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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창업을 꿈꾸기 전에

등록일 2014-04-03 02:01 게재일 2014-04-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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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과거 1970~80년대에 전국 각지로부터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업역군으로서 `산업의 쌀`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하느라 포항에서 청춘을 보낸 당시의 청년들은 이제 어느덧 중·장년에 이르러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시내의 식당이나 커피숍 등에서 머리가 희끗한 사람들이 과거 어려웠던 포항의 시절을 회고하다가는 어느새 화제가 바뀌어 은퇴한 이후의 호구지책에 대해 조그만 가게나 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모습들을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실제 포항의 경우 2012년 신설법인 통계 등을 살펴보면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소자본 창업기업 중 서비스업종의 비중은 57.1%나 된다.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정 업종에 대한 창업 러시로 인해 도소매업과 사업서비스업에서 경쟁이 심해지고 있고, 이들 업종의 1인당 부가가치 생산액은 전국 평균을 밑돌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문제는 포항지역의 이러한 생계형 소자본 창업, 그중에서도 소매업의 경우에는 창업 후 2년 이내에 폐업하는 비율이 32%에 이른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밥벌이라도 해야지 하고 그동안 모았던 퇴직금 등을 쏟아 부어 점포를 열었던 10명중 3명은 1년이 지나 2년차를 넘지 못하고 망한다는 것이다. 포항에서 조기폐업률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영세 유통업계가 범인으로 자주 지목하는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 등과 같은 대형 소매유통점의 존재 때문만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1960~70년대에 빈곤한 바닷가에 불과하였던 포항이 철강업으로 인해 급성장하는 동안 외지에서 유입된 젊은 산업역군들은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의지로 극한의 작업환경을 견디며 지냈다.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음식점, 숙박업소, 유통점포 등을 통해 그저 먹기만, 눈 붙이기만, 필요한 물건을 살수만 있으면 만족했다. 지금의 소비자들이 서비스업종에 요구하고 있는 위생, 디스플레이, 친절 등은 공급자인 해당 업종 종사자나 수요자인 젊은 산업인력 양측 모두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산업역군들과 혼인한 수도권이나 대도시 출신의 새댁들은 그들이 누려왔던 경험들과 너무나 다른 소비시장의 구조에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었다. 생활수준도 올라갔고 이제는 당시에 불만을 품었던 새댁들이 포항의 소비시장을 쥐고 흔드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데다 언제든지 전국을 누빌 수 있는 중년주부들로 재무장됐다. 그런데도 과거처럼 판매자의 입장이 단순히 공급만 해주면 감지덕지하던 갑이 아니라 을 또는 병으로 바뀌었음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지금 창업을 생각하는 은퇴예비자들도 원래 포항은 그랬었다며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최근 포항에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만한 인프라가 착착 준비되고 있다. 포항운하도 완공이 돼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고 곧 포항으로 손님들이 쉽게 올 수 있는 포항~울산 고속도로와 포항 KTX직결노선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전망에서 지역내 소규모 유통점은 기회요인이라며 예비창업자들은 가슴이 부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무시하면 큰일이 날 부분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포항은 더 이상 접근하기 어려운 산간벽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마음 내키지 않으면 굳이 서비스가 좋지 않다고 실랑이할 필요도 없다. 마음에 드는 가게나 음식점, 숙박업소가 없으면 잠시 1~2시간만 내면 대구, 부산, 울산 등 손님을 왕으로 여기는 대도시가 즐비하다. 때문에 소비력을 갖춘 주부들은 굳이 포항 시내를 전전하지 않고 타지로 이동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이른바 `빨대효과`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더욱 빨대효과가 가속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비스업 관계자들은 소비자가 갑의 위치에 있음을 하루빨리 자각해야만 한다. 특히 은퇴 후 사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들은 더욱 마음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예비창업자들이 이점을 명확하게 인식할수록 창업이후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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