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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영혼을 위하여

등록일 2015-12-21 02:01 게재일 2015-12-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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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봉준<br /><br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작금에 한국에서 가장 마음이 상한 인물을 꼽자면 아마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아닐까 싶다. 그가 당 대표에 오른 뒤 단 하루라도 당내 사정이 고요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친노와 비노, 혹은 주류와 비주류로 일컬어지는 계파 대립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태동시킨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함께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앞으로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 길을 예측하고 장담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다가올 총선의 공천 윤곽이 드러날 즈음 더더욱 혼돈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을까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한 마디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앞에 선 느낌이랄까.

이런 상황 가운데 지난 6일 문재인 대표의 심경을 읽을 수 있는 한 편의 시가 그의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가 그것이다. 특히 두 번째 연의 마지막 구절인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 /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에서 문대표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안철수 의원에게, 당원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을 향해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밝힌 셈이다. 시의 의도를 빌리자면 문대표는 이 순간부터 목숨까지 걸 각오로 외로운 길을 꿋꿋이 걸어가기로 작심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표현처럼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내기 위해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고통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한편 외로운 길의 끝자락엔 반드시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음도 느껴진다. 인용한 시의 첫 번째 연에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 뿌리 깊으면야 /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후략)”에서처럼 비록 `상한 갈대`일지언정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릴 강인한 생명력이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밑둥까지 잘려나갈 지라도 다시금 새순이 돋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아울러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와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그의 손을 `마주잡을 손`을 기대하는 심정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시에 담긴 의미를 문재인 대표의 마음과 정확히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시를 인용한 문대표의 의도를 짐작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한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리더라면 사방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에 결코 흔들려선 안 된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줌이 마땅하다. 그러나 고정희 시인의 시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상한 갈대가 한 계절을 넉넉히 흔들리면서도 그 잘린 밑둥에서 다시 새순을 돋아내는 것은 “뿌리 깊으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일지라도 거기서 꽃을 피워내는 일은 “물 고이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리고 문재인 대표에게 고통을 이겨낼 깊은 뿌리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아울러 새로이 꽃을 피워 낼 넉넉한 물이 채워져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만에 하나 이 둘의 충족요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롭기를 작정하고 목숨 걸고 길을 걷겠다면 그러한 리더를 바라보는 구성원들의 낭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012년 대선출마 선언에서 안철수 의원이 인용했던 조병화의 시 `나 하나 꽃 피어`가 새삼스럽다. “나 하나 꽃 피어 /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 말하지 말아라 /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 결국 풀밭이 온통 /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후략)” 이 나라의 `새정치`를 이야기했던 그들 중 한 사람은 너와 내가 함께 꽃 피워 풀밭을 꽃밭으로 만들겠다고 말하다 다른 길을 떠났고, 또 한 사람은 상한 영혼이 되어 외로운 길을 나서겠다며 결연하다. 이 두 사람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도 의문이지만, 이러한 한국 정치에 점점 깊이 상처받고 있는 우리 시대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 슬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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