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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4-09-26 02:01 게재일 2014-09-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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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식 시인

가을은 곁의 계절이다. 더위로 소원했던 관계들이 조금씩 그 거리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가을마당이 멍석을 내어놓듯 사람들은 제 안에 꼭꼭 접어뒀던 곁을 꺼낸다. 먼지도 털고 구겨진 곳을 펴기도 하면서. 그럴 때 곁은 오롯이 외부를 지향한다.

곁은 단음절이지만 복수(複數)이고 격음이지만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곁이거나 다른 이의 곁이 되길 원한다. 곁은 모닥불처럼 제 온기를 나눠주며 고목처럼 그늘을 펼쳐 타자를 품어준다. 곁불, 곁눈, 곁순 등 기준이 되는 대상으로부터 공간적, 심리적으로 가까운 쪽을 말하지만 실제론 후자가 더 많이 작용한다. 거리는 지척이지만 마음이 멀어졌을 때 우리는 곁에 있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곁을 준다는 말이 있다. 마음을 준다는 의미이다. 등불이 제 밝기를 주변으로 펼치듯 자신의 일부를 떼 내어 다른 이에게 건네준다. 곁은 대개 제한적이라 이기(利己)적인 것 같지만 그 근본정신은 이타(利他)이다. 곁은 대체로 그윽하고 은은하다. 그러므로 시끄러운 것은 곁이 아니다. 간혹 곁을 자기과시용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결코 본질이 아니다. 곁은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다. 자기를 넘어선 위로이고 봉사이며 희생이다.

티베트의 라다크 어머니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밭일을 할 때나 차를 마실 때, 동네잔치가 있을 때에도 아이와 항상 동반한다고 한다. 그것이 아이의 정서와 인격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럴 때 곁은 무조건적인 헌신이다.

버림으로써 완성되는 곁도 있다. 독수리는 새끼를 부화하였다가 때가 되면 전부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다고 한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다친 것들은 버려두고 건강한 상태의 새끼만 물고 와 자신과 같은 하늘의 제왕으로 키운다고 한다. 시련을 이겨낸 어린 새는 다시 어미의 곁을 확보한다. 곁의 냉정함이다.

`내 사랑 내 곁에`라는 영화가 있었다. 가수 김현식의 동명의 노래를 영화한 것이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남자와 장례지도사인 여자가 만나 사랑하게 된다. 남자는 숟가락 하나 손에 쥐기도 힘들지만 늘 자기 곁을 지켜주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 그러나 조금씩 걷지 못하게 되어 몸져누우면서 언어장애가 오고 급기야는 사망하게 된다.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아내 역 하지원의 연기가 돋보인 영화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곁이 되어준 사랑이야기이다.

가을이 되면서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졌다. 이럴 때 보통 혼자인 사람을 두고 `옆구리가 시리다`고 얘기한다. 곁을 나누고 곁을 내어줄 연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곁`은 `시리다`의 반대말일 수도 있겠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낙엽들이 하나, 둘 나무를 떠나고 있다. 가을에 유독 우울해지는 건 우리 몸 안에 있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증가하는 때문이라고 한다. 멜라토닌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곁을 잃었다. 남은 이들은 아직도 단장(斷腸)의 아픔과 슬픔을 견뎌내고 있다. 세상 무엇도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할 것이다. 자식과 부모와 연인을 가슴에 묻은 사람들은 차마 그 곁을 놓아버리지 못한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상실의 자리는 더 외롭고 허전할 것이다. 곁불이라도 피워 시린 마음들을 쬐어주고 싶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이 가을, 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우리의 곁을 조금 나눠주는 것은 어떨까? 다가가 여름내 젖은 곁을 꺼내어 말려주는 일, 우는 곁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어주는 일, 곁과 곁이 만나 뜨겁게 껴안는 일, 그럴 때 곁은 비로소 자신을 완성한다. 그런 따뜻한 곁이 못내 아쉬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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