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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등록일 2015-06-24 02:01 게재일 2015-06-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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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마치 긴 암흑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듯하다. 터널 이름은 불신 메르스! 일반적으로 고속도로나 국도에 있는 터널은 그 길이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메르스 터널은 그 길이를 전혀 알 수 없다.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그 상황을 알지 못할 때이다. 다들 유년시절에 술래가 되어 눈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잡는 까막잡기(또는 봉사놀이) 놀이를 해 봤을 것이다. 필자는 눈이 가려졌을 때의 그 공포감을 지금도 기억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까막잡기 놀이와 똑 같다. 술래는 우리 국민이고, 우리가 잡아 할 상대는 메르스와 불신(不信)! 메르스와 불신의 공통점은 점염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밀폐된 곳에서의 점염성은 둘 다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차이는 메르스는 언젠가는 분명히 잡히지만 불신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불신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힘든 이유는 하나만 잡기도 힘든데 두 가지를 다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힘듦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메르스가 불신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믿지 못했기에 쉽게 자신의 상태를 알릴 수 없었을 것이며, 또 자신의 병을 고쳐줄 병원과 의사를 믿지 못했기에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사이 메르스는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만들고 이 나라를 터널 안에 가둬버렸다.

그 터널 안엔 이정표는 없다. 설사 있다 해도 불신에 눈이 가려진 사람들은 이정표를 보지 못한다. 정부는 “메르스 안심 병원”, “메르스 조기 종식” 등 여러 이정표를 세우고 있지만, 불신에 눈이 빼앗긴 사람들은 귀까지 빼앗겨 보지도 듣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볼 생각도, 들을 생각도 없다.

불신 터널에 갇혀 눈과 귀를 빼앗겨 버린 사람들은 듣고 볼 수 없기에 자신의 직감(直感)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린다. 하지만 그 직감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너무도 주관적인 것이어서 아무 이유 없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따라 가게 되어 있다.

이이는 인생을 망치는 여덟 가지 습관 중 하나로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습관”을 들었다. 이 습관은 개인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까지 망치고 있다. 지금 이 나라 정치는 마치 조선시대의 붕당을 보는 듯하다. 맹목적인 결집! 이보다 우리나라 정치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 어디 있을까! 결집의 목적은 나라도, 정당도 아닌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젠 세 살 아이들도 다 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국민을 위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필자에게 지금의 시대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필자는 `부재와 모순의 시대`라고 말 할 것이다. 진정으로 있어야 할 것들은 사라졌거나, 또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고, 반면에 없어져야 할 것들은 더 융성하고 있는 것이 지금 시대다.

전자의 대표적인 것이 신뢰라면, 후자의 대표적인 것은 불신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우리의 습관은 신뢰보다는 불신에 더 익숙해져 있다. 가정, 학교, 국가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은 구성원을 연결해주는 믿음이다. 그런데 칼보다 더 날카로운 불신이 그 믿음을 다 끊어 놓고 있다.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의사와 환자, 정부와 국민이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가장 가까워야 할 이들 사이가 점점 멀어져 이젠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까지 되었으니 정말 우리나라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가면 갈수록 암흑의 농도가 더 짙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불신의 메르스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지?

그런데 필자는 그 가능성을 지난 주말 어느 횡단보도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서 찾았다. 암흑의 터널을 벗어날 등대의 큰 빛줄기를 소개한다. “고맙습니다. 메르스 사투를 벌이는 의사, 간호사, 소방서, 관계 공무원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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