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자녀와의 대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등록일 2014-05-12 02:01 게재일 2014-05-12 18면
스크랩버튼
이수원대구대 교수·유아교육과

최근 한 연구소에서 발표한 `2014년 어린이 생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30분 미만인 초등학생은 응답자의 52.5% 였으며, 대화를 전혀 하지 않는 초등학생은 9.2% 였다. 대화 통로를 잃은 아이들의 경우, 혼자서 감당치 못할 일을 겪게 될 때 잘못된 판단이나 극단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왕따나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을 편지에 남겨놓은 채 자살한 학생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편지 속의 이야기를 그 학생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대화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대화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귀 기울임`이다. 대화(dialogue)는 그리스어 `dialogos`에서 유래했는데 `dialogos`는 dia(~간에, 사이로)와 logos(말)가 결합된 용어다. 즉, 대화란 두 사람간에 오고 가는 말을 의미한다. 하지만 둘 이상의 대화 참여자는 대화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늘어놓는다면 그건 대화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말들이 사람간에 통하려면 귀 기울임이 필수다. “숙제는 했니?”, “성적이 이게 뭐야.”, “휴대폰 좀 그만 봐라” 등 부모가 하고 싶은 말을 자녀에게 쏟아낸다고 해서 그걸 대화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잔소리뿐인 대화에는 부모의 귀 기울임이 없다.

미국 교육학자 데보라 메이어(Deborah Meier)는 “가르치는 것은 듣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말하는 것이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말을 하고, 배우기 위해 듣는다고 여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듣는 일에서 시작한다. 바람직한 학습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아이의 관심을 이해하려면 귀 기울임이 전제돼야 한다.

비단 학습을 위한 교실 내 대화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중 부모-자녀간의 대화에서도 귀 기울임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아이에게 도덕적인 교훈을 주거나 정보를 주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하려고 한다. 최근 세월호 침몰사고로 드러난 여러 문제점들을 보며 과연 어른이라 해서 옳고 그름을 아이들에게 말할 자격이 있는가 생각해보았다. 선장과 항해사가 탈출하기 바쁜 와중에 아이들은 자신이 움직이면 배가 더 기울까봐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아이들은 옆에 있는 친구와 탑승자 전체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때문에 부모-자녀 관계를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간의 관계로 보기보다는 대등하게 봐야 한다. 인격적으로 대등하며 존중하는 관계의 표현은 바로 귀 기울임이다.

아이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고민하거나 전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은 무엇인가?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 게임, 놀이 등 무엇인가? 오늘 하루는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사회 이슈에 대해 아이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공부나 성적 등 나의 관심사만 아이에게 너무 강요하지는 않았는가? 아이에게 대화 주도권을 넘겨주고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이에게 가르치고 훈계하려고 하기 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잠잠히 들음으로써 소통의 기운을 회복하자.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