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잘 지내시죠! 지난 일 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반갑고도 마음 아픈 문자 메시지가 왔다. 작년에 가르쳤던 전직 학교 민정(가명)이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다. 비록 힘들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아이의 힘들다는 외침이 너무도 크게 들려 마음이 먹먹해졌다. “힘들지? 힘내!”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이 왔다. “옙! 열심히 하겠습니다. 쌤도 힘내세요” 마치 새로운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 때문에 두고 온 아이들을 잠시 잊고 있었던 필자의 무심함을 나무라는 듯 했다.
벌써 4월 중순이다. 봄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겨울을 이겨낸 모든 이들이 꽃들의 응원을 받으며 다시 여름을 준비하는 봄.
필자는 봄의 웅성거림이 너무도 좋다. 그런데 세상엔 100%가 없다는 진리처럼 많은 이들이 화전놀이에 초대 받아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요즘, 학교는 다시 겨울로 가고 있다. 그것도 혹독한 겨울로. 아마 계절이 빛의 속도로 역주행하는 곳은 학교뿐일 것이다. 그 속도에 학생들은 심한 학교 멀미를 하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학교의 봄은 언제 올지?
민정이가 필자에게 온 것도 지난해 1학기 중간고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4월이었다.
“어디 목소리 한 번 보겠어. 저쪽까지 들리도록 큰소리로 말 해 봐” 수줍음 많은 여학생 한 명이 교무실 중앙에 서 있었다. “큰 소리로 해야 용서 해 줄 거야.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말해봐”, “앞으로 지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저기 끝에 있는 선생님들은 안 들리잖아. 다시!” “앞으로 지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어허, 그 목소리로 들리겠어? 선생님들 방금 이 학생이 뭐라고 했는지 들었습니까?” 필자는 너무도 똑똑히 들었고, 그래서 잘 들린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필자 뒤쪽에서 누군가가 먼저 대답을 했다. “안 들립니다”, “거 봐, 안 들린다잖아. 더 큰 소리로 안 해” 분명 교무실에는 난청이 있으신 선생님이 없는데, 안 들린다고 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보았다. 난청의 주인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필자 뒤에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정보 검색에 바쁜 그 학생의 담임이었다.
한 사람의 동조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이 선생님, 방금 이 학생이 한 말 들었습니까?”라고 필자에게도 물음이 왔다. 그 물음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난청이 없음을 확실히 알리기 위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예, 잘 들립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교무실이 조용해졌다. 들리는 것을 들린다고 했을 뿐인데, 잠시의 침묵을 깨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거 이야기 해봐!” 순간 필자는 필자가 무엇을 잘 못 했나하고 생각해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필자는 정말 큰 잘못을 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정말 들어야 할 것을 못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무실 중앙에 홀로 서 있는 키 작은 여학생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듣기 위해 더 크게 귀를 열었다.
“화장을 하지 않겠습니다” 필자는 미리 필자의 귀 상태를 알렸다. “잘 들립니다” 더 이상 필자에겐 질문이 없었지만, 아이에게 묻고 있는 어느 쌤의 짜증은 분명 더해만 갔다. “또!”, “선생님한테 대들지 않겠습니다”, “더 크게”, “쌤한테 대들지 않겠습니다” 아이는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한 동안 조용하던 그 아이의 담임교사가 아이보다 더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 들린다. 다시 말해봐라” 아이는 더 크게 말했다. “이제부터 쌤한테 대들지 않겠습니다”, “다시 더 크게 말해 봐라” 아이는 더 크게 또박 또박 말했다. “이제부터 쌤한테 대들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그 선생님은, 아니 그 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필자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민정이는 자아비판을 하면서 더 씩씩해졌다. 그리고 교무실에 “당신들이 진정으로 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져 줬다.
혹 여러분은 우리 학생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들의 소리가 들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