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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상한 영혼을 위하여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작금에 한국에서 가장 마음이 상한 인물을 꼽자면 아마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아닐까 싶다. 그가 당 대표에 오른 뒤 단 하루라도 당내 사정이 고요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친노와 비노, 혹은 주류와 비주류로 일컬어지는 계파 대립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태동시킨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함께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앞으로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 길을 예측하고 장담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다가올 총선의 공천 윤곽이 드러날 즈음 더더욱 혼돈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을까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한 마디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앞에 선 느낌이랄까. 이런 상황 가운데 지난 6일 문재인 대표의 심경을 읽을 수 있는 한 편의 시가 그의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가 그것이다. 특히 두 번째 연의 마지막 구절인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 /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에서 문대표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안철수 의원에게, 당원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을 향해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밝힌 셈이다. 시의 의도를 빌리자면 문대표는 이 순간부터 목숨까지 걸 각오로 외로운 길을 꿋꿋이 걸어가기로 작심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표현처럼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내기 위해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고통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한편 외로운 길의 끝자락엔 반드시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음도 느껴진다. 인용한 시의 첫 번째 연에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 뿌리 깊으면야 /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후략)”에서처럼 비록 `상한 갈대`일지언정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릴 강인한 생명력이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밑둥까지 잘려나갈 지라도 다시금 새순이 돋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아울러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와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그의 손을 `마주잡을 손`을 기대하는 심정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시에 담긴 의미를 문재인 대표의 마음과 정확히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시를 인용한 문대표의 의도를 짐작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한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리더라면 사방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에 결코 흔들려선 안 된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줌이 마땅하다. 그러나 고정희 시인의 시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상한 갈대가 한 계절을 넉넉히 흔들리면서도 그 잘린 밑둥에서 다시 새순을 돋아내는 것은 “뿌리 깊으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일지라도 거기서 꽃을 피워내는 일은 “물 고이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리고 문재인 대표에게 고통을 이겨낼 깊은 뿌리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아울러 새로이 꽃을 피워 낼 넉넉한 물이 채워져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만에 하나 이 둘의 충족요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롭기를 작정하고 목숨 걸고 길을 걷겠다면 그러한 리더를 바라보는 구성원들의 낭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2012년 대선출마 선언에서 안철수 의원이 인용했던 조병화의 시 `나 하나 꽃 피어`가 새삼스럽다. “나 하나 꽃 피어 /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 말하지 말아라 /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 결국 풀밭이 온통 /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후략)” 이 나라의 `새정치`를 이야기했던 그들 중 한 사람은 너와 내가 함께 꽃 피워 풀밭을 꽃밭으로 만들겠다고 말하다 다른 길을 떠났고, 또 한 사람은 상한 영혼이 되어 외로운 길을 나서겠다며 결연하다. 이 두 사람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도 의문이지만, 이러한 한국 정치에 점점 깊이 상처받고 있는 우리 시대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 슬퍼할 일이다.

2015-12-21

더 행복한 내일, 시간선택제 일자리에서

▲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 정부는 `고용률 70% 로드맵`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핵심적인 정책 중 하나로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정책 추진과 함께 2017년까지 고용률 70%를 달성할 계획이다. 경북지역은 2014년 현재 여성 고용율이 47.7%로 전국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연령별 분포는 20대에서 가장 높았다가 30대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급감한 뒤 40대부터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60대 이상 연령층까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에 의해 40대 이후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실정이다.고용의 질 개선이나 현대여성의 경력(Career) 향상은 지식기반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사회에서 유휴 인력의 고용률 제고를 통해 국가 잠재성장률 향상을 주도하고, 특히 출산 후 여성인력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서 볼 때 고용창출과 취업촉진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돼야 할 것이다. 때문에 고용률을 증가시키기 위한 전략집단으로 경력단절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일과 가정양립의 부담을 안고 있는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이끌기 위한 방안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 전략을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선택제 근로에 대한 내용이 제시될 때 마다 질 낮은 일자리가 양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현 정부에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만들기 추진에 있어서 질 낮은 사업 추진을 의식해 `양질의 정규직 시간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지칭하기 위해 시간제가 아닌 시간선택제라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 방안을 내세우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는데 다양한 전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 첫째, 좋은 일자리(Decent job) 창출이 핵심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근로자와 기업의 사회적 효용 극대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파트타임과 달리, 양질의 비차별적인 괜찮은 일자리가 창출돼야 한다. 좋은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핵심은 근로자 생애주기상의 필요에 따라 전일제와 시간선택제의 자유로운 전환을 보장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래서 고용창출보다는 고용유지를 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전환형)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둘째, 취업과 연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많은 경력단절여성이 보육교사 과정, 방과후 교사 과정, 자기주도적 학습 코칭 과정 등 다양한 직업훈련 과정에 참여하고 있거나 관련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지만, 취업으로 연결되지 못해 스스로 상실감을 느끼고 있으므로 자격증을 연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셋째, 가능한 시간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택하려고 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임금수준보다 근로시간을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희망하는 시간대와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시간대가 일치하지 않아서 취업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므로 이를 고려한 일자리를 발굴해야 한다. 넷째, 시간선택제 근로자 채용에 대한 컨설팅이 필요하다. 시간선택제 근로자 채용에 대한 지원급여 확대, 시간선택제 적합 가능 직종 개발, 시간선택제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경감,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컨설팅을 활성화 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구직에 대한 의사도 중요하지만, 기업에서 시간선택제를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시간선택제가 가능한 기업체 발굴을 노력해야 할 것이며, 기업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체 맞춤형 직업훈련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으로 본다.

2015-12-18

젊은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창작스튜디오`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미술을 생계 수단으로 삼겠다고 결심하는 젊은 화가들이 이때쯤이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대기업에 취업해 안정된 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갈고 닦아 놓은 예술적 끼와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보고 싶은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매년 3천여명에 이르는 순수미술 전공자들이 우리나라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배출된다. 우리나라 미술계 구조상 1년에 신예 화가로 등단할 수 있는 한계와 열악한 환경을 뻔히 알면서도 매년 수천명의 젊은 화가들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참 무모한 짓이다.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예술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도 좋지만 성공확률이 너무도 낮은 무모한 행동으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모한 도전들이 있기에 미술은 계속적으로 진화 되고 발전을 해 나가는지 모른다. 다른 분야와 달리 예술은 이처럼 열악한 환경이 위대한 시대정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최근 들어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가의 길을 걷기 위한 화가 지망생들에게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사업이 정부차원에서 마련되고 있어 그마나 깊은 위안을 주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이 안정된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작업공간과 멘토 프로그램을 마련해 줌으로써 화가로 성공할 수 있는 희망과 가능성을 심어주고 있다. 작가들에게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기숙사를 겸비한 아카데미이자 작가들에게 무료 또는 실비로 창작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작가들이 마음 놓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는 창작스튜디오가 최근 들어 젊은 예술가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이는 유명 화가로 발전하기 위한 절대적 코스이며 스펙 쌓기를 위한 필수 과정이기도 하다.우리나라에서 창작스튜디오가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이며,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는 지역의 폐교를 활용하여 시각예술가에게 작업실을 지원하기 시작한 예술 지원 사업이다. 이후 폐교활용 창작스튜디오에 이어 도심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창작스튜디오를 조성하는 사례가 나타나며 창작스튜디오는 이제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 체험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광주 팔각정 스튜디오를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창동스튜디오, 고양창작스튜디오,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등이 조성되었으며 초기의 창작스튜디오는 주로 공간지원의 측면에서 작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미술관과 연계되어 담당 학예사가 행정업무를 관할했다. 대구·경북의 경우도 대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가창창작스튜디오와 대구미협이 운영 중인 정대미술광장스튜디오, 대구예술발전소 레지던시가 있으며 영천창작스튜디오와 시안미술관 레지던시 역시 적극적인 예술지원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지역의 우수한 화가들을 양성해 내고 있다. 창작스튜디오라는 개념은 아직까지 학문적·제도적으로 정착된 개념은 아니며,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창작레지던스, 창작실, 창작소, 창작 공간, 작업실, 연습실, 공방, 예술촌, 예술마을 등 다양한 용어들과 혼용해 사용되고 있다. 각 지역의 이러한 창작스튜디오가 가지는 의미는 예술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궁극적으로 지역적 맥락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며 이를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는 예술 활동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인 공공재(public goods)와 고유가치(intrinsic value)가 강조되는 시대적 특징으로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여겨진다. 창작스튜디오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은 앞으로도 계속 해 이어져야 할 것이다.

2015-12-16

속도 충돌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2015년도 3주밖에 남지 않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벌써”를 연발할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 중 물질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시간 사이에는 언제나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아쉬움과 후회, 미련 등의 부정적 감정은 더 커진다. 우리는 그 차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 그 노력을 돕기 위해 시간 관리법이라는 책까지 나왔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시간 관리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을 잘 관리한다고 해도 지금의 사회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예측을 불허할 만큼 빠르다. 미래 학자 앨빈 토플러는 속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교를 했다.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변화의 속도를 낼 때, NGO는 90마일, 가족은 60마일, 노동조합은 30마일, 정부 관료조직과 규제기관들은 25마일, 학교는 10마일, UN과 IMF 등 세계적인 관리 기구는 5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 법은 1마일”이런 변화 속도 차이는 속도가 다른 요소 간의 충돌을 야기하고, 그 충돌은 필연적으로 사회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 또한 변화 속도 차의 산물이다. 정부는 나름대로 발 빠르게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사회 변화의 속도를 따라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연말이 되면 교수 신문에서는 교수들을 대상으로 그 해의 사회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사자성어를 조사 발표한다. 지금까지 발표된 사자성어들을 보면 우리나라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알 수 있다.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 더 이상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사회의 모습을 짐작할 만하다.교수 신문은 2015 사자성어로 `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의 정본청원(正本淸源)을 선정했다. 교수들은 어지러운 상황을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正本淸源을 2015년 희망 사자성어로 선정하였다고 말했다. 이 말 뜻은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가 근본이 바로 서 있지 않고 또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사회가 비상식의 사회가 된 것은 사회 요소들 간의 변화 속도 차이 때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변화 속도를 조절해야할 정부의 변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정치는 정부의 변화 속도보다 더 느리니 문제도 여간 문제가 아니다.우리는 느려터진 정치의 답답한 모습을 지난 주말에 싫증이 나도록 보았다. 교수 신문은 이미 2002년에 지금의 모습을 예단하기라도 하듯 이합집산(離合集散)이라는 사자성어를 내 놓았다. 국민들은 지난 일요일 생방송으로 “응답하라, 정치 2002년”을 보았다. 정말 우리는 언제까지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정치인들의 코미디를 계속 봐야 할까.문득 지난 2007년 서울 소재 대학교의 논술 문제가 생각난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우리 사회의 기업, 가족, 정부는 어떤 속도로 변화해야 하는가?` 여기에 학교와 정치를 넣어 문제를 다시 만들어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논술을 치르게 한다면 지금 우리사회의 문제들이 조금이나마 해결 될까.어떠한 충돌이 되었던 충돌은 아프다. 하지만 기존의 것이 깨지지 않고는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없다. 아프더라도 우리는 충돌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변화를 막고 있는 모든 것들을 깨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변화는 없다. 변화 없는 우리에겐 희망은 절대 없다. 변화의 출발점은 “나”부터여야 한다는 당연함을 우리는 언제 즈음 깨달을까. 희망의 새해를 위해 필자는 2016년을 맞이하는 사자성어로 현두자고(懸頭刺股)를 제시한다.

2015-12-15

12월의 기도

▲ 임선애 대가대 교수·한국어문학부“12월은 벌거벗은 저 나무처럼 살게 하소서.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도 자랑하지 않으며,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도 들뜨지 않으며, 무성했던 잎들을 떨쳐버리고도 결코 외로워하지 않는, 그런 비움의 미학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소서.12월은 즐겁게 노래하는 저 새처럼 살게 하소서. 이름 모를 나무들이 먼저 손 내밀지 않아도, 떠도는 바람과 구름이 무심하게 지나쳐도, 여전히 한결같은 목소리로 아름답게 노래하는, 그런 소통의 미학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소서.12월은 하얗게 내려앉는 저 눈처럼 살게 하소서. 산꼭대기와 산골짜기들이 저마다 높이를 달리해도, 도시와 도시의 지붕들이 제 각각 모습을 견주어도, 어느덧 눈이 내려 세상을 오직 하얀색으로 만드는, 그런 용서의 미학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소서.12월은 따뜻하게 타오르는 저 화롯불처럼 살게 하소서. 이제 곧 마음이 추운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또 갈 곳 없는 영혼들이 거리를 헤매다 돌아올 때, 훨훨 타는 가슴으로 차디찬 세상을 단숨에 껴안는, 그런 사랑의 미학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소서.”일 년 열두 달 중에 12월만큼 만감이 교차하는 달도 없을 것이다. 끝자락에서 되돌아보면, 아쉽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몇 년 전, 아쉬움에 들떠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 시를 써서 몇 몇 지인들에게 보내니, 지인들은 감동적인 시라고 했다. 며칠 전, 그동안 써 온 시를 뒤적이다가 이 시를 다시 읽게 되었다. 이내 부끄러움과 함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4연으로 구성된 이 시의 어느 구석에 비움, 소통, 용서, 사랑이 있다는 말인가? 이 시의 어디에도 그런 숨결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카락이 쭈뼛 서면서, 또 얼굴이 달아오른다. 제목은 `12월의 기도`였는데, 시간을 지나서까지 울림을 주지 못하는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슴으로는커녕 머리만으로 쓴 시였기 때문인 것 같다.지인들의 너그러움을 다시 존경하면서, 진정으로 12월엔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정현종 시인처럼 `시를 썼으면/그걸 그냥 땅에 묻어두거나/하늘에 묻어둘 일이거늘/부랴부랴 발표라고 하고 있으니/불쌍하도다 나여/숨어도 가난한 옷자락 보이도다`라며 꿋꿋하게 시를 발표하든지, 기형도 시인처럼 `나의 혼은 주인 없는 바다에서 일만 갈래 물살로 흘렀다`라며 시인의 시심을 노래하든지….안도현 시인처럼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호통을 치든지, 윤동주 시인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라며 마음의 거울을 닦고 또 닦든지…. 이도 저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어디에도 답은 없다. 희망만 있을 뿐. 지금과는 다른 대안적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는 자들이 말하는 희망. 새로운 세계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은 오직 우리가 희망하기를 멈출 때 뿐이라고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했던 것 같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 12월의 기도에 진정성이 서릴 것이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는 희망…. 그가 또 말했다.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라고.

2015-12-09

빨간 목장갑의 온도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月)에도 온도가 있다면 어느 달이 가장 따뜻할까? 당연한 질문에 7월, 또는 8월이라는 당연한 답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당연한 것들도 그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온도 또한 마찬가지이다.온도(溫度)를 사전에서는 `물체의 차고 더운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 또는 물리적으로는 열평형 상태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온도는 차고 더운 성질을 다 가지고 있는데 왜 하필이면 `따뜻할 온(溫)`을 쓰는지 궁금해졌다.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필자는 몇 번이고 탄성을 질렀다. 뜨거운 물체와 찬 물체를 맞대어 놓으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뜨거운 물체는 식어가고 찬 물체는 데워진다. 이는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는 열의 성질 때문이라고 한다. 기부 온도, 나눔 온도, 사랑 온도, 희망 온도, 경제 온도 등 온도는 그 앞말에 어떤 말이 와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이는 기부와 나눔이, 또 사랑과 희망이, 그리고 경제가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전반의 온도는 수치로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을 치고 있다. 말하기 좋아 하는 사람들은 바닥을 치면 남은 것은 올라오는 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올라 올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바닥에 붙은 우리 사회의 온도는 어떨까. 뉴스를 보면 분명 우리의 희망 온도는 죽었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나마 있던 희망도 모두 없어지고 만다. 그럼 우리는 희망이 부재한 얼어붙은 이 땅에서 인류 최후의 날만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걸까. 물론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들에 의해 이 사회의 온도는 조금씩 올라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중한 꿈을 키우며 살고 있다.춥기만 한 이 나라의 12월에 따뜻함을 보탤 이야기 하나 소개한다. 12월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생각한다. 선물은 그 자체로도 좋지만 선물을 전하기 전까지의 과정 때문에 더 가치 있다. 형식이 넘치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선물 또한 형식적인 선물이 넘쳐난다. 가게마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한 가득 진열되어 있고 우리는 돈만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그것을 사서 주면 끝난다. 그런 선물에 감동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요즘은 선물이 부담인지도 모른다. 지난 11월 초등학교 2학년 나경이가 할아버지께 불쑥 내민 선물은 분명 그 어떤 고급선물보다도 값졌다. 할아버지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선물에 대해 필자가 몇 번이고 물었지만 나경이는 끝내 말해 주지 않았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 드려요. 사랑해요.”라고 쓴 카드와 함께 자신이 직접 포장한 어른손보다 조금 큰 선물을 보면서 필자는 여러 추측을 해 보았지만 선물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다른 일 때문에 금세 잊어버렸다. 저녁 먹기전 필자는 그 선물을 볼 수 있었다. “나경이가 할아버지 정말 많이 생각했구나. 나경이 선물이 최고다”라고 하시며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손에 들린 것은 바로 바닥이 빨간 목장갑 한 켤레였다. 많은 선물이 있었지만 단연 최고의 선물은 나경이의 선물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나경아, 왜 장갑을 선물을 했니?” “할아버지는 매일 사과 밭에서 일하시잖아.” 그 말에 꽁꽁 얼었던 필자의 마음 온도가 최고까지 올라갔다. 우주에서 가장 높은 온도는 우주의 시작점, 즉 빅뱅이 일어난 시점의 온도라고 한다. 싸늘해진 우리 사회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가면을 벗고 나눔과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2015년 12월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따뜻한 달이 될 것이다.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나경이의 빨간 목장갑의 온도가 전해지길 기원한다.

2015-12-08

자연이 밥이다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지난 봄, 다가 올 여름 장마를 걱정하며 몇 해를 미루었던 제습기를 구입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몇몇 제품들을 요모조모 비교한 후 적당한 가격대에 다양한 기능이 장착된 기기를 장만한 뒤 습해질 날만 기다렸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여름 내내 제습기를 작동시킨 횟수가 채 열 번을 넘지 않았다. 남달리 절약정신이 투철해서가 아니다. 장마 기간도 그다지 길지 않았을 뿐더러 비다운 비도 흠씬 내린 기억이 없다. 오히려 어느 순간 가뭄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기우였으면 좋으련만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가을이 끝나갈 무렵까지 예년 같잖은 가뭄에 전국의 대지가 타들어갔다.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진 저수지 바닥이 연일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고 일부 지역은 급기야 제한급수, 단수로 이어졌다.다행이다. 11월로 접어들며 며칠 간격으로 연일 비가 내렸다. 모두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누구에게랄 것 없는 감사의 말이 쏟아진다. 갈라진 틈새로 스며드는 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는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고, 한 줄기 두 줄기 모여 조금씩 높아지는 수위에 근심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이 역시 비가 내리는 날수가 늘어나다보니 또 다른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때 아닌 장마에 또 누군가는 피해를 입고 예기치 못한 아픔을 겪기 때문이다.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라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하다. 또한 걱정도 태산이라는 비웃음도 살만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걱정의 시작은 일상을 벗어난 자연 현상에 대한 당혹감 때문이다. 우리의 산천은 사시사철 넉넉한 물줄기를 흘러내렸다. 또한 뚜렷한 사계절은 인간이 누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환경적 조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순간 여름이고, 또 어느 순간 겨울로 넘어선다. 그나마 장마 기간을 제외하면 대개의 개천과 강은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다.비단 `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을 둘러 싼 자연이 병들어 있다. 예상을 넘어선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 파괴력도 점점 커져간다. 미세먼지 농도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고 뿌연 먼지로 덮인 날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가뭄과 더불어 대지는 사막화되고, 해수면의 상승으로 섬과 해안 국가는 존립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 지구적인 기온 상승은 대지와 해양의 식생을 빠른 속도로 바꾸고 있고 우리 인간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로 미래를 걱정하기에 이르렀다.이제 환경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은 지역 단위, 국가 단위를 넘어서 전 지구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렸던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지구 온난화를 규제하고 방지하기 위해 192개국이 참여한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바가 있다. 이후 1997년 도쿄의정서를 통해 구체적 실천방안을 논의하는 단계로까지 발전되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리고 있다. 벌써 이십 년 세월이 넘어서도록 세계 각국이 기후와 환경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아울러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임을 직감할 수 있다. 방법은 하나다. 이 문제는 정상들이 모여 선언문을 만들고 협정서에 서약을 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우리 각자의 인식 변화와 실천적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일찍이 `물이 생명이다`를 부르짖었듯이 이제는 `자연이 밥이다`를 외칠 때다. 이건 생존의 문제에 다름 아니다.

2015-12-07

경주 미술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영국의 미술전문지 `아트뉴스페이퍼`가 몇 해 전 발표한 `2013 연간 미술관 관람객수`를 살펴보면 세계미술관 통계 부동의 1위인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관람객수는 934만명이었으며, 런던 대영박물관이 670만명,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623만명 순이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결과로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이 아시아 소재로는 유일하게 7위에 올라 450만 관객수를 자랑했다. 유료관람객 전시에서는 1위를 기록한 대만 고궁박물관을 비롯해 이들 박물관·미술관이 경쟁력을 확보한 이유는 소장품에 기반을 둔 풍성한 볼거리 즉 콘텐츠의 경쟁력이었다. 그리고 10위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의 관람객 수는 120만명이었으며, 외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1만7천5백여명으로 1%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이러한 언론보도가 주는 시사점은 도시의 역사성과 도시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유물의 가치보다는 다채로운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문 전시공간과 체계적인 전시 프로그램이 우선적으로 개발되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구입과 수집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지자체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공립미술관 설립이 늘어나게 됐다. 그리고 그 수는 현재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주의 경우 올해 경주예술의전당 미술관과 솔거미술관이 개관해 새롭게 운영되고 있으며 기존 다양한 전시행사를 기획하고 있는 우양미술관과 함께 경주 미술관 문화의 새로운 르네상스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경주시가 운영하는 경주예술의전당 미술관과 솔거미술관의 구체적인 설립 목표는 각각 차별화된 미술관 성격 재정립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과 장기적인 발전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차별화된 미술관 운영은 지역민뿐만 아니라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미술문화의 볼거리를 제공해 주며 효과적인 문화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이러한 시립미술관의 구체적인 설립목표 수립은 미술관의 소장품 관리정책에 기초를 두고 있다. 미술관은 화랑과 달리 소장품을 전제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기관이므로 그 소장품의 성격과 질에 따라 미술관의 성격과 위상이 결정된다. 한국화가 소산 박대성의 기증 작품들이 주측이 된 솔거미술관과 경주와 경북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근대 작고작가들과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되어질 경주예술의전당 미술관들은 차별화된 미술품 수집정책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처럼 고유성을 가진 소장품은 결과적으로 관람객에게 다양한 미술을 접할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현대미술관에서 소장품은 전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전시는 소장품을 전제로 이뤄진다. 따라서 미술관의 수집정책과 전시정책은 따로 분리되어 수립되어서는 안되며 같은 맥락에서 균형 있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이처럼 미술관의 미술품 수집정책은 결국 21세기 예술의 한 단면을 담고 기록하는 문화정책으로 몇 세기가 지난 후엔 우리의 문화유산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또 다른 문화재가 되는 셈이다.경주시는 현재 신라유물 발굴과 복원에 대부분의 문화예산을 집행해 오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신중하고 중·장기적인 문화정책을 수립한다면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K-Culture를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줄 수 있는 멋진 신라인들의 후예들이 될 것이다.

2015-12-04

좋은 계절, 좋은 날에…

▲ 류영재 화가삼복더위 지나고 좋은 계절이 오면 부쩍 잦아지는 우편물이 있다. 바로 청첩장이다. 좋은 계절, 좋은 날짜를 꼽아 몇 달 전 부터 미리 예식장을 잡아 놓으니 좋은 계절의 좋은 날을 주로 결혼예식장을 전전하며 보내게 되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신조어를 싫어하는 체질이나 무척 적절한 듯) 현상이 벌어진다. 이태 전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망중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 위로해 주셔서 큰 빚을 졌고, 그 은혜를 두고두고 갚으리라 다짐했다. 그것은 상주로서의 진심이었으나 이후로 찾아드는 분주한 경조사 알림은 소시민의 바쁘고 빠듯한 일상에서 축하와 위로의 일들이 시간도, 기운도, 돈도 버거운 게 사실이다.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탓에 부모님을 대신해 남들보다 일찍 젊은 날부터 문중의 경조사에 참여하게 됐고, 30여년 세월을 고향에서 학교선생으로, 지역의 예술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살아온 세월 동안 거쳐 간 인연 또한 만만치 않고, 한 발짝만 나서도 고향 인척인 곳에서 내가 모르는 척 할 곳은 별로 없었다.그리고 내 생엔 내게 그렇게 온 인연에 대해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하려는 생각으로 주말과 휴일이면 최소한의 예의복장을 갖추고 복잡한 예식장으로 향하곤 한다. 예식장 로비에서 혼주의 이름을 찾아 그의 딸인지 아들인지 볼 새도 없이 접수처에 들러 봉투를 내밀고는 얼굴 도장이라도 찍으려 혼주에게 인사를 건낸 후 다음 예식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의 심부름까지 해야 하는데, 시간에 쫓기고 지치다보면 남의 경사에 내가 왜 귀한 휴일 시간을 이렇게 보내야 하는지 은근히 짜증스러울 때도 있다.초상이야 계획되지 않은 갑자기 당하는 일이고, 상주 또한 슬픔과 황망함 가운데 장례를 치르는 큰일을 해야 하니 주위의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나 자녀 결혼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나도 성년이 된 여식이 둘이나 아직 미혼이니 부모님 장례 지나면 큰일은 그만일까 했는데 자식들 혼사가 남았으니 과연 끝이 없는 것이 인생사이기는 하다.요즘 어떤 이는 부모님 장례까지만 알리고 자녀 결혼은 가족들의 행사로 정한 이도 있고, 길흉사간에 부조금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또한 폐해는 인정하면서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풍습과 명분을 중시하는 세상의 눈치에 혹여 시원찮은 집안으로 여겨질까 하는 염려와 남들이 다 받는데 받지 않는 것도 겸손하지 않은 것처럼 비쳐질까 걱정되기도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가장 큰 속내는 평생 해온 부조 돈에 대한 본전 생각이 아닐까? 그리고 그 순환의 고리는 악순환(?) 되고 있으니 어느 세대에선가 결단이 필요하다. 집집마다 가풍이 있고 개인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이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해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부조 문화는 조선시대 향약에서 비롯된 것으로 양반들의 향촌 자치와 이를 통해 하층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향촌사회에 보급해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고 미풍양속을 진작시키며 각종 재난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각 직장이나 집단마다 상조회, 친목회 등을 조직하여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따로 또 해야 하는 이중부담과 심지어 부조 돈의 액수가 친밀한 정도의 기준으로 이어지는 씁쓸한 현실을 우리는 모르는 척 하지만 다 알고 있다.세월의 흐름 속에 세상도 많이 변하였다. 집성촌의 농경문화는 이미 오래 전의 일이 됐고, 사회가 분화되고 진화함에 따라 미풍양속도 변해야 한다. 슬플 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쁠 때 진정 위로가 되고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것! 세월의 두께만큼 복잡해진 세상에 허례허식을 줄여 본질의 빛깔을 잃지 말아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식이 깨어 있는 자들부터 스스로 실천해 새로운 미풍양속의 문화를 선도해야 할 것이다.

2015-12-03

12월의 문장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 교사매듭달이다. 내어 줄 것을 다 내어준 자연에겐 “벌써”나 “이제”와 같은 수식어 따윈 없다. 시작과 맺음을 아는 자연은 조용히 새 봄을 밀어 올릴 내면의 힘을 기를 뿐이다. 하지만 내어놓는데 인색한 사람은 벌써와 이제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매듭달이 되었다고 호들갑이다.사람들의 시작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2015년 을미년의 시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청양 띠 해라고 야단이었다. 청양의 해는 청색의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와 양의 순하고 평화로운 이미지가 잘 조화를 이루어 대한민국의 국운도 융성하고 국민들도 편안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정말 기원대로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역시 올 한 해도 국운은 전혀 융성하지 않았고, 국민들 또한 편하지 않았다.아직 한 달이 남았지만, 지금까지 발생한 사건사고만 봐도 2015년 대한민국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연초부터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 갑질의 끝판인 땅콩리턴 사건, 대한민국을 바이러스 공화국으로 만든 메르스 광풍, 그리고 최근의 역사 교과서 논쟁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5년이었다.국민안전처까지 만들었지만 여전히 안전 불감증에 의한 사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고, 국민들의 마음을 한 마음으로 모아 경제 발전에 매진해야 할 국회는 자기들 잇속 챙기기에 바빠 오히려 국민들을 분열시키기에 바쁘고, 그러다 보니 경제는 계속 뒷걸음질만 치고 있고, 국민들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신바람 나게 일해도 시원찮을 청년들은 실업의 늪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암울도 이런 암울은 없다. 이 암울의 터널에서 우리는 언제 즈음 벗어날 수 있을지. 마음 아픈 것은 우리에겐 희망의 빛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럼 왜 우리는 사건 사고가 많은 칠흑 같은 암울에서 살 수밖에 없을까. 그건 한쪽만 보고 살았고, 또 살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삶은 필연적으로 기형적인 삶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그런 기형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며, 그 고통은 고스란히 우리 국민들이 다 받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없는 사회가 바로 이 사회다.그럼 우리에겐 방법이 없을까. 누구나 균형 잡힌 사회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이런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그건 바로 집기양단(執其兩端)의 방법이다. 집기양단은 중용과 논어에 나오는 말인데 내용을 잠시 보면 다음과 같다.“子曰 舜 其大知也與(자왈 순 기대지야여) / 舜 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순 호문이호찰이언 은악이양선) / 執其兩端 用其中於民(집기양단 용기중어민)”공자가 말했다. 순임금은 정말로 큰 지혜를 가지신 분이다.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셨고 일상적인 말도 살피기를 좋아하셨다. 남의 악한 바는 숨겨주셨고 남의 좋은 바는 드러내 주셨다. 그 양쪽 끝을 잡고 그 중간을 백성을 위해 사용하셨다.(중용 6장)끝과 끝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너무도 잘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 쪽만 선택하기를 강요받으며 살았다. 때론 내 쪽만 강요하며 살았다. 그 결과는 끔찍한 사건 사고, 그리고 불신과 분열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다.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우리의 마음은 더 바빠질 것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란 말도 있듯이 한해를 마무리해야 할 지금 우리는 더 침착해져야 한다. 마무리가 잘 되어야 새로운 시작도 잘할 수 있다. 지금부터 12월에 해야 할 목록을 작성해 보자. 그 목록에는 더 이상 시기, 질투, 분열을 일으키는 단어들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들 단어 대신 나눔, 사랑, 희망 등의 말로 12월 목록을 채워보자. 그리고 그것을 꼭 실천하자.

2015-12-02

여성취업, 든든한 사후관리를 그려라!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경북지역 여성의 취업자 현황은 2011년 58만1천명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4년 59만7천명 수준으로 나타나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여성취업은 연령과 학력이 높아짐에 따라 구직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며, 상대적으로 근로시간이 비교적 짧은 형태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북지역 여성이 취업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살펴보면 경력 부족, 스펙 부족, 정보 부족 등이 있으며, 전문성을 갖춘 여성이나 전문 직종 이외에는 근로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와 같은 문제는 일자리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칭으로 나타나 여성취업 활성화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때문에 취업을 원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지속적인 의식교육을 통해 책임감을 강화시키고, 직업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도 필요할 것이다.특히, 여성의 취업활성화를 위해 맞춤형 직업훈련프로그램 활성화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직업훈련프로그램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직업훈련프로그램 개발과 취업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 방안도 적극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함께 일-가정 양립이나 고용유지 방안 등을 기업체 인사 담당자 및 사업주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필요할 것이다.한편 양질의 구인처와 책임감 있는 구직자 간의 취업연계와 함께 그에 따른 사후관리를 이젠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양적인 여성취업에 그치지 않고, 취업 이후의 지속적인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육아와 가사 책임에 당면한 여성을 위한 직장보육시설의 활성화라든가 육아휴직 장려금, 출산여성 신규고용촉진 장려금 등을 통한 일-가정양립의 문화를 조성하고, 여성의 경력단절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취업 후 사후관리 사업이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중소기업지원청 등으로 분산되어 각각 단편적인 사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 효율성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관련 업무를 전체적으로 관장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기능이 필요하다고 본다.지금까지는 일자리 관련 기관에서 구인구직 취업연계 실적만 평가대상이 되어 왔으나, 앞으로는 취업 후 사후관리가 하나의 사업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여성취업 이후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취업활성화에 중요한 요인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 첫째, 제도 및 예산에서는 중앙부처간 분류되어 있는 기능과 예산을 통합하여 좀 더 많은 지원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둘째, 취업 이후 사후관리까지 분석할 수 있는 사후관리 전담 전문인력 양성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셋째, 취업 이후의 애로사항을 검토할 수 있는 상담 창구와 같은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하여 양질의 여성일자리로 연계될 수 있는 방안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데일 카네기가 `사소해 보이는 업무일수록 최선을 다하고, 꼼꼼히 챙겨야만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던 것처럼 여성의 취업이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취업 이후도 최선을 다해 검토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여성취업 활성화 정책의 접근성을 강화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보완책이 취업 후 사후관리를 꼼꼼하게 챙기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5-11-30

경주문화정책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난 주말 경주미술협회가 주관해 진행한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해 달라는 제의를 받고 경주를 다녀왔다. 봄, 가을 나들이로 즐겨 찾던 경주지만 막상 경주의 문화예술 정책에 관련해 심도 있게 제언해야 하는 자리이기에 사뭇 부담감이 앞선 자리였다.경주미술협회가 이번 세미나를 마련한 취지는 솔거미술관 개관에 즈음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문화지원 정책이 경주시로 부터 이뤄지고 지역출신 예술인들에 대한 재조명 사업과 미술품 수집사업이 함께 반영되기를 촉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예로부터 경주는 신라인의 숨결이 도시 곳곳에서 느끼지는 역사의 도시이며, 수많은 문화유산을 통해 우리나라의 고대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왕국의 도시로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도시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화적 경쟁력은 어느 도시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992년간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역사는 곧 신라의 역사인 셈이다. 경주의 곳곳에는 찬란했던 신라인들의 예술과 풍류, 멋이 어우러진 다양한 건축물과 공예품, 생활용품들이 산재해 있으며 이러한 문화유산들은 경주를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도시로 성장시켜 왔다. 천년고도의 문화를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 경주는 도시의 경쟁력은 물론이고 국가 간 교류에 있어서도 우리민족의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소개하는 중요한 콘텐츠가 되고 있다. 결국 옛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전통문화가 오늘날 국제사회에 있어 우리나라의 절대적인 경쟁력이 되는 셈이다. 이는 곧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의미로 재해석 할 수 있다.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해온 경주의 문화유산은 조선후기 봉건사회의 몰락과 서구 열강들의 세력다툼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세기 개방정책과 일제식민지라는 굴욕의 시대를 겪으며 관광자원으로 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 됐다. 신라인들의 창의적이고 섬세한 예술정신이 온전히 녹아있는 미적가치에 대한 평가는 뒷전이고 식민지 문화의 수탈정책에서 비롯된 도시의 무분별한 개발이 이루어진 셈이 되고 말았다. 우리민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훌륭한 미적 가치관을 철저히 무시하고 진행했던 식민지 문화정책의 모순점을 고스란히 지닌 셈이다.예나 지금이나 예술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는 삶의 총체이다. 8세기 신라중기 왕권의 절대적 안정 속에서 제작되어졌던 석굴암, 불국사, 범종, 탑 등 불교미술의 결정체 역시 신라인들의 삶의 한부분이었으며,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절대적 원천이 됐다. 그리고 천년이 지난 현재는 지식, 정보 그리고 문화 창조력이 국가의 미래를 창조하며 지식기반 사회로 진입하게 하는 새로운 콘텐츠로 부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지식기반 사회에서 문화와 정보는 곧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다시 말해 지식기반 사회 형성에 있어 창의성을 주체로 하는 문화예술의 영역과 문화 창조력은 정보와 함께 문화예술의 양적확대는 물론이고 창조적 콘텐츠의 생산으로 이어져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는 다변화 되어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전통문화와 현대의 지식, 정보가 한데 어우러지는 새로운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정책적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는 경주미술인들기에 이러한 세미나를 통한 새로운 문화정책과 대안은 분명 경주를 변화시키는 자그마한 계기가 될 것이다.

2015-11-26

인성 청춘 짜장배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 교사이륙을 준비하는 가을을 잡기 위함인지 그토록 대지를 목 타게 했던 비가 날을 물고 이어지고 있다. 새의 깃털은 젖지 않는다고 하지만 가을은 속까지 젖었다. 그래서 가을이 쉽게 이륙을 못하는지도 모른다. 빗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나무들이 조용히 한 해의 마지막 일을 준비하고 있다. 겨울을 기다리는 나무들에게서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비장함을 읽는다. 나무들은 스스로 한해살이를 몸속에다 둥글게 기록한다. 나이테는 그 해의 역사다. 나무는 죽기 전에는 나이테를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진 나무들이기에 할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나무들은 속으로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삭인다. 그 삭은 이야기들이 나무를 겸손하게 만든다. 겸손은 나무에게 진화를 선물하였고, 진화는 나무들에게 집중과 선택, 그리고 나눔이라는 유전자를 심어주었다.그러기에 나무는 집중할 때 집중한다. 집중력을 잃지 않은 나무는 철을 안다. 아무리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나무는 때가 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꼭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무는 인간들처럼 우왕좌왕하지 않고 선택을 해야 할 땐 확실하게 선택한다. 집중과 선택으로 얻은 결실을 나무는 절대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는다. 나무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또 공평하게 나눠준다. 그 나눔이 클수록 나무는 이듬해에 더 풍성한 그늘을 만든다.과연 나무들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2015년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록할까. 아무리 큰 나무도 흔들린다고 한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올해 우리 사회는 그 흔들림이 더 컸다. 흔들리면서 견고해진다는 말처럼 흔들리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무에게만 해당한다. 2015년 우리는 몹시도 심하게 흔들렸지만 견고해진 건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뿐이다. 우리는 언제 나무의 집중과 선택, 그리고 나눔이라는 유전자를 이식받을 수 있을까.나무를 닮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잠시 하려 한다. 지난 목요일 산자연중학교에서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 산자연중학교에는 마을 학교라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마을 학교는 학교 소재지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학생들이 함께 사라져가는 마을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인성 문화 학교이다. 마을 학교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일일 명예교사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말 그대로 일일 명예교사로 위촉된 마을 어르신께서 목요일 6교시 마을 학교 시간에 학교에 오셔서 전교생들을 대상으로 마을의 역사와 전통 등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시는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학생들은 이제 목요일 6교시를 기다린다.지금까지 열한 분이 마을 학교 명예교사로 초빙되어 학생들에게 강연을 해주셨다. 그 열한 번의 강연을 분석해보면 시작은 모두 다르지만 결론은 항상 한가지다. 그것은 바로 “꿈을 가져라!”이다. 그래서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꿈으로 충만해 있다. 지금까지 마을 학교 시간을 통해 꿈을 전수 받기만 하던 학생들이 지난 주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잔치를 준비했다. 잔치 음식은 바로 짜장면. 여기엔 짜장면 나눔 봉사활동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박선희 씨와 목화로타리 봉사단원들의 도움이 컸다.나눔은 분명 더 큰 나눔을 낳는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 지 반년이 되어간다. 과연 우리 학생들은 어떤 인성 교육을 받았을까. 다른 학교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생활에서 살아있는 인성을 배우고 있다. “열정은 성공의 열쇠,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다.”(워런 버핏)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눌 줄 아는, 그리고 나무를 닮은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분명 성공의 완성체이다.

2015-11-25

무엇이 인간을 값지게 만드는가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소설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실제와 똑같은, 실제를 어느 정도 닮은, 실제에 있을 것 같은, 실제에 없는 인물 등이다. 그 인물들의 사고와 행동을 통해서 수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거나 반감을 가지며 자신들의 일상을 비춰 보기도 한다. 그 가운데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가 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소설읽기의 재미는 시작된다. 오늘 아침 문득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에 등장하는 허생원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버트 제임스)에 등장하는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선 허생원은 나귀를 끌고 장판을 떠돌아다니며 생업을 이어가는 장돌뱅이이다. 그는 여자를 만나본 경험도 거의 없고, 장가를 든 적도 없는 주변머리라고는 거의 없는 인물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허생원처럼 메마르고 단조로운 삶을 사는 사람도 없다 싶지만, 이 소설이 아직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가 지닌 성격의 우직함일 것이다.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우직함을 간직한 인물들도 많을텐데 하필이면 허생원을 떠올린 이유는, 그는 자신이 겪은 단 하룻밤의 추억을 평생토록 보물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물방앗간에서 성씨라는 성을 가진 처녀와의 하룻밤을 보낸 이후, 그녀의 행방이 묘연해져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날 하룻밤의 일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면서 습관처럼 두고두고 꺼내보며 행복감에 빠져드는 생활을 하게 된다.만약 허생원이 떠도는 장들마다 여성들과 밤을 보내는 인물로 설정되었다면 `메밀꽃 필 무렵`은 이토록 오랫동안 회자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생원이라는 인물은 직업과 학력을 넘어선 지점에 있는, 삶에 있어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에 `메밀꽃 필 무렵`을 명작으로 만들어주는 인물이다.다음으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원작이 영화로 제작되어 로맨티스트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한 소설이다. 로버트라는 인물은 `내셔널 지오그래픽`라는 잡지의 사진기자이며 작가로, 자신의 직업을 수행하는 데 성실한 인물이다. 프란체스카 역시 따뜻한 성품의 아내와 어머니로, 자신의 가정생활을 가꾸는 데 충실한 인물이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만남이 불륜으로 빠지지 않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점 또한 사랑의 도피행각보다는 그들이 자신들의 추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로 설정된 덕분이다.프란체스카를 떠나 온 로버트는 소포만 한 번 보냈을 뿐 편지도 전화도 하지 않았다. 자신으로 인해 그녀의 생활이 복잡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프란체스카와의 만남 자체만을 운명처럼 귀하게 생각하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로버트의 삶이 값진 것이다. 로버트를 떠나보낸 프란체스카도 자신의 가정생활은 물론이고, 그와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삶이 더욱 빛나는 인물이다. 허생원, 로버트, 프란체스카라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추억에 가치를 더할 줄 아는 인물이라는 데 있다. 이처럼 인간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값지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여타의 미물들과 구분되는 특이점이다.한 해가 저물어가는 11월, 짙은 가을, 흐리거나 비 내리는 날씨, 비에 젖은 낙엽들…. 자연의 변화도 감당하기도 힘든 때에 테러, 인질극, 용의자, 체포, 사망과 같은 인간의 가치를 한층 떨어뜨리는 단어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가라앉게 만들고 있다. 인간을 값지게 만드는 일에 열중하는 인간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기대하며.

2015-11-24

밥상 공동체 회복과 가족의 재탄생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하루는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엊그제 고향엘 다녀왔다며 한껏 목소리가 들떠 계셨다. 명절도 아닌데 무슨 일로 고향 나들이를 하셨느냐 여쭸더니 오촌 당숙모의 제삿날이기도 하고 여차저차해서 다녀오셨단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각지에 흩어져 사느라 자주 만나지 못하던 아버지의 육촌 형제도 만날 겸 겸사겸사 다녀 왔노란다. 도대체 이 무슨 이해하기 쉽잖은 상황인가? 오촌 당숙모 기일이라니? 게다가 육촌 형제라니? 부모님 촌수로 따지면 오촌, 육촌이지만 나를 기준 삼으면 다시 육촌, 칠촌까지 내려오는 멀고도 먼 친족 관계다. 사촌 간도 일 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한 요즘 세상에 멀어도 너무 먼 촌수인데도 이 어른들 사이는 친해도 너무 친하고, 챙겨도 너무 살뜰히 챙겨 생뚱맞다. 이런 탓에 `뭘 그리 먼 친족까지 다 챙기고 사느냐`며 퉁명하게 반응이라도 할라치면 어릴 때부터 친형제처럼 자랐느니, 할아버지 항렬에 형제가 많지 많아 유독 가까울 수밖에 없다느니 장황설이 이어진다. 그리고 예의 “요즘 것들은….”으로 시작하는 꾸지람과 역정이 이어지기 마련이다.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당연시했던 가족의 범주와 관계맺음이 살기 바쁘다는 핑계와 이런저런 복잡한 얽힘을 귀찮게 여기는 세태에 밀려 급속히 변모했다. 고향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았던 전통 사회에서는 부모님 세대가 보여준 가족, 친족 공동체의 정겨운 인간관계는 일상적 풍경이었다. 친형제 간은 물론이고 사촌, 육촌, 팔촌까지 한 동네에 모여 살며 생사화복을 함께 하던 시절의 가족 공동체 회복은 이미 물 건너간 얘기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아무리 세태가 변했다 하더라도 기본 도리는 지키며 살아야 마땅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 년에 한 번 보는 것도 어려운 사촌지간의 우애며 도리는 차치하더라도 친형제, 부모 자식 간의 도리는 다하며 사는 것이 인간됨의 마지막의 선이 아닐까 싶다.연일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유명 트롯 여가수의 불편한 가족사가 전해지고 있다. 남의 가정사에 일일이 참견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경우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것이 시끄럽고 불편한 사태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게 만드는 방편일 것도 같다. 다만 이 씁쓸한 다툼을 지켜보는 대개의 반응이 `어찌 엄마와 딸 사이에`, `어떻게 부모 자식 간에`다. 그렇다. 이들은 가족 중에도 가장 가깝고 가장 애틋하다고 여겨지는 부모 자식 간이고, 엄마와 딸 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경우가 어찌 이들 모녀 사이의 일뿐이겠는가. 주변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다툼의 상당수가 가족 사이의 불화라는 사실에 우리는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다.사회 집단의 기본 단위인 가족 공동체에 간 금을 회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방법을 찾자면 뭐가 있을까?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食口)라 일컫는다. `같은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밥상 공동체의 회복이 가족을 재탄생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크게 한 상에 둘러 앉아 왁자지껄한 식사 판을 벌여보자. 요즘 우리의 식사 자리는 단출하다 못해 쓸쓸할 지경이다. 혼자 멀뚱히 앉아 밥상을 대하기보다 온 식구가 함께 모여 밥상을 대하자. 한 집에서 살지는 않더라도 가끔은 부모님도 오시라 하고 형제들도 불러 모아 밥상을 같이 하자. 이때는 학원 때문에 안 된다, 뭐 때문에 안 된다며 뒤로 빼 돌렸던 어린 자녀들도 불러 앉히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더 봐야 없던 정도 생길게 아닌가. 부모 자식 간의 끊을 수 없는 혈육성 회복, 형제간의 포기할 수 없는 우애의 회복, 더 나아가 멀어도 너무나 먼 촌수가 되어 버린 사촌 너머의 친족성 회복! 이 모든 관계성의 회복과 가족의 재탄생을 위해 밥상 공동체를 실현해 보자. 우리는 식구니까.

2015-11-23

대화의 기술 - 역지사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난 주말 전 세계를 슬픔에 빠뜨린 비보(悲報)가 프랑스에서 전해졌다. 무고(無辜)한 희생이라 그 슬픔은 더 크다. 극장, 음식점, 축구 경기장 등 6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테러. 마른하늘의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은 없을 것이다. 세계 정상들은 한 목소리로 이번 테러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테러를 막기 위한 전 세계적 공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하루 빨리 어떤 형태로든지 테러 방지를 위한 실효성 높은 정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전 세계가 프랑스 테러를 보면서 슬퍼했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주말에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보면서 슬퍼했을 것이다. 쇠 파이프가 등장하고 또 경찰차를 밧줄로 끌어내고 이를 막기 위해 경찰은 물대포로 맞대응하고 솔직히 필자는 프랑스의 아픔보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시위 사태를 보고 더 마음이 아팠다. 정말 총칼만 안 들었지 전쟁도 저런 전쟁은 없다 싶었다. 왜 우리는 저렇게 서로를 향해 싸우고 싸워야 하는지, 정말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도대체 경찰들은 또 무슨 잘못이 있는지, 아니래도 힘든 그들을 왜 저토록 처참히 짓밟는지, 이유 없는 무덤이야 없다고는 하지만 저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뉴스를 끄고 말았다. 하지만 경찰차를 끌어내려 힘을 모아 줄을 당기는 사람들의 살기어린 모습이 계속 떠올라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들이 저토록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민중총궐기대회`이름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시위 장면을 생각하면 필자는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다들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고 싸우고 있는 대한민국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테러 집단에 의해 무고하게 죽어간 넋들을 애도할 여유가 없다. 어떻게 이러고서야 이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경제에서 말하는 숫자로는 선진국일지도 모르겠지만 국민성(國民性)을 수치로 나타낼 수만 있다면 이 나라는 분명 후진국임에 틀림없다.물론 필자의 이런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영화에서 여배우가 한 말인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을 성대모사하며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국민성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한 국가의 성원에게 공통되는 인성 및 행동양식`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성과 행동양식을 점수로 환산한다면 몇 점이나 될까.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성과 행동양식에 대해 서술하시오”라는 서술형 평가를 낸다면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속단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냄비근성, 틀림 신봉(信奉)증, 시기(猜忌), 시샘, 질투, 억지, 허영 등의 말들이 분명 공통적으로 나올 것이다.프랑스 테러, 대한민국 주말 집회의 공통점은 폭력이다. 폭력(暴力)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용서가 되지 않는다. 폭력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소통부재다. 소통의 부재는 오로지 자신만이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는 극단적인 이기심에서 온다. 이번 프랑스 테러에서도 괴한들은 자신들과 종교가 다른 사람과 프랑스인들을 살해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주말 시위대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오로지 밀어붙이기식 행동이 큰 피해를 낳았다.언제까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는 더 과격해지고 더 악랄해지고 있는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해해만 할까. 진정 답은 없을까. 물론 답이 없지는 않다. 폭력이 소통의 단절에서는 오는 것이라면 소통을 하면 된다. 최근 대화와 관련된 책들이 홍수를 이루는 것도 대화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소통을 하자. 그러기에 앞서 학생들에게만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을 강요하지 말고 대화의 기본인 역지사지를 우리부터 실천하자.

2015-11-17

어떤 기다림과 어머니

▲ 강민건대구대 교수·영어교육과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렀던 학교 근처 재래시장의 다리 초입 길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야채를 파는 노파가 수채화처럼 시선에 와 닿는다. 조그만 텃밭에서 직접 길렀다며 포장박스 한쪽을 뜯어내어 서툴게 써 내려 간 글씨도 눈에 띤다. “파 한 단 1200원, 양파 한바구니 1000원, 감자 900원….” 요즘 시대의 돈의 가치에 비하면 너무나 저렴한 가격표가 애틋하다. 노점을 하면서 싸온 점심 밥그릇을 드는 그의 손이 거미줄처럼 세월의 주름이 얽혀 있다. 따스한 마음 한 켠과 현실적 삶의 차가움이 사치스러운 연민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보온밥솥이 없던 시절, 밥이 식지 않도록 밥그릇을 이불로 덮어 아랫목에 두던 어머니들의 지혜를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시대의 어머니들은 가난했고 예사로운 민중에 속했고 자식 걱정이나 식구 생각이 앞설 뿐, 별다른 사회의식은 없어 보였다.어머니들은 자식과 가족에 대한 무모할 만큼의 사랑과 희생을 여성으로서의 가치와 맞바꾼 것이다. 최근 티브이에 비친 새로운 세대의 어머니들은 이와 달라 보인다. 지식과 정보로 무장된 이들은 지나치게 세련되어 있고, 가족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과거 어머니들에 비해 무모하지도 않아 보인다. 부모의 사랑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는 않겠지만, 과거 어머니들의 삶의 바람이 자식과 가족의 안녕에 있었다면, 요즘은 그 바람이 자본으로 무장된 자식에 대한 대리 만족으로 다가와 보인다.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지인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방학 이면 아이들을 한국으로 다시 데리고 와 학원을 보낸다고 한다. 어느 젊은 어머니들은 단순히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도와주고 싶다는 핑계로 직접 유명 영어학원에 등록을 하여 수강을 한다고 한다. 사회와 가족 안에서 부추기는 서열주의가 부모와 아이들에게 타인에 대한 소통보다는 가족의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듯 하다.요즘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점에 가면 음식이 맛있는 이유를 `옛날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을 하지만 그 어머니의 맛은 어쩌면 가난의 상징이었을 터이고 다만,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가난한 상 위에 당신의 입맛을 희생하여 내놓은 소박한 밥상이었을 것이다. 시대의 편리함이 제공하는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지금의 아이들에게 이 어머니의 손맛은 어쩌면 상상 속에 그려진 존재하지 않는 맛일지도 모르겠다.이런저런 생각으로, 점심을 먹겠다고 줄을 서있는 내 모습이 추해져갈 무렵, 문득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기억해낸다. 깨비처럼 눈이 내리던 어느 해 12월 마지막 학위논문 심사가 끝났을 때 내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건 것은 부모님이셨다. 무사히 통과되었다는 말에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며 `잘했네, 잘했네`를 연발하셨다. 심사일정을 자주 물었고 그 뒤에는 항상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셨다.나는 부모님의 조바심과 기쁨의 정체를 알고 있다. 어머니는 아마도 그들의 전반의 삶을 통해서 한국 사회 속의 생존방식을 대부분 몸으로 터득하시면서, 학력이라는 것이 길면 길수로 좋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부모님은 삶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셨지만, 부모님은 마음속에 슬픈 괴물을 키워 오셨던 것이다. 어머니 스스로 `한`이라고 말했던 그 괴물은 내 학위를 나보다도 더 오랫동안 기다려왔을 터이다.“어머니는 겨울밤이면 무덤 같은/ 밥그릇을 아랫목에 파묻어 두었습니다/ 내 어린 발은/ 따뜻한 무덤을 향해/ 자꾸만 뻗어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배고픔보다 간절한 것이/ 기다림이라는 듯이/ 달그락달그락 하는 밥그릇을/ 더 아랫목 깊숙이 파묻었습니다.”(박형준 `해당화`)며 시골 소년 시절의 밥그릇을 기억하고 있는 어느 시인의 시선이 어머니의 아픈 무릎 못지않게 시리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점심 길이었다.

2015-11-16

교실에서 읽고 쓰기를 넘어 다양한 의사소통으로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최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의사소통 방식이 변화되면서 문자 중심의 전통적인 문식성(읽기와 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성이 생겼다.구텐베르크 혁명을 기점으로 발달한 인쇄술은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표준화된 산업인력을 배출하고자 학교를 중심으로 문자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문자는 단순히 표현 수단에 그치지 않고, 교육기관 내에서 성취해야 할 목표가 됐다.하지만 iPod, 컴퓨터, 비디오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메시지 전달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이에 따라 교육학자들은 새로운 문식 개념과 그에 맞는 교육이 필요함을 주장하게 됐다.새로운 개념의 문식은 바로 복합문식성(multimodal literacies)이다. 복합문식성은 디지털 읽기 환경의 특성을 고려해 복합 양식 텍스트를 읽고 생산해내는 능력을 일컫는다. 여기서 복합 양식 텍스트란 문자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각종 기호, 소리, 영상, 몸짓 등 다양한 양식들이 결합된 텍스트다.과거 문자로 표현되던 의미는 오늘날 모바일이나 컴퓨터 스크린에서 동작, 음향, 이미지 등이 더해져 표현된다. 우스꽝스러운 몸의 움직임도 이에 대비되는 웅장한 음악적인 요소와 결합되면 해학의 미는 극대화될 수 있다. 카카오톡이나 온라인 채팅, 전자메일에서도 다양한 이모티콘을 사용해 문자만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의미까지 표현해낼 수 있다. 웹페이지 역시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일렬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여러 페이지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링크된 페이지를 선택해야 한다. 유아들이 일상생활에서 애니메이션이나 전자카툰, 전자게임 등 다양한 양식의 매체를 통해 감각적인 정보를 접하므로 교육현장에서 복합문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뉴 런던 그룹(New London Group·1996)은 디지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복합문식 교육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함을 주장했다.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 유무에 따른 권력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식 가운데 문자에 대한 지식은 권력 문제의 핵심이 될 수 있다.예컨대, 문자만 의사소통 매체로 강조하는 것은, 문식이 무엇이며, 유아들이 활동의 결과물로써 생산해내야 할 텍스트는 어떤 형태인지, 그리고 유아들이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즉, 문자에 대한 강조는 유아의 그리기나 긁적임, 창안한 글자 등은 관습화된 문자 쓰기에 비해 덜 발달된 것임을 가정하며 누구의 문식성 발달이 정상 혹은 결핍됐는가를 결정한다. 반면, 복합문식 교육은 문자와 같이 특정 의사소통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학습자들이 소외됨 없이 교실담화에 참여하도록 다양한 의미 형성과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교사들은 “유아의 인간적인 해방과 자유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유아의 인간적인 해방과 자유는, 교사들이 유아들의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복합적이고 다양한 의미들에 더욱 민감해지고 유아들이 다양한 의미의 중층적인 면을 표현해낼 수 있도록 표현의 다양성이 허용할 때 실현될 수 있다. 유아의 인간적인 해방과 자유를 실현할 방안 중 하나로써 복합문식을 고려할 때 복합문식 교육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향과 방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2015-11-12

어사화(御賜花)를 위하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 교사가뭄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던 대지가 그나마 목이라고 축일 수 있는 단비가 내렸다. 물론 해갈에는 어림도 없는 양지만, 세상엔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한 비다. 그런데 이 비는 분명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난 한 주 들판은 추수 열기로 뜨거웠다. 자연은 내어주기에 바빴고, 사람들은 거둬들이기에 바빴다. 가뭄에 징징대던 사람들과는 달리 가뭄이라는 문제 상황을 잘 이겨낸 자연에게 하늘은 약비를 선물하였다. 비록 턱없이 부족하지만 감사할 줄 아는 자연은 약비에 숨을 고르고 새 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감사할 줄도, 만족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은 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난리들이다. 그러기에 단비 오시는 날에도 그 귀한 비를 맞으며 거리에서 답 없는 역사 교과서 전쟁에 열을 올릴 뿐이었다. 정말 이런 진흙탕 싸움이 또 있을까 싶다. 그 진흙탕 싸움에서 필자는 정말 당황스럽고, 놀랍고, 무서운 글귀를 발견했다. “역사를 왜 하나로만 해석하라고 하는가?” 그럼 역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된다는 말인가? 아무리 시대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역사까지 다양하게 해석하자고 하는 그 생각에 겁이 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야 말로 역사를 자신들의 뜻대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분명 지금의 역사 교과서 논란은 이데올로기 논쟁이라는 힘의 헤게모니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헤게모니는 대부분이 모순이다. 왜냐하면 자신만이 옳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 교과서 문제 또한 헤게모니이다. 역사적 사건은 온 데 간 데 없고, 특정 사건에 대한 엇갈린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역사 교과서 논쟁의 핵심 키워드는 `친일`과 `친미` 뿐이다. 다른 것은 없다. 오로지 이 두 단어에 우리사회는 가뭄보다 더 극심한 고통에 빠져 있다. 친일과 친미의 기준도 오직 한 사람에게만 맞춰져 있다. 언제부터 역사가 한 사람에게만 맞춰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역사 교과서 논쟁의 속내를 보면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쇠고기 파동 때도 그랬듯이 선동 정치의 나라에서 지금은 뭔가 이슈를 터뜨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곧 선거이니까. 이슈의 도화선이 역사 교과사가 되었을 뿐이다. 역사 교과서가 아니었더라도 금뺏지를 단 분들은 뭔가 다른 꼬투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래야지만 자신들의 존재감을 들어낼 수 있으니까. 혹 여론조사라는 얄팍한 숫자 놀음에 고무되어 국회를 역사 교과서 정국으로 계속 몰고 가는 이들이 있다면 분명 그들은 역사보다 더 큰 민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2016년 4월 13일에 정말 제대로 된 선택을 받기를 원한다면 지금의 선동(煽動)정치를 바로 멈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생 법안, 특히 지방재정교부금법 일부 개정법률안(박혜자 의원)과 같은 교육 민생 법안 처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 즉 유권자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 누가 진정 이 나라, 그리고 우리 국민들을 위하는 사람인지를.주말에 그토록 기다리던 약비가 내렸다. “꼭 필요한 때에 내리는 비”라는 약비의 이름처럼 우리에겐 더 없이 필요한 비였다. 이번 약비가 힘들어하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기서(奇瑞), 즉 좋은 징조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이번 주 목요일에 있을 2016년 수능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이 나라 수험생들 한 명 한 명에게는 더 더욱이 기서가 되길 바란다.어사화(御賜花)라는 꽃이 있다. 어사화란 조선시대에 문과와 무과 과거시험에 급제(及第)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종이꽃이다. 2015년 11월 12일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들에게 어사화가 제수(除授)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꼭 일념통암(一念通巖, 정신을 집중하면 화살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이라는 말을 마음에 꼭 새기고, 그대로 실천하길 바란다.

2015-11-11

창작오페라 `가락국기(駕洛國記)`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난밤 소리 없이 내리던 가을비가 늦은 일요일까지 이어지며 단풍으로 붉게 물들었던 산과 들판을 촉촉히 적시고 있다. 여름부터 계속되던 가뭄을 완전히 해갈해 주지는 못하지만, 농수부족으로 속이 타 들어가는 농부들의 한숨을 덜어주는 것 같다. 가로수의 노란 단풍만큼이나 가을의 운치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는 오페라 무대가 아닐까 한다.대구에는 지난달 8일부터 `제13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마련되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예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는 시간을 이어갔다.이국적인 분위기의 오케스트레이션과 몽환적인 선율의 아리아 등으로 호평을 받은 국립오페라단의 환상적인 무대 `진주 조개잡이`에 이어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제작한 창작오페라 `가락국기`가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제13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대미를 장식해 주었다.제작 때부터 지역 문화계의 많은 관심을 받았던 `가락국기`는 대구 출신의 판사 정재민이 쓴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를 각색하여 만든 오페라로 더욱 유명세를 탔던 공연이었다.이번 공연에 참여했던 작곡가의 초대로 관람할 수 있었던 창작오페라 `가락국기`는 그동안 유명 오페라에 길들여 있는 관객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스토리 전개와 음악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초연무대가 주는 묘한 긴장감과 지역 배우들의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모습에서 오페라의 진지함을 피부로 느끼기에는 충분했다.원작 `독도 인 더 헤이그`를 각색해 만든 `가락국기`의 스토리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독도소송을 통해 독도가 어느 나라의 영토인지에 대한 논쟁에서 오페라의 이야기는 시작된다.한국은 일본의 술수로 국제적으로 휘말리게 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인 `가락국기`의 존재와 그 책 속의 내용이 주는 증명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 책에는 일본 천황의 근원이 우리의 가야국에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이는 이 책을 찾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가락국기`가 숨겨져 있는 동굴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방해한 일본이 `가락국기`가 있던 동굴을 폭파시키며 모든 것을 신기루로 만들어 버린다.이 장면은 현실에 `가락국기`가 존재하지 않음을 암시하며 피날레를 장식하게 된다. 이 공연의 제목이며 주제가 되는 `가락국기(駕洛國記)`는 고려 문종 때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의 저술이라고 하지만 작자는 미상이다.내용은 김수로왕의 전설과 금관가야의 일을 적었으며, 삼국유사에 `가락국기`로 줄거리만 수록되어 전하나 사실의 정확성은 떨어지나 가야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광복70주년을 맞아 창작 오페라가 지역에서 제작되었다는 점과 국내 정상급 성악가와 연주자들이 이번 무대를 위해 함께 모여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을 이끌어 나갔다는 점은 상당한 의미를 주고 있다.어느 집시 여인의 삶과 죽음을 그린 비제의 `카르멘`은 1875년 초연 당시 혹평을 받았던 대표적인 오페라이다. 하지만 현재 오페라 `카르멘`은 프랑스의 자존심으로까지 인정받고 있다.익숙하지 않은 문화는 낯섬과 어색함으로 항상 다가온다. 하지만 사람의 열정과 사랑이 담겨진 문화는 그곳에 사람 냄새와 함께 진솔함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201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