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생, 다른 건 다 필요 없습니다.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자리만 마련해 주면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만든 야생화 꽃다발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35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 하시는 산자연중학교 김지백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금 한 직종에서 35년을 근무한다는 것이 직업계의 전설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35년은 이제 겨우 10년을 조금 넘긴 필자에겐 감히 상상도 못할 숫자다.
최근 명예퇴직 신청 교사가 급증해 그 수요를 다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명예퇴직 조건이 20년 이상 근무한 교사인 것을 생각하면 분명 그 분들도 교육 발전을 위해 큰 노력을 했고, 그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명예퇴직의 이유를 보고 필자는 교사라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물론 명예퇴직을 신청한 모든 교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유들 중 필자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퇴직금 및 연금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퇴직을 한다는 것이다. 국민 연금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공무원 및 사학 연금을 대폭 뜯어고치겠다는 말에 많은 교사들이 놀란 모양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너무 씁쓸하다. 교직을 성직, 전문직, 노동직이라고 하는데 최근 들어 노동직에 대한 이미지만이 너무 강조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불편하던 참이었다. 교무실에서 개성 강한 교사들을 한 곳에, 그것도 신속하게 모을 수 있는 유일한 화제는 아마 성과급 이야기일 것이다.
필자를 부끄럽게 만든 두 번째는 수업에 대한 부담과 학생 지도의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이해간다. 열린 교육이다 뭐다 해서 교육에 시장 경제 원리가 도입 된 이후부터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는 없고, 교육 수요자와 공급자만이 존재하게 됐다. 사제 간의 정 대신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냉철한 계약만이 존재하는 학교는 더 이상 학교라고 하기 보단 시장에 더 가깝다. 시장에서는 고객, 즉 수요자가 왕이다. 모든 공급자(교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요자(학생)를 무조건 만족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은 공급자는 교육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교육청과 학교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단어는 아마 `민원`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걸 잘 아는 교육 수요자들은 어떤 분쟁이 있으면 항상 마지막엔 이 카드를 꼭 쓴다. 그러면 모든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 된다.
아마 20년 전에 교직생활을 하신 분들은 분명 이런 상황들이 많이 힘들 것이다. 거기다 요즘엔 학생 인권이다 뭐다 해서 학생들을 `슈퍼 갑`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날이 갈수록 선생하기 힘들다”라는 교사들의 넋두리가 충분히 이해간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신세계 치과 이재윤 원장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30대는 어려운 것을 가르치고, 40대는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50대는 아는 것을 가르치고, 60대는 기억나는 것만 가르친다”
교육계의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35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 하시는 김지백 교감 선생님의 정년 퇴임식은 실로 뜻 깊다. 그래서 필자는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또 35년에 걸맞은 거창한 퇴임식을 마련해 드리고 싶어서 말씀드렸다가 얼굴만 붉어지고 말았다. 그 때 붉어진 얼굴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지금의 교사들이 노동직과 전문직에서 줄타기를 할 때 교감 선생님께서는 흔들림 없이 성직의 길을 가섰던 것이다. 그 길이 바로 소명의 길이요, 진정한 사도의 길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최선을 다한 길에는 미련이 없는 법이다. 미련은 욕심의 다른 말이다. 미련이 없다는 것은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볍다. 그러기에 새로운 시작이 쉬운 것이다. 지난달 29일 산자연중학교 도서관에서는 야생화 교육을 실천하는 전민영 선생님과 야생화를 닮은 정승원 학생이 부추 꽃, 망초, 고마리로 만든 야생화 꽃다발을 가슴에 꼭 안은 김지백 교감 선생님의 풀꽃 퇴임식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