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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방학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대부분의 학교들이 여름 방학에 들어갔다. 필자는 아침산책을 시작하면서 필자의 어휘력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껏 필자는 어휘에 대한 정확한 의미보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정도의 이해에 그치면서 마치 그것에 대해 다 아는 양 떠들고 다녔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은 아마 필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혹 독자 여러분은 방학의 사전적 의미를 아시는지. 학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필자지만 사전에서 방학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찾아본 건 부끄럽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방학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학교에서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또는 더위, 추위가 심한 일정 기간 동안 수업을 쉬는 일. 또는 그 기간` 분명 사전에서는 방학을 수업을 할 수 없는 기후적인 상황 때문에 `수업을 쉬는 일`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방학 모습은?비록 방학을 했지만, 올해도 우리나라 학생들에겐 방학다운 방학은 없다. 한마디로 말해 방학은 죽었다. 특히 고등학교들은 당연하다는 듯 교과 보충수업에서 자율학습까지 방학 전과 똑같이 하고 있다. 말이 좋아 학생 선택 보충 수업이고, 자율학습이지 사실은 어쩔 수 없는 강제 보충 수업에, 강제 자율 학습이다. 강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교육청은 물론 학부모들은 이를 묵인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류 대학교에 가야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의미야 어떻든 무조건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하니까.물론 이해는 간다. 지금 학부모들은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에 너무도 목말라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최소한 자기 자식만큼은 일류 대학에 꼭 합격시켜서 자식 자랑하며 목에 힘 좀 주면서 살고 싶은 것이 로망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자식만큼은 학벌에 주눅 들지 않게 살도록 학원에 과외까지 시킨다. 그런 부모들이니 자녀들의 생각이야 어떻든 학교에서 하는 강제 보충수업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런데 필자 경험상 일선 학교에서 이뤄지는 여름 방학 보충 수업의 모습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왜냐하면 칠판과 교재에 의지해 나 홀로 수업하는 교사와 시원한 교실에서 잠을 보충하면서 교실에서 여름 피서를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이 필자의 눈에는 너무도 선하기 때문이다. 늘 말하지만 물론 모든 학교의 모습이 다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단언컨대 많은 학교들의 보충 수업 모습이 위에 묘사한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참 슬픈 이야기는 고등학교의 방학 보충수업이 이젠 중학교까지 내려 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좀 다행이건 중학교 보충수업은 수업료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 학교들은 교육청으로부터 교부 받은 방학 보충 수업비가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사회 변화에 맞춰 학교 기능도 변하고 있다. `학교의 기능`을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학교의 기능으로서 중요한 것으로는 국민형성·직업적 훈련·교양의 육성 등을 들 수 있다` 우리사회를 보면 여기다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강력한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보육(保育)이다. 초등학교의 돌봄 교실은 보육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이 기능이 상급 학교들에도 해당된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우리나라 사회 경제의 모습이다.그래서 필자는 말한다. 이왕 방학이 사전적 의미대로 `수업을 쉬는 일`이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제대로 된 특기 적성 수업을 하자고. 국영수도 하고, 또 학기 중에 하지 못했던 다양한 체험활동도 열심히 하자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 방학도 학생들에게 설렘을 주는 살아 있는 방학이 되지 않을까.

2015-07-29

지방대학·지역균형인재 육성정책 절실하다

▲ 이동수 대구한의대 교수최근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 발효와 관련, 기존 학력위주 사회에서 능력(역량)위주 사회로 전환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에 적극 부응해 중앙정부, 지방정부, 지방대학, 관련 기관·단체들 간의 협력거버넌스 구축에 관한 논의가 시급하며, 이를 통해 바람직한 운영시스템 설계가 요구되고 있다.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과의 경쟁조건에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지방대학들의 활로 모색을 위해 교육부와 각 시·도는 현재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을 위해 수도권 지역을 제외한 14개 시·도별 기본계획(2015~2020) 수립을 최근 완료하였으며, 조만간 시행계획(2015~2020)이 본격 추진될 예정이다.경북지역에는 일반대 20개, 전문대 18개, 대학원 대학 1개 등 총 39개 대학이 소재(2014년)하고 있고, 전체 대학생 수는 24만5천914명이며, 일반대학생(17만9천727명)이 73.1%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경북지역 대졸자의 취업률은 2013년 말 기준 66.3%로 전국 평균 67.4%보다 낮고, 취업지역은 경북을 포함한 대경권 취업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경북의 산업육성 정책은 제조업에 집중되어 왔으며 이와 같은 산업구조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ICT 융복합과 창조경제가 강조됨에 따라 첨단제조업과 창업에 대한 인력 수요가 늘어날 전망으로 경북에는 39개 대학을 기반으로 한 16개 대학산학협력단을 포함, 40개의 기업지원 혁신기관이 소재하여 지역산업의 성장 잠재력은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대학의 잠재 성장력과는 반대로 경북의 학령인구(6~21세)는 2013년 대비 2020년 9만6천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고등학교(3만3천명 감소, -34%) 및 대학(3만명 감소, -21%) 학령인구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지역대학 입학자원 및 노동시장 신규인력 감소와 직결될 것이다. 따라서 중고령자 재교육을 통한 재직기간 연장, 선취업 후 진학을 통한 청년층 노동시장 진입시점 단축 등이 현안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또한 수도권 규제완화 등으로 자원과 인력의 수도권 집중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현재 진행 중인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으로 상당수 지역대학이 폐교 등 위기가 예상되며, 빠른 고령화로 인해 노동인력의 고령화 등에 문제가 예상된다.지방대학육성 인프라 구축을 위한 지방대학육성법 제정(2014년 1월)으로 지역인재 입학과 채용기회 확대, 위원회(중앙)·협의회(지방) 구성과 기본계획 수립을 규정하여 지방대학 및 지역인재 육성지원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다.첫째, 지방대학 출신 채용할당제 도입을 통한 취업기회 확대이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인원 중 54%를 지역인재로 채용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 반영토록 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2015년부터 지역인재 채용목표제를 7급 공채에 확대 실시와 지역인재 추천채용제를 지속 실시하고 있다.둘째, 중앙정부 차원의 지방대학 육성을 위한 5대 중점과제의 설정이다. 먼저 대학 강점 분야, 지역 산업수요 등을 반영한 지방대학 특성화 분야 집중 지원과 대학의 체질 개선 및 재정지원 효과성 제고를 위한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셋째, 지방정부 및 지역사회 차원의 14개 시·도별 지방대학지역균형인재 육성 거버넌스 구축이다. 이는 지역 주체들로 구성된 협의체로 14개 시·도, 시·군·구, 지방대학, 산업체, 연구기관 등으로 구성되며 지방대학 육성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넷째, 지방대학차원의 대학 특성화 및 지역혁신 인력양성 선도이다. 이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대학의 특성화 전략으로 신 산업 육성을 위한 학과 및 정원조정(창조와 융합), 지역혁신을 위한 연구개발 협력체제 구축,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산학협력 체제 강화이다.

2015-07-28

한식·한복·한지·한옥 이어 `한글안동`도 알려야

▲ 이재업 (사)유교문화보존회 이사장한(韓)스타일의 세계화 측면에서 경북 신도청 시대 중심지인 안동을 `한글 도시`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하면 반문하는 이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우리 안동을 흔히 한국 속에 가장 한국적인 도시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 한글문화가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주지하는 바, 한국인을 나타내는 정체성은 6가지 상징으로 대별할 수 있다. 한옥, 한식, 한복, 한음악, 한글, 한지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요소들은 한국적 문화 유전자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이 가운데 안동의 경우 한옥, 한식, 한지, 한복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한지는 안동이 전국 최대 생산지이고, 한옥은 전국 고택의 25%, 다수의 국가 및 지방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그야말로 `선진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복 또한 반가 규중의 전통 침선 솜씨에다 안동포가 주도하고 있어 어디에 내놓아도 월등하다는 평을 받는다. 한식 세계화 분야 역시 그러하다.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온주법 등 고 조리서가 만들어진 고장으로서 그 기반도 튼실하다.그런데 이 기준에서라면 한글이야말로 빼 놓아선 안 될 요소라고 판단된다.현존하는 한글 해례본은 단지 두 권에 불과하다. 그 중 한권은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데, 국보 제70호 한글 해례본이 그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권은 소유권을 두고 분쟁이 있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고, 얼마 전 점유자의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전 국민을 마음 졸이게 했던 가칭 `상주본(尙州本)`이다.그런데 이 두 권의 한글 해례본 모두는 실제로 `안동본(安東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그 하나는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국보70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간송본은 바로 광산(光山) 김씨(氏) 예안파(禮安派) 긍구당(肯構堂) 소유의 한글 해례본이었다.두 권의 한글 해례본이 어떤 이유이든 간에 우리 지역에서 반출되었다는 데서 자괴감이 없지 않지만, 세상에 단 두 권밖에 남아 있지 않은 한글 해례본이 모두 안동본인 것은, 안동지방이 목판 문화의 산실이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특히 서후면 소재 천년 고찰인 광흥사는 조선조 목판 인쇄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뒤 백성들에게 이를 널리 한글을 보급하고자 출판한 석보상절,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이 목판으로 제작되고 인쇄 보급된 장소였다.이러한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온 사실이 있었기에 현재 안동은 목판 7만여 장을 수집·보관한 도시가 된 것이다.안동시에서 이를 기반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해 놓은 상태지만, 정작 훈민정음 한글 목판 원본은 남아 있지 않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점은 크나큰 흠결(欠缺)이며 그래서 아쉬움이 없지 않다. 따라서 비록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지만 안동시가 현존하는 두 권의 한글 해례본의 원적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훈민정음해례본을 목판으로 새겨 남기는 일은 시급하고도 시의 적절한 사업이라 하겠다.국보 제70호 훈민정음해례본의 글씨를 그대로 본뜬 목판을 만들어 보관하고 그 목판으로 인쇄한 한글 해례본도 다수 제작해 이를 보급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말과 글을 잃게 되면 그 나라, 그 민족은 영영 사라지고 만다.”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일생을 바친 애국지사 정인승 선생이 남긴 어록이 새삼 느껴지는 시점이다.

2015-07-23

소 롱(SO LONG), 2015 행복학교 박람회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만약 필자에게 지난 주 여수의 모습을 한자성어로 나타내라고 한다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인산인해(人山人海)를 들 것이다. 여수 세계박람회장 개장과 함께 밀려들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인파(人波)였다. 개장과 함께 사람들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폐장과 동시에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어린이집에서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행복학교 박람회라는 행사명답게 더 넓은 여수 세계박람회장을 채운 인파의 대다수는 학생들이었다. 전국에서 선발된 155개 학교에서 선보인 전시, 공연, 체험은 한마디로 일품이었다. 그 일품 교육 프로그램들을 바라보고 체험하는 학생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연했다. 행복의 표현 방법을 한 가지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나를 찾는다면 `웃음`일 것이다. 웃음꽃이 만연한 학생들의 모습에서 2015 행복학교 박람회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당연히 대성공이었다. 왜냐하면 행사장 전체가 학생들의 웃음꽃 향기로 가득했으니까.웃음 향 가득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참 많은 반성을 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을 그토록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예전 학교에서 본 학생들은 표정 없는 밀랍 인형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스스로 하는 법이 잘 없었다. 그래서 늘 학교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키려는 교사와 그 시킴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오는 긴장감! 그 긴장감에 가위 눌린 학생들의 모습은 학교 부적응, 학교 폭력, 학교 포기, 그리고 간혹 교사 폭행과 자살로 나타나고 있다. 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이번 행복학교 박람회를 통해 필자는 그 범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알았다. 그것은 바로 어른들이었다. 성적지상주의, 학벌주의, 성공 이기주의 등에 빠져 있는 어른들과 말로는 학생 개인에게 맞는 꿈과 끼를 찾으라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성적으로 줄 세우기에 바쁜 교사와 학교가 그 주범이라는 것을 필자는 분명히 알았다. 물론 필자도 그 중 한 사람이다.필자는 이번 행복학교 박람회를 그동안 학생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준비 했다. 공부가 정말 다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또 우리 학생들도 스스로 많은 것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성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필자를 포함한 이 시대 성인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2015년 대한민국 행복학교 박람회에서 전교생 37명뿐인 산자연중학교는 공연(학생과 어머니의 피아노 협연, 노래, 밴드, 댄스)과 전시, 체험, KBS 생방송 등 박람회에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했다. 우리 학생들은 프로가 아니다. 하지만 산자연중학교를 선택한 용기로 학생들은 재학생이 수백 명이 넘는 큰 학교들도 엄두를 못 내는 일을 해냈다. 첫날 메인무대 공연이 끝나고 관람객들은 전교생 37명뿐인 작은 학교에서 선보인 큰 무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무대가 끝나고 학생들은 자신들의 용기에 더 한층 성숙해졌다.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생태수업 시간에 하고 있는 다육 화분 만들기와 약초 효소 시간의 교육 활동인 천연 염색을 내방객을 위한 체험활동으로 준비했다. 비록 외딴 곳에 떨어진 특수·각종 학교 관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고, 학생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다육화분 만들기와 애기똥풀 염색 체험을 하고 갔다. 그리고 하나같이 말했다. “정말 이런 교육이 필요합니다. 성적이 다가 아니라 자연에서 학생들이 자연의 생명력을 배우고, 마음껏 자신의 꿈과 끼를 펼칠 수 있는 산 교육이 진정한 교육입니다” 그리고 전입학에 대해 문의를 해 왔다. 그 순간 필자는 벙어리가 되었다. 왜냐하면 수업료를 말해야 하니까. 그러면 내방객들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중학교는 의무 교육 아닙니까. 의무교육은 무상교육 아닙니까.”대한민국 행복학교 박람회를 통해 행복 앞에서 서성이는 대한민국 학생들이 하루 빨리 진정으로 행복해지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2015-07-22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염치`를 깨워낼 때

▲ 차봉준 숭실대학교 교수·베어드학부대학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일컬어져 왔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이렇게 불리기를 즐겨했었다. 그런데 굳이 `즐겨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못 박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과거에 비해 이 표현을 입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강해서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우리 모습들이 과연 `예의`를 입에 올릴 상황인지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예의에서 벗어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저질러질 뿐더러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예의에 벗어난 일인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이다. 이로 인해 일상에서는 사소한 다툼으로 낯을 붉히는 일에서부터 법적 다툼으로까지 비화되는 심각한 상황까지 벌어지기 일쑤다. 이런 지경이니 어찌 동방예의지국을 쉽사리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우리 민족을 동방예의지국으로 부르게 된 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說)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약 2천300년 전 공자(孔子)의 7대손 공빈(孔斌)이 썼다고 알려진`동이열전(東夷列傳)`에 따르자면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그 나라는 크지만 교만하지 않고 그 병사는 강하나 침략하지 않는다. 풍속이 순후하여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고 먹는 자는 밥을 미루고 남녀는 따로 거처하니 가히 동방 예의(禮儀)의 군자국이라 하겠다. 이런 까닭으로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시면서 `누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출처: 대종 언어 연구소 기자관련 논고 중에서 재인용)교만하지 않으며, 비록 강하다 해서 약자를 함부로 헤치지 않는 성품을 지녔었다. 또한 양보의 미덕과 체면을 중시하는 순후한 풍속을 지닌 민족이었다. 하지만 공자께서도 살고 싶은 곳이라고 말했을 정도의 나라 체면이 지금은 말이 아닌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지난 한 주간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이른바 `인분 교수` 논란만 하더라도 그렇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차치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자질을 의심케 하는 충격적 사실이 매일 매일의 보도를 통해 전해질 때마다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에 낯을 들기 민망하다.도덕이 땅에 떨어진 우리 사회의 극단적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불과 얼마 전 우리 문단의 대표 작가가 보여준 표절 논란과 그에 대한 대응방식의 변변치 못함도 그러하고, `××남``××녀` 딱지를 붙여 오르내린 여러 사태들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여과 없이 들춰내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인분 교수 논란과 마찬가지로 최근 한국의 대학사회는 연이어 터져 나온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치권과 각계 지도층의 비위를 들춰내자면 입이 아플 지경이니 아예 말하지 않으련다. 더 심각한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의 인륜마저 무참히 허물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면하면서 `동방예의지국`의 찬사가 흘러간 유행가 가사처럼 아련하게 느껴짐에 서글픔이 밀려온다.국어사전에서 염치(廉恥)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 풀이되어 있다. 그래서 체면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에게 우리는 `염치없는 놈`이라 손가락질한다. 우리 모두가 성인군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우리 모두의 내면에 깊이 잠자고 있는 `염치`란 놈을 깨워내고 불러낼 때가 지금이라 생각한다. 염치만 있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그래도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두렵기도 하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과연 염치 있는 놈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슬그머니 고개 숙여진다.

2015-07-21

다방에 대한 기억

▲ 강민건대구대 교수·영어교육과 최근 가루커피를 타고 무심히 수저통에서 제일 작은 것이라고 뽑아들어 커피를 젓고 있는데 가만 보니 아이 밥숟가락이다. 그 숟가락으로 일부러 앓던 버릇처럼 커피를 홀짝 떠 삼킨다. `단가 쓴가`잠시의 생각으로 가슴이 뻐근하다 빈집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문 사이로 부유하는 먼지가 왈츠를 추듯 발치 와 있는 햇빛을 받는다. 1980년대를 관통하여 생활을 한 사람들에게 커피와 다방은 일상의 문화공간이었다.다방은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누군가를 만나거나 혹은 기다리는 공간이었다. 요즘처럼 휴대전화가 부재하던 시절, 다방은 그 어떤 곳보다도 사람 냄새가 짙은 누군가의 사연을 기다리는 사람사이에 감동을 느끼는 공간이기도 했다.말과 언어가 참으로 가벼운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이 시대의 소통은 이제 무수히 주고받는 이메일과 휴대전화로 바뀌고 있다. 아침의 일상은 무심코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보내고 받고, 휴대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일로 시작된다. 소통을 통한 무수한 이야기와 논쟁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그만큼 비례하여 진정한 의사소통은 막히고 있다. 자기 말이 무성한 시대, 자기 사상이 옳음을 주장하는 언어의 유아론이 넘치는 공간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소통의 불임시대(不姙時代)를 겪고 있다.올 봄이 막 시작되던 시기에 가까운 사람으로 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는다. 주소지가 바뀌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봉투 겉면에 직접 쓴 보금자리를 새로이 튼 그 주소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 글씨체만큼이나 그 동네가 따뜻해 보인다. 나와의 인연을 기억하며 그가 단정한 필체로 써 내려간 편지를 읽으며 가슴이 멍해진다. 그의 일상을 알리는 세세한 소식들이, 이메일과 문자메시지가 대세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오히려 기계적 소통과는 다른 인간의 감동과 아름다운 소통을 전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문득 글을 쓴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시인 김수영은 글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말이 가벼운 시대라 하여 몸이 가벼운 시대가 될 수는 없다. 나는 몸의 진지한 접촉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의사소통을 꿈꾼다. 선배에게서 받은 그날의 편지는 나에게 몸으로 소통을 전해준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매혹적인 글이었다.인터넷과 휴대전화, 그리고 이메일로 대변되는 이 시대의 글쓰기와 소통은 편리함과 속도감으로 무장한 채 무서운 속도로 여기저기를 파고든다. 그 속도감 속에 말과 글은 파편화되고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이의 집단을 가르며 서로에게 그루터기만을 남긴 채 진정한 공감을 틀어막고 기계적인 손놀림만을 반복하고 있다.소통을 위장한 정보제공은 인터넷상에서 쓰레기 부스러기처럼 부유하고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진지함은 없다. 오직 이 시대의 다양성을 핑계로 집단적 유행과 생각 없이 짜깁기한 글만이 무성하다. 인터넷이, 스마트폰이, 아이패드가, 인증샷이 소통의 원활함을 막고 개인의 사생활만을 들춰내는 것도, 그 기계의 적응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내가 사는 집이 기계의 정보를 통해 설거지를 하다 사금파리처럼 금이 간 그릇하나까지 다 볼 수 있다면 이런 시대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진다.오늘은 봄을 밀어내는 야생화의 향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편지를 쓰고, 봉투를 준비하여, 풀칠을 하고, 우표를 붙여, 이사 간 동네의 빨간 우체통을 찾아 헤매었을 그 선배에게 답장부터 길게 쓰는 것으로, 소통의 부재한 만큼 다가오는 불임시대의 속도감과 편리함으로부터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2015-07-17

미술관의 역할을 알고 계셨나요?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최근 대구경북에서는 `미술관`유치에 대한 찬반논란이 한 여름 이글거리는 태양만큼이나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우리나라 사립미술관 중 최고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간송미술관`이 대구에 분관을 짓겠다는 발표와 함께 대구시와 공식적인 협약을 맺음으로써 새로운 미술관 건립에 대한 기쁨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안동시는 한국현대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중 단색조 화가로 유명한 하종현 화백의 미술관을 안동에 건립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안동지역 미술인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우환미술관`을 대구에 건립하는 것에 대한 갈등이 여론화되더니 결국 무산되고 말았던 터라 `하종현 미술관`건립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미술관 건립이나 유치에 관한 문제는 문화예술계의 지엽적인 문제처럼 비추어 질수도 있지만 이는 한 분야의 국한된 사안은 분명 아닐 것이다. 지역민들은 이제 `미술관`이라는 곳이 무엇을 하는 공간이며 왜 이러한 미술관이 지역에 필요한가에 대한 인식을 언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 박물관이라는 용어 또한 언론을 통해 익숙해졌을 것이다. 몇 해 전 `신정아 사건`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큐레이터`라는 용어와 직업세계에 대해 상세히 소개된 것처럼 말이다.미술관·박물관이라는 용어가 일반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불리기 시작한 건 아마 꽤 오래전부터 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에 대한 기능을 정확히 이해하고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의문이 든다. 미술품을 전시한다고 해서 모두가 미술관으로 불리어 지진 않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해 부르는 용어에 따라 그 기능과 역할이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미술관`과 `박물관`이 미술품과 문화재의 수집과 보존, 전시, 연구 등의 기능을 하는 공간이라면, `화랑`, `갤러리`는 각종 미술품을 수집하거나 전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기능도 있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작품구입을 원하는 수집가에게 판매한다는 커다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미술관이라는 용어는 서구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역사 또한 인류와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오래된 공간이다. 과거의 세속화된 신전을 시작으로 미적교회, 귀족의 보물창고 형태인 캐비넷과 갤러리, 근대적 이념의 공공박물관,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논리로 대변되고 있는 미술관 제도의 변화와 흐름은 이제 일상이라는 개념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처럼 미술관은 오늘날 미술제도의 쟁점으로서 미술문화정책의 최종목표 중 하나가 되는 중요한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18세기 계몽주의와 함께 제도화되기 시작한 미술관은 박물관, 공연장, 도서관 등과 함께 국가의 문화적 역량을 집대성하는 기구 중 하나이다. 현대에 들어 미술관은 중요한 기능과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미술문화 자체발전뿐만 아니라 미술관이 가지는 사회적 기능 또한 더욱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미술관은 근본적으로 미술품수집과 보존, 관리라는 학술 및 연구 기능과 사회교육 기능을 기초로 하고 있는데, 여가문화의 증대 및 문화 복지 증진 수요가 급속히 팽창하는 현대사회의 여건 하에서 미술관이 가지는 사회적 기능은 점점 더 증대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미술관 정책을 즉흥적이고 선심성 공약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더 이상 사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역마다 어떠한 미술관이 운영되느냐와 그곳에서 어떠한 예술적 가치관이 형성되어 지역민들에게 예술적 감흥을 주느냐에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2015-07-16

2015 대한민국 행복학교 박람회, 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6월을 잘 이겨내고 드디어 2015 대한민국 행복학교 박람회가 내일이면 이곳 여수에서 문을 연다. 교육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이 남의 나라 말이 된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참 교육들을 한 자리에 모은 자리여서인지 제 9호 태풍 찬홈도 한 발 앞서 서해의 좋지 못한 기운들을 비질하듯 쓸며 지나갔다.대한민국 행복학교 박람회는 “행복교육·창의인재 양성 등 각종 교육개혁 정책에 대한 교육성과를 공유하고, 교육현장에 안착되도록 종합적인 홍보를 위해, 또 교육 우수사례 확산으로 학교교육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관련 정보 제공, 공교육에 대한 긍정적 인식 제고를 위해”매년 개최되고 있다.16일부터 18일까지 교육부가 주최하고 전라남도 교육청이 주관하는 2015 대한민국 행복학교 박람회는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다. 이번 박람회에는 전국 유초중고 중 교육부가 엄선한 155개교가 참가한다. 참가 학교들은 자유학기제, 꿈, 끼, 행복, 창의적 체험동아리 등 참가 주제에 맞게 그 동안 시행해 온 우수한 교육 활동들을 전시, 체험, 공영 등을 통해 선보인다. 산자연중학교는 `행복`이라는 주제로 박람회에 참가한다.필자는 이번 박람회에 앞서 지난 주 부산에서 2박 3일의 일정으로 열린`2015 대안교육 담당교원 등 연수`에 다녀왔는데, 사실 필자의 행복학교 박람회는 이 연수에서부터 오픈했다. 전국에 있는 대안학교는 물론 대안 교육 위탁 기관 관계자까지 모인 대규모 연수였다. 연수 목적은 대안교육 담당자 전문성 제고! 전문 강사의 연수와 분임 토의 활동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동병상련이라고 참석자들은 몇 마디 말에 금방 마음을 열었다.필자는 여러 강사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첫날 마지막 시간 교육부 대안교육 담당 사무관의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학창 시절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때문에 큰 방황을 했다는 것과 하지만 당시 담임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에 큰 용기를 얻어 공부를 시작했으며, 힘들어 하는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교육 정책 입안자가 되었다고 했다.그리고 마지막에 큰 말을 덧붙였다. “여기에 모이신 선생님께 교육부 담당 사무관으로서가 아니라 제자로서 부탁드립니다. 지금 선생님들의 제자들은 정말 힘든 시기를 건너고 있습니다. 그 학생들이 힘듦에 지치지 않도록, 또 좌절하지 않도록, 그리고 포기하지 않도록 사랑을 주십시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연수회에 참석한 선생님은 “사랑을 주십시오.”라는 말에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큰 박수를 보냈다.“선생님들 허들 경기 규칙을 아십니까?”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연수회 장 안의 집중력은 가히 놀라웠다. “허들 경기는 완주 할 때까지 몇 대의 허들을 쓰러뜨리든지 상관없이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면 이깁니다. 우리 학생들 앞에도 허들과 같은 장애물이 많이 놓여 있습니다. 때론 그 허들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허들을 넘지 못 할 만큼 지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선생님들의 따뜻한 사랑 담긴 말이 그 학생들을 다시 뛰게 할 것입니다. 꼭 1등이 아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까지 갈 수 있도록 선생님들의 사랑을 주십시오. 선생님들께서 그러실 수 있도록, 또 우리 학생들이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부에서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오랜만에 속이 시원했다. 그동안 필자는 교육청 및 교육부 관료들과 싸우기 바빴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까지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젊은 교육부 사무관의 모습에서 필자는 대한민국 행복학교 박람회를 시작했다.

2015-07-15

교육지원 사업의 시대를 마주한 대학들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언제부터인가 대학들은 교육부가 공모하는 사업에 지원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수들이 모여서 계획서를 쓰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결과를 기다리느라 목을 길게 빼고 조바심한다. 대학입시 결과를 놓고 가슴졸임을 하듯이 선정 발표를 기점으로 대학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선정된 대학들은 제출했던 계획서대로 사업수행을 한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선정되지 못한 대학들은 다음의 기회를 기대하며 열심히 아이디어를 모으며 노력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하더라도 `대학`과 `사업`은 도저히 결합될 수 없는 용어들이라며 의아해 하던 많은 교수들도, 해가 갈수록 사업의 수가 늘어나고 지원여부에 따라 대학의 재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상황을 지켜보며, 사업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교육부는 고등교육이 창조경제의 중심이라는 인식과 함께, 대학이 갖추어야 할 역량을 기초·교수학습역량, 전공역량, 연구역량, 산학협력역량, 평생교육역량 등 5개의 역량으로 분류하고, 역량별 대표사업을 중심으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기초·교수학습역량은 기초교양교육, 비교과, 교수학습 질 개선을, 전공역량은 전공역량 강화, 대학 특성화를, 연구역량은 교수·학생 연구역량 강화를, 산학협력역량은 대학-산업간 연계 강화를, 평생교육역량은 성인 계속 교육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른 영역별 대표사업은 학부교육선도대학육성사업(ACE), 대학특성화 사업(CK), 두뇌한국21(BK21 Plus), 산학협력선도대학 육성사업(LINC),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이다.교육부는 이 외에도 대학 창의적 자산 실용화 지원(BRIDGE)사업, IPP일학습병행제(장기현장실습제)사업,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 산업수요 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육성(PRIME)사업 등을 통해서, 대학이 시대의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촉진자(facilitator)역할을 한다고 바쁘고, 대학들은 대학이 생긴 이래로 이렇게 많은 공모사업이 있어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바쁜 중이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사업들 외에도 대학을 두고 벌이는 사업은 허다하고, 눈만 뜨면 사업공지문이 날아와 머리가 어찔할 정도로 대학들은 사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업의 성과를 발표하는 행사들도 따라서 늘어나고 있어 분주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각종 사업들은 대학평가와 맞물리기도 하고, 신입생을 유치할 때 홍보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에 몇 개의 사업을 하느냐에 따라 몇 관왕이라는 별칭을 붙이는 대학들도 있다. 특히 등록금 동결, 신입생 수요 감소, 대학구조개혁이라는 압박을 피해갈 수 없는 지방 사립대들은 일련의 사업들에 동참하지 못 할 경우,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새로 있을 PRIME(PRogram for Industry needs Matched Education)사업은 선정될 경우 최소 50억원에서 최대 200억원을 지원 받을 수 있는 대규모 지원 사업이다. 프라임 사업은 미래 유망산업에 대비한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정원 이동을 위한 학사구조·제도 개편을 지원하는 사업이다.이는 산업계 수요와 대학 공급간 양적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대학교육이 이공계열 중심의 전공 확대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구조개혁이다. 더 나아가 대학 간 정원교환, 새로운 학과신설, 학과통폐합, 학문간 융합 등의 학사구조개편과 유동적 정원, 자유학부제, 다중전공, 연계전공, 융합전공 등 학사제도개편이 에상된다. 각종 사업을 둘러싼 거대한 변화들 앞에서, 대학들은 사업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대학교육을 위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5-07-13

아동교육의 윤리적 과제-아동 존재가치 배우기

이수원계명대학교 교수· 유아교육과근·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이성은 미신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독재와 압박에 저항하게 하는 무기였고, 산업화와 과학·기술 발전의 원천이었다. 우주의 법칙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진리가 이성에 의해 발견될 수 있다고 여겼으며, 발견된 법칙에 따라 인과론적인 예언이 가능해졌고, 이와 더불어 진보주의 사관이 구축되었다.모더니즘 관점이 아동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성인은 이성을 갖춘 존재인 반면, 아동은 성인에 비해 이성이 부족하고 미성숙하며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여겨진다. 아동은 성인에 의해 빚어져야 할 토기(土器)에 비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러한 모더니즘의 아동관은 아동의 진정한 모습을 왜곡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고 있다. `애 같다`는 말이 상대가 부족해보일 때 사용하는 부정적인 표현이듯이, 모더니즘에서의 아동은 성인에 비해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아동이 미성숙한 존재라는 명제는 아동을 성숙한 존재로 개발하기 위한 성인의 개입과 권위를 합리화한다. 성인만이 아동이 배워야 할 지식의 목록을 결정한 권위를 가진다.아동 역량에 대한 과소평가나 성인의 개입과 권위에 대한 합리화 등의 문제로 인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은 지난 반세기 동안 모던니즘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포스트모던 관점에서 모더니즘 아동관은 아동을 은밀히 통제하고 규제한다고 보고 성인의 억압으로부터 아동을 해방시키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서처럼 보편적인 지식이 있다고 가정하지 않았고 대신 우리의 지식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라고 보았다. 때문에, 성인이 고안한 환경 속에서 성인의 관점에 따라 아동을 이해하기 보다는, 성인이 아동이 속한 사회문화와 아동의 일상 경험을 먼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아동은 성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 한마디로 포스트모더니즘은 교실 안에서 아동을 교사가 주입하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는 위치에 두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함께`오늘은 무엇을 탐구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아동의 권리와 위치를 복원시키고자 한다.아동이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아동 역량에 대한 믿음이 근거가 된다. 포스트모더니즘 교육의 학자들은 지금까지 묘사된 아동의 이미지를 재해석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동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빈 용기나 그려지기를 바라는 빈 용지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 적극 참여하는 유능한 아동이다. 아동은 태어날 때부터 유능하나 성인이 아동의 행동과 삶을 제한하면 아동이 무력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미 교육학자 카넬라(Gaile Sloan Cannella)는 그녀의 저서 `유아교육이론 해체하기`에서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을 능력이 모자라고 미숙한 자를 비롯하여 가난한 자, 이질적인 특성을 지닌 자까지 다 포함하여 인간 모두에 대해 그들을 어떻게 참되게 볼 수 있는가, 그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존재 가치를 어떻게 음미할 것인가를 배우는 지속적인 노력”이라고 보았다. 아동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인정하기 위해 아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나는 나의 아이에 대해 간섭하는 것이 성인으로서 합당하다고 생각하는지, 그 생각의 이면에는 아이의 역량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가 아닌지, 나의 아이의 참모습과 존재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귀 기울임으로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2015-07-09

7월 빨랫줄과 별 소나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볕이 좋다 못해 강한 7월이다. 비록 볕을 가리는 장마와 태풍이 7월 초입을 장식하고 있지만, 지독한 가뭄과 지독한 메르스에서 `지독한`을 씻어낼 이들이라 우리에겐 좋은 볕이다. 볕 좋은 7월 초 산자연중학교 운동장에는 빨랫줄이 쳐졌다. 6월에 이어 두 번째다. 산자연중학교는 전국에서 학생들이 전입학을 오는 전국 단위 기숙사 학교다. 학생들은 금요일 오후 학교스포츠클럽을 마치고 전국에 있는 자신들의 집으로 간다. 메르스가 점령한 6월의 귀갓길은 언제나 걱정이었다. 혹시나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 학생들이 아프지나 않을까 해서. 학교에서는 그런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학생들이 귀가한 6월 중순 어느 날 운동장 한쪽에 빨랫줄을 치고 전교직원이 동참해서 아이들의 이불을 운동장 가득 널었었다. 6월의 건강한 햇살을 가득 받은 이불은 그 건강함으로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을 지켜 주었다.6월에 이어 지난주에 다시 운동장에 빨랫줄이 쳐졌다. 이번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서울 K방송사에서 행복학교 박람회 참가 학교인 산자연중학교의 교육활동을 촬영하기 위해 PD를 포함 5명의 제작진이 내교했다. 사전 협의를 통해 저녁 프로그램인 스마트 독서 대화(SRD)와 일과 전 프로그램인 생태도감 그리기, 그리고 일과 중 프로그램인 생태교실, 사회 교과동아리의 마을 지도 그리기, 마을을 학교에 들인 마을학교 등을 촬영하기로 하였다. 학생들의 밤 교육 활동 촬영을 위해 제작진들은 밤늦게까지 학교에 머물러야 했다. 산자연중학교 소재지인 오산리는 슈퍼는커녕 네온사인 하나 없는 말 그대로 교육 청정 지역이라 숙박시설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제작진들을 위해 기숙사를 제공하기로 했고,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손님맞이 준비를 한 것이다.2015년 7월은 교육계에서 또 하나의 실험이 시작되는 달이다. D-DAY는 7월 21일. 이 날은`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는 날이다. 세월호 이후 불거진 나 하나 즈음이야 하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바로 잡기 위해 시행되는 인성교육진흥법!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많은 법들의 취지는 매우 좋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도 우리나라 교육과 만나면 이론과 현실이 따로 논다. 그 괴리감은 상상 이상이며, 인성교육법 또한 마찬가지다.곧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인성`에 대한 정확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인성 교육`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인성교육진흥법`은 출발부터가 잘못되었다. 그러기에 과정과 결과가 어떨지는 안 봐도 뻔하다. 주입식 교육을 통해 키울 수 있는 인성은 어떤 것일까? 설마 인성을 주입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그런데 그 염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 벌써 인성 교육 덕목이 정해졌다. “예절, 효도,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우리 학생들은 또 수업 시간에 성적 지상주의 교사들에 의해 이 여덟 가지 덕목을 고통스럽도록 주입받을 것이다. 그러면서 인성 법에서 원하는 인성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성이 형성될 것이다. 우리 학생들의 마음에는“강요, 강압, 불신, 짜증, 반항”이 더 크게 자리 잡을 것이다. 일전에 필자는 학생들의 건전한 인성을 잡아먹는 것이 인성교육진흥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도 눈에 선하다.볕 강한 7월, 우리 사회의 끝과 끝을 연결하여 빨랫줄을 치고 싶다. 그 빨랫줄 위에 정치, 교육, 경제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널고 싶다. 그래서 7월의 뜨거운 햇살로 소독하여 다시 제자로 돌려놓고 싶다. 그러면 이 나라에 조금이라도 온기가 돌지 않을까.

2015-07-08

메르스와 `연평해전`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난 한 달간 온 국민을 불안정국으로 이끌었던 메르스 사태가 이제 어느 정도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지역민들의 분주한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한 주 였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에서 발단된 일이라도 방심이나 안일한 대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국가의 존립마저 위협하게 된다는 문제를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해 본다. 정부의 무능과 대국민 소통 실패가 초래한 이번 메르스 사태 역시 지난해 온 국민을 깊은 트라우마의 충격에 빠뜨리게 했던 세월호 참사의 위기대처 능력과 비교해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주말을 이용해 들렀던 시내 극장가에서도 이제는 메르스의 충격에서 벗어나 일상 속에서 자기관리를 우선적으로 실천해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정부가 아닌 우리국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꿈은 이루어진다`는 응원함성과 함께 대한민국이 2002 월드컵으로 붉게 물들어갈 때 발발했던 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연평해전`은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이 각자 맡은 역할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월드컵 16강이라는 신화를 넘어 4강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온 국민이 TV앞에 모여 앉아 있을 때도 군인이 가져야 하는 국토수호의 의무를 묵묵히 수행하며 당당하게 죽음과 직면했던 참수리 357 고속정의 젊은 영웅 6명이 모든 물음에 그 답을 해주고 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입대한 군인에게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책무이며, 국가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필연적으로 적을 섬멸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기의 목숨과도 바꿔야 할 정도로 절대적이며 중요한 가치를 지닌 군인의 임무인 셈이다.필자가 `연평해전`을 보러 간 날은 개봉된 지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극장을 가득 메운 건 중년의 커플보다는 기말고사를 치루고 주말을 이용해 극장가를 찾은 20대 대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영화 중간 중간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여대생의 옆모습에서 그래도 조국을 위해 작열한 죽음을 선택했던 윤영하 정장과 한상국 조타장을 비롯해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중사와 마지막까지 자신의 역할을 지켜나갔던 의무관 박동혁 병장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당시 357 고속정은 서해안 북방한계선인 NLL를 사수하기 위해 남침하는 북한 함정에 함포공격을 하기 보다는 국내에서 진행되던 월드컵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경비정의 선체 뒷부분을 부딪쳐 막는 방어적 작전만을 대응하다 기습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군인으로서 판단과 선택보다는 국가적 명분과 지시를 지켜야 했기에 그들의 희생은 더욱 숭고하고 아쉽게만 느껴진다.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메르스의 두려움도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저력을 얻게 되는 지도 모른다.국가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슬기로운 의지와 국민화합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국민문화가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마련되어진다면,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방심한 방역정책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은 32명의 사망자의 희생 또한 헛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 관람을 마치며 시내를 벗어나는 길에 대로변을 가로 지르는 현수막의 문구가 가슴 깊게 와 닿는다.“메르스를 이겨낸 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노력 덕분입니다!”

2015-07-07

책과의 여행을 꿈꾸며

▲ 차봉준숭실대학교 교수·베어드학부대학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을 지낸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가난한 살림살이와 서얼 출신이라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책 읽기에 남다른 열정을 쏟은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적어 놓은 `간서치전(看書痴傳)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릴 때부터 21세 나도록 손에서 일찍이 하루도 옛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 방은 몹시 작았지만 동창과 남창과 서창이 있어, 해의 방향에 따라 빛을 받아 글을 읽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보게 되면 문득 기뻐하여 웃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가리켜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읽는 멍청이`라 놀려도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단다. 이 뿐만이 아니다. 풍열로 눈병이 심해져 차마 제대로 눈을 뜰 수 없는 가운데도 실눈을 뜬 채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책 읽기를 즐겨했는지, 또한 책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히 `책만 읽는 멍청이`란 별명이 핀잔으로만 들리지 않는 까닭이 오롯이 전해온다.우리 시대에도 소문난 독서가들이 한둘 아니다. 서점을 나가 진열된 책들을 휘둘러보면 독서법과 관련한 책들이 부지기수고, 동서양의 다양한 고전들을 읽기 편하게 풀어 놓은 책들이 독자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적어도 이러한 책을 저술한 작가들만큼은 이덕무에 버금가는, 혹은 그를 능가하는 독서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독서 실태가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우리는 잠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대한출판문화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독서율이 꼴찌다. 성인 기준으로 월간 독서량이 0.8권, 일 년 평균 9.2권이란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가구별 월평균 소득 및 서적구입비를 대비해 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월평균 가계소득이 2011년 기준 380만원에서 2014년 430만원으로 증가했음에도 가구당 서적구입비는 2만5천원에서 1만8천원 수준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십여 년 가까이 자살률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과 국민 평균 독서율마저 꼴찌라는 부끄러운 지표 사이에 뭔가 묘한 상관성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억측일까?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책 읽기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실무적 도움과 정보의 획득이라는 효용적 측면이 그 이유일 것이고, 누군가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쾌락적 차원에서 책 읽기를 이야기한다.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폰티지아는 독서 중의 독서, 구극(究極)의 책 읽기를 `아무런 목적 없는 책 읽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유야 무엇이 되었든 큰 상관이 없으리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만 허용한 선물이자 권리이기 때문이다.“가장 고요할 때/가장 외로울 때/내 영혼이/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나는 책을 연다/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조심스러이 연다.(후략)”다형(茶兄) 김현승의 시 `책과의 여행` 첫 연이다. 시인은 책을 펼치는 것을 마치 밤하늘의 별을 찾듯,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 조심스럽고 소중한 행위로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책 속에서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희망을 노래해 줄 `영혼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음도 노래한다. 그래서 시인은 `책과의 여행`을 그 무엇에도 뒤지지 않는 행복한 여정으로 여겼나 보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올라가고 있는 이 계절, 시원한 선풍기 바람 맞으며 책장을 천천히 넘겨가는 일상에서 인생의 작은 행복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5-07-06

메르스 불안을 뛰어넘은 한국교양교육 학술대회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메르스가 처음에는 `페스트`(알베르 카뮈, 1947)의 주된 배경인 오랑시 시민들처럼 쉽게 지나갈 전염병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예상을 했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심각한 사태로까지 진전되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쪼그라들게 하고 있다. 한동안 우리들의 관심이 온통 메르스에 집중되는 가운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식적인 모임들이 무기한 연기 또는 잠정적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전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교양교육학회와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전국대학교양교육협의회 공동 주최로 열린 교양교육 관련 학술대회는 메르스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학술 축제의 장이었다.사실, 여러 학회들이 잇달아 취소되는 상황에서 주최측이 학회를 연다는 데는 다소의 두려움이 있었고, 참석자들도 망설임이 있었다. 하지만 학회는 발표자와 토론자, 관심 있는 지식인, 관계자 등 보이지 않는 수많은 네트워크들의 복잡한 연결망으로 이루어져 있어, 취소도 열림도 그 결정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고민과 논의 끝에 열린 학술대회는 기대 이상으로 성황을 이루었다. 한국의 많은 대학들이 보인 교양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높은 관심이, 기적처럼 메르스에 대한 불안을 넘어서게 만든 셈이다.대학이 생긴 이래로 교양교육은 늘 있어 왔다. 하지만 한국 대학들의 일부에서는, 교양교육은 전공교육의 주변 내지는 하부에 있는 교육의 일종이며, 더 심하게는 교양은 교육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학생 자신들이 스스로 쌓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21세기가 전문지식만으로는 살 수가 없이 되어 버리자, 대학에서의 교양교육에 대한 인식에도 큰 변화가 있어 왔다.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손동현 원장이 일찍부터 해 온 주장처럼 정보화·세계화 시대의 대학 교육은 총체적이고 종합적 사유를 길러주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며 연결지평을 만들 줄 아는 인재야말로 21세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이고, 그런 인재를 키워 낼 수 있는 지점이 교양교육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대학들이 교양교육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른다.당일 학술대회의 대주제가 `21세기 한국사회의 변화와 교양교육`이었던 것만큼 한국 대학의 교양교육이 전환기를 맞은 한국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대학과 사회의 소통이 덜할 때의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부르던 때와는 달리 지금의 한국 대학들은 사회의 요구를 적극 탐색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대학 교양교육의 관심은 대학들이 하고 있는 최대의 고민인 취업의 문제와도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일 발표 중 아주대 홍성기 교수가 제안한 `강의페어링제도`가 그 좋은 예이다.학생들의 진로와 밀착되어 있는 강의페어링제는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면,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교과목들을 스스로 선택하고 짝짓기 해서 수강하는, 교양-전공이라는 영역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을 만큼 교과목들 간의 수평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는 제도이다. 다시 말해 이 제도는 맞춤형 직업교육 효과를 가질 뿐만 아니라 교양과 전공 간의 경계를 해체하는 새로운 교육 경향이며, 학부대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가 되는 제도이기도 하다. 아주대의 이 교육모델은 교육과정의 유연화를 넘어 대학학사구조 전반에 대한 개혁이 전제가 되면 매우 유용한 제도가 될 것 같다.메르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교육 내용과 교수법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그날의 참석자 모두가 지닌 간절한 바람은, 제대로 된 교양교육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었다.

2015-07-02

행복한 날짜 방정식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7월이다. 6월의 수식어는 호국의 달이다. 그래서 각 학교에는 `호국 정신으로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세계로 미래로`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하지만 2015년 6월은 호국(護國)의 자리를 메르스가 차지해 버렸다. 6월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어쩌면`메르스로 인해 갈등, 분열, 불신이 더 심해져 세계에서 왕따가 된 나라`라는 현수막이 전국의 관광서는 물론 회사, 학교에 걸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해 전에 어느 대학생이 쓴 대자보가 국민적인 관심을 크게 끈 적이 있었다. 제목은 `안녕들하십니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 근로자들의 파업과 이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 그리고 고압 송전탑, 국가 기관의 선거 개입 의혹 등 당시의 사회 이슈들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담은 대자보였다. 사회 문제가 심각한데 왜 관심을 가지지 않느냐며, 불의를 보고 행동하지 않은 우리사회의 다수를 비판하는 것으로 대자보는 끝이 났다.한 학생의 절규는 전국을 대자보 홍수로 만들었다. 대학가는 물론 심지어 국회에까지 대자보가 붙었으니 그 위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바쁘다는 이유로 사회 문제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잠자던 사회적 양심을 일깨우는데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냄비 근성이 강한 우리나라는 한동안 그러다 끝났다. 대자보가 지나간 자리엔 더 큰 공허만이 남았다.일반적으로 한국 문학의 특징으로 자연과의 융화, 체념과 한의 승화, 여백과 여운, 풍자와 해학, 그리고 은근과 끈기를 든다. 그런데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은근과 끈기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한 곳만 빼고. 혹 그곳이 어디인지 짐작하시겠는지. 그곳은 바로 국회다. 정말 지치지도 않고 싸우는 정치권의 모습은 끈기의 대표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대자보와 정치를 말하기 위해 시작한 글이 아닌데, 골 깊은 불신에 그만 또 이야기가 살짝 다른 곳으로 흘렀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의 제목이다. 6월 한 달 동안 우리의 이야기는 마치 대본처럼 일정한 틀을 갖추고 있었다. 시작은 항상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끝은 “건강하세요!” 그만큼 우리는 안녕하지 못한 시간들을 보냈다.그 안녕하지 못한 6월이 이제 끝났다. 6월만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안녕하지 못하게 만든 메르스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다행히 국민들의 의지로 메르스는 어느 정도 진정세를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 사회도 안정을 찾나 싶었는데, 역시 우리나라 정치는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나라가 조용한 꼴을 못 보는 것이 이 나라 정치이기에 국회법인가 뭔가로 다시 전국을 뜨겁게 하고 있다. 제발 이번만은 메르스로 지쳐 있는 국민을 위해 조용해주면 안되는지.7월을 견우직녀의 달이라고 한다. 만남의 대표적인 이야기인 견우와 직녀, 그들의 만남을 위해 까막까치가 다리가 되어 주는 7월. 그래서 감동이 더 한 7월. 만남과 감동이 있는, 그래서 행복한 7월에 정부와 국회가 오작교가 되어 주면 안되는지. 그래서 힘들고 지쳐 있는 국민들이 그 오작교를 건너 다시 새로운 희망과 더 큰 행복을 만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영국 심리학자가 발표한 `행복한 날짜 방정식`이 있다. `행복한 날짜=O+(N×S)+Cpm÷T+He` 여기서 `O`는 야외활동,`N`은 자연의 상태, `S`는 친구와의 교류,`Cpm`은 어린 시절의 긍정적인 기억들, `T`는 기온, `He`는 여름휴가에 대한 기대감을 뜻한다.이 방정식대로 계산하면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날은 6월 20일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기온과 자연 상태가 야외활동 하기에 좋고, 또 여름휴가에 대한 행복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럼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날짜는 언제일까. 필자는 듣기만 해도 행복한 친구, 야외활동, 여름휴가 등이 있는 7월의 모든 날이 행복한 날이 아닌가 한다. 만약 여기에 메르스 퇴치, 경제 활성화, 정치 안정만 들어간다면 2015년 남은 날들 모두가 우리게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2015-07-01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마치 긴 암흑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듯하다. 터널 이름은 불신 메르스! 일반적으로 고속도로나 국도에 있는 터널은 그 길이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메르스 터널은 그 길이를 전혀 알 수 없다.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그 상황을 알지 못할 때이다. 다들 유년시절에 술래가 되어 눈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잡는 까막잡기(또는 봉사놀이) 놀이를 해 봤을 것이다. 필자는 눈이 가려졌을 때의 그 공포감을 지금도 기억한다.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까막잡기 놀이와 똑 같다. 술래는 우리 국민이고, 우리가 잡아 할 상대는 메르스와 불신(不信)! 메르스와 불신의 공통점은 점염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밀폐된 곳에서의 점염성은 둘 다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차이는 메르스는 언젠가는 분명히 잡히지만 불신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불신이다.우리나라가 지금 힘든 이유는 하나만 잡기도 힘든데 두 가지를 다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힘듦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메르스가 불신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믿지 못했기에 쉽게 자신의 상태를 알릴 수 없었을 것이며, 또 자신의 병을 고쳐줄 병원과 의사를 믿지 못했기에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사이 메르스는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만들고 이 나라를 터널 안에 가둬버렸다.그 터널 안엔 이정표는 없다. 설사 있다 해도 불신에 눈이 가려진 사람들은 이정표를 보지 못한다. 정부는 “메르스 안심 병원”, “메르스 조기 종식” 등 여러 이정표를 세우고 있지만, 불신에 눈이 빼앗긴 사람들은 귀까지 빼앗겨 보지도 듣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볼 생각도, 들을 생각도 없다.불신 터널에 갇혀 눈과 귀를 빼앗겨 버린 사람들은 듣고 볼 수 없기에 자신의 직감(直感)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린다. 하지만 그 직감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너무도 주관적인 것이어서 아무 이유 없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따라 가게 되어 있다.이이는 인생을 망치는 여덟 가지 습관 중 하나로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습관”을 들었다. 이 습관은 개인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까지 망치고 있다. 지금 이 나라 정치는 마치 조선시대의 붕당을 보는 듯하다. 맹목적인 결집! 이보다 우리나라 정치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 어디 있을까! 결집의 목적은 나라도, 정당도 아닌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젠 세 살 아이들도 다 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국민을 위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필자에게 지금의 시대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필자는 `부재와 모순의 시대`라고 말 할 것이다. 진정으로 있어야 할 것들은 사라졌거나, 또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고, 반면에 없어져야 할 것들은 더 융성하고 있는 것이 지금 시대다.전자의 대표적인 것이 신뢰라면, 후자의 대표적인 것은 불신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우리의 습관은 신뢰보다는 불신에 더 익숙해져 있다. 가정, 학교, 국가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은 구성원을 연결해주는 믿음이다. 그런데 칼보다 더 날카로운 불신이 그 믿음을 다 끊어 놓고 있다.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의사와 환자, 정부와 국민이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가장 가까워야 할 이들 사이가 점점 멀어져 이젠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까지 되었으니 정말 우리나라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가면 갈수록 암흑의 농도가 더 짙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불신의 메르스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지?그런데 필자는 그 가능성을 지난 주말 어느 횡단보도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서 찾았다. 암흑의 터널을 벗어날 등대의 큰 빛줄기를 소개한다. “고맙습니다. 메르스 사투를 벌이는 의사, 간호사, 소방서, 관계 공무원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2015-06-24

전통시장, 변신하면 부활한다

▲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2000년대 들어선 이후부터 우리나라는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힘입어 경제사회구조가 크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중 눈에 띠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바뀐 것 중 하나로 시장을 들 수 있을 것 같다.시장이라는 것은 공간지리적인 실체를 지닌 흔히 전통시장이라는 곳을 연상하기 쉽지만, 이러한 제약이 없는 사이버상의 거래시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성장하였다. 과거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발품을 팔아야만 하였지만 이제는 가정에서 편안하게 TV를 시청하다가 필요한 물품들을 전화 한통화로 손쉽게 주문하고 배달되는 세상을 맞이하였다.이러한 외형상 거래형태와 구매수단이 혁신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시장의 `본질`은 불변이다. 시장의 형성은 단순히 소비자가 원한다고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시간적, 물리적 조건이 맞지 않으면 소비자가 원하더라도 시장은 형성되지 않는다. 반대로 공급자가 야심차게 휘황찬란한 쇼핑몰을 건설하고 이름을 시장이라고 붙여두더라도 그것은 공급자의 기반일 뿐 소비자가 장소의 접근성, 거래행태의 편의성 등에 만족하지 못하면 거래의 접점으로서의 시장은 형성되지 않는다.간혹 전통시장을 살리자, 전통시장을 죽이지 말자라는 식의 이야기들을 들을 때가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유독 포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서울의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처럼 조선시대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시전(市廛)`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명실상부한 `전통시장`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포항에서 지금 전통시장이라고 이야기되는 시장들은 철저한 경제논리하에서 성장한 시장들이다. 포항이 교통오지였던 시기에는 포스코 등 지역내 철강산업의 급성장과 더불어 넘쳐나는 소비수요로 인해 무엇이건 부족한 물품을 공급해줄 수 있는 시장은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대구 등 대도시로부터 물품을 조달해오는 상인의 입장에서는 이동운임, 수고비 등을 충분히 얹어 다른 도시보다 비싼 소비자물가인 이른바 `포항프리미엄`이 매겨진 시장이라도 시민들은 충분히 만족하였었다.그런데 포항을 비롯한 신흥도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의 경우에는 대부분 주거지역 등 소비자가 밀집되는 인구지형도와도 큰 상관관관계가 있다. 때문에 그러한 도시들의 경우에는 지역의 발전과 인구의 팽창으로 인구지형도가 크게 바뀐 곳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자동차나 철도 등 교통인프라의 발달과 더불어 소비자의 소비행태까지도 크게 변화하였다. 말 그대로 발이 달린 소비자가 어디든 신속히 갈 수 있게 되었고 정보통신의 발달로 소비자에게 부족하였던 여타 지역과의 가격정보 비교능력도 크게 신장된 것이다.결과적으로 이제는 과거 20만명 시대에 통하였던 포항시내의 소비 패러다임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소비자는 왕`이라는 말까지 머리에 박혀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왕` 대접까지는 바라지 않겠지만 자신이 돈을 주고 상품을 구입하는 만큼 충분한 서비스를 받아야할 자격이 있음을 현대의 소비자들은 자각하고 있다.만약 과거의 전통시장처럼 친절한 미소와 최근 유행 결제수단인 현금만이 아닌 디지털화폐의 결제, 보다 편리한 쇼핑카트를 가지고 시장 온 구석을 다니며 쇼핑하고 일괄적으로 한 번에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시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철저하게 지역산 농수산물을 청결하고 깨끗하게 구매할 수 있고, 물어보고 옆 가게에서 사더라도 욕설하지 않고 그 가게도 좋다는 마음씀씀이를 주는 곳, 오후 대여섯 시만 되면 깜깜해져서 감히 퇴근해서는 갈 생각도 못하는 곳이 아니라 퇴근길에 언제든지 대형마트처럼 등불을 밝혀두고 언제든지 쇼핑을 할 수 있는 곳, 굳이 외지에 사는 친지에게 택배를 보내기 위해 누구 아는 사람 가게를 주변에서 물어 찾지 않더라도 어느 가게든지 믿고 의뢰할 수 있는 곳 바로 그런 가게들이 존재하는 시장이야말로 시민의 세금을 들여서라도 활성화해야할 가치가 있는 진정한 `전통시장`이 아닌가 싶다.

2015-06-18

메르스를 통해 드러난 습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웃는 모습, 사람을 대할 때의 행동, 운동할 때의 자세, 심지어 이름이나 눈빛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때 말하는 “사람”이란 그 사람의 본모습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조직, 사회, 국가의 참모습을 아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그 대상의 참모습을 알 수 있는 공통적인 방법으로 필자는 “큰일”을 든다. 큰일의 정도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대상의 감춰졌던 본모습이 더 확연히 드러난다. 습관은 제2의 본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본모습을 습관으로 바꾸어 위의 문장을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큰일을 당하면 그 대상의 습관을 알 수 있다.”메르스는 우리 사회 조직의 습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습관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도 민망하다. 필자는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습관, 교육부(청)의 습관, 언론의 습관, 정치의 습관, 정부의 습관을 똑똑히 보았다. 그 습관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네 탓”이다. 정부부터 시작해서 국민 개인까지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말한다, 나는 절대 잘못한 것이 없고 문제가 생긴 것은 무조건 “남 탓이다!”고.습관이 생기려면 1만 시간 이상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습관은 수많은 반복에 의해 만들어 진다. 우리의“네 탓”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껏 어떤 일만 생기면 그것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해결하려지 않고 무조건 “남 탓”만 해 왔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죽이지 않으면 죽는 살벌한 경쟁 대국이 되어버렸다. 경쟁 대국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정치다. 여와 야뿐인 이분법적 정치에서 화합이니 배려니 하는 말은 너무 낯설다.우리나라에 “네 탓” 습관을 뿌리내리게 한 일등 공신은 언론이 아닐까한다. 필자는 아직도 언론에 보수와 진보가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동일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보도 방향은 극과 극인 우리나라 언론에 과연 최소한의 언론 윤리는 있는지 궁금하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언론 보도의 대원칙은 자극성이다. 그래서 언론들은 좀더 자극적인 기사를 찾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종합편성채널에 나오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막말 쇼는 “네 탓”의 끝판이다. 언제 우리나라 방송과 신문의 하이라이트에는 네 탓만 하는 정치 이야기 대신에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미담들로 채워질지.지금 이 나라 정치와 언론은 또 “네 탓”에 올인 하고 있다. 그 대상은 서울의 한 병원! 필자는 그 병원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은 지역 병원에서는 삶의 가망성이 없다고 하여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기 위해 그 병원에 간 지인에 대한 것이다. 너무도 다행히 그 병원 의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필자의 지인은 기적적으로 새로운 생명이라는 희망의 끈을 잡고 지금 너무도 건강하게 봉사하며 살고 있다. 아마도 이 나라엔 필자의 지인과 같이 서울의 그 병원에서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병원과 의사들을 탓하는 정치인과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 그리고 언론에게 필자는 정중히 묻는다. 과연 당신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는지? 약조차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바이러스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가 누구인지? 의사 이전에 그들도 사람일진데 왜 두렵지 않을까마는,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들의 힘을 누가 빼고 있는지?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인생을 망치는 8개의 나쁜 습관에 대해 말했다. 거기다가 하나를 덧붙이면 나라를 망치는 9개의 나쁜 습관이 될 것이다. 그건 바로 “남을 탓하는 습관”이다. 이이는 나쁜 습관을 없애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고 있다. “革舊習一刀決斷根株(혁구습일도결단근주) - 나쁜 습관은 한 칼에 잘라버리듯이 뿌리째 뽑아야 한다.” 메르스를 잡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말을 늘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2015-06-17

메르스를 치료하는 진정한 백신

▲ 김태곤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온 나라가 메르스(MERS)의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TV의 각종 다큐멘터리나 SF영화를 보면 인간이 무한한 능력과 탁월한 과학기술을 통해 광활한 우주를 거침없이 개척해 나가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정작 감기나 독감과 같은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가지는 한계점에 내심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일련의 현상 속에서 인간은 대자연속에서 그저 자그마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동물들로 부터 전염된 바이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되는 우리의 모습에서 위대한 자연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전염병은 더욱 종잡을 수 없는 존재로 발전해 가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역사는 인간들이 만든 전쟁과 자연에서 얻어진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항상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게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에겐 절대적 위협이 되는 바이러스의 출현이 때로는 인류의학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단초가 되는 경우도 역사를 통해 여러 차례 보아왔다. 이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국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새로운 계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번 메르스 역시 인간이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과 침탈에서 비롯된 바이러스의 변이에서 비롯된 참사로 보아진다.현재까지 14명의 사망자가 나온 메르스 사태가 우리사회에 끼친 파장은 사상자가 발병한 것 못지않게 우리사회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다. 우리사회에는 이번 사태는 사회의 여러 관계에서 비롯된 불신과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대두되면서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그 파장이 커지고 있다. 본의 아니게 감염된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불신과 함께 질병을 극복한 노력보다는 회피하려는 이러한 현상은 메르스의 치료제 부재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정부의 안일한 위기 대처능력도 문제였지만 무작정 감염환자나 의심환자를 중증환자 보듯이 사회에서 격리부터 시켜 놓고 보는 식의 대처방법과 장기적 휴교만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태도가 더욱 혼란을 초례하는 것 같다.야생 다람쥐나 들쥐 등의 전염병으로써, 쥐의 벼룩을 통해 병원균이 다른 동물에게 전염되었던 `흑사병(Black Death)`은 14세기 유럽의 역사마저 바꿔 놓은 무서운 병으로 기록되고 있다. 페스트균의 감염에 의해 급성으로 일어나 1664~5년에는 런던 인구의 20% 정도가 이 병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으며, 19세기 말에는 중국에서도 엄청난 인명을 앗아가 버린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 무렵 기록에 따르면, 전 유럽 인구의 1/3 내지 1/4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그리고 1918년 여름 악성 독감으로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 역시 엄청난 사상자를 만들어 내었다.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로 발전한 스페인 독감은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2천500만~5천만 명이 사망했으며, 한국에서도 740만 명이 이병에 감염되었으며 감염된 이들 중 14만여명이 사망에 이른 걸로 전해지고 있다.그리고 2003년의 `사스(SARS)-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와 2009년의 `신종플루`, 2014년의 `에불라`등 인류의 역사 속에서 늘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은 지속돼 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이제 인류는 메르스나 신종플루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 개발도 중요하겠지만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며 무분별하게 개발해 나가는 정책에 변화를 꾀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 악성 바이러스로부터 우리와 우리가족을 지키는 백신이 되기 때문이다.

2015-06-15

지방자치 20년, 지방자치 2.0의 시대로

▲ 이동수 대구한의대 교수우리나라가 지방자치제를 도입한지도 금년들어 20년에 접어들었다. 20년은 성년이 되는해로 그만큼 지방자치제도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일본과 같이 성주중심의 봉건시대를 거친 후 지역간 협약에의해 국가가 탄생된 것과는 다른 유형으로서 20년간의 매우 큰 진전을 보였다고 호평된다.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지방자치체의 성과로는 첫째, 민주주의의 강화를 들수 있을 것이다. 이는 주민감사청구, 주민소환 등 주민이 행정의 객체에서 탈피하여주체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유주고 있다. 또한 주민의사를 반영한 지자체간 정책 경쟁이 활성화 되어 자치단체의 정책결정과정과 집행에 있어서 객체에서 주체로 바뀌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둘째, 특색있는 지역발전을 들었는데 지방의 다양성·특색을 반영한 지역발전 전략이 추진되고 창의성이 반영된 지역브랜드가 창출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치단체간의 경쟁은 중복투자, 과도한 지출 등의 문제를 안고 있으나 문제점보다는 지역의 특성화 발전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셋째, 지방자치단체의 위상 강화로 지자체 간 협력을 통해서 지방 스스로 서비스의 질을 제고하는 등 중앙정부의 하위조직으로서 지역이 아닌 국가발전의 한 축으로서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성공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상황은 경제 저(低)성장 기조 항상화(恒常化)와 지역이기주의에 따른 갈등 심화, 고령화·낮은 행복지수 등 경제·사회적 환경이 변화하고 있고, 국가사무의 지방이향이 아직도 미흡한 등 실질적인 권한과 자율성이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국세 대(對) 지방세 비율 8:2로 20년간 불변이고, 복지·국고보조 대응 등 재정운영이 경직되어 열악한 지방재정을 보이고 있고, 인구·면적·지역특성과 관계없이 획일적인 자치제도를 보유하고 있어 많은 도전과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이러한 문제를 넘어서 지방자치 2.0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방자치의 근본이념에 충실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는 지역사회 공동체의 활성화와 주민 중심의 생활밀착형 제도 정비, 재정분권의 확립이 필요할 것이다.첫째, 지역사회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공동체 모델의 정립과 함께 기본법 등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공동체기반의 조성이 필요하며 공동체 중심의 사회적 경제, 작은 경제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위한 법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야 할 것이다.둘째, 지방자치제 시행이후 변화된 인구 등 생활환경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주민생활 밀착형 자치제도 확립이 필요한데 이을 위해서는 책임읍면동제도의 도입 등 현장중심으로 조직과 인력 및 기능의 개편이 필요하고, 주민주도형 행정서비스의 제공, 주민불편 해소를 위한 과제의 추진과 주민자치회 등 주민지원행정의 추진이 필요할 것이다.셋째, 이러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재정분권이 이뤄져야 한다. 재정분권의 확대를 위해서는 국가 - 지방, 광역 -기초간 재정 격차 해소를 위한 세제조정과 함께 지방소비세 확대 및 종합부동산세의 지방세 전환 등의 지방재정 구조개혁이 필요하고, 지방세 과세대상을 확대하는 노력과 함께 지방세 과세표준의 단계적·연차적 현실화를 추진하는 등 과세체계 개선이 필요하며, 불합리한 지방세 특례 정비와 함께 지방세외수입을 확충하는 등 세입기반 확충이 필요할 것이다.지방자치제 20년의 역사를 기반으로 새로운 20년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중앙정부는 이제 지방자치단체를 하위 조직이 아닌 국정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보다 많은 권한과 재원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질풍노도의 실험시기를 지나 성년의 성숙함으로 국정의 한축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15-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