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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청춘 짜장배달

등록일 2015-11-25 02:01 게재일 2015-11-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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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 교사

이륙을 준비하는 가을을 잡기 위함인지 그토록 대지를 목 타게 했던 비가 날을 물고 이어지고 있다. 새의 깃털은 젖지 않는다고 하지만 가을은 속까지 젖었다. 그래서 가을이 쉽게 이륙을 못하는지도 모른다.

빗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나무들이 조용히 한 해의 마지막 일을 준비하고 있다. 겨울을 기다리는 나무들에게서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비장함을 읽는다. 나무들은 스스로 한해살이를 몸속에다 둥글게 기록한다. 나이테는 그 해의 역사다. 나무는 죽기 전에는 나이테를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진 나무들이기에 할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나무들은 속으로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삭인다. 그 삭은 이야기들이 나무를 겸손하게 만든다. 겸손은 나무에게 진화를 선물하였고, 진화는 나무들에게 집중과 선택, 그리고 나눔이라는 유전자를 심어주었다.

그러기에 나무는 집중할 때 집중한다. 집중력을 잃지 않은 나무는 철을 안다. 아무리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나무는 때가 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꼭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무는 인간들처럼 우왕좌왕하지 않고 선택을 해야 할 땐 확실하게 선택한다. 집중과 선택으로 얻은 결실을 나무는 절대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는다. 나무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또 공평하게 나눠준다. 그 나눔이 클수록 나무는 이듬해에 더 풍성한 그늘을 만든다.

과연 나무들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2015년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록할까. 아무리 큰 나무도 흔들린다고 한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올해 우리 사회는 그 흔들림이 더 컸다. 흔들리면서 견고해진다는 말처럼 흔들리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무에게만 해당한다. 2015년 우리는 몹시도 심하게 흔들렸지만 견고해진 건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뿐이다. 우리는 언제 나무의 집중과 선택, 그리고 나눔이라는 유전자를 이식받을 수 있을까.

나무를 닮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잠시 하려 한다. 지난 목요일 산자연중학교에서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 산자연중학교에는 마을 학교라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마을 학교는 학교 소재지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학생들이 함께 사라져가는 마을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인성 문화 학교이다. 마을 학교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일일 명예교사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말 그대로 일일 명예교사로 위촉된 마을 어르신께서 목요일 6교시 마을 학교 시간에 학교에 오셔서 전교생들을 대상으로 마을의 역사와 전통 등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시는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학생들은 이제 목요일 6교시를 기다린다.

지금까지 열한 분이 마을 학교 명예교사로 초빙되어 학생들에게 강연을 해주셨다. 그 열한 번의 강연을 분석해보면 시작은 모두 다르지만 결론은 항상 한가지다. 그것은 바로 “꿈을 가져라!”이다. 그래서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꿈으로 충만해 있다. 지금까지 마을 학교 시간을 통해 꿈을 전수 받기만 하던 학생들이 지난 주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잔치를 준비했다. 잔치 음식은 바로 짜장면. 여기엔 짜장면 나눔 봉사활동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박선희 씨와 목화로타리 봉사단원들의 도움이 컸다.

나눔은 분명 더 큰 나눔을 낳는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 지 반년이 되어간다. 과연 우리 학생들은 어떤 인성 교육을 받았을까. 다른 학교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생활에서 살아있는 인성을 배우고 있다. “열정은 성공의 열쇠,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다.”(워런 버핏)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눌 줄 아는, 그리고 나무를 닮은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분명 성공의 완성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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