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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부터의 변화를!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이젠 새로운 달이 되었다고 해서 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날씨 변화를 제외한다면 굳이 달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사회는 변화가 없다. 국민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을 다 아는데 자기들만 아니라고 우기며, 또 자기만이 최고라고 설치는 정치인들,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는 사건 사고들! 자연은 시간이 되면 변화를 통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 사람들은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마치 변화를 포기한 사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기준을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세월호 참사 전후 우리 사회를 비교해보면 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많은 희생자들 앞에서 우리는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변화 선언문을 낭독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때뿐이었다. 물론 변한 것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방향은 부정(否定)으로 흘렀다.부정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정 앞에 “맹목(盲目)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그건 분명 문제다. 왜 문제인지는 “주관이나 원칙이 없이 덮어놓고 행동하는 것”이란 맹목의 뜻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집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판을 전제로 한 부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맹목적인 부정은 비판(批判)이 아니라 비난(非難)에 불과하다. 단순 부정을 위한 부정은 결코 긍정이 될 수 없다.우리 국민들은 매일 네거티브( negative 부정) 쇼를 언론을 통해 본다. 딴지 국회, 말꼬리 잡기 국회, 시비 국회! 부정에 중독된 국회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요즘은 초등학교 학생들마저 정부에서 하는 일은 무조건 욕부터 하고 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말한다. “뉴스에서 봤어요.” 만약 필자에게 법 제정의 권한이 주어진다면 정말 꼭 하나 만들고 싶은 방송법이 있다. 일명 `정치 관련 소식 방송 금지법`.벌써부터 목 좋은 길마다 자리 전쟁이 한창이다. 그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던 사람들이 가슴에 띠를 두르고 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또 이번에는 꼭 바꿔야 한다고 앵무새처럼 말한다. 그리고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그들에겐 여의도로 갈 수만 있다면 추위나 자존심, 윤리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가고만 있어 (중략) 누가 누굴 욕하는 거야 그러는 넌 얼마나 깨끗해 / 너나 할 것 없이 세상 속에 속물들이야 / 바꿔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노랫말처럼 바꿀 수만 있다면 정말 모든 걸 바꾸고 싶은 요즘이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천지개벽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혼란은 절대 해결될 수 없다고. 정치, 경제, 교육, 가족 등 사회 모든 분야가 가치관 혼란을 넘어 가치관 부재 상태에 빠졌다. 가치관 부재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는다. 정치 갈등, 경제 갈등, 교육 갈등, 가족 갈등 이 모든 갈등의 근본 원인은 바로 공동(共同)의 가치관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3·1독립선언서에서 사회 갈등의 결과는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비운(悲運)을 초치(招致)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하지만 너무도 잘난 이 나라 사람들은 그 경고를 무시하였다. 그 결과로 우리는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럼 우리에게 공도동망의 비운을 벗어날 방법은 정말 없을까. 이에 대한 답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답은 바로 변화다.`변화의 힘`이라는 책은 “24시간이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면서 여섯 가지 힘을 제시하였다. 질문하는 힘, 생각하는 힘, 결단하는 힘, 행동하는 힘, 끌어들이는 힘, 공부하는 힘. 이 힘들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 있는 것들이다. 전 세계가 시샘할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 모두 시작하자, 나부터의 변화를!

2016-02-03

존재의 무게감을 인지해야 할 때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지난 주 오랜만에 찾아온 극심한 추위는 우리의 일상을 혼잡스럽게 했다. 적당히 내리는 눈만큼 우리의 정서를 황홀한 경지로 이끌어가는 것이 어디 또 있으랴마는, 일부 지역에 내린 폭설은 점령군의 억압과 폭력처럼 저항할 수 없는 괴물로 변하고 말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연의 변화 앞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움을 실감하는 시간들이었다. 이런 이상 기후 현상은 인간이 자연을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반동 현상에서 오는 것이라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연재해를 당할 때마다 자연의 역습에 인간이 저항할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좁고 얕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습관적으로 인간은 자연의 마음을 무시할 때가 많다는 것이 문제이지. 인간이 자신들 마음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지극히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대로`라는 말이 갖는 함의를 매우 조심스럽게 살펴야 하는데, 적어도 상대의 처지를 고려한 `마음대로`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최근 들어 인간이 자연을 두고 마음대로 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인간을 대상으로 함부로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가족들 간에서 벌어지는 존속살해사건은 인륜과 천륜을 배반하는 일로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부정하는 지극히 위험한 신호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힘없고 나약한 어린 자식들, 돈이 많은 부모들, 배우자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운 아내와 남편….이들의 공통점은 일방적으로 살해 이유를 설정하고, 상대가 전혀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습하는 방식으로 목숨을 헤치는 데 있다. 불교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태어나는 인연은 1만년 생. 부부로 맺어지는 인연은 8천 생 만의 만남이라고 한다. 이처럼 참으로 오랜 기다림 뒤에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들이, 인간으로서는 차마 상상하기 힘든 이유들로 존재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다. `아버지`(1966, 김정현)는 췌장암 말기에 이른 주인공 한정수가 보여주는 애틋한 가족애를 그린 소설로, 당시 100만부의 판매 부수를 올리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한국 사회는 가족을 위해 돈벌이에 바쁜 한국 사회의 남성들이, 가족들에게 무심하다는 이유로 가족들의 지탄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사회였다.한정수라는 인물은 겉으로 드러나는 한국 남성들의 가족에 대한 무관심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부성애를 한껏 보여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더욱 받았던 인물이다. `아버지`가 시공을 초월해서 기억에 남는 이유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여주는 그의 가족애이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처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한 사실을 넘어서 있는 비정한 부모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5일의 마중`(2014, 장예모)은 부부 간의 애틋한 기다림과 정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영화다. 중국의 문화 혁명 당시 사상범으로 잡혀간 남편 루옌스(진도명 분)를 기다리다 아내 펑완위(공리 분)는 심인성기억장애증을 앓게 된다.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5일에 도착한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그토록 기다리던 루옌스가 돌아오게 되지만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펑완위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하는 남편의 노력들은 눈물 없이 영화를 볼 수 없게 하는 시퀀스들이다. 딸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바리데기`공주는 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일을 묻지 않고,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험난한 여정을 마다 않은 지극히 효심이 깊은 자식이었다. 이들이 우리에게 두고두고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들이 가족을 생각할 때 자신에게 돌아올 손익을 초월한 존재의 무게감을 인지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가족은 마음대로 처치해도 될 가벼운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2016-02-01

제랄다와 거인

▲ 김현욱 시인양배추 절임과 소시지 모듬, 파이 반죽에 싸서 구운 거위 간 푸딩, 송로 버섯 젤리를 곁들인 송아지 고기 튀김, 폼파토 사라 베르나르, 라스푸틴 초콜릿 소스, 신데렐라 식 칠면조 구이, `거인의 기쁨`이라고 하는 설탕물에 졸인 과일과 숟가락 모양의 비스킷, 아이스크림 케이크….요즘은 먹는 방송, 일명 `먹방`이 유행입니다. 요리하는 방송, `쿡방`도 대세지요.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에 셰프(chef)가 상위를 차지한 지 꽤 됐습니다. 한국심리학회에서는 `먹방`, `쿡방`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진단합니다. 1인 가구의 증가, 가족의 해체현상, 소비트렌드의 변화, 소비자의 욕구변화가 그것입니다.언제부턴가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먹는 술)`이 낯설지 않은 말이 됐습니다.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붕괴하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모래알 사회로 변해 가는 중입니다. 모래알은 서로 뭉치지 못하고 한 알의 알갱이로 존재합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았지만 지금은 한 알의 모래마다 날카로운 외로움이 삐죽 빼죽 솟아 있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토미 웅거러의 `제랄다와 거인`(비룡소)에서 그 해답을 찾아봅니다. 그림책 표지가 굉장히 뜻밖입니다. 예리한 칼을 든 거인이 험악한 표정으로 한 소녀를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거인을 바라보는 소녀의 표정은 한없이 다정합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그림입니다.책의 첫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옛날에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이 혼자 외로이 살고 있었습니다.` `혼자, 외로이`에 곁점을 찍습니다. `혼자, 외로이`가 아니었다면 사람을 특히,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거인`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그런데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에 사는 농부와 어린 딸 제랄다만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픈 어느 날, 제랄다는 혼자 장에 물건을 팔러 갑니다. 그때, 거인은 제랄다를 잡아먹으려고 했지만 너무 허둥대다가 그만 바위에서 미끄러져 정신을 잃고 맙니다. 제랄다는 쓰러진 거인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줍니다. `화란 냉이 크림 스프, 소스를 친 훈제 송어, 달팽이 마늘 버터 볶음, 통닭 구이 한 쟁반, 새끼 돼지 한 마리….`거인은 제랄다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보고는 어린아이들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게 됩니다. 거인이 살던 성의 요리사가 된 제랄다는 이웃에 사는 남자 거인, 여자 거인들을 위해 잔칫상을 차립니다. 그때부터 거인들은 아이들을 먹지 않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제랄다 덕분에 숨어 있던 곳에서 밖으로 나와 함께 어울려 지내게 됩니다.제랄다가 거인들에게 해준 `음식`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왜 거인들은 제랄다의 음식을 나눠 먹고 아이들을 잡아먹지 않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라고 합니다. 정신을 잃은 거인에게 제랄다가 정성껏 차려준 음식은 따뜻한 `모성`이자 함께 밥을 먹는 `식구`를 의미합니다. `혼자, 외로이`였다면 아마도 거인은 사람 잡아먹는 습성을 여태 버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 거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따뜻한 공동체의 `모성`을 회복하고, 함께 밥을 먹는 `식구`가 되어야만 합니다.1931년 프랑스 스트라스브루에서 태어난 토미 웅게러는 어린 시절, 가난과 전쟁을 겪으며 방황했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토미 웅게러가 그림책을 통해 반전과 평화, 인간에게 숨겨진 양면성을 주로 다룬 것은 어린 시절에 겪은 전쟁의 상처 때문이라고 합니다. `꼬마 구름 파랑이`, `크릭터`, `세 강도`, `달 사람`, `곰 인형 오토` 등의 주옥같은 토미 웅게러의 그림책이 도서관에서 독자들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6-01-29

16년 만에 전해준 상장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최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춥다”이다. 연일 언론은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 소식을 전하느라 바쁘다. 냉동고 한파, 북극 한파, 슈퍼 한파 등 이번 한파를 나타내는 수식어만 봐도 한파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얼어버린 바다, 강풍과 폭설로 발이 묶여 고생하는 제주 공항의 수 만 명의 여행객들 모습은 이번 한파의 위력을 증명해준다.겨울이니까 추운 것은 당연하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기상 이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추워도 너무 춥다. 그런데 이런 기상 이변이 유독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니 더 걱정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대만 등 전 세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물론 이런 기상 이변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예전부터 환경 파괴, 지구 온난화 등 인간의 이기적인 개발주의가 불러올 자연의 복수에 대해 예견했었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상 이변들은 마치 환경 재앙 영화를 생방송으로 보는 것 같다.해오름 달 끝 무렵에 시작된 기록적인 한파는 뉴스의 메인 기사를 바꾸어 버렸다. 국민들을 지치게, 또 분노케 만들던 정치판 사건들이 한파 뉴스에 밀려 메인 뉴스에서 내려왔다. 정말 속이 다 시원하다. 하늘도 선거법이니, 노동법이니, 그리고 무슨 무슨 당하며 서로 싸우는 정치판 꼴을 더 이상 보아주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시샘달이 시작되기 전에 국민들을 더 아프게 하는 모든 정치 이야기들을 꽁꽁 얼려서라도 영원히 세상 밖으로 추방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다. 제발 시샘달에는 더는 국민들의 힘을 빼는 더 나쁜 정치 이야기 대신 국민들을 신명나게 춤추게 하는 행복한 이야기들이 가득하길 기원해 본다.지난 주말 필자에겐 맹추위를 잠시 잊게 하는 행복한 일이 있었다. 그 행복감이 독자 여러분께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16년 만에 주인을 찾은 상장 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한다. 지난 주말 필자는 주례(主禮)를 보았다. 신랑은 16년 전 필자의 첫 제자. 아직 주례를 볼 연배가 되지 않아 수차례 사양했으나 제자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또 필자가 16년 동안 너무도 소중히 간직해 오던 상장이 있는데 그 상장을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주례를 승낙했다.신랑은 16년 전 필자가 교단에 처음 섰을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6년 전 필자와 신랑은 모두 새롭게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처음은 늘 어설프기 마련이지만, 열정만은 최고이다. 필자와 신랑은 그것마저 비슷했다. 짧은 머리, 결코 순하지 않은 인상, 그리고 억양 강한 말투 때문에 신랑은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았다. 그 오해가 신랑과 필자를 제자와 스승으로 이어주었다. 비록 지금이야 제자와 스승은 없고, 학생과 교사만 있다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제자와 스승이 존재했다. 필자는 신랑을 통해 절대 사람은 겉모습과 행동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수많은 오해를 이겨내고 자신만의 확고한 꿈을 위해 노력하던 16년 전 학생에게 필자는 꼭 상(賞)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땐 그럴 위치가 못 되었다. 물론 지금도 그럴 위치가 못 된다. 하지만 보이는 모습 때문에 수많은 고생을 한 신랑을 잘 알기에 필자는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주례사(主禮辭)를 상장 전달로 대신하였다. 주례사를 쓰는 마음으로 상장 문구를 썼다. “위 사람은 스승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너무도 당당히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는 사회인으로 잘 성장해주었기에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이 상장을 드립니다.”16년 만에 상장을 찾은 신랑에게 한파를 이기고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모두 큰 박수를 보냈다. 필자는 보았다. 하나같이 힘든 사람들의 모습과 그 힘듦을 이겨내고자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결혼식 후 필자는 주문처럼 옹알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중략)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국민 여러분, 걱정하지 말고 힘냅시다.

2016-01-27

인재(人才)와 개와 뼈다귀

▲ 강희룡 서예가조선 후기의 실학자 최한기(1803 ~ 1877) 선생은 인사행정 이론서인 `인정(人政)`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주의할 점은 바로“그 사람에 대한 과장된 칭찬이나 비방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라고 적고 있다. 자신이 직접 그 인물을 보고서 내면까지 평가하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부터 들은 평가는 여러 차례 전달되는 과정에서 진실성은 점점 옅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인사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쟁적인 인재영입은 사람을 섣불리 판단해 잘못 선택하면 선택된 쪽보다 선택한 쪽이 책임이 크다. 다시 말해 인재라 함은 개개인의 특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과 위치에 있어야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어 인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기 있고 똑똑하다는 인재들은 그 전공분야에서지 타 분야에서까지 인재로 볼 수 없다. 이런 유형과 오랜 시간 이 사회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은 더 이상 새로운 혁신적인 발상이 없어 자칫 무리속의 평범한 하나의 구성원으로 세금만 축내는 부정적인 역할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장유(1587~1638)는 `필설(筆說)`에서 그의 벗 중 한사람이 어느 날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필(黃毛筆)이라는 붓을 얻었는데 터럭이 빼어나게 가늘고 윤기가 흘러 아주 좋은 붓이었다. 그런데 붓을 한 번 털어 보니 그 속이 더부룩한 게 이상하여 시험 삼아 글씨를 써 보았는데 바로 구부러져 꺾이는 바람에 글자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속을 살펴보니 거의가 개의 터럭이고 가늘고 윤기가 나는 족제비 털을 겉에만 입혀 놓은 것이었다. 이후 장유를 만나서 사람을 속이는 상술에 대해 분통한 심정을 토로하자, 장유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것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사대부라고 하는 자들은 몸을 의관(衣冠)으로 감싸고 언어를 그럴듯하게 구사하면서 걸음걸이도 법도에 맞게 하고 얼굴색 역시 근엄하게 꾸미니 그들을 바라보면 모두 군자나 정사(正士) 같게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이 보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을 만나게 되면 평소의 뜻을 바꿔 욕심을 충족시키려 서로 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적고 있다. 이익을 찾아 떠다니는 겉과 속이 다른 당시의 위정자들의 모습을 빗댄 것이다.임금 순조가 깊은 애도와 함께 “사보(師保)의 중임까지 겸하여 세도(世道)를 안정시키고 군주의 덕을 보좌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은 사람은 바로 영상이었다”라 하며 최대의 예우를 표했던 사람은 당시 권력의 정점인 영의정의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노론계 벽파의 영수였던 심환지(1730~1802)였다. 하지만 그는 나이어린 순조의 원상(院相)이 되어 당동벌이(黨同伐異·당적이 같으면 동지고, 다르면 물리침)에 주력하여 신유사옥을 일으켜 역사는 그를 그리 훌륭하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불과 40년도 지나지 않아 `순조실록`을 편찬한 사관의 붓은 “아둔하고 재능 없어 아무런 공적도 남기지 못하고 그저 욕심 차게 제 식구만 감쌌다”는 것이 2년 남짓 되는 영의정 재임 기간의 업적에 대한 평가이다.김시습은 `매월당집(梅月堂集)` `술고(述古)`아홉 번째 시에서 “개에게 뼈다귀를 주지마라/ 떼 지어 어지러이 다툴 것이니/ 제 무리와 어긋날 뿐 아니라/ 끝내는 주인(국민)과도 어그러지리라.(….)” 역사의 전개가 국가나 국민을 위해 정립된 정치이념이나 정신의 발현이 아니라 뼈다귀 같은 이익을 놓고 떼 지어 무리와 다투다 보면 난신적자가 부귀영화를 누리며 돈과 권력이 정의가 되는 세상으로 바뀌게 된다. 이런 사회는 결국 국민들은 희망이 없어지게 되고 국가는 미래의 동력을 잃게 된다.그럴싸한 명분과 화려한 수식어를 내세우며 이합집산으로 떼 지어 몰려다니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지금의 정치행태는 국민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개처럼 뼈다귀 같은 이익을 놓고 몰려다니며 다투는 현상과 무엇이 다르랴. 하지만 현명한 국민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인재가 아니라 내면세계가 객체화 되어 국민에게 봉사하는 옥석이 누군지를 구분하기 위해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2016-01-25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첫울음

▲ 김현욱 시인`100만 번 산 고양이`(사노 요코·비룡소)는 매우 철학적인 그림책입니다. 매우 시적인 그림책입니다. 노자의 함축과 역설을 떠올리게도 하고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 연상됐다가 나탈리 배비트의 `트리갭의 샘물`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100만 번 산 고양이`와 `나`(독자)의 삶이 내외면의 여러 곳에서 곧잘 겹치거나 투영된다는 점입니다.`그림책 문학읽기`에서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문학은 모든 억압(이 억압이란 밖에서 들어오는 억압, 자기 내부에서 솟아나는 억압을 모두 말합니다)에 저항하고 이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보는 행위입니다. 질서라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억압입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근본적으로 저항이며 새롭게, 달리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학의 본질”이라고 말했습니다.그러면서 “문학은 `100만 번 산 고양이`에서처럼 백만 번 되풀이되어 온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트리갭의 샘물`에 나오는 가족처럼 변화 없이 영원토록 한 자리에 멈추어져 있는 삶, 쳇바퀴처럼 영원히 사는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 탈출하는 것,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길가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 나뒹구는 페트병과 무엇이 다를까요?`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정말 멋진 얼룩 고양이였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로 시작되는 `100만 번 산 고양이`에서 `백만 번`은 시간이나 횟수를 뜻하는 게 아니라 무료하고 무의미한 삶을 가리킵니다. 백만 번이든 천만 번이든 타의로 죽었다 살아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백만 명이든 천만 명이든 누군가의 고양이로 살다가 죽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작가 사노 요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그 질문에 그림책은 이렇게 답합니다.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습니다. 도둑고양이였던 것이죠.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됐습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중략…)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할 정도였습니다(…중략…)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100만 번 산 고양이` 후반부에 고양이가 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과 의미 있는 삶을 함께했던 하얀 고양이가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기 때문이지요.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라는 장면에서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쏟기도 합니다. 고양이처럼 뜨겁게 울어봤던 기억이 떠올라서일 겁니다. 고양이는 처음이자 마지막 울음을 그친 후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어떤 그림책은 하릴없이 사람을 울리기도 합니다. 여섯 살 딸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삶과 죽음, 문학과 사랑에 대해 다시 하릴없이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2016-01-22

`응답하라 1988`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문풍지 사이로 밀려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도 마냥 춥고 길게만 느껴졌던 어린 시절 한겨울의 기억이 떠오른다. 엷은 창호지가 발린 여닫이 창살문 사이로 전해지는 추위는 정말 지겨울 정도로 슬픈 추억을 안겨줬다. 한겨울의 매서운 찬바람이 들어올 구멍조차 없어 보이던 아파트가 아닌 개인주택에서 70년대를 지내야 했던 학창시절은 마당에서 아침 세수하는 것마저도 큰 고충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새집으로 이사를 해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니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군복무 중 경험했던 혹한 역시 어린 시절 추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왜 나의 기억 속 어린 시절의 겨울은 그렇게 춥게만 느껴졌을까?최근 케이블방송을 통해 인기리 방송됐던 `응답하라 1988`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본다. 그 시절 서민들의 주거환경과 삶이 나만의 열악했던 환경이 아니라 모두가 어렵고 힘들었다는 것을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연탄아궁이에서 전해지는 온돌의 따스함을 따라 마냥 아랫목으로 내려가다 보면 스텐 밥그릇에 담긴 아버지의 밥을 발견하고 이내 돌아누워 흑백TV에 시선을 꽂았던 어린 시절은 우리 집만의 풍경은 아니었던 것이다. 변변한 놀거리가 없던 시절 햇볕 잘 드는 동네 한 곁에서 구슬놀이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냥 놀다보면 어느듯 들려오는 “XX야 점심 먹게 그만 놀고 들어오느라”는 고함소리를 통해 식사 때를 알았던 풍경이 우리 동네 모습만은 아니었음을 알았다. 늦은 오후 부추전 굽는 냄새가 동네를 진동할 때쯤이면,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뜨거운 전을 호호 불어가며 정신없이 먹었던 추억 역시 동네 친구들만의 모습은 아니었다.`응답하라 1988`이 19.6%라는 케이블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호화 캐스팅이나 유명 탤런트가 주연을 맡은 것도 아닌데 이처럼 모든 연령대로부터 고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드라마 속에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묻어났기 때문이다.출생의 비밀과 복수, 패륜 등 막장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짜릿한 반전과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의 전개가 주는 희열을 맛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감하고 이해하며 다음 편을 기대할 수 있는 궁금증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우리가 생각하고 예측했던 결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전개되어졌다. 마치 우리들의 어린 시절 생활과 별반 다를 바 없음을 영상으로 확인시켜 주며 친근감을 더 해 줬기 때문이다. 덕선이를 비롯해 다섯 친구들의 우정이 만들어 낸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드라마를 통해 경험하게 해 줬고, 자신보다는 가족과 친구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쌍문동의 한 겨울을 따스하게 녹이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한겨울 마냥 춥게만 지냈던 나의 어린시절 기억을 이제 새롭게 정리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얇은 겨울 홑바지 사이로 느꼈던 차가운 겨울바람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만들어 낸 추위였지 그렇게 춥지만은 않았던 행복한 겨울이라는 것을….필자의 어린 시절 겨울은 사랑하는 가족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친구들이 `응팔`처럼 함께 했기에 결코 슬픈 겨울의 기억이 아니라는 것을….

2016-01-21

문송합니다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1월을 건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힘겨워 보인다. 이제 1월인데, 누가 사람들을 저토록 힘들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길옆에서 혼자 춤추는 바람 인형이 자신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을 더 격렬한 몸짓으로 응원하는 2016년 1월! 연령대를 불문하고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음엔 아쉬움과 허무함, 그리고 분노만이 가득하다. 그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풀릴 수 없는 응어리가 되고 있는데 그 응어리를 풀어줄 사람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 필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응어리진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야기의 순서가 조금 다를 뿐이지 그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지난주에 막을 내린 `응답하라, 1988!`. 그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진한 향수(鄕愁)가 가득했다. 프로그램의 내용을 잘 모르는 필자는 사람들이 왜 그토록 그 프로그램에 중독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그런데 사람들의 이야기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정(人情)`과 `이웃사촌`이었다. 이 두 단어만 들어도 필자는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그 프로그램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나라가 나름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그 발전에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빼앗겼다. 그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골목`이다. 골목이 사라지면서 덩달아 사라진 것이 사람 사는 이야기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하루 살기에 바쁜 지금 사람들은 돌아가고 싶은 것이었다, 작은 일에도 `동네잔치` 하던, 그리고 진정 `우리`가 존재했던 그 시절로.골목이 사라진 우리 사회에 `인정, 이웃사촌, 동네잔치`와 같은 사람 냄새나는 단어 대신 `문송합니다, 인구론, 공시생`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창궐하고 있다. 돌림병이 창궐하면 그 마을이 쑥대밭이 되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창궐하는 사회는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사회로 변질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지금 우리 사회처럼.`문송합니다`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이다. 또 `인구론`은 `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는 뜻의 신조어다. 이들 단어들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청년 실업, 거기서도 더 시급한 인문계 학생들의 취업난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사회로 나가는 필수 관문이라고 하는 대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청년들은 갈 곳이 없다. 아니 오라는 곳이 없다. 특히 전통적인 인문학 분야인 `문학, 역사, 철학` 관련 학과 대학생은 더 그렇다.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를 거쳐 이젠 N포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이 나라 청년들!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야할 저들을 누가 저토록 주눅 들게 만들었는가. `문송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필자는 도대체 이 사회가 어떻게 되려고 하는지 두려워졌다. 그리고 `인구론`이란 단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의 부재 때문이다.지금의 대학생들을 일컫는 말 중에 `공시생`이라는 말이 있다. `공시생(公試生)`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약자이다. 공시생은 날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공무원 채용시험 준비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어느 학과를 막론하고 대학생이라면 한 번 쯤은 생각해봤을 공무원 채용 시험. 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올인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는 다 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공무원은 취업의 한 수단이다.어쩌면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 대학교들의 학과 이름도 `서울 지방직 행정직군 학과`와 같이 공무원 채용 종별로 바뀌지 않을까.공대생(工大生)도 공시생이 되고 마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떨까. 아마도 국민을 분노케 하는 1월의 정치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선진국의 사례를 충분히 연구해 모범답안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2016-01-19

태국의 한국어 교육 열풍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세계 언어 사용량을 조사하는 에스놀로그 사이트의 정보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어 사용자수는 7천720만 명으로 세계 13위이다. 이는 외국인들의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앎의 욕구 증가에 따른 현상이며, 이에 따라 한국어 교육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미주 지역,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한국어 교육은 1990년 중반 이후 동남아시아 등지로 확대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서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는 물론, 동서 유럽 지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최근에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에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세종학당재단 연구자료) 실정이다.필자는 최근 학생들과 함께 해외 한국어 교육실습 사업 수행 차 태국의 펫(차)부리를 방문했다. 태국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1986년 송클라대 교양 과정에 한국어 강의를 개설하면서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대학, 세종학당, 한글학교, 중·고등학교, 사설 학원 등에서 한국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최근 가장 활발하게 한국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중·고등학교라고 한다. 태국 교육부는 2007년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했고, 2008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는데, 2013년 기준 2만2천154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태국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는 중국어, 일본어 다음으로 학생들이 선택하는 외국어이다.우리 일행이 1개월 동안 한국어 교육실습을 할 장소는 펫(차)부리에 있는 프롬마누손 학교이다. 펫(차)부리는 방콕에서 승용차로 2시간 정도 남쪽으로 달리면 있는 도시이며, 프롬마누손 학교 뒷산에는 태국의 문화유산인 프라나콘키리 역사박물관이 있다. 프라나콘키리 역사박물관은 라마 4~5세의 여름 별장으로 쓰던 곳인데,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이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기다림 없이 탈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관광객이 붐비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학교는 고등학생이 1천300명, 중학생이 1천700명으로 규모가 큰 학교인 만큼 교장선생님 한 분과 교감선생님 네 분이 130여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를 이끌어 가고 있는 중이다.프롬마누손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영어는 필수이고,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스페인어 등 10 개국 이상의 언어 중 3개의 언어를 선택해서 학습한다고 한다. 한국어 수업은 선택과 전공으로 나뉘어서 매회 당 2시간씩 수업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 수는 90여명이며, 한국어 교사는 한국에서 파견된 한국인(원어민) 교사 한 분이 계신다. 한 반의 수강생 수는 10~30명 정도라고 하는데, 적은 수로 이루어지는 수업인 만큼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이 자연스럽고 유쾌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수업참관을 하면서 그 이유를 유추해 보니 한국인 교사가 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분이어서 그런 효과를 보인 것 같다.우리가 도착한 다음 날,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우리 일행을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한국어를 배운 태국인 학생들이 사회를 맡아서, 한국어로 우리 일행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말을 했을 때의 감동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태국인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에 대한 열의는 매우 높다. 수업이 진행되는 2시간 내내 수업에 몰입하는 정도는 대단하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소문이 나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 학생들도, 우리를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태국에서 한국 열풍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풍경이다.세계화의 영향으로 국가와 인종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국가와 인종 간의 소통이 활발해 지고 있다. 한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한국을 상상하는 태국인 학생들…. 현지에 가서 그곳의 문화사회적인 맥락을 읽으며 한국어를 교육하는 우리 실습생들…. 그대들은 진정 글로벌 인재이니, 좋은 성과 있기를!

2016-01-18

겨울밤, 군고구마 같은 그림책 `황소 아저씨`

▲ 김현욱 시인“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속에 들어와 잤다. 자다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으로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 보니 그것들과 정이 들어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아두고 기다렸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나는 그래서 황금덩이보다 강아지똥이 더 귀한 것을 알았고 외롭지 않게 되었다.”고 권정생 선생님(1937~2007)의 수필집 `우리들의 하느님`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강아지똥`, 현재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몽실언니`까지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은 애니메이션,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도 많이 각색됐습니다. `강아지똥`도 그렇지만 `엄마 까투리`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권정생 선생님의 작품 속 주인공은 `흰둥이가 싸놓고 간 똥, 깜둥 바가지, 벙어리,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전쟁고아, 거지, 바보, 늙은 소, 외로운 노인`과 같이 힘없고 소외된 것들입니다. 이 세상에 작고 볼품없는 것들을 향한 따스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 바로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삶과 글이 다른 작가들이 득세하는 지금, 여기에 삶과 문학과 사상이 일치했던 귀하디귀한 어른이자 작가가 바로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좋아하고 존경하지 않겠습니까?오늘 소개할 그림책은 권정생 선생님의 `황소 아저씨`입니다. 이 그림책을 선택한 이유는 작품 속에 `황소 아저씨`가 바로 권정생 선생님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추운 겨울밤, 생쥐 한 마리가 황소 아저씨네 외양간에 먹을 것을 구하러 나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동생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나온 생쥐를 보고 황소 아저씨는 연민을 느낍니다. 황소 아저씨는 생쥐 남매에게 자신의 음식과 품까지 내어줍니다. 생쥐 남매와 황소 아저씨는 사이좋은 식구가 되어 따뜻하게 겨울을 난다는 내용입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치 따끈따끈한 군고구마 같습니다. “새앙쥐들은 아저씨 목덜미에 붙어 자기도 하고 겨드랑이에서 자기도 했어요. 겨울이 다 지나도록 따뜻하게 따뜻하게 함께 살았어요.”귀천 없이 누구나 `따뜻하게, 따뜻하게 함께` 사이좋게 사는 나라를 권정생 선생님은 꿈꿨던 게 아닌가 합니다.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남부초등학교를 고쳐 만든 `동화나라`와 권정생 생가는 누구나 꼭 한번은 가봐야 할 문학순례지가 됐습니다. 날이 풀리고 봄꽃 피면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읽고 아이들과 부모님과 함께 찾아가보려 합니다.권정생 선생님의 `황소 아저씨`를 읽으니 화가 이중섭이 떠오릅니다. 이중섭의 불우했던 삶이 권정생 선생님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이중섭이 그린 소 그림은 25점이나 됩니다. 그중에 `흰 소(1954, 홍익대 박물관), 황소(1953, 개인소장), 황소(1953, 서울미술관)가 있는데 서로 비교해서 보면 좋겠습니다. 마침 올해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라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황소 아저씨`에 생쥐 남매가 나와서 일까요? 아베 간야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연상되고 나아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오페라도 생각납니다. 서양 중세 사학자인 아베 간야는 책에서 중세 사람들의 삶과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정체를 탐색했습니다. `어린이 십자군`, `에르푸트르의 어린이 무도 행진`과 같은 흥미로운 대목이 많습니다.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와 함께 모차르트 4대 오페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좀 다른 것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2016-01-15

병신년은 문화융성의 새로운 원년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난해 12월 여야의 정치공방 속에서 개점휴업 상태의 국회는 해를 넘기고도 해결의 실마리를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 문제와 쟁점법안 처리가 끝을 모르게 지연돼 민심은 어느덧 정부의 저 넘어 반대편에 서있다. 공감과 소통을 화두로 힘차게 시작했던 박근혜 정부도 이제는 집권 4년차를 맞으며 소신정치와 불통정치에서 오는 계층간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는 회의적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를 감안한 듯 몇일 전에 있었던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확실하게 뿌리내려서 우리 경제에 활력과 일자리를 만들어 갈 것”을 강조하고 나섰다.국민이 문화로 행복을 느끼는 문화융성의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그동안 국내외적으로 적잖은 성과를 보여주긴 했지만, 상대적인 한계점도 함께 드러냈다.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토대로 국민이 문화로 행복하고 더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려는 강한 의지는 젊은 예술인들에겐 꿈과 현실을 함께 펼칠 수 있는 입체적인 지원정책을 열어 주었고, 예술적 열정이 풍만한 예술가들에겐 더욱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수준 높은 발표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젊고 열정 넘치는 융·복합 예술가들이 함께 마련하는 콘텐츠의 개발과 현실화는 과거 정부와는 확연히 달라진 문화정책의 시행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수행을 통해 이제 문화·예술인들도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문화를 통한 고부가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사고의 전환과 혁신을 이뤄 나가야 할 것이다.올해부터 문화융성에 대한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 보다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문화정책이 요구된다. 먼저 뛰어난 전통문화와 우수한 국민성을 가진 `대한민국`에 대한 브랜딩 캠페인을 전개해 전 세계인들에게 우리 민족의 열정과 창조력을 알리고 안으로는 사회적 화합을 도모해 나가야 할 것이다.`2016~2018 한국방문의 해` 원년이 되기도 하는 올해는 융·복합 관광 콘텐츠 발굴과 서울과 제주로 집중되는 외래 관광객들을 지역의 우수한 문화와 연계시키는 관광자원의 확산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의 확산을 통해 전국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해 나가는 것도 새로운 정책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류문화에 편중된 한류월드, K-컬쳐 벨리, K-익스피리언스, K팝 아레나 등 차별화되고 독창적 콘텐츠를 통한 경쟁력이 확보되는 선순환 시스템 도입을 적극 추진 해 나가야 함은 당연한 이치이다.지난해부터 문화의 새로운 소비 아이콘으로 부각되고 있는 `문화가 있는 날`의 효율적인 운영과 시스템 정비, 문화시설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이뤄지면서 문화소비의 합리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향유의 독창적 콘텐츠는 나눔과 배려에서 비롯되는 우리 민족만의 차별한 된 의식이다.세계 각국의 치열한 군사·경제적 경쟁과 국내 정치적 갈등에서 야기되는 개인주의와 이기심의 확대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된 법과 질서의 무시는 현대인의 정신세계를 점차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극복하고 문화적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진정한 예술이 주는 아름다움을 소비하며 향유할 수 있는 의식의 전환이 그 어느 때 보다 간절히 요구 되고 있다.

2016-01-14

호킹 지수(Hawking Index)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병신년 1월부터 우리 사회가 참 시끄럽다. 연초에 시끄럽다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정말 시끄럽다. 가장 시끄러운 곳을 분간 못할 만큼 정치, 경제, 국방, 교육, 외교 등 사회 전 분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다른 나라들은 국민의 행복이라는 큰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힘차게 출발 했는데, 우리는 시끄러움 때문에 출발조차 못 하고 있다.이합집산으로 시끄러운 정치, 중국 증시 폭락으로 시끄러운 경제, 북한 수소폭탄으로 시끄러운 국방, 누리예산으로 시끄러운 교육, 그리고 진정성은커녕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옆 나라 때문에 시끄러운 외교.시끄럽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의 첫 문장을 `시끄러움`대신 `문제`로 바꾸어 다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병신년 1월부터 우리 사회가 참 문제다.” 도대체 우리 사회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을 찾아야지만 해결책도 나올 것이다.그런데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커녕 문제의 원인을 분석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면 이 나라엔 똑똑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이 나라의 문제 지수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만 지고 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많은 나라들이 곧 닥칠 글로벌 경제 위기에 대비하느라 바쁘다. 그리고 테러로부터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바쁘다. 하지만 그 바쁨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로지 자기만의 이익 챙기기에 바쁘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공익을 위해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는 시끄럽고, 다른 나라는 분주하다. 언제쯤 우리는 이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정말 하나 된 마음으로 제대로 된 출발을 할 수 있을까.문득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멈춰선 철마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잘 안다. 그리고 녹슨 철마를 통해 너무 오래 멈춘 철마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 노력, 비용이 든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철마를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까지다. 알기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는 실천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렸다. 아는 것을 조금이라도 실천했다면 지금처럼 시끄럽지는 않을 것이다.멈춰선 철마가 2016년 대한민국 같다. 철마의 기적소리 너머로 어떤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대한민국은 달리고 싶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중국 증시 폭락, 북한의 수소 폭탄 실험, 일본의 진정성 없는 사과 등 그 원인을 밖에서만 찾는다. 정녕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말할 용기가 없는 걸까.`호킹 지수(Hawking Index)`라는 것이 있다. 조던 엘렌버그 교수가 만든 것으로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를 백분위(%)로 환산하여 보여주는 지수다. 스티븐 호킹스의 `시간의 역사`에서 착안한 이 지수는 지수가 낮을수록 책의 내용이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 `시간의 역사`는 1988년 초판 발행 이후 1천만권 가량 팔렸지만 끝까지 읽은 독자는 6.6%에 불과하다고 한다.지금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책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책의 호킹 지수는 얼마일까. 필자가 보기엔 0%다. 그만큼 대한민국이 어렵다는 뜻이다. 현재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한다. 고전물이 넘치고, `응답하라 1988`이 인기몰이를 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딱 그렇다. 언제까지 우리는 과거만 부르짖고 살 것인가. 시끄러움을 해결하고 2016년 대한민국이 속도를 내어 빠르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도록 “나”가 아닌 우리가 되어 외치자. “응답하라, 2016년 대한민국!”

2016-01-13

행복한 비전, 경북 여성과 함께 만들어 가자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칠레는 우리 정부와 FTA를 체결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전통적으로 남성우월주의가 지배하여 보수적 문화가 강하고 최악의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불명예를 가진 국가였다. 그럼에도 현재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칠레가 열악한 조건을 딛고 성장하고 변혁할 수 있었던 이유로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미첼 바첼레트를 들 수 있다. 바첼레트의 대통령 당선은 칠레의 체질과 사회의식 근본부터 바꾸었으며 여성인력 활용, 보육, 교육 등 생활 정치 전면을 적극 개혁하는 막강한 여성파워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여성의 사회참여와 연계시키려는 움직임은 이미 세계적 흐름이다. 재선에 성공한 타리야 할로넨 핀란드 여성대통령 역시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하였고, 그 뒤를 이어 52.9%로 구성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한 스웨덴 등도 그러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칠레를 비롯한 여성정책 선진국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지 않아도 여성의 완전한 사회참여는 국가와 지역경쟁력 향상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세계적 경제위기, 식량부족, 고용변화 등 현재의 글로벌 위기를 효과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증명되고 있다. 그만큼 여성의 파워는 국가와 지역 발전의 필수적인 요건이라 할 것이다.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여성정책 추진 동력이 미약한 실정이다.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여성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대표성은 친여성적 부처에만 국한되어 국제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의 벽을 깨기 위하여 경북은 앞으로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첫째, 사회 전 분야에서 여성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감으로써 여성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일구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핵심 동력인 여성인재 양성 및 좋은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즉 기업체 맞춤형 여성일자리 창출, 일-가정의 양립을 위한 아이돌봄 서비스 지원, 다문화 가족 자녀 교육사업 등을 통해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의 이중 고통을 해결하여 여성이 행복하고 가정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둘째, 여성발전에서 양성평등으로 여성정책 패러다임이 전환됨에 따라 양성평등 관련 권리 보장과 성주류화 정책의 실효성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 때문에 여성정책사업에 남성의 채널을 확대하고 경북지역 여성가족정책 모든 영역에 성인지적 정책을 실행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을 통한 진정한 성평등 추진기반을 마련하려면 경북 지역내 전반에 성별영향분석평가 및 성인지 예산제도 운영의 실질적인 내실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셋째, 안전한 환경 조성 등을 통해 아동·여성에 대한 폭력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원을 강화하여 여성 인권 보호 및 안전 관련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취약계층 여성의 권익과 인권보호를 위한 다양한 시책이 필요하며 폭력피해여성에 대한 보호와 서비스의 질적 내실화를 위해 지원기관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괴테의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라는 말처럼 여성의 강점인 부드러움과 따뜻한 배려가 경북을 움직이는 근원이 될 것이며 여성을 위한 시책을 내실 있게 추진하려면 여성들이 공감하는 실천적인 비전, 여성의 역량을 강화하는 비전, 현장사업을 강화하는 실효성 있는 비전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2016-01-12

꽃할머니의 꿈

▲ 김현욱 시인지난해 12월 30일 수요일 정오. 서울시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어김없이 `수요 집회`가 열렸습니다. `수요 집회`에 작은따옴표를 한 이유는 `수요 집회`가 이제는 우리 사회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수요 집회`는 1211차 집회였습니다. 자그마치 24년 동안이나 지속하였으니 단군 이래로 가장 오래된 집회가 아닐까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관련 단체, 시민, 청소년들이 `수요 집회`를 통해 바라는 것은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와 합당한 배상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28일 극적으로 타결된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협상은 자못 실망스럽습니다. `사죄`란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빈다는 뜻입니다. 어떤 조건이나 단서가 붙은 사죄는 사죄가 아닙니다. 유대인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만행을 온몸으로 사죄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처럼 일본의 아베 총리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마땅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용서한다. 하지만 잊지는 않겠다.” 모쪼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깊은 상처와 아픔을 달랠 수 있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와 합당한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1940년 13살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사계절, 2010)는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기획한 `평화그림책` 프로젝트 중 첫 번째 작품입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알다시피 전쟁은 거대하고 잔인한 폭력입니다. 전쟁은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줍니다. 근대 이전의 수많은 전쟁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끔찍한 전쟁과 내전, 테러의 주요 희생양은 여성과 어린이들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꽃할머니도 그중에 한 분입니다. 꽃할머니가 열세 살이던 1940년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전쟁터로 내몰리고, 곡식이며 놋숟가락까지도 모조리 거두어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날도 꽃할머니는 나물을 캐러 언니와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커다란 트럭을 타고 온 군인 두 명이 꽃할머니와 언니를 강제로 차에 태웠습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꽃할머니와 언니는 배에 옮겨 태워졌습니다.꽃할머니와 언니가 도착한 곳은 대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꽃할머니는 언니와 헤어졌고 다시는 언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꽃할머니가 떠밀려 들어간 곳은 작은 방이 칸칸이 있는 막사였습니다. 꽃할머니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며칠 뒤, 군인들이 한 명씩 들어왔다 나가고 또 들어왔다 나갔습니다. 열세 살 꽃할머니의 아랫도리는 피로 물들었습니다. 꽃할머니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지만 아무도 꽃할머니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군대가 이동할 때마다 꽃할머니도 어딘가로 끌려다녔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더 흐르고, 전쟁은 끝났습니다. 전쟁터에 버려진 꽃할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반겨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작가 권윤덕은 고백합니다. `스케치를 시작하면서부터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습니다. 이 책을 끝낼 즈음이 되니 이웃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뜨입니다.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전쟁과 폭력, 무지와 야만, 차별과 무시에 반대하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걸 느낍니다.`꽃을 좋아해 꽃누르미(압화)를 즐겨 하셨던 `꽃할머니`의 주인공 심달연 할머니는 2010년 12월 5일,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천 은해사에 안장된 꽃할머니의 꿈은 “사람이 꽃 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입니다. 꽃할머니의 향기로운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2016-01-08

버킷 리스트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사람들에겐 어떤 시작을 할 때면, 특히 새해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다. 습관과 버릇을 구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어감 상 습관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버릇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분명 사람들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하는 짓은 버릇이다. 그 버릇은 바로 계획 세우기다. 계획 세우기가 왜 부정적이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계획 세우기 자체가 너무 형식적이다. 그것을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1월에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대표적인 말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작심삼일이 될지 알면서도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지키지도 못할 계획을 계속 세우는 것일까. 희망, 기대감, 욕심, 대리만족, 보상심리, 불안감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희망이다. 그 희망이 다짐으로 이어지고, 또 다짐이 의지력 강한 실천으로만 연결된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삶을 살 것이다.하지만 사람들의 의지는 실패의 블랙홀을 벗어날 만큼 강하지 않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유혹에 약하기 때문이다. 참 재미있는 건 사람을 유혹하는 것도 사람이요, 사람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럼 사람들이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뭘까. 필자가 보기엔 간절함, 절박함, 절심함이 덜해서이다.현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마음속에 큰 벌레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 벌레의 이름은 `대충`이다.`대충`은 사람의 마음에서 `간절함`만 골라 없앤다. `대충`에게 `간절함`을 빼앗긴 사람들은 큰 강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그 강의 이름은 `대강(大綱)`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의 시작에서 세우는 계획은 바로 이 `대층`과 `대강(大綱)`에서 온 것들이 많다. 그래서 이 계획들은 간절함이 빠진 이름만 계획인 것이다. 그런 계획은 이루면 좋고, 이루지 못해도 아쉬울 것 하나 없다. 이것이 되풀이 되면서 사람들의 안 좋은 버릇이 생겼다.해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의 계획이 더 공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엔 그것은 반성은 없고 계획하는 행위만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거 없는 현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망각의 늪에 빠져 과거를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지난 시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 설령 반성을 한다고 하더라도 절실함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공허한 계획의 결과가 어떤지를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안다. 사람들은 고통의 순간에 하나 같이 다짐한다, 두 번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슬프도록 재미있는 건 그 다짐은 그 때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겐 만병통치약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다. 시간이 스쳐지나 간 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아픔이 사라진다. 특히 사람은 시간의 힘을 믿고 너무 빨리 고통의 상황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너무도 태연하게 다시 그 고통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더 심한 고통의 경험을 하고는 또 잊어버린다. 무한반복 되는 이 고리가 어쩌면 사람들을, 그리고 이 사회를 더 독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필자는 `버킷 리스트 (bucket list)`에서 그 답을 찾았다. 버킷 리스트를 국어사전에서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라고 그 의미를 정의하고 있다. 아마도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두 배우가 절박한 마음으로 생애 마지막 할 일을 정하는 장면을.지금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다는 각오로 다시 계획을 세우자. 만약 그렇지 않으면 2016년과 2015년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16-01-06

`다움`의 가치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삼국유사 `표훈대덕(表訓大德)`편에 향가 `안민가`의 배경설화로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신라 경덕왕 24년 3월 3일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거리로 나가 영복승(榮服僧)을 한 사람 데리고 오라 명한다. 이에 신하들은 화려하게 옷을 차려 입은 승려를 왕의 앞으로 데려왔지만 돌려보냈다. 마침 누더기를 걸친 중이 지나가는 것을 본 경덕왕은 오히려 그를 기쁘게 맞아들였고 이 사람이 `찬기파랑사뇌가`를 지은 `충담`임을 알고는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할 노래를 하나 지어달라고 요청한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 창작된 노래가 10구체 향가 `안민가`다.이 시의 낙구는 `君如臣多支民隱如爲內尸等焉 國惡太平恨音叱如`로 표기돼 있다. 향가 해독의 권위자 양주동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로 해석되는 구절이다. 충담은 백성들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으로 임금이 임금다울 때, 신하가 신하다울 때, 그리고 백성이 백성다울 때 그것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무엇답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다움`의 가치와 `다움`이 지닌 힘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충담의 가르침에 따르면 나라의 태평성대는 무엇보다도 통치자의 애민의식과 민본정신이 전제돼야 한다. 그는 임금을 아버지에 비유하면서 신하를 어머니, 그리고 백성을 어린아이로 각각 비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 집안의 가장격인 임금이 가장 먼저 그 역할과 본분을 다해야하며, 더불어 어머니에 해당하는 신하들도 그들의 소임을 다함으로써 평안이 이뤄질 것임을 강조한다. 한 나라의 위정자들이 지녀야 할 기본적 소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충담이라 해서 다른 시각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점은 앞서도 언급한 `다움`의 실천에 대한 역설이다. 충담은 임금답게, 신하답게, 그리고 백성답게 각자의 소임을 다할 때 비로소 나라가 태평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어느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만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일에는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아울러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누구 한 사람만의 반성과 결단만이 요구되어서도 안 된다. 모두에게는 그것이 크든지 작든지 각자에게 부여된 소임이 있다. 본분에 맞게, 깜냥에 맞게, 각자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할 때 불협화음은 사라진다.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그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은 어떠했는지를 겸허히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에게 부여된 기본적 역할조차 완수하지 못한 채 불평만으로 가득한 삶이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로 가득 한 조직은 결단코 궁극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과연 얼마나 `답게`처신하고 있는지, `다움`의 가치에 공감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이다.상투적이긴 하지만 다사다난했던 2015년 을미년(乙未年)이 지나갔고 이제는 2016년 병신년(丙申年)의 새날이 밝았다. 새로운 시작과 더불어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한 편으로는 이 한해만큼은 부디 나라와 가정, 직장과 사업 등이 무사태평하기를 기대하고 소망할 것이다. 필자도 독자 여러분들의 모든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총선이 예정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불황의 늪에서 언제 벗어날 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안녕(安寧)과 건승(健勝)을 간절히 염원해 본다. 아울러 이러한 개인적, 국가적 소망의 성취를 위해 우리 모두 더욱 분발하는 한 해가 될 것을 기대하며, 충담의 가르침대로 `다움`의 가치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2016-01-04

2015 을미년의 회상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매년 이맘때쯤이 되면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고 연초에 다짐했던 일들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계획만 세워 놓고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건 없는지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다. 365일이라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싶었지만 막상 연말이 되어 되돌아보는 지난 시간들에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 건 비단 필자만의 회한은 아닐 것 같다. 길게만 느껴졌던 일 년이었지만 지나고 나면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지내온 듯 짧게만 느껴진다.올해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고의 아픔을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극복하자는 취지와 12간지 동물 중 가장 온순하고 무리에 잘 적응하며 공동체 생활을 잘 하는 `양`의 기운을 그대로 이어받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을미년 새해를 힘차게 시작했었다. 하지만 `중동기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라는 새로운 질병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우리의 삶과 가치관에 또 다른 변화와 충격을 동시에 안겨 줬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대처와 의료기관의 안일한 질병관리가 186명의 메르스 환자와 38명의 사망자를 불러오는 결과를 낳았으며,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을 2%대로 추락시키는 주요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문은 정부와 정치권의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면서 국회를 파행으로 치닫게 하는 또 다른 불씨가 됐다. 세밑이 되면 늘 느끼지는 아쉬움 이지만 유독 그 크기와 무게의 중량감이 과중하게 느껴졌던 을미년 한해 한국미술계와 지역미술계를 찬찬히 되짚어 본다.지난 5월 임흥순 작가가 세계 최대 현대미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위로공단`으로 은사자상을 받은 건 올해 한국미술계의 가장 큰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한국화단의 대표적인 여류화가 천경자 화백의 별세 소식이 유족들에 의해 2개월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지면서 슬픔과 아쉬움을 더해줬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중인 `미인도`의 진위여부는 그의 죽음과 함께 미술계에 또 다시 진실공방의 불씨를 붙이는 자극제가 되었다. 지난해부터 국내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단색화 작품들은 올해에도 미술시장의 훈풍으로 작용해 새로운 기록들을 만들어 내었다. 지난 16일 올해 마지막 경매를 끝낸 서울옥션은 낙찰총액 1천78억원을 기록해 1998년 서울옥션이 설립된 후 낙찰총액이 1천억원을 넘긴 것은 역대 처음이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 서울옥션의 제16회 홍콩경매에서는 김환기의 작품 1점이 3천100만 홍콩달러(약 47억2천100만원)에 낙찰되며 국내 작가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전 기록은 2007년 5월 서울옥션 국내 경매에서 45억2천만원에 낙찰됐던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였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이 46년 만에 외국인 관장으로 교체되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관장을 지냈던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Bartomeu Mari Ribas)로 교체되어 새로운 한국의 현대미술을 이끌어 나갈 예정이다.대구·경북 역시 미술계의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다사다난 했던 한해를 장식했다.2011년 5월 개관한 대구미술관이 3년 7개월만인 지난 1월초 관객 100만명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유성건설 김인한 회장이 그동안 수집했던 국내·외 유명작가 작품 456점을 대구미술관에 기증하고 재일교포 사업가인 하정웅 역시 광주, 부산, 포항에 이어 대구에 46점을 기증하는 등 미술품 기증운동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 대표적인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 대구 분관건립에 관한 협약식이 마련된 것과 경주 엑스포 공원에 건립된 솔거미술관에 한국화가 소산 박대성이 830여점의 소장품을 기증한 것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2015-12-31

교사를 위한 인성교육진흥법 제정 시급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대표적인 것이 인성교육진흥법. 우리는 2014년 4월에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큰 절망을 경험했다. 바로 세월호 참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비통함에서 좀처럼 헤어나지를 못했다. 사람들은 외쳤다. “우리는 당신들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외침은 공허한 부르짖음에 지나지 않았다. “절대”라는 말은 사람들이 자기변명을 위해 만들어 놓은 단어라는 것을 이번에도 사람들은 행동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래도 아픔이 너무 컸던 사고였기에 사고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세월호의 아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세월호 참사는 참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어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큰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그래도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국민들의 망각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망각이 때론 약이 된다지만 중요한 일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이 나라 사람들에겐 망각은 분명 독(毒)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고 있다. 아니 잊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잊은 척 살고 있다. 그러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남 탓하기 바쁘다.남 탓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무리를 잘 만든다는 것이다. 무리의 크기는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무리를 만들기만 하면 그 무리를 키워주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세력은 언론이다. 요즘은 종편이다 뭐다 해서 언론이 넘쳐나고 있다. 언론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되었던지 한탕을 터트려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언론은 작은 일에도 전문가를 앞세워 떠들어댄다. 아마도 대한민국만큼 전문가가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언론이 활동을 시작하면 제일 시끄러워지는 곳은 광화문, 서울 시청 등 서울의 광장들이다. 그런데 이 곳은 말이 광장이지 사실은 가장 어두운 밀실이다. 왜냐하면 떼로 모인 사람들은 뭔가를 외치고 있지만 그 외침은 자기들끼리만 아는 암호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밀실들이 모여 만든 광장이기에 서울의 광장들은 어둡다. 그래서인지 광장엔 촛불이 늘 들러리를 선다.올해도 참 많은 촛불들이 밀실 같은 광장에 켜졌다.인성교육진흥법! 사람들은 그 법이 칠흑 같은 교육계를 환히 밝혀 줄 촛불이라고 생각하고 그 법의 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언론은 “대한민국의 희망 인성교육진흥법 탄생”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직 일 년도 안 지났지만 사람들은 인성교육진흥법이 있는지 조차 모른다.많은 사람들은 2015년이 제발 2016년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성교육진흥법이다. 이 법은 교육계를 넘어 우리 사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법이다. 다른 법들은 다 치우더라도 이 법만큼이라도 2016년도엔 제대로 시행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 나라 선생들 중에서 예의를 아는 사람이, 또 자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참 봉사를 실천하는 선생들이 몇 명이나 될까.곧 2016년 병신년이다. 그런데 새해 시작에 앞서 걱정이 크다. 병신(丙申)년이 아니라 병신(病身)년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사를 위한 인성교육진흥법`이 조속히 제정 시행되어야 한다.

2015-12-30

사람을 볼 수 있는 눈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한 해의 끝에서 숨을 고르고 되돌아보면, 2015년도 작년과 그다지 차이 없이 일하는 기계처럼 부산을 떨며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시간들로 채워진 것 같다. 새로 맞는 해는 올해처럼 별 볼일 없이 바쁘지 않고 인간답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한 해를 시작한 지가 어제아래 같은데….며칠 남지 않았지만, 이제라도 차분하게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면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음미하기 시작하는 순간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성석제 선생님의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2000)에 등장하는 황만근과 민순정, 두 인물이다. 이 소설은 황만근이라는 인물이 실종된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황만근이라는 인물은 그 마을에서 `있으나마나한 존재이면서 있었고,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면서 지금처럼 없기도 한` 인물이다.그는 보통 사람들의 잣대로 볼 때 뭔가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장성한 아들을 둔 그를 부를 때조차 `만그이` 또는 `반그이`라고 놀리듯이 부른다. 그가 어눌하게 발음하는 단어들 또한 놀림감이 되고 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니다가 넘어진 숫자만도 백번이 넘는다는 `백분(번)`, 짧은 혀로 십원을 말할 때 `찝원(십원)`, 두 명의 사람을 칭할 때 `두 바리(마리)`등의 단어를 어눌하게 발음하는 것은 동네 사람들 우스갯소리의 재료가 될 뿐, 그가 지닌 인간적인 면을 볼 줄 아는 동네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그는 `예(禮)는 몰라도 염습과 산역(山役) 같이 남이 꺼리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을 섰고 동네 사람들도 서슴없이 그에게 그런 일을 맡겼다. 똥구덩이를 파고 우리를 짓고 벽돌을 찍는 일 또한 동네 사람 누구보다도 많이 하는`사람이다. 그는 어눌한 몸을 가졌지만, 동네의 일, 남의 일,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일처럼 도맡아 하는 진실한 사람이었다. 작가는 황만근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과 정성을 다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 틀림없으리라.여덟달만에 태어났다고 해서 팔푼이라는 별명을 지니기도 한 황만근은 매사에 진정성을 보이는 사람임과 동시에 효심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열다섯 살부터 식사, 빨래, 청소 등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며 홀어머니를 극진하게 봉양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들과 달리 아들의 불구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에게 모든 집안일을 맡기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어머니를 위해서 그가 요리에 정성을 기울이다 보니, 일류 요리사처럼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문제는 늘 일상을 함께 해온 마을 사람들이 황만근이 지닌 인간적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갓 바보같은 황만근이 없어졌다는 일이 귀찮은 일이기만 했다. 하지만 귀농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민순정은 황만근의 인간적인 가치를 알아보는 유일한 마을 사람이다.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종자기가 알아들은 것처럼. 황만근이 실종된 지 일 주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오자, 민순정이 전의 형식을 빌려 황만근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쓰고, 자신도 농촌 마을을 떠난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끝난다. 그가 쓴 황만근선생전의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듯 그 지혜로 어떤 수고로운 가르침도 함부로 남기지 않았다. 스스로 땅의 자손을 자처하여 늘 부지런하고 근면하였다. 사람 사이에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나 함께하였고 공에는 자신보다 남을 내세워 뒷사람을 놀라게 했다. 하늘이 내린 효자로서 평생 어머니 봉양을 극진히 했다. 아들에게는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였고, 훈육을 할 때는 알아듣기 쉽게 하여 마음으로 감복시켰다.`황만근처럼 진실하게, 민순정처럼 사람의 진정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삶을 추구하며.

2015-12-24

거울 뉴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12월은 빛의 계절이다. 도심 거리는 물론이고 웬만한 시골 마을도 12월 밤은 즐거움으로 환하다. 그 환함의 주체는 바로 성탄절. 이젠 특정 종교의 행사가 아닌 종교는 물론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설렘과 사랑과 감사의 날이 된 성탄절. 비록 성탄절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크리스마스. 영국의학저널에 실린 덴마크 연구 내용은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덴마크 연구진들은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사람들과 바함버그(bah humbug, 크리스마스가 싫다는 뜻으로 스크루지가 외친 말) 신드롬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뇌를 분석한 결과 전자에 속한 사람들의 뇌가 영적, 신체감각, 얼굴표정 등을 담당하고 있는 뇌 영역에서 후자에 속한 사람들보다 훨씬 활성화되어 있다고 밝혔다.혹 여러분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어떤 추억이 있으신지. 슬프게도 필자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렇다 할 추억이 없다.지난 주 수업 중 한 학생이 필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몇 살 때까지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으셨어요?” 이 질문에 필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질문한 학생만 한참을 보았다. 정말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성인이 되었어도 크리스마스는 필자에겐 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필자야 말로 덴마크 연구진들이 말하는 바함버그 신드롬을 앓고 있는 전형적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을 쓰다말고 거울을 보았다. 연구 결과처럼 크리스마스에 대해 글을 쓰고 있지만 거울 속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한 사람이 멀뚱하게 거울 밖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섬뜩할 만큼 무표정함에 놀라 얼른 시선을 거두었지만, 한 번 각인된 그 얼굴은 쉽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필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필자의 머리는 그 얼굴을 분석하고 있었다. 행복 지수 0, 웃음 지수 0, 희망 지수 0. 모든 것이 0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암담한 우리 사회와 같았다. 우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캐럴을 크게 틀었지만,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는 필자에게 캐럴은 그냥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다 문득 필자는 조금 전 거울 속의 무표정한 얼굴이 왠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필자가 가르쳤고, 또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표정이었다. 필자는 웃음기 없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서 늘 학생들만 탓 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필자 때문이라는 것을 어리석게도 이제야 알았다.거울 뉴런 효과라는 것이 있다. 거울 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뇌세포이다. 누군가가 하품을 하면 옆에 있는 사람들도 따라 하품을 하거나, 엄마가 찡그리고 있으면 아기는 엄마 표정을 보며 더 크게 우는데 이는 모두 거울 뉴런과 관련이 있다. 거울 뉴런 효과에 따르면 학생들의 무표정함은 분명 필자의 무표정함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럼 필자의 무표정함의 원천은 어디일까? 이 나라에서 정치한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다.거울 뉴런은 특히 미소, 웃음, 행복, 사랑 등을 민감하게 감지한다고 한다. 거울 뉴런이 민감하게 감지하는 행복, 사랑 등의 공통점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 사회가 웃을 일이 많지 않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웃자. 우리의 웃음으로 세상을 밝히자.1년 365일 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안된다면 적어도 세상 어둠을 밝히는 성탄의 빛이 있는 12월만큼은 우리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12월 한 달만이라도 싸움을 멈추고, 시기, 질투, 미움 등의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자. 만약 한 달이 욕심이라면 최소한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번 주만이라도! 필자는 “당신이 웃으면, 세상도 따라 웃습니다.”라는 문장을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작은 손거울 하나를 그 옆에 놓았다. 거울 안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바꾸기 위해서! 이번 성탄 선물로 거울을 선물해봄이 어떨까.

2015-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