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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등록일 2015-08-25 02:01 게재일 2015-08-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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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봉준<br /><br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요즘 공중파, 케이블 가릴 것 없이 채널을 돌리면 여기저기서 `지지고 볶느라` 난리다. 지지고 볶는다고 하니 언뜻 부부싸움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말 그대로 불 위에서 온갖 재료를 지지고 볶아 언뜻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고 입 안 가득 군침을 돌게 만드는 음식의 향연이 화면 가득히 펼쳐진다. 이른바 `쿡(cook)방`, `먹방`이 대세다. 덩달아 쉐프(chef)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하얀 옷에 앞치마를 팽팽히 두르고 번뜩이는 칼로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펼칠 때 모두들 넋을 놓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어느 순간 일상의 식사는 뭔가 특별한 문화로 둔갑했고, 그냥 주방장으로 대수롭잖게 여기던 직업이 `요리사`, 혹은 `쉐프`로 불리며 전문가 냄새를 풀풀 풍긴다. 그런데 이러한 먹방, 쿡방 전성시대에 오랜 세월 내 입맛을 책임져왔던 한 무명 쉐프가 이 바닥을 떠났다.

“할매 → 집으로”

모든 것이 미흡했음에도 꽉 차고 넘치도록 시골집을 성원해준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한 긴 세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

나는 손자들과 노닥거리며 세월을 보내겠어요.

- `시골집`할매

할매가 작별을 고했다. 사전 예고도 없이, 내려진 셔터 위에 간단한 작별 인사 몇 마디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학교 앞 즐비한 식당들 가운데 비교적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왔던 `시골집` 일등 쉐프 할매가 “할매→집으로”로 시작하는 안내문 한 장 달랑 남긴 채 무림의 고수가 사라지듯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입맛이 없을 때, 뭔가 자극적인 맛으로 정신이 번쩍 들고 싶을 때 찾던 그 허름한 식당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급이라는 표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집이었다. 필자가 대학생 시절부터 빈약한 호주머니 사정에 근근이 한 끼 때우던 집이었기에 애초에 품격, 분위기, 청결은 기대할 수 없었다. 삼십 여 년 세월을 인테리어라는 것과는 무관하게 지내온 말 그대로 `시골집`이다. 웰빙은 더더욱 사치다. 건강 생각에 덜 짜게, 덜 맵게, 친환경 재료 운운 하는 시대에 이 집은 그 반대의 길을 꿋꿋이 걸어왔다. 더 짜고 더 매운 자극적 음식으로 나름의 단골을 확보하고 있었다. 친절과도 한참 거리가 멀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드나들었지만 할매와 그리 정감어린 대화를 주고받는 손님은 보지 못했다. 여럿이 가서 이것저것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할라치면 단박에 면박을 준다. 한 가지로 통일하란다. 때로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거나 말거나 아랑곳 하지 않고 벌이는 주인장 내외의 부부싸움은 특별히 제공되는 눈요깃거리다.

그런데 그 할매가 사라졌다. 연세가 많이 들긴 했다. 언젠가는 간판을 내릴 때가 오리라는 예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홀연히 떠나버린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거기다 그 허름한 건물이 이제 재건축에 들어갈 예정이라나? 세월의 흐름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누가 감히 거역하고 맞설 수 있으랴. 그래서 할매는 `집으로` 갔다. 밀려드는 세월의 무게를 거스를 수 없어서, 그리고 새것이라는 변화의 물결에 더 이상은 맞설 수 없었기에 긴 인생의 자취를 뒤로 한 채 우리들 곁에서 떠나갔다.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떠나보낸다.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에 밀려드는 아쉬움은 어찌할 수 없는 애상이다. 내 인생 최고의 쉐프를 떠나보내며, 언제나 내 시들해진 식욕을 감쪽같이 되살려내던 지상 최고의 음식을 더 이상 맛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잠시나마 상념에 빠져든다. “할매,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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