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도 소문난 독서가들이 한둘 아니다. 서점을 나가 진열된 책들을 휘둘러보면 독서법과 관련한 책들이 부지기수고, 동서양의 다양한 고전들을 읽기 편하게 풀어 놓은 책들이 독자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적어도 이러한 책을 저술한 작가들만큼은 이덕무에 버금가는, 혹은 그를 능가하는 독서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독서 실태가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우리는 잠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독서율이 꼴찌다. 성인 기준으로 월간 독서량이 0.8권, 일 년 평균 9.2권이란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가구별 월평균 소득 및 서적구입비를 대비해 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월평균 가계소득이 2011년 기준 380만원에서 2014년 430만원으로 증가했음에도 가구당 서적구입비는 2만5천원에서 1만8천원 수준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십여 년 가까이 자살률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과 국민 평균 독서율마저 꼴찌라는 부끄러운 지표 사이에 뭔가 묘한 상관성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억측일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책 읽기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실무적 도움과 정보의 획득이라는 효용적 측면이 그 이유일 것이고, 누군가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쾌락적 차원에서 책 읽기를 이야기한다.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폰티지아는 독서 중의 독서, 구극(究極)의 책 읽기를 `아무런 목적 없는 책 읽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유야 무엇이 되었든 큰 상관이 없으리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만 허용한 선물이자 권리이기 때문이다.
“가장 고요할 때/가장 외로울 때/내 영혼이/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나는 책을 연다/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조심스러이 연다.(후략)”
다형(茶兄) 김현승의 시 `책과의 여행` 첫 연이다. 시인은 책을 펼치는 것을 마치 밤하늘의 별을 찾듯,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 조심스럽고 소중한 행위로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책 속에서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희망을 노래해 줄 `영혼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음도 노래한다. 그래서 시인은 `책과의 여행`을 그 무엇에도 뒤지지 않는 행복한 여정으로 여겼나 보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올라가고 있는 이 계절, 시원한 선풍기 바람 맞으며 책장을 천천히 넘겨가는 일상에서 인생의 작은 행복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