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속에 들어와 잤다. 자다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으로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 보니 그것들과 정이 들어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아두고 기다렸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나는 그래서 황금덩이보다 강아지똥이 더 귀한 것을 알았고 외롭지 않게 되었다.”
고 권정생 선생님(1937~2007)의 수필집 `우리들의 하느님`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강아지똥`, 현재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몽실언니`까지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은 애니메이션,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도 많이 각색됐습니다. `강아지똥`도 그렇지만 `엄마 까투리`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 속 주인공은 `흰둥이가 싸놓고 간 똥, 깜둥 바가지, 벙어리,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전쟁고아, 거지, 바보, 늙은 소, 외로운 노인`과 같이 힘없고 소외된 것들입니다. 이 세상에 작고 볼품없는 것들을 향한 따스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 바로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삶과 글이 다른 작가들이 득세하는 지금, 여기에 삶과 문학과 사상이 일치했던 귀하디귀한 어른이자 작가가 바로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좋아하고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소개할 그림책은 권정생 선생님의 `황소 아저씨`입니다. 이 그림책을 선택한 이유는 작품 속에 `황소 아저씨`가 바로 권정생 선생님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추운 겨울밤, 생쥐 한 마리가 황소 아저씨네 외양간에 먹을 것을 구하러 나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동생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나온 생쥐를 보고 황소 아저씨는 연민을 느낍니다. 황소 아저씨는 생쥐 남매에게 자신의 음식과 품까지 내어줍니다. 생쥐 남매와 황소 아저씨는 사이좋은 식구가 되어 따뜻하게 겨울을 난다는 내용입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치 따끈따끈한 군고구마 같습니다. “새앙쥐들은 아저씨 목덜미에 붙어 자기도 하고 겨드랑이에서 자기도 했어요. 겨울이 다 지나도록 따뜻하게 따뜻하게 함께 살았어요.”
귀천 없이 누구나 `따뜻하게, 따뜻하게 함께` 사이좋게 사는 나라를 권정생 선생님은 꿈꿨던 게 아닌가 합니다.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남부초등학교를 고쳐 만든 `동화나라`와 권정생 생가는 누구나 꼭 한번은 가봐야 할 문학순례지가 됐습니다. 날이 풀리고 봄꽃 피면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읽고 아이들과 부모님과 함께 찾아가보려 합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황소 아저씨`를 읽으니 화가 이중섭이 떠오릅니다. 이중섭의 불우했던 삶이 권정생 선생님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이중섭이 그린 소 그림은 25점이나 됩니다. 그중에 `흰 소(1954, 홍익대 박물관), 황소(1953, 개인소장), 황소(1953, 서울미술관)가 있는데 서로 비교해서 보면 좋겠습니다. 마침 올해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라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황소 아저씨`에 생쥐 남매가 나와서 일까요? 아베 간야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연상되고 나아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오페라도 생각납니다. 서양 중세 사학자인 아베 간야는 책에서 중세 사람들의 삶과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정체를 탐색했습니다. `어린이 십자군`, `에르푸트르의 어린이 무도 행진`과 같은 흥미로운 대목이 많습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와 함께 모차르트 4대 오페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좀 다른 것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