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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지막 반전을 위하여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답답하고 먹먹하기만 한 시간들이다. 반전을 기대했지만 부활절이 지나도,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도 반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직 이생에서 할 일이 더 많은 아이들인데 종교에서는 내생의 더 나은 삶을 빌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도대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기에 이다지도 큰 아픔을 내리시는지? 아직 종교를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정말 신이 있나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교라는 것이 너무도 이기적이고, 편의주의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그래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종교적 희망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어떤 종교도 이번 참사에서 현실적 반전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간절함이, 부모님들의 간절함이, 전 국민의 간절함이 덜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쉽고 아쉬울 따름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 따위는 믿지 않지만, 반전은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있음을 우리 아이들이 꼭 보여주리라 것을 필자는 믿고 또 믿는다.전 국민이 희망의 노란 리본을 달고, 모든 관공서들이 추모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 중에서 필자는 “얘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현수막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그 시간이 오래일수록 미안하다는 말은 듣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위한 이기적인 말임을 알게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줄 이들은 없는데, `미안하다`고 하면 다 끝나는지, 미안한 짓을 왜 했는지. 세상 혼란의 주범이 `미안하다`는 말 때문이고 하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우리 모두가 미안한 일을 안 한다면 분명 이번과 같은 참사는 두 번 다시는 없을 것이다.말은 이렇게 하지만 필자는 아이들이게 또 미안한 짓을 하고 말았다. 겉으로는 성적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필자는 평가를 위한 중간고사 문제를 냈고,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무서운 말로 아이들을 무의미한 교과서 안에 가두었다. 그리고 “책 속이 안전 하니 그곳에서 꼼짝하지 말고 있으라”고 매일 안내 방송을 했다. 애들이 숨 막혀 하는지를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틈틈이 아이들에게 시험 매뉴얼을 주입시켰다. “시험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한 눈 팔아서는 안 된다. 고개를 들면 안 된다.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5지선다의 매뉴얼을 누가 잘 외웠는지를 평가하는 감독관이 되어 아이들의 자유권을 빼앗았다.OMR 카드 안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는 필자는 죄인 중에 죄인이다. 하지만 반값 교사도 안 되는 필자에겐 침몰하는 대한민국 교육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해낼 힘이 없다. 교육청의 그 어떤 지원도 못 받는, 심지어 교과서도 자신들이 사야 하는 의무교육에서 철저히 소외된 아이들에게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더 강하게 아이들에게 시험 매뉴얼을 주입시키고 있으니, 이 죄를 다 어찌 할지.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8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이며, 장소는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다. 필자 옆에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학생들이 곤한 코걸이를 하며 잠을 자고 있다. 평일에 학교가 아닌 지리산이라는 말에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겠다. 그리고 교육청 관계자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수련활동을 삼가라!”는 지시 사항을 어겼다고 펄쩍 뛸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해 두지만 매뉴얼대로 했으니 아무런 걱정을 안 하셔도 된다.의무교육을 하면서도 의무교육 기관이 아닌 필자의 학교에는 `가족 친화의 날`, `지역사회 탐방`, `해외이동수업` 등 교육청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특성화 교과목들이 있다.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 필자와 학생들은 세월호의 마지막 반전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지리산 정상에서 수업을 하였다. 수업 내내 학생들은 필자에게 학생들의 힘과 가능성과 희망을 가르쳐주었다. 학생들에게 지리산은 지리산의 기상을 상으로 줬다.

2014-05-13

자녀와의 대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이수원대구대 교수·유아교육과최근 한 연구소에서 발표한 `2014년 어린이 생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30분 미만인 초등학생은 응답자의 52.5% 였으며, 대화를 전혀 하지 않는 초등학생은 9.2% 였다. 대화 통로를 잃은 아이들의 경우, 혼자서 감당치 못할 일을 겪게 될 때 잘못된 판단이나 극단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왕따나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을 편지에 남겨놓은 채 자살한 학생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편지 속의 이야기를 그 학생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대화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대화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귀 기울임`이다. 대화(dialogue)는 그리스어 `dialogos`에서 유래했는데 `dialogos`는 dia(~간에, 사이로)와 logos(말)가 결합된 용어다. 즉, 대화란 두 사람간에 오고 가는 말을 의미한다. 하지만 둘 이상의 대화 참여자는 대화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늘어놓는다면 그건 대화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말들이 사람간에 통하려면 귀 기울임이 필수다. “숙제는 했니?”, “성적이 이게 뭐야.”, “휴대폰 좀 그만 봐라” 등 부모가 하고 싶은 말을 자녀에게 쏟아낸다고 해서 그걸 대화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잔소리뿐인 대화에는 부모의 귀 기울임이 없다.미국 교육학자 데보라 메이어(Deborah Meier)는 “가르치는 것은 듣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말하는 것이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말을 하고, 배우기 위해 듣는다고 여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듣는 일에서 시작한다. 바람직한 학습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아이의 관심을 이해하려면 귀 기울임이 전제돼야 한다.비단 학습을 위한 교실 내 대화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중 부모-자녀간의 대화에서도 귀 기울임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아이에게 도덕적인 교훈을 주거나 정보를 주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하려고 한다. 최근 세월호 침몰사고로 드러난 여러 문제점들을 보며 과연 어른이라 해서 옳고 그름을 아이들에게 말할 자격이 있는가 생각해보았다. 선장과 항해사가 탈출하기 바쁜 와중에 아이들은 자신이 움직이면 배가 더 기울까봐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아이들은 옆에 있는 친구와 탑승자 전체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때문에 부모-자녀 관계를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간의 관계로 보기보다는 대등하게 봐야 한다. 인격적으로 대등하며 존중하는 관계의 표현은 바로 귀 기울임이다.아이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고민하거나 전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은 무엇인가?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 게임, 놀이 등 무엇인가? 오늘 하루는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사회 이슈에 대해 아이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공부나 성적 등 나의 관심사만 아이에게 너무 강요하지는 않았는가? 아이에게 대화 주도권을 넘겨주고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이에게 가르치고 훈계하려고 하기 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잠잠히 들음으로써 소통의 기운을 회복하자.

2014-05-12

지속가능한 포항 경제를 위하여

▲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프린시펄 이코노미스트최근 필자는 몸에서 주는 신호를 무시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미 3년 전부터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치아건강과 잇몸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므로 서둘러 치료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상증세가 일시에 터진 때문이다. 적어도 10년 이상 치과에는 간 적이 없어 치아를 치료하는 과정이 그리 복잡한지도 몰랐다.결국 정밀 검사를 거쳐 아예 치아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손상치아는 뽑고, 정상 치아들을 기둥으로 다리처럼 연결하는 브릿지라는 것을 설치하게 됐다. 그리고 과거 발치한 후 방치하였던 빈 공간에는 인공치아를 심기로 했다. 또한 치석을 제거하는 스케일링과 더불어 병든 조직들이 잇몸에 많아 잇몸치료까지도 병행하게 되었다.처음에는 손상된 치아로 인한 고통 때문에 시작한 것이지만 치료가 진행되면서 여기저기 잠복해있었던 손상된 잇몸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통증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최종 마무리는 앞으로도 2~3개월은 족히 소요될 것 같다. 그래도 치아들의 건강을 회복하는데 있어 병인의 제거(스케일링과 잇몸치료), 작동불능의 치아 제거(발치), 건강한 치아들과 연결하여 기능을 살리는 조치(브릿지), 아예 외부로부터 인공치아의 영입(임플란트) 등을 통해 치아건강을 완전 회복시키는 것이므로 비교적 짧은 시간인지도 모른다.포항 경제를 치아에 비유하더라도 동일한 치료과정이 어쩌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지만 치석이나 잇몸의 병인이 가득한 부위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발치는 됐지만 아예 방치되고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치아의 치료과정에 앞서 X-ray나 MRI 등을 통해 정밀진단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항경제에 대해서도 주도면밀한 사전진단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아예 불필요한 것인지, 시급히 치료해야할 것인지, 새로운 것을 심을 것인지 등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치료하는 도중에는 포항경제도 일정한 통증을 느끼거나 심지어는 몸살까지 앓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의 경제학에서는 단순한 발전,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포항 경제가 앞으로도 건강한 상태로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치료하는 것을 미루거나 통증을 무서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포항의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치료과정에서도 다음과 같은 부분에 정책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첫째, 아예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발치하듯이 해야 한다. 일례로 도심 속의 질주본능을 가지고 있는 시내버스, 승용차들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넓은 도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불법주정차 관행은 뿌리 뽑아야 한다. 인구 50만명이 넘는 도시이자 글로벌 포항이라는 슬로건에 걸 맞는 교통문화 정착을 위해 과감한 단속과 적절한 교통감시카메라의 증설도 필요하다.둘째,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기업, 연구소, 대학, 전통시장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자금이나 영업력이 부족한 이들 경제주체들을 브릿지로 연결시켜 동종간, 이업종간의 연대를 강화하여 융복합을 통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당연히 KTX와 영일만항을 연결하는 브릿지 역할을 수행할 인입철도, 자유무역지역 등 주요 인프라 건설도 조기에 완공해야 할 것이다.셋째, 포항에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직 부족한 분야에는 과감하게 인공치아를 심는 것과 같은 사업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일례로 국내외 인사들을 마음 놓고 초청할 수 있는 특급호텔과 같은 시설의 유치다. 호텔은 치아에 비유하면 잇몸도 되지만 어금니의 역할도 수행한다. 다양한 경제활동이 어금니인 호텔에서 고르게 씹혀 포항경제의 피와 살을 공급하게 될 것이다.마지막으로 포항 경제에 사랑니와 같은 존재는 불필요하다. 앞으로 6월이 되면 새로운 시장이 취임할 것이다. 새로운 정책방향을 수립하고 시행함에 있어 불필요한 치석이나 잇몸의 병인을 제거해서 잇몸을 강화하는 정책은 적극 추진하되, 만에 하나 사랑니와 같이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불필요한 사업이 진행되지 않도록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2014-05-08

소 잃고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 장태원 시인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의 눈 덮인 산에는 `할단새`라고 하는 전설의 새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새는 둥지 없이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면서 사는데 밤이 되어 추워지면 몸을 웅크리고 밤새 추위에 떨면서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지`하고 몇 번이나 다짐하지만 아침이 되어 따뜻한 햇볕이 비치면 간밤의 결심을 잊어버려 평생을 집 없이 후회만 하면서 살아가는 망각의 새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안전 불감증과 적당주의의 잘못된 관행을 버리지 못하면 재난은 늘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경종일 것이다.재난은 언제 찾아올지 알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내일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면서 오늘을 살아간다면 늘 후회만 남게 된다. 지난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로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지 채 두 달이 되기 전에 일어난 이번 진도해역의 참사도 결과적으로 한국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됐다. 안전을 등한시하는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서 재난 위험이 높아진 것은 물론 재난 대응 능력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10여년전 대구 지하철 사고의 기관사나 세월호 선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대피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으로 피해가 커졌다. 기관사는 승객들을 객차에 가둬둔 채 마스터키를 들고 현장을 떠났다. 세월호의 60대 베테랑 선장은 손자뻘의 어린 고등학생 등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속옷만 입고 허둥지둥 배에서 맨 먼저 탈출했다. 기관사와 선장의 이와 같은 이기적인 행동은 우리사회의 리더들이 보여주는 무책임의 전형이다. 모든 조직에는 체계에 맞는 지위와 역할이 있다. 지위만 누리고 역할에 맞는 책임은 방기한 것이다.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 때 선조는 비가 오는 캄캄한 밤 백성들을 뒤로 한 채 몰래 도성을 버리고 임진강을 건너 압록강 앞 의주까지 달아났다. 이 때 선조의 몽진 길을 호종(扈從)하던 사관들이 짊어지고 다니던 사초(史草)를 구덩이에 넣고 불을 지른 뒤 도망가는 바람에 선조가 즉위한 후 임란이 일어나기까지 25년간의 사적이 깜깜하게 되었다.병자호란 때 인조는 후금군이 쳐들어오자 한양의 수비는 세자에게 맡기고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떠났고 적군을 맞아 조국을 구한 것은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들이었다.6·25전쟁 때 인민군이 의정부를 점령하자 이승만은 대통령이 서울에 있으니 안심하라 하고서는 정작 본인은 다음날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피난하며 한강인도교를 폭파했다. 서울을 지킬 수 있다는 대통령의 호언장담을 믿었던 순진한 국민들만 목숨을 잃었다. 침몰 직전까지 선원들은 승객에게 `객실에서 기다려라`를 반복했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은 말 잘 듣는 어린 학생들과 승객들만이 아직도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 누워있다.국가가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지는 안보와 안전이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고, 재난 관련 지휘 책임을 안행부에 줬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은 무능이 아니라 백치의 수준과 다름이 없다. 사고야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모습은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낀다.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를 생명으로 여기는 언론 또한 시청률에 노예가 되어 자극적인 표현과 오보로 국민들을 아노미 상태로 몰아갔다. 한 방송사의 인터뷰는 이제 막 죽음의 문턱에서 탈출한 어린 학생에게 “친구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라고 물었고, 학생은 울음을 터트리며 “못들었다”고 대답했다. 기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세월호 참사는 사회 전반에 쌓이고 쌓인 적당주의와 준법정신의 결여가 만들어 낸 안전불감증에서 온 결과다. 뼈저린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집단이나 개인은 망할 수밖에 없다. 소 잃고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소중한 소를 잃지 않는다.

2014-05-07

복지수요 해결은 지역사회성 강화에서

▲ 이동수 대구한의대 교수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지역개발은 기초수요접근법을 사용해 왔다. 이러한 정책은 자연스럽게 시설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지역사회와는 동떨어진 도로 등 각종 개발사업이 주를 이뤄 시설의 과잉공급이라는 문제점으로 나타났다.경북도 역시 이러한 결과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현재 정부의 복지확대 정책에 따라 재정적 여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경북도 내 시·군들은 재정문제에 봉착하는 등 매우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이제 성장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경북지역의 시·군들은 기초수요접근법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의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증가되는 복지수요를 재정에 의존하기 보단 지역사회 중심으로 해결해나가야 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 다음의 4가지 사업을 경북의 시·군 지역에 새로운 사업으로 제안하고 한다.□기초생활환경 보장지역 지정지금까지의 지역개발과 관련된 정책들은 시행 단위가 자치단체 규모의 사업과 마을단위 또는 지역·지구 단위로 추진되고 있어 지역사회 정주체계의 기초단위인 읍면 단위의 생활기반 구축이 필요하다.특히 군부의 경우에는 넓은 자치단체의 구역에 과소인구가 거주함으로써 자치단체 중심의 정책은 주민들에게 체감도가 떨어지고, 마을단위 사업은 규모의 한계성을 보여 적정규모의 생활환경 조성이 필요하다.생활환경이 현저히 미흡한 읍·면을 대상으로 정부가 제시하는 전국적 기초생활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지역사회의 중심지로 육성하여 지역발전의 기초단위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기초생활환경 보장지역 사업의 추진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에서 국가차원의 최소 읍면단위 생활기준을 제시하고 전국의 읍면을 평가한 후 불충족 지역을 기초생활환경 보장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읍·면 단위 통합지역사회센터 설치읍면은 정주 여건의 최소한을 충족시켜주는 단위로 다양한 공공기관 및 학교 등의 시설이 입지하고 있으나 인구감소와 시설별 연계성 부족으로 정주여건 최소 기능의 비효율성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귀농·귀촌의 증가와 함께 지역사회의 프로그램 도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공기관 및 학교의 시설과 프로그램을 연계하는 통합지역사회센터의 설치가 필요하다.통합지역사회센터는 읍면 소재지 내 공공기관 및 학교의 시설 및 프로그램을 통합 운영하여 지역사회센터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읍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소방파출소, 농협 등 각종 공공기관과 초·중학교의 개별시설 집적화와 더 나아가서는 통합을 추진하고, 보건소, 복지기관 등 모두를 통합하여 지역사회센터로 육성하는 것이다.□마을단위 정주공간(집락) 재편 사업인구 감소, 고령화 등의 축소 시대에 대비하는 지역정책의 일환으로 마을 단위에 대한 집락재편 정책이 필요하다. 소멸이 예상되는 마을까지 재원을 지원하는 등 과소마을에 대한 투자의 문제점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마을단위 정주공간 재편을 위해서는 우리나라 5만여개의 마을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행돼야 한다. 인구구성, 인구의 증감율, 인구별 연령, 지역 성장 및 감소 추세 등 마을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총괄적 현황을 조사수행하고, 마을을 유형화한 후에 마을 단위에 대한 장기적인 정주공간 재편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강소지역 발전 계약제 사업강소지역 계약발전제도는 기초자치단체가 먼저 강소지역 발전계획을 수립해 목표치를 제시하고, 광역자치단체가 이를 검증하고 보완하며, 사후 평가를 담당한다. 중앙정부는 계획을 검토 후 지역지원 사항에 대한 이행계획 수립해 중앙정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3자간 계약 체결 후 집행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계약 내용에 대한 매년 평가에 따라 페널티와 인센티브 시행하여 계약내용에 대한 평가·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2014-05-01

인간다운 가치관의 상실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연일 계속되는 언론의 속보가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린 듯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는 우리의 삶과 가치관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길에 오른 자녀들의 환한 얼굴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그들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단원고 부모들의 심정은 세상에 어떤 언어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비통하고 슬픈 일이다.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식들을 보고 우리는 흔히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란 표현을 통해 그들의 존재감을 인지시켜 준다. 그런데 이런 자녀들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천진난만한 학생들과 자식 잃은 부모들에게 우리사회는 어떤 말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슬픈 눈물만이 흘러내릴 뿐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이처럼, 부정과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은 아닐 텐데 기성세대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생각들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저질러 놓고 보니 그저 세상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앞으로 살아가며 기성세대들은 대한민국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안타까움과 분노에 앞서 그저 망막한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있어 개인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러한 `가치(value)`란 개인별로 고유한 요소로 인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며 인간 고유의 소산물이 된다. 한 인간의 가치는 곧 그 사람을 나타내며, 독특한 인간의 존재는 그의 가치관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개인의 철학을 토대로 가치는 제한된 능력과 시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해주기도 하며, 복잡하고 불확실한 사회 속에서 삶의 방향을 제시 해 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건전한 가치관에서 인간다움과 사회규범의 성실한 이행이 이뤄질 때 우리의 사회는 공정하고, 질서가 유지된다. 다시 말해 현대인들의 이러한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에 대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가치관이 세월호 선장을 비롯해 승무원 모두에게 제대만 정립되어 졌다면 이번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처럼 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전통적인 가치관의 왜곡된 의미를 흉내 내거나 무절제하게 절충한 서구적 가치를 경제논리에 의해 급속하게 상업화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보화와 기계화의 확산으로 인해 굳이 우리뿐만 아니라도 자아의 소외와 주체성의 상실에 직면해 있는 현대인들 모두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삶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또한 그것을 자율과 인격의 개념 속으로 무절제하게 편입시키려는 현상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느껴야할 대목이라고 본다.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의 잘못된 가치관 정립과 가치판단이 이번 사고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이제 이러한 가치의식에 대해 우리사회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는 전통적인 가치의식을 오랜 삶의 터전에서 스스로 습득하고 교육을 통해 배워왔다. 하지만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의 전통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원리에 의한 가치관이 새롭게 형성되어지는 구조로 변화되고 있다. 이제 다시 우리사회는 인간다운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기위한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2014-04-30

뒷북 코리아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어떤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냥 마음만 답답한 나날이다.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주범이 언론이라 지난주부터 언론을 끊어 버렸다. 정치는 훨씬 더 오래전에 끊었다. 혹 정부, 국회, 언론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필자가 생각하는 공통점은 바로 `뒷북치기`다. `학교 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법` 개정, `선박의 입항 및 출항에 관한 법률`, `수난구호법`, `해사 안전법`, `항로 표지법` 개정안 등 국회가 갑작스럽게 바빠진 것도 뒷북치기의 전형이며, 정치인들의 나팔수인 언론들이 이들을 헤드라인으로 떠들어대는 것 또한 뒷북 때리기의 필수 코스다. 아직 많은 이들이 어둡고 차가운 물속에 있는데, 정치판과 언론들은 벌써 다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국무총리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퇴 한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새치(새정치연합의 줄임말)의 안·김 공동 대표는 무책임한 사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는 없다. 총리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 가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책임진다는 건지, 사퇴하면 그 귀한 목숨들이 다시 살아올 수 있는지, 왜 책임은 총리만 져야 하는지, 왜 사과는 대통령만 해야 하는지, 이 나라 정치인은 여당뿐인지, 국가 재난 시기에 야당 정치인들은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세상을 더 시끄럽게 만드는지, 자신들은 책임 질 일이 없는지, 왜 자신들은 사과를 안 하는지…. 구조가 한창인 지금 뒷북 언론과 뒷북 정치인들은 또 뒷북 때리기에 바쁘다.뒷북은 교육계도 마찬가지다. 요즘 교육계의 화두는 `안전`이다. 안전이 갑자기 교육계의 최우선 과제가 돼 버렸다. 그 일환으로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그리고 체험학습을 가기 전에는 반드시 실제와 똑같은 경로로 사전답사를 두 번은 다녀오라는 지침까지 내려 왔다. 여기서 필자는 또 한 번 답답함을 느낀다. 취소하거나 연기한다고 해서, 사전답사를 두 번 다녀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지.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왜 임시 처방하기에만 급급한지.뒷북 정치, 뒷북 언론, 뒷북 종교계에 정말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실종자 수가 0이 될 때까지 만이라도 제발 조용하고 희생자와 희생자 가족들의 피맺힌 절규를 가슴으로 듣자고. 아직도 애타게 구조를 기다라고 있을 우리 아이들의 간절한 소리를 제발 좀 듣자고. 그리고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 있다면 다 구한 다음에 제대로 하자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두의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라고.전국이 노란 물결이다.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사 생환을 기원하는 뜻의 노란 리본을 전 국민이 달고 있다. 필자는 믿는다, 노란 리본에 전해지는 전 국민의 간절함이 실종자들에게도 꼭 전해질 것이라는 것을. 세상 모든 일에는 반전이 있듯 분명 이번에도 반전이 있을 것이다. 반전이 일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마음을 모아야 한다.불교 경전을 보면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교훈이 있다. 말 그대로 재물 없이도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베풂으로 화안시(和顔施-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을 남을 대하는 것), 언시(言施-사랑의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 등 좋은 말을 하는 것), 심시(心施-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 안시(眼施-따뜻한 눈으로 상대방을 보는 것), 신시(身施-남의 무거운 짐을 들어 주거나 돕는 것), 좌시(座施-때와 장소에 맞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찰시(察施-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먼저 돕는 것)가 무재칠시(無財七施)이다.우리 곁엔 희망마저 고문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의 상처 난 마음을 우리는 외면해서는 안된다. 더더군다나 그들의 상처 난 마음을 더 다치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래서 뒷북 코리아에 제안한다. 오늘부터라도 무재칠시를 하루에 하나씩 실천하자고.

2014-04-29

신뢰 받는 지도자

▲ 서임중 포항중앙교회 담임목사지난 3주간 우리교회는 항존직분자 피택을 위한 선거로 축제기간을 보냈다. 장로 2명, 집사 30명, 권사 50명이 선택되었고, 전입 항존직분자들이 함께 취임을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축복된 행진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서 행복하다.선택받은 자들이나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나 감사와 행복이 동일한 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영적 수준이다. 이 일로 인해 신앙과 삶이 교만해 진다거나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여전히 `지금 여기에서'의 기본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다만 더욱 엎드림의 시간이 길어지고 깊어지는 이유 한 가지가 있다. 피택 받기 전의 신실함과 성실함, 오직 주님과 교회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본자세가 피택 받고 교육과정을 거치고 임직을 한 후에는 서서히 모든 면면이 약화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더욱 중보 기도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신뢰 받는 지도자로서의 신앙과 삶이 선택해 준 교인들에게 두고두고 기쁨이 되고 존경스러워야 하며 하나님께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치명적인 수치스러운 말 가운데 “장로 임직을 받더니 목에 깁스를 했다”는 아픈 언행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통용되지 않는 교회와 지도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주님에게 신뢰받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일 것이다.오래 전에 `존 맥스웰'의 `신뢰의 법칙'을 읽었다.사전적 신뢰(信賴·confidence)는 남을 믿고 의지함이다. 이 용어는 남에 대해서는 신용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으로 이해되면서 자연스럽게 신의(信義)로 이어진다. 존 맥스웰은 `신뢰의 법칙'에서 인간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뢰를 역설하면서 인간관계의 승리는 어느 한 쪽이 아닌 `함께'로 성취되며, 그것은 대화의 기술이나 에티켓 같은 테크닉이 아님을 강조한다.그렇다. 인간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자신의 기술이나 능력만으로는 안된다. 상대방과의 협력을 반드시 전제로 한다.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이해와 협조를 얻어내야 하는 과제가 항상 주어지는 것이다. 누구 무론하고 일생을 살면서 인생 마무리를 성공적으로 끝내지 못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존 맥스웰이 말한 신뢰의 법칙을 적용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남을 보려고 하기 전에 자신을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상처를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 파리 잡기 위해 망치를 휘두르는 것, 이런 모든 것은 상호 신뢰에 있어서 기초적인 준비가 전혀 안된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남을 나보다 먼저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고, 누구를 만나든 그는 나의 스승임을 수용하면서 관계를 가질 때 신뢰의 싹이 트는 것이다.인간관계는 농사를 짓듯 경작하고 가꾸는 것이다. 가을의 수확을 위하여 1년 내내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한다. 그리고 가을의 수확을 통해서는 자신만의 기쁨이 아닌 이웃과 함께 한다는 기쁨이 농심(農心)이다. 이 과정을 가만 생각해 보면 신뢰의 법칙이 준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인간과 창조주,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의 신뢰에서 수확의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교회 창립 67주년을 맞아 항존직분자로 선택된 이들은 첫째는 하나님이 신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신뢰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더불어 살아가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신뢰하는 사람이다.

2014-04-28

영화 `굿모닝 맨하탄' 이야기

▲ 김명화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인도 영화 `굿모닝 맨하탄'을 재미있게 보았다. 원제목은 `잉글리쉬, 빙글리쉬(English Vinglish)'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어찌 보면, 식상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영어 초보자들이 겪게 되는 공감 백배의 에피소드를 잘 풀어 내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영어'를 매개로 한 주인공의 성장과 자기 발견, 가족의 소중함 등을 잘 엮어나가 잔잔한 감동도 느낄 수 있는 착한 영화다. 특별히 영화가 더 재미있었던 이유는 일상생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있는 권력과 차별, 소외의 문제 또한 잘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영화를 좀 소개해 보면, 주인공 샤시는 인도에 사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그녀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현명한 아내로서 완벽한 내조를 하며,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라두(인도식 디저트의 일종)를 만들어 팔고 있다. 음식 솜씨가 좋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이웃의 모습을 좋아하는 샤시는 라두를 직접 배달하며 정성을 쏟을 만큼 이 일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남편이나 큰 딸은 그런 그녀의 재능을 하찮게 생각하며,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자주 무시한다.현모양처로서 따뜻한 가족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샤시의 노력은 생존에 꼭 필요하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고마움을 모르며 마시고 내뱉는 공기처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사실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관계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그러한 하나의 관점을 일방적으로 정해버린다는데 있다. 샤시가 가족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결국은 `영어를 잘 하는 사람'만이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 가치만을 강요하는 권력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어쨌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샤시는 영어를 배울 결심을 하고 `4주 완성 영어클래스'에 등록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문제를 가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며, 때로는 위로를 받고, 때로는 위로를 건네며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 나가게 된다.“You are entrepreneur(당신은 기업가군요).”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코 영어강사 데이비드가 주인공 샤시의 직업을 정의해 주는 이 장면을 꼽겠다. 앙터프리너, 우리말로 기업가, 사업가, 창업가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단어의 어원은 위험을 감수하거나 모험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라고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명을 성공적인 혁신으로 바꾸고 그만한 능력이 있어 해내는 사람을 말한다. 샤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으나, 집에서는 단 한 번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작은 사업(small business)을 데이비드는 그렇게 정의해 줬다. 이 호명의 순간을 통해 샤시는 처음으로 `인정'을 경험하게 되고, 비로소 한 가족의 아내에서 한 명의 주체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소통하며, 한 걸음 더 내딛게 됐다.`굿모닝 맨하탄'의 가우리 신드라는 여성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의 어머니 역시 고향에서 피클을 만들어 판매하는 가내 사업을 했지만 영어에는 능숙하지 못했고, 감독은 이를 부끄러워했단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인터뷰 했다.되돌아 보건데 나 역시도 부모님을 무시하며 철없이 굴었던 기억이 있다. 비단 부모님뿐이었으랴! 보이지 않는 권력의 작동에 발 걸려 편견에 치우친 삶을 살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그리고 일생을 `그림자 노동'으로 헌신해 주신 부모님께 고맙고 죄송한 마음 전해드린다.

2014-04-24

잔인한 4월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참 아프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정말 아프고, 아프고, 아프다. 불 꺼진 선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차가운 바다 속은 또 얼마나 춥고 두려웠을지, 보고 싶은 이름들을 얼마나 목 놓아 불렀을지, 대답 없는 이들을 얼마나 원망했을지, 그리고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을지…. 아, 정말 아프다.그토록 듣고 싶었을 어머니, 아버지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왜 대답을 안 하는지, 혹 늦은 것에 화가 나서 대답을 안 하는 것이라면, 움직이지 말고 제 자리에 있으라는 그 놈의 빌어먹을 안내방송을 지키느라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라면, 부모님의 간절함을 봐서라도, 그리고 잘못된 어른들의 이기적인 안내방송 따위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제발, 제발, 부모님의 부름에 대답하길, 아니 해 주길…. 아프다, 정말 아프다.왜 우리는 큰 일이 있고서야 아는지, 왜 우리는 꼭 늦은 후회만 하는지, 왜 세상은 자기 말하기에만 바쁜지, 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하는지,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라고 하는 건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내 방송은 왜 안 하는 건지, 그 방송을 해 줄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아프다는 말조차 미안하다.그 옛날, 예언이라도 한 것일까. 4월은 정말 잔인하다. 아무리 격동의 4월이었다지만 오늘의 4월은 4·19를 울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 많은 희생들, 진정한 대한민국의 봄을 위해, 그리고 진정한 학교의 봄을 위해 순국한 그 많은 넋들이 숨죽여 흐느끼는 2014년 4월. 울 자격조차 없는 대한민국은 시끄럽기만 하다. 혹 그 시끄러움에 우리 아이들의 소리가 안 들리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허둥거리는 모습을 바다 속에서 아이들이 보고 있다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지.아이들이 아직 바다 속에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싸우고만 있을지, 도대체 숫자 놀음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냄비 언론들은 언제까지 저렇게 달그락거릴지, 전문가들이 저렇게 많은데 도대체 그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저렇게 떠들어 되는지, 왜 이제 와서 떠버리가 돼 부모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지, 그냥 좀 조용해주면 안 되는지. 하던 대로 그냥 입 좀 닫고 있으면 안 되는지.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냄비 언론들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국민들의 집중력은 최악이 되고, 건망증에 걸린 언론 때문에 신(神)들도 판단력이 흐려지시지나 않았는지 걱정이고 걱정이다.부활절도 있고, 부처님 오신 날도 있다지만, 우리 아이들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아직 그 어디에도 없는 잔인한 4월. 부활의 주체와 부처님은 다 어디에 계시는지, 경전과 말씀 속에만 계시지 말고 이 나라의 희망인 저 아이들을 위해 이제 모습을 나타내시면 안 되는지.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시기보다 지금 당장 당신들을 찾는 우리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시면 안 되는지. 다음 생에서도 할 일이 많은 아이들이지만, 현생(現生)에서 더 할 일이 많은 우리 아이들. 제발 그들의 간절함을 들어 주시면 안 되는지.침몰한 건 분명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이 나라다. 이 나라 교육이다. 이 나라 언론이다. 이 나라의 희망등인 우리 아이들은 분명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면서 침몰하는 이 나라를 떠받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더 큰 희망이 되어 우리에게로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숫자놀음으로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다. 독화살을 맞았다면 그것을 빼는 것이 먼저이다. 독화살이 어디에서 날라 왔는지, 독의 성분이 무엇인지는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분명 희망의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더 이상 기본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기본이 없었기에 발생한 지금의 이 큰 일을 이겨내는 방법은 각 자의 자리에서 기본에 충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교육의 기본은 무엇인지? 우리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있는지? 학생들에게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고 계속 가르쳐야 할지? 정말 아프고, 아프다. “얘들아, 미안해!

2014-04-22

아이를 성장시키는 말 한마디

이수원대구대 교수·유아교육과우리는 살아오는 과정에서 들었던 어떤 말 한 마디가 잊지 못하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그 말 중에는 자기를 괴롭히던 것도 있고, 격려하여 정신적으로 성장 시킨 말도 있다. 이런 말 중에 “너를 믿는다” 라는 말이 필자에게는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다.이 말은 나에게 행동의 선택권을 주지만 나를 믿어주면서도 책임을 동반시키는 격려성 말이면서 동시에 은밀한 강제력도 가지고 있다. 무심코 하는 한 마디가 상대에게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길 수 있어서 그것이 아이를 성장시킬 수도 또는 좌절시킬 수도 있다.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 아이를 성장시키는 말에는 실수를 허용하는 “괜찮아”라는 것이 있다. 만일 아이가 음식을 먹다가 옷에 흘렸다면 일반적으로 부모는 아이에게 꾸짖으면서 조심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이런 반응보다는 그 실수의 이면에 그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아이들은 얼굴의 작은 근육이 완전히 발달되지 않아서 식사나 표정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가 많다. 이럴 때 부모는 “괜찮아. 옷은 걱정하지 말고 맛있게 먹어”라고 다독이는 것이 좋겠다. 물론 세탁하기 좋은 옷을 입혀서 맘껏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또 아이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되면 아이에게“다른 사람들은 나의 행동의 어떤 점을 불편해 할까?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등을 생각할 기회를 주어서 아이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판단하여 선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부모로부터 간섭받기 보다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점차 자기 행동에 책임감을 갖는 주인이 될 수 있다.혹자는 아이 버릇을 고치지 못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될 수 있지만 필자가 여러 곳에서 부모 자식 간의 대화를 보면 부모의 일방적인 간섭이나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실수를 통하여 배운다. 심지어 아이를 꾸중하는 어른들도 자신의 잘못이나 타인의 실수를 통하여 끊임없이 배워 왔다. 자신의 실수에 너그러운 만큼 아이들의 잘못도 너그러이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아이의 견해에 공감하는 말들은 전부 아이를 성장시키는 좋은 말들이다. 아이가 “OO랑 놀지 않을 거야. 내가 갖고 있는 것을 OO가 빼앗아 갔어”라고 말했을 때, 부모가 만일 “OO가 너의 것을 빼앗을 생각은 아니었을 거야” 또는 “그러면 못써. 친구와 사이좋게 놀아야지…” 라고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면, 친구에 대한 아이의 태도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 것은 자기 아이가 잘못한 것으로 돼 버린다.이때는 “OO가 빼앗아 가서 네가 속이 상하겠구나”라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서 대답해 준다면 아이는 부모에게서 이해로 수용되고 있다고 여겨서, 푸근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위로가 될 것이다.인생의 기초를 세우는 유치원 교육은 중요하다. 차례 지키기,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기, 손 씻기, 감사 인사하기 등 우리가 꼭히 해야 할 기초적인 것을 유치원에서 배운다. 유치원에서 배운 내용을 생활 중에 제대로 지키기만 하면, 성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나 범죄발생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특히 초등학교 입학 전인 만 5세의 아이들은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친구와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공감의 말 한 마디는 아이들이 위로를 받고 선한 의지로 행동하도록 격려하는 밑거름이 된다. 부정적인 말이나 비난의 말이 습관화 되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날 그날 아이에게 한 것들을 기록하여 본다면 부모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2014-04-21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이야기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미술과 영화를 읽는 방법 중 공통된 특징은 먼저 눈으로 그림을 보는 것이다. 단순히 시각 활동을 통해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작가나 감독의 숨겨진 의도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낼 때 감상의 재미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미술이 평면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여러 가지 함축된 의미를 깊이 있게 담아낸다면 이러한 미술을 시·공간 속에서 자유로운 표현과 해석으로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화시켜 서사적 의미를 담는 영화는 복합예술로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 느끼게 해준다. 10여년 전 영국에서 제작되어진 한편의 영화 속에서 명화의 아름다운 제작과정과 그림보다 더욱 아름다운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그림의 또 다른 매력에 빠져 본다.영국 출신의 영화감독인 피터 웨버가 2004년 제작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등장하는 인물화는 화가 이름과 그림 제목은 몰라도 미술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디에선가 한번쯤은 본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작품이 주인공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처럼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그림 역시 영화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명화인 셈이다.콜린 퍼스가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역을 맡았으며, 영화 속 주인공이며 그림 속 모델인 그리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이 영화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을 하는 여류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을 원류로 제작되어진 작품으로 명화가 주는 감동을 아름다운 영화로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1632~1675)의 생애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탄생 배경을 보여주는 이 영화 속에서 당시 서양미술사에 있어 가장 호황을 누렸던 네덜란드의 사회적 분위기와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참고자료로 보여 지고 있다.17세기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하면서 부터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 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그리고 회화의 형태 또한 변모하여 플랑드르 북부지역의 회화를 `네덜란드 회화`라는 독자적인 이름으로 규정짓기 시작한 때도 이때 부터였다. 수요가 급증하자 주문 제작이 아닌 미리 제작해 놓은 작품을 파는 마켓이 성립되고, 램브란트 같은 작가는 자신의 아뜰리에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예배대상이 아닌 종교적 교양으로서의 종교화가 다수 제작돼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램브란트는 프로테스탄트 이외에 가톨릭뿐만 아니라 유대인 고객에게 작품을 팔기 시작했다. 성직자 또는 유복한 시민층에서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시민층들이 생겨나면서 그림들은 성당이 아닌 개인의 집에 걸리기 시작 한 게 17세기부터로 보아도 무관할 것 같다.어둠 속에서 수줍은 듯 고개를 돌려 왼쪽 어깨너머로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얼굴에서 환한 빛이 가득 쏟아진다.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화가 중 한사람이었던 램브란트의 빛이 이성적이고 인생을 의미를 파헤칠 것처럼 남성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면, 베르메르의 작품은 그것을 감성적이고 사랑과 행복을 담은 햇살처럼 여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파란색의 터번을 두르고 노랑색의 수건을 머리에 묶은 소녀는 눈처럼 하얀 셔츠 위에 향토색의 겉옷을 입고 있는 모습에서 베르메르가 선호하는 색들을 하나 둘씩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림 속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눈에서 입술로 이어지고 이내 진주목걸이로 장식한 귓가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촉촉한 눈망울과 살짝 벌린 붉은 입술에서는 사랑을 갈망하는 어린소녀의 사랑과 애절함이 풍겨져 나오는 듯하다.

2014-04-16

신(新) 자아비판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선생님, 잘 지내시죠! 지난 일 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반갑고도 마음 아픈 문자 메시지가 왔다. 작년에 가르쳤던 전직 학교 민정(가명)이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다. 비록 힘들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아이의 힘들다는 외침이 너무도 크게 들려 마음이 먹먹해졌다. “힘들지? 힘내!”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이 왔다. “옙! 열심히 하겠습니다. 쌤도 힘내세요” 마치 새로운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 때문에 두고 온 아이들을 잠시 잊고 있었던 필자의 무심함을 나무라는 듯 했다. 벌써 4월 중순이다. 봄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겨울을 이겨낸 모든 이들이 꽃들의 응원을 받으며 다시 여름을 준비하는 봄.필자는 봄의 웅성거림이 너무도 좋다. 그런데 세상엔 100%가 없다는 진리처럼 많은 이들이 화전놀이에 초대 받아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요즘, 학교는 다시 겨울로 가고 있다. 그것도 혹독한 겨울로. 아마 계절이 빛의 속도로 역주행하는 곳은 학교뿐일 것이다. 그 속도에 학생들은 심한 학교 멀미를 하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학교의 봄은 언제 올지?민정이가 필자에게 온 것도 지난해 1학기 중간고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4월이었다.“어디 목소리 한 번 보겠어. 저쪽까지 들리도록 큰소리로 말 해 봐” 수줍음 많은 여학생 한 명이 교무실 중앙에 서 있었다. “큰 소리로 해야 용서 해 줄 거야.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말해봐”, “앞으로 지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저기 끝에 있는 선생님들은 안 들리잖아. 다시!” “앞으로 지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어허, 그 목소리로 들리겠어? 선생님들 방금 이 학생이 뭐라고 했는지 들었습니까?” 필자는 너무도 똑똑히 들었고, 그래서 잘 들린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필자 뒤쪽에서 누군가가 먼저 대답을 했다. “안 들립니다”, “거 봐, 안 들린다잖아. 더 큰 소리로 안 해” 분명 교무실에는 난청이 있으신 선생님이 없는데, 안 들린다고 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보았다. 난청의 주인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필자 뒤에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정보 검색에 바쁜 그 학생의 담임이었다.한 사람의 동조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이 선생님, 방금 이 학생이 한 말 들었습니까?”라고 필자에게도 물음이 왔다. 그 물음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난청이 없음을 확실히 알리기 위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예, 잘 들립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교무실이 조용해졌다. 들리는 것을 들린다고 했을 뿐인데, 잠시의 침묵을 깨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거 이야기 해봐!” 순간 필자는 필자가 무엇을 잘 못 했나하고 생각해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필자는 정말 큰 잘못을 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정말 들어야 할 것을 못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무실 중앙에 홀로 서 있는 키 작은 여학생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듣기 위해 더 크게 귀를 열었다.“화장을 하지 않겠습니다” 필자는 미리 필자의 귀 상태를 알렸다. “잘 들립니다” 더 이상 필자에겐 질문이 없었지만, 아이에게 묻고 있는 어느 쌤의 짜증은 분명 더해만 갔다. “또!”, “선생님한테 대들지 않겠습니다”, “더 크게”, “쌤한테 대들지 않겠습니다” 아이는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한 동안 조용하던 그 아이의 담임교사가 아이보다 더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 들린다. 다시 말해봐라” 아이는 더 크게 말했다. “이제부터 쌤한테 대들지 않겠습니다”, “다시 더 크게 말해 봐라” 아이는 더 크게 또박 또박 말했다. “이제부터 쌤한테 대들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그 선생님은, 아니 그 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필자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민정이는 자아비판을 하면서 더 씩씩해졌다. 그리고 교무실에 “당신들이 진정으로 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져 줬다.혹 여러분은 우리 학생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들의 소리가 들리십니까.

2014-04-15

내나무 심기와 의미 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이번 주 친환경 봉사활동 시간에는 `내나무` 심기를 합니다” 목요일 오후 시간은 학교 앞 계천과 마을을 꼼꼼히 청소하는 `친환경 봉사활동` 시간인데, `내나무`를 심는다는 말에 학생들은 궁금함이 가득한 눈으로 필자를 보았다. 그 궁금함 너머에는 `다행이다`는 안도의 모습도 보였다.학교에서는 환경 정화 활동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른 시도 출신 학생들에게 마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지역에 대한 주인의식을 높여 주기 위해 매주 목요일마다 친환경 봉사활동 시간을 특성화 교과로 운영하고 있다.학생들은 목요일마다 역한 냄새를 참으며 오랫동안 방치된 폐비닐을 비롯한 농자재들과 마을의 생활 쓰레기를 치운다. 힘듦을 이겨내고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여간 대견하지가 않다. 비록 지역 관공서로부터는 홀대를 받고 있지만 필자는 안다. 친환경 봉사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그린 리더(Green Leader)로 성장 할 것이라는 걸.`친환경 봉사활동` 대신 `내나무`를 심는다는 말에 안도해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충분히 이해됐다. 하지만 학교의 모든 활동이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학생들이라 그 안도감은 짧은 봄꽃축제 마냥 금방 끝이 났다. 그리고 학생들은 `또 뭐지`라는 불안한 호기심으로 필자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필자와 학생들 사이엔 무언의 약속이 있다. 수업이든, 활동이든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꼭 그것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과정과 결과를 볼 때 결코 아까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필자와 학생들은 잘 안다. 최근 들어 여러 언론을 통해 교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아마도 안타까운 눈으로 많이들 보았을 것이다. 수업의 주인은 학생들이라 하지만, 주인들은 정작 수업, 아니 정확하게 말해 학교 수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수업을 들어야 할 이유를, 또 수업 내용이 자신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맞고도 맞는 말이다.여기에 대해 교사들은 또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진도를 맞춰야 한다. 시간이 없다. ….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다 결국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개념이 너무 없어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성적 비관 자살, 학교폭력, 개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 여러 가지 학교 문제를 보면 이 말도 나름의 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정말 묻고 싶은 건 우리 학생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랬냐는 것이다.필자는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학생들의 학교 부적응 문제가 전적으로 학생들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학생들을 뭐라고 하기 전에 일류병을 만들어 놓은 것이 누구인지, 학생들을 점수의 노예로 만든 것이 누구인지, 어린 아이들 손에 게임기를 쥐어준 것이 누구인지, 경쟁적으로 최신 스마트폰을 사 준 것이 누구인지 ….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 될까?“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시청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놀라고, 좀처럼 고쳐질 것 같지 않은 문제 행동이 고쳐지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그런데 필자의 눈에는 과잉 행동을 하는 아이들보다 프로그램 내내 눈물짓는 부모들이 보인 것은 왜 일까. 우리는 그 눈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의미 교육! 필자의 교육관을 바꾼 단어다. 그리고 지금의 교육 문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필자가 제시하고 싶은 해결책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충분히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내나무는 어떤 종류의 나무일까? 침엽수? 활엽수? …. 내나무는 바로 여러분의 꿈과 희망이 자라는 나무예요. 오늘 여러분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심을 거예요” 학생들의 눈은 빛났다.

2014-04-08

치유의 시대, 농업이 가진 치유기능에 주목하자

▲ 이동수 대구한의대 교수최근 유럽의 네델란드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매우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산림치유(산림테라피)를 육성하고 있으나 유럽에서는 이미 50여년 전부터 농업을 활용한 치유를 전문으로하는 치유농장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먼저 치유농업에 개념에 대해서 알아보면 농업분야의 선진국에서는 치유농업, 사회적 농업, 건강을 위한 농업 등의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고 있는데 필자가 만난 와게넹겐대학교 치유농업센터 얀신크 교수의 말에 따르면 본질적으로는 `치유를 제공하기 위한 농업의 활용`이라 정의 될 수 있을 것이다.농업·농촌 자원이나 이와 관련된 활동을 이용하여 국민의 신체, 정서, 심리, 인지, 사회 등의 건강을 도모하는 활동과 산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원 또는 활동 등의 범주는 비단 경종, 채소 작물뿐만 아니라 가축 기르기, 산림을 이용하는 경우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다.농업치유의 목적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의료적·사회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으로 일반 농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농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건강의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농업을 활용한다는 것이다.유럽을 중심으로한 인류가 치유의 목적으로 농업을 이용하기 시작한 역사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 되었으며 1950~60년대 들어서 농장을 이용한 치료활동은 장애인의 사회복귀, 작업요법의 활용 등으로 전문화되기 시작했다.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이슈로 떠오른 치유농업은 국가마다 용어와 집중하는 분야, 추진 주체가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건강농업, 치유농업, 녹색 치유농업, 사회농업 등 불리는 이름은 여러 가지였고, 집중 분야도 달라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은 치유농업이 발달한 반면, 영국은 원예치료, 독일과 핀란드는 동물매개치료가 발달하고 있다. 현재 유럽 전역에 6천여개 이상의 치유농장이 있으며,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노르웨이, 벨기에, 오스트리아, 독일 순으로 발달하고 있고,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치유농장이 많으며, 독일과 아일랜드는 기관 중심의 형태가 많은 편이다.필자가 방문한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농업 분야의 민간에서 시작된 치유농업이 국가 지원으로 더욱 발전하여 농촌 혁신과 사회 치유의 모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치유농장이 농가 소득과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네델란드 연방정부가 2001년 농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국가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전문화된 개인 중심의 치유농장이 75개(1998)에서 1천100개 이상(2011)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치유농장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면서 농장에 대한 정부 보조금은 중단되었지만, 대신에 농장 이용비용을 정부가 대신 지불하는 형태로 전환되어 운영되고 있다. 치유농장에서 치유, 돌봄, 건강 증진이 모두 이뤄지며, 소득은 농업 생산과 치유 활동 모두에서 얻어지는 형태이다.최근 우리나라는 치유 또는 힐링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힐링과 관련된 산업이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힐링이나 치유가 쓰이는 정도로 광풍처럼 불고 있다.유럽의 치유농업은 성장상황을 정리하면 첫째, 중앙정부차원에서 치유농업을 도입하기 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네델란드의 경우에도 농림부와 보건복지부가 협력하여 치유농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치유농업에 시설에는 농림부 자금을 치유활동에는 의료보험을 적용하면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둘째, 활동이 어느 정도 활발해진 이후 민간중심으로 전환하고 시설부분의 보조금을 줄이기 시작했다. 셋째, 민간중심으로 완전히 전환하고 의사의 처방에 따른 치유비용만을 지급하게 되었다.네델란드의 치유농업 발달에 결정적인 원인은 보건·복지에 대한 지출이 증가하면서 농업치유가 전체적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추진되게 되었다. 또한 네델란드 농가의 농외수입 증대에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이제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비용의 증가와 농업·농촌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농업치유와 치유농장의 도입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2014-04-07

은퇴 이후 창업을 꿈꾸기 전에

▲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시니어 이코노미스트과거 1970~80년대에 전국 각지로부터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업역군으로서 `산업의 쌀`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하느라 포항에서 청춘을 보낸 당시의 청년들은 이제 어느덧 중·장년에 이르러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시내의 식당이나 커피숍 등에서 머리가 희끗한 사람들이 과거 어려웠던 포항의 시절을 회고하다가는 어느새 화제가 바뀌어 은퇴한 이후의 호구지책에 대해 조그만 가게나 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모습들을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사람들의 생각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실제 포항의 경우 2012년 신설법인 통계 등을 살펴보면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소자본 창업기업 중 서비스업종의 비중은 57.1%나 된다.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정 업종에 대한 창업 러시로 인해 도소매업과 사업서비스업에서 경쟁이 심해지고 있고, 이들 업종의 1인당 부가가치 생산액은 전국 평균을 밑돌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문제는 포항지역의 이러한 생계형 소자본 창업, 그중에서도 소매업의 경우에는 창업 후 2년 이내에 폐업하는 비율이 32%에 이른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밥벌이라도 해야지 하고 그동안 모았던 퇴직금 등을 쏟아 부어 점포를 열었던 10명중 3명은 1년이 지나 2년차를 넘지 못하고 망한다는 것이다. 포항에서 조기폐업률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영세 유통업계가 범인으로 자주 지목하는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 등과 같은 대형 소매유통점의 존재 때문만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1960~70년대에 빈곤한 바닷가에 불과하였던 포항이 철강업으로 인해 급성장하는 동안 외지에서 유입된 젊은 산업역군들은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의지로 극한의 작업환경을 견디며 지냈다.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음식점, 숙박업소, 유통점포 등을 통해 그저 먹기만, 눈 붙이기만, 필요한 물건을 살수만 있으면 만족했다. 지금의 소비자들이 서비스업종에 요구하고 있는 위생, 디스플레이, 친절 등은 공급자인 해당 업종 종사자나 수요자인 젊은 산업인력 양측 모두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산업역군들과 혼인한 수도권이나 대도시 출신의 새댁들은 그들이 누려왔던 경험들과 너무나 다른 소비시장의 구조에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세월이 바뀌었다. 생활수준도 올라갔고 이제는 당시에 불만을 품었던 새댁들이 포항의 소비시장을 쥐고 흔드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데다 언제든지 전국을 누빌 수 있는 중년주부들로 재무장됐다. 그런데도 과거처럼 판매자의 입장이 단순히 공급만 해주면 감지덕지하던 갑이 아니라 을 또는 병으로 바뀌었음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지금 창업을 생각하는 은퇴예비자들도 원래 포항은 그랬었다며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최근 포항에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만한 인프라가 착착 준비되고 있다. 포항운하도 완공이 돼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고 곧 포항으로 손님들이 쉽게 올 수 있는 포항~울산 고속도로와 포항 KTX직결노선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전망에서 지역내 소규모 유통점은 기회요인이라며 예비창업자들은 가슴이 부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우리가 무시하면 큰일이 날 부분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포항은 더 이상 접근하기 어려운 산간벽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마음 내키지 않으면 굳이 서비스가 좋지 않다고 실랑이할 필요도 없다. 마음에 드는 가게나 음식점, 숙박업소가 없으면 잠시 1~2시간만 내면 대구, 부산, 울산 등 손님을 왕으로 여기는 대도시가 즐비하다. 때문에 소비력을 갖춘 주부들은 굳이 포항 시내를 전전하지 않고 타지로 이동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이른바 `빨대효과`라 할 수 있다.앞으로 더욱 빨대효과가 가속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비스업 관계자들은 소비자가 갑의 위치에 있음을 하루빨리 자각해야만 한다. 특히 은퇴 후 사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들은 더욱 마음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예비창업자들이 이점을 명확하게 인식할수록 창업이후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2014-04-03

협력과 협동의 사회

▲ 유신애 청소년문화연합 포항시지회장한 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기여도를 나타내는 종합 지표는 존재하지 않지만 국제 언론 뉴스에 등장하는 기사 빈도수가 대체 지표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지구상의 200개가 넘는 나라 중에 국제 뉴스 생산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국가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여러 자료에 따르면 세계 톱 5에 들어간다고 알려진다. 이는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경제규모 13위, 무역 규모 11위 보다 앞서는 순위다.종합적으로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공헌도를 나타내주는 지표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북한과 관련된 정치 이슈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가 국제 뉴스 무대에서 그리 불명예스럽거나 손해를 보는 일은 없다.이러한 국제 뉴스 생산에 있어 높은 순위에 가장 기여하는 분야는 정치 및 군사 관련 기사다. 북한의 핵개발, 미사일 발사, 인권, 탈북자 문제, 6자 회담 등 남북 관련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다음으로는 독도 영토 문제, 위안부, 야스쿠니 참배 등 일본관련 기사가 뒤를 잇는다.경제적 뉴스로는 한국 대기업들이 전 세계 무대에서 종횡무진 하니 국제 경제 기자들이 한국을 빼놓고 경제 기사를 안 쓸 수 없을 것이고 문화 기사에서도 아시아를 넘어 국제무대로 뻗어가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영화, 드라마 그리고 K-Pop 관련 기사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스포츠 관련 기사도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를 포함해 양궁, 골프, 야구 등 국제무대에서 우리 선수를 빼고 기사를 쓰기에는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국제 학력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싱가포르와 나란히 겨루는 등 그런대로 국제뉴스에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반면, 국제 뉴스 무대에서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하고 우리의 위상이 가장 낮은 분야는 복지 관련 이슈다. 우리나라의 국가의료보험체계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언급으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는 했으나 다른 대부분의 지표에서 OECD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매우 부끄러운 지표를 가지고 있다. 노인 및 청소년 자살율, 청소년 게임 중독율, 이혼율 등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 또는 OECD 국가 중 최고의 순위에 올라 있고 행복 지수에서는 매우 낮은 순위에 있다. 우리의 복지 관련 예산, 정책, 그리고 입법에 있어서 많은 발전과 개선이 있었으나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다.우리나라가 여러 분야에서 국제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와 배경에 대한 논의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사회가 그만큼 경쟁적인 사회임을 말해주고 있다. 경쟁적 사회를 측정하는 지표가 개발되지는 않았지만 있다면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도 당연히 최고의 순위를 차지할 것이다. 경쟁적인 사회는 한편으로는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를 경쟁력 있는 국가로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그에 따른 대가와 희생으로 수많은 부작용과 문제를 양산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가장 빠른 발전을 한 나라에 속하지만 그만큼 이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가 같이 따라와 다른 여러 부정적인 지표에서도 국제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다른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만의 사회적 현상도 이러한 경쟁적 사회와 이에 따른 급격한 사회적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학교 왕따, 학교 폭력, 청소년 게임중독, 노인 자살 등 한국 만이 겪는 다양한 사회 현상에 대한 연구가 요구된다.우리의 도전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는 경쟁적 사회 구조를 통해 국가 및 사회발전을 이룩했다면 보다 조화로운 발전은 우리 조상들이 소중하게 여기던 전통 가치인 협력과 협동을 강조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가는데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협동으로 탐구하고, 지역사회에서도 다양한 집단들이 갈등보다는 협력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고, 국가적으로도 지역 간의 협력과 통합을 강조하고, 남북한 간에도 협력을 강조한다면 우리의 많은 사회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국제 사회에도 다른 나라들이 더욱 부러워하는 모범적인 국가가 될 것이다.

2014-04-02

작은 학교 큰 교육, 경북 교육의 힘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감사합니다. 산자연학교 교사 이주형입니다”, “전학 문의를 좀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전입학 문의 전화를 받았다. 발신 지역은 대부분이 수도권이다. 학생 수 감소로 소규모 학교들의 통폐합 문제가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지 오래지만, 본교는 반갑고도 고마운 전입학 문의 전화가 매일 끊이지 않는다. 만약 3월 한 달 동안 전입학 의사를 밝힌 학생들만 모두 받아도 본교의 전입학 경쟁률은 꽤나 높을 것이다. 그것도 경북이 아닌 전국 단위 학생들로 말이다.하지만 전입학 상담의 결론을 알기에 마음은 늘 아프다. 수도권에서 경북의 면소재지 학교를 찾는 학부모들의 간절함을 알기에 필자를 비롯한 교사들은 입학 상담에 최선을 다한다. 상담에는 패턴이 있다. 주위 분들의 추천을 통해 학교를 알게 됐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좋은 교육 프로그램들이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꼭 전학을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와 조심스럽고 불안한 목소리로 교육비에 대해 물어 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필자의 목소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할 때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교육비 이야기를 할 때면 모기 소리보다 작아진다.교육비 이야기가 끝나면 어김없이 수화기 너머에서는 큰 한 숨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죄인이 된다. 그리고 전화를 끊기 전에 애원하는 말투로 꼭 다시 물어 오는 말이 있다. “중학교는 의무교육 아닌가요?” 이 맞고도 단호한 물음에 필자는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더 조심스럽게 “의무교육을 하지만 의무교육기관은 아니다”는 교육청의 설명을 대신 전하면서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멀리서 경북 교육의 우수성을 알고 전학 결심을 한 타시도의 교육 수요자들은 과연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지? 아니 경북 교육을 어떻게 생각할지? 필자의 한 숨만 깊어진다.얼마 전 농산어촌 지역의 소규모 학교를 살리기 위한 `전원학교`사업이 불처럼 인 적이 있다. 그 때의 슬로건이 `돌아오는 교육`이었다. 사업에 선정 된 학교들은 인근 지역에서 학생들이 전학을 와 전교생 숫자가 늘었다고 한껏 고무돼 언론에 대서특필 했다. 통폐합 위기에 처한 학교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 덕분으로 위기를 넘긴 건 박수칠 일이다. 하지만 경제성과 지속성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더 깊은 내면을 보면 결코 박수가 나오지 않는다. 다 떠나서 전학을 온다고 해 봤자 같은 지역 교육지원청 소속의 학생이거나, 잘 해봤자 경상북도 교육청 산하 학교의 학생들이다. 단위 학교 측면에서 보면 물론 학생 숫자가 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상북도 교육청에서 보면 제 식구 빼가기밖에 안 된다. 과연 이런 재 살 깎아 먹기를 위해 엄청난 교육 예산을 허비할 필요가 있을까?선거철이다. 교육계든, 지자체든 오랜만에 덕망 있는 분들로부터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안다, 지금의 이 관심이 6월 4일만 지나면 바람과 같이 사라질 것이라는 걸. 사라지는 건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이 무수히 쏟아낸 말들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걸. 그래서 공약은 公約이 아니라 空約인가 보다. 선거가 끝나면 모르쇠가 돼버리는 대한민국 선거판, 참 좋~~다.부질없는 짓인지 알지만 그래도 선거철이니 예비 경북 교육 수장들께 한 번 건의해 본다. 혹 작은 학교, 큰 교육을 통해 경북 교육을 전국에 마케팅 해 보실 생각은 없으신지. 그리고 교육 이민의 길을 경북으로 돌리게 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금요일 오후와 일요일 저녁에 영천 터미널에 가면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가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들은 해외로 가는 학생들이 아니라 서울, 경기, 대전, 부산, 울산, 대구 등지에서 경북 교육 나라로 교육 이민을 온 학생들인데 이들 학생들을 손수 격려해 주실 생각은 없으신지. 나아가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교육을 통해 교육계의 창조 경제를 선도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

2014-04-01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문화(文化)`라는 컨텐츠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필자에겐 `문화`는 이미 일상이 된지도 오래다. 늘 만나는 사람들은 문화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거나 문화를 함께 향유하는 사람들이며, 눈에 보이는 것 대부분이 문화적 사고에서 생산되어진 창작물이며 귀에 들여오는 소리들 역시 문화예술 활동에 의해 창조 되어진 것들이다. 예술적 의미와 고급문화로서의 상품적 가치를 떠나 늘 새롭고 신선한 문화적 충격 속에서 지내다 보니 이제는 문화를 통해 생성되어지는 의미 있는 일상들이 자연스럽게 생활과 삶 속에 녹아드는 것 같다.휴일을 이용해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문화적 체험은 문화에 대한 약간의 투자와 인식전환만 이뤄진다면 일상에서 벗어난 색다른 경험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유명 가수들의 멋진 연기와 노래를 통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뮤지컬을 관람하거나,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화가들이 제작한 멋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전람회는 분명 우리들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해주는 요소들인 것이다.올해부터 대한민국의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이제부터는 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의 문화가 아니라 온 국민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로 확대하자는 중앙정부의 정책이다. `문화융성`은 현 정부의 대선 공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만 선진국 대열로 접어드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갖춰야할 필수 덕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예술을 모든 국민들이 함께 즐기기 위해 정부와 기업들은 일제히 문화에 대한 문턱을 낮추며 다양한 행사들을 마련해 가고 있다. 전국의 영화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모든 문화기관에서는 입장료를 무료 또는 할인해 주고, 야간 개방과 문화 참여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들이 손쉽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행사들을 실시해 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각 지자체 그리고 문화단체와 협업을 통해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으며, 보다 많은 국민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돌이켜 보면 우리 역사 속에서 문화를 즐기며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것 같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속에서 우리의 고유문화는 모두 말살되다시피 했고, 한국전쟁 이후 전 국민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1950년대를 지나 경제개발중심의 국가 정책이 지배적이었던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는 동안 문화는 늘 경제성장이라는 그늘에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이 이뤄진 1980년대에도 이러한 사정은 여전했으며, 문화는 여전히 경제의 뒷전에 밀려 있었고, 이는 정치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1989년에는 기존의 문화공보부로부터 독립하여 문화 관련 정부부처로 문화부가 신설됐고, 1993년 문화체육부와 1998년 문화관광부를 거쳐 2008년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로 재편됐다. 그리고 2000년도에 처음으로 문화에 대한 예산이 정부 전체예산의 1%를 넘어선 이후 현재는 1.5%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한 시대의 문화는 동시대 사람들의 삶의 총합이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즐기고 향유하지 않는다면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있는 K-POP과 한국드라마의 다양한 컨텐츠는 과연 그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미는 든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집 주변의 문화시설에서 문화를 제대로 즐겨보는 여유를 만들어 보자.

2014-03-26

작은 학교 큰 교육, 내 꿈

▲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이번 주 반딧불 도서관 주제는 `나의 롤 모델 찾기`다. 태풍은 바다를 뒤집음으로써 바다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한다. 산자연학교 학생들은 매주 목요일 밤마다 독서 태풍이 돼 비록 작고 적은 도서관이지만 온 힘을 다해 서가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도서관을 건강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먼지 가득한 다른 학교 도서관들과는 달리 산자연학교 도서관은 먼지 앉을 새가 없다. 혹 책을 전시용으로 생각해 먼지의 밥이 되게 하는 독자분이 있다면, 혹 부피만 차지하고 있는 책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독자분이 있다면, 아니면 도서관이 무용지물이 된 학교가 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산자연학교로 전화하시라. 용기 있는 전화 한 통이 책도, 도서관도, 아이들도 모두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밖은 또 비다. 꽤 궂은비다. 우박 같기도 하고, 얼다만 눈 같기도 한 정체불명의 것들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마치 곧 있을 꽃 잔치를 위해 세상 모든 불공평을 깨부수기라도 하듯 세차게 내린다. 하지만 그 요란함도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잠자고 있던 위인들이 모처럼 세상 밖으로 나와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쁜 목요일 밤. 보일러 물길이 바쁘게 봄 길을 내는 도서관 바닥에 누워 책장을 넘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대로가 사진이다.책을 읽다말고 아이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그 아이들을 지켜보던 필자의 입가에 봄 미소가 가득 피었다. 아이들의 토론이 시작 됐다. 토론 주제는 과학 발명품! 모두들 아이디어를 내기에 바쁘다. 도서관이 아니라 마치 연구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학생이 아이디어를 내면, 다른 학생들은 제시된 아이디어에 대해 진지하게 평을 한다. 그러면 아이디어를 낸 학생은 반론을 하고, 그것에 대해 또 다른 반론이 이뤄졌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정치판과는 차원이 다른 토론이다.요즘 학교들은 디베이트 수업이다 뭐다 해서 형식적인 수업을 하느라 바쁘지만, 이 곳에는 형식적인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누가 시켜서 하는 토론이 아닌 학생들 스스로 하는 토론은 그 자체가 흥(興)이다. “입안·입안교차질의·반박·반박교차질의·요약·전체교차질의·마지막 초점”과 같은 어렵고도 형식적인 토론 절차를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수준 높은 토론을 잘만 한다. 아이들의 열띤 토론에 덩달아 바빠진 건 필자다.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모아지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자랑하기 위해 필자 앞으로 달려왔다. 몇 차례에 걸쳐 아이들은 파도가 되어 우르르 몰려왔다가 우르르 물러갔다.아이들이 물러난 반대쪽을 보니 창원에서 전학 온 선호를 비롯한 한 그룹의 아이들이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아이들을 방해하기 싫어 조용히 가 보았다. 아이들은 `내 인생의 롤 모델을 찾고, 그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에 대해 써 보자는 오늘의 주제를 수행하고 있었다. 선호 앞에 펼쳐진 책은 `빌게이츠`. 필자가 뒤에 있는 지도 모르고 열심히 쓰고 있던 선호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서가에 책을 꽂고 도서관 구석 책상으로 간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이라 아직 완전한 완전체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필자는 믿는다,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연의 품 안에서 우리 아이들은 더 넒은 자연이 되리라는 것을.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부모님께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제발 학부모가 아닌 부모가 되자고. 그리고 조급증을 내지 말자고. 글을 쓰고 있는 필자에게 필자의 꿈은 무엇인지 아이들이 물었다.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선생님 꿈은 너희들의 꿈이 모두 이루어지는 거란다” 아이들은 더 힘을 내어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필자의 꿈은 하나 더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똑 같이 지원을 받으며 더 큰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필자는 또 믿는다. 이 꿈 또한 조속한 시일 내에 이뤄지리라는 것을. 혹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2014-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