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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반전을 위하여

등록일 2014-05-13 02:01 게재일 2014-05-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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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

답답하고 먹먹하기만 한 시간들이다. 반전을 기대했지만 부활절이 지나도,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도 반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직 이생에서 할 일이 더 많은 아이들인데 종교에서는 내생의 더 나은 삶을 빌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도대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기에 이다지도 큰 아픔을 내리시는지? 아직 종교를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정말 신이 있나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교라는 것이 너무도 이기적이고, 편의주의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그래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종교적 희망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어떤 종교도 이번 참사에서 현실적 반전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간절함이, 부모님들의 간절함이, 전 국민의 간절함이 덜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쉽고 아쉬울 따름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 따위는 믿지 않지만, 반전은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있음을 우리 아이들이 꼭 보여주리라 것을 필자는 믿고 또 믿는다.

전 국민이 희망의 노란 리본을 달고, 모든 관공서들이 추모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 중에서 필자는 “얘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현수막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그 시간이 오래일수록 미안하다는 말은 듣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위한 이기적인 말임을 알게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줄 이들은 없는데, `미안하다`고 하면 다 끝나는지, 미안한 짓을 왜 했는지. 세상 혼란의 주범이 `미안하다`는 말 때문이고 하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우리 모두가 미안한 일을 안 한다면 분명 이번과 같은 참사는 두 번 다시는 없을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필자는 아이들이게 또 미안한 짓을 하고 말았다. 겉으로는 성적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필자는 평가를 위한 중간고사 문제를 냈고,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무서운 말로 아이들을 무의미한 교과서 안에 가두었다. 그리고 “책 속이 안전 하니 그곳에서 꼼짝하지 말고 있으라”고 매일 안내 방송을 했다. 애들이 숨 막혀 하는지를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틈틈이 아이들에게 시험 매뉴얼을 주입시켰다. “시험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한 눈 팔아서는 안 된다. 고개를 들면 안 된다.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5지선다의 매뉴얼을 누가 잘 외웠는지를 평가하는 감독관이 되어 아이들의 자유권을 빼앗았다.

OMR 카드 안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는 필자는 죄인 중에 죄인이다. 하지만 반값 교사도 안 되는 필자에겐 침몰하는 대한민국 교육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해낼 힘이 없다. 교육청의 그 어떤 지원도 못 받는, 심지어 교과서도 자신들이 사야 하는 의무교육에서 철저히 소외된 아이들에게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더 강하게 아이들에게 시험 매뉴얼을 주입시키고 있으니, 이 죄를 다 어찌 할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8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이며, 장소는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다. 필자 옆에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학생들이 곤한 코걸이를 하며 잠을 자고 있다. 평일에 학교가 아닌 지리산이라는 말에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겠다. 그리고 교육청 관계자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수련활동을 삼가라!”는 지시 사항을 어겼다고 펄쩍 뛸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해 두지만 매뉴얼대로 했으니 아무런 걱정을 안 하셔도 된다.

의무교육을 하면서도 의무교육 기관이 아닌 필자의 학교에는 `가족 친화의 날`, `지역사회 탐방`, `해외이동수업` 등 교육청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특성화 교과목들이 있다.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 필자와 학생들은 세월호의 마지막 반전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지리산 정상에서 수업을 하였다. 수업 내내 학생들은 필자에게 학생들의 힘과 가능성과 희망을 가르쳐주었다. 학생들에게 지리산은 지리산의 기상을 상으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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