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엊그제 고향엘 다녀왔다며 한껏 목소리가 들떠 계셨다. 명절도 아닌데 무슨 일로 고향 나들이를 하셨느냐 여쭸더니 오촌 당숙모의 제삿날이기도 하고 여차저차해서 다녀오셨단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각지에 흩어져 사느라 자주 만나지 못하던 아버지의 육촌 형제도 만날 겸 겸사겸사 다녀 왔노란다. 도대체 이 무슨 이해하기 쉽잖은 상황인가? 오촌 당숙모 기일이라니? 게다가 육촌 형제라니? 부모님 촌수로 따지면 오촌, 육촌이지만 나를 기준 삼으면 다시 육촌, 칠촌까지 내려오는 멀고도 먼 친족 관계다. 사촌 간도 일 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한 요즘 세상에 멀어도 너무 먼 촌수인데도 이 어른들 사이는 친해도 너무 친하고, 챙겨도 너무 살뜰히 챙겨 생뚱맞다. 이런 탓에 `뭘 그리 먼 친족까지 다 챙기고 사느냐`며 퉁명하게 반응이라도 할라치면 어릴 때부터 친형제처럼 자랐느니, 할아버지 항렬에 형제가 많지 많아 유독 가까울 수밖에 없다느니 장황설이 이어진다. 그리고 예의 “요즘 것들은….”으로 시작하는 꾸지람과 역정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당연시했던 가족의 범주와 관계맺음이 살기 바쁘다는 핑계와 이런저런 복잡한 얽힘을 귀찮게 여기는 세태에 밀려 급속히 변모했다. 고향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았던 전통 사회에서는 부모님 세대가 보여준 가족, 친족 공동체의 정겨운 인간관계는 일상적 풍경이었다. 친형제 간은 물론이고 사촌, 육촌, 팔촌까지 한 동네에 모여 살며 생사화복을 함께 하던 시절의 가족 공동체 회복은 이미 물 건너간 얘기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아무리 세태가 변했다 하더라도 기본 도리는 지키며 살아야 마땅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 년에 한 번 보는 것도 어려운 사촌지간의 우애며 도리는 차치하더라도 친형제, 부모 자식 간의 도리는 다하며 사는 것이 인간됨의 마지막의 선이 아닐까 싶다.
연일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유명 트롯 여가수의 불편한 가족사가 전해지고 있다. 남의 가정사에 일일이 참견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경우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것이 시끄럽고 불편한 사태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게 만드는 방편일 것도 같다. 다만 이 씁쓸한 다툼을 지켜보는 대개의 반응이 `어찌 엄마와 딸 사이에`, `어떻게 부모 자식 간에`다. 그렇다. 이들은 가족 중에도 가장 가깝고 가장 애틋하다고 여겨지는 부모 자식 간이고, 엄마와 딸 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경우가 어찌 이들 모녀 사이의 일뿐이겠는가. 주변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다툼의 상당수가 가족 사이의 불화라는 사실에 우리는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다.
사회 집단의 기본 단위인 가족 공동체에 간 금을 회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방법을 찾자면 뭐가 있을까?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食口)라 일컫는다. `같은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밥상 공동체의 회복이 가족을 재탄생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크게 한 상에 둘러 앉아 왁자지껄한 식사 판을 벌여보자. 요즘 우리의 식사 자리는 단출하다 못해 쓸쓸할 지경이다. 혼자 멀뚱히 앉아 밥상을 대하기보다 온 식구가 함께 모여 밥상을 대하자. 한 집에서 살지는 않더라도 가끔은 부모님도 오시라 하고 형제들도 불러 모아 밥상을 같이 하자. 이때는 학원 때문에 안 된다, 뭐 때문에 안 된다며 뒤로 빼 돌렸던 어린 자녀들도 불러 앉히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더 봐야 없던 정도 생길게 아닌가. 부모 자식 간의 끊을 수 없는 혈육성 회복, 형제간의 포기할 수 없는 우애의 회복, 더 나아가 멀어도 너무나 먼 촌수가 되어 버린 사촌 너머의 친족성 회복! 이 모든 관계성의 회복과 가족의 재탄생을 위해 밥상 공동체를 실현해 보자. 우리는 식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