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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창

등록일 2014-08-18 02:01 게재일 2014-08-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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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식 시인

감꽃이 떨어지고 채송화가 피었다 졌다. 멧새 떼가 날아오르고 도둑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지나가고 엿장수아저씨가 지나가고 방울장수아주머니가 지나가고 여우비가 지나가고 함박눈이 지나가고. 지나간 것들은 모두 그리움이 됐다.

초가집 방 안에서 밖을 내다보기 위해 출입문에 매단 창이 뙤창이다. 앉은 사람 눈높이에 맞춰진 그것은 크기가 커봤자 가로세로 십오 센티미터를 넘지 않았다. 어떨 땐 금이 가서 반창고로 길게 늘여 붙이기도 했다. 낮이면 뙤창은 사진기가 되었다. 카메라 렌즈를 밀었다 당겼다하며 저 혼자 쉴 새 없이 풍경들을 찍어댔다. 흑백으로 인화된 바람과 구름과 햇살이 차곡차곡 내 안의 사진관에 담겼다.

생각해보면 모든 바깥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지금의 큰 창들은 어딘가 작위적이고 그윽한 정서가 없다. 하지만 초가집 방문에 있는 듯 없는 듯 붙어있는 뙤창은 그야말로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다 할 것이다. 어쩌면 그건 초가집의 눈(目)이거나 귀(耳)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주 뙤창이 귓밥을 오므려 가만히 문밖의 인기척을 듣거나 손을 이마에 얹고 골목길을 살피는 걸 본적이 있다.

뙤창을 통해 밖을 살피려면 우선 출입문에 바짝 얼굴을 갖다 붙여야 했다. 창과 내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조우하게 되는 순간이다. 처음엔 유리의 차가움 때문에 섬뜩해지지만 어느새 체온을 나누게 된 양자는 한 몸이 된다. 그 곳으로 단절되어 있던 바깥을 불러와 방안의 나를 고요하게 응시하는 것이다. 그럴 때 뙤창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이곳과 저곳의 구분을, 타자와 나의 간격을 무애(無碍)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돼준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마다 펜션이며 찻집 등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크고 화려한 건물들은 다투어 커다란 창을 내어 자연을 독점한다. 대상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물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고만 든다. 또한 상업적으로 이용한 후 가치가 떨어지면 미련 없이 폐기처분하고 만다. 그러나 뙤창은 자연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에 따라 왜곡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의 상태를 전달한다. 획일적으로 정의하지 않으며 원래의 자리에 두고 그윽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사물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개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아침이면 뙤창에 성에꽃이 가득 피어났다. 그건 겨울이 보낸 그림엽서였다. 눈의 왕국에서 보낸 순백의 상형문자들은 내가 미처 해독하기도 전에 암호처럼 사라져버렸다. 밤이면 천문도(天文圖)가 된 창으로 별들이 내려와 박혔다. `저 숱한 별들 가운데 가장 갸날프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곱게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어린 양치기가 되어 세상의 변방으로 흘러가곤 했다. 나폴리, 시드니, 리오데자네이루. 호주머니에 넣고 가슴 콩닥거리던 푸른 차표는 이제 없다.

집이라면 초가집이 되고 싶다. 내 가슴 한 쪽 한지 곱게 바른 격자무늬 방 한켠 작은 액자 하날 내걸고 싶다. 스크린 같은 그 위로 강물이 흘러가고 십자성이 흘러가고 물푸레나무와 패랭이꽃과 뱃고동소리와 돌고래 떼와 그리고 한 소녀의 얼굴이. 그리운 것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나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도란도란 여생을 늙어가고 싶은 것이다.

*알퐁스 도테의 `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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