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친환경 봉사활동 시간에는 `내나무` 심기를 합니다”
목요일 오후 시간은 학교 앞 계천과 마을을 꼼꼼히 청소하는 `친환경 봉사활동` 시간인데, `내나무`를 심는다는 말에 학생들은 궁금함이 가득한 눈으로 필자를 보았다. 그 궁금함 너머에는 `다행이다`는 안도의 모습도 보였다.
학교에서는 환경 정화 활동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른 시도 출신 학생들에게 마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지역에 대한 주인의식을 높여 주기 위해 매주 목요일마다 친환경 봉사활동 시간을 특성화 교과로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목요일마다 역한 냄새를 참으며 오랫동안 방치된 폐비닐을 비롯한 농자재들과 마을의 생활 쓰레기를 치운다. 힘듦을 이겨내고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여간 대견하지가 않다. 비록 지역 관공서로부터는 홀대를 받고 있지만 필자는 안다. 친환경 봉사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그린 리더(Green Leader)로 성장 할 것이라는 걸.
`친환경 봉사활동` 대신 `내나무`를 심는다는 말에 안도해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충분히 이해됐다. 하지만 학교의 모든 활동이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학생들이라 그 안도감은 짧은 봄꽃축제 마냥 금방 끝이 났다. 그리고 학생들은 `또 뭐지`라는 불안한 호기심으로 필자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와 학생들 사이엔 무언의 약속이 있다. 수업이든, 활동이든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꼭 그것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과정과 결과를 볼 때 결코 아까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필자와 학생들은 잘 안다. 최근 들어 여러 언론을 통해 교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아마도 안타까운 눈으로 많이들 보았을 것이다. 수업의 주인은 학생들이라 하지만, 주인들은 정작 수업, 아니 정확하게 말해 학교 수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수업을 들어야 할 이유를, 또 수업 내용이 자신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맞고도 맞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교사들은 또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진도를 맞춰야 한다. 시간이 없다. ….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다 결국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개념이 너무 없어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성적 비관 자살, 학교폭력, 개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 여러 가지 학교 문제를 보면 이 말도 나름의 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정말 묻고 싶은 건 우리 학생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랬냐는 것이다.
필자는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학생들의 학교 부적응 문제가 전적으로 학생들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학생들을 뭐라고 하기 전에 일류병을 만들어 놓은 것이 누구인지, 학생들을 점수의 노예로 만든 것이 누구인지, 어린 아이들 손에 게임기를 쥐어준 것이 누구인지, 경쟁적으로 최신 스마트폰을 사 준 것이 누구인지 ….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 될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시청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놀라고, 좀처럼 고쳐질 것 같지 않은 문제 행동이 고쳐지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그런데 필자의 눈에는 과잉 행동을 하는 아이들보다 프로그램 내내 눈물짓는 부모들이 보인 것은 왜 일까. 우리는 그 눈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의미 교육! 필자의 교육관을 바꾼 단어다. 그리고 지금의 교육 문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필자가 제시하고 싶은 해결책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충분히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내나무는 어떤 종류의 나무일까? 침엽수? 활엽수? …. 내나무는 바로 여러분의 꿈과 희망이 자라는 나무예요. 오늘 여러분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심을 거예요” 학생들의 눈은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