는 너무 행복하다. 왜냐하면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게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필자에겐 너무나도 특별한 공부다.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다. 처음의 동의어는 가슴 터질 듯한 설렘과 서 있을 수조차 없는 떨림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 처음을 오래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첫키스, 첫사랑, 첫만남, 첫눈 등 말만 들어도 가슴 뛰는 처음의 마력을 아마 하나 즈음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필자에겐 2000년 3월 2일 목요일 2교시가 바로 그 날이다. 아직도 가슴 뛰는 그 첫 날의 기억으로 필자는 어쩌면 14년을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그 날 포항중앙고등학교 1학년 2반 교실 문 앞에는 양복 자체가 어색한, 굳게 닫힌 교실 문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는 20대 후반의 한 사내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는 불안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사내의 심장 뛰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간혹 그 사내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 하나가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다, 나는 선생님이다” 그 소리는 염불에 가까웠으며, 너무 간절했다.그 간절함이 전달됐던지 교실 문이 스르르 열렸고, 까까머리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한 명이 나왔다. 그리고 그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해 하는 쪽은 사내였다. 사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 남학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국어 선생님이십니까?” 그 때부터 필자는 지금까지 국어 선생으로 살고 있다. 그 때 필자에게 국어 선생님의 길을 열어 준 그 학생(김대환)은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생각해 보면 참으로 순탄치 않은 14년이었다. 기쁨과 보람보다 아픔과 미안함,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가득한 날들이었다. 가슴에 묻은 학생이 5명이나 되고, 지금도 병원에서 힘들게 아픔과 싸우고 있는 제자도 있다. 울타리가 돼주지 못한 학생들은 수도 없다. 그들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고 산다는 것이 죄스럽기만 하다. 모든 것이 부족한 필자 때문이라는 생각에 늘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더 이상 학생들에게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학교를 떠나려고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를 잡아 준 건 학생들이었다. 지난 14년은 오롯이 학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삶이었다.하지만 늘 부족하기에 언제나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부족함을 채울 여러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14년 7월18일 재교육의 기회를 받았다. `중등1급 정교사 자격연수` 많이 늦은 연수라서 그런지 매시간 필자는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강의를 듣고 있다. 그리고 그 감사함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강의를 듣기 전에 歸於初心(귀어초심·초심으로 돌아가자!)이라는 문구를 노트에다 꼭 쓴다.아직 강의가 많이 남아 있지만 필자는 벌써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서 2000년 3월2일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 문 앞에서 서성이던 양복이 너무도 어색한 한 사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내의 외침을 들었다. “나는 선생님이다. 나는 선생님이다”문경서중학교 이래용 선생님! 필자를 울게 한 장본인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울 수 있다는 게 필자는 너무나도 감사했다. 분명 이래용 선생님은 필자에겐 은인이다. 그의 강의 주제인 `국어 시간에 판소리 활용하기`는 필자에겐 등대였다. 국어 교사이면서 판소리꾼인 이래용 선생님은 지식기반사회에서 교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아마추어도 프로를 뛰어 넘을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줬다. 이래용 선생님이 들려준 단가, 사랑가, 성주풀이, 진주난봉가 등은 초심을 잃고 지냈던 필자에게 회초리였다. 회초리를 맞을 때마다 필자는 歸於初心을 외쳤다.

2014-08-05

이제는 옆집의 외양간도 눈여겨 볼 때

▲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프린시펄 이코노미스트포항경제는 서비스업 보다는 제조업, 그중에서도 제1차금속제조업인 철강업에 대한 편향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홀로서기 보다는 태생적으로 전후방 연관산업과 공존해야하는 융·복합형 체질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공급사슬 또는 가치사슬 분석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쉽게 말하자면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 아파트 등 주택건설 붐이 일어나고, 대구· 경북지역의 설비투자가 활성화되며, 창원 등 경남지역의 기계금속 수출 증대, 울산의 자동차 및 조선업계의 경기가 활발하면 포항경제는 몸살에 걸렸다가도 벌떡 일어나 춤을 추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에 이르러 사회간접자본이 대부분 확충돼 과거와 같은 수준의 철강재수요는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세계 경제도 당분간은 대대적인 투자확대가 쉽지 않은 상태여서 포항경제도 단기간 내에 활력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실 그 해답은 이미 8년 전에 찾았었다. 우리나라를 동북아경제의 중심국가로 도약시킨다는 비전하에 외국인 투자기업의 경영환경과 외국인의 생활여건 개선에 주안점을 둔 경제자유구역의 조성에 포항도 한발을 걸쳤기 때문이다. 당시 포항의 각계각층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포항의 경제자유구역은 과거 유행했던 `생산중심형`이 아닌 최근 주목받고 있는 `복합형`이었다. 포항경제의 현 체질을 개선할 최고의 대안이었던 것이지만 아무래도 역사속의 이야기로 사라질 것 같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들의 상실감은 크지 않은 모습이다. 아마도 외양간에서 소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아예 만들지도 않았던 외양간 자리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2008년 5월 지식창조형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내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로 지정받았던 흥해읍 대련리와 이인리 일대에 대한 지난 8년간의 규제가 풀어지면 부동산경기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감 마저 가지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향후 인구 100만의 국제항만도시로 포항이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바이오의료산업단지, 신소재산업단지, 에너지산업단지, 바이오의료·신소재·에너지 RD혁신단지, 글로벌기술금융센터, 정보지원센터, 컨벤션센터, 호텔, 외국인학교 등 포항의 취약점을 일거에 해결할 묘책들이 허다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당연히 포항의 편향된 경제체질을 보완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이었다. 포항의 각계각층이 엄청난 노력을 들여 어렵게 성사시켰던 만큼 관련됐던 지역 인사들의 실망도 크겠지만 과연 앞으로 또 다른 어떠한 미래의 사활을 건 프로젝트가 생겼을 때 지역의 역량을 결집시켜야 할 때 얼마나 동참하게 될 것인지가 더욱 염려스럽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번 일이 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사실 책임소재를 따지고 어쩌고 할 시간도 사회적비용을 지불할 여력도 거의 없다. 가급적 최대한 포항경제가 직면한 현실을 인식하고 가진 강점은 더욱 발전시키고 부족하거나 취약한 점은 서둘러 보완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모든 것을 포항지역 안에서만 해결하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마침 박근혜정부가 착안한 `포항중추도시 행복생활권` 구상에는 경주, 영덕, 울진, 울릉 등 경북동해안의 2시 3군이 모두 들어있다.이제는 옆집의 외양간도 눈여겨 볼 때다. 포항에 컨벤션센터가 없다면 경주에서 곧 개관할 화백컨벤션센터를 활용하면 된다. 에너지산업단지는 지역내 연료전지회사 등과 협력사들을 모아 미니 클러스터로 발전시키면 대체 가능하다. 정보지원센터는 이미 가동 중인 포항상공회의소의 기능을 더욱 확충하면 된다. RD혁신단지도 포항테크노파크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 포항금속소재산업진흥원 등 RD 부문간의 연계를 긴밀화시킨다면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지자체들은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더욱 발전시키고 약점은 상호 보완할 수 있는 경북동해안의 부문별 융·복합정책을 이제부터라도 서로 손잡고 발굴하여 상호 번영의 길을 개척해나가야 할 것이다.

2014-08-04

추억 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역시 비극으로 끝났다. 아직 진실이 규명 된 것은 아니지만 전 국민을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유병언 회장이 사체로 발견되었다. 한 사람의 비극적인 최후를 들으면서 슬퍼하기는커녕 죽음 자체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사인(死因)에 대한 철저한 진실 규명을 촉구한다. 필자처럼 유 회장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건 아직 슬픔과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모설부터 구원설까지 마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오영진)와 같은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과연 유 회장은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 된다고 본 것일까? 아니면 모든 책임을 통감하고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일까? 분명한 건 그의 죽음은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결은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고만 있다. 유 회장은 살아서는 수많은 꽃다운 어린 목숨을 앗아가더니, 죽어서도 많은 사람을 물귀신처럼 끌고 가고 있다. 과연 그는 그의 추종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구원 받았을까, 만약 그의 죄가 용서된다면 신은 죽은 것이다, 아니 신은 절대 없다.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지금 우리 사회는 분명 이대로는 안된다. 비극이 더 한 비극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 한다. 가족을 잃은 아픔을 어디에다 비유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위로 받을 수 있을까. 당사자가 아닌 필자가 뭔가를 말한다는 것이 죄스럽지만, 분명한 건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연일되는 집회와 계속되는 자살, 그리고 더 많은 제3의 희생자들!절대 그냥 덮자는 것이 아니다. 또 무조건 용서 하자는 것도 아니다. 비극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대승적인 용기를 내야만 한다. 용서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거듭 말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큰 용기를 내야만 지금의 이 비극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그런데 비극은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보다 더 한 비극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곳이 있다. 바로 학교!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방학이다. 지금 일선 학교는 서류상으로는 방학이다. 이론상으로는 우리 학생들은 방학이라는 여유로운 시간적 배경과 행복한 가정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유익하고 즐거운 희극을 찍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 속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들의 방학은 어떤가?어른들은 지난 4월을 벌써 잊었다. 그 때 잠시 우리는 학부모가 아닌 부모가 되어 우리 아이들을 학생이 아닌 자녀로 보았다. 공부가 다가 아니라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또다시 더 독한 부모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방학을 더 독하게 이용하고 있다. 남을 밟고 일어서는 연습을 독하게 시키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의 독한 마음으로 독한 보충수업과 더 독한 학원과 과외로 자녀가 아닌 학생들을 내몰고 있다. 더 독하게 다른 이들을 밟고 일어서라고.모든 현상에는 예외가 있듯이 필자는 우리 아이들을 희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방법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에게서 배우고 있다.지난 16일 전라도 신안군 증도 앞 바다에서는 환경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 주제는 `해양 쓰레기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 넣자!`, 산지여정 프로그램 중 하나인 친환경봉사활동으로 아이들은 해양 정화활동을 했다.남들 다 가는 놀이동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신이 났다. 거창한 무대도 화려한 조명도 없었지만, 학생들은 자신이 주운 쓰레기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학생들의 손길이 닿자마자 쓰레기들은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거듭 태어났다. 재탄생을 축하하는 공연도 열렸다. 폐스티로폼은 드럼으로, 폐플라스틱 병은 마라카스로 변신하여 아이들과 훌륭한 화음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만드는 증도 해변 환경 페스티벌은 분명 비극에 빠진 이 사회를 희극으로 바꾸는 반전의 계기가 될 것임을 필자는 확신한다.

2014-07-29

등멱

▲ 김영식시인 매미소리가 촤르르, 촤르르, 등멱을 합니다. 더위 먹은 운동장이며 이팝나무며 아파트옥상들이 연신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여름 한낮이 얼음물처럼 시원해집니다. 나는 할머니 앞에 웃통을 벗고 엎드립니다. 쫘-악! 허리춤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차가운 물 한바가지 쏟아집니다. 사막 같은 등짝으로 수천 개 오아시스가 흘러내립니다. 나는 몸을 움츠리며 “어, 추워, 어, 추워” 연신 소리를 지릅니다. 할머닌 “사내 자슥이 이것도 못 참으모 우짜노” 짐짓 나무라며 다시 물 한바가지를 어린 손자 등에 흩뿌립니다. 그러면 나는 더 호들갑스럽게 춥다며 엄살을 떱니다. 공터 감나무에선 연신 매미가 울어대고 온 몸에 달라붙어 있던 더위들이 한꺼번에 우물가로 씻기어 내려갑니다. 여름 한낮에 땀을 식히는 방법으론 등멱이 단연 최고였습니다. 달콤한 아이스께끼며 수박이 있었지만 등물의 짜릿함을 대신하진 못했습니다.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서늘함으로 지친 몸이 다시 제 기능을 찾는 순간이 등멱입니다. 여름이면 이 집 저 집 등물 치는 소리가 담장너머로 파도처럼 출렁거렸습니다. 어느 시인은 등멱하는 아낙의 고욤열매 같은 젖꼭지를 훔쳐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애로틱하게 고백했지요. 그러나 근래엔 그러한 풍경을 보기가 좀체 어려워졌습니다. 주거환경이 바뀌고 에어컨이 등장하면서 등멱을 하는 정서가 점차 사라진 때문일 것입니다.타자에게 슬쩍 등을 내밀어주는 일, 그 내민 등에 잠시 사랑하는 이의 체온이 건너오는 일, 물을 매개로 살갗과 살갗이 따뜻하게 만나는 일, 그것이 등멱의 시간입니다. 등멱은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인 샤워와는 그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혼자 하는 샤워가 폐쇄와 단절의 문화라면 등멱은 개방과 소통의 문화입니다. 대개 그것은 가족 간처럼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이뤄지는 것이라 더 친근감이 배어 있는 것입니다.우리 조상들의 피서 법은 은은하고 정겨웠습니다. 등멱 뿐 아니라 공부에 지친 선비들이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피했다는 탁족(濯足)이 있습니다. 바람을 불러 모으는 부채도 있고요. 나무그늘아래 평상을 내어놓는 일은 또 어떻고요. 기계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의 일상이긴 하지만 멋과 정이 담긴 자연친화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 어른들의 지혜가 스며든 소중한 풍습들이 자꾸만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발가락을 간질이는 송사리 떼며 합죽선이 일으키는 은은한 바람이며 그늘을 풍덩풍덩 길어 올리는 느티나무 아래가 한층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더위가 삶이라면 등멱은 위로일 것입니다. 노동과 수고와 피로에 대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휴식의 한 형태가 등멱이지요. 살면서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할 것 같은 부조리한 상황과 대면할 때가 가끔 있지요. 그럴 때 힘든 우리 곁에 다가와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는 등멱 같은 위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하여 우린 또 절망의 한 순간을 이겨내는 힘을 가지겠지요.소나기가 쏟아지려는지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연일 폭염경보가 내려 온갖 사물들이 더위에 지쳐 있는 요즘입니다. 비가 오려는 걸 예감한 골목이며 들판이며 먼 산들이 일제히 웃통을 벗고 제 등을 내놓느라 부산합니다. 제대로 한번 등물을 뒤집어쓰겠다는 자세입니다. 지금쯤 소나기는 구름 속에서 회심의 물 한 동이 뿌릴 궁리를 하는 중일 테지요.생활에 쫓겨 정신없이 달려온 나도 참 오랜만에 등물을 받는 자세가 되어 봅니다. 불현듯 천둥소리 사이로 할머니가 나타나 “사내 자슥이 그것도 못 참으모 우짜노” 호통 치면서 냅다 물 한 두레박 뿌려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고단한 내 삶도 잠시 위로를 받겠지요. 사방이 푸른 물소리로 출렁거립니다.

2014-07-25

추억 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모두가 학기말 업무로 바쁜 지난주 필자는 산자연(중)학교 전교생과 함께 학교를 떠났다. 성적 확인, 방학 준비 등 정말 눈코 뜰 새 없는 학기말이라 학교 업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분명 말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산자연학교 학생들은 7월14일부터 17일까지 과감히 학교를 전라도로 옮겼다.그렇다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시라. 할 거는 다 하고, 아니 다 함을 넘어 더 하고 떠났으니까. 시험도 쳤고, 성적도 확인했고, 진정한 의미의 수행평가도 마쳤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실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방학 전 시간들, 하지만 산자연학교 학생들은 자연 속에 교실을 만들고 열심히 자연과 소통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자연을 닮아갔다. 소통의 부재, 의미의 부재에서 오는 심각한 교육 문제들에 대한 답을 필자는 이 아이들에게서 찾았다.요즘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공유할 이야기가 없다. 있다면 오직 게임 이야기 뿐. 이 자리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제도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추억 하나 만들어 주지 못하는 죽은 교육에 우리는 언제까지 아이들을 방치해야 할까. 자유학기제다 뭐다 해서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고는 있지만, 과연 우리 학생들은 얼마나 이야기할 거리가 더 생겼을까.그런데 분명 한 건 산자연학교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서로 서로 도우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비록 방학이지만 남들 다 하는 보충 수업은 산자연학교 학생들에게는 별나라 이야기다. 학원은 달나라 이야기, 과외는 우주 밖 이야기다. 물론 성적, 중요하다. 고등학교도 가야하고, 더 상위 학교도 진학해야 하니까. 학생들의 꿈을 이루는 데 성적이 전혀 불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산자연학교 학생들도 공부를 한다. 하지만 시험을 위해 죽은 지식들을 무작정 암기하는 그런 공부는 절대 하지 않는다. 남들이 기를 쓰고 얻고자 하는 점수 따위는 산자연학교 학생들에겐 그저 우스갯소리밖에 안 된다.산지여정. 처음 들어본 사람들은 많이 낯설 것이다. 아니면 수학여행의 다른 이름인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산지여정은 경상북도 교육청으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은 산자연학교만의 특성화 교과이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 생산지를 직접 찾아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에 대해 직접 체험해보는 교과이다.요즘 우리 식탁은 이미 중국을 비롯한 식량 강국에게 점령 당한지 오래다. 먹거리 중 수입산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최근 들어 우리 먹거리에 대해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돈만 개입되면 그 작은 소리조차 쏙 들어가고 만다. 일부 지역에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바른 먹거리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또한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또 그마저 공룡 기업들의 횡포에 수명이 길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우리 먹거리를 생산지를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심 끝에 정한 곳이 전라도 구례와 신안(증도)! 우리 나라 잡곡류 중에 자급률이 가장 낮은 작물이 밀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가장 소비가 많은 작물 또한 밀이다. 즉 우리는 대부분의 밀을 수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소비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소비자들이 일 년에 우리 밀을 십만원 정도만 소비해줘도 우리는 방부제 덩어리인 수입 밀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 최성호의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어른들은 분명 배워야 한다.밀 이야기를 듣고 증도로 넘어 가던 도중 우리는 우리만의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수박의 압박에 못이긴 녀석들이 고속도로 간이 쉼터에서 빨랫줄에 늘어 선 참새들처럼 줄 지어 서서 방광의 고통을 덜어주는 모습은 한 편의 영화였다. 방학, 제발 우리 아이들을 교실에 가두지 말고, 우리 아이들이 평생을 살 추억 하나 만들어 주자.

201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