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영화를 읽는 방법 중 공통된 특징은 먼저 눈으로 그림을 보는 것이다. 단순히 시각 활동을 통해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작가나 감독의 숨겨진 의도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낼 때 감상의 재미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미술이 평면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여러 가지 함축된 의미를 깊이 있게 담아낸다면 이러한 미술을 시·공간 속에서 자유로운 표현과 해석으로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화시켜 서사적 의미를 담는 영화는 복합예술로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 느끼게 해준다. 10여년 전 영국에서 제작되어진 한편의 영화 속에서 명화의 아름다운 제작과정과 그림보다 더욱 아름다운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그림의 또 다른 매력에 빠져 본다.
영국 출신의 영화감독인 피터 웨버가 2004년 제작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등장하는 인물화는 화가 이름과 그림 제목은 몰라도 미술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디에선가 한번쯤은 본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작품이 주인공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처럼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그림 역시 영화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명화인 셈이다.
콜린 퍼스가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역을 맡았으며, 영화 속 주인공이며 그림 속 모델인 그리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이 영화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을 하는 여류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을 원류로 제작되어진 작품으로 명화가 주는 감동을 아름다운 영화로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1632~1675)의 생애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탄생 배경을 보여주는 이 영화 속에서 당시 서양미술사에 있어 가장 호황을 누렸던 네덜란드의 사회적 분위기와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참고자료로 보여 지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하면서 부터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 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그리고 회화의 형태 또한 변모하여 플랑드르 북부지역의 회화를 `네덜란드 회화`라는 독자적인 이름으로 규정짓기 시작한 때도 이때 부터였다. 수요가 급증하자 주문 제작이 아닌 미리 제작해 놓은 작품을 파는 마켓이 성립되고, 램브란트 같은 작가는 자신의 아뜰리에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예배대상이 아닌 종교적 교양으로서의 종교화가 다수 제작돼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램브란트는 프로테스탄트 이외에 가톨릭뿐만 아니라 유대인 고객에게 작품을 팔기 시작했다. 성직자 또는 유복한 시민층에서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시민층들이 생겨나면서 그림들은 성당이 아닌 개인의 집에 걸리기 시작 한 게 17세기부터로 보아도 무관할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수줍은 듯 고개를 돌려 왼쪽 어깨너머로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얼굴에서 환한 빛이 가득 쏟아진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화가 중 한사람이었던 램브란트의 빛이 이성적이고 인생을 의미를 파헤칠 것처럼 남성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면, 베르메르의 작품은 그것을 감성적이고 사랑과 행복을 담은 햇살처럼 여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파란색의 터번을 두르고 노랑색의 수건을 머리에 묶은 소녀는 눈처럼 하얀 셔츠 위에 향토색의 겉옷을 입고 있는 모습에서 베르메르가 선호하는 색들을 하나 둘씩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림 속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눈에서 입술로 이어지고 이내 진주목걸이로 장식한 귓가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촉촉한 눈망울과 살짝 벌린 붉은 입술에서는 사랑을 갈망하는 어린소녀의 사랑과 애절함이 풍겨져 나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