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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만의 연수와 교사 이래용

등록일 2014-08-05 02:01 게재일 2014-08-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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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

학생들도 방학이 없지만 필자 또한 방학 없는 방학을 보내고 있다. 학생들은 방학이 없다고 좌절하지만, 미안하게도 필자는 아니다. 방학 없는 이번 방학이 필자는 너무 행복하다. 왜냐하면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게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필자에겐 너무나도 특별한 공부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다. 처음의 동의어는 가슴 터질 듯한 설렘과 서 있을 수조차 없는 떨림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 처음을 오래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첫키스, 첫사랑, 첫만남, 첫눈 등 말만 들어도 가슴 뛰는 처음의 마력을 아마 하나 즈음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에겐 2000년 3월 2일 목요일 2교시가 바로 그 날이다. 아직도 가슴 뛰는 그 첫 날의 기억으로 필자는 어쩌면 14년을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그 날 포항중앙고등학교 1학년 2반 교실 문 앞에는 양복 자체가 어색한, 굳게 닫힌 교실 문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는 20대 후반의 한 사내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는 불안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사내의 심장 뛰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간혹 그 사내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 하나가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다, 나는 선생님이다” 그 소리는 염불에 가까웠으며, 너무 간절했다.

그 간절함이 전달됐던지 교실 문이 스르르 열렸고, 까까머리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한 명이 나왔다. 그리고 그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해 하는 쪽은 사내였다. 사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 남학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국어 선생님이십니까?” 그 때부터 필자는 지금까지 국어 선생으로 살고 있다. 그 때 필자에게 국어 선생님의 길을 열어 준 그 학생(김대환)은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순탄치 않은 14년이었다. 기쁨과 보람보다 아픔과 미안함,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가득한 날들이었다. 가슴에 묻은 학생이 5명이나 되고, 지금도 병원에서 힘들게 아픔과 싸우고 있는 제자도 있다. 울타리가 돼주지 못한 학생들은 수도 없다. 그들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고 산다는 것이 죄스럽기만 하다. 모든 것이 부족한 필자 때문이라는 생각에 늘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더 이상 학생들에게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학교를 떠나려고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를 잡아 준 건 학생들이었다. 지난 14년은 오롯이 학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삶이었다.

하지만 늘 부족하기에 언제나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부족함을 채울 여러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14년 7월18일 재교육의 기회를 받았다. `중등1급 정교사 자격연수` 많이 늦은 연수라서 그런지 매시간 필자는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강의를 듣고 있다. 그리고 그 감사함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강의를 듣기 전에 歸於初心(귀어초심·초심으로 돌아가자!)이라는 문구를 노트에다 꼭 쓴다.

아직 강의가 많이 남아 있지만 필자는 벌써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서 2000년 3월2일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 문 앞에서 서성이던 양복이 너무도 어색한 한 사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내의 외침을 들었다. “나는 선생님이다. 나는 선생님이다”

문경서중학교 이래용 선생님! 필자를 울게 한 장본인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울 수 있다는 게 필자는 너무나도 감사했다. 분명 이래용 선생님은 필자에겐 은인이다. 그의 강의 주제인 `국어 시간에 판소리 활용하기`는 필자에겐 등대였다. 국어 교사이면서 판소리꾼인 이래용 선생님은 지식기반사회에서 교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아마추어도 프로를 뛰어 넘을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줬다. 이래용 선생님이 들려준 단가, 사랑가, 성주풀이, 진주난봉가 등은 초심을 잃고 지냈던 필자에게 회초리였다. 회초리를 맞을 때마다 필자는 歸於初心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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