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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북동 비둘기`를 생각하며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몇 해 전부터 가끔씩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성북동 주변을 서성인다.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흔히 성북동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이 나라의 엄청난 재력가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다. 결코 속내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의도로 느껴지는 높은 담에 둘러싸인 저택들이 즐비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규모일 뿐 아니라 잘 가꾸어진 정원 조경까지 더해져 보는 이의 부러움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깨끗이 포장된 도로 위에 간간이 보이는 방범초소만이 덩그러니 골목을 지키고 있고, 나처럼 한국 최고의 부촌(富村)을 탐방(?)하러 온 낯선 이방인만이 그 길을 걷고 있다. 현실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비현실의 공간이다.한편 성북동을 점령하듯 자리 잡은 그곳의 어딘가에 멈춰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울 도심의 번화함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제각각 높이를 달리하는 수많은 빌딩의 각축,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들의 행렬이 시야에 담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해방 70년의 짧은 역사 속에 일궈낸 장면들이 마치 내 것인 양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엄연한 현실임에도 어떤 의미에서는 비현실적인 광경이다.그런데 시선을 돌려 성북동의 또 다른 한 자락을 훑어 내려오면 과거 속의 한 장면 같은 비현실적 풍경이 현실로 다가온다. 사실 성북동의 진면목은 여기에 있다. `북정마을`로 불리는 이곳에서는 비현실적인 현실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아니! 아직도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남아 있었어?”라는 놀라움과 감탄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우리들의 1960·70년대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얕은 담벼락을 맞대고 둘레둘레 이어진 지붕 낮은 집들이 눈물나게 정겹다. 그 집들을 잇고 있는 굽이굽이 골목길은 당장이라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놀이를 하고 싶은 동심을 솟구치게 만든다. 거대한 저택을 바라보던 부러움이 아닌 소담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 대한 친근감이다.그러나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어디나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과거를 더 이상 용납하지 못한다. 이미 이곳의 골목 곳곳에도 재개발을 알리고 독려하는 글귀들이 나붙어 있다.`머지않아 이곳도 변하겠구나!`는 생각에 씁쓸함이 밀려온다. 이 공간의 주인이 아니면서도 옛 향수에 젖어 개발을 반대하는 건 오히려 이기적이다. 그렇지만 쉽게 동의하지 못하고, 흔쾌히 박수치지 못하는 마음 한 편에는 변화, 성장, 발전, 풍요, 이런 따위의 현실들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짧은 경험 탓이다.성북동을 거닐다보면 문득 떠오르는 한 편의 시가 있다. 다들 짐작하고 있겠지만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다. 시인은 1960·70년대를 관통해 거세게 불어 닥친 산업화와 도시화의 열풍 속에서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연약한 비둘기의 애처로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유롭게 거닐던 널찍한 마당도 잃어버리고, 마음껏 둥지를 틀던 숲도 잃어버린 비둘기는 이제 도심의 빌딩, 고가 밑, 옥상 등을 배회하며 도시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 또 다시 개발이란다. 비단 성북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나마 우리 곁에 과거의 풍경처럼 남아 있는 이 조그마한 공간마저 자취를 감춘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과연 거대한 성채의 주인이 되어 호사를 누리며 다들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호젓하게 옛 향수에 젖어 쓸데없는 상념에 빠진 채 골목골목을 거닐 수 있는 호사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그래, 즐길 수 있을 때 맘껏 걸어보자.

2015-11-06

2015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을 마치고

▲ 류영재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운영위원장2015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지난달 16일에 개막해 11월 1일로 17일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이 기간 동안 10만여 명의 관람객이 축제장을 찾은 것으로 파악됐고, 이는 지난 세 번의 축제와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예술축제를 단순히 관람객의 수로 평가할 수는 없겠으나 이번 축제는 분명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작년까지의 페스티벌이 스틸조각가 중심으로 이뤄졌고, 예술축제의 품격이라는 점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포스코와 포항철강관리공단 등 지역 철강기업의 스틸작품 제작 참여와 일반시민들의 작품전시 등 시민중심의 축제로 성격을 달리하면서 시민들이 축제의 주인공이 됐고 지역 정체성이 접목된 성공적인 축제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현대 축제의 성공요소가 유희성과 대중성, 일탈성 등이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축제의 품격을 결코 가벼이 볼 수는 없는 것이 예술축제의 특징이다. 일반 시민들의 작품 참여가 혹시나 축제의 격을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어린아이들의 작품에는 동심과 꿈이 깃들어 재미가 뭉게구름처럼 피어났으며 공업계 학생들의 금속작품은 예비 강철맨의 어엿함이 물씬 풍겼다. 특히 포스코, 제일테크노스, 신화테크, 이젠테크, 화일산기, 대광산업, 에스엠 등 포항지역 철강기업의 참여 작품은 압권이었다. 예술과 산업을 매칭한 차별화된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예술성을 가지면서 기업의 특화된 기술력과 스케일 등에서 압도적이었고 전문 조작가들 사이에서도 회자되어 전국적인 화제를 낳았다.철강기업의 스틸아트 작품제작 참여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축제의 주제를 `오감철철`이라 정하고 철강기업의 참여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은 후 섭외에 나섰다. 어떤 형식의 도움이든 도움을 청하러 가는 사람의 마음은 저어되기 마련이다. 사실 지역 철강업체들의 사정이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여 더욱 망설여졌으나 강철보다 단단해보이던 철강기업의 대문은 의외로 흔쾌히 열렸고, 제작자문을 위한 방문이 거듭되면서 철강맨들과는 마치 공동작업을 하는 동료애같은 뜨거운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었고 축제가 이웃간의 대동단결에 기능함을 새삼 현실로 깨닫게 되었다.그들은 벌써부터 “내년에는….”이라며 지속적인 참여의지를 밝히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곤 한다. 어쩌면 이 행사가 철강생산의 도시 포항에서 철강을 통한 문화생산의 도시로 도약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예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또한, 이번 페스티벌은 공연, 체험, 놀이 등이 예년보다 훨씬 강화되어 가을의 공원을 인파들로 넘쳐나게 하였으며, 특히 지난 3년간의 결과물인 스틸아트 작품으로 조성된 아트웨이 투어는 인기프로그램이 됐다.올해의 행사장인 해도공원, 문화예술회관 길을 따라 포항운하, 영일대해수욕장, 포항시립미술관을 연결하는 스틸아트의 길을 투어하는 `아트버스투어`는 문화와 관광을 연결하는`아트투어리즘`으로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의 지속가능성과 그 가치의 일면을 보여 줬다.부대행사로 진행된 `삶의 기술, 철의 예술 - 도시에 녹아든 예술프로젝트` 세미나에서는 발제자를 비롯해 참석한 시민들이 앞으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포항의 문화 정체성과 지역성을 아우르는 창의적인 도시브랜드 마케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및 도시 이미지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어느 주말,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신사가 가족들과 축제장을 찾아 `장인정신`이라 이름 붙여진 무쇠로 만들어진 고려청자 앞에서 손짓을 곁들여 열심히 설명하는 광경을 즐거이 보았다. 푸른 제복의 모습으로만 만났던 바로 그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가을하늘은 파란 물감이 묻어날 것처럼 청명하였고….

2015-11-05

지방재정교부금법 일부 개정법률안 발의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하늘연달이 샛노란 융단을 깔고 미틈달에게 시간의 자리를 양보했다. 거리마다 깔린 노란 카펫에 사람과 자연 모두가 11월의 주인공이 되었다. 달을 나타내는 고유어 표현 중 11월을 표현하는 미틈달에 대해서 필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론들을 조합해보면 `미틈`은 `밀뜨리다`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밀뜨리다`는 “갑자기 힘 있게 밀어 버리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가을에서 겨울로 급격히 넘어 가는 11월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용어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미틈달의 의미를 증명이라도 하듯 기온이 가을에서 겨울로 급격히 넘어가고 있다. 이젠 편한 가을 옷으로는 떨어지는 기온으로부터 체온을 지키지 못 할 판이다. 그런데 급격히 변하는 것은 기온만이 아니다. 자연의 변화는 온도의 변화를 추월했다. “하루가 다르다”라는 말은 미틈달 11월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너른 품으로 집을 만들어 생명을 키운 느티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이 이젠 드넓은 세상으로 품속의 생명들을 떠나보내고 있다. 생명들이 떠난 자리엔 그동안 고생한 가지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가을 햇살이 가득하다. 바람은 마지막 힘을 다해 가지에 묻은 생명들의 아쉬움을 날려 보낸다. 그래서 늦가을엔 햇살이 강하고 바람이 잦은지 모르겠다.미틈달이 밀어올린 건 가을만이 아니다. 서먹하기만 하던 한·중·일 정상들이 눈부신 가을 날 우리나라에 모였다. 비록 원론적인 이야기들만 오갔지만 역사교과서에 발이 묶인 우리나라를 초역사적 세계로 밀어 올릴 계기가 되길 필자는 간절히 바란다.그러다 필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토록 친일 교과서 어쩌고저쩌고 하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 갔는지? 물론 경호가 삼엄하여 직접 전달은 못 하더라도 언론을 통해서라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하라!”라고 왜 속 시원히 말 한 마디 못하는지?미틈달에 가을은 겨울로 한껏 치닫고 있지만, 우리 정치는 한 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필자는 이대로 계속 곤두박질쳐 가능만하다면 시계를 1970년대로 되돌리고 싶다. 과연 그 때도 역사전쟁을 하고 있는 저들이 지금과 같은 말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전 국민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생중계 하고 싶다. 무엇을 위한 역사전쟁인지, 왜 `친일`밖에 보지 못하는지, 우리를 힘들게 한 당사자들이 이 나라에 와 있는데 그들에겐 왜 한 마디도 못하는지, 정말 한 숨밖에 안 나온다. 그러고도 저들이 이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까?물론 이 나라 정치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국회에서는 사회 약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국회의원들이 몇 몇 보인다. 그나마 이런 국회의원들이 있기에 국민들이 숨을 쉴 수 있다. `기회균등 촉진에 관한 법률안`(강석훈 의원), `의무교육중단 학생 교육지원에 관한 법률`(박혜자 위원), 그리고 `지방재정교부금법 일부 개정법률안`(박혜자 의원). 비록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소외받는 학생들을 위한 법들이 발의 되었다는 것이 더없이 기쁘다.국회는 꼭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역사 교과서 전쟁 때문에 교육 민생 법률안들이 이번 회기에 통과되지 못한다면, 분명 더 큰 전쟁을 각오해야 할 것임을.경북도교육청과 교육부는 더 큰 교육을 위해 `지방재정교부금법 일부 개정법률안`의 제안 이유를 똑똑히 읽어 보고, 이 법률안의 내용을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그동안 각종 학교는 교부금 배부 기준에 포함돼 경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으나`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개정(2010.02.12.)으로 각종학교인 사립학교는 교부금 산정 기준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경비를 지원받기 어려워져 학교 운영이 곤란한 실정임. 그러나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은 의무교육에 해당되므로 관계 법령에 따라 학력이 인정되는 각종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라 할 수 있음.”

2015-11-03

경험의 소중함 일깨워 주는 U-17 최진철 감독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일찌감치 새벽잠에서 깨어나 TV앞에 앉는다. 칠레에서 열리는 `2015 FIFA U-17 월드컵`의 잉글랜드와 경기를 보기 위해서이다. 이른 시간 잠자리에 든 것도 아닌데 새벽녘에 선뜻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예선 첫 경기,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브라질과의 대결에서 통쾌한 1승을 거둔 것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의 투지와 강인한 승부욕이 90분 내내 생생하게 전해 줬던 것이 새벽잠을 쫓은 것 같다. 비록 성인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는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팀들과 경기를 하며 체력과 기술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모습이 약간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거 월드컵과 아시안컵, 올림픽 등 크고 작은 국제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내용을 되짚어 보면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했다고는 하지만 체력과 조직력에서 늘 실망감을 안겨줬기 때문이었다. 한국 특유의 강한 투지를 가지고 참여했던 경기에서도 결정력 부족에서 오는 패배는 늘 아쉬움을 안겨줬다. 그런데 이번 청소년 국가대표팀이 보여주는 현란한 발기술과 월등한 스피드 그리고 유럽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성인축구에 대한 희망을 미리 예감해 본다. 비록 29일 16강전에서 벨기에에 0대2로 패해 8강행이 좌절됐지만 말이다.어린선수들의 파이팅과 선수들 간의 협업에서 오는 조직적인 경기운영 방식도 뛰어났지만, 그들이 눈빛 하나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호흡을 맞출 수 있게 훈련시킨 최진철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을 먼저 칭찬해 주고 싶다. 한국 축구의 전설로 전해져 오는 `2002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를 통해 짜릿한 승리의 기쁨과 조직력이 주는 현대축구의 힘을 직접 경험해 봤던 최감독에겐 승리가 주는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승리를 위해선 우리나라 선수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점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선발된 선수들과 함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왔다. 몸으로 하는 축구가 아닌 머리로 하는 축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수립했고, 지속적인 반복훈련에서 오는 경험들을 축적해 실전을 대비했다.2002 한·일 월드컵 경기에서 홍명보, 김태영과 함께 철벽 스리백을 구축하며 수비수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박지성, 이영표, 황선홍과 같은 공격수들의 활약에 가려 언론의 주목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선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0대2패배로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역으로 돋보였다. 경기도중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은 최진철은 붕대를 동여매고 경기를 진행하는 투혼의 선수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일명 `붕대투혼`으로 알려진 최진철은 승리에 대한 애착과 승부욕을 무기로 국가대표 선수에서 지도자로 변신을 시도했다. 프로축구팀 코치로 활동하며 그의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 받아 U-17 대표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국가대표시절 히딩크 감독에 의해 완벽하게 짜여진 조직력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그것이 가져다 준 승리의 기쁨, 그리고 붕대투혼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조직력이 주는 무기력함에 대한 슬픔과 아픔을 모두 경험했던 최감독이기에 그의 예리한 통찰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없이 많은 결정을 해야 선택의 순간들을 만나게 뙨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확신과 지식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선택은 결국 수많은 경험에서 오는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경험은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며,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보통의 자신의 삶은 자신이 후회하는 일들을 통해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말은 고통을 준 경험들이 자신의 삶에 알게 모르게 방향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5-10-30

축제 공화국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교수시월의 막바지, 가을 기운이 역력하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정도를 넘어 쌀쌀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낮의 때늦은 더위도 그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대신 하늘은 더욱 높고 푸르다. 나무는 잎사귀마다 형형색색의 고운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짬을 내어 이 계절이 아니면 결코 맛볼 수 없는 그 무엇들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들 있다. 지난 주말 연휴를 이용해 강원도 속초와 고성 일대로 1박 2일의 강행군을 감행했다. 설악산이 자리 잡은 지역이니 단풍 나들이를 다녀온 게 아닌가 생각 하겠지만 불행히도 그럴 호사를 누릴 형편은 아니었다. 중학생 아들놈의 학교 동아리 활동에 부모 노릇하느라 잠시 따라나섰을 뿐이다. 하여튼 이유에 어찌됐든 간에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천혜의 자연 풍광을 자랑하는 강원도를 수박 겉핥기라도 다녀온 기분은 나름 괜찮았다. 그런데 이번 여정 중에 그 동안은 무심히 보아 넘겼던 한 가지 장면에 시선이 머물렀다. 시군 경계를 넘어설 때마다 그 지역의 이러저러한 축제를 홍보하는 현수막들이 연이어 눈에 들어왔다. 그것만 봐도 `아, 이 지역은 이게 특산물이구나!`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고, 이처럼 좋은 계절에 여행길에 나선 이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한 지역 살림꾼들의 고심도 읽어낼 수 있었다.대한민국은 일 년 내내 축제의 연속이다. 계절과 지리적 특성을 살린 축제에서부터 지역 문화제, 특산물 등을 전면에 내세운 각양각색의 축제가 연중 끊이지 않는다. 그 중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만 허락된다면 한번쯤 발품을 팔아 집을 나서고 싶을 정도로 구미가 당기는 축제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거나 저거나 크게 다를 바 없는, 굳이 이런 식의 축제를 왜 하는가 싶은 축제가 허다하다. 물론 지역을 홍보하고, 덤으로 지역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축제를 기획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축제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내실 있는 콘텐츠로 준비되었는지를.지난 10일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한국 영화 산업의 역량을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산함에 선구적 역할을 해 온 국제적 페스티벌이다. 이보다 앞서 안동에서도 2015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이 누적인원 100만 명을 상회하는 성과를 남겼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축제로, 그리고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문화 산업으로 우뚝 선 축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축제는 과잉이 아닌가 싶다. 별반 두드러진 특성이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콘텐츠 자체도 엉성하기 그지없는 수준 낮은 축제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럴싸한 이름 붙인 축제 하나 운영하지 않으면 무엇엔가 밀리기라도 하는지 다들 안달이 난 모양새다.축제다운 축제를 만들어가자. 단순히 전시성 업적 쌓기 용으로 포장한 허울뿐인 축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즐기고 그 속에서 무언가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만 수많은 이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며, 아까운 재정의 낭비도 줄일 수 있다. 그저 그럴듯한 이름 붙여 밀어붙이는 축제, 그러다 어느 순간 있었는지도 모르게 슬쩍 사라지는 축제가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고 그 자체로 지역의 역사가 될 수 있는 축제가 필요하다.시월의 풍요와 여유가 더욱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 계절에 얼마나 많은 축제가 진행 중이고, 또 계획 중인지 대충 살펴보았다. 열 손가락을 몇 차례 꼽았다 폈다 해도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축제가 열거된다. 과히 축제 공화국이다. 이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지 부터가 고민이다. 우선은 찾아가서 즐기자. 이러쿵저러쿵 탓만 하고 뒷짐 지기보다는 축제의 한복판으로 과감히 뛰어들어 함께 누리자. 그 다음에 다시 한 번 따질 것은 따져보자.

2015-10-29

학교 부적응 학생과 국방의 의무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갑자기 학생이 묻는다. “선생님, 우리나라 역사가 그렇게 잘 못 됐나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필자는 답답하기만 하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구호(口號)와 선동(煽動)만 난무하고 있다. 낯 뜨거운 구호에 아이들과 함께 거리를 다니기가 부끄럽다.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바꾸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꾼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볼까봐 필자는 아이의 눈을 가렸다. 문제는 이런 현수막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의가 불법으로 내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단속은 전혀 안 되고 있다. 공해도 저런 공해가 없다 싶어 화까지 난다.거리에 내걸린 불법 선동 문구나 대학가에 내걸린 대통령 관련 대자보를 보면 이 나라가 막말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막말의 수위에 따라 민주화 정도를 평가한다면, 이 나라는 민주화가 아주 잘 된 나라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막말 대상은 대통령이든 누구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나라 국민 모두이기 때문이다. 개인은 물론 한 집단, 나아가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판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이 때 비판 앞에는 “건전한”이라는 수식어가 반드시 붙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를 보면 어떤가. 비판(批判)과 비난(非難)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역사 앞에서 정말 떳떳하다면, 그리고 역사에 대해 그토록 정의롭다면 정치인들이여, 대학생들이여 지금 당장의 왜곡된 역사부터 바로잡아라. 친일, 친미에 대한 반성도 중요하지만, 당신들에겐 위안부 할머니들의 울부짖음과 독도의 저 한 맺힌 절규는 들리지 않는가. 역사적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이론에 빠져 자기식대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 들지 말고 우선 감사함과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행동하자.지난주에 이어 필자는 정말 묻고 싶다.“교과서 검인증제도가 시행 중인 지금, 과연 우리나라 역사 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는가?”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말하고 싶으면 이 문제부터 생각해 본 다음에 말하면 어떨까. 아니래도 시험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는 우리 학생들인데, 왜 그 아이들을 괴롭히는지 필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또 무엇을 위한 한국사 교과서 논쟁인지 필자는 도무지 모르겠다.진정으로 학생들이 걱정된다면 물론 한국사 교과서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을 병들게 하고 있는 교육제도를 바꾸기 위한 난상토론(商討論)을 하자. 그리고 제발 바꾸자. 우리 학생들이 힘들어 하는 건 한국사 교과서 내용이 아니라 성적지상주의,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대한민국 교육 밥그릇 자체이다. 밥그릇은 그대로 두고 내용물만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얼마 전 교육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토론 자리가 마련되었다. 천주교대구대교구 대안 교육 세미나. 물론 현 교육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진 못했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 귀한 이야기들이 단지 이야기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더 많은 방법들이 강구되었다. 필자는 대안 교육 세미나 중 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토론 내용을 듣고 놀랐다. “학교 부적응 학생들과 국방의 의무”“임 병장, 윤 일병” 등 군대 부적응 때문에 생긴 마음 아픈 사건들을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부적응 바이러스는 빠른 속도로 사회 전 분야로 퍼져나가고 있다. 부적응 바이러스의 가장 큰 문제는 감염자 자신보다는 오히려 그 주변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학교 부적응의 정점에 있는 학생들이 입대했을 경우 과연 우리 군대는 어떻게 될까.군대 혼란은 사회 혼란 중 가장 심각한 혼란이다. 이를 방지하는 방법은 미리부터 부적응을 예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적응 학생들을 돕기 위한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지원이 이루어져 한다. 이는 교육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방부도 이제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 나서야 할 때다.

2015-10-28

3D 프린터의 세계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사회의 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지 다가올 미래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져 가는 것 같다. 얼마 전 서울의 모 대학에 다녀간 구글이 선정한 최고의 미래학자 중 한 명이자 다빈치 연구소 소장인 토마스 프레이는 앞으로 15년 후에는 세계 전체 일자리의 절반인 20억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물론 5년 후 주목받을 미래의 기술은 사물인터넷(Iot), 드론(무인비행기), 무인자동차, 3D 프린터, 가상현실 기기 등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촉매적 혁신(Catalytic innovation)`들이 새로운 일자리와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얼마 전 저녁 뉴스에서 샤넬의 모델들이 3D 프린터로 만든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걸어다니는 패션쇼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콘셉트가 샤넬 특유의 아이템인 트위드 재킷에 3D 프린터 기술을 더해 21세기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라고 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해 온 제러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누구나 기업가가 돼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3D 프린터는 3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다”라며 3D 프린터가 미래산업의 확실한 예시임을 말하고 있다. 요즘 들어 3D 프린터는 재료가 가볍고 필요한 소량만 낭비 없이 맞춤 생산할 수 있으며, 제품 출시의 시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주목 받는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3D 프린터는 미래산업을 준비하는 세계인 전반의 관심임과 동시에 실제 사용자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아디다스도 3D 프린터를 통해 완벽한 운동화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인 퓨처크래프트 3D 프로젝트에서 개발 중인 운동화의 모습을 공개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3D 프린팅쇼에서 3D 프린터로 제작된 인물 형상이 전시되었고, 한 3D 프린팅 전문가가 3D 프린터로 제작된 티라노사우루스 두개골을 쓰고 있기도 했다. 미국도 1986년부터 최근까지 국립과학재단과 NASA, NIST, 국방성, 에너지성이 연구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두바이에는 건물 전체와 이를 채울 가구까지 높이가 약 6m에 이르는 3D프린터로 제작하는 사무실을 지을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산업과 일자리가 창출되기를 기대하며 2020년까지 3D 프린팅 1천만 인력 양성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이라는 글에서 기술복제시대에 손상을 입는 것은 예술품의 진품성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아우라라고 할 때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라고 했다. 예술작품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성격인 진품성 즉 아우라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벤야민의 말에 빗대어 볼때 3D프린팅 기술은 예술작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마구 뒤흔들어 놓는 사건 중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유엔미래보고서 2040`을 보면 3D 프린터로 집을 짓는 콘투어 크래프팅(contour crafting)이 집에 대한 개념을 바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던캘리포니아대의 베록 코시네비스 교수가 작업한 3D 콘크리트 프린터 콘투어 크래프팅은 24시간 안에 집을 완성한다. 상하이의 원선 데코레이션 디자인 엔지니어링 기업은 3D 프린터로 하루에 10채를 프린팅한다. 비용과 시간이 절감되는 방법이니 집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기대해 볼만한 아이템이다. 변화무쌍한 과학기술을 따라가기 벅차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의 콧대를 낮출 수만 있다면, 이런 벅참 쯤이야.

2015-10-27

문제는 한국사 교과서가 아니다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노란 색은 모든 것을 내어준 색이다. 그래서 따뜻한지도 모른다. 가을 들판이 풍성한 이유는 모든 것을 내어 준, 또 내어 줄 준비를 마친 황금 벼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을 들판은 곳간이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엔 곳간지기인 허수아비들이 참새 떼들로부터 벼들을 지켰다. 하지만 먹을 것이 넘치는 요즘엔 허수아비도 실직을 했다. 그래서 가을 들판은 때론 황량하게 보인다. 낯선 행사장에 떼로 모여 있는 허수아비들을 보면 왜 그렇게 처량해 보이는지.참새와 허수아비가 떠난 가을 들판을 메뚜기와 사람들이 대신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쫓는 자와 쫒기는 자 같다. 그들 사이에 펼쳐지는 추격전은 너무도 평화롭다. 포르르 저만치 메뚜기가 날아가면 쫓는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그만큼 따라간다. 그 웃음소리는 가을 햇볕보다 더 곱다. 그렇게 몇 번 경합을 펼치다가 메뚜기는 고생한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다. 그러면서 세상에 묻는다. “메뚜기도 한 철이다”라는 말의 뜻을 아는지.지난 주 금요일에 천주교대구대교구 대안 교육 세미나가 열렸다. 어느 기자는 이 세미나의 보도 제목을 `위기 교육의 해법`이라고 썼다. 그리고 `학교 밖 길 잃은 아이들 길 찾게 품어야`라고 부제를 붙였다. 세미나의 취지를 잘 이해한 기사 내용에 발표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미나 현장을 방문해 준 기자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간절한 소망을 하나 품었다. 사실 길 잃은 학생들은 학교 밖보다는 학교 안에 더 많이 있는데 이들을 위한 세미나도 곧 마련되길.`위기의 교육, 지금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역사 교육이다. 교육계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죽기 살기로 교과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도 참 밝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를 메뚜기가 필자의 이런 생각을 비웃었다. 그리고 필자에게 물었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 역사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아느냐고.그리고 재차 따져 물었다. 교과서만 바꾸면 뭐하느냐고.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교과서를 아무리 잘 만들면 뭐하느냐고. 어차피 대한민국 교실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똑같아질 것을. 역사를 통해 사관(史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단순히 역사 지식을 무의미하게 외울 것이고, 천편일률적인 시험을 통해 점수의 노예가 될 것인데. 십 수 년 동안 영어를 배워도 외국인 앞에만 서면 영어 울렁증에 빠져 대화 한 마디 못하는 이 나라 교육제도에서, 그리고 객관은 없고 주관만 난무하는 이 시대, 이 나라에서 교과서만 바꾸면 도대체 뭐하느냐고.메뚜기의 분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자기들 밥그릇 싸움을 위해 역사를 팔아먹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과연 진정한 역사의식이 존재하기나 하냐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서러움도 해결주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들이 저렇게 많으냐고. 저들은 양심에 무엇을 발랐기에 저렇게 낯들이 두껍냐고.지금 많은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 참여에 반대한다고 한다. 정말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교과서 논쟁에 끼어든 것 자체가 그들 또한 객관적인 사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가 꼭 필요하다면 필자는 집필진으로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바로 `EBS 강사`이다. 설마 아직도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은 없으리라 믿는다.역사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었다.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그 가치를 모른다. 메뚜기 자리에 여의도를 넣어 읽어보자. “메뚜기도 한 철이다.”

2015-10-21

바라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난 주 금요일이 혹시 무슨 날이었는지 기억하시는지? 거리마다 태극기가 내걸리고, 포털서비스 메인 화면마다 국경일을 알리는 문구가 화려한 장식처럼 디자인 되었던 그날은 한글날이었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전까지 국경일과 공휴일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검색에 따르면 국경일은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법률로 정한 경축일이다. 우리나라의 국경일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다. 공휴일은 1970년 6월 15일에 제정 공포 된 후 수차례 개정되어 지금까지 오고 있다. 공휴일은 말 그대로 국가에서 정한 쉬는 날이다. 대표적인 공휴일은 1월 1일, 설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추석, 성탄절, 그리고 선거일과 국경일 등이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국경일은 공휴일에 포함된다. 하지만 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글날은 공휴일에서 제외 되었었다.1991년에 제헌절,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이유는 공휴일이 너무 많아 경제 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어느 정도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문화유산인 한글에 대한 역사의식을 높인다는 이유로 2013년에 한글날은 다시 공휴일로 재지정 되었다. 과연 이것을 N포 세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우리 국민들에겐 국경일보다 공휴일에 대한 개념이 더 크다는 것을 올해도 다시 느꼈다. 즉 우리에게 빨간 날은 모두 단지 쉬는 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가급적 국경일과 공휴일이 겹치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에서는 이런 국민들의 바람을 받아들여 대체휴일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만큼 청와대와 여의도, 그리고 국민의 뜻이 신속 정확하게 삼위일체가 된 제도가 또 있을까? 다른 나랏일들도 대체휴일제도만큼 정부와 국회, 국민의 손발이 척척 맞는다면 N포 세대와 같은 슬픈 신조어들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한글날 아침 필자는 라디오를 듣다가 말(言) 멀미를 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청취자의 사연을 너무 맛깔스럽게 읽어 주는 진행자의 목소리에 빠져 힘든 것도 잊고 일을 했다. 그러다 중간 즈음 지나면서 “썸타다” 등 갑자기 낯선 단어들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에 라디오를 끄고 싶었지만 “썸타다”라는 말의 의미를 추리하는데 모든 감각을 빼앗겨 버린 필자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사연 마지막 부분에 들린“심쿵 했어요.”라는 말에 필자는 들고 있던 볼펜을 놓고 말았다.필자는 하던 일을 놓고 이들 단어들의 뜻을 찾아보았다. 심쿵은 `심장이 쿵쾅쿵쾅 거린다`는 뜻이었고, 썸타다는 `관심 가는 이성과 잘 되어가다`는 뜻이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시대에 뒤처진 필자의 언어 감각이 부끄러웠다. 더군다나 신조어 테스트라는 것을 하면서는 부끄러움은 좌절로 바뀌었다.신조어들은 풍성한 언어생활을 위해서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줄임말 위주의 신조어들은 이와는 거리가 멀어 걱정이다. 더군다나 말 줄임 현상은 10대들에게서 주로 일어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더 이상 세계 문화유산인 우리말이 오염되지 않고, 또 우리 청소년들의 언어 습관이 나빠지지 않도록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그 방법 중 하나가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 운동이다.필자는 최근 “바라기”라는 우리말에 푹 빠져 있다. 이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특히 필자는 “??라기-한쪽만 바라보도록 목이 굳은 사람”이라는 뜻이 참 좋다.“사랑바라기, 별바라기” 등 바라기가 붙은 말들은 그 어감이 예쁘다. 그런데 이 좋은 말도 여의도만 붙으면 타락하고 마니 우리나라 국회의 능력을 알만하다. 역사 교과서를 두고 꼴사나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밥바라기”라고 한다는데, 밥바라기란 자산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목숨을 건 사람들을 뜻한다. 한글 정화도 중요하지만 국회 정화가 더 시급한 게 지금이다.

2015-10-14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을 맞아

▲ 류영재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운영위원장올해로 네 번째가 되는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오는 16일 개막해 11월 1일까지 17일 동안 해도근린공원에서 펼쳐진다. 스틸아트페스티벌은 우리 포항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철을 매개로 한 예술축제이다. 문광부에 등록된 우리나라 축제가 2천500여개나 되며 그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한다. 축제의 종류 또한 워낙 다양하여 홍수처럼 넘쳐나는 각종 축제들로 그 감흥이 다소 시들해지고 더러 뜬금없는 축제의 경우는 알 수 없는 피로감까지 유발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그러나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축제를 창의적인 연구를 통해 다듬고 정성껏 준비해 시행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지방자치 시대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각 지자체 마다 도시를 가꾸고 매력적인 도시공간의 창출을 통해 정주환경을 조성하고 도시브랜드를 높이는 일은 도시의 경쟁력 향상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멀리 볼 것 없이 가까이서 살펴보면, 우리지역의 대표적인 축제인 포항국제불빛축제는 문광부에서 선정한 전국유망축제이며 경제 유발효과만 하더라도 엄청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경북최우수 축제인 청송사과축제는 지역 농민들이 사과 1천500상자를 축제에 후원해 원활한 행사를 도움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생산, 지자체의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하고 있다. 이는 결국 지역의 브랜드화, 지역 마케팅으로 이어져 `청송산(産)`의 높은 부가가치를 담보하게 되는 것이다.축제의 시원은 종교적인 제의에서 찾을 수 있는데 시공을 떠나 축제에서 `축`과 `제`의 균형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페스티벌은 성스러운 제의는 퇴색되고 흥겨운 잔치의 의미로 변화되었다. 축제가 제의적이든 세속적이든 공동체를 결속하고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성공 축제를 위해서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뒤따라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 연구의 초점이 경제적인 효용에 맞춰지는 것 또한 당연한 듯 보이지만 한 곳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자칫 본질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오늘날 축제분야 전문가들의 연구 보고서에서도 제의성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축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제의적인 성스러움 보다는 오히려 재미와 일탈을 부추기는 기획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지역의 고유성이나 역사, 전통, 문화, 환경 등에도 주목하기를 권장하기는 하지만. 축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밤시간을 잘 활용할 것, 젊은 사람과 여성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할 것, 일탈적 요소의 가미, 이슈마케팅 등을 주문하고 있다.`2015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의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사무원 3명과 아르바이트생 몇 명이 전부인 부족한 인력 탓으로 타도시 방문홍보는 엄두도 내지를 못하였는데, 한글날부터 시작된 연휴를 기하여 운영위원 몇 명이 타지역으로 홍보활동을 나섰다. 울산의 처용축제장과 부산의 바다미술제 현장을 찾아 벤치마킹 겸 홍보활동을 했고 이튿날은 경북의 김천, 구미, 안동 등지를 돌며 홍보활동을 했다. 긴 여정 중 장시간 이동하는 차안에서 많은 얘기들을 나누다보니 그동안 늘 함께 하였으나 미처 말하지 못하였던 가슴속 내밀한 부분까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벌써 15년세월이 지난 시절에 `축제`논문을 쓰며 지역정체성을 담은 축제 개발에 몰두했던 일, 아이덴티티니 컨셉이니 하며 머리를 싸매고 축제의 개념을 만들던 시절에 대한 추억과 여전히 겉만 그럴싸한 껍데기에 굴복하지 않고 그 정신이 튼튼하여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실 있는 축제만들기에 혼신의 용을 쓰고 있으나 현실은 언제나 까다로운 행정절차의 장벽과 내용보다는 외형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 등에 대한 부담을 무겁게 짊어지고 깊은 밤을 하얗게 고심한….`백아절현`의 심정을 푸념처럼 고백하면서도 기적같이 성사된 지역 철강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참여를 약속해 준 지역의 어린이, 학생, 문화창조도시 시민들의 고마움에 다시 용기를 얻고 마음을 다잡는다.

2015-10-13

대구미술비평硏 자료집 총람 출판을 바라보며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건전한 미술비평활동을 통해 지역미술을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로 창립된 대구미술비평연구회가 올해 17년을 맞아 뜻깊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1999년 미술비평활동을 시작하며 작성했던 평문들과 각종 연구 자료들을 모아 자료집 총람을 출판하는 것이다. 지역에 이렇다 할 평론가도 없다. 모든 미술 비평활동이 서울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시절에 뜻있는 미술이론가들이 힘을 합쳐 만든 연구회가 이제는 40여명에 이르러 비평연구회 회원들을 배출하였으며 현재도 10여명의 비평가들이 평론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화가들의 작품활동에 비해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는 `미술비평`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질 것이다.미술비평은 미술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서양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술의 비평은 예술가 자신의 개인적 차원에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법의 하나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경우 미술비평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기초가 다져진 것은 1795년 이후 프랑스의 철학자 디드로의 살롱비평이 등장하면서부터 그 출발점을 삼을 수 있다. 19세기 이전의 미술비평은 개별 작품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검토하기 보다는 미술의 도덕적 목표와 이상(진선미)을 일반화하는 작업에 치중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미술의 경제적 후원자가 소수의 권력자로부터 일반 시민계급으로 이행하였고 결과적으로 미술품 시장의 영역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예술가와 애호자의 중개자로서 대중의 취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비평가들도 등장했다. 이들 비평가들은 특정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 평가의 대상도 동시대 미술에서부터 과거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확대 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미술비평이 독립된 지적 활동의 한 분야 이상의 광범위한 분야까지 그 기능과 역할이 커져 가고 있다.우리나라 미술비평 역사는 19세기 전통미학과 봉건적 미의식에서 제작된 관념미술에 대한 비평과 근대화 시기에 일제 강점기 식민주의 미술의 왜곡된 비평이 주는 모순 속에서 지속적인 발전이 이어져 왔다고 본다. 19세기까지 우리 미술의 주요의식으로 자리 잡았던 이상주의와 심미론, 기예론 중심의 미학과 미술론이 20세기를 접어들면서 우리 고유의 이상주의와 서구의 미학·미술론이 흡수된 예술 지상주의 그리고 민중미술·사실주의라는 복잡한 미의식의 확장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미적 가치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서양미술의 긴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비평 활동을 펼쳐왔던 서양에 비해 짧은 역사 속에서 진행된 우리의 비평 역사는 이러한 이론적 한계점과 제한된 연구 자료, 환경 등의 이유로 발전을 제약 받아왔던 게 현실이다.우리나라의 이러한 미술비평이 가지는 문제점과 한계점을 알고 있기에 대구미술비평연구회는 그동안 비평연구활동을 통해 지역 신진작가들을 위한 연구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이론적 무장과 자기작품에 대한 비평과 감상에 필요한 언어들을 함께 연구하고 만들어가는 일련의 활동들이 지역 미술인들에게는 적잖은 도움과 자극이 되었을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이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총람으로 재편집되어 출판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역 비평가들의 작은 노력들이지만 이러한 활동들이 지역문화발전의 초석이 되길 기대하며 그동안 고생한 연구회 회원들을 위해 격려의 박수를 힘껏 쳐본다.

2015-10-12

대안교육 세미나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10월 대한민국은 축제의 물결로 넘실거린다. 서울 세계불꽃축제,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진주 남강유등축제, 김제 지평선축제, 수원 화성문화제, 정선 아리랑제, 이태원 지구촌축제 등 축제 이름만으로도 한 면을 다 채우고도 남는다. 비록 지자체들이 실시하고 있는 축제에 대해 엇갈린 평가들이 있지만, 지자체들의 특색 있는 축제들은 분명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여의도 모습에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위로하고도 남을 일이다. 10월을 수식하는 용어 중 단연 으뜸은`문화의 달`이다. 정부는 문화 예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해 1972년에 10월을 문화의 달로 정했다. 문화의 달에는 각종 문화 예술 진흥을 위해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데, 통계에 따르면 영천 문화의 달 기념식을 비롯하여 2015 문화의 달에는 1천68개의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고 한다.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자연 상태의 사물에 인간의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 발전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내는 것”, “인간 집단의 생활양식” 등 문화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집단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는데, 그것은 문화의 주체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정치 문화, 교육 문화, 음식 문화, 운전 문화, 공연 문화 등 인간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문화를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젠 문화를 빼고는 말이 안 될 정도로 문화는 시대의 거대 담론이 되었다.대중문화가 발달하면서 문화는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문화 산업은 지금까지 개발된 산업재 중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다. 또 자원의 고갈 걱정이 없는 무한 창조 산업이다. 그러기에 세계 각국은 문화 산업 육성에 국운을 걸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K-POP, 한류 등 문화 산업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러기에 정부에서는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등을 제정하여 국가 차원에서 문화 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정부는 문화 융성을 위해 문화의 날, 문화의 달까지 제정하였다. 그럼 과연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문화적 삶의 질은 어떨까.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한 답보다 `문화적 삶`이 어떤 것인지 되묻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솔직히 필자는 문화적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영화 보고, 책 읽는 것이 과연 문화적 삶일까?문화의 달을 맞이하여 보여주기 식 행사보다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 국민이 한번 쯤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단지 대중문화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 전 분야의 문화 수준에 대해서 점검해 보고, 그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문화의 달이 되길 기원한다.최근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이 화제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은 가수, 개그맨, 탤런트 등 다양하다. 그들은 복면을 쓰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한다. 그러면 판정단원은 오로지 노래만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추리하고, 그 중 잘했다고 생각되는 한 사람을 선택한다. 지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이 프로에서만은 이기고 지는 것이 의미가 없다. 진 사람들은 가면을 벗는데,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참가자들은 공연이 끝나고 말한다. “가면 속에서는 편견과 선입견을 벗고 오로지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이 말은 형식 집착증에 빠진 우리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우리사회에서 가장 형식이 난무한 곳은 교육계다. `학벌지상주의`보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 교육계에서도 간판을 가리고 진정으로 교육다운 교육을 하는 학교를 찾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는 문화의 달을 맞이하여 진정한 학교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10월 16일, 대구 남산동 대신학원 대강당, 제1회 천주교대구대교구 대안교육 세미나!

2015-10-07

문화융성시대와 지역문화의 발전

▲ 김태곤 대백프라자 갤러리 큐레이터시대정신은 각 나라의 발전과 비례해 항상 변해 왔다. 우리나라도 이전까지의 목표가 `잘 먹고 잘사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서고, 무역규모도 1조 달러를 달성하면서 더 이상 절대적인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 역시 달라진 우리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 수준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듯한 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2013년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라는 국정 비전을 제시하며 새롭게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를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으로 정하고 다양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정책을 펼침으로써 이러한 국민들의 공허한 삶을 재미있고 즐겁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노력이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 예산 및 미래창조과학부 디지털콘텐츠 예산 등을 포함한 문화재정은 6조5천780억원으로, 올해 6조1천201억원에 비해 4천579억원이 증가했으며 정부 총지출(386조7천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올해 1.63%에서 1.70%로 상승했다. 특히 문화융성 주무부처인 문체부의 재정지출 규모 증가는 단연 두드러진다. 문체부의 내년 재정규모는 5조4천585억원으로 올해 4조9천959억원에 비해 9.3% 증가했다. 문화재정이 정부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문화융성을 국정기조의 하나로 채택한 현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이전 정부 때인 2012년에는 1.41%였으나 2013년 1.47%, 지난해 1.52%, 올해 1.63%로 연평균 10%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좋은 나라는 국민이 행복한 나라`라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을 담긴 정책이다. 권력이 있고 돈이 많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국제 사회에서 국가의 정치적 힘이 크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다면 국민의 행복지수 또한 빠른 성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년 OECD 가입 34개국 중 우리나라는 27위를 차지하였으며,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자살률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결과를 보면 국민이 느끼는 삶의 질과 행복의 수준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그리고 문화융성의 기초 토양인 지역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지역이 자율적으로 각 지역의 특수성과 고유성을 키워 나가도록 수도권 중심 정책을 지양하고, 지역예산의 증대와 균형 지원 및 예산집행의 신축성을 부여하며 지역문화의 자치화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들도 함께 수립되고 있다. 이는 “진정한 문화는 꽃이 아니라 토양이며 다양한 꽃이 자생토록 하기 위해서는 자율과 상생, 융합에 바탕을 둔 문화예술 정책의 틀이 새롭게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처럼 지역문화의 특수성과 자생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문화정책이 필요하다.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지역에서 순수예술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원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문화를 생산하는 젊은 예술인들이 지역을 모두 떠나 버린다면 궁극적으로 지역이라는 공동체는 모두 무너져 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역 문화의 꽃은 피우기 위해서는 젊은 예술인들이 먼저 다양한 활동에서 오는 재미를 만끽하고, 향유하여 순수예술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는 지자체와 문화 종사자 모두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다양한 지역의 문화와 예술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활발해진다면 진정한 문화융성의 시대는 빨리 찾아올 것이다.

2015-10-06

한국어 전성시대

▲ 임선애 대가대 교수·한국어문학부시리아 난민들의 죽음 특히 세 살배기 아일린의 싸늘한 주검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위헌 논란과 국민 반발에 휩싸인 채 참의원 본회의에서 안보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일본은 패전 70년 만에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중국의 저명 여성 작가는 50년 후 다시 깨어날 것을 기대하며 자신의 머리를 냉동시켜두는 인체냉동수술을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문제를 두고 투표론과 단합론 사이에서 갈등을 빚었다. 이렇듯 세상은 슬프고, 놀랍고, 기이하고, 복잡한 뉴스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기쁜 소식은 한국어가 프랑스 수학능력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 필수 선택 외국어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바칼로레아는 프랑스에서 중등교육 제2주기(고등학교)인 리세(lycee)를 졸업한 후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이 치르는 대학입학 자격고사 제도이다.1808년 나폴레옹 집권 당시에 시작된 이 제도는 프랑스의 지방 자치단체인 교육청(Rectorat) 교육 아카데미가 주관하고, 각 지역마다 시험이 치러지지만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효력을 지니는 자격증 제도이다.(교육학용어사전)바칼로레아 외국어 시험은 제1·2·3 외국어로 분류되며, 1과 2는 필수이고 3은 선택이다. 3에서 2영역으로의 이동은 프랑스가 한국과 한국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반영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높아짐으로써 한국어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는 좋은 예 중의 하나이다.각종 언어 관련 통계의 공식적인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세계적인 언어 정보 제공 사이트인 에스놀로그(http://www.ethnologue.com)는 지난 해 한국어 사용자 수를 세계 18위에서 13위로 상향 조정했다. 원래 성서 번역을 목적으로 1951년부터 세계의 언어 현황을 조사해온 에스놀로그 단체는 현재 지구상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는 7천102개이며, 그 중 세계 인구의 약 80%가 82개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는 7천여 개 이상의 언어가 그 사용자수가 미미한 언어들이 대부분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사용자수가 늘기보다는 줄어들기가 쉬운 것이 언어가 지닌 운명이기도 한데, 한국어 사용자 수가 6천640만 명에서 7천720만 명으로 늘어난 데 대한 등급 조정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한국어의 세계화로 인한 기쁜 소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대한항공은 지난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5층에 위치한 카페 캄파나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기 코즈발(Guy Cogeval) 오르세 미술관장, 주요 재계·문화계·스포츠계 인사 및 스카이팀 항공사 CEO 등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대한항공의 후원 계약에 따라 오르세 미술관에서의 한국어 작품안내 서비스 시작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머니위크 최윤신 기자)고 한다.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에서 드래곤볼Z 초궁극무투전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히라노 마사유키 프로듀서는 한국에도 팬이 많은 인기 만화 `드래곤볼`을 원작으로 한 `드래곤볼Z 초궁극무투전`의 한국어 기획을 앞두고 한국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한국어의 세계화를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공공기관인 세종학당재단은 한류 확산, 국제결혼 증가,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 확대, 고용허가제 시행 등으로 국내외 한국어 교육 수요 급증에 대응해서 해외에 한국어 교육기관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 소재 각 대학들의 한국어 관련 학과들이 참여해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힘쓰고 있다. 한국어 전성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은 과연 한국어사용을 잘 하고 있는가.

2015-10-05

한마음으로 비는 소원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 뒷산에서 노루들이 종일 울었네./`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미당 서정주의 시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의 전문이다. 살며시 눈 감고 시상을 떠 올리면 온 식구가 둘레둘레 모여 앉아 송편을 빚는 정겨운 모습이 그려진다. 또한 어느 때보다 밝은 빛을 선사하는 달빛 아래 산 속의 노루도, 대숲 속의 올빼미도 한껏 들뜬 모습이 선명하다. 왜 아니겠는가! 한해 가운데 가장 풍요로운 계절의 한 복판에 모든 이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드는 절기가 추석이기 때문이다. 비록 경제가 어렵다고는 해도 추석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그래서 이번 추석 연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고향을 찾아 길을 나섰던 것이다.이번 추석은 맑은 날씨에 슈퍼문(Supermoon)까지 떠올라 더 많은 이들이 휘영청 둥근 달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떤 이는 소리 내어, 또 어떤 이는 조용히 맘속으로 제각각의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온 식구들이 무탈하게 해 달라고 빌기도 했고, 하는 일이 잘 되게 해 달라 빌기도 했을 터. 곧 입시철이니 당연히 좋은 대학에 합격하게 해 달라는 소원도 있었을 것이고, 졸업을 앞둔 이는 좋은 직장을 기도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 꽃가지도 휘일 정도로 넉넉해진 달밤이었으니 모든 이들의 소원이 다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마음껏 소리 내어 웃을 일들이 차고 넘쳤으면 하는 바람이다.비록 며칠 늦긴 하지만 이 기회에 나도 한 번 소원을 빌어 볼까! 뭐니 뭐니 해도 먹고 사는 문제가 관건이다.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까지 무모한 소원은 빌지 않겠다. 우리 학생들 대학 졸업하면서 빚쟁이 안 될 정도, 우리 청년들 하고 싶은 일터에서 맘껏 일할 수 있는 정도, 우리 가장들 어깨 펴고 다닐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우리 어머니들 걱정 없이 장볼 정도로만 살게 해달라면 무리한 소원일까?다음 소원은 뭘 빌어볼까. 그래, 나라가 좀 안정됐으면 좋겠다.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럽고, 기가 막혀도 너무 기막힌 일들의 연속이다. 모두가 국민을 위한다고는 하는데 무엇이 진정 국민을 위한 일인지를 `나`라는 국민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자중지란(自中之亂)도 삼가고, 이전투구(泥田鬪狗)도 멈추고 진정 국민을 위한 겸허(謙虛)를 기도하는 것 역시 무모한 소원일까? 자신만이 옳다고, 우리 편만 정의롭다고 목소리 높이는 독선(獨善)을 물리치고 함께 어울려 웃고 즐기자는 소원은 들어주실런지.내친 김에 한 가지 소원만 더 빌어본다. 오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 면회소에서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예정돼 있다. 근래에는 상봉이 이뤄질 금강산 지역에 많은 실무자들이 왕래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상봉이 예정된 가족들의 심정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대통령의 UN연설에 대한 북측의 반응이 심상찮다. 게다가 다가오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즈음해 북한이 어떠한 태도를 보일지가 최대 관심사다. 혹시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발 행위로 인해 모처럼의 기회가 무산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만은 제발 조용히 넘어가 주기를, 그래서 가슴 졸이며 가족 만날 날만 고대하고 있는 이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지기를 기도해본다.혹시 나 혼자만의 기원으로는 부족할 지도 모르니, 우리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비는 소원이면 어떨까?

2015-10-02

벌초를 하며…

▲ 류영재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운영위원장바쁜 일상에 허덕이다 지난 주 날을 잡아 종형과 함께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했다. 부모님 산소는 새로 들인 지 오래지 않아 잔디가 제법 이쁘게 자라서 비교적 쉬웠으나, 윗대 어른들 산소의 벌초는 언제나 만만치 않다. 묘소의 잡풀을 깎으며 왜 이런 말들이 떠오르는지 슬며시 웃음이 난다.“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한다”,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 산천에는 가을 햇볕이 작렬하였고, 여름을 다한 풀들은 마지막 독을 뿜어 올해도 예외 없이 내게 햇볕 알레르기와 함께 풀독(접촉성피부염)을 선사했다. 치료에 몇 주 고생할 것을 뻔히 알면서 한 해도 빠짐없이 그 길을 나선다.의무감 없던 어린 시절은 추석이 다가오면 뭐든지 풍요로워 그저 신이 났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밑에서 멋모르고 자라던 시절은 잠깐이었고, 일찍 아버지 여의고 나니 오롯이 그 모든 일이 나의 몫이 됐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과 제사가 커다란 짐으로 느껴지고 그 무게만큼 죄책감 또한 만만치 않음을 고백한다.그래도 벌초를 할 때면 아버지 덕분에 며느리 대신 딸에게 쬐어 준다는 좋은 가을햇살도 쬐고 모처럼 고향마을 곳곳에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일이 좋다. 가장 기분 좋은 건 아버지 묘소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면 마치 아버지가 이발을 깨끗이 하신 것처럼 느껴져 내 마음이 개운하다.이른바 신학문을 배운 나는 전통의 제례 등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속단하고 내심으로 어른들 세상 떠나시고 나면 한 가지씩 옛날 예(禮)를 줄여 간소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어머님 세상 뜨시니 당신께서 고집하시던 예도 자연스레 함께 거두어 가셔서 실제로 예전보다 훨씬 간소해졌다. 그런데 홀가분하기 보다는 마음 한 켠이 쓸쓸하니 이 어인일인가?어머니 살아생전, 당신 손수 제사를 모실 때면 늘 이웃이 신경 쓰이는 아파트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현관문 밖에 작은 상을 따로 차리셨다. 자손이 있는 조상신 제사에 자손이 없는 조상신이 함께 따라와 얻어먹는 음식이라며 따로 두신 것이다. 이웃보기도 민망하고 번거롭기도 하여 싫은 내색을 해도 꿈쩍 않으시다가 육신이 늙고 병드셔서 참견할 기력이 없으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지금은 명절과 제사에 오셔서 당신께서 손수 차리시던 제삿밥을 잡숫고 가실 것이다. 가난했어도 인정 많은 분이셨으니 아마도 온 동네 자손 없는 조상신들은 죄다 모시고 오시지 않을까?`조상신은 자손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하늘에서 보고 마음속까지 훤히 꿰뚫어 보시니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누가 보든 안 보든 지극한 정성을 다해야 조상님들도 좋아하며 흠향하신다` 말씀하시는 것을 나는 미신쯤으로 여기고 귀뚱으로 듣다 어머니 세상 떠나시고 보니 가슴 절절하게 되새겨지나 어디를 봐도 계시지 않으니 허망하고 속절없다.그 미신 같은 말씀은 진리였다. 조상신은 다 보고 다 알고 있으니 누가 보든 안보든 올바르게 살아야함을 이르신 말씀이었고, 어른이 없어진 이 나이의 자식이 세상 함부로 살까 조상신을 새겨 주고자 하심이니 그 뜻은 하해와 같다.60 가까이 살아보니 명절이 되면 자주 옛날 기억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마 나도 살아갈 날보다는 살아온 날이 많아지긴 한 모양이다.어머니는 온갖 미신 같은 구전 이야기로 나를 가르치셨는데, 나는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그 아이들은 나를 통해 인생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자 문득 마음이 불안해진다.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스스로 묻고 혼자 답하며 마음을 다독인다.조상님이 다 보고 계시니 누가 보든 말든 그 순간 최선을 다해 살면 되지 않겠나. 내가 굳이 입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그렇게 살고 있으면 아이들은 그 모습을 배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부모님 산소를 벌초하는 내내 묘소를 뒤덮은 잡풀보다 더 많은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2015-10-01

하늘연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한가위 여운이 길게 남는 9월 끝 날이다. 민족 대이동답게 올해 역시 귀성 귀경 길 정체는 뉴스의 메인을 차지했다. 고속도로의 이름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린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이지만, 사람들의 표정만큼은 18년 만의 슈퍼 문(moon)처럼 밝고 환했다. 길이 막혀도 사람들이 환한 이유는 그 길의 끝엔 희망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고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명절은 고향의 다른 이름이자, 희망과 같은 말이다. 고향에서 행복한 한가위의 기운을 받은 사람들은 다음 명절을 기다리며 또 그렇게 남은 2015년을 열심히 살 것이다. 명절 날 고속도로 상황은 그 해의 경제 사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정체 정도와 경제 사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필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비례관계를 제시한다. 정체가 심하다는 것은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분명 그 사람들은 그래도 고향에 갈 형편은 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고속도로 정체가 심하다는 것은 경제 사정도 그만큼 낫다는 것이다.올해 고속도로 정체 상황은 어떠했을까. 안타깝게도 올해는 예년에 비해 정체 시간이 짧았다고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 고속도로 확장 등 사회기반시설이 예전에 비해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N포 세대 등 많은 사람들이 경제 사정 때문에 귀성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N포 세대! 우리의 젊은이들은 삼포 세대에서 출발하여 오포 세대, 칠포 세대를 거쳐 이제 N포 세대까지 왔다. 이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까.세상은 분명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와 경제의 명암을 말하라고 한다면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이다. 특히 어둠의 농도는 젊은이들에게 더 심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어둠이 갈수록 더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어둠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취업의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석에도 귀성을 포기하고 취업을 위한 스터디를 할 수밖에 없는 이 나라 젊은이들. 내년 한가위 때는 꼭 취업에 성공하여 동전을 뒤집듯 지금의 어두운 면을 확 뒤집고 행복한 귀성 정체의 길에 꼭 합류하길 기원한다.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다는 것을, 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설령 세상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더라도 그 끝을 새로운 시작으로 만드는 힘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 속에서 우리는 시작과 끝, 끝과 시작은 결국 하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일이면 열매달 9월이 하늘연달 10월에게 시간의 바통을 넘겨준다. 바통을 이어받은 하늘연달은 더 큰 결실을 위해 쉼 없이 시간의 바늘을 돌릴 것이다. 하늘이 열리듯 우리 모두에게도 자신이 소원하는 길이 꼭 열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기념일이 많은 10월처럼 저마다의 큰 기념일을 2015년 10월에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산자연중학교도 하늘연달에 새로운 시작을 위한 큰 준비를 하고 있다. 10월 26일 대구 남산동 신학교 대강당에서 제1회 천주교대구대교구 대안교육 세미나! 혹시 55조 1천322억원이 어떤 돈인지 아시는지? 이 어머 어마한 돈의 정체는 바로 교육부 예산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 예산안에는 산자연중학교, 즉 각종학교는 빠져 있다. 엄연히 산자연중학교 학생들도 대한민국 중학생인데 교육부는 물론 경북도 교육청은 유독 돈과 관련해서는 산자연중학교를 배제해 버렸다. 필자는 아직도 기억한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때를, 보고 지연으로 그토록 매몰차게 몰아세우던 교육청을.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말이 있다. 이 나라의 기준을 말할 때 가장 잘 맞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말할까, 그 때 그 때 달라요! 그런데 교육계는 이 현상이 더 심하다. 차별 없는 지원을 통해 혼돈과 개혁 대상인 교육계가 바로 서는 하늘연달을 기원한다.

2015-09-30

철없는 사회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전국에 가을 물이 곱게 들고 있다. 느티나무와 벚나무들이 울긋불긋 거리를 물들이기 시작했고, 은행나무는 샛노란 가을 들판에 색을 더하기 위해 한껏 노란 색을 모으고 있다. 가을이 풍성한 이유는 이렇듯 색이 넘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 가을 향기는 어떨까. 필자가 생각하기엔 가을 향기는 색과는 대조적으로 하나일 것 같다. 그 향기는 바로 그리움의 향기가 아닐지. 그리움의 향기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움은 감정의 촉매제로 작용하여 많은 감정들을 양산(量産)한다. 행복, 설렘, 두근거림, 그리고 아쉬움, 먹먹함, 아픔 등은 모두 그리움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중에서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향기는 어떤 것일까.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추석에 대한 기대감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다. 아마도 그 결과가 올 해 우리의 가을 향기를 말해주지 않을까 싶다. 그런 그걸 향기라고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여론 조사에서 많은 사람들은 올 해 추석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부담에 대한 강도가 더 심하다고 말했다. 부담의 주범은 취업난. 요즘 젊은 세대를 일컫는 유행어 중에 하나가 삼포 세대다. 불안한 일자리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 세대를 사회는 삼포 세대라고 한다. 그런데 이젠 오포를 넘어 칠포 세대까지 나왔다고 한다. 칠포세대가 포기한 일곱 가지는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꿈, 희망이라고 한다.누군가가 지금 사회의 모습을 4단 카툰으로 그린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아마도 첫 장면엔 트렁크 살인 사건과 그 범인이 썼다는 살생부가 나올 것 같다. 그 다음 장면엔 성적을 조작한 어느 고등학교 교사 이야기, 세 번째 장면엔 막장 쇼로 가고 있는 국정감사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장면엔 역시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고 자기 이익 챙기기에 바쁜 정치권 이야기와 그들의 싸움에 고통 받고 있는 칠포 세대의 암울한 얼굴들이 그려진 장면이 나올 것 같다.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을 앞두고 오히려 더 우울해지는 칠포 세대, 정말 이들에겐 희망이 없을까. 이들에게 희망을 얘기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도 따놓은 당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밥값도 못하고 오로지 밥 그릇 싸움만 하고 있는 지금의 여의도에서는 더욱더 적임자가 보이지 않는다.칠포 세대들은 한가위를 앞둔 지금 시점에서는 아프게도 팔포 세대가 된다. 그들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귀향이다. 취업에 대한 주변의 눈이 두렵고, 말이 무서워서 그리운 고향 가기를 포기한 팔포 세대. 어쩌면 그들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보면서 지금의 사회를 원망하며 이백의 한시 `정야사(靜夜思)`를 읊조릴 지도 모르겠다. “머리 들어 산마루 달을 보다가 / 머리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더도 말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옛말이 있다. 예전부터 우리의 한가위는 그만큼 풍성한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분명 예전에 비해 사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 3대 신용 평가 기관들은 지금 우리나리의 신용등급을 중국이나 일본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숫자 놀음에 대해 팔포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지구 온난화 등 아무리 환경 파괴가 심해도 계절은 잊지 않고 때가 되면 때에 맞는 자신의 일을 한다. 자연은 분명 철이 들었다. 그래서 그리움 가득한 자연의 가을 향은 풍성하다. 하지만 우왕좌왕하는 우리 사회는 아직 철이 덜 들었다. 그리기에 우리 사회엔 역겨운 냄새만 가득한다.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자연을 볼 여유를 잃어버린 우리는 계절에 대한 감각마저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철없는 모양이다.사람 향기 가득한 철든 사회, 과연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일까.

2015-09-23

미리내 가게와 산지여정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빠른 기온 변화에 몸이 멀미를 느끼는 요즘이다. “순식간”이라는 말보다 지금의 변화를 잘 나타내는 말이 또 있을까. 정말 순식간이다. 기온 변화는 곧 계절 변화로 이어진다. “순식간”은 자연에 큰 혹을 하나 붙여놓았다. 혹의 이름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매혹(魅惑)이다. 그 혹 안에는 요정이 있는데, 그 요정은 색의 마법을 가졌다. 참을성 없는, 그리고 배려를 모르는 인간들과는 달리 색채 요정은 9월 동안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금씩 나무에 색의 마법을 부린다.마법에 걸린 9월 가로수들은 곧 있을 자연의 가을 축제에 대한 소식을 나뭇잎에 적어 인간 세상으로 띄워 보낸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엔 매혹이 자라고, 자연에 매혹된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풍성해진다. 그 풍성함에 세상은 살맛이 난다.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자연의 마법 같은 이야기를 파는 가게가 우리 사회에도 있다. 그것은 바로 “미리내 가게”이다. “미리내”하면 많은 사람들은 은하수를 떠올린다. 그래서 승천한 용을 생각하며 은하수를 파는 가게인가 하고 나름대로 상상할 지도 모르겠다.그런데 필자가 말하는 미리내 가게는 이와는 다르다. “미리내”는 부사 “미리”와 동사 “내다”의 합성어이다.이를 풀어보면 “..을/를 미리 내다”이다. 그럼 무엇을 미리 내는 것일까. 그것은 돈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주문한 물건을 받기 전에 먼저 돈을 지급하는 “선불(先拂)” 가게와는 개념이 다르다. 선불가게가 자신을 위해 먼저 돈을 지불하는 것이라면, 미리내 가게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돈을 미리 내는 것이다. 이 때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 소위 말하는 노숙자, 독거노인 등 사회 약자들이다.미리내 가게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뜻이 나온다.“손님의 자발적인 기부로 남에게 음식이나 음료를 제공하는 방식의 가게를 이르는 말”. 미리내 가게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고착화 된 우리 사회에 진정한 나눔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큰 화두를 던지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면서,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단어 중 하나인 기부(寄附)! 우리는 기부의 소중함과 필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잘 안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기부는 거창한 것이다`는 기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우리는 언젠가부터 나눔에 대해 인색해졌다. 체면을 중요시하고, 남의 이목에 큰 신경을 쓰는 우리 사회에서 기부는 결코 쉽지 않다.하지만 430번째 가게가 문을 연 미리내 가게는 분명 우리에게 기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일부 사람들은 복지 강국인 우리나라에 아직도 밥 굶는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가지고 미리내 가게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하지만 이 말이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등 아직도 우리 사회엔 복지 사각 지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힘든 시기를 겪는다. 그 때 그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따뜻한 밥 한 공기와 더 따뜻한 희망이 담긴 말 한 마디이다.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자연이 색의 마술을 부리는 하늘 깊은 가을 날, 먹거리와 생태의 소중함을 배우기 위해 산지여정을 떠났다.수업 장소는 전라도 완주와 충청도 서천. 흔들리는 차 안에서 필자는 은하수 같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미리내 가게에서 부모님 생각을 하며 짬뽕 두 그릇 값을 미리 낸 회사원에 대한 이야기를!

2015-09-16

한국화가 현송 정치환 화백의 회상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난 주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셨던 현송(玄松) 정치환(鄭致煥) 화백이 팔공산 작업실에 홀로 남겨둔 벼루에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채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늘 인자한 성품과 조용조용한 언행으로 지역 미술계 좌장역할을 해오셨고, 제자와 후배들에게 스승으로서 늘 귀감이 되셨기에 그의 타계는 무엇보다 지역 미술계에 큰 아픔이 아닐 수 없다. 지난여름 유난히 무더웠던 폭염과 힘든 메르스 사태 속에서도 이승과 질긴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선생님이셨건만 가을의 문턱인 처서를 넘기면서 자연의 순리를 따르시듯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시고 말았다.필자는 현송 선생님과의 인연이 20여년은 훨씬 넘어가는 듯하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큐레이터 업무를 갓 시작할 때였다. 한국 미술계 계보가 무엇인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일을 할 때였다. 서툴고 두서없는 기획행사는 늘 이빨 빠진 사발처럼 꼭 뭔가 하나는 빠뜨리고 진행해 곤욕을 치르기 일쑤였다. 그때면 항상 좌충우돌 어설픈 결과를 낳기 일쑤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시다가 가끔 갤러리를 들르실 때면 미처 알지 못했던 미술계 상황과 기획자가 가져야할 자세들에 대해 상세히 일러주시곤 하셨다. 그리고 현송 선생님은 당신께서 전공하신 한국화에 대한 책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전통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한 회복과 재정립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이어오셨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한국화를 전통적으로 배우고 익힌 1세대 화가가 가지는 고뇌라고 단정 지어도 될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전통미의식이 깊이 배어있고, 묵향이 가득한 작품을 늘 가까이 두고 계셨지만, 우리의 미의식이 가지는 정체성과 후학들이 한국화가로서 겸비해야 할 자세와 작가관에 관한 깊은 성찰은 늘 그를 힘들게 했던 족쇄였는지도 모른다.1970년대 초 전통 한국화의 뿌리가 없었던 대구에 정착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영남 한국화단에 새로운 전통을 심었다. 1970년대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내려온 대구에서 현송이 정착할 수 있었던 당시 대형건물을 신축하고 새롭게 개점한 대구백화점이 있어 가능했다. 백화점 초대 디자인실장직을 맡아 다양한 사인물과 광고물을 손수 제작하고 그리며 유통업에 몸을 담으면서 대구와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나갔다. 그의 이런 노력 덕분에 백화점은 빠른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고, 현송은 교육자의 길을 계속해 이어갈 수 있었다. 전통회화 특유의 묵법을 능숙하고 다양하게 구사해 한국화의 정통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1975년 첫 개인전을 가졌던 곳도 역시 현송이 몸담았던 대구백화점 화랑이었다. 이처럼 그는 지역 미술계와 교육계에 크고 많은 족적을 남겼다. 서양화단에 비해 늘 부족한 작가수와 적은 화랑기획행사에도 불구하고 후배와 제자들이 한국화가로 지속적인 성장을 해 나갈 수 있게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셨기에 지금의 대구 한국화단이 굳건하게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셈이다.묵법의 변주로 전통 수묵의 교향악을 연주하듯 능수능란한 붓놀림은 제28회 국전 문화공보부 장관상과 제1회 의제 허백련 예술상(창작상) 수상 등으로 이어졌고, 계명대 미술학과 조교수, 영남대 조형대학 학장 겸 조형 대학원 원장, 국전 추천작가,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등으로 작가 경력을 쌓아 올라갈 수 있는 배경이 된 셈이다.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초록빛의 팔공산을 화폭에 남기시고 홀연히 무릉도원으로 떠나신 현송 선생님이 오늘 따라 유독 그립다.

2015-09-15