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통신문 속 글자들이 울긋불긋 가을물 드는 요즘이다. 산자연중학교 학부모들의 눈길이 스치는 글자마다 맑은 풀벌레 소리 향기롭다. 풀벌레들은 집배원이다. 소식 전하기를 마친 풀벌레들이 만든 깊은 가을 밤 속으로 한가위 노란 달이 풍덩 빠졌다. 달은 밤새 자신의 몸을 풀어 더 풍성한 아침을 해산한다. 가을 달이 품은 산, 들, 바다 모두 가을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가을 산과 들, 바다를 찾는지 모른다.
산과 바다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을을 만난다. 가을과 책은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 선조들의 통찰력이 놀랍다. 가을에 살찌는 건 유독 말(馬)뿐만은 아닐 것이다. 가을과 책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람들도 마음과 삶이 풍성해질 것이다. 비만 걱정 없는 이 풍성함을 독자 여러분께 선물하고 싶다.
이와 더불어 마음을 더 값지게 살찌우는 문학 강연을 소개한다. 1999년부터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6년 동안 지역 문학 융성을 위해 개교하는 `푸른 시인학교`다. 푸른 시인학교는 포항 지역에서 시 창작 활동을 하는 푸른시 동인(회장 김말화)들이 문학, 특히 시 강연에 목말라 하는 포항 및 인근 지역민들을 위해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유명 시인(2013년 이병률 시인, 2012년 이정록 시인, 2011년 나희덕 시인 등)을 초청하여 그들의 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초청 시인들로부터 시 창작에 대해 지도 받는 시인학교다.
올해 푸른 시인 학교 초청 선생님은 전동균 시인이며, 오는 20일 토요일 늦은 7시 두호동사무소 회의실에서 개교한다. 해가 갈수록 지자체들의 문학에 대한 지원이 각박해지고 있는 요즘 사비를 털어서라도 지방 문학의 맥을 지키고, 시민들의 문화 감수성을 살찌워 조금이라도 사람 사는 맛 나는 지역을 만들고자 하는 푸른시 동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수도권과 지방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양한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가 없는가이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 역시 문화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영화관, 대형 쇼핑점 등 웬만한 소비 인프라들이 지역에도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지역에 산다는 게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역시 부족한 게 있다. 그건 바로 공연·강연 문화다. 연극, 뮤지컬, 문학 강연 등은 아직 지역에서는 별나라 이야기다. 소도시에서 연극을 보고 싶다는 것은 정말 꿈과 같은 이야기다. 그래도 연극은 대도시에 가면 볼 수나 있지 문학이 죽어가는 사이버 사회에서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문학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자리는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해마다 열리는 푸른 시인학교가 놀랍다.
문화의 중요성을 인지한 현 정부에서 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하여 문화 부흥 융성을 위해 영화관, 미술관, 박물관, 경기장 등에서 여러 가지 할인 행사를 하고 있지만 사실 이 제도를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은 항상 의욕적이다. 그 의욕이 끝날 때까지 반만 남아 있어도 그 제도는 성공한다. 하지만 지금껏 정부 주도로 시행된 많은 제도 중 정권이 바뀌어도 명을 유지하는 제도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얼마는커녕 거의 전무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의욕으로 넘치니까. 그래도 `문화가 있는 날`만은 잘 정착 되어 이 나라가 단지 문화 소비 강국이 아닌 문화 창조 선진국이 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문화 강대국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정부와는 달리 해가 갈수록 지자체의 문화행사에 대한 지원은 줄고 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해마다 무료로 열리는 푸른 시인 학교가 삭막해져가는 이 사회의 오아시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을밤 푸른 꿈을 꿀 수 있는 가을 소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푸른 시인학교 2014년 9월20일 토요일 늦은 7시 두호동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