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던 대지가 그나마 목이라고 축일 수 있는 단비가 내렸다. 물론 해갈에는 어림도 없는 양지만, 세상엔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한 비다. 그런데 이 비는 분명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난 한 주 들판은 추수 열기로 뜨거웠다. 자연은 내어주기에 바빴고, 사람들은 거둬들이기에 바빴다. 가뭄에 징징대던 사람들과는 달리 가뭄이라는 문제 상황을 잘 이겨낸 자연에게 하늘은 약비를 선물하였다. 비록 턱없이 부족하지만 감사할 줄 아는 자연은 약비에 숨을 고르고 새 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감사할 줄도, 만족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은 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난리들이다. 그러기에 단비 오시는 날에도 그 귀한 비를 맞으며 거리에서 답 없는 역사 교과서 전쟁에 열을 올릴 뿐이었다. 정말 이런 진흙탕 싸움이 또 있을까 싶다. 그 진흙탕 싸움에서 필자는 정말 당황스럽고, 놀랍고, 무서운 글귀를 발견했다. “역사를 왜 하나로만 해석하라고 하는가?” 그럼 역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된다는 말인가? 아무리 시대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역사까지 다양하게 해석하자고 하는 그 생각에 겁이 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야 말로 역사를 자신들의 뜻대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분명 지금의 역사 교과서 논란은 이데올로기 논쟁이라는 힘의 헤게모니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헤게모니는 대부분이 모순이다. 왜냐하면 자신만이 옳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 교과서 문제 또한 헤게모니이다. 역사적 사건은 온 데 간 데 없고, 특정 사건에 대한 엇갈린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역사 교과서 논쟁의 핵심 키워드는 `친일`과 `친미` 뿐이다. 다른 것은 없다. 오로지 이 두 단어에 우리사회는 가뭄보다 더 극심한 고통에 빠져 있다. 친일과 친미의 기준도 오직 한 사람에게만 맞춰져 있다. 언제부터 역사가 한 사람에게만 맞춰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역사 교과서 논쟁의 속내를 보면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쇠고기 파동 때도 그랬듯이 선동 정치의 나라에서 지금은 뭔가 이슈를 터뜨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곧 선거이니까. 이슈의 도화선이 역사 교과사가 되었을 뿐이다. 역사 교과서가 아니었더라도 금뺏지를 단 분들은 뭔가 다른 꼬투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래야지만 자신들의 존재감을 들어낼 수 있으니까. 혹 여론조사라는 얄팍한 숫자 놀음에 고무되어 국회를 역사 교과서 정국으로 계속 몰고 가는 이들이 있다면 분명 그들은 역사보다 더 큰 민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2016년 4월 13일에 정말 제대로 된 선택을 받기를 원한다면 지금의 선동(煽動)정치를 바로 멈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생 법안, 특히 지방재정교부금법 일부 개정법률안(박혜자 의원)과 같은 교육 민생 법안 처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 즉 유권자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 누가 진정 이 나라, 그리고 우리 국민들을 위하는 사람인지를.
주말에 그토록 기다리던 약비가 내렸다. “꼭 필요한 때에 내리는 비”라는 약비의 이름처럼 우리에겐 더 없이 필요한 비였다. 이번 약비가 힘들어하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기서(奇瑞), 즉 좋은 징조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이번 주 목요일에 있을 2016년 수능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이 나라 수험생들 한 명 한 명에게는 더 더욱이 기서가 되길 바란다.
어사화(御賜花)라는 꽃이 있다. 어사화란 조선시대에 문과와 무과 과거시험에 급제(及第)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종이꽃이다. 2015년 11월 12일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들에게 어사화가 제수(除授)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꼭 일념통암(一念通巖, 정신을 집중하면 화살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이라는 말을 마음에 꼭 새기고, 그대로 실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