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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4월

등록일 2014-04-22 02:01 게재일 2014-04-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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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

참 아프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정말 아프고, 아프고, 아프다. 불 꺼진 선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차가운 바다 속은 또 얼마나 춥고 두려웠을지, 보고 싶은 이름들을 얼마나 목 놓아 불렀을지, 대답 없는 이들을 얼마나 원망했을지, 그리고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을지…. 아, 정말 아프다.

그토록 듣고 싶었을 어머니, 아버지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왜 대답을 안 하는지, 혹 늦은 것에 화가 나서 대답을 안 하는 것이라면, 움직이지 말고 제 자리에 있으라는 그 놈의 빌어먹을 안내방송을 지키느라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라면, 부모님의 간절함을 봐서라도, 그리고 잘못된 어른들의 이기적인 안내방송 따위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제발, 제발, 부모님의 부름에 대답하길, 아니 해 주길…. 아프다, 정말 아프다.

왜 우리는 큰 일이 있고서야 아는지, 왜 우리는 꼭 늦은 후회만 하는지, 왜 세상은 자기 말하기에만 바쁜지, 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하는지,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라고 하는 건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내 방송은 왜 안 하는 건지, 그 방송을 해 줄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아프다는 말조차 미안하다.

그 옛날, 예언이라도 한 것일까. 4월은 정말 잔인하다. 아무리 격동의 4월이었다지만 오늘의 4월은 4·19를 울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 많은 희생들, 진정한 대한민국의 봄을 위해, 그리고 진정한 학교의 봄을 위해 순국한 그 많은 넋들이 숨죽여 흐느끼는 2014년 4월. 울 자격조차 없는 대한민국은 시끄럽기만 하다. 혹 그 시끄러움에 우리 아이들의 소리가 안 들리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허둥거리는 모습을 바다 속에서 아이들이 보고 있다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지.

아이들이 아직 바다 속에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싸우고만 있을지, 도대체 숫자 놀음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냄비 언론들은 언제까지 저렇게 달그락거릴지, 전문가들이 저렇게 많은데 도대체 그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저렇게 떠들어 되는지, 왜 이제 와서 떠버리가 돼 부모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지, 그냥 좀 조용해주면 안 되는지. 하던 대로 그냥 입 좀 닫고 있으면 안 되는지.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냄비 언론들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국민들의 집중력은 최악이 되고, 건망증에 걸린 언론 때문에 신(神)들도 판단력이 흐려지시지나 않았는지 걱정이고 걱정이다.

부활절도 있고, 부처님 오신 날도 있다지만, 우리 아이들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아직 그 어디에도 없는 잔인한 4월. 부활의 주체와 부처님은 다 어디에 계시는지, 경전과 말씀 속에만 계시지 말고 이 나라의 희망인 저 아이들을 위해 이제 모습을 나타내시면 안 되는지.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시기보다 지금 당장 당신들을 찾는 우리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시면 안 되는지. 다음 생에서도 할 일이 많은 아이들이지만, 현생(現生)에서 더 할 일이 많은 우리 아이들. 제발 그들의 간절함을 들어 주시면 안 되는지.

침몰한 건 분명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이 나라다. 이 나라 교육이다. 이 나라 언론이다. 이 나라의 희망등인 우리 아이들은 분명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면서 침몰하는 이 나라를 떠받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더 큰 희망이 되어 우리에게로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숫자놀음으로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다. 독화살을 맞았다면 그것을 빼는 것이 먼저이다. 독화살이 어디에서 날라 왔는지, 독의 성분이 무엇인지는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분명 희망의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

더 이상 기본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기본이 없었기에 발생한 지금의 이 큰 일을 이겨내는 방법은 각 자의 자리에서 기본에 충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교육의 기본은 무엇인지? 우리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있는지? 학생들에게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고 계속 가르쳐야 할지? 정말 아프고, 아프다. “얘들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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