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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에 묻다!

등록일 2014-08-26 02:01 게재일 2014-08-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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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

참으로 긴 가을 장마다. 이젠 장마의 계절 수식어는 여름보다 가을이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진다. 가을 장마 끝 무렵에 각급 학교는 개학을 했다. 방학 같지도 않은 방학에 학생들은 오히려 더 탈진한 상태로 자신들의 학교로 돌아갔다. 인권이다 뭐다 해서 집보다 더 시설 좋고 편해진 학교에서 학생님들은 방학 보충과 학원 때문에 즐기지 못한 여름 피서를 빵빵하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과 한 몸이 되어 마음껏 즐기신다.

등이 아프도록 잠을 자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혹 누군가가 자신들의 잠을 방해하거나 자신들의 행동에 입을 대면 핵폭탄 보다 더 무서운 말인 “학교 안 다닌다”는 말 한 마디면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 된다. 교실 전쟁에서 승리자는 늘 학생님들이다. 승리자들은 언제 그렇듯 더 기고만장해진다.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르면 결국 승리자께서 교문을 박차고 학교를 나가신다. 그들을 사회에서는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학교 밖을 나가서도 언제나 당당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교육부, 여성가족부, 심지어 경찰청 등 정부 조직 산하의 거대 후원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다 자상하신 국회의원들은 그들을 위해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 법률(법률 제 12700호)`까지 제정했다. 이 법에 의해 그들은 상담 지원, 교육 지원, 직업 체험 및 진로 지원, 자립 지원`등 엄청난 지원을 받는다. 혹시나 지원이 부족할까봐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센터`까지 뒀다. 이즈음 되면 대한민국에서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을 한 번 쯤은 즐겁게 고려 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유야 어떻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돕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지원 프로그램이 더 활성화 되어 이들 학생들이 하루 빨리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또래 친구들과 같이 공교육 품 안에서 자신들의 꿈과 끼를 찾고 행복한 학교 학생 생활을 하길 필자도 간절히 소원(所願)한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궁금한 게 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들이 과연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교를 박차고 나간 학생들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결과는 가히 희망적이지 않다. 사업 초기라 결과를 단언하는 것이 시기상조이지만 결과는 결국 혈세 낭비가 될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혈세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필자는 몇 주 전부터 `잠재적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외침만 있을 뿐 메아리는 전혀 없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데 교육부와 교육청 교육 관료들은 더 큰 일을 하셔야 돼서 그런지 그 순서 따위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학교 밖 청소년을 줄이는 방법은 학교 밖 청소년이 된 학생들을 개화해서 학교로 돌려보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절대 궁극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분명한 건 더 이상 학교 밖 청소년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고 당장 학업을 중단한 학생 몇 명을 학교로 돌려보내 그 수를 줄이겠다는 생각은 정말 탁상공론의 전형적인 예밖에 되지 않는다.

필자는 최근에 수시로 교육청에 전화를 한다. 왜냐하면 의무교육 대상자인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교육복지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할 때마다 필자는 좌절한다. 그리고 똑 같은 말만 계속 듣는다. “설립자는 학교운영에 있어서 학교 설립 시부터 존속 시까지 경상북도교육특별회계의 재정 지원 없이 법인전입금과 학생수업료 등 자체경비로 운영한다”

정말 묻고 싶다. 이런 조건을 달고서라도 학교를 개교할 수밖에 없었던 그 절박함을 교육청은 아는지. 교육청은 대안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공교육 떠날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엄연히 공교육의 피해자인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각종 대안학교 학생들은 그 피해를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는지. 그럼 이들 학생들도 학교 밖 청소년이 돼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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