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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목장갑의 온도

등록일 2015-12-08 02:01 게재일 2015-12-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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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月)에도 온도가 있다면 어느 달이 가장 따뜻할까? 당연한 질문에 7월, 또는 8월이라는 당연한 답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당연한 것들도 그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온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온도(溫度)를 사전에서는 `물체의 차고 더운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 또는 물리적으로는 열평형 상태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온도는 차고 더운 성질을 다 가지고 있는데 왜 하필이면 `따뜻할 온(溫)`을 쓰는지 궁금해졌다.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필자는 몇 번이고 탄성을 질렀다. 뜨거운 물체와 찬 물체를 맞대어 놓으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뜨거운 물체는 식어가고 찬 물체는 데워진다. 이는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는 열의 성질 때문이라고 한다. 기부 온도, 나눔 온도, 사랑 온도, 희망 온도, 경제 온도 등 온도는 그 앞말에 어떤 말이 와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이는 기부와 나눔이, 또 사랑과 희망이, 그리고 경제가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전반의 온도는 수치로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을 치고 있다. 말하기 좋아 하는 사람들은 바닥을 치면 남은 것은 올라오는 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올라 올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바닥에 붙은 우리 사회의 온도는 어떨까. 뉴스를 보면 분명 우리의 희망 온도는 죽었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나마 있던 희망도 모두 없어지고 만다. 그럼 우리는 희망이 부재한 얼어붙은 이 땅에서 인류 최후의 날만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걸까. 물론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들에 의해 이 사회의 온도는 조금씩 올라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중한 꿈을 키우며 살고 있다.

춥기만 한 이 나라의 12월에 따뜻함을 보탤 이야기 하나 소개한다. 12월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생각한다. 선물은 그 자체로도 좋지만 선물을 전하기 전까지의 과정 때문에 더 가치 있다. 형식이 넘치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선물 또한 형식적인 선물이 넘쳐난다. 가게마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한 가득 진열되어 있고 우리는 돈만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그것을 사서 주면 끝난다. 그런 선물에 감동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요즘은 선물이 부담인지도 모른다. 지난 11월 초등학교 2학년 나경이가 할아버지께 불쑥 내민 선물은 분명 그 어떤 고급선물보다도 값졌다. 할아버지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선물에 대해 필자가 몇 번이고 물었지만 나경이는 끝내 말해 주지 않았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 드려요. 사랑해요.”라고 쓴 카드와 함께 자신이 직접 포장한 어른손보다 조금 큰 선물을 보면서 필자는 여러 추측을 해 보았지만 선물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다른 일 때문에 금세 잊어버렸다. 저녁 먹기전 필자는 그 선물을 볼 수 있었다. “나경이가 할아버지 정말 많이 생각했구나. 나경이 선물이 최고다”라고 하시며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손에 들린 것은 바로 바닥이 빨간 목장갑 한 켤레였다. 많은 선물이 있었지만 단연 최고의 선물은 나경이의 선물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나경아, 왜 장갑을 선물을 했니?” “할아버지는 매일 사과 밭에서 일하시잖아.” 그 말에 꽁꽁 얼었던 필자의 마음 온도가 최고까지 올라갔다. 우주에서 가장 높은 온도는 우주의 시작점, 즉 빅뱅이 일어난 시점의 온도라고 한다. 싸늘해진 우리 사회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가면을 벗고 나눔과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2015년 12월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따뜻한 달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나경이의 빨간 목장갑의 온도가 전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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