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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스템부재 시대의 슬픈 자화상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2013년 후반,“안녕(들)하십니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형태의 대자보가 대학 캠퍼스 벽면을 장식한 때가 있었다. 학내의 불합리한 문제점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다양한 구조적 병폐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의 시선에서 바라 본 세태에 대한 풍자와 일갈이 매일매일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전 군사정권 시절의 격정과 분노로 들끓던 격문과는 또 다른 느낌의 글들이었고, 이 시대 청춘들의 고민과 절절한 호소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발걸음이 자주 멈추었던 기억이 떠오른다.그런데 그 글들은 하나같이 우리들에게 현실의 삶이 `안녕(安寧)들 하신지`를 되묻고 있었다. 알다시피 `안녕하십니까?`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인 인사말이다. 어제 만나고 오늘 다시 만났든, 아니면 오래간 만에 만났든 우리는 상대편이 아무 탈 없이 편안한지를 묻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하지만 2013년 대학가 벽면을 장식해 나갔던 글들의 주인공은 예사롭지 않은 목소리로 우리들의 안녕함을 되물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이 결코 안녕치 않은 현실임을 자신들의 소통방식을 통해 일깨우고자 했으며 그 파급력 또한 작지만은 않았다.벌써 2년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간 옛 기억을 되살리는 이유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안녕치 못하다는 우울함 때문이다. 지난 해 세월호 사건이 던져준 충격과 슬픔이 아직도 우리 국민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았는데, 지난 5일 추자도 인근에서 낚싯배가 침몰해 또 다시 많은 인명을 잃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 소식이 단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고 분노와 절망으로 번지는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이러한 사건의 연속 속에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결코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상 조건이 열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운항을 결정한 문제에서부터 구명조끼 착용을 비롯한 기본적 안전구호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우리 개개인의 잘못이다. 소위 `안전 불감증`이라 불리는 고질병을 여전히 고치지 못한 채 `나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진 순간 불행은 도둑같이 찾아들었다.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국가적 재난 시스템의 부재가 더 큰 절망과 분노로 밀려든다. 정부는 세월호 사태 이후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과거의 잘못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다시는 그 같은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조직도 개편하고 제도도 개선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래서 2014년 11월 19일 전격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이름 그대로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막강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돌고래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과연 우리 정부는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질만한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작동하고 있는지 재차 의심하게 되었다. 여전히 여기저기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도 볼썽사납다. 몇 달 전 `메르스 사태` 당시도 그랬듯이 우리는 시스템이 부재한 시대에서 살얼음판 위를 걷듯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캄캄한 밤, 사나운 파도와 싸우며 혹여나 구조의 손길이 닿을까하는 기대 속에서 서서히 생의 마지막 끈을 놓았을 이들을 조상(弔喪)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녕하지 못한 사회를 애도(哀悼)하며 정부를 향해 진심으로 호곡(號哭)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미래를 위한 초석을 새롭게 다져나가자. 진정 안녕한 사회를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의 희생은 달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천하고, 다듬어가자. 국민안전처 홈페이지에 밝혀둔 것처럼 `체계적인 재난안전 관리시스템 구축을 통하여 안전사고 예방과 재난시 종합적이고 신속한 대응 및 수습체계를 마련하기 위하여 설치`한 본래의 사명을 다함으로써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이라는 기관의 비전을 굳게 지켜주기 바란다.

2015-09-14

부모님 전상서

▲ 류영재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위원장30여년 전 파릇하던 초임시절, 시골의 작은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는데, 그 당시 예능교과 교사들의 숙명이었던 상치과목 중 `교학상장`이라 배우며 가르치던 한문시간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당시 중학교 3학년 한문교과서에 `수욕정풍부지, 자욕양친부대(樹欲靜風不止 子欲養親不待)`라는 대목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국 한나라의 학자 한영이 쓴 시경(詩經) 해설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전해오는 구절이다.`나무가 고요하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말이다. 부모님 생전에 효를 다하지 못한 한을 나무와 바람에 빗대어 풍수지탄(風樹之嘆)이니 풍목지비(風木之悲)니 하는 고사성어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 구절을 읽을 때면 언제나 부모님에 대한 사무침으로 가슴 저 밑바닥이 저릿해지곤 한다.신바람 박사로 유명한 고 황수관 교수의 까치이야기는 유명하다. 83세 아버지가 53세의 아들에게 마당에 날아 온 까치를 보며 묻는다, “저게 뭐냐?” “까치입니다”. 금세 잊어버린 아버지는 조금 있다가 다시 “저게 뭐냐?” “까치라니까요”, 또 조금 있다가 다시 “저게 뭐냐” “아, 까치라 했잖아요!”. 53세의 아들은 버럭 짜증을 낸다. 83세의 아버지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서 오래된 일기장을 가지고 나왔다. 그가 33세이던 때 쓴 일기장이다. 3세이던 아들이 “아빠 이게 뭐야?”를 23번 연거푸 물었고, 23번을 연속해서 같은 대답을 하며 기쁘고 행복해했던.위대한 화가 렘브란트가 만년에 그린 대작 `돌아온 탕자`는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무조건적이고 끝없는 사랑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불후의 명작이다. 유복했던 환경과 뛰어난 재능으로 각광 받던 젊은 시절을 낭비한 탓으로 불행한 만년을 맞이한 그가 혼신의 힘으로 작가정신을 가다듬어 스스로 어버이가 되어 집 떠난 자식을 기다리고, 스스로 탕자가 되어 어버이가 된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작품이 `돌아온 탕자`가 아닐까 한다.높은 언덕에 서서 아들이 돌아올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눈이 짓물러버린 아버지의 눈은 초점이 없게 그려져 있고, 거렁뱅이가 되어 돌아온 아들의 등을 말없이 어루만지고 있다.헨리 나우웬은 이 그림의 포스터를 보고 충격적인 감명을 받아 `탕자의 귀향`이란 책을 저술하였고, 후에 러시아를 방문하여 원작을 보고는 온종일 그림 앞을 떠날 수 없었다고 하며, 결국 하버드대학교의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인을 위하여 평생 봉사하는 삶을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고 나니 허전하여 가끔은 몹시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이들도 내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새삼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러다 방학을 하여 6개월 만에 딸아이가 집에 왔다. 없을 때는 그렇게 허전하고 그립더니 막상 나태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곁에 두고 보며 사흘이 지나니 은근한 짜증과 진심어린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시도 때도 없이 까톡거리는 스마트폰 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밤새 컴퓨터게임을 하고는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결국은 싫은 소리를 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께 야단맞은 기억이 별로 없다. 나도 그 분들께 똑같은 자식이었고 마찬가지로 철이 없었을 텐데….일찍 집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한 큰 누님이 가끔 집으로 부모님께 보내오던 편지를 몰래 읽은 기억이 난다. 첫머리엔 언제나 부모님전상서라고 적혀있었다. 나도 커서 부모님께 저렇게 편지해야지 했으나 막상 그런 편지를 쓴 기억은 없고, 부모님은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친부대`가 절실하게 가슴에 닿는다.잔소리를 듣다가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하고 닫은 딸내미가 카톡으로 자기생각을 조목조목 보내왔다. 현대판 아버님전상서인가?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이여, 아이들 철없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2015-09-10

긴급 국회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아마도 관공서, 공기업, 학교 등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긴급 국회`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요즘 들어 공문서 중에 어찌나 긴급이 많은지 공문서를 열기가 무섭다. 최근 국회의원들이 학교 등으로 보내는 공문서들은 거의가 `긴급 보고`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평상시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국회의원 공문서들이 2학기 들면서 봇물 터진 마냥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보고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여차 없이 교육청으로부터 질책 강한 독촉을 받는다. 잠들어 있던 국회가 오랜만에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 필자는 기쁨 마음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그리고 우리 교육계에 산재해 있는 긴급한 현안들을 조사하는 공문서가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공문서들을 접수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필자가 바라는 공문서는 오지 않았다. 공문서 유통과정을 보면 국회의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그냥 전국 교육청에 공문서 한 장만 보내면 순식간에 교육 통계가 만들어지니 말이다.`긴급 보고` 제목만 보면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고하라는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급히 해결해야할 교육계의 현안에 대한 조사보다 단순 통계를 묻는 공(空)문서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혹 필자가 `긴급`의 의미를 잘 못 알고 있나 싶어 긴급(緊急)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긴급·매우 중요하고 급함`사전을 찾아본 다음에서야 `긴급 보고`의 의미를 알았다. 긴급, 즉 급함의 주체는 학교나 관공서가 아니라 국회의원이었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국회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국정감사니, 행정 사무 감사니 야단들이니까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카드인 `긴급 보고`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 카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자신이 가진 특권을 쓰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랴마는 문제는 중요함과 급함 중에 급함만을 강조하다 보니 중요함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어떻게 됐든 일을 하겠다는 모습에는 정말로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정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단순한 통계를 모으기 위해 `긴급 보고` 카드를 쓰지 말고 `매우 중요하고 급함`이라는 긴급의 의미처럼 지금 교육계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서 그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데 `긴급 보고` 카드를 써 줄 것을.올 7월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학교 내 인성 범죄는 도를 넘어 섰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부탄가스 폭발 사건과 전북 고창의 어느 고등학생의 여교사 몰카 사건 등이 이를 증명해 준다. 과연 교육이 무엇인지? 학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교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왜 우리 아이들이 학교와 교육 때문에 범죄자가 돼야 하는지? 정말 우리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질문들에 대해 그토록 긴급 보고를 외쳐대던 국회는 명쾌히 답해 줄 수 있을까?우리 교육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흘러가는지 정녕 국회의원들은 모르는 걸까. 다음은 대학교 수시 전형 자료 중 하나인 자기소개서 3번 문항이다. 이 문항을 보면서 필자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3번 문항과 인성교육진흥법 제2조 2항을 같이 비교해보면 대학들이 얼마나 `긴급 보고` 카드를 가진 정부 교육 당국의 눈치를 보는지를 알 수 있다.(대입 수시 자기소개서 3번) `학교생활 중 배려, 나눔, 협력, 갈등 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를 들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성교육진흥법 제2조 2항) `핵심 가치·덕목이란 인성교육의 목표가 되는 것으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말한다`국회의원들에게 긴급으로 묻는다. 과연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 위의 질문에 거짓 없이 솔직하게 답 했을 경우 대학교 입시에 합격할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되는지?

2015-09-09

잘못 인정하는 것, 패배 인정하는 것 아니다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입추, 말복, 처서의 순으로 절기들이 지나가더니, 이젠 자연들이 제법 가을빛을 내고 아침 저녁의 기온도 제법 서늘해지고 있다. 낮아지는 기온과는 반대로 한국은 지금`사과`라는 키워드를 두고 열기가 뜨거운 중이다. 사과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이처럼 사과에는 두 개의 단계가 있다. 우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단계와 그 다음으로 상대에게 용서를 비는 사과의 단계가 그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면 우선 자신에 대한 철저한 사유가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적 사유말이다. 칸트에 의하면 `반성`은 대상 자신의 규정에 직접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우선 대상에 관한 개념에 도달할 수 있기 위한 주관적인 제약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칸트 사전)라고 한다.반성의 단계 다음은 상대에게 용서를 비는 사과의 단계로 자연스럽게 전이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반성의 마음 상태에 접어들어도 상대에게 용서를 비는 사과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미움 받을 용기`(고가 후미타케·기시미 이치로)라는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는 사과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의 심리학을 잘 말해주고 있다.철학자 : 애초에 주장의 타당성은 승패와 관계가 없어. 자네가 옳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되어야 하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권력투쟁에 돌입해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려고 하지. 그러니까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곧`패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거라네.청년 : 맞아요. 그런 측면이 있죠.철학자 : 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길을 선택하게 되지. 잘못을 인정하는 것, 사과하는 것, 권력투쟁에서 물러나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패배는 아니야. 우월성 추구란 타인과 경쟁하는 것과는 상관없네.청년 : 승패에 연연하면 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철학자 : 그래 흐릿한 안경을 쓰면 눈앞의 승패밖에 보지 못하고 길을 잘못 들게 되지. 경쟁이나 승패의 안경을 벗어야 비로소 자신을 바로 보게 되고,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걸세.위의 대화에 등장하는 철학자의 말처럼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하청옥 작가가 쓰고 김근홍·박상훈 연출가가 연출한 드라마 `여자를 울려`가 지난 주말에 불륜과 야욕 등 막장 모티프를 넘어서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등장인물들 중 강회장(이순재 분)과 나은수(하희라 분)는 지독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파렴치한 인간을 표상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막장드라마라는 평을 피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서 시청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지만, 이 두 인물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상대방에게 사과를 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오자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끝나는 것을 오히려 아쉬워했다.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목함지뢰 도발사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명백한 잘못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제스처라는 사실을 그들은 왜 모르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2015-09-07

영일만 검은 돌장어 축제

▲ 박상호수필가·공무원 늘 욕망으로 출렁이며 설렘으로 꿈을 꾸는 동해바다, 거친 파도를 헤치며 희망을 물질하고 삶의 노를 휘저어 가는 그 곳은 바다 사나이들의 청춘의 광장이요 생활의 터전이다.천 길 물속, 칠 흙 같은 어둠의 바다 밑에서 돌장어를 잡아 올리는 우리의 아버지와 형님, 아우들의 거친 손과 때와 땀에 찌든 얼굴이며 피멍 든 몸은 차라리 눈물이다.그렇다. 우리를 지탱해 온 것도 어쩌면 저 눈물 같은 이들의 사랑과 노고 때문이며, 뻘밭 같은 삶의 여정을 헤쳐 나온 목숨의 기록이 아닐까.돌장어가 또 대박을 치며 영일대를 들썩이게 했다.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열렸던 `제2회 포항영일만 검은 돌장어 축제`! 축제는 성황이었고 또, 대박이 터졌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축제장은 연일 포항 시민과 이웃에서 온 관람객들로 가득찼다.산자락을 넘어온 갈바람이 불고 휘영청 밝은 달빛이 쏟아지는 영일만 언저리에 펼쳐지는 축제의 향연은 새콤달콤하고 아름다웠으며 현란하다 못해 오히려 찬란했다.오색 창연한 포스코의 야경과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 욕망으로 뒤척이는 밤바다에 떨어지는 별, 그리고 너와 나의 배고픈 사랑이 갈증을 토해내는 곳. 해와 빛의 고장 포항만이 연출 할 수 있는 멋진 한편의 대서사시 였다.술이 좋다. 친구가 좋다. 친구도 한잔, 아버지도 한잔, 형님도 한잔, 아우도 한잔, 너도 한잔 나도 한잔, 한잔 술에 눈시울 적셔지는 그리운 얼굴들, 한잔 술에 엉엉 울고 싶도록 보고 싶은 우리 초라했던 첫 사랑의 이야기, 한잔 술에 미쳐 버릴 것 같았던 이미 가버린 사랑의 아쉬움을 달래며 유쾌하게 취해보는 아름다운 낭만이 넘쳐 나는 축제의 밤은 먼 훗날 우리들의 가슴에 빛나게 채워지는 보석이 될 것이다.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이번 축제도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효용과 생산적 가치는 물론이고 팍팍한 어민들의 삶에 기쁨과 희망과 웃음을 안겨준 진정한 축제였다.창조의 옷을 입힌 성공한 축제였다. 창조란 상상의 날개를 혁신으로 바꾸어 경제적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청정해역 영일만에서 잡히는 검은 돌장어에 `창조`라는 우리 포항시의 어젠다를 접목하여 만든 축제였다. 앞으로 1천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가져온 포항의 명품 과메기에 버금가는 돌장어가 되어 또 하나의 포항의 대표 먹거리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세상은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고 한다. 돌장어 축제는 몇 년전 부터 포항시 남구 동해면 흥환·발산리 어민들이 돌장어 작목반을 구성하여 장어를 잡고 해당 공무원들은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경북매일신문이 특집으로 시리즈로 엮어 홍보와 마케팅에 큰 역할을 했으며 포항수협은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축제는 깔끔했고 잔치는 한바탕 신이 났고 우리 모두는 즐겁고 행복했다.이제는 농수산물도 과학과 ICT를 접목하여 더 큰 시장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우리 모두 창조의 길을 물어물어 창조의 꽃이 활짝 피는 포항을 만들어 웃음 꽃 벙글어지는 행복한 도시를 만들자.

2015-09-04

대구역의 어제와 오늘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대구에는 현재 두 개의 기차역이 운영되고 있다. 사통팔달 교통망 구축으로 내륙교통의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는 동대구역과 도심권 중심부에 위치해 편리함을 더해주는 대구역은 우리민족의 굴곡진 역사만큼이나 깊은 사연을 간직한 채 오늘도 수많은 여행객들의 왕래가 이어지고 있다. 1969년 영업을 시작한 동대구역보다 60여년 앞서 건립된 대구역은 일제강점기 우리의 아픈 역사만큼이나 힘겨웠던 사연들을 간직한 채 변모해왔다. 2003년 대구역은 민자 역사 개발계획에 의해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외지 유통업체에 의해 대구의 내수시장이 잠식된 첫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에서 드러난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은 재계 순위 5위인 롯데백화점에 대한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줬다. 유통업계 공룡기업이 보여준 부도덕한 모습과 일본기업에 대한 반감 등은 롯데백화점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정도로 그 여파는 컸다. 이렇게 일제강점기부터 영남지역의 자본이 고스란히 일본으로 유출되던 창구역할을 했던 대구역의 옛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1905년 건립되어 올해로 110년이 된 `대구역(大邱驛)`의 긴 역사를 잠시 되돌아보면 현재 대구역이 위치해 있는 도로의 이름은 태평로이다. 여기에서 `태평(太平)`이란 말은 대구 시민의 태평성대를 바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 대구에 식민지 자본이 가장 먼저 점령한 지역이기도 하다. 1903년부터 경부선 공사로 대구역 주변과 중심가 일대의 토지들을 매입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1904년 1월 경부철도 남부공사 건설사무소가 설치되면서 1천500여 명이 대구에 거주하게 되었다. 경부선 공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철도공사를 수주한 회사들과 800여 명의 노동자들은 대구거류민단을 조직하여 시가지 쪽의 철도용지 6천800여 평을 차용하고 2천여원의 재원을 확보해 각종 철도 부대시설을 짓고 역전 도로광장도로가에 상점을 개점해 상권을 발전시켜 나갔다. 하지만 1913년경에는 정거장 확장을 위해 모두 환수되고 말았다. 대구역을 중심으로 태평로 좌우는 1910년대 중반에 도로가 개설됐으며, 대구역에서 경북도청(경상감영공원) 사이의 길들은 1913년 개척됐다. 그리고 대구역에서 반월당을 횡단하는 중앙통은 1917년 개설돼 현재의 중앙로가 된 것이다. 1924년에는 대구역 전면 동서방향의 대로가 금정통(태평로)으로 새롭게 조성되면서 중앙로 쪽으로 일본인들의 근대 상권이 하나 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또한 대구역 광장에서 동성로까지의 연장 도로들도 같은 해에 완공돼, 경부선 대구역을 중심으로 물류중심 기지가 형성되는 발판이 됐다. 태평로는 자본이 결집된 기업들이 많아 1920~30년대에는 좌익노동운동이 성행했으며, 1930년 마루보시 운송회사의 파업과 해방직후인 1946년 10월 항쟁은 대구를 격동의 현장으로 몰아넣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경부선 개설과 동시에 대구의 경제권은 부산에 의해 지배당했다. 모든 물류들이 부산을 거쳐 대구로 들어 왔으며, 1920년대가 넘어야 일본의 오사카와 교토와 직접 교류하는 노선이 대구역을 통해 구축됐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교류와 함께 우리의 자본과 자원들이 고스란히 약탈됐던 대구역의 역할과 기능은 10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별반 변화된 모습 없이 당시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가는 듯해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2015-09-03

끊어진 계층 이동 사다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타오름달답게 정말 대한민국이 활활 타올랐던 8월이 가고 맺음달이 왔다. 8월의 이글거리던 태양을 한껏 삼킨 사과나무들이 가지마다 태양보다 더 붉은 결실을 준비 중이다. 개망초에 둘러싸인 달맞이꽃은 마치 결실의 계절을 축하하기 위해 봄이 미리부터 준비해 둔 꽃다발 같다.결실의 계절은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교육활동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 있다. 그런데 이 계절은 자연과는 다르게 너무 혹독하다. 그것은 바로 고입, 대입으로 불리는 입시철! 입시 지옥이라는 말처럼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피를 말리는 입시! 모든 수험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합격의 문을 꼭 열기를 기원한다.필자가 있는 산자연중학교도 고등학교 입시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원서를 낸 곳은 `특수 목적 고등학교`다. 그 학교는 많은 학부모들이 입학을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학교이다. 그 과정에서 사교육의 도움도 적잖이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가 원서를 쓴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당황스러워했다. 어떤 사람은 대안학교에서 어떻게 그런 학교에 원서를 쓸 수 있느냐고 노골적으로 물어보기까지 했다.이와 비슷한 질문을 원서접수창구에서도 받았다. 필자는 원서접수를 위해 직접 해당 학교에 갔다. 접수창구는 한산했다. 준비해 간 원서를 접수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창구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접수를 하던 사람이`이 건 뭐지`하는 표정으로 몇 번이나 원서를 살피더니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혹시 학교 이름이 바뀌었습니까?” “아닙니다” 짧게 답했다. 원서와 자신의 컴퓨터를 번갈아 보던 접수원이 말했다, 자신들의 통계에는 산자연중학교가 없다고.필자에겐 익숙하다 못해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겪는 통과의례가 되었기 때문에 차분하게 학교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설명 끝부분에 필자는 힘주어 말했다. “산자연중학교는 올해 경북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 중학교 부문에서 경상북도 최우수교로 뽑힌 학교입니다” 그랬더니 마지못한 소리로 “아, 네!”라고 한다. 원서 접수를 끝내고 학교로 오는 내내 필자는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벌 지상주의에 치를 떨었다.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이번 주에도 원서를 쓴다. 꿈과 개성이 강한 학생들답게 고등학교 원서도 획일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특성에 맞게끔 다양하게 쓴다. 너무 다양한 입시 전형을 분석한다는 것이 조금 힘겹지만 그래도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8개 시도의 고등학교 원서를 쓰고 있다.그러다 문득 필자가 원서를 쓸 때를 생각해보았다. 분명 요즘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이야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끼로 고등학교를 선택하지만, 필자 때만 하더라도 원서를 쓰는 기준은 점수였다. 점수는 곧 그 학생의 성공 척도였다. 많은 학생들은, 특히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은 피나게 노력하여 점수를 높였고, 그것이 곧 성공으로 이어졌다. 연말이면 항상 텔레비전에 대입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학생의 인터뷰가 나왔다. 주인공은 대부분이 열심히 일하지만, 항상 경제적으로 힘든 집안의 학생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자신들도 용꿈을 꾸었다.그런데 이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라고 한다. 신분 상승의 통로였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세습(世襲)에 의해 끊어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슨 세습이냐고 하겠지만, 실제적으로 현대판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부모의 학벌과 직업은 물론 경제 사정까지 세습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돈이 돈을 낳는 시대에는 절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 꿈이 부재한 시대, 꿈이 상실된 사회, 노력할 가치가 없는 나라! 참 슬프다!끊어진 계층 이동 사다리를 다시 잇기 위해서는 진정한 학벌 지상주의가 없어져 대안학교도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15-09-02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성숙한 평화교육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한여름의 무더위가 점점 기세를 높여가던 8월 초 북한군에 의해 매설된 것으로 추정된 목함지뢰의 폭발로 우리의 젊은 병사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다. 비록 사건이 발생된 시점보다 일주일이나 지나서 국민들에게 알려지긴 했지만 이때부터 우리 정부의 대응 수위도 점차 높아져 급기야 북이 그토록 민감하게 생각하는 대북방송이 재개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후 우리 측의 대북방송장비를 향해 발사된 북의 포격과 이에 맞대응한 우리 군의 포격으로 남북 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다행히 장시간의 회담을 통해 남과 북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고 이제야 한숨을 돌린 듯하다.이번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흥미로운 장면이 몇 가지 있다. 예전 같으면 어김없이 `사재기`열풍이 휩쓸고 지나갔을 텐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단다. 워낙 여러 번 반복되는 상황이다 보니 이젠 `양치기 소년`처럼 무감각해져 버린 탓인지 모를 일이나 국민들이 보여준 침착한 대응이 사뭇 흥미롭다. 또 하나는 우리 사회의 이념 대립과 남남갈등이 예전처럼 첨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권 일부에서,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전혀 그런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무슨 일인지 쉽게 불씨를 살리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관심을 끄는 부분은 20대 청년들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이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이 기간에 총 88명의 병사들이 전역을 연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수의 예비역 젊은이들이 소집에 응할 의지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러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북으로 하여금 예전과 다른 대응 자세와 회담 태도를 보이게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여하튼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더더욱 절실함을 느낀 것이 통일의 필요성이고, 그러기 위해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평화 교육의 절심함이다. `통일은 대박`이라 말한 대통령의 의지는 차치하더라도 통일에 대한 건전한 담론과 통일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는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일방향적 통일교육이 아닌 평화의식에 바탕을 둔,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아우를 수 있는 쌍방향적이고 심화된 통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분과별로 통일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중에서도 국민들의 통일의식과 평화의식을 성숙시키기 위한 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초중등교육과정에서는 나름의 통일교육이 시도되고 있다. 교육부 주관의 `통일교육주간`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통일교육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은 초중등과정에서만 다루어질 성질은 아니다. 대학교육과 시민교육에도 그에 합당한 평화교육과 통일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몇몇 대학들도 통일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분단의 역사와 통일의 필요성, 그리고 이를 위한 준비 등을 고민해보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시도로 평가된다. 필자가 속한 대학은 좀 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통일교육을 시작했다. 한국의 어느 대학도 시도치 않은 통일·평화교육을 올해 입학한 신입생 전체를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경북 문경시에 문을 연 학교 연수원을 `숭실통일리더십연수원`으로 명명한 후 매주 15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3박 4일 동안 진행하고 있는 통일교육은 학생들 스스로에게 미래 통일 한국의 비전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언제쯤 통일의 그날이 올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멀지 않은 때에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다수의 국민들은 기도한다. 그 과정 속에서 또 이번과 같은 아프고 두려운 경험을 몇 차례나 더 겪어야 할런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숙한 평화교육을 바탕으로 통일의 그날을 하루하루 준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2015-09-01

문지방 효과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사람의 일생에 대한 연구 중 흥미진진한 연구들이 많이 있다. 여러 연구들 중에서 필자는 사람들이 일생 동안 쓰는 시간 비율에 대한 연구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마이클 포티노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70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사람들이 잠을 자는 시간은 23년, 일하는 시간은 18년, 욕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7년, 식사하는 데 쓰는 시간은 8년, 줄서거나 기다리는 시간은 5년, 화를 내는 시간은 2년, 그리고 웃는 시간은 대략 89일 정도라고 한다. 물론 개인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이 통계가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특히 웃는 시간을 보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참 씁쓸하기까지 하다. 고작 89일을 웃기 위해 아등바등 산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지기까지 한다.시간 비율 중 특히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시간이다. 혹 여러분들은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것을 찾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을 쓰는지? 포티노의 연구에 따르면 이 시간은 인생에서 약 1년 정도라고 한다.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1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뭔가를 찾는 데 보낸다. 필자는 이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보지만 매번 헛수고다. 필자의 부주의에 의해서 어디에 놓았는지를 생각해내지 못했기에 모든 서랍을 송두리째 쏟아 부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물론 잊거나 잃는 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오히려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훨씬 낫다. 또 잃어버린 것이 계기가 되어 훨씬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잊거나 잃으면 결코 기분이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을 찾아야 하고, 그 시간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가브리엘 라드반스키 심리학 교수는 이런 건망증을 문지방 효과로 설명하였다. 문지방 효과란 한 마디로 말하면 “뭘 하려고 했더라?”이다. 가장 쉬운 예로 서랍을 열었는데 왜 열었는지를 모를 때, 또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갔는데 왜 갔는지를 모를 때이다. 즉 문지방을 넘으면서 그 전에 생각하고 있었던 목적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문지방 효과다.지금 우리나라 전체가 문지방 효과에 빠져 있다. 정부는 물론 교육계, 노동계, 경제계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분야들이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많은 어려움에 처했었고, 또 그것을 이겨냈다. 그런데 그것들이 우리에겐 문지방이 아니었나 싶다. 한 단계를 넘을 때마다 우리는 그 전 단계에서 생각했던 간절했던 것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뭔지를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경제 전문가들은 전 세계 경제가 신(新) 금융 위기에 처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굳이 세계까지 범위를 넓히지 않더라도 최근 우리 금융 시장만 보더라도 분명 외환위기와 같은 긴박한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자기 말하기에 바쁘다. 안타깝게도 말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사람이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상황이다. 연구자들은 문지방 효과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지 말 것!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할 것! 메모를 할 것! 여유를 가질 것!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내어 산책을 할 것! 목표 의식을 가질 것! 이 외에도 참 많은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모두가 다 좋은 방법들이다. 여기에다 필자는 하나의 방법을 더 추가 하고 싶다. 그것은 본질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뭔가를 찾는데 더 이상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지?

2015-08-26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요즘 공중파, 케이블 가릴 것 없이 채널을 돌리면 여기저기서 `지지고 볶느라` 난리다. 지지고 볶는다고 하니 언뜻 부부싸움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말 그대로 불 위에서 온갖 재료를 지지고 볶아 언뜻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고 입 안 가득 군침을 돌게 만드는 음식의 향연이 화면 가득히 펼쳐진다. 이른바 `쿡(cook)방`, `먹방`이 대세다. 덩달아 쉐프(chef)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하얀 옷에 앞치마를 팽팽히 두르고 번뜩이는 칼로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펼칠 때 모두들 넋을 놓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어느 순간 일상의 식사는 뭔가 특별한 문화로 둔갑했고, 그냥 주방장으로 대수롭잖게 여기던 직업이 `요리사`, 혹은 `쉐프`로 불리며 전문가 냄새를 풀풀 풍긴다. 그런데 이러한 먹방, 쿡방 전성시대에 오랜 세월 내 입맛을 책임져왔던 한 무명 쉐프가 이 바닥을 떠났다.“할매 → 집으로”모든 것이 미흡했음에도 꽉 차고 넘치도록 시골집을 성원해준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한 긴 세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나는 손자들과 노닥거리며 세월을 보내겠어요.- `시골집`할매할매가 작별을 고했다. 사전 예고도 없이, 내려진 셔터 위에 간단한 작별 인사 몇 마디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학교 앞 즐비한 식당들 가운데 비교적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왔던 `시골집` 일등 쉐프 할매가 “할매→집으로”로 시작하는 안내문 한 장 달랑 남긴 채 무림의 고수가 사라지듯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입맛이 없을 때, 뭔가 자극적인 맛으로 정신이 번쩍 들고 싶을 때 찾던 그 허름한 식당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급이라는 표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집이었다. 필자가 대학생 시절부터 빈약한 호주머니 사정에 근근이 한 끼 때우던 집이었기에 애초에 품격, 분위기, 청결은 기대할 수 없었다. 삼십 여 년 세월을 인테리어라는 것과는 무관하게 지내온 말 그대로 `시골집`이다. 웰빙은 더더욱 사치다. 건강 생각에 덜 짜게, 덜 맵게, 친환경 재료 운운 하는 시대에 이 집은 그 반대의 길을 꿋꿋이 걸어왔다. 더 짜고 더 매운 자극적 음식으로 나름의 단골을 확보하고 있었다. 친절과도 한참 거리가 멀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드나들었지만 할매와 그리 정감어린 대화를 주고받는 손님은 보지 못했다. 여럿이 가서 이것저것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할라치면 단박에 면박을 준다. 한 가지로 통일하란다. 때로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거나 말거나 아랑곳 하지 않고 벌이는 주인장 내외의 부부싸움은 특별히 제공되는 눈요깃거리다.그런데 그 할매가 사라졌다. 연세가 많이 들긴 했다. 언젠가는 간판을 내릴 때가 오리라는 예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홀연히 떠나버린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거기다 그 허름한 건물이 이제 재건축에 들어갈 예정이라나? 세월의 흐름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누가 감히 거역하고 맞설 수 있으랴. 그래서 할매는 `집으로` 갔다. 밀려드는 세월의 무게를 거스를 수 없어서, 그리고 새것이라는 변화의 물결에 더 이상은 맞설 수 없었기에 긴 인생의 자취를 뒤로 한 채 우리들 곁에서 떠나갔다.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떠나보낸다.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에 밀려드는 아쉬움은 어찌할 수 없는 애상이다. 내 인생 최고의 쉐프를 떠나보내며, 언제나 내 시들해진 식욕을 감쪽같이 되살려내던 지상 최고의 음식을 더 이상 맛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잠시나마 상념에 빠져든다. “할매, 굿바이!”

2015-08-25

근대화가 이쾌대의 귀환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얼마전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서 마련되고 있는 `이쾌대 회고전`을 보고 왔다. 20년만에 접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그동안 기억 속에서만 가물가물하게 남아있던 그의 작품들을 새롭게 각인할 수 있는 뜻 깊은 전시회였다. 필자와 이쾌대와의 인연은 20여년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 방송사의 개국 기념 특별전 기획 의뢰를 받고 제일 먼저 추천했던 작가가 이쾌대였다. 지역을 대표하는 근대작가로 전혀 손색이 없다는 점과 88년 월·납북 예술인 해금조치 이후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회고전이 마련되지 못한 터라 대구에서 꼭 한번은 내손으로 마련하고 싶었던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전시 기획에 따른 모든 여건들이 요즘처럼 넉넉하질 못했다. 대형전시에 따른 예산과 운반차량, 장비, 복원기술 등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구전시를 위해 흔쾌히 작품 모두를 빌려주셨던 유족들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저 고맙고, 죄송스럽게만 느껴진다.짧은 큐레이터 경력에 무조건 전시회를 유치해 보려는 욕심을 너그러운 배려로 수용해주셨던 유족들이 필자에게 정말 큰 경험이었고, 공부였다.광복 70주년과 작고 50주년을 마련해 기획된 이번 이쾌대의 회고전은 한국근대미술사에 있어 그의 명성과는 달리 아직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존재로 여겨질 것 이다. 그는 1913년 1월 16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서 대지주인 아버지 이경옥과 어머니 윤정열의 이남 사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 그의 부친은 대한제국 시절 창원고을 원을 지내기도 했던 대지주였다. 그의 형 이여성은 한국 복식사 분야를 개척한 학자이자 진보적 민족주의 정치가였으며, 제국주의의 폐해를 고발한 언론인이자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역사화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1921년 이쾌대는 칠곡군 신동소학교에 입학했다가 1923년 대구 수창보통학교로 전학하여 1928년 졸업했다. 당시 수창초등학교에는 대구의 대표적인 서양화가 이인성이 같은 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 후 그는 서울 휘문고보로 진학 하여 1학년 담임 이였던 미술선생 장발을 만나면서 미술과 본격적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하며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귀국한 그는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이쾌대의 작품들은 화가의 삶을 꾸미거나 신화화할 필요 없이, 작품 자체가 크고 진한 울림을 전해 준다. 그 울림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나 그 자신을 둘러 싼 신화적 세계 속의 위대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겪어낸 삶과 그려낸 세계가 우리들에게 까맣게 잊고 지내 온 세계를 충격적으로 보여준다는 데서 나온다. 아마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현대미술은 중요한 부분을 잃어 버렸을 것이다. 특히 해방공간이라는 짧은 기간, 그렇지만 가장 뜨겁게 타 올랐던 격동적인 삶의 현장들을 그의 작품을 통해 일부나마 되찾게 되었다.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스케일과 구도는 오히려 낯설 정도로 생소한 충격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우리의 현대미술이 지니고 있는 갈등과 모순과 혼란을 깊은 감동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작품들은 1920~30년대 향토주의를 비롯한 민족주의 논쟁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했으며, 어찌 보면 1980년대를 풍미했던 리얼리즘 미학에 하나의 역사적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2015-08-24

IP금융? 지식재산 금융!

▲ 정연용경북지식재산센터장 미국 특허등록 22년간 랭킹 1등 기업인 IBM은 특허 자산을 재정비한 후 라이선스 수입이 연간 10억 달러 이상이며, 심지어 TI의 경우는 공격적인 라이선스 정책으로 40억 달러 이상의 로열티를 벌어들인 사례가 지식재산의 가치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땅이나 주택과 같이 부동산을 담보로 받았던 대출과 같이 특허를 담보로 하여 대출을 받을 수 있듯 지식재산 즉 IP를 중심으로 거래되는 각종 금융 활동을 IP금융이라고 한다.크게 보면 특허 전문기업에 의한 재무적인 투자도 IP금융에 포함된다.전자는 기업의 재무 여건이 열악하더라도 우수한 특허를 보유한 중소기업에게도 IP를 평가하여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금융을 의미한다.후자는 기업이 관련 지식재산을 아예 펀드에 넘겨서 펀드가 지불한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을 운영하게 되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게 되면 다시 지식재산을 다시 매수하는 것도 가능하다.세계 IP금융 시장은 무럭무럭 성장하여 약 12조원에 달하고 있는데, 그 중 절반인 6조원은 보유한 특허를 제품 생산에 활용하지 않고 특허 라이선싱 및 침해 청구 등에서 IP를 활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NPE)인 IV(Intellectual Venture)에서 운영하는 규모이고, 현재 20여 개 이상의 대규모 IP 펀드가 활동 중에 있다.국내 IP금융의 운용 면을 살펴보면, 기술보증기금의 기술가치 연계 보증에 의한 보증, 개발기술사업화자금에 의한 융자, 산은캐피탈에 의한 특허기술사업화 펀드나 산업은행 테크노뱅킹에 의한 투자 등의 공공분야 유형과, 특허관련 펀드나 콘텐츠관련 펀드에 의한 민간분야 유형으로 구분된다.이와 같이, IP금융은 우수한 기술을 보유했으나 연구개발비 또는 운영자금 등의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에게 보유한 지식재산권의 가치를 평가하여 IP금융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기업은 기존의 기업의 신용도로만 고려하여 대출하던 방식과는 달리 우수한 지식재산권을 신용대출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은 IP가치평가 보증 지원으로서 기업 당 10억 원 한도 내에서 보증하고, IP담보대출 지원은 산업은행이 최대 20억 원 까지, 기업은행은 최대 10억 원 까지 대출해준다. 국민·우리·기업·산업은행 등 참여한 모태펀드 특허계정의 일부 펀드로 대출부실기업의 담보 IP를 매입하여 처분할 수 있다. IP가치평가에서 기술보증기금 등 10개 기관이 지정, 운영되어 오다가 지난 5월에 민간평가기관이 2개 기관이 추가되어 12곳이 되었다.특허청의 경우, IP가치평가제도를 통해서 2013년 212개 기업에 759억 원, 2014년에는 303개 기업에 1658억 원의 자금을 연계 지원했으며, 2015년에는 400개 기업에 2000억 원 규모를 지원한다는 계획 중이다.모태펀드 특허계정을 통한 IP기반의 투자 활성화면에서 보면, 출자금 1600억 원을 종자돈으로 31개 조합을 결성하고, 지난 6월 누계 기준으로 총363개 기업에 5889억 원을 투자하였다.따라서 연구개발자의 RD를 활성화시키고, 연구된 결과인 IP거래도 활발히 이루어져 특허 등 우수한 지식재산을 가진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자금 운용의 관점에서 IP금융을 적정하게 관리한다면 죽음의 계곡이나 다윈의 바다가 단지 두려운 대상은 아닐 것이다.

2015-08-21

2학기 교육 발자국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대부분의 학교들이 불볕더위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거나, 준비 중이다. 개학(開學)을 사전에서는 “학교에서 방학, 휴교 등으로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수업을 시작함”이라고 정의한다. 방학이 사전의 의미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면 개학은 “다시 시작함”이라는 사전의 의미를 잘 지키고 있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 여름을 이겨내고 학생들은 다시 학교로 보였다.개학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개학을 검색하다 놀라운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신 나는 개학 날`. 당연히 우리나라 책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마 이런 제목으로 책을 냈다가는 분명히 학생들로부터 돌팔매를 맞거나 좀 지나치면 허위사실 유포 죄로 고발을 당할지도 모른다. 학생, 학부모, 더군다나 교사들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개학이 이 나라 교육 현실이다.학교 수업을 잠시 쉬는, 물론 고등학교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방학 동안 우리 학생들은 더 바빴다. 비록 선행 학습 금지법 등이 있지만 학교에서 선행 학습을 하는 판에 이 법이 지켜질 리 만무하다. 그래서 방학은 과외나 학원 등 사교육계에서는 대목이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 학생들은 방학 동안 사교육의 도움을 받으면서 개학 준비를 했다. 그러면 교사들은 개학 준비를 제대로 했을까. 물론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과 자신을 위해, 더 나아가 이 나라 교육 발전을 위해 방학 동안 끊임없는 자기 연찬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교사들이 그렇지 않기에 이 나라 교육이 지금처럼 붕괴되지 않았을까. 언제부터인가 방학은 단절과 결별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단절의 대상은 학생과 교사! 일반적으로 결별의 시간은 대상자 간에 아쉬움과 그리움의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는 절대 그렇지 않다.어떻게 된 것인지 우리나라의 교사와 학생들은 서로로부터의 단절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사 간의 이런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바로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좋든 싫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보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봐야 한다. 기왕 봐야할 사이라면 서로 좋은 모습으로 볼 수는 없을까.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자유학기제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살벌한 교육 현장에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도무지 결과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좋은 교육 제도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수식어만 붙으면 그 모양이 180도로 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광복 70주년은 곧 교육 광복 70주년이다. 속이야 어떻게 되었던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은 외건 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경계 규모 세계 13위 등 여러 가지 수치만 보면 대한민국은 분명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교육은 어떤가. 광복 70년 동안 교육계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다지도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할까.대통령께서는 교육을 비롯한 4대 개혁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계속 외치고 있다. 그리고 교육 개혁의 방법으로 창조 교육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것은 청와대와 방송국 안 마이크에서만 맴돌 뿐이다. 규제 철폐를 외칠수록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가 더 생겨나고 있는 이 모순된 현실을 대통령은 정말 모르실까.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시작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과정도 결과도 판이하게 달라진다. 집단에는 그 집단을 이끄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 따라 집단의 존폐가 결정된다. 우리나라 교육계에도 교육을 이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발자국 남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말한다, 무조건 자신만을 따르라고. 정말 우리가 믿고 따를 교육계의 수장이 곧 나타나기를 바란다.

2015-08-20

젊은 예술가의 초상

▲ 강민건대구대교수·영어교육과 그늘이 아프게 품고 있는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이들의 삶은 얼마나 질퍽할 것인가? 최근 한 무명 연극배우가 단칸 고시원 방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며칠 동안 그 죽음이 방치되었다는 사연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어느 집단이든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야만 그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고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사회라곤 하지만,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까지 버리고 매일 소주로 비루한 삶을 위로해야 했던 한 예술가의 죽음은 한쪽으로만 쏠려 있는 자본주의의 시선에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 생각 없이 내뱉는 `예술가는 가난해야한다`는 근대적 경구가 공허하게 들리는 순간이다. 그 가난의 이름은 몸의 가난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의 창조성에서 기인한다. 그러기에 가난의 아름다움은 예술이라는 진실의 아름다움이자, 가난을 용인하고 강요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카르텔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예술적 용기인 것이다. 가난을 확인하고 수용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너그러움과 용기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한 예술가의 죽음 앞에서 가난의 아름다움과 예술의 진실은 한 개인의 가난일 뿐이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정당한 논리가 되 버렸다. 예술적 가난의 창조성은 이제 현대사회가 조장하는 철저히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가난 앞에서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그는 연극판이라는 열악한 예술의 노동환경과 저임금을 감수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사랑하는 것들을 희생해야만 했다. 저주받은 존재인 가난한 예술가에게 천박한 물신주의 가치관으로 무장한 이 사회는 싸늘한 멸시와 천대의 눈길을 보냈다. 생존을 위한 그의 위태로운 몸짓은 그 삶만큼이나 비참하고 외롭게 끝이 났다. 간혹 그가 `우리도 인간이다`라고 절규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 말할 때, 이 퍽퍽한 사회는 그에게 `그럴 여유가 없다`며 외면하도록 했다. 이는 이 예술가의 죽음이 개인의 죽음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죽음이라고 말해야 하는 까닭이기도하다.“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던 것을/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내 자신이 미워졌다”고 절규하던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시구절처럼 우리는 어느새 자본주의의 그늘아래에서 `강한 자`로 살아남기 위해 가난한 예술가들을 자본주의 희생의 첨병으로 내몰고 있지만, 우리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인간적인 자본의 머슴 처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우리의 인간성은 더욱 마모되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최소한의 `내 자신이 미워지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같은 개인의 정서적 합리화조차도 메마른지 오래다.오지도 않을 희망을 기다리며 어둡고 추한 시간을 견디어 내는 사람들에게 하루의 노동은 얼마나 고단한 것일까. 시퍼렇게 머리는 살아 있는데 당장 끼니를 걱정하며 엉거주춤 허리가 휘어가는 이들에게, 꺼지지 않는 도시의 찬란한 네온사인들과 아파트의 불빛은 어떤 시선으로 다가올까?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단칸방에서 전기세가 밀려 추위에 떨며 소주로 추위를 달래며 아시잠에 시달렸을 이 예술가에게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애당초 내일을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긴 노동의 품삯을 기대했던 그에게 예술이란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세상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그의 가슴을 곡괭이질처럼 후벼내어 운이 좋아 오래 살아남은 우리는 무엇인가.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끼어들지 말라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침묵을 강요하는 이 사회는 무엇인가.`의미`와 `무엇들`을 자문하는 동안, 연극 무대에 있어야 할 이가 생계를 위해 노동 현장에서 막노동을 전전했을 그를 떠올리다, 갑자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지겹고 사치스러워지기 시작한다.

2015-08-18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염치`를 깨워낼 때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일컬어져 왔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이렇게 불리기를 즐겨했었다. 그런데 굳이`즐겨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못 박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과거에 비해 이 표현을 입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강해서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우리 모습들이 과연 `예의`를 입에 올릴 상황인지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예의에서 벗어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저질러질 뿐더러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예의에 벗어난 일인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이다. 이로 인해 일상에서는 사소한 다툼으로 낯을 붉히는 일에서부터 법적 다툼으로까지 비화되는 심각한 상황까지 벌어지기 일쑤다. 이런 지경이니 어찌 동방예의지국을 쉽사리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우리 민족을 동방예의지국으로 부르게 된 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說)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약 2300년 전 공자(孔子)의 7대손 공빈(孔斌)이 썼다고 알려진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따르자면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그 나라는 크지만 교만하지 않고 그 병사는 강하나 침략하지 않는다. 풍속이 순후하여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고 먹는 자는 밥을 미루고 남녀는 따로 거처하니 가히 동방 예의(禮儀)의 군자국이라 하겠다. 이런 까닭으로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시면서 `누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출처: 대종 언어 연구소 기자관련 논고 중에서 재인용)교만하지 않으며, 비록 강하다 해서 약자를 함부로 헤치지 않는 성품을 지녔었다. 또한 양보의 미덕과 체면을 중시하는 순후한 풍속을 지닌 민족이었다. 하지만 공자께서도 살고 싶은 곳이라고 말했을 정도의 나라 체면이 지금은 말이 아닌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최근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이른바 `인분 교수` 논란만 하더라도 그렇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차치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자질을 의심케 하는 충격적 사실이 매일 매일의 보도를 통해 전해질 때마다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에 낯을 들기 민망하다.도덕이 땅에 떨어진 우리 사회의 극단적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불과 얼마 전 우리 문단의 대표 작가가 보여준 표절 논란과 그에 대한 대응방식의 변변치 못함도 그러하고, `××남` `××녀` 딱지를 붙여 오르내린 여러 사태들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여과 없이 들춰내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인분 교수 논란과 마찬가지로 최근 한국의 대학사회는 연이어 터져 나온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치권과 각계 지도층의 비위를 들춰내자면 입이 아플 지경이니 아예 말하지 않으련다. 더 심각한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의 인륜마저 무참히 허물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면하면서 `동방예의지국`의 찬사가 흘러간 유행가 가사처럼 아련하게 느껴짐에 서글픔이 밀려온다.국어사전에서 염치(廉恥)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 풀이되어 있다. 그래서 체면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에게 우리는 `염치없는 놈`이라 손가락질한다. 우리 모두가 성인군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우리 모두의 내면에 깊이 잠자고 있는 `염치`란 놈을 깨워내고 불러낼 때가 지금이라 생각한다. 염치만 있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그래도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두렵기도 하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과연 염치 있는 놈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슬그머니 고개 숙여진다.

2015-08-17

광복, 신화, 창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8·15가 종심(從心)을 맞이한다. 70년! 공자는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이대별로 성취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志學), 30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而立), 40세에는 미혹됨이 없었고(不惑),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知天命), 60세에는 귀가 순하여 남의 말을 듣기만 하여도 이해하게 되었고(耳順), 70세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從心).”종심을 어느 책에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또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여도 어떤 규범이나 법도·제도·원리 등을 벗어나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하든 일정한 법도가 있다는 뜻이니, 바로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이름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광복 70년을 맞은 우리나라의 모습도 과연 이와 같을까.공자는 종심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생의 단계와 각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을 알고 꼭 행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리고 종심의 첫 단계로 공자는 뜻을 세우는 지학(志學)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뜻은 곧 길이요, 목표다. 그래서 지학이란 나아가야 할 길, 즉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우리 정부는, 우리 국민들은 과연 우리가 가야할 길, 우리가 성취해야 할 목표를 알기나 할까.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나아가 이 나라는 목표부터가 너무 헛되거나 추상적이다. 왜냐하면 나라와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줘야 할 학교 교육이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다. 방향을 잃은 학교에서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길을 찾기는커녕 길과 더불어 방향감각까지 상실해버렸다. 물론 “지금의 경제 성장이 교육이 아니었으면 가능이나 했습니까?”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필자는 묻고 싶다, 과연 경제 성장, 즉 돈이 우리의 최종 목표인지? 또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가족 간 쩐의 전쟁을 펼치고 있는 어느 대기업을 보고도 우리 교육이 할 도리를 다 했다고 보는지?70년 전 우리는 제대로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그 때 우리가 연 판도라 상자 안에는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 반목, 시기, 편견, 불평, 불만, 배신, 질투, 시기, 전쟁 등이 들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지금 우리나라가 이토록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가족이든 누구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짓밟고야마는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정치와 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 프로메테우스(앞을 보는 자)의 동생 에피메테우스(후에 생각하는 자)의 후예들일 것이다. 아니고서야 누가 지금 이 혼돈스러운 나라의 모습을 보고 이 나라가 광복 된지 70년이 된 나라라고 생각할까.70년 전 우리가 연 판도라 상자 안에는 희망이 남아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비록 실제로는 없더라도 우리의 판도라 상자 안에도 꼭 희망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그런데 다행이도 그 희망이 조금 보인다. 희망은 개혁(改革)이라는 말로 이름을 바꾸어 우리 앞에 있다. 개혁이 곧 희망이기에 역대 정부는 위기 때마다 개혁을 외쳤다. 하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은 개혁은 양치기가 되고 말았다. 지금의 혼돈을 잠재우기 위해 현 정부도 개혁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제발 이번만은 4대 개혁이 꼭 제대로 이루어져 모든 혼란이 정리되고,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70년 광복 신화가 담긴 창조 판도라 상자가 열렸으면 좋겠다.

2015-08-12

유비무환의 정신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입추(立秋)를 기점으로 적은 양이지만 소나기가 내려 뜨겁게 달아오른 대지를 약간이나마 식혀주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더위 사이로 미국에서 발생하는 페스트와 레지오넬라균 감염자들의 사망 소식은 전염병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현생 인류에게 적지 않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겨우 메르스 확산의 위기를 피해갔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기에는 세계인의 교류가 너무 활발하고, 이에 따라 전염병은 일 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인의 공통된 고민거리임이 자명한 사실이 되고 있다. 지난 달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캠프장을 다녀간 한 소녀가 페스트균에 감염됐다가 회복됐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9년 만에 페스트 감염 사례가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라는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페스트는 쥐 등에 기생하는 벼룩이 사람에게 박테리아균을 옮겨서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지난 4일에는 콜로라도 주에서 한 성인 남성이 페스트균에 감염돼 숨졌다고 한다. 2015년 콜로라도 주에서 페스트균에 감염돼 숨진 사례는 지난 1월 16살 소년에 이어 모두 2건이라고 한다. 미국 뉴욕에서는 레지오넬라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와 감염자 수가 다수라고 한다.우리나라에서도 전염병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며칠 전 KBS 1TV를 통해서 4부작 `한국인의 건강은 어떻게 변해왔나` 제3회 `전염병` 편을 방영했다. 전염병의 70년사였는데, 대한민국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잿더미의 땅에서 피어오르는 온갖 전염병, 바이러스에 취약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1960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143.4명이 각종 전염병에 걸렸지만, 1970년대 중반 생활환경이 변화하며 극적인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현재를 사는 젊은 세대는 두창(천연두)을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전염병이며, 태어날 때부터 이뤄지는 각종 예방접종을 통해 홍역, 일본뇌염 등 백신이 있는 전염병의 발병도 피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메르스, 에볼라 등 세계인들의 교류로 인해 생겨나는 각종 신종 전염병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는 편이다.세계은행이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미국 국민 4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다음에 다가올 유행에 국가가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고, 테러나 기후변화보다 보건의료와 감염병 유행이 더 심각한 국제적 문제라고 인식했다. 김용 총재는 감염병 대유행을 막기 위해 전 세계가 준비해야 할 점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첫째는“의료의 질 관리, 질병 감시, 진단 정확도 등 보건의료 시스템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나아가 감염병 유행 위험이 높은 에티오피아, 르완다 같은 개발도상국에도 보건의료 전문가 양성 등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에볼라 유행 시 국경없는 의사회의 신속한 활동으로 감염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미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제기구, 민간 분야, 비정부기구 사이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셋째는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감정에 호소해 자금 조달을 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충분치 않다. 세계은행은 전염병 유행 시 긴급자금조달의 창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우리나라도 이달 초 전남대학교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를 열었다. 여기에서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감염되는 각종 인수공통전염병을 효과적으로 치료·예방할 대책을 개발하고 검증해서 국내외에 보급한다고 한다. 과감한 투자와 성실한 연구로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지고,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기관이 되길 바란다.

2015-08-11

지금 지역 철강업계에 필요한 구조조정은?

▲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한 국가나 기업이 성장 발전함에 있어 성장률곡선이 일직선으로 우상향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어떠한 형태로건 일시 변곡점의 국면을 맞게 된다. 이는 국가나 기업 모두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면 그때까지 성장을 견인해왔던 경제 사회적인 제도적인 틀이나 성장방식이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국가나 기업은 성장세가 꺾이게 되는데 최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선진국이나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이러한 난관을 슬기롭게 해결해온 셈이다. 한국경제도 요소지향형 경제에서 혁신지향형 경제로 이행하기까지 기존의 `구조`를 새롭게 전환하는 `구조조정`을 추진중에 있다.특히 최근과 같이 중국의 중속성장의 `뉴노멀`시대 진입, 미국의 금리정상화 임박 등 세계경제의 새로운 변화 국면의 도래야말로 기업이나 정부 모두 과거와 다른 경영전략과 정책방향 등의 정립 등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해야할 시기를 맞고 있다.그런데 `구조조정`에는 자발적 구조조정과 비자발적 구조조정의 두 부류가 있다. 비자발적 구조조정은 이미 우리 국민들이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의 정책패키지인 `구조조정프로그램`을 통해 경험한 바 있다.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중 특히 국가부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극약처방에 가까운 이러한 비자발적 구조조정은 기업도산, 대량실업, 우량자산 해외매각, 사회불안 확대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게 된다.기업도 마찬가지다. 채권단의 강요로 진행되는 비자발적 구조조정의 경우 채권단은 기업의 지속성장이나 장기적인 경쟁력회복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저 목숨을 살려주는 것만 해도 기업은 감지덕지해야 할 정도다.기업에게는 알토란 같은 사업부문이라도 채권회수에 유리하다면 무조건 팔아치워 재무구조를 개선시켜야 채권자들은 만족한다. 당연히 가장 손쉬운 수익성이 큰 사업부문의 매각 또는 협력사 협조를 통한 경비절감, 인력 감축을 위한 정리해고 등이 진행된다.반면 자발적 구조조정은 상황이 다르다. 구조조정이 반드시 인력감축이나 공장라인의 축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속도를 더 가속화하기 위해 생산, 유통, 관리부문의 중복요인 제거 등 경영효율화, 새로운 시장진출을 위한 신사업부문의 개척체제 정비, 선도 기업으로서의 지위 확보를 위한 추가적인 대규모 투자, 장기적인 인재양성을 위한 대규모 고용 등이 핵심이 된다.최근 지역경제의 주력산업인 철강업계를 이끌고 있는 포스코가 현 위기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구조조정에 착수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글로벌 철강공급과잉상태가 지속되고 수요산업인 조선부문에서는 일부 비자발적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는 시점임을 고려할 경우 어떠한 형태로건 지금까지 한국 철강산업을 지탱해왔던 기존의 `틀` 내지는 `구조`를 조정해야 하는 시점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점에서 크게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은 대응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철강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우리나라 철강산업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앞으로 현재보다 더 어려운 난관이 닥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현재 포스코가 지닌 강점과 단점을 충분한 자가진단을 통해 향후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고히 하면서 후발국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분야 진출을 통한 경영다각화, 우수한 기능 인력의 확보 등 100년 기업으로서의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초석을 이번에 반드시 마련하기를 기대한다.지역경제의 대표주자인 포스코가 현재의 역경을 헤치고 새로운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고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면 앞으로 지역경제의 앞날도 밝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5-08-07

교육의 대세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요즘 방송을 보면 한 사람을 자주다 못해 일상적으로 보게 된다. 예능, 광고 등 방송에서 이 사람이 빠지면 이야기가 안될 정도다. 이런 사람을 흔히 대세남이라고 하는데, 그 주인공은 집 밥의 백종원씨이다. 수더분한 외모와 친근감 있는 말투 등으로 집 밥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백 선생. 그의 요리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보여준 공유(共有) 정신이 그를 대세남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가 보여주는 간단하고 쉬우면서도 맛있는 요리는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오아시스가 되기에 충분하다.집 밥 바람을 타고 요리사, 셰프들이 방송계의 대세가 되고 있다. 방송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아마 이연복, 최현석, 쌤킴 등의 이름은 한번 즈음은 들어봤을 것이다. 연예인 버금가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들은 방송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백 선생과 함께 방송계의 대세가 된 이들의 공통점은 숱한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통해 누구나 좋아할만한 자신만의 레시피(recipe)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들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 낸 자신만의 노하우를 오직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것이다. 요리사라는 직업이 자신보다 항상 상대방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계발한 레시피를 공유하기란 쉽지 않다. 비법, 비결이라는 레시피의 뜻만 봐도 잘 알 수 있다.전국에 알려진 맛 집을 소개하는 방송을 보면 많은 것을 공개하는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것, 즉 그 집만의 비법은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방송 끝에는 늘 며느리 법칙이 등장한다. 일상적인 것들에 식상한 사람들은 “며느리에게도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라는 신비주의에 이끌려 거리와 가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집을 찾는다.영화를 보면 비법이라는 것을 전수 받기 위해 살벌한 경쟁을 벌이거나, 또는 비법을 혼자 독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만큼 비법이라는 것은 같은 재료로 차별화된 맛을 내야하는 요리에서는 더 없이 중요한 것이다. 비법 하나로 요리계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대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비법의 중요함을 재차 확인 할 수 있다.셰프들이 대세가 된 이유가 우연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경제이론이 있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최소 자원을 사용해 최소 비용으로 생산하고, 최소 비용으로 재분배하는 공유경제의 도래를 역설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인류 경제활동이 점차 `소유(Ownership)`에서 `접속(Accessibility)`으로 중심이 바뀔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의 예견이 현실화 된 모습을 우리는 방송계의 대세가 된 셰프들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자신의 것을 내 놓는 것에 대해, 더군다나 그것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공유경제 이론은 너무도 먼 이야기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줄곧 1등만을 강요받아 왔다. 먼저 밟지 않으면 밟힌다는 살벌한 경쟁 논리를 지금까지 세뇌당하고 있다. 그러기에 자신의 비법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셰프들의 모습은 분명 문화 충격이다.얼마 전까지 방송계의 대세는 삼둥이, 쌍둥이었다. 농촌 체험 프로그램들이 새로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소유가 아닌 리프킨이 말한 접속, 즉 참 소통이다. 삼둥이들은 말한다, 소유에 대한 집착은 더 이상 대세가 될 수 없다고.그럼 교육의 대세는 무엇일까. 답은 역시 소통, 즉 접속에 있다. 소통이 부재한, 접속이 끊긴 대형 공교육의 시대는 분명 막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교육 주체 간 긴밀한 접속과 공유, 소통이 이루어지는 소규모 특성화 교육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거기에 산자연중학교가 있다.

2015-08-05

메르스 종식이 남긴 과제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난 두 달 가량 바이러스 공포로부터 우리나라를 거의 마비시켰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이제 종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치료제와 백신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포와 위협의 대상이 되었던 이번 메르스 사태는 변이에 의한 신종바이러스의 확산이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여겨진다.그리고 안일한 초기 대처와 허술한 정책 수립은 질타와 질책이라는 사회의 반응을 넘어서서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각 분야 전문분야에 대한 원론적 불신으로 확대되어 체제의 전복으로까지 이어질 수는 위협을 안겨 주었다.마지막 격리자가 이제 27일 자정을 기해 격리에서 해제가 되며, 20일째 신규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메르스에 감염된 후 현재 입원 치료 중인 환자는 모두 12명이며 이 중 3명은 불안정한 상태이다.하지만 치료중인 환자 중 11명은 메르스 유전자 검사에서 2차례 음성이 확인되었으며 더 이상의 변종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고 있다.이러한 진정국면은 국내 의료계의 숨은 노력과 고통을 이겨내며 의료현장을 지켜왔던 의료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메르스 환자 중 20%가 의료진이었다는 분석은 그 만큼 현장에서 바이러스와의 사투가 처절했음을 반증해주는 내용이다.그리고 메르스 환자와 접촉하거나 메르스 환자가 머물렀던 병원을 다녀왔던 국민들에게 고유번호표를 붙여 격리하고, 관리하던 과중에도 800여회의 병원간 이송을 책임져 주었던 119구급대원들의 숨은 노력들은 진정한 봉사와 희생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우리들에게 온몸으로 일깨워 주었다.아직까지 생사의 기로에서 서서 메르스와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12명의 환자와 예기치 못한 감염으로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전하는 메르스의 진실과 교훈은 이제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이다.과거 사스와 에볼라 등 치사율이 높은 급성 열성감염 바이러스가 여러 차례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의 생명을 위협했지만, 방역당국과 정부, 의료기관의 일치된 모습과 발 빠른 조치와 대응이 큰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희생만으로는 앞으로 더욱 복잡하게 변해갈 신종 바이러스를 퇴치하기에 역부족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해외로부터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모든 유행성 지병을 `역병`이라는 이유로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후진국형 보건의료정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이제 정부는 국가의료기관이 최우선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각종 질병으로부터 보호 할 수 있는 정책과 대응 시스템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것이다.일부 민간의료기관의 안일한 대응태도가 한때는 문제가 되긴 했지만, 국내 모든 의료진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끝을 모르고 이어져 가던 메르스 사태가 이처럼 빠른 종식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의료진의 헌신과 노력은 이제 의료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시스템 정비와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의료정책의 혁신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7월 중순 메르스 사태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홍콩에서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몰해 100여명의 사망자가 발행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져 오고 있다. 앞으로는 홍콩독감과 같은 신종 바이러스가 계속해 생겨날 것이다.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국가적 방역대응 시스템의 혁신 이전에 개인위생관리를 최우선적으로 하려는 온 국민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1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